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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hought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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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8)~9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505
한국사상과 문화
99권0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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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불 맹사성의 선비정신 연구

저자 : 이정화 ( Lee Jeong-hwa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2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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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은 공사가 분명하고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여 청백리의 표상으로 존숭되어온 선비이다. 유가에서는 인간을 덕성의 '싹'만 타고난 미완성의 존재로 파악하여 자신의 '솔성수도(率性修道)'를 거쳐야만 비로소 참다운 선비로 대성할 수 있다고 인식하였다. 참다운 선비들이 추구하는 학문의 도는 몸을 닦음에 있으며 몸을 닦는 방법은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데 있다. 선비들의 사유체계는 실천의 공부가 핵심이며 수양이 중시되고 행동의 절차와 법도가 강조되어왔다.
고불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보필할 때에도 늘 선정(善政)으로 나라가 다스려질 수 있도록 힘썼으며 덕치(德治)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실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 멸사봉공(滅私奉公)한 선비였다. 고불이 성심을 다하여 나랏 일에 힘쓴 까닭은 바로 국운(國運)이 태평성세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군왕을 보필하기 위함이었다. 일월(日月)의 무궁함처럼 태평한 국운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그의 마음은 지충보국(至忠輔國)의 의지를 담고 있다.
고불의 역사 인식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응시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거시적인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사료된다. 고불은 회고시를 지으며 국운이 쇠한 과거의 시대를 돌이켜보고 자신 앞에 다가선 현실 속에서 지충보국의 의지로 국운을 확고하게 지킬 것을 다짐하며 살았다. 그의 역사 인식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으며, 국운의 무궁함을 이끌어갈 군왕과 백성들, 무엇보다도 참다운 선비들의 실천력을 기대하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효의 도리는 선비가 실천해야 할 핵심적 가치인 것이다. 효를 실천한 고불의 사람 됨됨이가 뭇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선비들은 자신들도 순임금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아 실천하기를 다짐하며 살았으니 선비정신의 핵심에 효의 실천이 자리해온 세월은 유구한 역사성을 지닌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고불은 자신의 관직과는 상관없이 늘 소박한 차림으로 노쇠한 부친을 모시기 위해 근친을 갔다. 진정한 효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다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고불이 지향한 선비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후세인들이 그의 지극한 효성을 통해 이러한 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선비정신은 지속적으로 계승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This paper is an attempt to illustrate the spirit of the true human of Kobul. He is famous for his integrity and is a symbol of elegant and pure spirit. He was taught by a good scholar and had the integrity of a humble scholar since childhood. He was respected by the people of the world for his high humanity.
He was treated others in a low position, which suggests that his noble spirit was derived from humble heart.
He was a scholar who had always tried to practice his beliefs. His writings contained a true human heart. He valued the practice of filial piety and succession of learning and loyalty. His father emphasized studying to reflect on his life. He studied hard and practiced it, following his father's teachings, and therefore worked hard to learn and learn Confucius's studies.
He worked on moral politics so that both the country and the people could be at peace, and the king said that his virtues were the model of all his servants and the guide to life. He wanted a peaceful world to continue. A respect for parents is a key value that a true person should practice. The practice of love for parents is meaningful in doing his own true heart. This is the core of his life and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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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요한(朱耀翰) 시조에 나타난 모더니티

저자 : 송정란 ( Song Jeong Ra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5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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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자유시 「불노리」를 창작한 주요한은 3ㆍ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하면서 '조선주의'를 기치로 한 민족문학 발흥에 집중한다. 민중시인 민요를 근대시로 발전시키려는 '신시운동'을 주창했으며, '시조부흥운동'을 거치면서 시조 창작으로 이를 귀결시킨다. 근대시의 선구자로서 시적 궤도를 달리한 그의 후반기 시세계는, 반근대적 퇴보라는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신시운동'과 '시조부흥운동'은 외세로부터 우리 문학을 보존ㆍ계승하는 한편, 민족문학이라는 특수성이 바로 세계문학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자각한 근대 지향의 문학운동이었다. 따라서 주요한의 시조 창작은 외국 문학의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창적 국민문학을 건설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의 시조는 초기 자유시에 비해 시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근대적 감수성을 보여준 일부 작품에서 당대 여타 시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더니티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초기모더니즘의 미성숙 함으로 완벽한 모더니티를 구현하지 못했지만, 시조의 정형적 구조 속에서 근대적 정서를 분출하고 시각적 형태에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주요한이 염원했던 '새로운 시대정신과 시형을 담아낼 국민문학'의 기미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단편적으로 그친 것이 아쉬울 뿐이다.


Ju, Yo-han, the first poet of the Korean modern Free Verse, became interested in the development of the national literature based on 'Chosunism', after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He advocated the Campaign for New Poetry, which aimed to develop folk songs and popular narrative poetries into the national literature. He finally focused on the creation of Sijo poems, after the Sijo Revival Movement. Turning to traditional poetry, his later poetry world was rated as an anti-modern retrograde.
The Campaign for New Poetry and the Sijo Revival Movement were contemporary-oriented literary movements that preserved and inherited Korean literature itself from foreign influences. These movements had recognized special characteristics of the fork literature as the universality of world literature. Therefore, the creation of Sijo by Ju, Yo-han was aimed at building Korean own folk literature rather than imitating foreign literature.
Though some his Sijo poems that advocated modernism have been appreciated to be well embodied in poetic aesthetics, most works were criticized for their poor poetic perfection compared to his previous Free Verses. If Ju Yo-han, a greatest modernist in that time, had broken away from the obsession of folk literature and revealed his modern being in his works, he might have achieved a “national literature that contained the spirit of that time and new em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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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훈몽자회』하권의 분류화에 관한 연구

저자 : 서수백 ( Seo Su-baek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7-9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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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자학습서 『훈몽자회』하권의 이자동석(異字同釋)을 대상으로 그 분류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훈몽자회』하권은 상권이나 중권과 달리 세부 분류가 되어 있지 않고 분류항목 '잡어(雜語)'하나에 표제한자 1,120자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 최세진은 상권과 중권에 수록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의미의 허자들을 하권에 분류했는데 하권의 새김 어휘들을 살펴볼 때 구체적 의미의 실자 새김 어휘들도 상당수 있다. 이에 본고는 19세기에 편찬된 『자류주석』과의 비교를 통해 『훈몽자회』하권의 분류양상을 살펴보았다.
『자류주석』은 1856년 수암 정윤용이 편찬한 것으로 『훈몽자회』를 저본으로 하면서 기존의 한자학습서의 수준을 넘어 10,800여 자의 표제한자의 새김과 한문주석을 세밀하게 수록한 분류어휘집이자 한자학습서이다.
본고는 『훈몽자회』하권의 분류양상을 살펴보는 연구로서, 『훈몽자회』에서 동일 지면에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이자동석을 『자류주석』의 새김, 분류항목과 비교하였다.
비교 결과, 『훈몽자회』하권의 이자동석 260여 개 중 새김과 분류항목에서 특이점이 드러나는 51개의 이자동석을 추출하였다. 이들은 문헌 상호간에 새김이 같지만 분류항목이 다른 경우도 있고, 새김과 분류항목이 모두 상이한 경우가 있었다.
『훈몽자회』에서 이자동석으로 나타나지만 『자류주석』에서는 개별새김으로 제시되어 있고 상이한 분류양상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훈몽자회』하권의 이자동석 표제한자의 분류항목과 새김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고 한자의 의미 범주를 파악할 수 있다. 한자학습서의 목적에 따른다면 분류항목이 설정되어 있을 때 개별 한자에 대한 이해가 더욱 용이할 것이다.
새김 어휘의 의미와 분류에 대한 연구는 우리 어휘사 연구뿐만 아니라 현대 한자교육의 문제나 번역차원에서도 효율성을 더할 수 있는 작업이다. 새김 어휘와 분류항목의 체계화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면밀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There are 1,120 Chinese characters in last volume of Hunmongjahoe. It is grouping only by one category.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se about group by Meaning of synonym in last volume of Hunmongjahoe through compared with category of Jaryujuseok published in the 19th century. extracted fifty one of peculiar synonym from synonym in last volume of Hunmongjahoe. It is different in Korean rendering of Chinese characters and category compared with. Jaryujuseok. Among others same Korean rendering of Chinese characters but different category. And different not only Korean rendering of Chinese characters but also category. There are many synonym in Hunmongjahoe but different category and Korean rendering of Chinese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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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시대 성균관 노비들의 상벌 고찰

저자 : 장재천 ( Chang Jae-che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1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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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성균관은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관노들 때문에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균관 일은 성균관 노비들의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잘 수행하거나 공로가 있으면 칭찬, 보상, 기림을 받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저화 사용이 불편함을 상언해 수용되기도 하고, 유생 공궤 문제로 상언해 어전을 하사 받기도 하고, 전답을 사급 받기도 하였다. 성균관 여종이 열녀라고 정표를 한다든가, 세쌍둥이를 낳았다고 사관이 실록에 기록한다든지, 푸줏간 속전 감면 조치, 화재 진압에 앞장섰다고 요역 면제, 국장 인산 때 수고 했다고 요역 면제, 호란 때 위패를 보호했다고 정신국은 면천과 호성공신, 은배를 나르다가 야금을 위반했다고 순졸에게 맞은 일로 유생들이 권당까지, 성균관 노비들에게 생활자금을 대여해주어야 한다고 대사성이 상소, 붕당으로 인한 유생들의 부당한 명령 거부, 유생들의 종 구타 금지 등등 상찬과 관계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관노들 중에는 절도로 교형을 받은 일, 소 도살의 특권이 무분별해져서 임란 후나 정조 때에 박탈당한 일, 타 기관의 종들과 싸운 일, 선조 때 조정대신들을 비방하는 벽서 사건으로 성균관 종들이 심문 받거나 문초 당함, 과거시험 때 중간과정에서 농간을 부리거나 그것을 핑계 삼아 토색질, 상전을 믿고 방자하게 굴어 피해를 주는 일 등등 벌을 받는 일들도 많았다.
성균관 노비들도 삶의 애환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삶은 전적으로 성균관에 달려 있었고, 또 성균관 주변 반촌에 살면서 운명적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성균관 교관이나 유생들이 상전이었기에 피곤한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Joseon in the infrastructure belonging to the slave, Sungkyunkwan was kept because it is not exaggeration. The job of the daily lives of slaves, Sungkyunkwan was still performing well, or if there are any merits praise, there were things to be rewarded.
Sungkyunkwan's slaves had praise and rewards when they built their achievements. In other words, the use of paper money was said to be uncomfortable. Sungkyunkwan's woman slave had triple-twin births, measures to reduce the booty, measures to extinguish the booty, fire extinguisher exemption, exemption from the vigor, Requesting that funds be borrowed, rejecting unjust orders by the party, and prohibiting slavery from being slaughtered.
Among the Sungkyunkwan's slaves were those who committed suicide by stealing Buddhism, the privilege of butchers became indiscernible, deprivation of life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fought with the servants of other institutions, There were many cases of punishment, such as in the mid-course during examinations, chewing for exorcism, and believing in masterpieces and causing harm to others.
Sungkyunkwan's slaves have no choice but to live their lives because they depend entirely on Sungkyunkwan. In addition, living in a nearby village near Sungkyunkwan, it was destined to be made. They had to endure a tired life because they had to meet the needs of Sungkyunkwan's professors and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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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삼국시대 석비(石碑)의 제작과 양식(樣式)의 변모

저자 : 손환일 ( Son Hwan-il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3-14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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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金石)에 새긴 기록은 기념기록으로 오래도록 전하여 지는 것이 목적이다. 석비의 양식은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당나라의 석비문화를 수용하면서 변모되었다. 석비의 제작은 석공(石工)과 석수(石手), 찬자(撰者), 서자(書者), 각자(刻者) 등이 만든다.
각법(刻法)은 각자(刻字)의 기법(技法)으로 양각(陽刻)과 음각(陰刻), 음양각, 음평각 등으로 새긴다. 석비의 조각을 마치면 탁본하여 원본과 대조하고 교정한다. 각자(刻字)가 완성되면 각획(刻劃)에 주사(朱砂)를 칠을 하여 서단(書丹)을 하였다. 서단 후 송지(松脂), 아교, 밀랍 등을 도포하여 석비의 표면 부식을 막는다.
석비는 대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진흥왕순수비(568)>부터 비개(碑蓋), 비신(碑身), 비대(碑臺)의 양식을 갖추었다. 비대(碑臺)는 석비의 받침으로 통일 전에는 판형, 기단형 등이 유행되었다. 찬자와 서자는 참여한 관원들이 글을 짓고, 글씨를 써서 새겼다. 6세기 중반까지는 관원이 글씨를 쓰고, 글자를 새긴 역할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6세기 후반부터는 석수와 각수의 역할이 세분화되었다.


The purpose of the record on the monument is to be remained and remembered for a long time. The style of stone monument had been changed by accepting the monument culture of the Tang Dynasty, at the time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e production of monument were processed by various technicians: stone masons(石工, 石手), content writer(撰者), calligraphy writer(書者), carver(刻者) and so on.
The method of engraving was the technique of the gakja(刻字, a craft which engraves letters or paints on the woodblock) such as embossing, engraving, intaglio(engraving) and relief style(陰陽刻), intaglio(engraving) and flat style(陰平刻) and etc. When the carving had finished, artisan took a rubbing of the monument and compared the copy and the original and fixed the difference. As the letters-carving were finished, artisan was painting them with the cinnabar. After the process, artisan put pine resin, glue and beeswax on the surface to prevent exterior corrosion.
The material of the monument was usually the natural rocks as it is at first. From < Sunsu Monument of King Jinheung(568) >, the monument style was formed such as cover-stone(碑蓋), body stone(碑身) and footstone(碑臺). Footstone is the foundation stone, a stylobate style and a board style was popular before the unification of Kingdoms. Content writers(撰者) and calligraphy writers(書者) were consist of the government officials, they wrote the contents, wrote the calligraphy and carved it. Until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each official participated all the process, however from the late 6th century, the role was subdivided into the several parts such as stone mason and ca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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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 사직제례의 시대적 고찰

저자 : 이은용 ( Lee Eun-yo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9-17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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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은 고대 농경사회에서 나타난 제의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원시 공동체의 제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후에 유교와 결합하여 왕조시대에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제사의례가 되었고, 역대 왕조의 중앙과 지방에 설치되었다. 종묘와 함께 제일 격이 높은 대사다. 사는 토지의 주인이다. 토지가 광활해 두루 경배할 수 없으므로, 땅을 사에 봉해 공덕에 보답한다. 직은 오곡의 우두머리이다. 곡물의 수가 많아 두루 제사 지낼 수 없으므로 직신을 세워 이에 제사 드린다고 하였고, 왕이나 제후가 사직을 세우는 것은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고, 그 공에 보답하고자 함이요. 사람은 토지가 없으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수 없으므로 어느 한 쪽만 공경할 수 없는 까닭에 사직을 세워 제사한다고 하였다.
국가 의례는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인 오례로 구성되어 있다. 예치를 표방한 조선에서 매우 중시되었다. 오례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성리학적 질서 체계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정비가 추진되었다. 그 정비 과정에서 사직제의는 오례 가운데 길례 즉 국가제례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국왕을 주재자로 하는 제사의례는 만백성의 위에 있는 국왕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행사 의식을 동반하고 있는 점, 그리고 제단의 설립 등을 통해 지방 군현에 까지 통치 철학을 상징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의례로 간주되었다.
유교에서 제사의 근본목적은 생명의 원천에 대한 보답으로 이해된다. 곧 『예기』「교특생」에서는 “만물은 천에 근본하고, 인간은 조상에 근본하니, 이는 상제에 배향되는 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시원으로 돌이 킨다는 '보본반시'를 제사의 목적으로 제시하였다. 만물과 인간조상의 신이 모두 상제에 배향된다면, 모든 제사는 인간이 자기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고 그 근원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제사는 천 이하 모든 신을 인간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이 생명의 원천에 보답하기 위해 드려지는 젓임을 확인한다면, 유교에서 제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사와 보답에 있는 것이요, 제사의 목표는 생명의 근원인 신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기』「제의」에서는 천하의 예법으로 시원에 돌이킴에 이르는 것 귀신에 이르는 것 등 열거하면서, 시원에 돌이킴에 이르는 것은 그 근본을 두터워 하는 것이요, 귀신에 이르는 것은 위를 높이는 것이라고 하여, 생명의 원천인 신에 돌이키는 것을 방법으로 삼아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귀신에 이른다는 것도 제사를 통해 신과 일치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신을 높이는 것임을 보여준다.


The Sajik(사직 gods of soil and grain) was a cult made in ancient agricultural society and originated from a ritual of the primitive community wishing the god of land and the god of grain for the national well-being and good harvest, which later combined with Confucianism became the country's most important rite in the dynastic period, and was installed in the central and local parts of the entire dynasty, and was the highest memorial service together with Jongmyo Shrine(종묘). Sa(사) is the owner of the land. Since the land is vast and cannot be worshipped throughout, the land is bought by the company to repay its services. Jik(직) is the leader of five grains. Because of the large number of grain offerings, the king or Empress, who built the temple, will seek the blessing of the people and repay the tribute. A man cannot stand without land or live without grain, so only one side cannot honor, so he is to offer a memorial service.
In Confucianism, the basic purpose of sacrificial rites is understood as a reward for the source of life. Everything is rooted in heaven, and humans are rooted in our ancestors, and this is to repay the foundation of life and return to beginnings, and if all the gods of all things and human ancestry are to be betrayed to Shangje(상제), then all the sacrificial rites show that humans are to repay the source of their own life and seek its origin.
As the rite is the epitome and foremost of all etiquette, 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the rite. The rite is to pursue a rod of indecision, and the filial duty is to continue for a long time.
In the national rites system, Sajik(사직) is a ritual subject that clearly shows the unique nature of the Confucian rites. The resignation refers to a land god, a grain god. Land and grain are the most basic requisites for man to lead life, and the basic purpose of the resignation system is to reward God for meeting this requirement. However, the reason why resignation is important in the national rites is because it is the god and altar that symbolizes the nation itself.
In the Joseon Dynasty, there was a very large change in such state rituals. One is the fact that, among other things, the new quartet who founded the Joseon Dynasty accepted the doctrine of sexuality as the only religion of the nation and sought to establish a governance system according to its values and worldviews. Neo-Confucianism is a very exclusive doctrine rather than traditional Confucianism or Buddhism, and above all, it placed importance on cause and tradition. They attempted to organize the national dictionary, which had been handed down from the previous generation,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the ethnological justification. Since the Goryeo Dynasty, Jongmyo and Sajik were honored with a first-class state rite, or ambassador.
The ritual of heaven is a national religion that is established within a single state system. In this regard, The ritual of heaven has its universality as a Confucian rite aimed at the realization of with all one's heart and soul, while the specific patterns of practice shown in history have its special characteristics as a national religion established in relation to each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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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계의 주역 철학

저자 : 김익수 ( Kim Ik-soo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9-20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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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의 경서변의(經書辨疑)는 선생의 평생의 학문적 공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한국경학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사계전서』에 보면 선생이 삼경(시경, 서경, 역경)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학문의 깊이를 다졌다고 하는데 본 연구에서는 삼경 중에 성리학의 골간이요, 사서오경의 중심축인 주역철학을 먼저 논제로 삼았다.
본 연구자는 선생의 주역철학을 3차에 걸쳐 연구하려고 한다. 경서변의에 내재한 『주역』「상경」에 대하여는 본 연구자가 기 연구 발표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제2단계로 『주역』「하경」의 쟁점이 되는 주요 연구문제를 총망라하고, 심층으로 연구한 수많은 항목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심오하고도 해박한 선생의 주역철학을 감히 겸허한 자세로 탐색해 보았다.
이 연구의 결실을 연구자의 지적 재산으로 묶어 두기보다는 후학들의 학문발전을 위하여 주제별로 친근하게 보설을 붙이는 것이 본 연구의 주된 내용이다.


The book “Gyeongseobyeonui” authored by Sagye is considered to be his life time accomplishment and also a milestone i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 Classics. Sagyejeonseo shows that Scholar Kim Jang-Saeng has ruled his mind and strengthened his scholarly knowledge through the so-called Three Classics('Shigyeong(the book of songs), 'Seogyeong(the book of history)' and 'Yeokgyeong(the book of changes)'). In this study, the research focuses on the I-ching philosophy, which is the main topic in neo-Confucianism and the main topic in Sagyeong(the four classics) and Ogyeong (the five classics). I have studied the Scholar Kim Jang-Saeng's I-ching philosophy in three stages.
I have already studied the Juyeoksangyeong which is embedded in Gyeongseobyeonui and released the results. This study would handle all issues which are the controversial points in the Juyeokhagyeong in the second research stage, group many items into several topics after in-depth research and then research Scholar Kim Jang-Saeng's I-ching philosophy in a humble manner. Instead of restricting the study's outputs to an intellectual property, I hope that the interpretations on each topic in this study would be used by the subsequent researchers who are recommended to make the further studies on this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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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용득의(龍得義)의 사상을 통한 아카이브 구축과 전망Ⅰ

저자 : 유성선 ( You Sung-seon ) , 용호선 ( Young Ho-s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1-23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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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득의(龍得義; ?-?)의 키워드는 홍천학, 홍천 용씨 시조, 팔만대장경, 금학산, 학서루, 용수사로 압축할 수 있다. 용득의의 생평상 생졸년은 미상이다. 따라서 용득의의 선행연구와 학술적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는 1236년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의 16년 동안 1차 몽골의 침입 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이 소실되었던 것을 고려조 문하시중으로 재직하며 고종 12년까지 30년간 최고행정관으로 재 각판을 지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그는 만년 금학산에 용수사를 건립하고 중생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불도들의 수련장으로 학서루를 창건, 경서와 시례(詩禮)를 강론하였으며, 다사(多士) 및 준재(俊才)를 많이 육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용득의가 분명 고려조 민족문화의 창달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본 논의의 차제는 학행과 사상/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의 간행 추이 및 스토리텔링/ 금학산(金鶴山) 및 용수사(龍遂[水]寺) 자료조사와 건립/아카이브 의의와 전망이다. 논자는 여기서 용득의의 생평과 학행의 연구와 더불어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의 간행추이를 면밀하게 살필 필요성이 있음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홍천 용득의의 삶을 금학산의 위치와 용수사의 위치를 전문가와 정확하게 살피고, 동면 덕치리의 기념관과 수타사 및 산소길을 연결하는 콘텐츠 개발 및 아카이브 구축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금학산의 용수사와 학서루의 위치 선정과 건립 등은 가능한 일이며, 아카이브 구축 이후의 일은 전문가와 홍천군 행정관서의 몫이다. 용득의 생평과 학행을 통한 홍천 아카이브 구축 방안은 분명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용득의의 생평과 학행을 통한 인문학 콘텐츠 및 안내 앱을 결합한다면 멀티미디어 자원을 지원하는 지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Key words of Yongdeukeui(龍得義; ?-?) can be summarized into Hongcheonhak, the progenitor of Hongcheon Yongs, Tripitaka Koreana, Geumhaksan Mountain, Hakseoru, and Yongsusa Temple. Yongdeukeui's date of birth and death in his life is not known. Therefore, the precedent studies and scientific discussion on Yongdeukeui cannot be examined. He is estimated to have directed re-engraving blocks of Tripitaka Koreana in Haeinsa Temple which had been destroyed by fire in the 1st rebellion of Mongolia for 16 years from 1236(The 23rd year of Goryoe Gojong's reign) as he was a chief executive officer as Munhasijung of the Goryeo Dynasty for 30 years until the 12th year of Goryeo Gojong's reign. After that, he built Yongsusa Temple in Geumhaksan Mountain and made people raise their hopes. And he gave sermons about the Confucian classics and Sirye(詩禮) by founding Hakseoru as Suryeondoryang of Buddhists. He is estimated to have trained a lot of Dasa(多士) and Junjae(俊才). It is thought that Yongdeukeui made a contribution to the promotion of national culture of the Goryeo Dynasty.
This discussion's table of contents is Yongdeukeui's Thought, life and learning and virtue/ Storytelling and the change of the publication of Tripitaka Koreanarma/ Building Geumhaksan Mountain(金鶴山) and Yongsusa Temple(龍遂[水]寺)/ The meaning and prospect. The writer recognized the necessity of examining the change of the publication of Tripitaka Koreanarma with a study on Yongdeukeui's life and learning and virtue. And Yongdeukeui's life in Hongcheon and the locations of Geumhaksan Mountain and Yongsusa Temple were exactly examined with an expert. It is thought that the development of content and building an archive to connect a memorial hall, Sutasa Temple, and Sansogil to one another are urgently required. Through these records, it is possible to locate and build Yongsusa Temple and Hakseoru in Geumhaksan Mountain and work after building the archive is up to experts and administrations and agencies in Hongcheon. The plan to build Hongcheon Archive through Yongdeukeui's life and learning and virtue seems to be clear. In conclusion, if humanities content and guide app. through Yongdeukeui's life and learning and virtue are combined with each other, the intellectual archive which supports multimedia resources can be built.

KCI후보

9동양사상 기(氣)에 관한 과학적 접근과 원용

저자 : 조한석 ( Cho Han-suk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5-27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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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동양사상의 '기'에 관한 과학적 접근과 원용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기'는 동양사상에서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에너지(Energy)는 물리학적 개념의 발전과정에서 정립되어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의 개념은 정량적(定量的) 정의가 이루어지기 이전, 다양한 사람들의 통찰(洞察)에 의해 정성적(定性的) 방법을 통해 정립 되었다. 기원전 200년경 동양철학의 음양오행 사상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의학서 황제내경(皇帝內徑)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최근 『황제내경』에서 제시한 경락의 실체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밝혔다. '기'는 봉한관(管)으로 흐르는 '산알'의 DNA 생명정보와 빛에너지이며, 신경은 전기로 신호전달을 하는 반면 경락은 빛을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 체계로 봉한관은 몸 안의 '광통신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물리학에서 정의된 에너지가 유용하게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에너지 보존법칙이 확립된 이후의 일이다. 정량적 정의에 의한 에너지 보존법칙이 확립되면서 에너지의 종류는 운동에너지·위치에너지·열에너지 등의 종류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20세기 초반, 중요한 성질로 밝혀진 것이 에너지의 양자화 현상이다.
더 나아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기본 상호작용[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외에 토션 필드(Torsion Field) 라는 제 5의 힘이 존재하며, 토션 필드의 영향력은 중력이나 전자기력처럼 거시적이며 강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션 필드의 발견으로 그 동안 기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실험결과들 뿐만 아니라, “기(氣), 염력(念力), 텔레파시(telepathy) 등과 같은 초상현상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토션 필드를 인공적으로 발생시키고 조정하고 측정하는 방법과 다양한 응용기술이 개발되어 왔다.
따라서 중세 이후에 발전되어온 기(氣)에 관한 학문적 성과와 서양에서 정립된 과학적 개념인 에너지에 관한 관점들을 서로 연관 지어 공통된 맥락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astern ideas defines “Gi” as a 'profound and fundamental energy for a creation of the universe”, while an energy itself is defined as “capable or able to work”, which conception evolved and established through physical studies and adopted by the world as an imperative. In this paper, scientific approach of “Gi” is to be assessed.
Prior to the establishment of definition for “Gi” in a concept of quantitative, various pragmatic practices by many pundits in qualitative perceptions were presented. As one of the examples, during BC 200, based on principles of yin and yang embedded medical doctrine called “HuangJe NaeGyung” was written.
Recently, the meridian system presented by HuangJeNaeGyung were corroborated through scientific assessment. “Gi” is verified as a combination of “SanAl” DNA information and light energy flowing through Bonghan duct (independent of the paths of vessels and nerves), where the nerves signal electricity, the meridian system signals with light, thus, the Bonghan duct is compared as “optical network” of the body.
The “energy” which were defined by physics started be used widely only after when the law of conservation of energy was stipulated during 19th Century. Energy has been categorized into several types such as kinetic energy, potential energy, thermal energy and more, upon the stipulation of the law of conservation of energy. In early 20th Century, upon tenacious efforts, very important nature of energy has unraveled, namely, quantization of energy.
Furthermore, other than four basic types of interaction (gravitational field, electromagnetic field, weak force, strong force) exist in the nature, the torsion field, 5th energy is discovered and known to be comprehensive and strong as gravitational and electromagnetic field. The discovery of this torsion field provides scientific explanation of surreal phenomenon “Gi”, “psychokinesis” and “telepathy”, which were unable to be explained by existing physics theory. All sorts of application have been developed and tested which artificially generate this torsion field, control it anyway possible.
Therefore, Should we be able to recognize a common context by linking academic achievements on “Gi” (developed since the Middle Ages and perspectives on energy), and a scientific concept established in the West, this could be the eye opening of a new paradi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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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항과 노수신의 인심도심 논변

저자 : 심해출 ( Shim Hae-chul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9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4-299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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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이항(李恒)과 노수신(盧守愼)은 인심, 도심의 해석을 두고 심각한 논변을 벌였다. 두 사람의 논변은 과정에서 합의나 수용이 없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개념적 정합성의 문제 및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것도 거론되었다. 이는 거의 동시대에 전개된 사칠논변과 더불어 당대 유자들의 성리학적 개념과 논리틀에 대한 훈련을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논변의 내용은 사실상 『곤지기(困知記)』와 나흠순에 대한 비판과 수용의 문제였다.
이항이『곤지기』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의 관점에서 대했다면 노수신은 주희의 해석에 담긴 논리적 부정합성을 탈피하려는 노력에서 인심도심체용론이라는 해석체계 모색에 대한 수용과 지지였다. 이 논변의 과정 에서 조선 학계는 『곤지기』와 육왕학(陸王學)에 대한 경계심이 일어났다. 노수신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당대 및 후학들의 평가에서 선학(禪學) 또는 육왕학으로의 흐름을 경계하거나 주자학의 체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염려가 많았고, 다른 일면 둘로 나누는 것, 호발설에 대한 반발과 대안찾기이고, 또 나름의 자득의 묘가 있다는 상반성을 볼 수 있다. 언어게임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노수신의 인심도심의 체용론적 해석은 나름 훌륭한 철학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e middle of the 16th Century in Chosun Dynasty, two philosopher Lee Hang and did hot debate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Resin-Daosin Concept. Their arguments was proceeded very seriously no agreement nor acceptance. And they occurred the ploblems about logical consistency and the attitude of learning. It could be sayed that their argument strengthened the ability of training of Neo Confucian concept and logics of Contemporaries Scholars as well as four-seven Debates which held between Lee Hwang and Ki Tae Seung.
In fact, the concent of their argument was the problem of which one should take a pro or anti attitude for the book knowledge acquainted with painfully and he writer of that book Na Heum Sun. Lee Hang attack that Book and the person of the writter as a turbulence maker of Confucianism, No Su Sin advocated the interpretation system of Rensin Daosin body-function of his theory and effort to solve the problem of inconsistence among the Chu-Xi's interpretations.
In this process, they worry about that book and the writer in the world of Chosun academy. Comments on No So Sin's theory held by scholars of contemporaries and later time, was various. We Could see pro and anti tendency among them. One is that there are heavy worries about him because of zen buddhism and Lu-Wangism and outward of Chushism. The other hand was that it was to seek the alternative and anti of two track, and characteristic of No's self acquaintance of truth. In terms of language Game, No's Rensin daosin body-function interpretation is very interesting and meaningful activity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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