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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 : 한국학논집(~2009) → 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82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876
동아시아문화연구
82권0호(2020년 08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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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춘 김기전의 사유는 20세기초 한국사상사의 동요 또는 불안정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유학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유학적 전통을 비판했다. 이는 일견하기에 전통과 새로운 이론 및 사상 사이의 길항을 함축하는 듯하지만, 실은 유학적 전통 및 기반, 그리고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을 향한 실천적 지향 사이에서 돌출되는 모순적 분열을 담지한다.
이러한 길항은 무엇보다 유학에 기반하여 유학을 비판하는 분열적 양상으로 표출된다. 가장 핵심적인 비판의 대상이 다시 그 비판을 위한 근거로 복귀하는 사유의 모순적 분열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아가 낯선 이국의 사상과 이론을 수용할 때, 김기전은 무엇보다 유학적 기반 위에서 판단했고 그 이해와 평가 또한 일정하게 유학적 토대 위에서 이뤄진다. 말하자면 지적 전통에 대한 대안의 이해 및 수용 또한 다시 전통에 의존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분열을 추동하고 또 심화했던 외적 요인은 현실적 질곡과 위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그의 실천적 지향이었다. 하지만 김기전의 사유와 실천을 이끈 역사적 텔로스 또한 일정한 가치판단 위에서 정립된 것이었고, 이는 다시 그의 유학적 기반 및 종교적 토대가 없었다면 구축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전통에 기반해 전통을 비판하는 모순적 분열은 이론적 지평을 넘어 그의 삶 전체에 심원한 저류로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김기전의 사유가 보여주는 분열적 운동은 사상사적 '수용'이 기존의 지적 전통이 강력한 장소에서 이뤄질 때 나타나는 특수한 경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적 전통이 강력할 때 그리고 역사적 변화가 새로운 이론을 지지할 때, 분열의 운동은 더욱 거세고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20세기초 한국사상사 및 철학사의 적절한 조망과 정립에서 그 특수성을 적절하게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단초라 할 수 있다.


Sochoon Kim Ki-jeon's thoughts epitomize the agitation or instability of Korean history of philosophy and thought in the early 20th century. He criticized the Confucian tradition more fiercely than anyone else, even though he was a person who received traditional Confucian education. This seems to be linked at first sight to the contradiction between intellectual tradition and new theory and ideas, but in fact it emerges between the Confucian tradition and foundation, and the practical orientation toward the new world and a new human being.
This contradiction is expressed in his thoughts in relation to tradition in a divisive way that criticizes Confucianism based on Confucianism. This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division of thought in which the most critical target of criticism returns to the basis for that criticism. Furthermore, when accepting foreign ideas and theories, he judged on the basis of Confucianism above all else, and his understanding and evaluation of them are also made on a Confucian basis to a certain degree. In other words, his understanding and acceptance of alternatives to intellectual tradition also depended on tradition again.
The divisive movement that Kim Ki-jeon's thoughts reveal clearly shows the special tendency that the “acceptance” in the history of thoughts presents in a place where the existing intellectual tradition is powerful. As his case clearly shows, the movement of thought's contradictory division becomes stronger and deeper when the existing intellectual traditions are strong, and when historical changes support new theories. This is an important clue to the proper view of Korean history of philosophy and thought in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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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종삼 시에 나타난 '공백'의 구조 연구

저자 : 차성환 ( Cha Shung-hwa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6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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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의 시는 '공백'을 반복한다. 최초의 '공백'은 시 「돌각담」에서 '돌각담'으로 쌓아올려 만든 내부의 '공백'이다. 그것은 전쟁 체험에 의해 발견된, 자기 자신의 죽음의 자리이다. 「돌각담」이 보여준 성소(聖所) 모티프는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김종삼은 여러 시 텍스트 속에 기독교의 도상학적 이미지와 바니타스(죽음과 관련된 오브제)를 통해 '성소'를 구축한다. 보이지 않는 '공백'을 '성소'의 형태로 가시화하여 화폭에 담아내듯이 시를 쓰는 것이다.
김종삼 시의 시적 주체는 '성소'를 욕망하지만 '성소'에의 접근이 실패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성소'는 '성소'로서 유지되고 동시에 '성소'를 욕망하는 '나'의 실존도 보장받는다. '성소' 내부의 '공백'은 주체 자신의 죽음의 자리로, 그것을 대면하게 된다면 곧 주체의 실질적인 죽음을 의미하게 된다. 죽음 충동은 주체의 표면적인 목적으로 보이는 대상(성소)을 선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에 도달하지 않는 방식으로 주어진다. 김종삼 시의 시적 주체는 자신에게 예비 된 죽음의 자리를 욕망하지만, 그 죽음은 금지된 욕망의 대상이다. 금지된 욕망의 대상인 자기 죽음은 '공백'으로 대체된다. '성소'의 구조물에 기입된 '공백'은 곧 정신분석학에서 상징계의 의식 아래에 포획되지 않는, 실재계의 빈 자리인 '결여'이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인 '공백'을 욕망하는 것은 상징계의 질서에 포획되지 않는 승화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돌각담'을 쌓듯이 반복하는 그의 시 쓰기는 '공백'을 탐닉하는 죽음 충동에 기인한다. 한국시사에서 김종삼의 시가 갖는 절대적 차이는 이 '공백'을 직접적으로 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일 터이다.


Kim Jong-sam's poem repeats 'blank'. The first “blank” was a “blank” inside the poem “Dolgakdam”, which was built up as a 'Dolgakdam'. It is the place of his own death, discovered by the experience of war. The Sanctuary motif shown by “Dolgakdam” is repeated in later works. Kim Jong-sam builds a “the sanctuary” through the iconoclastic images of Christianity and the Vanitas (objects related to death) in the text of various poems. The invisible “blank” is visualized in the form of “the sanctuary” and writes poems as if they were captured in a canvas. 
Kim Jong-sam's poetic subject desires “the sanctuary”, but his approach to “the sanctuary” fails, and ironically, “the sanctuary” is maintained as “the sanctuary” and at the same time guaranteed the existence of “I”, which desires “the sanctuary.” The “blank” inside the sanctuary is the seat of the main body's own death, and if faced with it, it means the actual death of the main body. The Death drive is given in a way that does not preoccupy what appears to be the subject's ostensible purpose, but rather does not reach the target. The poetic subject of Kim Jong-sam's poem desires a place of reserved death for him, but the death is the object of forbidden desire. Self-death, the object of forbidden desire, is replaced by a 'blank'. The 'blank' entered into the structure of 'the sanctuary' is the 'lack' of the Real, which is not captured under the consciousness of Symbolic in psychoanalysis. Desire for “blank,” an object that does not exist in the world, can be understood in terms of sublimation that is not captured by the order of Symbolic. His repeated writing of poetry, as if building a 'Dolgakdam', is due to the death drive indulging in “blank.” The absolute difference between Kim Jong-sam's poem in Korean poetry may be that it directly targeted the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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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동아시아 여성 음악극에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 중국의 越劇, 한국의 여성국극 외에 타이완의 가자희가 있다. 본고는 여성국극의 임춘앵 극단과 가자희의 공락사 극단이 여성 대중 음악극으로서 어떠한 흥행 전략을 가졌는지, 크게 극단 조직과 운영 체계, 공연 작품의 서사, 무대 연출 전략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두 극단 모두 사실혼 남편이 재정·회계를 담당하고 사실혼 아내이자 간판 배우가 배우 모집과 훈련을 담당하는 등 성별에 따라 분업하여 가부장적이고 근대적으로 운영되었다. 임춘앵 극단은 연구생 제도를, 공락사는 양녀·복희건자 제도를 운영했다. 임춘앵 극단은 공락사에 비해 배우 관리·귀속 규정이 갖춰지지 않았다. 임춘앵 극단은 흥행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공락사는 전담 작가를 두어 작품을 확보했다. 공락사는 영화 등의 공연 컨텐츠 다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또 녹음단을 꾸려 공연의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다.
서사는 창작 레퍼토리로 새 흐름을 선도했고, 일단 흥행에 성공한 작품의 서사를 후속작에 서도 패턴화했다. 이들 레퍼토리는 전해오는 익숙한 모티프를 변용한 것이다. 임춘앵 극단의 작품은 3시간 길이의 단편이고, 공락사는 5~10일에 걸친 장편이 대다수였다. 공락사는 열흘에 두 작품을 공연했는데, 앞 작품 결말과 뒷작품 시작을 함께 공연하는 전략을 썼다.
남장 연기는 관객에게 여성의 남성성을 경험하게 했으며 이상화된 모습으로 판타지를 가져다준 반면, 그 시대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사실적으로 강화하기도 했다. 공락사는 남장 연기의 변용으로 어린이 역할의 囝仔生을 따로 두기도 했다. 또 극적 환영을 강화하거나 관객의 볼거리에 대한 욕망을 실현시켜 주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box office strategy of Im-Chun-Aeng Troupe(林春鶯) and Gong-Le-She(拱樂社) Troupe as women-centered Musicals in three aspects of troupe organization and operating system, narrative, and stage performance.
In both of two troupes, the commonlaw husbands were in charge of finance and accounting. Their comonlaw wives were the leading actresses, who were in charge of recruiting and training actresses. That is a division of labour based on gender. Im-Chun-Aeng Troupe had preliminary acting course. Gong--Le-She Troupe operated both foster daughter-in-law custom and hiring method(贌戱囝仔) to recruit actresses. While the Im-Chun-Aeng troupe commissioned a box office writer, Gong-le-she hired some dedicated playwriters. Gong-le-she tried to diverse performance contents such as movies and broadcastings.
Their narritive was mostly new repertoires. They used a strategy to follow the narrative of their previous hits. They had adapted familiar motifs that have been handed down. While The works of Im-Chun-Aeng troupe were mostly short pieces, them of Gong-le-she troupe were mostly long pieces.
The cross-dressing performance led the audience to experience the female masculinity and brought fantasy to them with idealized characters. It also realistically strengthened the femininity and masculinity of their times. Gong-le-she created a child role gìnnàsẽ(囝仔生). Both of two troupes also strengthened theatrical illusion and actualized the desire to spectacle of the aud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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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거는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역사와 한중 교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음은 물론 양국 문예의 제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안중근을 제재로 시가를 짓고 문장을 통해 논의하기 시작한 선도자는 량치차오였다.
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의 중요한 롤 모델이었던 량치차오는, 한편으론 서구 및 일본 국가주의·제국주의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그 폭압에 분노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것을 동경하기도 하고 여전히 역시 제국주의인 중화주의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중국인 량치차오에게 있어서 조선은 상실되어가는 자신의 일부이기도 했고, 동시에 서구 및 일본과의 대비 속에서 중국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타자이기도 했다. 나아가 중국의 운명을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 특별한 타자의 멸망을 바라보며 동정·서운함·조소·염려 등 복잡한 감정과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한 감정과 인식은 1904년부터 1911년까지 일본이 조선에 대한 강점을 본격화하고 완성한 시기에 지은 두 편의 장편 시가와 여러 편의 문장 가운데 담겨있다. 작품들 가운데서는 먼저 조선의 망국 문제에 대해 폭넓게 詩情을 펼치거나 논의를 풀어가는 가운데 '안중근'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도 했고, 반대로 처음부터 '안중근'을 제재 삼아 시가를 읊는 가운데 조선의 망국 문제로 주제를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계몽을 취지로 했다.
량치차오가 '안중근'을 제재로 지은 시가는 장편 史詩로 일컬을만한 <秋風斷藤曲>과 <朝鮮哀詞> 24수 중의 몇 수이다. 그 창작 동기 및 내용은 첫째, 안중근 의거에 감동을 느껴 국가를 위한 영웅적 행위와 의협으로서의 인물됨을 찬양하는 것이고, 둘째, 나아가 그 이미지를 국민성개조를 비롯한 중국의 계몽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아울러 <朝鮮亡國史略>·<日本倂呑朝鮮記>·<朝鮮滅亡之原因> 등 문장들 중에서도 亡國史學 또는 亡國政論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주제의식 속에서 조선의 멸망에 대해 배경·원인·과정·교훈 등을 논의하며 자주 안중근을 제기하고 묘사했다. 그 궁극적 목적은 역시 중국을 위한 각성과 계몽이었다.
량치차오에게 있어서 안중근은 국가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표준 및 리더십인 중국적 士道·武士道의 표상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에 시문의 제재로 활용되었다. 나아가 그가 국민성개조론 중 가장 이상적인 국민성 중 하나로 강조한 尙武精神을 선양하기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기도 했다. 아울러 량치차오는 지도층의 도덕적 덕목과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당시 조선의 황실 및 지배계층 인사들을 안중근과 완전히 상반되는 부정적인 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정면교사와 반면교사의 극명한 대비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Ahn Jung-Geun's patriotic act was not only a paramount event in the history of East Asia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but also a motif of literature and art in both countries.
Liang Qi-Chao was a leader who began to create poems and essays related to Ahn in China. He expressed anger over the tyranny of nationalism and imperialism of the West and Japan, but on the other hand, he still expressed conflicting beliefs that were bound to traditional Sinocentrism. As a Chinese leader, to Liang Qi-Chao, Joseon was a lost part of himself and at the same time the other who could reflect on himself. As a leader agonizing over where and how to lead China's fate, he witnessed the devastation of this particular entity and expressed complex emotions and perceptions, including sympathy, sadness, ridicule and concern.
These feelings and perceptions are contained in two poems and essays written by Liang from 1904 to 1911. Ahn Jung-Geun was either raised to discuss the issue of the Joseon Dynasty or used as a topic from the beginning; ultimately, both cases targeted Chinese enlightenment.
The poems of Liang Qi-Chao, created under the theme of 'Ahn Jung-Geun', are <秋風斷藤曲> and part of <朝鮮哀詞>. The motivation of the poems is to praise Ahn's heroic deeds and to actively utilize his image in Chinese enlightenment, including the reform of national character. Also, among other essays such as <朝鮮亡國史略>·<日本倂呑朝鮮記>·<朝鮮滅亡之原因>, Ahn's depiction ultimately served as a point of awakening and enlightenment for China.
Moreover, Ahn was a very suitable person to promote the martial spirit, which Liang emphasized as one of the most ideal aspects of the theory of national character reform. In addition, Liang Qi-Chao portrayed Joseon's royal family and ruling class figures in a negative manner that was completely at odds with Ahn's perspective. Through this, he maximized the degree of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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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풍수적 측면에서 본 오키나와의 호우고(抱護)와 소마야마(杣山)

저자 : 천인호 ( Cheon In-h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5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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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오키나와의 호우고(抱護)가 소마야마(杣山)제도라는 산림정책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과 소마야마는 풍수의 호우고가 근간이 된 산림정책이었음을 논증하는데 있다. 본 연구의 결과 첫째, 오키나와의 호우고는 한국과 중국 풍수의 수구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낮은 언덕과 평지로 구성된 오키나와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적용되고 발전되었다. 둘째, 오키나와의 호우고는 양기에 적용되어 주로 지형상 요(凹)한 지역, 마을의 뒷산 등을 위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는데 이 역시 오키나와의 특수한 지리적 여건이 반영된 것이다. 셋째, 소마야마제도는 산의 등급을 호우고의 정도에 따라 분류하였다. 산림의 성장은 호우고가 닫혀 산기가 누설되지 않을 때, 산림의 황폐는 호우고의 문이 열려 산기가 누설될 경우라고 보는 등 호우고와 산림의 성장과 황폐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호우고는 소마야마제도의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마야마제도라는 산림정책은 결국 풍수가 근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림정책은 중국과 한국과는 성격이 다른 독특한 제도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전래된 풍수이론이 오키나와의 지리적 특성 등이 반영되어 다른 국가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형되고 발전되었다는 점은 풍수연구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 각국의 특성을 반영한 '상대적 기준'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This study intends to clarify the process in which Okinawa Hougo(抱護) is developed to forestal policy called Somayama(杣山). Further, it demonstrates that Somayama was forestal policy which became the fundamental of Hougo of Fengshui. Then, it is to debate that geographic peculiarity of Okinawa was reflected in peculiarity of Okinawa Fengshui & Hougo/Somayama.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Okinawa Hougo is concept similar to Sugu(水口: last point where water drains out) of Korean and Chinese Fengshui. However, Hougo is applied & developed in accordance with geographic property of Okinawa which is composed of low hill and plane field. Second, Okinawa Hougo was applied to village. It was built mainly to protect area where topography notably subsides and rear mountain of village. In case of protecting village, it does not merely supplementing weak mountain range but protecting village like folding screen. Peculiar geographic location of Okinawa is also reflected in this aspect. Third, Somayama classified grade of mountain depending on degree of Hougo. Further, it is deemed that mountain forest grows when mountain qi(山氣) does not flow out because of closed Hougo and mountain forest is devastated when mountain qi flows out because of open Hougo. Thus, it is deemed that the growth & devastation of mountain forest is directly affected by existence/inexistence of Hougo. As a result, Okinawa Hougo and Somayama developed as virtually same concept, not mutually different system & policy. Especially, forestal policy had concept of Hougo based on Fengshui. Eventually, Fengshui theory originated from China was applied to Okinawa and geographic property was reflected so that it might be developed in the direction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countries. This means that Fengshui study should ultimately become 'relative standard' which reflects property of each country, not 'absolute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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