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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39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563
한문학보
39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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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후보

1조선간 『황명정가팔재자문초(皇明正嘉八才子文抄)』의 창곡시위(昌穀示委) 고찰

저자 : 김정숙 ( Kim Jeong-suk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3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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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정은 그의 문학비평서 『藝苑卮言』에서 서정경과 황성증을 명대중엽 문단에서 육조문의 창도와 흥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핵심 인물로 평하였다. 『皇明正嘉八才子文抄』는 17~18세기에 조선에서 편집되고 간행된 명대 산문 선집이다. 조선의 편자는 왕세정의 “昌穀示委,勉之汎瀾”에 의거하여 여덟 문인의 문장을 뽑아 엮은 후 서정경을 권두에 두었다. 이 논문은 권두의 서정경을 창곡시위의 함의, 육조문의 성격, 선록된 작품의 풍격 등의 주제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편자가 왕세정의 창곡시위를 어떻게 해석했고, 또한 그 해석이 선집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창곡시위”는 명대문학사에서 서정경이 차지하는 위상을 말한다. 왕세정의 관점에서 볼 때 서정경은 전칠자의 구성원일뿐더러 오중문학의 특징인 情과 辭로 중원문학과의 교류를 통해 육조문을 창도한 인물이기도 했다. 『문초』 의 편자 또한 전칠자의 영수인 이몽양과의 문학적 영향관계를 고려했고, 강남문학과 중원문학의 지역적 調劑에도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창곡시위의 육조문은 서정경이 오중시기의 제량풍을 반성하고 진한고문과 북방문학이라는 다면적 학습과 절충을 거친 후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서정경의 작품은 오중시절부터 화려한 문채와는 거리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漢魏에서 潘陸에 이르기까지 육조문학 형성기의 풍모를 지녔다고 봐야할 것이다.
『문초』의 서정경 작품 또한 대체로 문사의 변려화가 점차 시작된 한말위진의 경향을 보인다. 특히 「答獻吉書」·「重與獻吉書」는 부분적으로 뛰어난 변려문을 구사하였으나, 편자의 심미 기준은 오히려 이 작품들의 건안 풍격이나 간결하고 정련된 필치에 두고 있다. 특히 「與室人序別」·「與文子序別」은 왕세정의 기준을 크게 벗어나는 『문초』 편자의 독자적 특색이 드러나는 선별이다.


In the literary criticism to Yiyuanzhiyan, Wang Shizhen remarked Xu Zhenqing and Huang Xingzeng to be key players who make a role in advocating and growing prose of Six Dynasties-style in the literary world of middle-Ming dynasty. Anthology for Eight talents' prose in ZhengJia Ming china was edited and published in Chosun between the 17th and 18th. The Chosun' editor, in accordance with Wang Shizhen's comment "Changgu showed the river and Mianzhi reached ocean"(昌穀示委,勉之汎瀾) to them, had selected the prose of Eight talents, and then put Xu Zhenqing's at the very front of the book.
In my paper, I firstly divided this Xu Zhenqing's work into three subjects, i.e., the implication of ChangGuShiWei, the appearance of prose of Six Dynasties-style and trait of his prose in the anthology, and then examined and analyzed them respectively. Besides, also considered how the editor of Eight Talents' prose understanded Wang Shizhen's "ChangGuShiWei" and how connected it up to this anthology.
The express "ChangGuShiWei" was represented the position of Xu Zhenqing in the Ming china literary world. In the point of Wang Shizhen's view, Xu Zhenqing not only was one of member in the Former Seven Scholars, but also was the man who led the literary style of Six Dynasties-prose through interacting with literary world of the central Plains of China on the aspect of the feeling and the rhetoric of WuZhong literature. The editor of Eight talents' prose not merely considered the literal relationship to Li Mengyang(李夢陽) who was led the Former Seven Scholars(前七子), but paid attention to interregional compounding between literature of the South of Yangtze River and the Central Plains of China.
In the point of Wang Shizhen's view, Xu Zhenqing's prose of Six Dynasties-style was fruit from reflecting on QiLiang-style(齊梁體) of former Wuzhong and compromising between prose of Qin-Han and literature of the Central Plains of China. However, Xu's works in the Beijing period had far from the works of WuZhong period that sought a florid style. Overall, these works have had trait of the formative period prose of Six Dynasties-style that was covered from HanWei-style(漢魏) to Pan and Lu-style(潘陸).
Xu Zhenqing's Six Dynasties-style works in this anthology also was on look of prose style of late Han and WeiJin period which appeared rhythmical parallel. This prose' works, i.e., Daxianji-Shu(答獻吉書) and Chongyuxianji-Shu(重與獻吉書), expressed partially Rhythmical-parallel prose, but the editor's aesthetic standard set it on JianAn-style, beauty of refining and brevity. Especially, Yushiren-Xubie(與室人序別) and Yuwenzi-xubie(與文子序別) was selected from editor's own view, but such a criticism was what have broken the Wang Shizhen's view-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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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유당 이석신의 한시에 나타난 삶과 풍격

저자 : 양훈식 ( Yang Hoon-sik ) , 이수진 ( Lee Su-ji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1-6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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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何有堂集』에 나타난 호남 인물 李碩臣(1659~1738)의 한시를 통해 그의 삶의 지향과 풍격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이석신의 삶의 지향과 풍격을 明哲保身과 謙謙君子의 지향이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호학적 자세와 충의의 정신이 드러났으며, 부자자효에서 드러난 골육지친의 정을 그의 시문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충효와 덕행, 절의가 그의 인물됨의 주된 특징이었으며 '淸'과 '直'의 풍격이 드러남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조선전기 靑蓮 李後白으로부터 이어진 '淸'의 풍격을 忠情直節로 계승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松亭 李復吉의 유연한 감성이 이석신의 오언시를 통해 형상화되었고 칠언시에서는 용사를 통해 시문을 완성하는 송시풍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벗과의 오랜 만남과 교유, 그리고 이별은 그로 하여금 서정적 감정을 아름다운 풍격으로 승화시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겸겸군자의 삶을 지향하였다. 그는 덕성과 겸손을 지닌 인물로서 군자를 이상적 존재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直'의 풍격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있는 효우와 일가친척이 사이가 좋고 화목하게 지내는 돈목을 강조하였다. 이는 이석신의 시에 드러난 따뜻하고 자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이 갖는 의의는 湖南의 延安李氏 이석신의 한시에 관한 최초의 연구 성과라는 점이다. 또한 통시사적으로 볼 때 康津과 海南지역을 중심으로 연안이씨가의 풍격 중 '淸'의 특징이 조선전기 李後白으로부터 시작된 점을 밝히고 조선중기 李復吉, 조선후기 李碩臣에 이르러 '直'의 정신이 결합되어 호남 연안이씨 시맥의 일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고구한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s designed to find out the life and prestige of Mr. Lee Suk Shin (1659 ~ 1738) who was born in Honam area, Korea as shown in his Chinese poem collection book “Hayudangjip” writt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First of all, the life and prestige of Mr. Lee Suk Shin was viewed from the two points of Myeongcheolbosin (Man of reason and discernment) and Gyeomgyeomgunja (Man of nobility and loyalty). His scholarly mind and loyalty are expressed in his poems and his filial devotion was also well reflected on them. His personality can be characterized by the minds of filial devotion, good behavior and loyalty along with the minds of cleanliness and straightness.
First, he succeeded the prestige of straightness which was passed down from Lee Hu Baek (pen name: Cheongryeon), who wa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is mind was well expressed in his 5-letter poems on the smooth emotion of Lee Bok Gil (pen name: Song Jeong). In his 7-letter poems, he showed the style of the poems of the Song Dynasty, which completed poems with a famous quotation from early proverbs. In addition, the encounter and exchange with friends, and parting along with the resulting lyrical emotion were expressed with the beautiful prestige in the subliminal level.
As a person having virtue and modesty, he suggested the life of Gunja (man of nobility) as the ideal type of man. This shows his mind of straightness and justice. He emphasized the filial piety toward parents and the love toward brothers and sisters as well as the harmony among family members. In his poems, Lee Suk Shin expressed his mind of warmth in details.
This study has the implication that this is the first research on the Chinese poem of Lee Suk Shin who was born from the family of Yeonan Lee, Honam area. In addition, from the view of the history of poems, this study also has value as it proves that “cleanliness”, one of the virtues of Yeonan Lee Family centering on the Gangjin and Haenam areas started from Mr. Lee Hu Baek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at the mind of straightness is mixed to that trend in the period of Lee Bok Gil, in the mid-Joseon Dynasty with the mind of Lee Suk Shi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us making a group of Honam Yeonan Lee Family poets appear in tha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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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숙종(肅宗)의 왕실 여성 한시 연구

저자 : 김남기 ( Kim Nam-ki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1-9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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肅宗(1661~1720)은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목표로 하여 많은 정책을 실시하였고, 文治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제도의 정비, 도서의 간행과 구입, 수많은 詩文의 창작 등에 힘을 쏟았다. 『肅宗大王御製』에는 시 577題 816首, 문 292편이 실려 있을 정도로 문학 창작에 힘을 쏟았다. 시는 각종 국가적 의례의 거행, 신하들과의 수창, 궁중 생활과 감회, 궁궐의 건물과 풍경, 書畵와 地圖, 역사와 고금의 인물, 왕과 왕후 및 왕자와 공주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소재를 취하여 형상화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숙종의 다양한 시세계 중에서 왕실 여성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를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숙종의 한시에는 고금의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지만 논의의 집중을 위하여 왕실 여성, 곧 定順王后, 廢妃愼氏, 仁烈王后, 莊烈王后, 愍懷嬪, 淑安·淑明·淑徽·明安公主, 明聖王后, 仁敬王后, 仁顯王后 등을 읊은 한시로 한정하였다. 숙종은 이들 한시에서 왕실 여성에 대한 祝壽와 哀悼의 심정을 진솔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한시는 春帖·進宴·喪禮·祭禮 등 왕실 여성에 대한 국가적 의례의 거행 양상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King Sukjong(1661~1720) implemented many policies aiming to reinforce his sovereign power and stabilize the livelihood of the people, and wrote numerous pieces of poetry and prose with high interest in civil administration. He put so many efforts into literary creation that there were 577Je(題) 816Su (首) poems and 292 pieces of prose in 『Sukjongdaewangeoje』. His poems took and embodied various materials, such as performance of diverse national rituals, advocacy with vassals, palace life and sentiment, buildings and scenery of palaces,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maps, figures of history and all ages, and interest in the king, queens, princes and princesses, and so on.
In this thesis, in King Sukjong's various poetry world, poems in Chinese with the material of royal women were examined intensively. Many of King Sukjong's poems in Chinese were about the females of all ages, but for more focused discussion, the research subjects were limited to the poems in Chinese about royal women, that is, Queen Jeongsun, a deposed queen Ms. Sin, Queen Inyeol, Queen Jangryeol, Minhoebin, Princess Sukan·Sukmyeong·Sukhwi·Myeongan, Queen Myeongseong, Queen Ingyeong, and Queen Inhyeon. Through these poems, King Sukjong expressed his wish for royal women a long life and mourning for them in honest and delicate ways. In addition, these poems are precious materials that help understand the aspects and meanings of national rituals for royal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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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세화(朴世和)의 화양강회(華陽講會)와 「화양강회일기(華陽講會日記)」에 대한 고찰

저자 : 이상주 ( Lee Sangju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9-13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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毅堂 朴世和(1834~1910)는 1904년 지금의 華陽九曲에서 제자 등 200여명의 유림들을 모아놓고 華陽講會를 결행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이다. 그 때 그의 나이 71세이며, 화양구곡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현기증이 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연기하지 않고 화양강회를 추진 강행했다. 박세화는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그 해 겨울, 지금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用夏九曲의 상류인 茀億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書示書社同志」를 지었다. 이 글에서 그는 道를 따라 죽고 動搖가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義라는 점을 강조하고 경전을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1898년 용하구곡을 설정했다. 華陽講會에서 존화양이사상을 특강한 것은 斥洋斥倭 즉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박세화가 1905년과 1907년 항일투쟁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의식의 실천인 것이다.
박세화는 「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에서 “ 華는 夷가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짐승이 될 수 없다. 청컨대 제군들은 각자 뜻에 힘쓰고 義를 지켜 서로 돕기 바란다. 道는 망할 수 없고 회복될 것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화양강회는 '존화양이의식수호결의대회'이자 「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는 존화양이의식수호선언서'라 할 수 있다. 이 강회에서 「萬東廟庭碑文」·「畢命」·「白鹿洞規」를 낭송했다. 모두 존주대의의식 즉 존화양이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화양강회를 거행한 궁극적인 목적은, 來復을 인식시키고 척양척왜의식을 고취앙양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1904년부터 경술국치를 당한 후인 1916년까지 우암을 숭상하고 존화양이의식을 견지한 유림들이 존화양이의식을 공고히하기 위해 화양구곡을 탐방하고 만동묘에 제향한 사례는 몇몇 있다. 그러나 시국에 대한 경각심과 處義姿勢에 대한 특강을 하지는 않았다.
박세화는 「華陽講會日記」에 견문한 당시의 인정세태와 문화유산, 그리고 화양구곡의 유적 탐사, 또 청천의 우암묘소를 참배하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술해놓아 그 실상과 실황을 알 수 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려하는 징조가 가속화돼가던 조선말 최대의 국가적 중대사는 국권수호와 국가수호였다. 그 긴박한 시기인 1904년 박세화는 유림들에게 존화양이의식과 斥倭意識을 강화하기 위해서 화양강회를 강행했다. 따라서 박세화의 존화양이의식과 華陽講會 그리고 「華陽講會日記」의 내용은 그 시대적 문학적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Uidang(毅堂) Park, Sehua(朴世和 1834~1910) had carried out the Huayangkanghoe(華陽講會) which had assembled Yoorims of disciple 200 people and so on at Huayanggugok of presently in 1904. In 1905 was before 1 year ago when Eulsaneukyak had accomplished conclusion. At that time he was 71 years old, when he departed to Huayanggugok, although he had situation of dizziness but he did not give up or postponed, and he had enforced the Huayangkanghoe. Park, Sehua(朴世和(1834~1910)) entered Buleok-mountain(茀億山) which was upper valley of Yonghagugok(用夏九曲) which was located in Eoksu-ri, Deoksan-myeon, Jecheon-si, Chungbuk at that times winter when Myeongseong Empress regicidal incident took place in August of 1895. And he composed Seosiseosadongji(書示書社同志). In this writing, he emphasized that Eui(義)was that if tremble(動搖) took place, But did not tremble according to death of a duty(道). And he required to study the scriptures. He set up Yonghagugok in1898. In the Huayangkanghoe(華陽講會), special lecture of Jonhuayangi thought caused for Cheokyangcheokwae(斥洋斥倭), that is to say, for inspiring of sense in anti-Japanese. In 1905 to 1907, Park, Sehua's participation of anti-Japanese struggle was practice of those senses.
Park, Sehua had said, in 「Huayangkanghoeil Seosimjegunja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 “Hua(華) never to be I(夷), but person never did not to be animal. Please, gentleman had effort each their will and kept willing(義) for hoping of each helping. Do(道) could not perish and would not recover." Therefore Huayangkanghoe is 'Jonhuayangi sense defending resolution conference' and Huayangkanghoeil Seosimjegunja can be 'the declare of Jonhuayangi sense'. This lecture meeting had resonance the 「Mandongmyobimun萬東廟庭碑文」· Pilmyong「畢命」·「Baekrokdonggyu白鹿洞規」. They all had contained contents of reinforcement in Jonjudaeui sense, that is to say, Jonhuayangi sense. This conference's ultimate purpose of performance was reinforced and heighten of Cheokyangcheokwae sense.
From 1904 to 1916 when Gyeongsulgukchi undergone the yoorims who adored Uam and adhered Jonhuayangi sense, and they visited Huayanggugok in order to spread firmly Jonhuayangi sense and case of Mandongmyo sacrifice. Yet I did not find the case of special lecture of awareness and Cheouijase(處義姿勢)about the state of affairs at that time.
Park, Sehua had comparatively and realistically discribed the experienced contents as he had gone and worshiped at Huayanggugok and Uam's graveyard at Cheongcheon so we can be Known the real statement and circumstance of kindheared prevailing state of society and observed cultural heritage within 박 세화는 「Huayangkanghoe Journal 華陽講會日記」.
Late Choson the maximum national important event was the power of the state and national protect in the Japanese accelerated omen of liking disseisin to Choson. In 1904 when the tense season, Park, Sehua had enforced Huayangkanghoe in order to strengthen of Jonhuayangi sense and Cheokwae sense for Yoorims. Therefore we can be recognized the contemporary literary meaning of contents in the 「Huayangkanghoe Journal 華陽講會日記」and Park, Sehua's Jonhuayangi sense and Huayangkang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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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근대계몽기 석정 이정직의 시학과 시론 체계 - 「여리원서론시설(與李元瑞論詩說)」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승용 ( Seung Yong Lee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1-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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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석정 이정직의 시학에 대한 언급을 분석하고 그의 시론 체계로서의 평담론을 밝혔다. 석정은 詩文에 매우 능통한 근대계몽기 지식인이요 교육자이다. 그의 유고인 『연석산방시문고』에는 시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산재되어 있으며, 두 편의 「論詩文」과 한 편의 「論詩說」이 실려 있다.
석정의 시학은 시 창작에 중심을 두어 定義, 方法, 風格의 측면에서 좋은 시란 무엇인가? 왜 법고인가? 어떠한 경지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였다.
시론 체계는 2장에서 언급한 시학 이론을 바탕으로 「與李元瑞論詩說」을 이법을 통한 字從辭順의 구현, 변증을 통한 奇峭濃至의 수용, 법고의 과정을 거친 平典淡雅로 분석하여 평담론을 설명하였다.
첫째, 자종사순과 이법에서는 기초농지를 통한 기교 이전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 자종사순을 통한 條暢易讀을 학습자에게 권장한다.
둘째, 기초농지와 변증에서는 석정은 타고난 본성이 雄渾하고 超逸한 경우와 노력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평담론을 비교 설명한다. 특히 석정이 말하고 있는 평담은 新奇나 纖巧와 같은 요소를 일방적으로 배제하지 않은 '평담 너머 평담'이다.
셋째, 평전담아와 법고에서는 석정의 평담론을 평담에 이르는 과정과 지향점인 典雅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는 먼저 현시대로부터 가까운 시인을 학습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法古, 식견으로 辨證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조화의 모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변화의 묘미가 전아이다.
요약하면 석정의 시문집 『연석산방시문고』에 담긴 시학 이론들은 「논시설」을 통해 하나의 시론으로 정립된다. 그 시론 체계인 평담론은 자종사순을 기본으로 하고, 기초농지가 내포된 법고의 길을 통해 변별하고 융합하고 정련하는 일련의 절차를 거쳐, 그 묘미가 전아에 이르는 창작 방법론이다. 이러한 석정의 시론은 기본적으로 창작을 위한 學詩의 과정이며, 법고를 지향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In this thesis, we analyzed the references to Seokjeong Lee Jung-jik's poetry and expressed his discourse as a system of theory, Pyeongdam Theory(平淡論). Seokjeong is a very skilled modern Enlightenment intellectual and an educator who is very good at poetry. His posthumous work, [Yeonseoksanbang-poetry and prose], has his ideas about poetry, and contains two articles of "Discuss Poems and Sentences(論詩文)" and one of "A Poetical Argument(論詩說)."
Seokjeong's poetry was based on the creation of poems and discussed the meaning of good poetry, the reasons for learning good old writings, and what we are going to pursue in terms of definition, method, and the level that poetry pursues(風格).
In system of theory, based on the poetic theory mentioned in Chapter 2, he analyzed 'Yeoiwonseononshisul(與李元瑞論詩說)' through the implementation of the correct order of sentences(字從辭順), acceptance of brilliant expressions(奇峭濃至) through excuses, and Pyeongjeondamea(平典淡雅) which follow the dictates of the good of the past(法古) to explain the system of Pyeongdam Theory(平淡論).
First, It is recommended that learners use a sentence that is in the order of words(字從辭順) to make it easier to read(條暢易讀), as basic things that must be done before the art of fancy expression in sentences that fit the order of words(字從辭順) and reasoning.
Second, in flamboyant expressions(奇峭濃至) and excuses, Seokjeong explains in comparison with the grand(雄渾) and transcendent(超逸) innate and Pyeongdam Theory(平淡論) that achievable through effort. In particular, Pyeongdam which Seokjeong reference is a high-level of Pyeongdam that does not unilaterally exclude weird(新奇) or subtle(纖巧) elements.
Third, In Pyeongjeondamea(平典淡雅) and following the dictates of the good, Pyeongdam theory(平淡論) of Seokjeong is explained in detail with a process leading up to Pyeongdam and elegance, which is the point of the theory. This is to create a new image of harmony through the process of learning a poet who is close to the present era and making excuses through insight. And the beauty of the new change is the gracefulness(典雅).
In summary, the poetry theories contained in the Seokjeong's work [Yeonseoksanbang-poetry and prose] are established as a theory through "A Poetical Argument(論詩說)." Pyeongdam theory(平淡論), the system of theory, is a creative method that based on sentences that are in sequence in the order of words(字從辭順), followed by a series of procedures to distinguish, integrate, and refine ancient writings using colorful expressions(奇峭濃至). This theory of Seokjeong is basically a process of learning poetry to create a work, and is an effort to imitate a good old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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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역소학(飜譯小學)』과 『소학언해(小學諺解)』 현토의 변개 양상과 의미

저자 : 이규필 ( Lee Gyu-p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1-20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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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토 연구를 언어학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飜譯小學』과 『小學諺解』의 현토를 비교하였다. 그간 소학언해 관련 연구는 주로 『飜譯小學』과 『小學諺解』의 언해문 곧 '번역문의 차이'를 비교 고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현토 비교 연구이다.
현토는 그 자리나 용법이 정해진 것이 아니며,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다. 또 문장 해석을 한정시키는 것도 아니다. 관건은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현토를 다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원문 분석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이다. 적합성이 낮은 현토는 언제든 수정될 수 있으며, 우리말 어감에 따라 현토를 다는 것은 이미 조선 시대 지식인에게도 문제로 인식되었다. 원문의 문형 파악과 문장 구조 분석이 가장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간명하고도 분명히 보여줄 현토에는 일정한 규칙성이 요구된다. 때문에 현토는 매우 엄정한 문법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논자는 『번역소학』과 『소학언해』의 현토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현토가언어로서 문법 규칙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현토가 표점보다 문장의 구조나 상황 해석을 한결 합리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에 다음의 두 가설을 상정한다. 우선 현토를 면밀하게 분석하면 옛 우리말 문법 연구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기여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현토가 언어학적 연구행위의 한 결과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교정청주도 아래 현토된 문헌을 볼 때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해당 한문 원문의 문장 구조를 어떻게 분석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더욱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토 연구는 이 지점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번역학과 경학 연구의 많은 지점을 새로 열어주리라 전망한다.


This paper compares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of Beonyuksohak(飜譯小學) and Sohakyeonhae(小學諺解) according to the consciousness of the need to approach the study of the prefecture from the linguistic point of view. In the past, the study on Sohakyeonhae was mainly a comparative study on the difference in translation of Beonyuksohak and Sohakyeonhae. But equally important is the comparative study on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is not fixed. Nor does it limit the interpretation of sentences. The key is to find out what kind of place it is at any place to show a more reasonable analysis of the original sentence. It can be modified at any time, and it is recognized as a problem for the intellectuals of the Chosun Dynasty, as well. However, if the analysis of the sentence structure and the analysis of the sentence structure are most reasonably understood, it is necessary to have certain regularity in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to show it clearly, and it has a very grammatical system.
In the process of comparing the Beonyuksohak and Sohakyeonhae I found that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is looking for grammar rules as a language. Based on this, I found that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have a few points where reason is more reasonable in the structure of the sentence and the interpretation of the situation rather than the marking
The following two hypotheses are proposed. First of all, I think that there will be a considerable contribution in the study of the old Korean grammar if I analyze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thoroughly. When we consider that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is the result of linguistic research activities, we should at least examine the literary texts under the leadership of the Correctional Chamber to understand how the intellectuals of the Chosun Dynasty analyzed the sentence structures of the original Chinese texts and how they understood their meaning. There will be room for understanding. The adding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 study on this point is expected to open many points of translation research and scholarship research in the Chosu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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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연보(年譜)

저자 : 安大會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05-2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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