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update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

  • : 한국사상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9441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7)~62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64
한국사상사학
62권0호(2019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지증왕·법흥왕대 왕실 상장례 변화와 그 의미 -지증왕대 상복법 제정·반행(頒行) 문제를 중심으로-

저자 : 박초롱 ( Park Choro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9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에서는 지증왕대 제정·반포된 상복법(喪服法)을 중심으로 지증왕과 법흥왕대 일어난 신라 왕실의 상장례 변화상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우선 6세기 중반 이후 채록되었을 것으로 파악하는 『수서』 신라전의 내용과 지증왕 3년의 순장 금지령을 토대로 지증왕 5년 반포된 상복법에는 국왕상에 대한 상복규정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를 동시기 중국·일본의 황제·천황 사망시 복상(服喪) 사례와 비교하고, 『삼국사기』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신라 국왕의 사망 당시 복상과 관련된 기록을 면밀히 살폈다. 그 결과 상복법에서 규정한 국왕상의 복상 기간과 상복 착용의 대상 등 구체적인 내용을 추정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증왕과 법흥왕대 일어난 상장례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상복법과 함께 순장의 금지, 시법(諡法)의 시행, 왕릉의 입지 및 묘제(墓制)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보수적인 묘제가 50~60년 사이 급격히 변화한 것은 국가적 차원의 강제적 조치로 파악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동시기 신궁 설치 및 국왕 즉위의례로의 정립과정 등을 생각하면 왕실 상장례 및 제례의 정비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증왕과 법흥왕대 일어난 신라 왕실의 상장례 변화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지증왕대 최초로 주군제(州郡制)가 실시되고, 신라라는 국호가 확정된 것은 경주 중심의 소국 사로(斯盧)가 아니라 피복속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적 국가 신라의 운영을 지향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상복법을 전국에 반포해 국왕상에 복상토록한 것은 기존에 차별해왔던 피복속지역을 포함한 '신라국'의 '국왕'으로서의 성격을 표면화한 것이다. 상복법 제정과 반포가 지증왕 4년 신라 국호의 확정과 마립간에서 '신라국왕'으로 존호 개정이 일어난 직후 처음으로 단행된 조치라는 점은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한편 율령 반포와 짝을 이루어 국가의례 정비가 일어났으며 유교식 상장례의 영향 아래에서도 신라적 전통이 유지된 것은 이후 신라의 예제(禮制) 운용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사항이라고 보았다.


This article summarizes changes in the Silla royal family's mourning and funeral rituals by focusing on the Mourning Law, which was established and promulgated during the reigns of King Chijung and King Beopheung, and discusses what these changes meant.
Based on records in Part Silla in Suseo, which were believed to be written after the mid-6th century, and a ban on sacrificial burial in the 3rd year of King Chijung, thisauthor viewed that the Mourning Law promulgated in the 5th year of King Chijung would have included rules on mourning clothes for a king's funeral. Thus, this author compared the above with mourning clothes worn for the death of a tennoorhuangdi (emperor) in Japan and China during the same period and closely examined records about mourning clothes for a king's death in Silla, which remained fragmentally in the Samguk sagi. Based on the results, this author conjectured specific requirements set forth in the Mourning Law such as the period of wearing mourning clothes for a king's funeral and for whom to wear mourning clothes.
Next, this article looked into changing patterns in mourning and funeral rituals during the reigns of King Chijung and King Beopheung. Along with the Mourning Law, different changes occurred such as a ban on sacrificial burial, posthumous naming, and a royal tomb's location and gravesite rituals. In particular, mandatory measures introduced at the national level seem to have drastically changed the tomb style, which tended to be conservative, in just 50 to 60 years. Considering the establishment of Singung and its development into an enthronement ceremony in the same period, it was identified that a series of such changes would have originated from the reorganization of the royal family's mourning and funeral rituals and ancestral services.
Finally, this author thought about the meaning of these changes in the Silla royal family's mourning and funeral rituals, which took place during the reigns of King Chijung and King Beopheung. The fact that the Ju-Gun system was implemented for the first time and Silla became the country's official name during the reign of King Chijung demonstrates that the country aimed for not Saro as a small country centered on Gyeongju but Silla as a unified country that covers conquered and subjugated regions. Promulgating the Mourning Law nationwide and requiring people to mourning clothes for a king's funeral during this process embodies the characteristics of 'King of Silla' integrating the conquered and subjugated regions, which used to be discriminated against. Meanwhile, it is worth noting the fact that national rituals were also reorganized coinciding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law and Silla traditions were maintained despite the influence of Confucian mourning and funeral rituals in terms of how Silla operated its ritual system.

KCI등재

2고려 국가불교의례와 경행(經行)

저자 : 강호선 ( Kang Ho S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58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석가모니 이래 경행(經行)은 좌선(坐禪)에 수반되는 수행의 일환이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수행으로서의 경행이 신라를 거쳐 고려에서도 사찰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수행으로서의 경행과는 다른 전통을 가진 가구경행(街衢經行)이라는 의례가 고려전기 국가의례로 개최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가구경행이라는 행사는 고려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 정종(靖宗)때 상례화되었다. 가구경행을 경행이라고도 불렀으나, 의례로서의 경행은 출가자의 습선(習禪)에 수반되는 경행과는 개최 목적, 주체, 참여자 등 모든 면에서 전연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 통상 매년 3월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던 가구경행은 왕명으로 시행되었고, 고위관료가 의례를 주관하였으며, 『반야경(般若經)』을 가마나 수레에 싣거나 머리에 이고 궁궐에서 출발하여 개경의 거리를 다니며 복을 비는 행사로 승려와 관료들이 행렬을 따랐다.
국왕이 친행하는 의례는 아니었으나 왕명에 의한 국가의례로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던 고려의 가구경행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의식을 시작하기 전 경령전(景靈殿)에 경행 실시를 고하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연등회나 팔관회처럼 태조신앙과도 관련된 의례이다. 또한 경전신앙에 바탕한 의례로, 특히 『반야경』 독송 공덕으로 기양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였다. 고려시대 가구경행은 개경 뿐만 아니라 지방의 읍치에서도 지방관의 주관하여 개최되었던 것도 특징이다. 가구경행은 조선건국 후 이를 혁파하자는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국행의례로 개최되다 세종 4년 폐지되었는데, 이 과정은 태종~세종초 국가의례 정비와 관련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This article aims to investigate one of national Buddhist ritual during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Gagu Gyeong-haeng(街衢經行). Originally, Gyeong-Haeng (經行, Cankama) is a Meditation practice from Sakyamuni Buddha in the Buddhist temple and meditation places in India and East Asia. Buddhist monks practiced it in the Silla and Goryeo Buddhist Temple also. However, the other Gyeong-haeng (Sutra parade) was begun in Goryeo dynasty as national ritual which held regularly every year by royal fiat. It is called Gagu Gyeong-haeng and has different tradition with Cankama. In March of lunar calendar, top government officials and Buddhist monks paraded streets in Gaegyeong, the capital of Goryeo. This parade started from palace, and people carried Prajuaparamita-sutra (般若經) on their head or cart or palanquin and they blessed and wished for disaster. The same ritual were held in the provinces managed by local office administrator. It was based on belief in Sutra especially charity of Prajuaparamita-sutra and shows characteristics of Buddhist ritual which held as national ritual in Gorye period. This Gagu Gyeong-haeng (Sutra parade) continued in Early Joseon Period as national ritual until King Sejong(世宗) formally repealed it in 1422.

KCI등재

315세기 승과(僧科) 연구

저자 : 양혜원 ( Yang Hye W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9-88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에서는 실록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통해 15세기 승과(僧科), 즉 선시(選試)에 대한 규정을 시간 순으로 추출하고, 그에 따라 승과 선발의 규모 및 운영의 실제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승과는 조선이 개창된 후에도 식년마다 꾸준히 치러졌으며, 개국초 제도를 일신하며 과거제(科擧制)와 유사하게 다듬어져 갔다. 승과 운영에 대한 규정은 조선 최초의 공식 법전인 『경제육전』부터 수록되었는데, 종(宗)별로 초선(抄選)과 입선(入選)의 2단계 시험을 보이며 최종 선발은 초선의 1/3만 뽑는다는 정수(定數) 규정이 그것이다. 이 틀은 『경국대전』에까지 원칙의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으나, 그 사이 불교 종파 통폐합의 결과로 최종 합격자 수가 감소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였다.
『경국대전』에는 승과 시험 과목이, 선종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 『선문염송(禪門拈頌)』, 교종은 『화엄경(華嚴經)』과 『십지론(十地論)』으로 명시되어 있다. 법전에 수록된 이 과목들은 선종과 교학 이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핵심 문헌들로, 불교계 내부의 수행 전통과 난이도를 충분히 고려한 위에서 지정된 것이다. 또한 이들 과목의 지정은 당시 불교계 내부의 변화를 반영하여 법으로 고정하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승과는 도승(度僧) 단계와 연결되어 최종 선발되는 승직자의 자질을 거듭 시험하여 걸러내는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 즉, 승(僧)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 자격을 점검하여 도첩을 발급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난이도 높은 과목으로 승과를 치렀으며, 시험 방식에 있어서도 도승은 송경(誦經), 승과는 강경(講經)으로 점차 어려워져, 최종 합격자는 불교적 소양을 십분 갖춘 엘리트 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건국 이래 연산군 10년까지 승과는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이 시기 조선에서는 고려 이래의 승과가 계속 치러지고 승직(僧職)이 제수되어 승정(僧政)의 요체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출가하여 선시를 보고 합격하는 것이 국가로부터 작질(爵秩)을 받는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의미한다.


Seungkwa(僧科) refers to the national examination to select Buddhist monk bureaucracy during Goryeo and Joseon Korea. Seungkwa was implemented in a systematic and stabilized way until 1504, Yeonsangun's reign. It was held every three years and refined similarly to Imperial Examination. The provisions of seungkwa were recorded in Gyongjeyukjeon(經濟六典), Joseon's first Code. It was continued in Gyeongkukdaejeon(經國大典), Joseon's second Code, without any major change in principle. It is noteworthy that the Buddhist scriptures, Kyeongdeogjeondeunglok(景德傳燈錄), Seonmunyeomsong(禪門拈頌) in Seonjong(禪宗) and Hwaeomgyeong(華嚴經) and Sipjiron(十地論) in Gyojong(敎宗) were specified in Gyeongkukdaejeon as examination subjects.

KCI등재

4조선 초·중기 불교와 유교의 심성론과 상호인식 -공적영지와 미발지각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 박정원 ( Park Jeong W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26 (3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조선 초·중기의 불교와 유교의 심성론을 살펴보고 이들이 서로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연구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통념적 방식의 유불 역할분담론-유교는 현세를 지향하며 정치를 담당하고 불교는 내세를 지향하며 종교를 담당한다-에 기초한 유불조화론이나 유불대립론을 넘어, 이들의 심성론과 상호인식 속에서 유불회통의 지점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연구자가 확인한 유불회통의 지점을 불교의 개념으로 말하면 공적영지(空寂靈知)이고 유교의 개념으로 말하면 미발지각(未發知覺)이다. 공적영지와 미발지각 개념은 모두 심(心)의 자성본용, 즉 심체(心體) 본래의 지각활동을 가리킨다. 조선 초·중기의 불교인과 유교인은 그들 스스로의 심성론을 통해 불교와 유교의 철학적 회통성을 통찰하고 있었다. 다만 불교는 이 회통성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알고 주장하였던 것에 비하여 유교는 15세기 건국 초기로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동안 대립의 단계에서 접근의 단계를 지나 회통의 단계로 접어드는 점진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more clearly the Universal-Mind-Theory and Mutual Cognition between Neo-Confucian ists and Buddhists in early-middle Joseon Era. Through these discourse, I would like to clarify the philosophi cally common convergence zone between these two teachings beyond to the opinions of merely role-shar ing model or simply good-neighbor model.
This philosophical convergence point of these two teachings is called 'Full-Empti ness-Spiritual-Knowing&Awakening(空寂靈知)'(Buddhism's term) or 'Unconscious Knowing& Awakening(未發知覺)'(Neo-Confuci anism's term). In These two concepts are all in volved one meaning of 'the Universal-Mind's own Knowing&Awakening nature(自性本用).'
Buddhists and Neo-Confucianists in early-middle Joseon era already knew these philosophical convergence of their two teachings. Buddhists recognized it constantly whereas Neo-Cofucianists changed slowly their attitude about Buddhism from antagonization to convergence.

KCI등재

5“중화는 소중화와 다르다[中華不類小中華]” -황재(黃梓)의 연행록(燕行錄)에 나타난 18세기 중반 중화 인식의 단면-

저자 : 남호현 ( Nam Ho Hy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7-160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18세기 중반 연행 사절단의 일원으로 두 차례 북경에 다녀온 황재의 연행과 연행록을 분석하여 그의 연행 태도와 함께 그의 연행록에 나타난 중화 인식을 고찰하였다. 황재는 연행 전부터 여느 '노론 청류' 인사와 마찬가지로 청나라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공유하였는데, 그 결과 세 편의 연행록에서 그의 주된 문제의식은 청나라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부각하고, 청나라 쇠락의 조짐을 발견하는 서술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재가 접한 여러 사실과 전문(傳聞)들은 그의 특정한 시각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되었다. 황재의 연행록에 나타난 청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의 주변과 조정, 임금에게까지 공유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중반 조선사회에서 연행록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여행기가 아닌, 중화 인식을 중심으로 한 특정한 시각을 조선 사회에 확산시키는 매개체로 기능한 모습의 단면을 보여준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Hwang Jae (黃梓)'s perception of central efflorescence (中華, Zhonghua) by surveying his tribute missions to Beijing and his records of the missions, or Yeonhaengrok (燕行錄). Having shared the strong animosity toward Qing China with Noron Cheongryu (老論 淸流) even before his tribute missions, Hwang highlighted the negative aspects of Qing and repeatedly found the signs of Qing's decline in his travel records. In the process of recording his missions, Hwang selectively reconstructed various facts and hearsay, filtered through his own lens of viewpoint. Hwang's pejorative perception of Qing China was shared by the royal court of Joseon Korea as well as other intellectuals. Hwang's records illustrate the fact that Yeonhaengrok functioned as vehicles that disseminated particular sets of evaluation of central efflorescence in the 18th century Korean society, rather than as mere personal records of travels.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이화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연세대학교
 80
 60
 53
 51
 43
  • 1 이화여자대학교 (80건)
  • 2 서울대학교 (60건)
  • 3 고려대학교 (53건)
  • 4 동국대학교 (51건)
  • 5 연세대학교 (43건)
  • 6 성균관대학교 (30건)
  • 7 강원대학교 (15건)
  • 8 경북대학교 (13건)
  • 9 건국대학교 (13건)
  • 10 서강대학교 (11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