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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Historical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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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3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328
역사신학 논총
34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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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후보

1케직 사경회의 신학적 배경과 성화론

저자 : 이은선 ( Lee Eun-se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5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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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직 사경회는 1875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성결운동이다. 이 사경회는 18세기 영국의 웨슬리와 19세기 미국의 웨슬리안들과 개혁주의 진영의 오벌린 완전주의와 고상한 기독교인의 생활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다. 케직은 죄에 대해 승리하는 고상한 기독교인의 생활의 성결을 추구한다.
케직은 웨슬리의 성결 교리 가운데 두 가지 측면을 수용하였다. 첫째는 중생과 성화를 시간적으로 구분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칭의와 성화 모두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케직은 웨슬리의 죄성의 제거와 완전 성화를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한 성령세례를 완전성화의 제2의 축복으로 보는 것도 수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오벌린 완전주의와 고상한 기독교인의 생활의 성결론에서 두가지를 수용한다첫. 째 로 개혁주의에 속하지만 이 두 가지 성결운동은 웨슬리의 자유의지에 관한 견해를 수용하여, 성결에서 의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또한 죄를 하나님의 알려진 율법에 대한 의도적인 위반이라고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성결의 생활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로 이들은 성결을 추구하는데서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기독론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점이 성령세례를 성결의 능력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웨슬리안 성결론과 다르다. 셋째로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성결을 주장하고, 성령 충만을 통해 성결보다는 봉사를 위한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개혁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중생과 성화를 구분하는 문제와 의지를 통한 결단을 강조하는 웨슬리안의 요소, 그리고 패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수동적인 자세의 신앙생활의 문제, 육적 기독교인과 영적 기독교인들의 분류 같은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들이다.


The Keswick Convention was founded in England in 1875 and has been a holiness movement in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It was form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Wesley of England in the 18th century, the Wesleyans of the 19th century in America, Oberlin perfectionism and Higher Life Movement. Keswick Movement seeks holiness of the Higher Life movement which triumphs over sin.
Keswick accepted two aspects of Wesley's holiness doctrine. First, it has a concept of temporal division of regeneration and sanctification. Second, it emphasizes that both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are received by faith. On the other hand, Keswick does not accept Wesley's eradication of sinful nature and perfect sanctification. Nor does it accept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s the second blessing of complete sanctification.
On the other hand, it accepts two things in Oberlin perfectionism and holiness of the Higher Life movement. First, it belongs to the Reformed, but these two Holiness movements embraced Wesley's view of free will and stressed the role of will in sanctification. It alsoinsisted that sin is limited to an intentional violation of God's known law and that he can not commit such sin. And it asserts to pursue the life of such sanctification. Second, it emphasized union with Christ throug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seeking holiness. The emphasis on the christological nature of union with Christ is different from the Wesleyan understanding of sanctification which understands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s receiving of the power of holiness. Third, it insists on sanctification through union with Christ, and through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it receives the power for service rather than holiness.
However,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formed, Wesleyan's element of separating regeneration from sanctification and determination through will, and the problem of passive religious life as pointed out by Packer, the classification of physical Christians and spiritual Christians are difficult aspects to ac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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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일운동을 위한 선교사들의 역할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저자 : 김호욱 ( Kim Ho-wook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4-89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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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선교사들이 삼일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최근이긴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호남지역 삼일운동에 미친 선교사들의 영향력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함으로써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그런데 호남지역 선교를 담당했던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삼일운동에 미친 영향력과 그 원인을 미국 남장로회의 1차 사료와 기본적인 신학에 근거하여 접근한 연구물이 없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하여 1차 사료와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영향력 관련의 기본적인 신학을 토대로, 그들이 삼일운동에 미친 영향력과 그 원인을 살폈다. 그 결과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한국 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1901년 9월 장로회공의회가 채택한 5개항을 준수한 것이며, 동시에 정교분리 신학과 관련한 그들의 사회참여 신학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호남지역 장로회가 교회 법정의 이름으로 만세시위를 주도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미국 남장로회의 소극적 사회참여 신학의 영향이었음을 드러내었다.
물론 선교사들이 1910년 이전에는 일본의 한국 병탄의 부당성을 가르쳤고, 선교사들은 한국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가를 부르기도 했다. 동시에 일제가 자신들의 신문에 삼일만세운동의 배후에 한국에 있는 외국 선교사들이 있다고 했을 때, 호남지역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삼일운동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It is relatively recent that scholars began to study the influence of missionaries in the Honam area on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in Korea. There have been considerable progress in recent years. Although many scholars have been interested in the influence of missionaries related to the Independent Movement in the Honam region of Korea. However, it is regrettable that there are no researches based on the basic theology of the US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Based on the basic theology of social influences held by the primary sources and missionaries, I studied their influence and the cause of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this paper.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the missionaries of the US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did not participate in politics in Korea. It is compliance with the five terms adopted by the Presbyterian Council in September 1901 and at the same time, they could not overlook the influence of their social participation theology. And the fact that the Korea Presbyterian Church in Honam Region participated as an individual without leading the protest with the name of the church court revealed that it was the influence of the passive socialparticipation theology of the US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Of course, before 1910, missionaries taught the unfairness of Japanese Korean troops, and missionaries sang song of independence with Korean students. At the same time, when Japan said that there were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supporte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their newspapers, missionaries in the Honam region explained that they had never been involved in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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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멜란히톤의 교회 중심적 성경해석 그의 시편 110편 주석을 중심으로

저자 : 류성민 ( Ryu Seong-mi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0-120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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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의 시편 주석의 맥락과 구조 그리고 시편 110편 주석의 예를 통한 특징들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슈말칼덴 전쟁의 패배 직후 개신교회가 겪은 역사적 위기 가운데 멜란히톤은 시편 주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교회를 위한 위로를 전하려한다. 그의 시편 해석은 간결하고, 교회에 적용하기 위한 적용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해석에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메시아와 다윗과 교회의 통일성이라는 신학적 기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멜란히톤은 매우 실제적인 해석 방식을 통해 시편을 단순한 의미에서 이해하고, 시편이 교회를 위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며, 교회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개신교의 교리학자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성경 해석자였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context and structure of Melanchthon's commentary on the Psalms and the features of the example of the commentary on Psalm 110. In the historical crisis of Protestantism shortly after the defeat of the Schmalkalden war, Melanchthon tried to convey God's protection and comfort for the church through the Psalms. His psalm-interpretation is concise and focuses on the application for the church. In this interpretation, the theological basis of the unit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 unity of the Messiah, David, and the Church play an important role. Melanchthon interprets the Psalm in a simple sense through a very practical interpretation, asserts that the Psalm is written for the Church, and interprets it in a church-centered way. He was not only a Protestant doctrinal scholar, but practically a Bible-interpreter for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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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세기 교황권의 절정: 법과 여론의 전쟁

저자 : 정원래 ( Jeong Won-ra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15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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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교황권이 절정에 도달한다. 이처럼 12/13세기 교황권이 강성해지는 과정은 세속군주들과의 권위에 대한 싸움에서 승리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세속군주와의 싸움에서 교황들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던 것이 법과 여론이다. 즉 이 시기의 교회와 국가의 갈등은 법적인 측면과 여론적인 측면에서 전개되었다.
이 싸움에서 교회는 세속군주들을 압도할 수 있었는데, 특히 교회는 세속군주들보다는 체계가 잘 잡힌 교회법, 그리고 교황의 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수단을 보유했다. 즉 수도사들을 통해 교회는 황제의 권위를 비판하고, 황제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법과 여론을 통한 교회와 세속군주의 싸움이 12세기와 13세기에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교황은 절대적인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반작용으로서 세속법과 국가의 정비를 재촉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교회법과 국가의 법들은 각각의 권위의 상호협력이라는 초대교회이래의 정신을 포기하고, 한 권위가 다른 권위를 압도하고 지도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싸움의 극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이 교황청과 프리드리히 2세의 싸움이며, 그 결과이기도 한 제1차 리옹 공의회이다


The papacy of the thirteenth century reaches its climax. It means that the papacy won the battle against secular monarchs in authority. The most powerful means of the popes in this fight against secular monarchs were law and public opinion. In other words, the conflict between the church and the state in this period has been developed in terms of legal and public opinion. In this battle, the church was able to overwhelm the secular monarchy, especially the church, which had a well-structured church law and a way of publicity to publicize the rights of the pope to the world. Through the monks -Franciscans and Dominican, the church preached the emperor's fault to the people and criticized the emperors' claims. The fight between the church and the secular monarchs through these laws and public opinion was fierce in the 12th and 13th centuries, and the Pope was able to secure absolute authority over secular monarchs. Of course, this reaction has also prompted the secular law and the state. 
This period abandoned the spirit of the mutual cooperation ofeach authority since the early church. Instead, one authority attempted to overwhelm and direct other authority. The dramatic manifestation of this struggle is the fight between the Pontiff and Friedrich II in 13th century, and the result is the first Lyon council(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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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앤서니 버지스와 윌리엄 스트롱의 율법 이해: 행위언약의 빛에서 본 율법과 은혜의 조화

저자 : 류길선 ( Ryu Gil-su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5-18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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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개혁파 정통 신학자들의 언약신학은 서구 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다루어져 온 주제이다. 특별히 종교개혁 이후웨, 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분명하게 구별하면서, 행위언약의 본질에 관해 학자들은 논쟁해 왔다. 다양한 주제와 인물별로 행위언약이 다루어져 온 반면, 아직까지도 행위언약의 나타난 율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본 논문은 웨스트민스터총회의 구성원이었던 17세기 잉글랜드 신학자인 앤서니 버지스와 윌리엄 스트롱의 행위언약 교리를 비교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율법과 은혜 간의 역동적이고 조화로운 통합적 이해를 드러내고자 한다. 버지스와 스트롱은 그들의 행위언약 교리를 통해 율법과 은혜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율법에 대한 극단적 관점인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자들 반박했다. 이 두 신학자들은 결론적으로 율법과 은혜의 올바른 구분을 통해서 율법이 결코 은혜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님을 증명한다. 버지스와 스트롱의 글을 통해, 본고는 율법과 은혜의 구별속에 나타난 미묘하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점들을 관찰한다. 그 한 예로서 율법과 복음의 올바른 구별은 율법과 은혜의 이원성이 아니라 역동적 관계를 드러낸다.


When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works reached confessional status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distinguishing between the covenant of works and the covenant of grace, it raised a number of exegetical and theological questions. While this theme had been debated among many scholars, the nature of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works was not studied fully enough. This essay intends to reveal an harmonious relationship between the law and grace, by comparing and analysing the views of the covenant of works in Anthony Burgess and William Strong wh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formulat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s a critical member. Both Burgess and Strong assert that both antinomianism and legalism arise from abuses of the law. Their views of conditionality in the definition of the covenant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aw and grace suggest that in the covenant of works, the law does not conflict with grace. In the writings of Burgess and Strong, we observed subtle but significant distinctionsbetween the law and grace by comparing the law and the gospel. These distinctions lead not to discord, but to a synthesis between law and grace, revealing a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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