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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41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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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권0호(2019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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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눌(大訥) 로상익(盧相益)의 재경시기(在京時期) 한시(漢詩) 연구(硏究)

저자 : 이희목 ( Lee Hee-mok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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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大訥 盧相益이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시기에 지은 한시를 고찰한 것이다. 金海에서 생장한 그가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기는 그야말로 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갱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1882년 급제하여 1883년부터 1894년까지의 기간 동안 居喪중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京官의 신분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그의 한시 중에서 서울에서의 생활과 교유, 관직 생활에서의 심회 등을 살피려 한다.
그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집을 매입하여 거주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사들과 교유하였고 詩社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교유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애국적 경향의 志士들이었다. 詩社에서 지어진 詩篇에서 특별한 주제의식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야말로 친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편들은 긴장된 관원 생활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필요한 이완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자신의 심회를 스스로 밝힌 작품들도 상당수 남기고 있다. 국가적 위난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한 것, 大夫로서의 책임감을 밝힌 것, 대부로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공헌을 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렇게 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 어려운 상황이지만 임금을 가까이 에서 충의로 잘 섬기겠다는 大夫로서의 각오를 드러낸 것들이 있다.
그가 관직생활을 하면서 남긴 시편들에서 내면의식의 변화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데 이는 궁벽한 시골의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 때문으로 이해된다. 세도가들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눌의 처신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시문을 통해 뭔가를 표출해 내는 것은 지난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눌의 서울 생활이 明哲保身으로 점철되었다고 하더라도, 관직에서의 경험은 서간도 망명 시기에 그가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This paper reviews the Chinese poems written by Daenul(大訥) Noh Sangik (盧相益) when he was a government official in Seoul. He was born in Kim Hae which is a small village located in Southern part of Korea. The life in Seoul greatly changed his perception of reality. He remained a Seoul official from 1883 to 1894 except for a period of mourning his parents.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velop an understanding his life, companionship and consideration about his job.
He interacted with many influential people with patriotic tendencies in his house. Also, he actively participated in poetry club. It is hard to find any special themes in his poems written in the club. It seems that he just enjoyed social activities because he needed relaxation to endure tense life of official.
On the other hand, many of his works reveal his own introspection. He wrote poems about consideration to overcome national distress, responsibilities as a senior official, disappointment from not being able to take a chance to contribute something for the nation, loyalty to serve the king at hand regardless of difficult situations, and so on. He hardly reveals his change of inner consciousness in his poems because of his humble background. It was difficult to express his feelings because most overlords were from family in power. Even though he just wanted to keep his comfort life in Seoul, the experience became the basis of his poems written when he became an exile in Western Jiandao(西間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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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11년 서간도로 망명을 떠난 유교지식인 大訥 盧相益(1849~1941)의 망명지 저술서 중 하나인 『痛史節要』(일명 『韓史節要』) 뒤에 수록된 大韓亡國史列傳을 단독 저술로 보고 朴殷植의 『韓國痛史』와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한망국사열전』에는 총 111명의 인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이름이 중복된 3명을 제외하면 최종 108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한망국사열전』에 수록된 108명 가운데 『한국통사』와 겹치는 인물은 총 86명이다. 그리고 『한국통사』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대한망국사열전』에서만 이름이 확인되는 인물이 22명이나 되는데, 이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에 더해 『대한 망국사열전』과 『한국통사』는 서술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처럼 대눌은『대한망국사열전』을 저술할 때 『한국통사』를 참고는 하되, 『한국통사』에만 의존해서 저술한 것은 아니다.
아울러 『한국통사』에 이름이 보이는 86명 또한 기사본말체 저술인 『한국통사』에 수록된 내용을 대눌이 기전체로 서술해서 수록해둔 만큼 『대한망국사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전체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한 마디로 『대한망국사열전』은 대눌이 망명지에서 어렵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항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집필한 단독 기전체 역사서로서 충분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저술이다.


This paper compares 『Daehan-manguksa』 Yeoljeon with 『Hanguk-tongsa』 of Eun-sik Park. This Yeoljeon is at the end of the book named 『Tongsa-jeolyo』 (a.k.a 『Hangsa-jeolyo』) written by Daenool Sang-ik Noh who exiled to west Gando in 1911.
In this paper, this Yeoljeon is seen as a single book.
In this Yeoljeon, there are 108 persons of patrios of independence, including 3 named which are double counted in the 111 names. Among them, 86 persons are seen in the 『Hanguk-tongsa』 too. 22 persons are only can be seen in this Yeoljeon. There is also difference of the descriptions between Yeoljeon and 『Hanguk-tongsa』. Daenool thought this 『Hanguk-tongsa』 as a reference for writing Yeoljeon but not as a book he could depend on.
Daenool made a point to focus on each persons's activities while 『Hanguk-tongsa』 focused on the events themselves of 86 persons. It makes this Yeoljeon have its special value as a historical book.
『Daehan-manguksa Yeoljeon』 needs to be valued as a historical book to descrive the activities of patriots for independence based on the information he got in west Gando he exile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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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암일록(紫巖日錄)』으로 살펴본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교육활동과 의미

저자 : 이규필 ( Lee Gyu-p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9-8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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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小訥 盧相稷(1855~1931)이 남긴 『紫巖日錄』을 통해 그의 교육활동의 실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조명하고자 작성되었다. _紫巖日錄_이 紫巖書堂의 교육일지라는 점 때문에 선행연구에서는 대체로 초등교육의 측면에서 조명되었다. 하지만 생도들의 나이와 강독서, 儀禮 등에 나타나는 실상에 근거할 때 紫巖書堂은 초등교육기관이 아니라 서원 지향성이 강한 서당이었다. 그리고 학규와 교육의 실상을 검토한 결과 紫巖書堂 교육에 일관되게 탐지되는 정신은 敬이었다. 이 사실에 바탕하여 세계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대에 敬을 바탕으로 서원을 지향한 紫巖書堂의 의미를 간략히 더듬어 보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새로운 민족정신과 문화의식 건설을 준비하고자 했던 것을 紫巖書堂 경영의 의도라고 진단하였으며, 小訥의 세계인식이나 학문관과의 연계한 고찰은 후고를 기약한다.


This study examines the reality of his educational activities through the “Ja-am illok”, left by Sonnul No Sang-jik(1855 1931). Because of the fact that the Ja-am illok is the education journal of the Ja-am seodang, previous studies have largely focused on the aspects of primary education. However, the Ja-am seodang was not a primary education institution but a seowon. This is based on the facts of the students' age, their readings books and rituals, etc. In addition, after reviewing the actual condition of school rules and education, the spirit consistently detected in the education of Ja-am seodang was 'Kyung'. On the basis of this, this study briefly followed the meaning of the Ja-am seodang, which aimed at a vow, based on a circumstance in an era of changing global paradigm. The intention of the management of the Ja-am seodang is to prepare for the construction of a new national spirit and cultural consciousness beyond time and space. Sonul's consideration of the world's perceptions and academic perspectives is expected to follo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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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류우석시문초기수용양상고(劉禹錫詩文初期受容揚相考) - 『류백창화집(劉白唱和集)』의 수용을 중심으로

저자 : 鄭墡謨 ( Jung Sun Mo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1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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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 고전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劉禹錫 시문의 초기 수용 양상에 대해서 검토했다. 특히 白居易 시문이 그의 생전에 신라 문단에 전해지면서 애독자까지 등장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유우석과 백거이가 주고받은 창화시집 『劉白唱和集』의 수용에 주목했다. 그리고 고려 초기에 편찬된 『十抄詩』 수록 유우석의 시 10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수록 작품이 모두 寶曆 원년(825) 봄부터 大和 3년(829) 봄 사이에 제작되었으며 백거이 와 관련된 唱和시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십초시』 수록 유우석 시는 모두 처음 편찬된 2권본 『유백창화집』 수록 138수에서 선별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일본의 藤原佐世(847~898)가 작성한 『日本國見在書目錄』 및 藤原通憲(1105~1159)이 편찬한 『通憲入道藏書目錄』에 유우석 관련 시문집으로 '劉白唱和集二卷'만이 저록된 사실을 통해 이러한 추정을 방증할 수 있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한국 문단에서의 유우석 시문의 초기 수용은 곧 『유백창화집』에서 비롯되었으며, 북송 중기 이후 새롭게 정리 출판된 유우석의 시문집이 고려 문단에 수입되면서 그 수용 양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았다.


This paper analyzes the early acceptance of Liu Yuxi's poetry and prose which had a considerable impact on the ancient Korean literature, especially with Bai Juyi(白居易)'s poetry and prose introduced into the literary world of Silla(新羅) before his death and became the imitative object of the people at that time, the acceptance of Liu·Bai's collection of poems deserves attention. In addition, Ten copied poems(十抄詩) compiled by Goryeo(高麗) at the early stage contains 10 poems that Liu Yuxi sang with Bai Juyi from the spring of 825 to the spring of 829. To sum up, it can be inferred that Liu's poems included in Ten copied poems are all selected from 138 of two volumes of Liu·Bai's collection of poems in the first time. Only two volumes of Liu Yuxi's poetry collection, Liu·Bai's collection of poems, can be used as evidence in Catalogue of the book of seeing in Japan(日本國見在書目錄) by Fujiwara Sase(藤原佐世, 847-898) and Catalogue of collections of Tongxian's access(通憲入道藏書目錄) compiled by Fujiwara Tongxian(藤原通憲, 1105-1159). Through the above analysis, it can be proved that the early acceptance of Liu Yuxi's poetry and prose in the Korean literary world is highly likely to be based on the collection of Liu·Bai's collection of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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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제현(李齊賢)의 보타산(普陀山) 기행시(紀行詩) 연구(研究)

저자 : 김건곤 ( Kim Kun-ko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7-14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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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인 李齊賢(1287~1367)은 28세 때(1314)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忠宣王의 부름을 받고 燕京에 가서 30세 때 四川省 峨眉山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녀왔으며, 이때 지은 시문들을 『西征錄』이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또 33세 때는 浙江省 普陀山에 황제의 香을 하사하러 가는 충선왕을 모시고 강남을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이때도 오가는 길에서 만난 승경과 고적을 시로 읊어 『行錄』 한 권을 지었다. 『행록』의 일부가 현재 그의 문집 『益齋亂藁』에 남아있는 바, 본 연구에서는 이 작품들을 중심으로 강남 여행의 경로와 시세계를 분석하였다.
이제현은 燕京과 杭州 간의 京杭運河를 이용하여 약 10개월 간 여행하였으며, 여행경로는 燕京--揚州--潤州--蘇州--湖州--杭州--寧波--普陀山을 오가는 길이었다. 그의 강남 여행은 임금을 수행하는 일이었지만, 중간에 뱃놀이를 하고 사찰에 묵으며 명산을 탐방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강남 기행시에는 경치에 대한 묘사와 함께 淸興과 風流에 대한 정감이 주로 드러나고, 客苦나 鄕愁 같은 힘든 감정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그는 고적과 역사현장을 탐방하고는 전대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 평가하고 회고하였다. 詠史詩에서는 責備와 褒貶의 방법을 통하여 역사 인물들을 평가하고, 懷古詩에서는 인생사의 무상함을 읊기도 하였다.
이제현은 아미산 여행과 강남 여행에서 중국의 장엄한 산천과 색다른 풍속, 옛 성현들의 유적과 역사적인 고적들을 두루 답사함으로써 견문을 넓히고 자신의 文氣를 기를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크고 넓은 문학세계의 바탕이 되었다. 후대의 비평가들이 그를 위대한 시인이라 칭찬하는 것도 중국 여행에서 느낀 감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이다.


When Yi Jae Hyeon (1287~1367), a scholar-official of the Goryeo dynasty, was 28 years old, King Chungsun summoned Yi, who was at Yuan at that time. Later, at the age of 30, Yi went to Yanjing to participate in an ancestral rite at the Emei Mountain in Sichuan, China, and he wrote a book titled The Records of the Journey to the West (K. Seojeongrok 西征錄). It consists of poems he wrote during this journey. When he was 33 years old, he had an opportunity to travel to Jiangnan with King Chungsun, who headed to Mt. Putuo in Zhejiang Province offer incense to the emperor. At this time, Yi appreciated the beautiful scenery and historical sites while traveling and recited a poem and wrote a book entitled Records of a Journey (K. Haengrok行錄). Currently, parts of the Records of a Journey remain in his collected words, Collected Words of Yi Jae Hyeon (K. Ikjeanango 益齋亂藁). This article analyzes the route to Jiangnan, and it provides a comprehensive view of these poems.
Yi Jae Hyeon traveled approximately ten months following Jing-Hang Cannel, which connected Yanjing(燕京) and Hangzhou (杭州). He moved along the following route: Yanjing (燕京) Yangzhou (揚州) Runzhou (潤州) Suzhou (蘇州) Huzhou (湖州) Hangzhou (杭州) Ningbo (寧 波) Mt. Putuo(普陀山). Although the primary purpose of his trip was to accompany King Chungsun, he had time to go boating, stay in temples, and visit famous mountains. Thus, his works written during this travel period mainly reveals his sentiment of "pure appreciation (淸興)" and a "refined taste (風流)" as seen in his description of the beautiful scenery. Thus, there are no negative emotions included in this work, such as discomfort or homesickness.
Meanwhile, as he visited historical sites, Yi provides his evaluation and commemorations of the relevant characters and events of the former generation. In his "poems of history (詠史詩)," he evaluates individual figures on the so-called criteria of "condemnation (責備)" and "appraisal (褒貶)." In his "poems of recalling antiquity," he expresses the impermanence of life.
Through the trip to the Emei Mountain and Jiangnan, Yi Jae Hyeon was able to expand his knowledge and ability by looking at China's magnificent mountain stream and unusual customs, historical remains, and sites of the former generation. These experiences soon became the basis for his broad and comprehensive literary world. Later, critics praised him as a great poet, and it is a result of his great literary visualization of the inspirations he gained during the journey to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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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복제(服齊) 기준(奇遵)의 『육십명(六十銘)』 창작의도와 구성

저자 : 南賢熙 ( Nam Hyunhee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5-17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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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十銘』은 삶의 가장 절박한 순간, 조선의 한 젊은 지식인이 마음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를 성찰하고 경계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글이다. 지은이는 己卯士禍로 희생된 奇遵(1492~1521)이다. 그는 함경도 穩城에 圍籬安置되었는데, 그곳에서 일상으로 대하던 거의 모든 사물에 대한 銘을 짓고서 이것을 자기 성찰의 매개로 삼았다.
위리안치된 그의 생활은 매우 비참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늘 하나들어갈 틈조차 없고,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산 무덤' 같은 곳이었다. 처음에 실의하여 죽음만 기다렸으나, 다시 의연하게 마음을 다잡고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 하였다. 그 방법의 하나로 그가 선택한 것이, 자기를 둘러싼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자신을 성찰하는 것(觀物察己)이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육십명』 이다.
銘의 기본 성격이 사물을 관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에 철학적·윤리적 의미까지 유추하여 언어(문자)로 형상화하는 '名'과,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警'의 두 개념인데, 이것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물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자 했던 『육십명』 의 창작의도와 잘 부합하였다.
대상 사물은 모두 60가지이며, 그래서 이름도 『육십명』 이라 하였다. 『육십명』 에는 다른 문인들의 銘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울타리, 부엌, 온돌, 선반, 길, 처마, 굴뚝, 뜰, 텃밭, 다리(橋) 심지어는 측간까지도 소재로 다루고 있어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또한 사물의 특징적인 면을 포착하여 사물마다 고유한 이름도 함께 붙였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사물들은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삶의 동반자인 동시에 자신을 살피는 거울이 되었으며,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려는 자신을 경계시키고 일깨우는 스승이 되기도 하였다.


Sixty Inscription(六十銘) is a piece of writing in which a young intellectual of Joseon(朝鮮) dynasty, at the most desperate moment of his life, had pledged to reflect on himself and take cautious attitude in order to refine his mind and restore his inner-piece. The author is Ki-Jun(奇遵) who was sacrificed in Kimyosahwa(己卯士禍). He was enclosed in a thorn hedge(圍籬安置) in Onseong(穩城), Hamkyong-do(咸鏡道) province, where he wrote inscriptions (銘) for almost everything he encountered in his daily life and used them as media for self-reflection.
His life in exile was very miserable. According to his words, it was like a "living tomb" where there was no room for a needle, and no proper sunlight. At first, he was very disappointed and waited only for death, but he controled his mind and tried to do his best in his life again with determination. One of the methods he chose was to observe the objects surrounding him and reflect on himself through it(觀物察己), and the outcome is Sixty Inscription.
The basic nature of 'inscription' has two concept, the one is 'name(名)' which means observing things, finding new values, inferring philosophical and ethical meanings, and embodying them in language(letters), and the other is 'vigilance(警)' which means reflecting on oneself through them. It was well matched with the intention of writing Sixty Inscription, in which he tried to reflect on himself through the objects surrounding him.
There are 60 objects in total, so the name is called Sixty Inscription. Sixty Inscription covers a wide variety of materials, including fences, kitchens, ondol(Korean floor heating system), shelves, streets, eaves, chimneys, courtyards, vegetable gardens, bridges and even outhouses, which are rarely found in the 'inscription' of other writers in his time. It also captures the distinctive aspects of things and gives each object a unique name. By this naming, things came into his mind as both a companion to life and a mirror to examine him, and became teachers who alerted and aroused him nearly giving up his life out of des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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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의 시세계(詩世界) - 세 편의 사(辭)와 기행시(紀行詩)를 중심으로 -

저자 : 劉永奉 ( Yoo Yeongbong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5-20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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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에 수록된 江漢 黃景源(1709~1787)의 卒記 가운데 일부를 보면, “또한 답습하는 데에서 큰 잘못이 생겼으며, 詩도 공교하지 못해 식자들이 한스럽게 여겼다.”라고 하여, 칭찬의 말미에서 슬쩍 강한을 깎아내렸다. 그러나 이런 약점에도 강한은 300수 가까운 시들을 문집에 남겼다.
강한은 도담창화시에 붙인 서문[島潭唱和詩序] 의 앞부분에서“나는 젊었을 적에 海州 吳瑗 伯玉과 宜寧 南有容 德哉 두 사람을 따라 단양군으로부터 도담에 들어가 강가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문장을 잘하고 산수를 좋아하여, 밤중에 강 한복판으로 배를 끌고 가 띄웠다. 이윽고 운을 내어 詩歌를 짓고 서로 唱酬하여 古詩와 絶句律詩 도합 20편을 이루었다. 시어의 정밀하고 거칢과 辭의 완만하고 촉급함이 비록 서로 같지 않았으나, 모두 性情의 진실함에서 나온 것이라서 彫琢이나 修飾을 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바로 이 언급에 주목한다면, 강한이 평생에 걸쳐 고시를 위주로 창작한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완강한 외형적인 틀 안에 彫琢이나 修飾을 가하는 것이 근체시의 특징인 까닭이다. 아울러 강한은 산수를 노래한 景物詩에 다음과 같이 무게를 얹었다.
“예로부터 詩歌는 많고 성대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산수의 즐거움을 다하여 오묘함을 잘 드러낸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두 사람은 문장으로 사방에 이름이 알려졌고, 산수에 대해서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 가운데 도담의 삼봉을 더욱 사랑하였으니, 시가로 표현하여 산수의 오묘함을 형용한 것 역시 훌륭하다. 나 경원은 비록 어리석고 비루하여 두 사람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문장에서 나와 선후를 다투는 것을 즐겨하니, 어찌 聲氣가 感通한 바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강한에게 오원과 남유용은 平生의 知己였다. 대등한 문장 솜씨로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역시 산문에서는 강한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두 친구는 운문에서 남음이 있었으니, 그 여파로 강한은 살아서부터 운문이 아쉽다는 평을 들었던 것이다.
이에 강한은 고문가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형식과 수사적인 부분에서 보다 자유로운 古詩를 선택하였을 것이고, 평소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내보이길 꺼렸으리라 짐작된다. 연유에서 그는 근체시 형식을 위주로 하는 和韻詩나 挽詩의 創作을 가능한 한 기피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나날에 여행 중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느낀 순간적인 충격은 기꺼이 고시의 양식에 담았다고 여겨진다.
요약하면, 강한은 고문가답게 형식적으로는 고시 형식을 선호하였다. 그리하여 '史才' 넘치던 인물답게, 역사를 소재로 삼은 辭와 영사시의 창작에 기량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두 편의 聯句詩에서 보여주는 문학적인 순발력을 기반으로, 젊은 시절에 자신의 소신에 따라 긴 호흡으로 山水詩와 紀行詩에 주력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점들이 강한만의 독특한 시세계이자, 강한의 시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라고 하겠다.


To Kang Han(江漢) Hwang Gyeongwon(黃景源; 1709~1787), Oh Won(吳 瑗) and Nam Yooyong(南有容) were the good friends of his lifetime. With comparable sentence dexterity, they tasted an era, but again prominent in prose. In contrast, the two friends had remained in verse, and in the aftermath, the strong poet said that it was a pity verse from alive.
Strong in this regard, he would have chosen a more liberal GoSi(古詩) style in form and rhetorical to suit his reputation as an advisor, and he would have been reluctant to show his work to others. In this sense, he should have avoided as much as possible the writing of the HwaWoon-poet(和韻詩) and ManSi-poet(挽詩), which focuses on the form of GeunChe-poet(近體詩). However, it is believed that the momentary impact of seeing the beautiful scenery during the trip on a young day was willing to take notice. 
In summary, Strong prefers the GoSi(古詩) form of notice formally as an adviser. As a figure overflowing with histories, he showed his skill in the creation of his works and consular poems based on history. In addition, based on the literary quickness shown in the two YeonGu-poet(聯句詩), he can be said to have focused on SanSu-poet(山水詩) and GiHaeng-poet(紀行詩) with a long breath in his youth. These are the unique poems of Strong Bay and their unique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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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성호사설(星湖僿說)』과 명(明)·청대(清代) 인용 문헌과 그 의미

저자 : 김형호 ( Kim Hyung-ho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3-23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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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湖僿說』은 사전적인 유서이며,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에 의해 편찬되었다. 총 30권 3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天地門(223항) 萬物門(368항) 人事門(990항) 經事門(1,048항) 詩文門(378항)의 5門으로 類를 이루고, 각 類의 세부항목은 총 3,007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星湖僿說』은 인문학, 생물학, 지리학 및 천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성호사설』은 다양한 명·청대 문헌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18세기 조선 지식의 분포와 확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성호사설』에 인용된 명·청대 문헌을 통해 성호가의 서적 컬렉션은 물론 『성호사설』의 성립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지식·정보의 유통 과정의 일례와 그 의의를 검토하였다.


『Seonghosaseol(星湖僿說)』is an encyclopedic Yuseo(類書), published by Lee Ik, (李瀷, 1681~1763). This work is composed of total 30 volumes, 30 books, of each volume is classified into 5~6 kinds, which compose of 33 types, details of which classification are made of total 3,007 articles. This text provides a wealth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covering humanities, biology, geography and astronomy. citation of the literature of the Ming·Qnng dynasty in 『Seonghosaseol』 shows the distribution and development of knowledge in the 18th century Joseon. This research examined Ming·Qing dynasty's cited references in 『Seonghosaseol』. this paper considered The significance and composition of the collections of Sungho's clan from all angles. and The citation patterns and implications of Ming and Qing's citations of literatur in the Seongho editorial were re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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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외 도서관(일본 교토대, 일본 동양문고, 미국 버클리대) 소장 金屬活字本(希顯堂鐵字) 『鄭義士護聖錄』을 서지적으로 분석하고, 丙子胡亂 당시 성균관의 위패를 護聖한 성균관 守僕 鄭信國(1602-1682)이 현양된 과정에 성균관이 '辭免賤'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泮人들을 구속하고자 한 의도가 있었음을 밝혔다. 정신국은 성균관의 위패를 지킨 공을 인정받아 仁祖에 의해 면천되었으나, 수복으로서의 직분을 지키기를 원하여 면천을 사양했다. 정신국이 면천을 사양한 사적은 후대 성균관 유생들에게 크게 가상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포상의 뜻에서 정신국의 후손들은 대대로 수복에 종사하는 특권을 얻었는데, 이 덕에 身貢 등을 면제받은 정신국 후손가는 贖良을 통해 성균관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성균관 유생들은 泮村에 정신국의 정려문(1727년)과 護聖祠(1791년)를 건립하고, 『정의사호성록』을 편찬(1804)함으로써, 정신국의 충절과 그가 대대로 성균관에 守職하기를 희망한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이 과정에서 泮人들의 物力을 징발하고, 정신국을 반인들의 先正으로서 규정했다. 『정의사호성록』은 이러한 성균관의 이데올로기가 공고화된 과정을 明文化한 것이라 볼 수 있다.


This article analyzes bronze type-printed Jonguisa Hosongnok (鄭義士護聖錄: The Chronicle of the Patriot Jong's Escort of the Sacred Tablet) in overseas libraries. Jonguisa Hosongnok is a record of a slave Jong Shin'guk (鄭信國, 1602-1682) who escorted sacred tablets in Sungkyunkwan (成均館) to Namhansanseong (南漢山城) under the siege of Qing invaders. Jong was emancipated by King Injo for the heroic deed, however, he wished to serve Sungkyunkwan for the rest of his life, refusing an emancipation. Sungkyunkwan consistently commemorated Jong, by emphasizing his firm obedience to the obligation as a slave. This 'Refusal of the emancipation (辭免賤)' became an ideology that restrained people from Banch'on (泮村), a town of slaves who are belong to Sungkyunkwan. Descendents of Jong have tried to deviate from the rule of Sungkyunkwan, by paying off their slave document. However, Sungkyunkwan forbad such emancipation, referring 'the refusal of your ancestor.' Sungkyunkwan and its students founded a commemorative gate (旌閭門) in 1727, Hosongsa temple (護聖祠) in 1791, and finally published Jonguisa Hosongnok in 1804, in order to 'state' the control over slaves of Sungkyunkwan.

KCI등재

10강준흠의 「한경잡영(漢京雜詠)」에 나타난 19세기 서울 공간에 대하여

저자 : 강수진 ( Kang Sooji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9-32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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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漢京雜詠」에 나타난 장소의 특성과 그 장소를 소재로 한 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강준흠이 나타내고자 했던 19세기 서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강준흠은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서울에 거주했던 인물로, 「漢京雜詠」은 일상에서 접하는 서울 공간을 그의 시선으로 의미화한 작품이다. 「漢京雜詠」은 40수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시는 삼각산, 삼청동, 저자도 등과 같은 서울의 지명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강준흠은 서울 주변의 산천을 비롯하여 왕이 거처하고 정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궁궐,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적층되어 있는 곳, 당시 서울의 명승이었던 곳 등, 다양한 유형의 장소를 선택하여 「漢京雜詠」을 구성하였다. 본고에서는 강준흠이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서울의 모습을 번화한 國都, 일상의 생활공간, 事跡을 환기하는 공간, 對明義理의 공간으로 분류하고, 이에 해당하는 작품을 살펴보았다.
강준흠의 「漢京雜詠」은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서울 공간을 재구성하였으나,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다채로운 서울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부터 창작된 八景詩 계열의 작품과 18세기에 창작된 城市全圖詩 계열의 작품, 그리고 강이천의 「漢京詞」의 특성을 모두 포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강준흠의 「漢京雜詠」은 기존의 서울에 대한 시의 특성을 수용하면서 본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서울의 공간을 형상화하였으며, 팔경시의 형식에서 벗어나 여러 장소를 선택하여 서울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study reviews the appearance of 19th century Seoul that Kang Jun-heum intended to display through a work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and places in Hangyeongjabyeong. Kang Jun-heum resided in Seoul for the most of his life, and his work Hangyeongjabyeong is a work that signifies the space of Seoul that he contacted in daily life from his perspective. It consists of 40 poems, each of whose title is place name of Seoul such as Samgaksan, Samcheongdong and Jeojado. He chose various types of places such as mountains and streams around Seoul, palaces where kings lived and political affairs were administered, places where the memories of past figures or incidents remain and famous places back then. In this study, the appearance of Seoul Kang Jun-heum intended to display is classified into busy national highways, living space, space that affairs are awakened and space of Damyeong Euiri(對明義理), and each work is reviewed.
Hangyeongjabyeong of Kang Jun-heum reorganizes space of Seoul focusing on places, but it tries to show various aspects of Seoul instead of one image, which indicates that this embraces characteristics of works of Palgyeongsi(八景詩) category created in early Joseon Dynasty, works of Seongsijeondosi(城市全圖詩) category created in the 18th century and Hangyeongsa漢京詞 of Kang I-cheon. Hangyeongjabyeong of Kang Jun-heum is meaningful in that it accepts the existing characteristics of poems about Seoul, embodies the space of Seoul from his own perspective and displays various images of Seoul by choosing many places freed from the form of Palgyeongsi. In addition, it does not develop poetic concepts limited in sense of place but reveals the attributes of places from subjective views and em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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