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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 : 한국학논집(~2009)→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71권0호(2017) |수록논문 수 : 799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0호(2017년)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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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남북 국어 교과 전문용어의 조어 분석 - 문학 용어를 중심으로 -

저자 : 전은진 ( Jeon Eun-jin ) , 신중진 ( Shin Jung-j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3-3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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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남북 국어 교과 전문용어를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남북 교과의 전문용어를 분석하여 조어 특징을 밝히는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남북 용어의 통합안을 마련하여 용어를 표준화하고 남북 통합 교육과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최종 목표를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국어 교과의 문학 용어를 중심으로 조어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남북 전문용어의 조어 분석은 용어의 형성 방식과 유형을 제공하므로 남북 전문용어의 통합에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문학 분야의 남북 전문용어는 일반적으로 1~2개의 조어 단위가 결합하여 용어를 형성하였고, 1개 조어 단위와 2개 조어 단위로 구성된 전문용어가 전체 분포의 88.7%를 차지하였다. AA(Aa)형은 1개 조어 단위로 구성된 용어가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고, AB형은 2개조어 단위로 구성된 용어가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냈다. 또한 1~2음절로 구성된 조어 단위가 다른 조어 단위와 결합하여 새로운 전문용어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남측과 북측 모두 한자어의 사용이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외래어와 고유어 사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는데, 남측은 북측보다 외래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북측은 남측보다 고유어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terminology of North Korea and South Korea. Based on this analysis, we would like to expand this knowledge into integrating the terminology of North Korea and the terminology of South Korea. Prior to the full-scale discussion, the criteria for Word-formation of terminology was prepared. To collect the terms of Literatures, Texts and textbooks of South Korea and North Korea were analyzed. We recruited 726 terms of Literatures. Then we analyzed the terminology data. In the field of Literatures, there are 496 identical terms (AA) between the North and South Korea terminologies, 65 terms of almost identical form with orthographic differences (Aa) and 165 different terms (AB). Terminology of North and South Korea used many Chinese characters. Each specialized field has a core analysis unit in the formation of advanced terminology. This analysis unit plays a central role in the formation of terminology and shows high productivity. When integrating terminology i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this feature should be considered as a pri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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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최적성이론에 의한 국어 움라우트 현상 분석

저자 : 조성문 ( Cho Sung-mo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3-5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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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어 움라우트 현상의 변화를 정밀하게 고찰하고, 그 결과를 최적성이론(Optimality Theory)의 제약 등급의 변화로 설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대에 들어 활발히 전개된 움라우트 현상은 그 기제에 대해 엇갈린 논의들이 있지만, 그것은 시대와 방언에 따른 범위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국어 움라우트가 동화 현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이제 중부방언 및 국어어문규정에서도 그 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부방언에서도 움라우트 현상의 예들이 조건에 상관없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어어문규정에서 다루고 있는 움라우트는 이 현상이 동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의미적 기준에 의해서 구분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동화 현상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서 굳어져 있는데 일부 단어만 동화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되어 있다.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쟁이'가 붙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규정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움라우트는 'ㅣ' 모음 역행 동화 현상, 즉 말 그대로 발음에 관한 동화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의미적인 기준으로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개재자음 제약이 지닌 성격을 밝혀 움라우트 현상의 적용 조건을 보다 명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종합하여 최적성이론의 제약과 등급의 변화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일반 언어학적 보편성과 개별 언어학적 특수성을 모두 설명하였다. 특히 충실성 제약인 Ident-IO(F)와 유표성 제약인 IC-vowel[back], *UMLAUT-coronal의 상호 작용에 의해 중부방언과 남부방언의 움라우트변화 양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이 제약들의 등급이 변화해서 마지막 단계로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도 함께 제시하였다.


This study analyzes the change of the 'umlaut' phenomenon in Korean within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Optimality Theory. Especially, it examined the exceptions of the 'Intervenient Consonant Constraint' of the umlaut rule focusing on the Central dialect. It clarifi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tervenient consonants of umlaut and determined the application level. Besides, it discussed various conditioning factors of the umlaut rule. The main points of this study are as below. Firstly, umlaut can occur without an intervenient consonant in the Central dialect. Secondly, umlaut can occur even if the central consonants intervene between an assimilated vowel and its assimilator in the Central dialect. This is because examples of umlaut phenomena in central dialects are found regardless of conditions. The umlaut, which is covered in the Korean language and grammar rules, distinguishes this by semantic criteria even though it is an assimilation phenomenon. Already a fairy tale phenomenon has become common and hardened, but some words only assimilate assimilation and the rest are not accepted in principle. Therefore, this regulation seems to have a more serious problem. Because Umlaut is a fairy tale about pronunciation, but an exception is made as a semantic criterion. Therefore, these regulations should be amended. Thirdly, considering the examples, it is supposed that the umlaut rule applies in every Korean dialect. Thus, it can be argued that there is a marked constraint, which governs the umlaut. The 'Intervenient Consonant Constraint' is 'Identical cluster-vowel[back]'. It is not an 'inviolable constraint' but a 'violable constraint' which merely reflects a 'tendency'. Finally, a set of constraints which are involved in umlaut are 'Identical cluster-vowel[back], *Umlaut-coronal, Ident-IO(F)'. The variation in the application of the umlaut results from the interaction among the constr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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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전기 유구국(琉球國) 농업의 이해

저자 : 이병희 ( Lee Byunghe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57-9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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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접촉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琉球國에 대한 많은 정보가 축적되었다. 그 정보는 사신·표류민·피로인 등을 통해서 확보한 것이다. 유구국 농업에 대해서도 다양한 내용을 파악하였다. 정보의 취득과 수합에서 정부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유구국의 농업에 관해 기후조건, 농작물의 종류, 벼 농사 방법, 밭작물, 섬유작물, 채소, 유실수, 가축, 농기구 등 다양한 내용을 파악하였다. 그 가운데 조선인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벼 농사와 섬유 작물, 채소, 유실수, 가축 등이었다. 조선초에 편찬된 『농사직설』에서도 벼 농사와 섬유 작물을 기술하고 있지만 유구국의 그것은 이질적이었으므로 풍부한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채소와 유실수, 가축은 『農事直說』에서는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조선인이 깊은 관심을 갖는 사항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유구국의 밭 곡식 재배는 조선의 수준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거의 주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농기구의 경우 유구국의 그것은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고 수준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구국의 농업 수준이 조선보다 높았다고 할 수 없다. 기후 조건상 수용할 수 없었지만 벼의 이모작은 매우 선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채소, 더운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유실수 역시 조선인의 관심을 끄는 농작물이었다. 조선전기 유구국 농업 정보의 수집과 정리는 외국 문물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In the early Joseon dynasty, Joseon people had gathered a lot of informations on Ryukyu Kingdom(琉球國) with the vigorous interchanges with Ryukyu people. Joseon people had also figured out the details about Ryukyu Kingdom's agriculture, and Joseon's government was very active in collecting information related to the agriculture. Such a variety of information as climatic condition, the kind of crops, rice farming methods, upland crops, fiber crops, vegetables, fruit trees, domestic animals, farming tools, etc. for Ryukyu Kingdom's agriculture had been gathered by Joseon. In particular, Joseon people paid attention to Ryukyu Kingdom's rice farming, fiber crops, vegetables, fruit trees, and domestic animals. Rice farming and fiber crops had been already described from 『Nongsajikseol(農事直說)』 compil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much more agricultural information might be gathered because Ryukyu Kingdom's agriculture was different. Vegetables, fruit trees, and domestic animals were not described from 『Nongsajikseol』, but it seemed as Joseon people collected a rich information related to them because they had a great interest in them. Joseon people seemed to be not interested in the upland crops farming of Ryukyu Kingdom because Joseon's farming techniques were higher than Ryukyu's. As a whole, Ryukyu Kingdom was not higher than Joseon in agricultural technology. It seemed that Joseon people were very envious of double crop for rice, although they could not apply it because of climatic condition. Furthermore, Joseon people had an interest in various vegetables and fruit trees getting a fruitful outcome in hot climates. Collecting and managing of information for Ryukyu Kingdom's agricultur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howed that Joseon people were open to foreig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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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저자로 나온 궁중(宮中) - 한국 요정(料亭)의 표상 명월관(明月館) -

저자 : 전우용 ( Chun Woo-y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93-12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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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9월에 문을 연 명월관은 조선 궁중 요리와 연희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요리옥의 원조이자 조선의 맛과 풍류를 계승하고 보존한 '조선다움'의 표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명월관이 내세운 것도, 당대인들이 인정한 것도, '조선다움'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답지 않음'이었다. 명월관이 내세운 것은 최신의 설비와 음식의 개량, 청결과 위생으로써 기왕의 '조선다움'을 破天荒的으로 개혁했다는 점이었다. 명월관은 '신문물'이었고, 명월관 안에서 펼쳐진 연회와 공연은 '신문화'였다. 돈만 있으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궁중에서 공연하던 기생들의 시중을 받으며 고급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당대 한국인들에게는 '破天荒的'인 일이었다. 명월관이 조선다움의 表象 중 하나, 혹은 대표적 표상으로 부각된 것은 대략 1920년대부터였다. 그런데 이 '조선다움'은 料理보다는 총독부 권력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조선의 이미지와 等値했던 妓生과 관련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명월관 요리가 '조선 전통 궁중 요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대중도 그를 굳이 알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기생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음식은 조선식과 일본식을 섞을 수 있었으나, 기생의 몸을 藝者의 몸과 섞을 수는 없었다. 명월관의 '조선다움'은 기생의 연주, 노래, 춤, 웃음과 결부되어 공고한 지위를 획득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기생도 '기생다움' 즉 '조선다움'에서 이탈하여 퇴폐의 상징으로 변해 갔다. 개점부터 폐점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명월관이 기호로서 표상하는 것들은 '신식과 개량'에서 '조선다움'으로, 다시 '퇴폐와 향락'으로 이동했다. 조선에 있던 것들을 '개량'하여 조선에 일찍이 없던 것들을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조선다움의 정수'로 인식되었고, 이 새로운 '조선다움'은 이윽고 '퇴폐 향락'과 결합되었다. 이 점에서 명월관은 한국 근대 유흥의 탄생공간일 뿐 아니라, 자체로 한국 근대가 관통한 장소였다.


Myungwolgwan, formulated in 1903, has been known as the originator of the high-class Korean-style restaurant and the presentation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Korean people believe that this has inherited the tradition of royal cuisine and performances in Joseon Dynasty, and preserve the taste and arts of Joseon. However, Myungwolgwan did not claim to inherit the tradition, and the people of that period did not praise it because of preserving the tradition of Joseon Dynasty. Myungwolgwan boasted that it had reformed the tradition of Joseon by improving its cuisine with up-to-date facilities and improving food. Myungwolgwan was a new facility, and the performance and reception offered by it was a new culture. For Koreans in that period, it was very surprising that anyone who has money were able to enjoy and eat high-quality dishes, regardless of status. Since the 1920s, Myungwolgwan has emerged as a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al culture of Joseon. But the traditional culture it represented was not food. It was related to the image of Gisaeng, and Japanese government general entitled them to represent Joseon culture. In th colonial era, It didn't matter that Myungwolgwan's food was the royal cuisine of the Joseon Dynasty and people was not interested in it. But no one could deny that the Gisaeng was Koreans. Korean food and Japanese food could be mixed, but Korean Gisaeng and Japanese Geysha could not be mixed. The image that Myungwolgwan represents Korean traditional culture was hardend with the combination of Gisaeng's singing, dancing, and laughing. However in the colonial era, Korean Gisaeng lose her own characteristic and became a symbol of decadence, From open to close, Myungwolgwan was recognized as the representative of modern civilization, Joseon traditional culture, and decadence sequentially. Even though Myungwolgwan improved things in Korea and created things that were not in Korea, their creation was recognized as the best Korean culture elements. These elements were combined with decadence soon. Therefore Myungwolgwan is not only the birthplace of Korean modern entertainment, but also the place of representation of Korean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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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압축된 시간'과 '열광' - 3 · 1운동 연구를 위한 시론 -

저자 : 윤해동 ( Yun Hae-d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25-14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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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 끝나는 1918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헤게모니 시간으로 부상하는 미국의 제국시간과 일본의 제국시간은 갈등하고 있었다. 미국의 제국시간이 민족자결주의로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 이 두 제국시간은 더욱 첨예하게 부딪칠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 조선 내에서 일본의 제국시간은 양화된 시공간 관념을 통하여 조선의 중하층 시간과 부합하거나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었다. 조선의 중층시간은 민족과 근대성 사이를 동요하며 동시대성 혹은 세계사적 동시성으로의 비약을 꿈꾸고 있었다. 조선의 하층시간은 제국주의 지배를 통해 급속한 사회적 분화를 경험하였으며, 양화된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조선의 중하층 시간은 이처럼 동요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급속하게 '압축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조선인 중하층 시간이 '자결'과 '개조'라는 세계사적 동시성과 만나게 될 때 그것은 쉽사리 '열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다. '불꽃'과 같았던 3·1운동의 열광은 '압축된 시간'의 폭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열광'은 시간이 압축된 방식과 강도에 따라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는 공간에 따라 각기 그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서 설정한 세 가지의 제국시간과 조선에서의 3층의 중층적 시간 사이에는 각기 다른 무수한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무수한 시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교차하거나 결합되어 있었으며, 독자적인 방식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따라서 '열광'의 방식과 내용도 모두 달랐다. 3·1운동의 열광 속에 다양한 차원의 모호함이 담겨 있다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3·1운동에는 '위대한 정신의 비약'이 담겨 있었음에 틀림없다.


Since the middle of 1918 when the First World War ended, the imperial time of the US and that of Japan, both on their way to becoming the new hegemonic time, we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With the national self-determinism being upheld, colonial Korea was apt to see an aggravation of that conflict. Meanwhile, through westernized notions of time and space, the imperial time of Japan was both reconciling and colliding with the middle and lower class times of colonial Korea. The middle class time of colonial Korea was oscillating between nation and modernity, all the while preparing itself for a leap to contemporaneity, or contemporaneity of world history. Having gone through a rapid social differentiation under imperial rule, the lower class time of colonial Korea was aspiring to break away from the pressures of westernized time. Amidst such agitation, the middle and lower class times of colonial Korea were quickly turning into 'condensed time.' When the middle and lower class times of colonial Korea would come face to face with the contemporaneity of world history in the forms of 'self-determination' and 'reform,' 'mass enthusiasm' would ensue. The mass enthusiasm of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which spread like a fire, was a consequence of the explosion of 'condensed time.' However, this 'mass enthusiasm' took on different appearances depending on the ways in which time was condensed, the intensity of the condensation, and where the explosion of the condensed time occurred. Countless different types of time exist across the three imperial times and the three-tiered times of colonial Korea described in this article. Those countless times have intersected or combined with each other in various ways, and been condensed in just as many ways. As a result, the manifestations of 'mass enthusiasm' have been different as well. Isn't this what we mean when we say that there are numerous dimensions of ambiguity in the mass enthusiasm of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Nevertheless, there is no denying that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came out of a 'great leap of th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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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안부'는 어떻게 잊혀 졌나? 1990년대 이전 대중영화 속 '위안부' 재현

저자 : 김청강 ( Kim Chung-ka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49-19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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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김학순의 (최초)증언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위안부'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unresolved history)'의 하나로,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기억 투쟁의 장이다.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이 암울하고도 놀라운 '감추어진 역사'의 발견은 일본의 식민주의, 전쟁과 폭력, 남성주의와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하위주체(subaltern)에 관한 많은 사회적 관심과 각성 그리고 새로운 연구와 교육의 촉발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 군대에서 벌어졌던 처참한 기억들은 재소환되었고 이 문제는 '인권' 유린의 관점에서 전세계적 이슈로 확산되었다. 이는 즉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는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시각적 재현을 통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하위주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야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일반적 인식과는 다르게, '위안부'에 관한 재현은 1990년대 이전에도 '대중물 (대중소설과 대중영화)'을 중심으로 상당수 존재해왔다. 이 논문은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대중물이 위안부를 재현하는 방식을 살펴보며, 대중문화 속 '위안부'의 재현이 '위안부'를 바라보는 가학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만들어내었음을 주장한다. 영화 속 '위안부' 아이콘이 남성의 소비물로 유통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수치스러운 '망각'의 대상이라는 대중적 사회 인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은 1965년작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같은 해 일본 감독 스즈키 세이준에 의해 만들어진 <작부이야기>, 1975년 작 <여자정신대>, 1985년작 <여자정신대> 그리고 1991년작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이다. 이 영화들은 동아시아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위안부'라는 하위주체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재현되어 왔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들은 서로 상당한 참조성(referenciality)과 간텍스성(intertextuality)을 가지고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식민자였던 일본 남성이 조선인 '위안부'를 대하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피식민자였던 한국 남성에게 공유되고 있었음도 확인이 된다. '위안부' 여성에 대한 '순수한 피해자 (pure victim)' 혹은 '타락한 여성(fallen woman)의 이분법적 태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켜온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순수한 피해자'든 '타락한 여성'이든 관계없이 여성의 신체나 성폭력의 장면은 남성 관객의 시각적 쾌락(visual pleasure)을 위한 스펙타클로 재현된다. 이러한 방식의 '재현'은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라기보다 여성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잊기'을 것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전의 '위안부' 재현을 추적하는 것은, '위안부'가 '잊혀지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하지만 이 연구의 목표는 1990년대 이전의 대중 영화가 '위안부'를 기억하는 방식이 동아시아 남성주의의 폭력성과 민족주의의 공모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밝히는 것이지,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냄으로써 식민주의의 폭력을 축소하거나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남성 폭력적 재현을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의 한-일 남성간의 성적 공모를 밝히는 것은, 한국 남성중심주의의 후기-식민주의적 발현을 드러내는 것이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위안부'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판타지나 가학성의 근원을 들춰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남성중심의 폭력적 문화가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한'위안부'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해결되지 않는 역사'로 끊임없이 재소환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In the 1990s, beginning from the first testimony of Kim Hak-soon who was mobilized as a sex slave for the Japanese imperial army during the Asia-Pacific War, the issue of 'comfort women' have become the most 'unresolved' history between Korea and Japan. While the previously unrecorded testimonials of former comfort women have enlivened the academic discourses of Japanese colonialism, war crime, feminism and subaltern studies, bringing them into conversation, they also ignited the controversies over the politics of 'history and memory.' On the one hand, some (often) Japanese historians emphasize the 'fact' in historical writing that heavily relying on conventional historical sources, which minimiz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memories' of comfort women. On the other hand, other (mostly feminist) scholars take more careful approaches arguing that history is always 'situational,' and testimonial process itself reveals not just 'fact' of the past but signifies the history of 'the present.' While still precarious how to integrate memory into history, many realize that the conventional historical sources have restricted the historical writing within the realm of 'official' history, and 'private memory' could challenge official history, and make the history retold. In the course of historical 'retelling,' the most notable was the rise of small budge independent filmmakings. Starting with serial documentary of Nazun moksori 1, 2, 3 (The Murmur, 1995, 1997, 1999) by Pyon Yong-ju, these films functioned to deliver the 'reality' or the 'fact' of the comfort women issues by authenticating and visually documenting the 'memory' of comfort women. The visual representations of these independent documentary films provided the present images of comfort women provocatively revealing the traumatic histories embedded in these women's bodies. 'Minor' filmmaking, in this sense, was a significant medium bringing private memory into history, and relocate 'marginal voice' into a central political realm. However, it is should be also noted that there had been popular and dominant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suggesting strikingly different images before this film movement. Mostly produced before 1990s, some popular historical films (saguk) surprisingly present graphical gaze of comfort women's bodies and sexual violence, and erase the voices of comfort women in the movie, which displays the reasons for the silence of comfort women issue prior to 1990s. This paper, thus, explores the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n South Korean popular cinema produced from the 1960s to the early 1990s.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re are few public records of the comfort women remaining before 1990s, popular films'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n pre-1990s period are small outlets revealing the historical perceptions of comfort women, and explain the ways in which the history of comfort women had been silenced until 1990s. This paper particularly focuses on three films that mainly deal with comfort women issue: Sarubin kang e noul i chin-da (Sunset in the River Sarubin, 1965), Yoja chongsindae 1, 2(The Comfort Women, 1974, 1985) and Emi irum un chosenppi yotta (Your Ma's Name Was Choson Whore, 1991). The aim of this paper, however, is not on discovering historical 'fact' of the comfort women in pre-1990s period, but on critically examining how 'major' films marginalized the comfort women's image in given historical time and contributed to create a collective memory of 'comfort women' as a national shame in male-dominant South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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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리메이크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나타난 소년법 인식의 비교 고찰

저자 : 남상현 ( Nam Sang-hy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95-21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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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가 발생함에 따라 소년법에 관한 담론은 함께 진행된다. 그리고 소년범죄사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논의의 차이는 소년범죄와 소년법에 대한 문제의식의 차이를 형성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차이에 입각하여 한국과 일본의 영화에서 대중이 소년법에 관하여 어떠한 인식의 차이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에 더욱 주목하고자 하였는지를 비교 고찰하고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2004년 출판된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방황하는 칼날(さまよう刃)』를 원작으로 살펴본 후, 리메이크된 한국(2014)과 일본(2009)의 영화를 분석하였다. 먼저, 일본의 영화에서는 소년법이 소년범을 처벌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피해자 가족의 박탈감과 울분에 주목하였다. 등장인물들은 소년법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이면서도 심층적인 고민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대중에게 소년법에 대하여 재고찰의 기회를 주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달성하였다. 한편, 한국의 영화는 소년법의 내용은 축소되고 인물의 심리를 극대화 한다. 한국의 영화속 아버지는 소년법에 무지한 인물로 변형되며,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한 울분을 표출하기 위하여 복수를 다짐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를 대표하는 대중, 일반인에게서는 소년법에 대한 인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경찰만이 소년법에 문제의식을 가질 뿐이었다. 두 영화 속 등장하는 소년법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비교해 본 결과 일본의 영화는 대중이 소년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전개되며 동시에 소년법에 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경향이 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소년법보다는 소년범죄와 그에 따른 피해자의 감정에 주목하였다. 그럼에도 사법기관에 대한 믿음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존재한다는 모습을 보이며 향후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게 하였다. 이상 본고에서는 한일 양국의 영화를 비교 분석하여 소년법의 인식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영화와 소설이 가지는 사회성까지 고찰할 수 있었다는 데 그 의의를 둔다.


As the juvenile crime occurs, the discourse on the Juvenile Law goes hand in hand. The different discourse between Korea and Japan on the juvenile crime case forms the different awareness between juvenile crime and juvenile law. Based on these differences, In this paper, I compared Korean and Japanese film about the differences in the public perception on the juvenile law and the points which they wanted to focus more on. Through this comparative study,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the difference of perception between juvenile crime and juvenile law in Korea and Japan. Hence, I analyzed the remake films of Korea (2014) and Japan (2009), after analyzing Higashino Keigo's novel Samayou Yaiba published in 2004. First, in the Japanese movie, it focused on the deprivation of the victim 's family and the anger because of the limitation of the juvenile law, which fails to punish the juvenile offenders. The characters were more objective and deeply concerned about the juvenile law. Through this, the movie has achieved the role of giving the public an opportunity to think and review about the juvenile law. On the other hand, in the korea movie, it reduce the content about the juvenile law and maximize the psychology of the character. A father in a Korean movie is transformed into an ignorant person in the juvenile law. Furthermore, he pledges revenge because of the anger which belongs from that he was not able to protect the beloved daughter. From the father representing the public, there could not find the awareness of the juvenile law. However, only the police had a awareness of problem in the juvenile law. As a result of comparing the difference of recognition about the juvenile law appearing in the two films, it is found that the Japanese film is based on the fact that the public knows the juvenile law in detail, and at the same time, it tends to show the distrust of juvenile law. On the other hand, Korea focused on the victim 's feelings rather than juvenile laws. Nevertheless, it showed faith in the judiciary and the will to change and expected positive changes in the future. In this paper, the difference of perception of the juvenile law was grasped in depth by comparing and analyzing movies of both countries. This implies that it was possible to consider the sociality of movies and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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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궁정 월령승응희의 극본집 『節節好音』은 청나라 內府에서 제작한 극본집으로, 현재 중국국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속에 元旦, 上元, 燕九, 賞雪, 祀?, 除夕 등 6종류의 명절연극 총 43책 86종이 수록되어 있다. 사조절부터 연구절은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시기로서 황궁에서 경축 연회 및 희곡 공연 활동이 가장 빈번한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청 황실의 송구영신 기간의 희곡 공연상황 및 명절 풍속 및 문화를 검토해 볼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자료이다. 또한 현전 다른 월령승응희가 대부분 단색필사나 홍색 권점을 사용하고, 주로 배우들이 공연에 사용하고 향후 연극기구에 보관하던 存庫本인데 반해, 『절절호음』은 황제께 진상해 연극 관람 시 참고하던 安殿本이며, 채색으로 필사되어 그 판본적 가치가 크다. 또 고궁박물원 등 타 기관에서 소장한 월령승응희 극본 90종에 필적하는 86종의 월령승응희를 수록하고 있어 단독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간 원본 자료의 열람이 용이치 않고, 현전 역사 자료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워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일부 소개들은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거나 불확실한 면도 보이고 있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절절호음』 은 오색사본이나 오색투인본이 아닌 황색, 홍색, 흑색, 녹색 총 네 색깔로만 필사된 사색 사본이다. 또 원래는 春夏秋冬 네 계절에 속하는 명절연극을 모두 수록했으나 현전하는 것은 '春天節戱','冬天節戱' 만 남아있는 잔본이며, 현전 『節節好音』 관련 ?譜畵像 34폭의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단오절희' 및 일부 '壽戱'가 더 포함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절절호음』의 편찬 시기는 1720년 康熙 말년에 제작된 작품집이 아닌, 1746년을 전후한 건륭연간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이는 『절절호음』에 雍正帝가 張廷玉에게 내린 春聯句가 등장하고, 1746년(건륭11년)에 간행된 『九宮大成南北詞宮譜』에서 확립된 曲牌의 분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곳곳에 옹정의 피휘 '眞', 건륭의 피휘인 '弘'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이 역시도 『절절호음』이 건륭연간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 극본에 曲譜나 鼓板이 함께 기록하지 않고 인물 등·퇴장, 배역, 聲腔, 韻目 방면에서도 건륭 시기 출판된 대희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절절호음』의 작가는 누군지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다. 다만 건륭시기에 월령승응을 비롯한 절희와 연대본희를 창작했다고 여겨지는 張照·王庭章·周祥鈺 등의 御用詞人들의 공동 창작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절절호음』이 대다수 그 제재를 역사고사들에서 취하고, 일부는 명말 청초의 傳奇작품에서 인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 명나라 궁정에서도 이미 유사한 경축연극이 공연되었던 것을 토대로 청대의 순수 창작이 아닌 기존의 전승극목들을 다시 정리하고 각색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청초 어용사인들의 각색을 거쳐 『절절호음』의 문학성과 예술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무대 공연에 더욱 부합하게 되었다.


『節節好音(Jie Jie Hao Yin)』, currently stored at National Library of China, is a Qing Dynasty Festival Court play script collection which was written by the Qing Dynasty's Imperial Storehouse as one of its court dramas. It is consisted of 43 books and 86 scripts, covering 6 different Festival Court plays, including New Year's Day, Lantern Festival, Yanjiu Festival, Snow Appreciation,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and New Year's Eve. From the day of Kitchen God Worshipping to Yanjiu Festival, is also a period of welcoming a new year and closing the old year, where celebration, banquet, drama and other performances are often taken place at the Royal Court. Therefore, this research is meaningful as theatrical performance and festival custom and culture during the Chinese New Year at the Royal Court of the Qing Dynasty could be studied through this piece of work. In addition, there are differences in how the script was written. Present Festival Court plays were mostly written in monochrome manuscript or red punctuates and 存庫本(Cunkuben: warehousing script), which was stored at the drama organization after actors used, were replaced with 安殿本(Andianben) in 『節節好音』, which was presented to the Emperor during the play. 『節節好音』 were written in multicolor, which also makes it unique and worthwhile to study its versions. Also, the fact that almost 90 scripts to be exact of Festival Court plays are stored at different institution for scientific research, including The Palace Museum, gives ample amount of reason to study this individually. But no researches were done so far as it was not easy to access the original manuscripts or to find history related to it. Some of the published are also incorrect and uncertain which brought confusion and dispute to some readers. 『節節好音』 is a five colored transcripts but not a five colored copy printed copy which uses yellow, red, black and green only, which makes it a four colored transcript instead. Also, originally it was consisted of all festival dramas covering all four seasons, spring, summer, autumn and winter (春夏秋冬), but now there is only an incomplete book of Spring Festival Drama (春天節戱) and Winter Festival Drama (冬天節戱). From 34 different types of facial makeup in operas portraits of characters in current 『節節好音』, we can also infer that Dragon Boat Festival Drama or part of Longevity Drama could have been included in the books. We should also look at the period of making 『節節好音』 to the Qianlong period, around 1746, not the late Kangxi period (1720). This is because Spring Festival Couplets, that were given to 張廷玉(Zhang Ting Yu) from the Emperor Yongzheng, appears in 『節節好音』, and also, in 『九宮大成南北詞宮譜 Xinding jiugong dacheng nanbeici gongpu』, Qupai: the names of the tunes to which Qu are composed, are used. Plus, the fact that Emperor Yongzheng's taboo name '眞' and Emperor Qianlong's taboo name '弘' were not used, could be another evidence that 『節節好音』 was written around Qianlong's ruling period. It is also similar to those of the full-scale dramas of Qianlong's ruling period where music scores and clappers were not recorded together, and how the stage cues, characters, tune and rhythmic entry are organized. It is hard to specify who the author of 『節節好音』 is, but it is assumed that imperial poets like 張照(Zhang Zhao), 王庭章(Yu Ting Zhang), 周祥鈺(Zhou Xiang Yu), who wrote Festival Court plays and Serialized Theatrical Performances over Qianlong's ruling period, wrote 『節節好音』 as well. However, 『節節好音』 seem to put most of its themes at historical allusions and some are quoted from Chuanqi-poetic drama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Also as festival celebration dramas were performed in Ming Dynasty's Royal Palace as well, it can be inferred that they are rearranged works that comes from heritage repertoires that existed, not Qing's pure, original work. Through Imperial poet's dramatization in the early Qing Dynasty, 『節節好音』's literary value and artistry has advanced tremendously which made it more suitable for stage perform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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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나카에 쵸민의 『민약역해』와 량치차오의 「루소학안」을 양명학적 개념들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두 사람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나름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두 사람은 25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국적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달랐지만, 둘 다 어릴 적에 유학을 배운 후에 점차 서구사상에 경도되었다는 점, 그리고 자유와 민권이 생소한 사회에서 그것을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선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출발점이 동일하다. 따라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그것을 유학적 관점에서 이해했던 점에 있어서도 상당부분을 공유하였다. 이 글은 나카에 쵸민의 『민약역해』와 량치차오의 「루소학안」을 중심으로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주요 개념들인리의(理義), 심(心), 의지(意志), 체용(體用) 등의 개념들을 가지고 고찰해봄으로서 근대 동아시아에서 사회계약론을 수용할 때 유가사상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특히 그들의 공통의 사상적 배경인 양명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In this essay, I tried to find out influence of Yangming's ideas in modern asia by focusing on Nakae Chomin's and Liang Qichao's writings on Rousseau's The Social Contract. Their ages and nationalities were different. However, both were active to propagate Western ideologies as pioneering figures, and their societies were unfamiliar with freedom and civil rights. Therefore, they shared a lot of the basic viewpoints of Rousseau's social contract theory. But it reflected their situations and viewpoints of time and space and their similar ideological backgrounds. Therefore, I focus on the main concepts that were commonly used by Nakae Chomin and Liang Qiqiao, such as Liyi(理義), Liangzhi(良知), Mind(心), and Will(意志), Tiyong(體用), etc. Those Yangming concepts helped Nakae Chomin and Liang Qichao to change the western to the eastern, and to accept freedom and rights to be moral and natural.

KCI등재

10프랑수아 줄리앙의 중국회화론 - 허실(虛實) 개념을 중심으로 -

저자 : 이근세 ( Lee Keun-s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75-29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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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동서비교미학의 관점을 허실(虛實)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초된 미 개념이 서구 미학을 미궁에 빠뜨린 가운데 동양의 미감이 대안으로 부각하고 있다. 서양의 예술사는 미가 플라톤적인 순수 관념으로서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미를 규정하기 위해 경주해왔지만 미를 정의해야 하는 숙제는 그대로 남았다. 서구의 현대 미학은 고전적인 미 개념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미를 해석하거나 아예 미를 포기함으로써 극단적인 추상표현주의나 형식주의로 이어졌다. 중국회화론은 '미 개념'이라는 수수께끼의 그늘과 향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원천이다. '미'를 실체화하지 않고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대립시키지도 않은 동양의 관점은 서구 미학의 난점을 비껴간다. 동양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서구적 구분을 대체하는 것은 허실(虛實), 즉 비움과 채움의 조화이다. 중국 예술의 허실 개념은 정신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의 상보성을 단일한 운행의 양상으로 보는 세계관에 기초한다. 따라서 중국회화를 파악하고 감상하기 위한 초점은 빈 공간(虛)과 채워진 공간(實)의 변주를 통한 생명으로의 열림과 초월에 있다.


This paper discusses the perspective of Francois Jullien's East-West comparative aesthetics, focusing on the concept of the empty space and filled space. The concept of western aesthetics originated from the ancient Greece has thrown the western beauty into some confusion and East Asian aesthetics is being suggested as a meaningful alternative to it. Even though the various effort and attempts to clarify beauty in terms of Platonic pure idea have been racing all through the Western art history, the question on what really beauty is remains unanswered sufficiently. Western contemporary aesthetics as a reaction against the classical concept of beauty resulted in extreme Abstract Expressionism or Formalism, by interpreting beauty at just symbolic level or definitely giving up beauty. On the other hand, Chinese painting theory can be an important source for being free from the shade and nostalgia of the puzzling Western concept of beauty. East Asian aesthetics, which neither substantializes the "beauty" nor opposes the spiritual to the material, deflects from the difficulties of Western aesthetics. In East Asian art, it is the very harmony of the emptiness and the filling that replaces the Western division of the spiritual and the material. The concept of the emptiness and the filling in Chinese art is based on the view of the world that the complementarity of the spiritual and material realms is a general process of the universe. Therefore, the focus for the appreciation and understanding of Chinese painting lies on openness and transcendence toward life through the variation of empty space(虛) and filled space(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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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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