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 : 한국학논집(~2009) → 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83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883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0호(2020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유제양(柳濟陽: 1846~1922)의 가족과 친족 교류 -『시언(是言)』을 중심으로-

저자 : 박미해 ( Park Mee-ha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2 (2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한말 양반가의 친족교류를 부계친과 비부계친의 사례로 비교 분석하고 있다. 구례 오미동에 살았던 유제양(柳濟陽: 1846~1922)의 일기를 분석하여 밝혀진 것은 유씨가의 친족 네트워크가 상당히 광범위하였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유씨가에서는 부계 8촌들 간에 주로 교류하는 친밀한 사이였으나, 상당히 먼 촌수의 부계친들 간에도 안부는 확인하고 있었다. 부계사촌은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었으며, 삼촌은 부모와 같이 대했으며, 당숙까지도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8촌 이내의 부계친간에는 관혼상제에 참여하고 다른 한편 시모임으로 친목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다. 비부계친인 외가와 처가의 친족들과는 정서적 교류를 주로 하나, 모계친들은 친족으로 인식하는 범위가 넓었다. 재취 부인의 처계친들과는 물질적·정서적 교류를 갖는 친밀한 관계이나, 일찍 죽은 초취부인의 친정과는 덜 친하다. 혼인한 딸들이 사망한 후에도 사위들은 처가인 유씨 집안의 대소사와 문상, 그리고 일상적 방문에 참여하고 있고, 유제양은 외손들의 교육과 혼인에 참여하여 살뜰히 보살피며 물질적·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위나 며느리 집안의 사돈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이들은 유씨 집안과 기존 혼반으로 얽혀져 있는 관계이거나, 유제양이 주관하였던 구례 오미동을 중심으로 모이는 시모임에도 참여하는 사이였다. 유제양의 친족관계는 비부계친과도 활발히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은 부계친만을 강조되었던 기존의 연구결과들과는 달리, 조선후기에도 긴밀한 인척관계가 이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Yu Je Yang's family and kindred in late Choseon dynasty. In Korean academia, many scholars have stressed that kinship in late Chosun period was more skewed toward the paternal side rather than the maternal side. After the war in 16th century, there was a need of reestablishing the Confucian social order. The Yangban elite tried to recover their social identity by reconstructing tradition and concentrating power through the paternal group with the same surname. This concrete bondage among paternal kins formed political allies and served as Yangbans' self-protection tool. In short, the paternal kinship was dominantly emphasiz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However,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previously common notion of paternal kinship in late Chosun dynasty should be reconsidered. This study found that Yu Je Yang did interact with diverse kin relations, not only from the paternal side but also from his maternal side and the in-laws. This paper examines the material, emotional interaction between Yu Je Yang's paternal kins as compared to that between his non-paternal kins. After the first-son's early death, the patriarchal duty was executed by the old Yu Je Yang, therefore he did his best to provide emotional and material support to his direct offsprings. After the daughters' death due to illness, the remarried son-in-laws visited in order to talk and participate in the Yu's ceremony and mourning as well as his offsprings' education and marriage on which Yu Je Yang was mainly involved. Therefore, the phrase that “after the marriage, the daughters should be out of their homes(出嫁外人) was not valid in Yu family. Such kinship interaction can also be found in the Koryo era where several layers of kinship existed as an individual's sponsor. The sponsoring from several and diverse kins maximized benefit at the individual and familial level. Even in Confucian society where paternal side was seemingl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interaction between diverse kins cannot be ignored.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한국 인식을 고찰하는 것에 연구 목적을 둔다. 러시아 작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의 『전함 팔라다』는 조러수호통상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기 이전에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어떤 짧은 인상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전함 팔라다』는 크게 세 가지 의의를 가진다. 한국에 대해 최초로 쓰인 러시아 문학이라는 점,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한국 영토에서 만난 최초의 사건을 기록한 역사적 사료라는 점, 한국학이 러시아에서 생기기 40여 년 전에 한국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쓰인 사료라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본고는 이 작품이 한국과 러시아 관계의 문화적 기원을 알아보는 데에 있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다만, 당대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지녔던 관점, 조선에 대해 충분하지 못한 정보로 인한 판단 오류 등으로 조선을 그들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인들의 방문 목적이 조선 영토 실측에 있었음을 참작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작가가 뿌쨔찐 제독의 비서로 팔라다호에 승선했지만, 그의 항해일지가 군인이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시선에서 그려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의 글은 일상적이고 감상적이며, 자동기술적이다. 그는 글에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그는 리얼리즘 작가로서 거문도, 조선 연안, 동해안 일대의 그가 보고 겪은 경험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곤차로프의 시선을 따라 당시 상황을 체현해보려는 시도는 『전함 팔라다』 의 조선에 대한 기록을 통해 러시아인들이 느꼈던 조선의 첫인상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며, 이로부터 한국에 대한 태도와 인상의 시작을 정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erception of Korea in Russia in the mid-19th century. This paper deals with the literary work 『The Battleship Palada』 written by Russian writer Ivan Goncharov about the Joseon in the mid 19th century. 『The Battleship Palada』 by Russian writer Ivan Alexandrovich Goncharov shows what a short impression Russia had on Korea before the treaty of amity.
The work 『The Battleship Palada』 has three main meanings. It is the historical document first written about Korea in Russian literature, that records the first incident that Koreans and Russians have encountered on Korean territory, and the most detailed document about Korea more than 40 years ago before the Korean Studies in Russia started. Based on this, is to proceed with this study because it is important to find out the cultural origin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Russia. However, the study taking into account that this study did not identify Joseon with themselves due to the viewpoints Europeans had on Asia and errors in judgment and also the purpose of Russians' visit was measuring. It is an interesting point that he boarded the Palada as secretary of Admiral Putyatin, but his sailing log was drawn from his gaze as a literary person, not a soldier.
Goncharov's writings are routine, sentimental, private, and automatic. He exposes his feelings in writing. He is a realist writer and describes in detail the experiences he has seen and experienced in Geomundo, the coast of Korea, and the East Coast. The attempt to realize the situation at that time following Goncharov's gaze back to the mid-19th century will be a work to look into the first impression of Joseon felt by the Russians through the records of Joseon in 『The Battleship Palada』 and from this, the attitude and impression of Korea will be established.

KCI등재

3젠더지리학을 통해 본 소설의 공간과 장소 -최은미의 「근린」, 「백 일 동안」을 중심으로-

저자 : 김수지 ( Kim Su-ji ) , 김미영 ( Kim Mi-you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81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젠더지리학의 시각으로 최은미의 단편 「근린」과 「백 일 동안」에 나타난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젠더지리학은 인본주의 지리학에 젠더의 개념을 추가하여 삶의 양식, 의미부여 등의 차이에 따라 사람이나 장소마다 독특한 속성을 가지게 되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다. 개인의 장소 경험과 공간의 의미화 과정에 있어 젠더와 공간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문학에 나타난 공간의 의미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은 물론 작품에 투영된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은미의 「근린」은 도시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침투 현상과 현대 사회에서 젠더와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침투는 사회 체제에 의해 구성된 공간의 해체를 의미한다. 주요 배경인 근린공원의 인물들은 대다수가 여성으로서 익명성 속에서 모순적인 이웃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공간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기능을 하며,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공간 체제로부터 소외당하게 된다. 기존 사회 체제의 부적응자, 이탈자가 늘어날수록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간의 균열은 결국 경계의 와해, 공간의 해체로 이어진다.
「백 일 동안」은 모성 지향의 공간, 달리 표현하면 신화적 공간을 추구하는 한 남성의 욕망이 좌절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강상기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족 간의 유대감 상실, 애인의 실종 등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의 욕망은 어머니와 유일하게 지냈던 시간 '백 일'을 전유하기 위해 고향 제이골에 한옥 '자미재'를 건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골이 지닌 여성성과 목재 한옥의 관계, 어머니를 상징하는 자미화 나무의 정결을 훼손한 목수의 배설 행위 등은 주인공이 추구하는 신화적 공간의 완성에 방해가 되고 있다. 제이골이라는 사적 공간의 젠더적 이미지와 남성성을 대표하는 목수의 배설 행위가 주인공의 욕망을 좌절시킨 것이다.


This study analyzes the meaning of space and place in Choi Eun-mi's short stories “Geunrin” and “BaekIldongan” from the perspective of gender geography. Gender geography adds the concept of gender to the humanistic geography, explaining the reason and process of having unique attributes in each person or place according to differences in lifestyle, meaning, etc. In the process of personal place experience and space semantics, Paying attention to the relationship between gender and space, analyzing the meaning of space in literature and the life of the characters living in it will help to understand the culture and the world projected into the work as well as the in-depth appreciation of the work.
“Geunrin” is a work that shows the mutual penetration of the city's public and private areas and the way people relate to gender and space in modern society. The mutual penetration of the public and private domains shown in this short story means the dissolution of the space organized by the social system. The figures in the neighborhood park, the main background, are mostly women, maintaining contradictory neighbors in anonymity. Ideology serves to consolidate the boundaries of social space, and those who fail to comply with it become alienated from the social spatial system. It is difficult to maintain a society as the number of people who are maladjusted to the existing social system increases. The cracks in the space eventually lead to the collapse of the boundary, the disintegration of the space.
“BaekIldongan” is a short story that shows the process of discouraging a man's desire to pursue a mother-oriented space, otherwise a mythical space. The main character Kang Sang-ki has pain such as longing for his mother, loss of family ties, and disappearance of his lover. His desire is to build a Jamijae in his hometown of Jaeigol to own the 100 days he spent with his mother.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Jaeigol's femininity and wooden house, and the poop of a carpenter who damaged the chastity of the Jamihwa tree symbolizing his mother, are hindering the completion of the mythical space sought by the main character. A carpenter's excretory behavior, which represents gender image and masculinity in a private space called Jaeigol, frustrated the main character's desire.

KCI등재

4송휘종 『도덕경』 어주의 '무위' 관념 연구

저자 : 김태용 ( Kim Tae-y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3-110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송휘종이 말한 '무위의 정치'는 인민이 지적 물적 욕망 없이 편안히 타고난 '성명'의 실정을 누리고 분수에 머물게 하는 것을 제일 과제로 한다. 이를 위해 군주는 백성을 '무지'하고 '무욕'하게 해야 한다. 군주의 '무위'는 백성이 타고난 '성명'의 그러한 바를 따르고, 백성이 타고난 '성명'의 저절로 그러함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주의 '무위'는 백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만물의 이치와 백성의 타고난 '성명'을 파악하여, 세상의 일들을 총괄하고 백성의 '성명'에 따른 삶을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가 말한 '무위의 정치'는 '적연부동'하여 마침내 세상의 일에 '감이수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적연부동'적 '무위'는 최고 경지 혹은 최종 단계의 '무위'를 말할 뿐이고, 이러한 '무위의 정치'가 실현되기 이전에는 군주의 다스림이 요청된다. 어떤 행위의 '무위'여부는 인위적으로 한 것인가 자연적으로 한 것인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군주는 인민의 타고난 성명에 따라 그들 특히 자발적 능력이 부족한 평범한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 군주의 교화를 통해 인민 모두가 타고난 성명에 따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민의 저절로 그러함에 맡긴다. 그가 말한 '무위의 정치'는 공평무사하게 바른 이치 즉 '도' 또는 '성명'에 따라 국정을 보살피지만, 나라와 백성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무위의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군주와 인민 모두가 편안히 타고난 '성명'의 실정을 누리고 분수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각기 타고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성인의 '복성'은 자기 자신의 '성명'을 회복하고 그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성인의 '복성'은 수신에서 시작해 치국으로 나아가야 하고, 모든 인민이 '성명'에 따른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성인 자신의 '복성'은 완성된다. 송휘종『도덕경』어주는 북송 노학과 송학의 사상경향을 반영하면서도, 도가의 관점에서 『도덕경』의 원의를 모색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Song Huizong's politics of wuwei is the first task of allowing the people to comfortably enjoy their nature of xingming and stay their share of xingming without intellectual and material desires. To this end, the ruller must make the people ignorance and no greed. The ruller's wuwei is to follow those things of the xingming, and leave it to that of the xingming. However, the wuwei of such a ruller does not mean that it is a room to entrust everything to the people. The ruller must grasp the reason of all things and the natural xingming of the people, oversee the affairs of the world, and help the people to realize their lives according to their xingming. Politics of wuwei he said is still and without movement, but when acted on, it penetrates forthwith to all phenomena and events under the sky. By the way, the wuwei that is still and without movement only refers to the wuwei in the highest or final stage, and before this politics of wuwei is realized, role of the ruller is required. the wuwei of an action is determined by whether it was done artificially or naturally, the ruller must edify them, especially the ordinary people who lack voluntary abilities, according to the xingming of the people. Only when all the people can live the lives of their xingming through the edification of the ruller, the people are left to do so by themselves. The politics of wuwei he said is to take care of state affairs according to the right reason, that is, dao or xingming, but does not regard the country and the people as his own, and does not consider his own interests and losses. Since the ultimate goal of the politics of wuwei is for both the ruller and the people to comfortably their nature of xingming and stable their share of xingming, it is of paramount importance to restore their natural xing. However, the restore one's natural xing of an sage should not stop with restoring own xingming and living the life accordingly. The restoring natural xing of an sage must start with self-cultivation and proceed to the government, and when all people live a life according to their xingming, the sage's restoring natural xing is completed. Song Huizong's the Emperor Commentary of 『Daodejing』 is a work that reflects the ideological trend of the study of Laozi in north song and the study of Song, while trying to find the original intention of 『Dodejing』 from the perspective of Taoism.

KCI등재

5중국 조선족학교 교가의 음악 구성 요소 연구

저자 : 안병삼 ( An Byung-sam ) , 김수진 ( Kim Su-j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1-144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에서는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 37개를 대상으로 음악의 구성 요소인 악곡의 구조, 빠르기 분류, 작사·작곡가 현황, 음악과 가사의 일치성 등으로 분석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음악적 특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첫째, 악곡의 구조 중 가요형식에서는 '세도막 형식'을 사용한 교가가 23개로 가장 많았고, '겹 두 도막 형식'을 사용한 교가는 8개, '두도막 형식'을 사용한 교가는 6개였다. 마디수 구성을 살펴보면, 24마디로 구성된 교가가 9개로 가장 많았다. 가사형식을 보면, 27개 교가는 유절형식을 사용하였고, 10개 교가는 통절형식을 사용하였다. 둘째, 빠르기 분류를 보면,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에서는 빠르기말을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24개로 많았고, 13개 학교의 교가에서 빠르기말을 표기하였다. 셋째, 작사·작곡가 현황을 보면,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 37개중 작사가와 작곡가가 모두 명시된 경우는 34개였고 3개의 교가만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넷째, 음악과 가사의 일치성을 보면, 리듬의 맥박과 가사의 억양이 일치하는 교가는 34개였고, 일치하지 않는 교가는 3개였다. 가사의 내용과 리듬이 일치하는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는 36개였고 1개의 교가는 일치하지 않았다.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 37개 중 19개는 음표의 수와 가사의 음절수가 일치하였고 18개는 일치하지 않았다.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의 음악적 구성 요소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음악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에서는 결속구가 자주 사용되었다. 둘째,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는 갖춘마디로 시작한 노래의 후반에 못갖춘마디로 전환하여 역동감을 주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셋째,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는 1절과 2절, 또는 1·2절과 3절의 마디수가 다른 경우가 존재한다. 넷째, 중국 조선족학교 교가는 다양한 빠르기말을 사용하였다. 다섯째, 악보의 오류가 많았다.


As of 2019, more than 7.5 million Koreans have immigrated from the Korean peninsula to other countries. Among them, about 1.8 million Koreans live in China. This thesis aims to analyze the composition of music, the structure of music, the classification of speed, the status of lyricists and composers, and the correspondence between music and lyrics, targeting 37 Chinese-Korean school's songs in China.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mong the structure of the music, there were 23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ing the “three-coat format” in the song format, 8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ing the “Compound two-coat format”, and 6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ing the “two-coat format”. In terms of the lyrics format, 27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ed the passage type, and 10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ed the passage type. Second, Looking at the classification of speed, there were 24 cases in which Chinese-Korean school's songs in China did not indicate the words of fast, and 13 Chinese-Korean school's songs indicated the words of fast. Third, When looking at the current status of lyricists and composers, among the 37 Chinese-Korean school's songs in China, 34 cases where both lyricists and composers were specified, and only three were marked as unknown. Fourth, When looking at the correspondence between music and lyrics, there were 34 Chinese-Korean school's songs that matched the pulse of the rhythm and the intonation of the lyrics, and three were not.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musical components of the Chinese-Korean school's songs in China, the following musical characteristics were found. First, Chinese- Korean school's songs frequently used the unity. Second,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ed a lot of methods to give a sense of dynamic by switching to a word that was not equipped in the second half of a song that started with a word that was equipped. Third, There were cases where the number of nodes in verses 1 and 2, or 1·2 and 3, was different. Fourth, Chinese-Korean school's songs used various words of rapidity. Fifth, There were many errors in the score.

KCI등재

6시데하라(幣原坦)의 식민지 조선·대만에서의 교육 활동

저자 : 최혜주 ( Choi Hea-jo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3-172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시데하라가 조선과 대만에서 식민교육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의 교육 활동을 살펴보았다. 첫째, 시데하라는 조선과 대만의 교육을 서구 식민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관찰한 뒤 조선과 대만이 서구보다도 식민지 교육이 순조롭게 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것은 조선과 대만이 일본과 '같은 인종'이므로 인종, 사상, 풍속, 습관에서 차이가 없고 일본인이 식민지 주민들을 다루는 교육법도 무리하지 않아 동화교육의 효과가 있어 서구보다도 유리하다고 보았다.
둘째, 실제 교육에서는 조선과 대만 모두 일본인 위주의 교육을 시행하여 식민지 주민 교육보다 우선하였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데하라는 조선에서 학정참여관으로 있을 때 근대적 교육의 학제 개편을 실시하면서 대학 설립이 불필요하다고 보았고, 초등교육과 실업교육을 중시했다. 대만에서는 대학설립을 준비하여 총장이 된 후 대만인보다는 일본인 위주로 식민통치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식민지대학을 운영해 나갔다. 이것은 시데하라가 조선과 대만에서 종주국의 지위를 얻은 일본인에게 지도자다운 자질을 요구하면서, 조선인과 대만인에게는 피식민자의 지위에만 머물게 하려는 것을 의미했다.
셋째, 시데하라는 조선과 대만에서 문화 건설과 교육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그 실천자가 되어 활동했다. 조선에서는 일본어 보급과 교과서 편찬을 통해 일본문화를 침투시키고 있었고, 대만에서는 대만이 일본문화 선전에 필요한 남양연구와 조사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또한 인문·자연과학 연구에서 막대한 가치를 갖는 지역이라는 인식아래 일본문화의 정수를 남방에 건설한다는 사명에서 활동했다.
넷째, 시데하라의 적지주의라는 것은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 사정을 참작하여 식민통치에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조선과 대만의 식민통치에서 일제의 교육정책이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는지는 대북제대의 설립을 경성제대의 설립과 비교한다면 적지주의적 교육정책의 모습이 한층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Observations of the characteristics of educational activities focusing on Shidehara's theory of assimilation education in colonial Korea and Taiwan show that first, Shidehara, who made relevant observations of Korean and Taiwanese education in relation to Western colonies, was confident that colonial education was being conducted more smoothly in Joseon and Taiwan than in the West. This was because he viewed the effects of assimilation education to be advantageous compared to that of the West as the people of Joseon and Taiwan are 'the same race' as the people of Japan, sharing the same ethnicity, thoughts, customs, and habits and as the educational methods of the Japanese in dealing with colonial residents were not forceful.
Second, both Joseon and Taiwan conducted Japan-oriented education in their actual educational practices and this was prioritized over colonial resident education. Because of this, when Shidehara worked as an undergraduate adviser in Joseon, he viewed the establishment of universities to be unnecessary as school system reform was being conducted in modern education and he placed importance on elementary education and vocational education. After preparations were made for a university establishment in Taiwan and he became president, a colonial university was operated to cultivate people of talent needed for colonization. This signified that Shidehara demanded that the Japanese who gained suzerain state positions in Joseon and Taiwan possess leadership qualities while having the people of Joseon and Taiwan staying in positions of the colonized.
Third, Shidehara acted as an executor in the name of culture construction and educational development in Joseon and Taiwan. He spread Japanese culture in Joseon through Japanese language distribution and textbook compilations and in Taiwan, he viewed Taiwan to be fitting for the research and examination of the South Sea needed for Japanese culture propagation. Also, he carried out the mission of building the essence of Japanese culture in Southern regions under the awareness that they have immense value in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s research.
Fourth, the localism of Shidehara states that the colonial situations of Joseon and Taiwan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and utilized in colonial rule. Comparisons made between the establishment of Taihoku Imperial University and the establishment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to observe common points and differences in the educational policies of the Japanese Empire with regard to the colonization of Joseon and Taiwan will more clearly display the localized educational policies of Shidehara.

KCI등재

7일본 사학사에서 신황정통기의 위치

저자 : 남기학 ( Nam Ki-hak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197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에서는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의 사서로서의 성격을 규명하고 일본 사학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하려고 했다. 특히 우관초(愚管抄)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면서 정통기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정통기는 우관초와 더불어 11세기 이후 일본 사학사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 두 사서는 고대 이래 한문체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일본어 가나로 일본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독자적인 해석과 비판을 전개하고 있는 사론서이다.
정통기와 우관초는 모두 연대기를 기초로 하지만, 우관초가 전체적으로 독특한 체제 속에 연대기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정통기는 연대기적 서술형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관초는 그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고 신대(神代)의 기술을 생략했지만, 정통기는 신대에 일본 역사의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심혈을 기울여 기술하고 있다.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는 신대와 인황(人皇)의 시대에 통하는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조(南朝)의 정통성과 권위를 절대화·신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두 사서의 차이는 역사의식에서도 나타난다. 정통기는 지카후사 자신이 살던 시대를 '말세'로 인식하고 있지만, '말세'인 현재의 혼란한 세상을 극복하여 본래의 올바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우관초가 그것을 일단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정통기는 유교라는 특정한 정치이념에 입각해서 현실의 정치를 비판하고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역사사실에 대한 경험적 이해를 통해 지침을 구하려고 하는 우관초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다만 정통기에서는 유교이념이 신도(神道) 사상과 결합된 형태로 신도적 체계 안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지카후사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역사에서 인간의 도덕행위를 중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도덕적 요구 자체가 '신의 뜻'이라고 보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역사 자체가 불가사의한 '신의 뜻'에 따라 전개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I tried in this article to reveal the special character of Jinnōshōtōki as a historical book and to establish its position clearly in the history of Japanese historiography. I looked at its nature especially as compared with Gukanshō. Jinnōshōtōki and Gukanshō had appeared in the midst of a newly rising trend of Japanese historiography after the 11th century. Breaking away from the ancient convention of historiography in Chinese style of writing, these books not only provide a concrete description of the history of Japan in Kana but also suggest their own interpretation and critical perspective.
Although both are based on chronology, Gukanshō incorporates the chronology into its overall unique system while Jinnōshōtōki depends entirely upon its chronological narrative form. Gukanshō leaves out the description of the Age of God as it regards its existence as self-evident, but Jinnōshōtōki gives the Age of God profound significance as the origin of Japanese history, and describes it with great care accordingly. Kitabatake Chikafusa tried to show the principles that could encompass both the Age of God and the Age of Human Emperors, aiming ultimately at absolutizing and mystifying the legitimacy and authority of the Southern dynasty.
The two books also differ in their historical awareness. Jinnōshōtōki expresses optimistic confidence in the future in that it would be possible to overcome the current chaotic state and to restore the original correct state, even though Chikafusa considered his age as 'the end of the world'. It is in stark contrast to Gukanshō, which accepts the contemporary situation as a given, so gropes for a realistic alternative.
Furthermore, Jinnōshōtōki criticizes actual politics and looks at history based on a specific political ideology of Confucianism. It is quite far in attitude from Gukanshō, which seeks its guidance from empirical understanding of historical facts. Of course, it should be noted that, in Jinnōshōtōki, the Confucian ideology gets settled very firmly in the Shito system. Though placing emphasis on moral responsibility and also considering human moral behavior as very important, Chikafusa thought that such moral demand itself is 'divine will' and human history unfolds itself according to this mysterious 'divine will'.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서영대학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경희대학교 경북대학교
 256
 38
 35
 26
 16
  • 1 서영대학교 (256건)
  • 2 서울대학교 (38건)
  • 3 고려대학교 (35건)
  • 4 경희대학교 (26건)
  • 5 경북대학교 (16건)
  • 6 한양대학교 (15건)
  • 7 연세대학교 (14건)
  • 8 Yanbian University (13건)
  • 9 성균관대학교 (12건)
  • 10 한국외국어대학교 (8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