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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연구 update

The Research of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 : 예체능분야  >  연극영화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981X
  • :
  • : 고전희곡연구(~2003)→공연문화연구(2003~)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3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46
공연문화연구
39권0호(2019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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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해도굿 군웅거리의 예술치료적 분석

저자 : 이지홍 ( Lee Ji-ho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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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굿은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을 매우 예술적으로 그리고 치료적으로 잘 풀어낸 한국 고유의 예술치료의 원형이다. 이에 연구자는 황해도굿 군웅거리와 예술치료적 이론과의 상관관계를 비교 분석하였다. 첫째 한국의 굿이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행위 된다는 점에서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과 비교했으며, 한국의 굿이 가진 집단적 치료방식이 한 개인의 심리·정서적 문제를 가족관계체계,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치료하고자 한 보웬의 이론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연구자는 만신이 망자의 혼을 입고 군웅을 노는, 굿의 연행방식이 갖는 치료적 의미에 대해 분석하였다. 굿 현장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조상거리가 주는 치료적 효과에 대해 직접 경험했으나 그 치료적 효과를 이론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는 부족하였다. 이에 연구자는 프로이트의 전이 개념과 연극치료의 역할입기, 에릭슨과 고프만의 극적 놀이 개념을 접목시켜 황해도굿 군웅거리를 분석하였다. 만신의 망자로의 극적 전이는 황해도 군웅거리의 치료성을 입증하는 핵심 개념이다. 연구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의 굿의 한국 예술치료의 원형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국의 굿이 갖는 치료성에 대한 보다 심도 있고 폭넓은 연구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다.


Gut, Korean shamanist performance, is the archetype of Korean art therapy. It is because gut has the archetype of Korean mind and expresses the archetype in an artistic and therapeutic way. This paper compares and analyzes Gunung-geori of Hwanhaedo-gut and art therapy theories from two perspectives: the range of therapy and the therapeutic principles of performing ways. Gunung-geori aims to solve prolonged conflicts within a family, linking individual problems to family relationship. Such a therapeutic effect of Gunung-geori is well explained through the theory of Bowen's Family Therapy. Also the therapeutic principles that Gunung-geori's performing way are closely related to “transference” of Freud and “putting in the role” in drama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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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적벽가> 창극화의 전략과 한계

저자 : 이진주 ( Lee Jin-joo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6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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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판소리 <적벽가>를 창극으로 만드는 작업의 어려움을 판소리와 창극의 장르상 차이에 있다고 보고 판소리의 서사와 음악이 창극에 그대로 활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전승 5가를 창극으로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판소리의 서사와 소리를 그대로 공연한다 그러나 판소리 <적벽가>의 원본 서사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생성이 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눈에 띄게 이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판소리와는 달리 이야기를 무대화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 장르에서는 행동의 일치가 중요하게 때문에 원본 서사의 이원성은 행동의 불일치라는 결함으로 드러날 수 있다 또한 판소리 원작의 소리들은 극적이기보다는 설명적인 대목이 많으며 극적 클라이맥스인 적벽대전 장면도 설명적이고 해학적인 사설로 되어 있어서 창극에서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만 소설 원작에는 없는 군사들의 목소리는 창극에서 연출되었을 때 이면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군사들의 목소리마저도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핍진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판소리 원본 텍스트를 그대로 창극에 이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극 <적벽가>는 능동적으로 판소리 <적벽가>를 연구하고 해체 해야만 창극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examines the difficulties of utilizing the narrative and music of Pansori: 판소리 in Changguk: 창극. For this examination, I consider that the reason for the difficulty of making Changguk is the difference between Pansori and Changguk as the genres. Most of the Changguk based on the traditional five Pansori works perform the narration and songs of Pansori literally. However, the original narrative of Pansori < Jeokbyeok-ga: 적벽가 > has a distinctive dual structure since the formation of its first and second half is created separately. As the drama genre visualizes the story and emphasizes the consistency of action, unlike Pansori, the duality of the original narrative can be seen as the inconsistency of the action. In addition, since the sounds of the original Pansori are rather explanatory than dramatic even in the climax scenes of Jeokbyeok battlefields, it is difficult to produce dramatic scenes in Changguk. The voices of the military, not in the original works, play important roles in revealing the hidden theme effectively in Changguk. However It is impossible to relocate the original text of Pansori into Changguk, as even the voices of the military lack verisimilitude in terms of narrative. Changguk < Jeokbyeok-ga > can only be developed as its own work by actively researching and dismantling Pansori < Jeokbyeok-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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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북한 초기 고전 각색 가극과 선별의 음악 정치 - 혁명가극 이전 민족 가극을 중심으로

저자 : 정명문 ( Chung Myung-mu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9-9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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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혁명가극 이전의 가극을 선택적으로 보존했다. 이중 초기 고전 각색 가극은 1950년대 이후 남북한의 가극 장르 변화를 추적하는데 중요 단서를 제공한다. <금강산 팔선녀>, <춘향전>, <콩쥐팥쥐>, <온달>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조정하고, 계급 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각색되었다. 초기 고전 각색 가극에서 부각시킨 인민은 신분 격차와 상관없이 부지런히 일하고 애국심을 갖춘 이였다. 또한 부당한 착취에 대해 조직적인 투쟁을 함께하는 공동 구성원이기도 했다. 이는 노동과 개인 생활의 통일, 낡은 것의 파멸, 그 파멸을 촉진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창작 독려의 성과였다. 선별 보존된 작품들은 극장에서 집중시킨 감각을 일상에서 유지시키는 일종의 모범 사례이기도 했다. 고전 각색 가극은 신분제도 반대, 국토 찬양, 긍정적인 근로 방향과 같은 국가 강령을 자연스레 관객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이 무대화되면 소재, 주제, 음악, 운영방안 측면에서 평가를 거쳐 생존 여부가 판단되었다. 그 표징은 '김일성'의 관람 여부 및 방향성 제시였다. 김일성 일가의 수정 지시 사항을 받아들여 집단이 재창조하고, 해외 공연을 통해 선전하는 과정은 혁명가극의 극작 및 홍보 방식과 맞닿는다. 이렇게 선별된 가극은 인민, 여성, 문학 차원에서 스토리텔링화 되면서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북한 초기 고전 각색 가극은 공적인 교감과 음악정치 구축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North Korea has conserved operas in a selective manner. The subject matters of operas recorded in the history of North Korea can be divided into classical tales, translated foreign works, Korean War and war against Japan. Operas that adapted folk classics of the 1950s are considered valuable materials to verify the changes of genres posterior to division of regim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he officially confirmed works include “Kumgangsan Palseonnyeo (Gyeonwoo Jiknyeo),” “Chunhyangjeon.” “Kongjwi Patjwi (Kotsin),” “Ondal,” and “Geumnaneui Dal.” These works had gone through recreation in terms of realistic situation setting, abolition of class difference, adjustment of social rank and punishment of evil while the base lies in the original folk classics. People emphasized in adapted folk operas are described as those who are hard-working souls without giving importance of difference of social rank, content with the currently living space, devoted to their parents and full of patriotic spirit, and members of community who participate in organized fights against unfair exploitation. This was the fruit of encouragement of work creation supporting union between labor and individual life, destruction of old things and fight promoting this destruction.
Folk operas of South and North Korea posterior to Korean War have similarities in that both deal with a love story transcending social ranks and the concomitant conflicts and they focus on the audience who enjoy the operas. Nonetheless, they are different in that this love in North Korea became a tool of educating people wished by the regime, while it became an object of securing the audience by adding the tragic element to love in South Korea. North Korean operas of the initial stage are characterized by playwriting method emphasizing difficult life and compensation of common people, realistic stage expression, accentuation of melody and agreement between notes and lyrics. This was efforts designed to continuously lead senses concentrated from the theater to everyday life of people. In effect, this is in line with the playwriting method of revolutionary operas. Adapted folk operas were subject matters ideal for easily approaching the audience and leaving them good memories at the same time. To realize socialist realism, they went through an experiment of reviewing “people” through the classic folk operas. The possibility of continuation of a work was determined by thorough evaluation after carrying out an experiment in terms of subject matters, theme, music and operation plans from the moment of which the work was on the stage. The sign consisted in the possibility of visit of “Kim Il-sung” to appreciate the work and presentation of directionality. By proposing the clear directionality of which hard-working people who deny social status system can be duly compensated, it encouraged the audience who saw the opera to voluntarily put this in practice. Thus, operas established the directionality through selective processes for creating public communion even before revolutionary ope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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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제강점기 국내 서양음악경연대회의 추이와 특징

저자 : 금용웅 ( Keum Yong-woo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7-13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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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2년부터 1942년까지 국내에서 열렸던 서양음악경연대회를 대상으로 그 추이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1932년부터 1942년까지의 서양음악경연대회를 1932-1933년, 1934년, 1935-1936년, 1937-1942년으로 구분하여 살펴본 결과, 개최 수, 참가대상, 개최목적 등의 변화를 파악하였다. 일부 서양음악경연대회의 경우 지정곡의 도입, 참가부문의 확대, 시상규정의 유동적 적용, 입상자의 활동이 증가되는 특징이 있었다.
본고로 말미암아 일제강점기 국내 서양음악경연대회의 또 다른 면모가 밝혀져, 당시 서양음악경연대회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양산되길 기대한다.


This article observed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Western music competitions that were held in Korea during the years of 1932 to 1942.
Observations of Western music competitions from the years 1932 to 1942, categorized into the years of 1932 to 1933, 1934, 1935 to 1936, and 1937 to 1942 were made and changes in the number of times held, participants, and objectives were looked into. Some Western music competitions displayed characteristics such as the introduction of test pieces, expanded participant categories, flexible application of award rules, and increased winner activities.
This article revealed other aspects of Western music competitions held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it is hoped that it will spark new discussions on Western music competitions during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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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울산쇠부리소리의 전승현황과 변이양상 연구

저자 : 김구한 ( Kim Gu-ha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3-16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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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울산지역에서 전승되는 쇠부리소리의 전승과 변이에 대한 연구이다. 먼저, 울산 쇠부리소리는 울산 한실과 도덕골, 두동, 병영 등 모두 울산지방에서 채록된 자료라는데 그 일차적 의의가 있다. 이 점은 쇠부리소리가 원형과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울산 고유의 소리라는 지역적 정체성과 연결된다. 울산이 쇠부리의 도시인 동시에 쇠부리소리의 본향이 될 수 있는 근거이다.
쇠부리소리 사설의 특징은 한실쇠부리소리와 도덕골쇠부리소리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한실의 최재만은 구비시인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보여 진다. 그는 공식적 구조 원리에 충실한 구연자이자 불매소리의 '원사설(원형)'을 가장 잘 갖춘 구연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재만의 쇠부리불매소리는 노동의 순수함과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사설과 일치된 행동으로 일의 힘듦을 단합된 모습으로 승화시키는 곡조로 결합되어 노동요로서 미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도덕골 김달오의 불매소리는 공식구를 바탕으로 하되, 임기응변적 구연에 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산 쇠부리소리의 전승과 변이 양상은 '기본형' '변주형', '종합형'으로 나누었다. '기본형'은 한실 최재만의 쇠부리소리에서 출발했으며, '변주형'은 도덕골 김달오의 쇠부리소리와 울산 지방에서 전승되던 쇠부리금줄소리가 어울려 울산 쇠부리놀이가 탄생한 것이다. '종합형'은 기존의 소리에다 달천지역과 가까운 병영지역에서 불리던 아기어르는불매소리와 성냥간불매소리를 채록하여 지금의 쇠부리 소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울산 쇠부리소리는 이와 같이 끝없는 전승과 변이의 과정을 거치면 울산 지역을 대표하는 민요로 그 정체성을 확보하며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This paper tried an approach of oral literature as the research subject of Soeburi song in Ulsan. First, UlsanSoeburi song is meaningful as materials collected in Ulsan such as Hansil, Dodoekgol, Dudong and Byeongueong. In addition, it is related to regional identity as song native to Ulsan, which has prototype and archetype. And it shows that Ulsan is the city as well as hometown of Soeburi(meaning ' iron manufacture').
The characteristics of lyrics are different between Hansil Soeburi song and Dodeokgol Soeburi song. Jeiman Choi is considered as a good oral literature poet, because he is a performer who is faithful in official structural principal and in original lyrics(archetype) of Soeburi song. Therefore, SoeburiBulmei song of Jeiman Choi signifies aesthetic meaning, having lyrics which make to feel labor's purity and sacred and melody which overcomes labor's difficulty through united action. On the other hand, SoeburiBulmei song of Dalo Kim in Doseokgol shows that he is a extemporaneous performer even though he performs based on official structural principal.
In this paper, transmission and changes of UlsanSoeburi song are divided into basic type, frequent shift type and overall type. 'Basic type' originates from Jeiman Choi's Soeburi song in Hansil. 'Frequent shift type' was created by combining SoeburiBulmei song of Dalo Kim in Doseokgol and SoeburiGeumjul song in Ulsan. 'Overall type' is current Soeburi song, which was created by adding Bulmei song for lulling a baby in Byeongueong near Dalcheon region and Seoknyanggan(smithy) Bulmei song. UlsanSoeburi song is being passed down continuously, strengthening the identity as a representative folk song in Ulsan through endless process of transmission and 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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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연구회는 실험무대를 창단하고 창단 공연작으로 니꼴라이 고골 작 「검찰관」을 선택하였다. 이 공연은 극예술연구회의 창립 공연작에 해당하는 공연인 만큼, 회원들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선정된 작품을 바탕으로 삼아야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에서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 실제 공연 상황, 그리고 그 성패 여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구된 바 없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실험무대의 이 공연은 축지소극장에서 공연된 「검찰관」 공연의 강력한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대 디자인과 배우 연기 그리고 연출 콘셉트에서 독창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못했다. 이 공연 이후 극예술연구회의 공연 방식의 변화가 예고될 수밖에 없었고, 극예술연구회는 무대화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자체 반성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Geugyesuryeonguhoe founded the Silheommudae and chose Nikolai Vasilevich Gogol's Revizor as the founding performance. This Revizor theater performance was a performance equivalent to the founding performance of the Geugyesuryeonguhoe, so it had to be based on the discussion and consensus of the members. Nevertheless, the reasons for selecting this work, the actual performance situation, and whether or not it was successful were not properly addressed in the research data so far. As a result, Revizor performance of Silheommudae did not escape the powerful influence of Revizor theater performance performed at Tsukiji(築地) theater in Japan. In addition, the original design of stage, acting and acting concept of Silheommudae was not confirmed. After this performance, the change of the performance method of Geugyesuryeonguhoe was inevitable. And Geugyesuryeonguhoe was forced to carry out its own reflection on the problems in the stage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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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무형문화의 이주, 전승 그리고 음악적 변화 양상: 은율탈춤의 사례

저자 : 김선홍 ( Kim Sun-ho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7-22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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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남한과 북한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남한은 무형문화의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를 제정하면서 무형문화들을 발굴하고 복원하였다. 이 때 민속 문화를 포함한 여러 무형문화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 문화 중 북한에서 연행되었던 탈춤인 은율탈춤의 사례를 통해 무형문화재 제도 속에서 지정된 무형문화의 전승이 이루어진 과정과 반주음악의 변화 양상에 대해 다룬다. 음악적인 전승을 이루는데 보존회 중심의 구성원들이 국가무형문화재라는 틀 안에서 은율탈춤을 예술로 인식함으로써 그들의 이념과 정체성이 표상된다. 이로써, 제도 속에서 음악적인 전승을 이루는데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이념은 불가분의의 관계임을 알 수 있으며 국가무형문화재의 구성 속에서 무형문화를 현재까지 지속시킬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본다.


In the paper, this study will be explored in the migration of the mask dance Eunyeul Talchum from North Korea to South Korea after the national division took place. During and after the Korean War, refugees from the Hwanghae province settled in the Republic of Korea who were performers of the three Korean mask dances: Bongsan Talchum, Kangryeong Talchum and Eunyeul Talchum. All of these mask dances are denoted as South Korea's National Intangible Properties under the Cultural Property Protection Law (1962.) However, Eunyeul Talchum is the only asset among these three that settled in Incheon, instead of the capital, Seoul.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restoring and the idea of transmitting Eunyeul Talchum in Incheon after the division of Korea.
As opposed to Bongsan Talchum and Gangryeong Talchum, which are recognized as major socio-ethnic groups, Eunyeul Talchum belongs to a minority. Because not only Eunyeul Talchum is the last Mask Dance which has been nominated as an Intangible asset among the other Hwanghae Talchum but also, most people in the preservation association are comprised of the second-generation refugees from Hwanghae province.
During three months of research, the researcher observed the performances and the educational communicating Eunyeul Talchum's cultural legacy. This study included several research methods: open interview, examination of relevant documents, and live performances. Particularly, the researcher conducted interviews with the Human Cultural Property and musicians (including professional/scholarly to lay/untrained) in the Preservation Association.
In conclusion, Eunyeul Talchum preservation association is not as preeminent as other Korean mask dances, it has been transmitted by performers from Hwanghae province with its unique masks and instrumental accompaniment. These performers and educators dedication to maintaining Eunyeul Talchum's attributes contribute largely to the Preservation Association's successful settlement in Incheon. Thus, the researcher examines which idea formed to subsist the Eunyeul Talchum preservation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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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대 교방(敎坊)의 세시의례 속 '종규(鍾馗) 공연' 연구

저자 : 김순희 ( Kim Soon-hee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77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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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궁정의 교방(敎坊)에 의해 편찬되고 공연된 잡극(雜劇) 텍스트를 중심으로, 궁정 공연의 통시적 변화 양상 및 민간과의 차별성에 주목하여 세시의례 속 '종규(鍾馗) 공연'의 특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종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대표적 신령으로 간주되어, 주로 제석(除夕)이나 단오절(端午節)에 관련 의례와 공연이 거행되어 왔다.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가 수행되었음에도, 유일하게 궁정 잡극 텍스트가 남아 있는 명나라 교방에 의한 종규 공연 상황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여 중국에서도 개괄적인 언급 속에서 간략히 다루어졌다. 따라서 명대 궁정 교방 잡극에 드러나는 세시의례 속 종규 공연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와 차별성을 띠는 민간에서 전승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궁정 잡극 텍스트 분석을 통해 '과거제도'와 신앙 통제를 고리로 하는 소위 교화(敎化)라 표현되는 황실 통치 이념의 구현 상황을 추출하였고, 이 잡극이 '종규 공연'을 포함한 버라이어티 한 퍼포먼스로의 특징을 띠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본 연구의 결과가 중국학 분야는 물론 국문학·연극학·무용학·민속학·종교학·인류학·미술학 등 연계 학문에도 긍정적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Based on the text reference from the Variety Theatre compiled and performed by the Jiaofang of the Ming Dynasty Palace, the characteristics of Zhongkui performance in the New Year Ceremony was analyzed focusing on the differentiation and diachronic change in aspect between court dance and civilian. In China's folk beliefs, 'Zhongkui' is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spirit of fighting against evil spirits. Relevant rituals and performing arts have been held mainly on New Year's Eve or the Dragon Boat Festival. Although extensive research has been conducted in various fields, the situation of Zhongkui performance was largely unnoticed, only generally addressed in China, even with the given fact that the Ming Dynasty's text reference of miscellaneous court dance was exclusively retained, Therefore, the analysis intends to propose Zhongkui performances of Calendaric Rituals in the aspect of its elements and differentiate the play handed down among people as a specific example. Through the text analysis of miscellaneous court dance, 'Imperial examination' and religious belief was regulated usuriously by a so-called edification expressed as imperial reign ideology extracted to an implementation situation, revealing that this court dance was characterized by a variety of performances including the 'Zhongkui'. The results of the following study intends to provide a positive foundation for not only the field of Chinese studies but also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theatre, dance, folklore, religion, anthropology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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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북한 어업노동요의 음악적 특징

저자 : 김정희 ( Kim Jeong-hee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9-32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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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 우리소리』에 수록된 북한 어로요의 음악적 특징에 대해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북한 어로요 중 <노젓는소리>, <그물당기는소리>, <고기푸는소리>는 조기잡이와 명태잡이에 모두 보이며, <닻내리는소리>와 <만선풍장소리>는 조기잡이에서, <닻올리는소리>와 <고기벗기는소리>, <만선노젓는소리>, <명태거는소리>는 명태잡이에서 보인다. 그 외 <돛다는소리>, <조개잡는소리> 등이 보인다.
리듬요소 중 빠르기에서 <돛다는소리>는 보통빠르기이며, 멸치나 청어잡이의 <고기푸는소리>는 상당히 느리다. <노젓는소리>(조기)는 빠르기가 다양하며, 모두 보통빠르기 이상이고, 대체로 뒤로 갈수록 빨라진다. 그 외의 곡들은 모두 빠른 편이다. 박자구조는 4/♩가 가장 많고, 간혹 2, 3, 5박자도 보이며, 각각 4박으로 구성된 받는소리와 메기는소리가 맞물려서 2박이 겹치는 6박 주기의 리듬을 쓰거나 불규칙박자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음조직은 메나리조가 가장 많고, 그 외 수심가조, 창부타령조, 난봉가조, 오돌또기조 등이 있으며, 음고가 뚜렷치 않은 구령조도 있다. 메나리조의 곡에서 창부타령조의 전조나 변이가 관찰되었다. 갈래별로 특정 음조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형식에서는 메기고받는형식이 압도적이나, 선후창보다 독창으로 부른 경우가 더 많다. 선후창 다수에서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가 부분적으로 겹치는 양상을 보인다. 통절형식은 교창이나 독창으로 불렀으며, 독창으로 부른 경우도 작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원래는 교창이나 제창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함북 선봉군과 강원도 양양군의 <고기푸는소리>, 평남 증산군의 <만선풍장소리-봉죽타령>과 충남 태안군의 <만선풍장소리-배치기소리>, 남포시와 경기도 강화군의 <노젓는소리>는 닮은꼴의 어로요이다. 인접 지역의 경우 갈래가 달라도 선율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으며, 특정 갈래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까지 선율을 공유한다. 멸치ㆍ청어ㆍ양미리잡이에서 <고기푸는소리>가 동해안 일대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The musical characteristics of Fishing songs in North Korean which recorded on Anthology of North Korean Folk Songs were examined in this paper. The results are as follows.
Among Fishing songs in North Korea, there are “Rowing Song,” the “Song for Hauling Nets,” and the “Song for Picking Up Fish” in songs related to walleye pollack fishing and in songs related to croaker fishing, the “Song for Dropping Anchor” and the “Full-Load-of-Fish Song” in songs related to croaker fishing, the “Song for Weighing Anchor,” the “Song for Shaking Fish,” the “Full-Load-of-Fish Rowing Song,” and the “Song for Hanging Walleye Pollack” in songs related to walleye pollack fishing. There are the “Song for Setting a sail” and the “Song for catching shells” in Fishing songs in North Korea, too.
In the rhythmic elements of Fishing songs in North Korea, the tempo of the “Songs for Setting a sail” is moderato, and that of the “Songs for Picking Up Fish” of songs related to anchovy or herring fishing is quite slow. “Rowing Songs”(croaker fishing) have various tempos but faster than moderato, and usually get faster and faster as time goes by.
Most songs have 4/♩ time and there are some of 2, 3 or 5 time. Some songs use irregular time or 6 time overlapping 2 beats. The mode Menari is the most common tonal system used in fishing songs of North Korea. And the mode Susimga, the mode Changbutaryeong, the mode Nanbongga, and the mode Odolttogi are also used in the tonal system of Fishing songs in North Korea. There are shoutting intonations that have indefinite pitch, too. Modulation or interaction by the mode Changbutaryeong appeared in songs of the mode Menari. There is a tendency to favor a certain tonal system by category.
Responsorial form is mostly used, but in the most cases, they were sung in solo. In responsorial songs, several calling songs overlap with the responding songs. Durchkomponiert form is sung by antiphon or in solo, but the case sung in solo originally seems to have been sung by antiphon or unison, if we consider the procedure of the work.
The “Song for Picking Up Fish” of Seonbong-gun of North Hamgyeong Province and Yangyang-gun of Gangwon Province, the “Full-Load-of-Fish Song-Bongjuktaryeong” of Jeungsan-gun of South Pyeongan Province and “Full-Load-of-Fish Song-Baechigisory” of Taean-gun of South Chungcheong Province, “Rowing Song” of Nampo City and Ganghwa-gun of Gyeonggi Province are resembled. In neighboring areas, even if the songs of different categorys, sometimes share a same melody. In a certain category, sometimes a same melody is shared to a considerable distance. It was first identified that in anchovy or herring fishing or dybowskii' sand eel fishing, the “Song for Picking Up Fish” is widely shared in the East Sea Coast area.

KCI등재

10한문 희곡 <동상기(東廂記)>의 구성과 야담 <동상기찬(東廂記纂)>과의 연계성

저자 : 김준형 ( Kim Joon-hyeo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25-35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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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6월 12일,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덕빈의 딸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이 혼인식은 국가가 주도해 시행한 일종의 노처녀노총각 혼인 프로젝트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으로, 때를 놓치면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和氣]이 상한다던 당대 통념을 염두에 둔 정조가 진두지휘한 국가 정책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을 이덕무에게 기록하게 했는데, 그것이 <김신부부전>이다. 민간에서도 이 혼인에 주목했는데, 李鈺은 희곡의 틀을 빌어 <동상기>를 창작했다. <동상기>는 가난한 백성에게 덕화를 베푼 임금을 찬양한다는 주지 아래,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텍스트다. 희곡을 모방했지만, 공연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동상기>를 두고 수준 낮은 작품이란 평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완정한 극적 구성물로 이해했던 결과다. <동상기>는 극 형식만 차용했을 뿐, 주된 목적은 임금의 덕화를 찬양하되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틈입시킴으로써 축제의 장을 담아내려 했다. <동상기> 4개의 折마다 각각 다른 문체가 사용된 것도 그러하다. 1절과 2절에는 설화와 속담, 3절에는 판소리, 4절에는 연극을 배치시켰다. <동상기>를 통해 공연하겠다는 의도 대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문체를 적용한 것이다. 이후 1918년 한남서림 주인 백두용은 이옥의 <동상기>에 기존 야담 <동상기찬>을 더한 『동상기찬』을 출판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동상기>와 <찬>을 별개의 텍스트로 인지했지만, 기실 둘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애초 김신 부부가 임금이 살펴줌으로써 인륜의 도리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두용은 근대로 전환하는 도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줄 것을 고대했다.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백두용은 그 단서를 임금이 가난한 백성에게까지 눈길을 미쳤던 <동상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백두용은 이옥이 쓴 正目을 각각 '才賢', '德慧', '眷澤', '福緣', '補遺'로 분류하고, 기존 야담에서 해당 범주에 맞는 작품을 선취하여 <찬>을 만들었다. 그러니 <동상기>와 <찬>은 '知己'라는 연결 고리로 이어진다. 실제 백두용은 1절에서 4절까지를 '누군가가 나를 알아줌 → 내가 누군가를 알아줌 → 적선 → 여경(餘慶)'으로 각각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했다. 우리가 <동상기>와 <찬>을 분리시켜 다룰 수 없는 까닭이다.


On June 12, 1791, the old bachelor Kim Hee-jip and the old lady Shin Deok-bin's Daughter get married. The wedding ceremony is a state-led so-called 'virgin virgin bachelor's marriage project'. At that time, the king ordered the recorder to record the case, which is called < KimSinBuBuJeon(金申夫婦傳) >. The private sector also made it into a work, which is the Chinese drama < DongSangGi[東床記] > written by LeeOk(李鈺). < DongSangGi > was created with the purpose of praising the king, and it inserted entertainment elements into it, so it had a frame of plays, but it did not have a performance in mind from the beginning. LeeOk uses different styles in each of the four acts. He tried to soothe his boredom by setting tales and proverbs in Acts 1 and 2, Pansori in Act 3, and drama in Act 4. In 1918, BaekDooYong(白斗鏞) published 『DongSangGiChan[東床記纂]』, which is combines drama < DongSangGi > and Yadam < DongSangGiChan >. In previous studies, these two were perceived as different works, but the two rooms were closely linked: the link was 'someone recognize me[知己]'. He understood the table of contents made by Lee as 'JaeHyun(才賢)', 'deokhye(德慧)', 'Kwontaek(眷澤)', 'Bokyeon(福緣)' respectively, and recorded the version of the yadam that fits it in < DongSangGiChan >. From acts 1 to 4, Baek contained his desire in it by constructing 'someone recognizes me → I recognize someone → do good things[積善] → blessings[餘慶]'. This is why we can't comprehend < DongSangGi > and < DongSangGiChan > as completely different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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