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 : 한국학논집(~2009)→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7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831
동아시아문화연구
76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에서는 1906년 2월부터 1908년 6월까지 실시된 성병검사에서 그 대상이었던 조선인 여성들의 사회적 속성을 명확히 밝혀 기존 연구들에서의 오류를 바로잡고, 1908년 9월 25일 「기생단속령」 발령이후 기생의 성병검사에 대한 법적규정과 실제 실시여부 사이에 괴리가 없었는지를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기생(관기)의 성병검사가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와 당시의 기생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해석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1906년 2월부터 1908년 6월까지 일제 통감부는 경성의 조선인 매음부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성병검사를 실시했는데, 기생(관기)은 이 시기의 성병검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1908년 9월 25일 「기생단속령」 발령이후 「기생조합규약표준」에 '기생들의 건강진단'이 명시되기는 하였지만 10월 6일의 「기생 및 창기단속령 시행심득」에서는 창기에게만 '건강증명서'가 요구되었고, 「기생 및 창기단속령 시행 세부지침」에서도 창기의 경우에만 '건강진단서'가 요구되었으며, 기생의 경우에는 '유예스승의 주소와 이름'이 요구되었다. 1910년 한일 병탄 이후 1916년 3월 31일 전국통일법령인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령 제3호 「예기ㆍ작부ㆍ예기치옥 영업취체규칙」에 의해 경찰서장에게 '기생에 대한 건강진단'의 요구권한이 부여되었지만, 이 법령이 시행된 지 3주가 지난 1916년 5월 21일자 _매일신보_의 내용을 확인해보면 이 당시 경향(京鄕)의 관기출신들로 구성된 '광교기생조합'과 '다동기생조합'의 기생들은 건강진단을 받지 않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신창기생조합'의 기생들 역시 완전한 기생조합(갑종 기생조합)으로 승격되어 건강진단을 받지 않게 되었으며, 이들 기생조합들이 일본식 권번시스템으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에도 줄곧 이들 기생들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진단'의 실제 실시 여부는 식민지시기가 끝날 때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 즉 1908년 9월 25일 「기생단속령」이발령된 이후부터 식민지시기 전 기간에 걸쳐서 기생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진단'은 실시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대한제국기 및 식민지시기에 전국의 모든 기생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건강진단이 실시된 적도 없으며, '기생의 건강진단'이 곧 '기생은 공창제도하의 매음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발적인 건강진단'의 기록만으로 '기생은 창기와 같이 일제의 공창제도하에 편입되어 저급화되었고 창기와 유사한 존재가 되었다'라는 식의 해석은 과도한 왜곡이다. 만약 이후로도 기생의 건강진단 기록들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기생(관기)들은 공창제도하의 창기(매음녀)들과 법적ㆍ정책적 ㆍ사회적으로 분명히 구별된 존재였다. 왜냐하면 기생(관기) 누구나가 예외없이 매음을 하거나 성병에 걸렸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한제국기 및 식민지시기에 기생(관기)들에 대한 지배권력의 성병검사 실시계획은 기생의 직업적 특성과 위생상의 안전조치였으며, 거의 실행된 적이 없는 예방적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This research intended to correct the errors of existing researches by clearly investigating the social characteristics of Joseon women, who were the target of STD testing executed between February, 1906 and June, 1908, and suggest a necessity of a new interpretation of social implication of STD testing on Gisaeng(Gwangi) and social characteristics of Gisaeng of that period by concretely investigating any gap between legal regulation and actual practice of STD testing on Gisaeng since the execution of 「Gisaeng regulation law」 on September 25, 1908. 
Between February, 1906 and June, 1908, Japanese residency-general conducted forced STD testing targeting Joseon prostitutes of Gyeongseong(Seoul). But Gisaeng (Gwangi) was not target of STD testing during that period. 
Since enactment of 「Gisaeng regulation law」 on September 25, 1908, 'checkup of Gisaeng' was specified in 「Standard of Gisaeng Association Regulation」. But 'health certificate' was requested only on prostitutes in 「Enforcement regulations of Gisaeng and prostitute regulation」 on October 6, also, 'health certificate' was requested only on prostitutes in 「Detailed enforcement regulations of Gisaeng and prostitute regulation」, in case of Gisaeng, 'address and name of artistic teachers' was requested. Also, considering that there were newspaper articles regarding checkup was conducted on Gwangi 6 months later, in March, 1909, checkup for Gisaeng was not conducted during the 6 months after enforcement of 「Gisaeng regulation law」. Furthermore, these articles were not determined with whether of execution, since they were unconfirmed report. After Korea and Japan annexation in 1910, on March 31, 1916, a right for request on checkup to Gisaeng was given to police chief by the national unified law,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Joseon Gyeongmuchonggamburyeong no.3 based on 「Rule of YegiㆍJakbuㆍYegichiok business regulation」, however, after 3 weeks since enactment of this law, according to 『Maeil Sinbo』 dated May 21, 1916, Gisaeng of 'Gwanggyo Gisaeng Association' and 'Dadong Gisaeng Association', composed of Gwangi from Gyeongseong and the provinces, did not take health examination. Also, Gisaeng of 'Sinchang Gisaeng Association' were also promoted and did not take health examination, and whether of actual execution of regular checkup on Gisaeng was not confirmed until termination of colonial period, even after change of Gisang Association to Japanese style Gwonbeon system. That is, it can be said, since enforcement of 「Gisaeng regulation law」 on September 25, 1908, regular checkup on Gisaeng was not conducted through the whole colonial period.
This way, official and periodic checkup was not conducted targeting every Gisaeng of the whole nation during Korean Empire period and colonial period, and since 'checkup of Gisaeng' did not mean 'Gisaeng was prostitute under state-regulated prostitution system', accordingly, the interpretation, 'Gisaeng became low-graded and target of control by being included in Japanese state-regulated prostitution system just like prostitutes' only based on 'temporary checkup' records, is an excessive distortion. Even if any checkup record of Gisaeng is discovered later, Gisaeng(Gwangi) was clearly differentiated legallyㆍpoliticallyㆍsocially from prostitutes(street girls) under state-regulated prostitution system. Because, not every Gisaeng(Gwangi) practiced prostitution or had venereal disease. In conclusion, checkup execution plan of The Empire of Japan onto Gisaeng(Gwangi) during Korean Empire period and colonial period was a safety measure considering the job characteristics of Gisaeng and hygiene, a preventive attempt, which was scarcely executed.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쥐좆도 모른다」 유래담을 분석심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여 작품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있다.
「쥐좆도 모른다」 유래담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쥐의 둔갑, 진가쟁주, 쥐의 퇴치 세국면으로 동일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변이 양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어 윤색되었을 가능성이다. 주변인물이라 할 수 있는 여성은 주체적으로 쥐를 양육하고 있었으며, 진가를 가리는 질문의 내용과 결미는 여성이 바라는 남편의 관점과 가짜를 알아보지 못한 여성의 대상화에 따라 유형이 나뉘고 있어 여성의 심리학적 측면의 해석이 필요하다.
쥐의 둔갑의 빌미를 주체적으로 제공하는 여성은 남성주인공의 부재(不在)한 상황에서 환상을 키워나간다. 그 환상은 정욕의 결핍에 의한 것으로, 쥐를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당대 조혼의 풍속과 사회적 관계로의 가족 이데올로기 과정, 그리고 삼종지도에 따른 지배적 규범이 설정한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인해 결핍으로 작용하였으며, 부부가 아닌 며느리 입장에서도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강박증은 여성을 환상이라는 쥐를 양육하면서 무의식에 사로잡혀 현실과 멀어지게 된다.
무의식에 사로잡힌 여성은 쥐로 둔갑한 '가짜'를 자신이 원하는 남편으로 투사하여 무의식을 체험한다. 이는 여성의 내적인격인 '아니무스'의 체험으로, 여성의 바람에 의한 투사상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무의식에 사로잡힌 여성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고통을 수반한 투사에 의한 인식이다. 육체의 욕망과 감정에 사로잡힌 여성들은 결국 '쥐좆도 모르냐'며 비난과 책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서사에서 주목되는 것은 남편과 함께 행복해지는 결말이다. 물론 여성의 적극성이 나타나지 않고 남편의 이해에 비롯되지만 이를 통해 서사는 완정한 가족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완정한 가족관계를 위해 여성의 전체성을 이루기 위한 아니무스의 발달을 강조하며, 완정한 가족 관계의 지표로서의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는 서사가 바로 「쥐좆도 모른다」 유래담이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meaning of the folk tale on a Korean saying, “You don't know even a rat's penis”, in the perspective of analytical psychology.
The folk tale with variation behind the saying, “You don't know even a rat's penis” is found nationwide, and all the variated tales are based on the same structure, consisting of three phases including the transformation of a rat, a quarrel over who is real and who is fake, and the eradication of the rat. One of the noticeable points in the variations is the addition of feminine perspectives. In such tales, a female character, the wife of the man whose appearance is stolen by the rat, voluntarily raises the rat. This female character has also variations which are divided into several types depending on what questions she asks to the two men who look the same, what she wishes for her husband, or how she is targeted due to her false selection on the fake. These features require the interpretation on the folk take in the perspective of feminine psychology.
Since the absence of her husband, the female character has raised the rat, developing her own fantasy, and the rat finally transforms into a man. The fantasy comes from the social suppression of her sexual desire, and it is represented as a rat rearing. This suppression reflects the idea of family combined with the tradition of early marriage, relevant social relationships, and predominant norms imposed on women following 'Three Obediences (三從之道).' That is, the obsession toward the patriarchal norms makes the female character seized with the unconscious fantasy, even in the position of a daughter-in-law losing her husband.
When the rat transforms into a man, this woman possessed with the unconscious fantasy projects what she has wished for her husband to this transformed rat. This is called the 'animus' experience, reflecting her inner personality. Projecting women's humble wishes toward their husbands, the variations led by a female character honestly reveals women's perspectives.
Like in the female version of the folk tale, women who are seized with their unconscious fantasy can come over the situation by perceiving what projects their practical wishes. Sometimes women obsessed with lust and emotions would be blamed with the words, “You don't know even a rat's penis” but the core of such narratives is the happy ending where the female characters get back a happy life with their husbands. While the female characters do not show active actions sufficiently, and finally follow their husbands, the female variations present meaningful implications on the perfect appearance of family relationships. Furthermore, this folk tale emphasizes the development of animus to complete women's integrity for the perfectness of family relationships.

KCI등재

3운명과의 만남 -김윤식의 임화론에 대한 몇 가지 주석-

저자 : 전철희 ( Cheol-hui Je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13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한국의 문학(연구)사에서 임화와 김윤식은 독보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본고의 목적은 김윤식의 임화론을 메타적으로 독해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김윤식의 연구방법론을 추출하고 임화에 관한 평가 하나를 복원시키는 작업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식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에서 정치와 문학의 관계를 검토했다. 이후 그는 사상사에 몰두하면서 정치적 문제와 현실적 상황이 개별 문인들의 내면에 침투하는 양상에 천착했다. 임화의 존재는 그로 하여금 방법론적 전환을 하게끔 부추긴 매개 중 하나가 되었다. 김윤식은 임화가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진정성)을 지녔다고 말하기 위해 루카치로부터 “운명” 개념을 차용했다. 김윤식은 중기나 후기의 루카치보다 초기의 루카치를 호의적으로 수용했는데, 이는 한국의 비평가-연구자로서 이색적인 이력이었다. 초기 루카치의 '운명' 개념에 천착한 드문 비평가였기에, 김윤식은 임화가 진정성을 투철히 추구한 결과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독창적인 평가를 제시할 수 있었다. 한편 김윤식은 1970년대까지 임화가 근대의 양가적 속성을 총체적으로 살피지 못했다면서 '현해탄 콤플렉스'를 비판했다. 그러나 『임화연구』에서는 비판의 강도가 현저히 약해져 있다. 그리고 이후의 저작인 『임화와 신남철』에서는 임화에 대해 더욱 우호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이런 태도 변화는 김윤식의 문학관이 달라진 경과를 집약하여 보여준다. 「임화연구」를 쓸 때까지 김윤식은 '자주적'인 문제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도적 근대성을 강조한 임화에 대해서는 이견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윤식이 임화를 우호적으로 평가하게 된 것은 '가치중립성으로서의 근대' 개념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 둘은 각자의 시대정신을 체현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우직하게 자신들이 설정한 목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후대의 문학인 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In Korea's history of literature (study), Im Hwa and Kim Yoon-sik are in a unique positio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ad Kim Yoon-Sik's evaluation of Im Hwa. This will be an pre-work for extracting the methodology of Kim Yoon-Sik. Kim Yoon-sik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literature in 「Korea Modern Literary Criticism Research」. Since then, he has devoted himself to the “history of thought” and has examined the political issues and the actual situations that individual writers belong. The presence of the im Hwa was one of the mediators that encouraged him to make a methodological shift. Kim Yoon-sik borrowed the concept of “destiny” from Lukacs to say that Im Hwa had an effort to overcome reality. Kim Yoon-sik accepted favorably of Lukacs earlier than Lukacs in the middle or late period. Because he was a rare critic who accepted early Lukacs's “destiny” concept, he was able to present a unique assessment that Im-Hwa was tragically dead after pursuing authenticity. On the other hand, Kim Yoon-sik criticized 'Hyun-Hae-Tan complex' by saying that Im-Hwa had not been able to look at the dual nature of modernity until 1970's. However, the intensity of criticism has been remarkably weakened in the “study of Im-hwa”. And in Kim's later works, “Im hwa and Shin Nam-cheol” presented a more friendly attitude to Im Hwa. This change in attitude shows the change of the literary scene of Kim Yoon-sik. Kim Yoon-sik maintained the self-consciousness of the problem until he wrote the “study on Im-hwa”. Therefore, it was necessary to express the disagreement about the 'study of Im-Hwa' which emphasized institutional modernity. It was the result of accepting the concept of 'modernity as a value neutrality'. These two are worthy of note to future generations of writers because they pursued the purpose set by them so that they finally seemed to embody the spirit of their age.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의 목적은 박태원의 역사서사 『약산과 의열단』에 나타난 아나키즘의 사상성 및 탈식민적 국제 연대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어 타 역사 서사들과의 비교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해방기 민족국가 건설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문화적 발화들을 다각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해방기는 “민족사 텍스트로서 역사서사”가 부상한 시기였으며, 건국사업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 하에 역사서사들이 “민족주의와 같은 촉매에 반응”함으로써 단일화ㆍ위계화ㆍ심미화된 민족/국가의 형상을 주로 그려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민족주의만으로는 해석해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역사쓰기의 관점들이 해방 공간에서 각기 다른 동력들에 의해 촉발되고 있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계열의 역사쓰기 이외에, 제 3의 진영인 아나키즘적 사상에 입각한 『약산과 의열단』이 어떠한 '건설'의 형태를 제안하고자 했던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이 견지해 왔던 '개인의 자유 의지에 입각한 연합'이나 '권력에의 귀속 거부'라는 취지에 입각하여, 『약산과 의열단』은 위계적인 민족국가 건설의 명분을 모색하고자 했던 단일 영웅 중심의 타 역사서사들과는 달리 특정 위인이 아닌 개체 전체의 힘을 강조하며, 비영웅-민중이 각성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수평적인 '집합'의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러한 '집합'의 형태는 민족-국가라는 단일 정치권력으로부터 멀어져 아시아-세계를 둘러싼 초국경적 연대로 확장되는 바, 위와 같은 아나키스트들의 범세계적 연대의 상상을 조명하는 것은 해방기 조선인들이 선보였던 “탈식민의 시대정신(Zeitgeist)”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한편, 해방기 역사서사가 담지하는 지역/세계와의 연관성을 보다 심층적으로 고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ocus on the orbit of anarchism thoughts and postcolonial international solidarities found in Park Tae-won's historical narrative 『Yaksan and the Heroic Corps』 to make a comparative analysis with other historical narratives in order to visualize cultural articulations that unfolded surrounding the construction of a nation-state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from various aspects. The liberation period was a time when 'historical narratives as national history texts' rose and under the mission that they must contribute to the founding of the nation, it was a period where historical narrators 'responded to catalysts such as nationalism' to draw the image of a unified, hierarchical and aestheticized nation / state. However, it is important to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various perspectives on writing history that cannot be interpreted only by nationalism were triggered by different driving forces during the space of liberation. In addition to history writing from the aspects of socialism or nationalism, this study examined what type of 'construction' the 『Yaksan and the Heroic Corps』 based on an anarchist belief, which was a third camp, was being proposed. Based on the purpose of 'alliance based on individual free will' or 'denying reversion to power', which were the opinions of Choseon anarchists, 『Yaksan and the Heroic Corps』 emphasized the power of the group instead of a single historical figure like other historical narratives that focused on a single hero to search for the justification of constructing a hierarchical nation-state. It should be given attention that it attempted to construct a horizontal 'group' focusing on the moment when non-heroic public masses are awakened. This type of 'group' fell away from the single political authority called nation-state and expanded to a trans-border solidarity surrounding Asia and the world. Therefore, focusing on the thoughts of the pan-global solidarity of such anarchists is significant in that it measures the 'Zeitgeist of post-colonialization' that the people of Choseon displayed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while also making an in-depth investigation on the correlation of liberation period historical narratives with the region and world.

KCI등재

5김수영의 시 「미농인찰지」에 나타난 주체 의식

저자 : 이은실 ( Lee Eun Sil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64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미농인찰지」가 김수영의 부정 정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는 전제하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황현산이 김수영 시의 특별함이라고 말한 “현실에서 시를 추출하고, 현실로 시를 끌어올리는 이 능력”과 관련하여 시「미농인찰지」를 문제적 텍스트를 정립하고자 했다. 나아가 시「미농인찰지」를 자세히 읽기 위해 산문「민락기」를 교차적으로 살펴보았다. 시와 산문은 공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종의 의미적 균열을 내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바로 시에 나타나 있는 주체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장에서 김수영 시의 현재적 독법 요청을 위한 제언을 서술하였다. 2장에서는 편지의 수신인과 '미농인찰지'라는 기표에 대해 살펴보았다. 편지 쓰기 행위와 관련하여 매부라는 대타자에게 시적 주체 의식의 공백을 가리고자 하는 베일로 기능하고 있는 '미농인찰지'의 실패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편지 쓰기 행위와 매부 그리고 미농인찰지가 갖는 가상적 지위를 살펴본다. 또한 대립물처럼 보이는 '밀용인찰지'가 주체의 생활이며 동일성을 갖게 되는 지점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편지 쓰기의 중단과 시적 개진의 교차 지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적 주체가 편지 쓰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심층의 원인이 '꽉 막히는 이것'의 기원 즉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면하게 되는 '노동의 참경' 및 식모가 갖는 타자성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시적 주체의 의식을 분석한다. 끝으로 4장에서는 시적 주체가 타자 즉 '식모'를 부르는 행위와 관련하여, 그 무엇도 미안하지 않지만 식모를 부르는 단호한 목소리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언급하는 시적 주체를 통해 역설적 반성의 지점을 살펴보았다. 편지는 완성 중이며 끊임없이 마침표가 지연되는 상황을 통해 이는 부정정신과 관련지을 수 있으며, 결국 편지의 진정한 수신인이 시적 주체 자신이라는 것을 밝혔다.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establish the poem 「Lined Rice Paper (Minonginchalji)」 as a problematic texts related to “This ability to extract the poem from the reality and to sublimate the poem to the reality”, the uniqueness of Kim Soo-Young's poem according to Hwang Hyun-San, under the premise that 「Lined Rice Paper (Minonginchalji) 」 is very important text related to the negative spirit of Kim Soo-Young. And further, to read 「Line Rice Paper (Minonginchalji)」 carefully, the prose 「Minrakgi」 was examined as a cross-reference The poem and the prose were written based on common experience but they include the semantic cracks, because here, the important point is the sense of sovereignty appeared in the poem. To do that, in Chapter 1, the proposal for the modern reading of poem by Kim Soo-Young. In Chapter 2, the recipient and 「Lined Rice Paper (Minonginchalji)」, which are the signifier, were examined. And the failure of 「Lined Rice-Paper (Minonginchalji)」, which serves as veil to conceal the blank of poetic sense of sovereignty from the other, the brother-in-law, related to the act of writing letter, through which the hypothetical status of the act of writing letter, the brother-in-law and 「Minonginchalji」was examined. In addition, the point where 「Milyonginchalji」, which seems to be opposite, becomes the life of subject and has homogeneity, and the process of recognizing that point were examined. In Chapter3, the point where that writing the letter is stopped and that the poetic expression starts are crossed was examined. The origin of 'this that the deep cause that the poetic subject cannot but stop writing the letter is blocked, that is, the terrible sight of labor' and the otherness of housekeeper were examined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poetic subject for that was analyzed. Finally, in Chapter 4, regarding the act of poetic subject's calling the other, that is, 'housekeeper', the point of paradoxical reflection was examined through the poetic subject who mentioned sorry about the forceful tone of calling the housekeeper although he does not feel sorry about anything. The situation that the letter is being completed and the period is being delayed endlessly can be related to the negative spirit, and after all, this article showed that the true recipient of the letter is the poetic subject itself.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에서는 베트남 무가를 통해 '상천성모(上天聖母, Thuong Thien Thanh Mau)'가 '유행공주(柳杏公主, Lieu Hanh Cong Chua)'와 동일한 신격으로 합일되는 양상을 살피고, 이를 통해 사회적 맥락의 변화에 따라 베트남인이 성모 신앙을 견고화하는 방식을 확인하였다. 애초 상천성모는 삼부의 다른 영역을 관장하는 임궁성모(林宮聖母, Lam Cung Thanh Mau)ㆍ수궁성모(水宮聖母, Thuy Cung Thanh Mau)와 달리 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내력담이 부재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인신(人神)으로서 풍부한 내력담을 지닌 쩐 흥 다오(Tran Hung Đao, 陳興道) 장군이 아버지신으로서의 지위를 점하였으므로, 상천성모는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임궁성모와 수궁성모의 내력을 뛰어넘으면서도 인신의 내력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서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에 상천성모는 도안 티 디엠(Đoan Thi Điem, 段氏點)의 <운갈신녀전(雲葛神女傳)>에 형상화된 '유행공주'의 다종다양한 내력담을 적극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천상과 인간을 넘나들며 딸에서 아내ㆍ어머니로, 나아가 신에 자리에 까지 오르는 유행공주는 상천성모로 그 자체로 전화하여 신격을 공고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In this paper, we looked at the aspect of the greatest mother god and princess Lieu Hanh being united by the same god through Vietnamese shaman song. It also confirmed the way in which the Vietnamese reinforce the deity of the greatest mother god in accordance with the changes in the social context. Originally, the greatest mother god had lacked a history to justify her status. Mother God had to surpass the other two goddesses and had to respond to the Father God. So she was equipped with a rich narrative that complemented her fortress. At this time, the chosen narrative was the story of princess Lieu Hanh. Mother God was able to consolidate her divinity by accepting the story of the princess Lieu Hanh as her own story.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문화대혁명 초기 진행된 湖南의 조반 운동, 특히 호남의 조반 조직인 '省無聯'이 진행한 조반 운동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호남의 지역적 정치 상황과 '성무련'의 성립 배경, 그리고 참여 세력의 동기를 규명하여, 1967년 중순 당 중앙의 질서 회복 정책에도 불구하고 '성무련'이 체제 이반적인 조반 운동을 지속하게 된 현실적 원인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대혁명의 질서 회복 국면에서 성립한 '성무련'에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집단들이 참여하였다. 이들 참여 세력은 참여 동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학생조직들의 경우 '계속혁명'을 주장하며 모택동이 애초에 제시하였던 급진적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성무련'에 가담하였다. 둘째, 문화대혁명에서 배제된 조반파들은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조반'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던 '經濟主義', '右派' 집단들은 아직 개선하지 못한 자신의 경제적 빈곤, 낙인의 제거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이처럼 상이한 입장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성무련'이었다. '성무련'이 당시 주변부적 위치에서 질서 회복 정책을 거부하며 '성혁주'와 대립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참여 집단들에게 장래의 상황 개선 기회를 보장해주고 그 기간 역시 연장시켜줄 수 있다고 기대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성무련' 참여 동기에 대한 분석은 다양한 집단들이 어떻게 '성혁주'의 질서 회복 정책에 대한 거부라는 지점에서 수렴되어 '성무련'의 체제 이반적인 조반 운동에 참여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당 중앙의 지지 아래 시작된 초기의 조반 운동이 체제 이반적 성격으로 변화하는 데에는 이념적 요인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치 역학과 사회경제적 상황 등 현실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aimed to illustrate the rebel movement in Hunan province in the early phase of the Cultural Revolution(1966~1968), with the emphasis of Shengwulian 省無聯, a local rebel organization formed in Hunan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As the first empirical study on Shengwulian, this study analyzed how Shengwulian was initially formed and organized. In addition, it focused on each participant joined in Shengwulian, making sense of the strong motivation that drove the Shengwulian's rebel movement onward even under the campaign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CCP) to restore order against the rebels since the mid-1967.
The participants who joined in Shengwulian had the antagonism against the party and Shenggechou 省革籌. On the basis of their anti-establishment antagonism, the participants of Shengwulian shared three motivations. First, some of them, especially students, insisted the Mao's theory of Continuous Revolution, participating in Shengwulian to pursue the ideal of the Cultural Revolution. Second, the rebels excluded from the Cultural Revolution by Shenggechou hoped to defend themselves and retrieve their influence in the Cultural Revolution. Lastly, the “rightests 右派” and “economistic 經濟主義” groups of the lowest class of Hunan society, which did not have the right to rebel, joined in Shengwulian to elevate their socio-economic status out of stigma and poverty. Shengwulian was able to bring people of diverse backgrounds together into one. It is because the participants could be against Shenggechou that threaten them at that time and shared a sense of hope to resolve each their own difficulty by taking part in the Shengwulian.
This study on motivations of participants shows that why various social groups was against Shenggechou's policy that sought for the restoration of the social order and participated in the rebel movement of Shengwulian. In this respect, this study validated that the power dynamics and socio-economic condition in local level as well as ideological factor played a major role in making the rebel movement started by the support of CCP turn rebellious and against the party's direction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77
 74
 49
 46
 42
  • 1 서울대학교 (77건)
  • 2 연세대학교 (74건)
  • 3 한양대학교 (49건)
  • 4 경희대학교 (46건)
  • 5 한국학중앙연구원 (42건)
  • 6 성균관대학교 (41건)
  • 7 조선대학교 (41건)
  • 8 고려대학교 (41건)
  • 9 동국대학교 (39건)
  • 10 한국외국어대학교 (32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