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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Honam Archaeological Society Honam KoKo - Hakbo

  • : 호남고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인류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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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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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59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311
호남고고학보
59권0호(2018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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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북지역의 가야와 백제의 역동적 교류

저자 : 최완규 ( Choi Wankyu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24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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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은 동고서저의 지형으로서 서부 평야지대와 동부 산간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서부지역은 전통적으로 마한·백제문화가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동부지역에서는 최근 가야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두 지역 모두 각각의 수계에 따라 분묘의 문화적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금강하구유역은 일찍이 백제의 중앙 묘제가 수용되고 있는 반면에 만경강이나 동진강, 고창지역에서는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마한 분구묘가 지속적으로 축조되고 있다. 금강수계의 진안과 장수지역에서는 가야계 분묘에서 백제계 유물이 발견되거나, 남강수계의 남원 월산리에서 출토된 위세품과 더불어 중국제 청자 계수호는 백제와 특수한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북지역의 가야는 백제와 친연적 관계 속에서 독자성을 가지고 성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진안에서 금산을 거쳐 논산천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 해당하는 연산지역의 가야계 수혈식석곽분과 유물은 백제 수도였던 공주나 부여에서 머지않은 영토내에 전북가야의 거점이 백제 중앙의 승인하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사비시대에 들어서는 전북지역의 가야와 백제의 친연적 관계는 백제의 남방성이 남원에 설치되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백제 남방성의 설치는 초촌리의 대규모 백제 횡혈식석실분과 척문리 산성에서 출토된 은제관식과 삼국시대 불상을 계승하고 있는 지당리 불상 등이 물적 증거가 되고 있다.
결국 정읍의 중방 고사성은 영산강유역의 마한계 잔여세력을 견제와 통제를 위해 설치되었다면, 남방성은 운봉 고원 일대의 가야세력을 기반으로 대가야 세력과 신라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Jeollabuk-do provincial area consists topographically of elevated east and low west; that is, the western part of it is mostly plain while the east is mountainous. The western region has traditionally been home to Mahan and Baekje cultures but, in the eastern part of it, the Gaya cultural heritages of various types have been discovered recently in large quantities, attracting by thus our attention.
In both areas, the cultural aspects of tombs vary according to each water system. In the basin of the Geumgang River estuary, Baekje's central tomb system was accommodated early on while, in Mankyung, Dongjin, and Gochang areas, the mounded tombs of Mahan type are found to have been continuously constructed since territorialization of Baekje. Baekje's artifacts have been found from the Gaya-type tombs in Jinan and Jangsu areas of the Geumgang River water system, which, together with 'Gyesuho (鷄首壺)' or the Chinese cock-headed celadon jar and other articles demonstrating the prestige of the then power group excavated from Wolsan-ri in Namwon-gun of the Namgang River water system, leads us to reasoning its extraordinary connection with Baekje.
In this way, it may be presumed that Gaya culture in Jeollabuk-do had grown independently in relative relation with Baekje. Juding from the tunnel stone-chamber tombs and remains of Gaya style found in Yeonsan region which is placed along the road connecting Jinan, Geumsan and Nonsan stream, it can be confirmed that a foothold of Gaya existed in Jeollbuk-do, a region not far from Gongju or Buyeo which were Baekje's capital, under the approval of Baekje central government.
During the Sabi era of Baekje,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Gaya in Jeollabuk-do became an instrument to set a Baekje's southern fortress in Namwon. The installation of Baekje's southern fortress is supported by such physical evidences as Backje's large-scale stone chamber tombs with horizontal entrance in Chochon-ri, a silver cap ornament unearthed from Cheokmun-ri mountain fortress and a Buddha statue in Zidang-ri which inherited the form of Three Kingdoms' Buddhist statues.
In the end, it would be possible to conclude that the middle Gosa castle in Jeongeup was installed to check and control the residual forces of Mahan residing along the Yeongsan River basin, whereas the southern fortress was aimed at containing the forces of Large Gaya and Silla with backup of the Gaya forces stationed in Unbong plateau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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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북 동부지역 가야 고분의 위세품과 그 위상

저자 : 김재홍 ( Kim Jae Hong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6-45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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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장수, 남원, 진안, 임실 등 전라북도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위세품을 대상으로 전북 동부지역 가야의 위상과 그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다.
전북 동부지역 가야의 대표적인 위세품으로는 통형기대 등의 토기, 금귀걸이 등의 금공품, 무기 및 무구, 마구, 철 제모형농공구, 외래계 문물 등을 들 수 있다. 위세품의 형태와 제작 기술이 대가야권역의 중심지인 고령 대가야고분 에서 출토된 것과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고배, 기대 등 토기문화 중에는 대가야토기를 모방한 것도 있으며, 소가야양식의 특징을 보이는 것도 존재하여 시기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정치체는 독자적 문화를 기반으로 가야문화를 수용하였으며, 기문(국)으로 불리웠다. 장수지역의 가야를 상기문, 운봉고원의 가야를 하기문으로 지칭하였으며, 중기문은 남원 서부 및 임실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 기문은 대가야권역에 속하는 정치체였으나, 지역국가명인 '기문'을 사용할 정도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가야는 고령의 반파국과 전북 동부지역의 기문국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체였다. 이 지역과 대가야를 하나로 묶는 요소 는 대가야권 내 소국 한기(旱岐)가 공유한 철제모형농공구와 통형기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대가야 왕은 권역 내 소국 한기층과 함께 농경 및 매장의례를 통해 대가야의 통합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대가야권역에서 전북 동부지역의 가야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외교역창구로서의 지위이다. 이 지역의 고분에서는 남조와 관련된 천계호, 쇠자루솥 등이 확인되었으며,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금동신발 등이 출토되었다. 대가야 왕이 기문국에게 요구하였던 역할은 대외교류창구였던 것이다.


Examined in this article are the so-called 'authoritative items' excavated from Gaya tombs in the eastern part of the Jeolla Buk-do(全羅北道) province (especially in areas like Jangsu, Namweon, Jinan, Imshil, etc.), that reflect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deceased individuals buried in those tombs. The intention of this author is to determine the status and nature of the Gaya society or culture in general that must have prevailed throughout the Jeon-Buk(全北) region.
The most representative relic of this sort found from the Jeon-Buk region's Gaya tombs are earthenware glasses(“Tong'hyeong-gidae”) or golden accessories (like earrings), as well as weapons, armors, harnesses, iron-based copies of agricultural utensils, and other items which seem foreign in origin. The overall forms and techniques apparently used in creating them seem to share similar facets that are also displayed in those found from the Dae-Gaya tombs of the Go'ryeong area, which also happened to be the heart of the Dae-Gaya territory. And while some of the earthenware found here such as Gobae and Gidae were seemingly modeled after their counterparts in Dae-Gaya, there are relics that feature characteristics of the So-Gaya ones as well, so we can see various political interests indeed dictated transmission of culture to take various directions.
The political entity in this region, while nurturing their own unique culture, embraced Gaya culture as well. This entity was called as Gimun(Gimun states), which was originally part of the Dae-Gaya realm but maintained autonomous control of itself enough to assume its own local title 'Gimun.' The king of Dae-Gaya, which was based upon the Banpa-guk state of Goryeong and the Gimun-guk state of Jeon-Buk, tried to maintain inner unity of Dae-Gaya by allying itself with one of the small states that existed inside Dae-Gaya, named Han'gi'cheung, through agricultural and burial rituals.
Throughout the Dae-Gaya realm, Gaya in the Jeon-Buk region seems to have served as a portal through which the inside and outside could exchange things and information. From the tombs in this region, foreign items such as Cheon'gye-ho and iron caldron(Jaru-sot) which were well related to the Southern(“Namjo”) dynasties were found, and golden/bronze shoes that display traces of the Gaya people's exchanges with Baekje were also unearthed. It seems like the role the king of Dae-Gaya asked Gimun-guk to serve was to be a channel for foreign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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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북지역 가야고분의 현황과 특징

저자 : 전상학 ( Jeon Sanghak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6-63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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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동부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가야계 고총고분은 진안고원(장수, 장계분지)에 240여기, 운봉고원에 150여 기이며, 이 중 발굴조사를 통해 140여기의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가 조사되었다. 이를 토대로 전북의 동부지역에는 백제와 신라가 진출하기 이전까지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한 국가단계의 정치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고분의 입지는 대체적으로 하천이 흐르고 주변에 충적지가 발달된 지형으로, 고분이 자리하는 지역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산줄기의 정상부 또는 주능선의 등줄기를 따라 자리한다.
전북지역 가야고분은 봉토가 타원형이고, 호석이 확인되지 않는다. 봉토와 매장시설의 축조방법은 1차성토 후 이를 파내어 묘광을 마련하고 매장시설을 축조하며. 일부 주구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재지문화 속에 가야문화가 결합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토유물의 특징은 가야 권역에서 출토 예가 거의 없는 위신재의 부장, 여러 지역의 다양한 유물들이 동일 고분 내에서 확인된다는 점이다. 토기류는 재지계, 대가야(고령양식), 소가야(진주·고성양식), 마한, 백제, 신라, 왜계토기 등이 있다.
분묘자료 이외에도 관방(산성·봉수)유적과 제철유적 등은 전북 가야의 실체와 발전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The Mound of Gaya found so far in eastern North Jeolla Province is 240 here in the Jinan Plateau (Janggye and Janggye Basin), and 150 in Unbong Plateau. Of these, the excavation team examined the remains of a 140 stone lined Tomb in Gaya. Based on this, it is assumed that the eastern region of North Jeolla Province had a national organization developed based on Gaya culture before Baekje and Silla entered the country.
The location of Gaya tombs is generally a geographical feature in which streams and ancestral sites are developed.
Gaya Tomb in North Jeolla Province has an oval bowl and no stone statues are found. The way to construct the Bongto and its burial facilities is to dig up the first stage, prepare a tombstone, and construct a burial facility. Some tools are being identified. It is understandable that Gaya's culture is now being combined into a re-designated painting.
The unique features of the excavated items are that the head of the Wisinjae Temple, which has few examples from Gaya, and the various relics from different regions are found inside the same ancient tomb. The pottery includes Gaya, Baekje, Silla, Mahan, and Japanese pottery.
In addition to the ancient tombs, acid, beacons, and iron ore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on understanding the reality and development process in North Jeolla Kaya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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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철기유물로 본 전북지역 가야의 교류

저자 : 유영춘 ( Yu Yeongchu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4-88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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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원, 장수지역에 분포한 가야유적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이 지역 가야 정치체의 성격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남원 월산리·두락리, 장수 삼봉리·동촌리 등 총 39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며, 수장층 고분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위세품, 토기와 함께 철기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그동안 남원, 장수지역의 가야유적을 단순히 대가야의 확장에 따른 결과물로 규정하고, 유적에서 출토된 철기유물 역시 대가야에서 일방적으로 파급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발굴조사를 통해 대가야 이외에 다른 주변국과 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는 철기유물이 출토되어 연구의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본고는 남원, 장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마구와 철제무기를 가야, 백제 신라 등 주변지역 출토품과 비교·검토를 통해 상호 연관성을 살펴봄으로써 이 지역과 주변국 간의 교류관계와 의미 등을 살펴보는데 있다.
연구결과 남원에서 출토된 철기유물은 대가야뿐만 아니라 백제, 소가야, 신라, 왜와의 관련성이 있어 주변국의 철기문화를 다양하게 수용해 철기를 제작하거나 이 지역의 철기문화를 주변지역에 전파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갑주와 철촉에서 왜와의 연관성이 찾아지는 것으로 볼 때, 남원의 가야 정치체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철기 문화 전파에 한 축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는 도굴로 인해 철기유물의 수량이 많지 않아 그 실상을 면밀히 파악할 수 없지만 남원보다 대가야의 영향력이 높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지역성을 보이는 철기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타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는 희소한 철기가 남원, 장수를 중심으로 집중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 가야는 다양한 용도의 철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기술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철기유물들은 당시 우리 조상들이 남긴 첨단기술의 산물로 이 지역의 역사를 복원·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 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cently, as the excavation work of the Gaya ruins located in Namwon and Jangsu is being conducted in depth, the characteristic of Gaya political group in the region is gradually being revealed. In particular, around 390 ancient tombs are located in Wolsan-ri, Durak-ri in Namwon and Sambong-ri, Dongchon-ri in Jangsu. In this region, a plenty of iron ruins along with various kinds of articles representing its power and earthenware potteries were discovered in the old tombs.
Up to now, the Gaya ruins in Jangsu has been simply recognized as a output derived from the expansion of Daegaya force and it is widely accepted that the excavated iron ruins are spreaded from Daegaya in one-way direction. But a necessity of a study is suggested, because the iron ruins to imply the relation with other neighboring countries apart from Daegaya is unearthed. Thus, the study examines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this region and the neighboring nations by comparing the harness and the iron weapons discovered at the Gaya ancient tomb in Namwon and Jangsu with the articles unearthed in the neighboring regions such as Gaya, Baekje and Silla in terms of interconnection. In addition, the paper looks into the meaning of the iron article and ownership aspect according to hierarchy by examining the burial aspect of the harness and the iron weapons.
The findings show that the iron ruins unearthed in Namwon seems to be connected with Baekje, SoGaya, Silla and Wae, people who made the iron ruins in Namwon accepted widely the iron culture from the neighboring countries and made their own iron articles or spreaded their iron culture to the neighboring countries. Particularly, judging from the trace of the connection with Wae found in armors and iron points, the Gaya political group in Namwon is presumed to play a role in spreading the iron culture as one axis by capitalizing on their geo-graphical advantage. We cannot exactly understand the real state of Jangsu ruins owing to the insufficient iron ruins caused by tomb theft. However, it seems that influence from Daegaya toward Jangsu is stronger than Namwon. The iron articles to show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are not discovered in the region. Judging from the fact that the rare iron articles never discovered in other regions are excavated intensively in Namwon and Jangsu, at that time, Gaya in the region is assumed to possess a technology to be able to produce the various iron articles. The diverse iron articles discovered in the Gaya ancient tomb were then cutting-edge products that our ancestors left to us, thus it is expected that these ruins serve as a important key in restoring the region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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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북(全北) 동부지역(東部地域) 봉수(烽燧)에 관한 일고찰(一考察)

저자 : 조명일 ( Jo Myoung-il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0-107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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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봉수들을 대상으로 그 현황과 분포양상을 파악하고, 그동안의 지표조사 와 발굴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봉수의 구조와 운영시기 및 주체 등을 검토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전북 동부지역에는 80여개소의 봉수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 남원시, 진안군, 무주군, 완주군, 임실군, 충남 금산군에서 시작된 여러 갈래의 봉수로는 최근 전북지역 가야세력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는 장수군으로 이어진다. 이 봉수들은 대체로 장수군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과 교통로를 감시하기 좋은 산봉우리에 위치하며, 일부는 고대산성과 세트를 이룬다. 주지하다시피, 봉수는 주변의 급박한 상황을 중앙으로 신속히 전달해 주는 군사 통신시설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봉수를 운영했던 정치세력의 중심지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북 동부지역의 봉수들은 장수군 일원에 존재했던 정치세력에 의해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장수 영취산·봉화산, 원수봉 봉수에 대한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봉수 의 구조와 축조시기, 운영주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조사가 이루어진 모든 봉수는 기본적으로 부정형의 할석을 사용하여 외 측벽을 쌓아 올리고, 그 안쪽을 흙이나 석재로 채운 구조를 보이며, 규모는 길이가 10m 내외로 밝혀졌다. 최근 완주군 일대에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고 있는 봉수들 역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구조적 특징은 유사하다.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유물의 속성 및 조합상이 장수군 일대의 가야계 고총과의 유사하다. 따라서 봉수의 운영주체는 장수군에 존재했던 가야세력이며, 축조 시기는 가야계 고총의 편년 안을 참고할 때 5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日本書紀』 繼體記에는 가야계 소국인 반파가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백제와 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봉수를 운영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파는 그동안 고령의 대가야로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기록에 등장하는 기문 이 장수와 지리적으로 인접된 남원 운봉고원이라는 점, 최근 장수군에서 240여기의 가야계 고총과 12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확인되면서 강력한 가야계 정치체가 존재했음이 드러났다는 점 등으로 비추어 볼 때, 장수군의 가야세력 이 반파일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 직후의 혼란한 시기를 틈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봉수를 축조·운영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status and distribution pattern of signal fires distributed in the eastern part of Jeollabuk-do province and to examine the structure, as well as operation period and entity based on the result of surface surveys and excavations.
It is known that 80 signal fires are distributed in the eastern part of Jeollabuk-do. The series of signal fires originating from Namwon City, Jinan County, Muju-gun, Wanju-gun, and Imsil-gun in Jeollabuk-do and Geumsan-gun in Chungcheongnam-do are running all the way down to Jangsu-gun, which has recently been highlighted as the center of the ancient Gaya power in Jeollabuk-do area. These signal fires are usually located on mountain peaks, which provide excellent vantage points for watching major roads and traffic routes leading to Jangsu-gun, and some of them are paired with in ancient mountain fortresses. As we all know, signal fire is a military communication facility that quickly delivers the imminent situation to the headquarters. Therefore it is naturally connected to the center of political power that operated the signal fire. In this respect, the signal fires in Jeollabuk-do province are likely to have been operated by the political power spread across the Jangsu gun.
The excavation in 2013 of the signal fires located in Yeongchi-san, Bonghwa-san, and Wonsubong in Jangsu-gun provided clues to the structure of the signal fire as well as construction period and operation entity. All of the signal fires that were investigated were constructed basically by building up the outer walls using indefinitely formed halved stones and filling the inside with earth or stones, and each measured about 10m in length. The signal fires that were found recently almost in their complete original form in the vicinity of Wanju gun have similar structural characteristics, though there are some differences. The remains of the Three States period that were unearthed through excavation surveys were very similar to those of Jangsu Gun in terms of their property and combination of artifacts. Therefore, the main entity that operated the signal fire is the Gaya power that existed in Jangsu gun, and the construction period is estimated to be around the late 5th century in reference to the chronology of the ancient Gaya graves.
It was recorded in "Nihon Shoki” that Banpa, a small nation of Gaya, waged a war with Baekje with a Gimun and Daesa, and operated signal fires in the process. Banpa has so far been conventionally understood as the Big Gaya in Goryeong. Given that the Gimun appearing in the records is located in Unbong Plateau in Namwon, which is geographically adjacent to Jangsu-gun, and that there are 240 tombs of the ancient Gaya and 120 steel mill ruins in Jangsu-gun, Gaya power in Jangsu-gun is believed to be Banpa. Therefore, it seems that Gaya power had built and operated signal fire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ir presence by taking advantage of the chaotic period immediately after Baekje's capital relocation to Wo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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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탐라형성기(耽羅形成期) 묘제(墓制)의 제양상(諸樣相)

저자 : 김진환 ( Kim Jin-hwa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8-125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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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성립기' 또는 '탐라형성기'라는 용어는 한국고고학 시기구분에서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개 념이며, 탐라형성기의 묘제로는 지석묘를 포함한 옹관묘, 토광묘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용담동 철기부장묘 이전까지의 묘제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탐라형성기 묘제의 전반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인접 취락과의 관계를 검토한 후 묘제에 따른 시기편년을 제시하고자한다.
탐라형성기의 묘제는 청동기시대 송국리문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점토대토기문화의 유입과 재지화 과정에서 변 화한다. 그리고 송국리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의 융합·소멸 과정에서 해상 교역을 통해 형성된 집단에 의해 새로운 묘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탐라형성기 묘제의 변화 양상에 따른 시기구분은 청동기시대-탐라형성기-탐라시대로 제시한다. 청동기시대 중기 유입된 송국리문화가 최대 성행기를 맞는 기원전 4~3세기에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진다. 이후 점토대토기문화에 의한 융합과정에서의 변화는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주거 형식, 토기의 변화는 기 존의 송국리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일정 부분 청동기시대 문화의 존속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송 국리문화가 소멸되어가는 단계에는 새로운 묘제가 등장하고, 외도동식 주거지와 토기로 변화하며, 대외적으로 활 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한식유물이 유입되어진다. 대외교역을 통한 한식유물의 유입은 제주도에 교역이 가능한 일정 집단의 발생을 의미하며 이 시기를 '탐라'라는 정치체의 형성기로 볼 수 있다. 이후 기원전 1세기~기원 3세기까지의 한식유물은 낙랑과 삼한을 통해 도입되어진 것으로 탐라의 정치세력은 漢-樂浪-三韓-倭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교역로를 통해 수장층으로 성장하고 그러한 최고 수장층의 무덤은 용담동고분에 해당한다.


Tamna Establishment Period' or 'Tamna Formation Period' corresponds to the early Iron Age to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Korean archaeological period. The tombs in Tamna Formation Period include dolmens, jar-coffin tombs and pit tombs. This study was conducted on the tombs prior to the tombs with ironware in Yongdam-dong. This study investigates the overall aspects of the tombs in Tamna Formation Period, examines the relationship with neighboring villages, and proposes a chronology according to the tombs.
While the Songgukri culture in the Bronze Age was maintained, the tombs in Tamna Formation Period changed during the process of introduction and localization of the clay-stripe pottery culture. It seems that new types of tomb were made by groups formed through maritime trade in the process of fusion and disappearance of the Songgukri culture and the clay-stripe pottery culture.
The chronological classification according to the change pattern of tombs in Tamna Formation Period is proposed in the order of the Bronze Age-Tamna Formation Period-Tamna Period. The round clay-stripe pottery culture was introduced in the 4th and 3rd centuries BC when the Songgukri culture, introduced in the middle Bronze Age, was the most popular. In the process of fusion by the clay-stripe pottery culture since then, a new culture was introduced. However, the change in residence style and earthenware were based on the existing Songgukri culture, which suggests that the Bronze Age culture survived to some extent at that time. In the stage of disappearance of the Songgukri culture, a new type of tombs appeared, Oedodong-style residence and earthenware appeared, foreign trade was active, and Han-style artifacts were introduced. The introduction of Han-style artifacts through foreign trade signifies the emergence of a certain group that could trade in Jeju Island. In addition, this period can be viewed as the period of forming a political entity called 'Tamna'. Since then, Han-style artifacts dating from the 1st century BC to the 3rd century AD were introduced through Lelang and Samhan. The political powers of Tamna grew into the leaders through the East Asian trade routes connecting Han-Lelang-Samhan-Japan, and the ancient tomb in Yongdam-dong cor-responds to the tomb of that supreme 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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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산강유역 철기 수용과 배경

저자 : 김진영 ( Kim Jin-young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6-142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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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철기문화는 요동-서북한지역의 연화보-세죽리유형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철기 제작 기법에 따라 크게 2개군으로 구분하여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영산강유역의 철기 수용 배경을 살펴보았다. 영산강유역에서 1군 철기는 토착계 집단에 의해 공구류 중심의 실용구를 수용하였고, 연대는 기원전 2세기경으로 설정된다. 1군 철기는 청동기문화가 발달한 서남한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되는데, 영산강유역도 광역적 의미에서는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서남한지역의 중심지역인 만경강유역 토광묘집단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토착계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실용구로써 생산력 증대를 위한 지석묘 사회의 협업체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영산강유역에서 2군 철기는 새로운 묘제인 토광묘계(목관묘)에 부장되어 등장하며, 외래계 집단을 통해 수용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연대는 기원전 1세기경에서 기원후 2세기경으로 설정된다. 2군 철기는 수량이 많지 않지만 새로운 물질문화의 변화와 함께 확인되는데 위만조선 패망에 따른 외래계 집단의 이주로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이는 새로운 묘제의 출현, 삼각형점토대토기문화로 대표되는 기층민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동남한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철기가 생산되어 유통되는 기원전 1세기 중·후반경부터 토광묘에서 복수의 철제무기류 부장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새로운 변화가 반영되기 시작한다. 출토의 유사상으로 변·진한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확인된다.
영산강유역에서 철기는 내부적 필요성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 수용되어 토착사회를 변화시키고, 외래계 집단들의 대규모 이주가 이루지면서 토착사회저변에 본격적인 철기문화가 확산된다.


The iron culture of South Korea is understood as the influence of the soft-bore-sekjukri type in the Liaodong-West North Korea area. The first group iron was excavated from the dolmen, and iron was accepted by the indigenous system, and the iron centered on the tool was used as a practical tool. It is deeply related to the Mankyung River basin, which is the advanced area of the southwest region at that time, and its age is estimated to be around the second century BC. The second group appears with the new tombs, the Onggwanmyo and the Tokwangmyo (the Woodwindmyo), and iron weapons appear along with tools. The reclaimed material culture and the new material culture are confirmed. With the collapse of Wiman Joseon, large-scale triangular clay earthenware culture people migrated and a new system appears along with the second group iron. The age is set from the first century BC to the second century BC. In the Youngsan River basin, iron is accepted by indigenous groups, and new groups are migrated according to external factors. This allows the government to embrace the iron culture in earnest and create a new order of control through intrinsic development.

KCI등재

8마한 일상용기의 지역성 -호남 서부지역 주거지 출토품을 중심으로-

저자 : 김은정 ( Kim Eunjung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4-168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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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호남 서부지역 마한 주거지에서 출토된 일상용기를 분석하여 권역별 相異性과 相似性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추정하고자 했다.
권역은 자연 경계와 마한주거지의 분포를 바탕으로 총 12개소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권역별 일상용기(심발·장란형토기·이중구연호·주구토기·외파수발·유공광구호·직구장경평저호 등)를 비교·분석한 결과, 동일 기종이지만 지역에 따라 크기·형태·분포 양상 등에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만경강 남부권, 주진천권, 영산강권 중심의 토기문화권 설정이 가능하였으며, 이들 권역 간 일상용기의 상이성은 범마한권이라는 테두리 내 독자적 지역집단의 존재를 상정케 했다.
또한 동일 양식 토기의 분포 범위를 통해 지역 정치체들의 상호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었다. 토기를 비롯한 물자의 유통은 각 권역을 넘어 주변지역까지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지역 집단들은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원만한 상호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판단되며, 그 범위 내에서는 토기의 원료와 제품·기술을 포함한 유·무형의 물자 이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남 서부지역 일상용기를 통해서는 마한 54국의 정치체와 그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마한의 토기 중에서도 일상용기에 해당되는 기종들, 심발·장란형토기·주구토기 등은 기본형이 완성된 이후 커다란 변화 없이 오랜 기간 지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일상용기의 지역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차이를 보이는 영역이 마한 소국을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리라 본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daily used containers discovered in the Mahan settlement area located in the western Honam, identify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by section and presume their meanings.
Based on the natural boundaries and the distribution and status of Mahan settlement area, the region was divided into 12 sections.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daily used containers by each section, it was confirmed that size, shape and distribution pattern were different despite of the same type of earthenware.
In the western Jeonbuk province centered on the Mangyung river area, many medium and large sized deep earthenwares have been found, and the categories of them are also clear by size (small, medium, and large). On the other hand, in the western Jeonnam centering on the Yeongsan river area, no clear size categories of them were found, and small and medium earthenwares are most populated. A long egg shaped earthenware (round bottom) showed regional differences in depth-the deepest in Joojincheonn section (Gochang area), and further away from this area less deep the earthenwares. The long egg shaped earthenware with no pattern was also most populated around the Hampyeong bay and Yeongsan river. A double mouth rimmed earthenware is populated across Pan-Mahan area and a typical pottery, especially populated in the Yeongsan river area. Earthenwares are categorized as (A, Ba, Bb, Bc type) by shape and bottom, and of them the double mouth rimmed type (Bb) of the round-bottom earthenware was heavily found in the Geukrahgang section of the Youngsan river while no other types of double mouth rimmed wares were found. different earthenwares are found in areas such as Gochang, Dahmyang, Hahmpyeong, and Haenam. The earthenware with a spout is also found in different areas by specific shape. In most part of western Honam, double handled wide mouth earthenware with a spout was found, but single handled, straight mouth and flat bottom earthenware with a spout showed clearly regional distribution: a straight mouth earthenware was heavily found around Geukrahk river, Jiseokcheon, Doahm bay, mid and downstread of Yungsang river, Hampyeong bay while flat bottom type around Hampyeong bay, Geukrahk river and Jiseokcheon; single handled type around the upper stream of Yungsang river and Geukrahk river. A wide mouth pottery with a hole in the body was most populated around Yungsang river and neighboring area. A tall long necked and flat bottom earthenware was mostly found around Jeonjoo and Wanjoo area, which can mean that identifiably it featured strong localism.
In the western part of Honam, particularly around Mangyeong River, Jujincheon, and Youngsan river, pottery culture was formed in the center of the southern part of Mangyung river, Jujincheon and Yungsan river by the configuration and individual type of the Mahan's daily used earthenwares. The differences in daily used containers between these regions led to the assumption of independent local groups of Pan-Mahan area. Each local group has a unique identity within the Mahan cultural territory while maintaining intercultural relationship, which has been reflected on regional distribution pattern of the earthenware. Also, the area of same pottery suggests the local power range or two local groups in a mutually cooperate relationship. Also, this range can be regarded undoubtedly as the commonly shared culture band of people at the time and minimum unit for distribution of goods including earthenwares. In other words, daily used containers in the western part of Honam were mainly produced and circulated within each local territory where the transportation of tangible and intangible materials was presumably active including raw materials, products and technology of earthenware.
On the other hand, it was difficult to identify Mahan's 54 political communities and their locations through the earthenwares in the western part of Honam as the basic pottery forms of Mahan's earthenware such as deep egg-shaped earthenware with a spout had been used for a long time without major changes since then. However, this study has found the regional difference and territory of daily used containers, which can be another criterion to divide Mahan's small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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