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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update

ORIENTAL ART

  • : 한국동양예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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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5-0927
  • :
  • : 한국동양예술학회지(~2000) → 동양예술(200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4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20
동양예술
44권0호(2019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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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동래학춤이 현대인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중심으로

저자 : 강기화 ( Kang Ki Wha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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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장자(莊子)』의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이라는 도가(道家)의 핵심 사유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여, 동래학춤이 현대인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한 것이다. 동래학춤의 춤사위[날음 사위<'활갯짓뜀사위(날음새)' ㆍ '좌우활개사위' ㆍ '돌림사위'>, 머뭄 사위<'일자(一字)사위' ㆍ '외발서기사위'>, 멈춤 사위<'배김사위'(煎)(後) ㆍ '뒷배김사위' ㆍ '좌우배김사위'(右) ㆍ '모둠뛰기사위'(右)(左)>]들은 자연에서 학(鶴)이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모습을 춤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이러한 모습을 표현하는 무수(舞手)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심재'와 '좌망', 즉 '마음 비우기'와 '욕심 버리기'를 하게 됨으로써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자기 수양을 통해 건강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심재'와 '좌망'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담아 풀어 본 동래학춤의 장점은 인위(人爲)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무위자연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수양법으로써 더할 나위가 없을 것으로 본다.


This study explores the positive effect of Dongrae Crane Dance upon modern people's health based on the philosophical basis of the core reason of Taoism (道家), Zhuangzi's (莊子) 'Shimjae (心齋)' and 'Jwamang (坐 忘)'. Movements of Dongrae Crane Dance such as [naleum-sawi< 'flapping and jumping movement (Naleumsae)' ㆍ 'right-left flapping movement' ㆍ ' Dolim-sawi' >, meomum-sawi < '一' shape movementㆍ 'one foot standing movement' >, pause movement < 'baegim-sawi'(煎) ㆍ 'back-baegimsawi'' ㆍ ' right-left baegim-sawi' ㆍ 'modum jumping movement' >] are embodied by dancing the shape of crane's (鶴) free willing natural nature (無爲自然). The musu (舞手), which expresses these shapes, by abandoning private things and following the natural flow of things, makes 'Shimjae' and 'Jwamang', that is to say, 'emptying the mind' and 'discarding the greed', it is possible to find health through self-discipline, away from the stress, a source of every disease. Likewise, the advantage of Dongrae Crane Dance, which is based on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Shimjae' and 'Jwamang', is that it pursues a deserted nature that is not artificially (人爲) manipulated. Therefore, it seems to be suitable as a way of self-discipline of modern people living in unhealthy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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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 후기 중서인(中庶人) 화가(畵家)의 회화(繪畵)에 드러난 장자적(莊子的) 심미(審美) 연구

저자 : 김도영 ( Kim Do You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5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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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약 1700~1850년)의 사회·경제의 변화 양상은 조선의 신분 제도에도 영향을 끼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성리학적 삶의 태도나 사유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해소시켜 주지 못했다. 이런 시점에서 신분상 차별과 사회적 제약을 받았던 조선 후기 중서인 화가들에게 있어 다양한 寓話를 통해 현실세태를 풍자 비판하는 『莊子』的심미는 유효한 문예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기존의 제도화 규정화된 모든 것을 否定하는 否定의 심미·역설적 논리 정신을 통해 '無爲自然'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莊子的사유를 자기화하여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펼친 조선 후기 중서인 화가들은 사대부 문인들의 문화적 영향권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성정에 의지하여 天機를 발현하는 독자적인 性情論과 더불어 手藝論을 강조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등 양반사대부를 능가하는 예술적 성과를 이루었다.
조선 후기 중서인 화가들이 장자적 경향을 보인 이유는, 첫째, 신분제가 흔들리고 중앙정부로부터 민심의 이반이 본격화되면서 인간 삶에 대한 회의와 각성이 일어나고, 성리학 이외의 사상에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찾으려는 예술적 동향이 모색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개성적 화풍과 새로운 기법을 통해 예술창작물로 발현하기에 장자사상이 적절한 예술심미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질과 능력에 비해 단지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받았던 편견과 멸시를 회화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자부심을 표출하고, 순응하기 싫은 현실에 대한 울분의식을 거침없이 분출하였다.
李麟祥은 명문가 집안이지만 庶子출신이라는 신분적 배경이나 주변 환경 등에서 겪었던 차별과 갈등 그리고 고뇌를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회화로 승화시켰는데, 세속과 거리를 두고 自適其適한 초연함이 가득하다. 崔北은 '非古非今'의 독자성과 변혁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筆勢의 動을 통해 담박한 自然之道의 기괴한 野性美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격식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천성은 장자적 경향을 보이며 삶의 기행으로 표출되고, 파격적 화풍으로 발현하였다. 金弘道는 天機와 功力을 통해 20대 초반에 이미 궁중화원으로 명성을 날려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 천재 화가로 평가받는다. 50대 이후 자연의 순리에 맞춰 隱居之樂으로 逍遙自適코자 하는 이상적 삶을 지향한 화풍을 드러내었다. 여백을 통해 有限相生의 새로운 遊心을 창출하였는데, 無己한 隱者의 내면의 흉중을 표현해 遊樂의 逸氣를 발현하였다. 莊子사상에 심취했던 趙熙龍은 구도와 기법에 있어서 파격적 개성과 得手應心의 완숙미가 돋보인다. 특히 梅花書屋圖에서 흑백의 색채대비를 통해 음양대대의 조화를 이룬 활짝 핀 매화와 米點皴의 변형된 역동적 유희적 필치로써 자유롭게 그려내는 手藝의 기이함이 천지자연과의 조화로써 大巧美를 이루었다. 29세에 타계한 田琦의 疎林淸江은 形似의 엄밀함을 배제하고, 갈필을 구사하여 대상물의 핵심을 寫意的이며 簡逸한 화풍으로 묘사하였다. 전반적으로 淡泊한 절제미가 두드러지니 인생무상의 탈속적 고요함과 蕭散簡遠한 쓸쓸함이 화면 가득 느껴진다.
이처럼 이들은 신분으로 인한 차별과 울분을 초월·극복하여 기존의 심미의식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이전의 고정된 틀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탈속적 雅趣와 자연본성적 天機를 대담하면서도 개성적 화풍으로 발현하며 절대자유의 逍遙遊심미를 지향하는 등 신지식인 문화를 선도하였다.


The social and economic changes of In the late Joseon period (above 1700-1850) affected the identity system of Joseon, and thus began to falter the order of status centered on the yangban. The attitude or way of thinking of life in the study of the seongli has no longer fully resolved the value and meaning of life. At this point in time, for the Middle and Bastard Class painter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ho were discriminated against and socially restricted, the On Aesthetic Appreciation of the Chuangtzu was used as a valid literary tool through various fables. Painter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ho spread a creative and individual art world by making their own on-though of the Chuangtzu, who wanted to return to " letting nature be" through the aesthetic and paradoxical logic of negation of everything existing institutionalized and regulated, did not remain within the cultural influence of the yangban. He has achieved artistic achievements that surpass the yangban by resorting to his own semblance, and by using a style of painting that emphasizes the theory of handling the art of hand, as well as the theory of expressing cheongi. The reason paint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showed on tendency of the Chuantzu was because, first, the shaky status system and the full swing of public sentiment from the central government led to meetings and awakenings about human life, and the artistic trend of seeking meaning in ideas other than the study of the seongli was sought. Second, I think it is because the thought of Chuangtzu provided a proper artistic beauty to express it as a creative product through the form of individual paintings and new techniques. They expressed their artistic pride through paintings of the prejudices and disdain they received for their low status compared to their qualities and abilities, and vented their anger at the reality they did not want to obey.
Lee In-sang expressed the discrimination, conflict and agony he experienced in his birth background and surroundings as a life-long painting through the beauty of nature. It is full of the joy of living and the joy of living that is contented, seeking pleasure for itself, away from the world in which humans live. Choi Buk constantly pursued creativity and change that was never and is not. The spirit of the brush ironically expressed the tenacity of nature and its grotesque wildness through its movement. And the freewheeling nature of the form showed the ontendency of the Chuantzu and expressed it in the bizarre behavior of life and the unconventional form of painting. Kim Hong-do is regarded as a genius painter who painted the most Korean painting because he already made his name as a palace painter in his early 20s through his efforts with Cheongi. Since his fifties, he has shown a style of painting in which he pursued a life in which he wanted to enjoy himself with the joy of seclusion to the flow of nature. The margins created a new beauty of helping and relying on each other, expressing the spirit of 'yu' by expressing the reclusive person's mind. Cho Hee-ryong, who was fascinated with on thought of the Chuangtzu, stands out for his unconventional personality in structure and technique and the mature beauty of Deugsueungsim. In MaehwaSeokdo in particular, the weirdness of hand technique, which is freely drawn as a dynamic, playful brushstrokes of a wide-open plum flower and a modified dynamic and playful technique of Mijum contrasted with black and white colors, was harmonized with nature. Chen Gi's Solimchenggang , who died at the age of 29, expressed a desolate, restrained beauty through the control of dry brush and large and small, thick and thin, thick and thin, full of a lonesome, concise feeling of life's futility.
As such, they overcame discrimination and anger caused by their status to seek constant self-change, denying and criticizing the previous fixed framework rather than blindly following the existing aesthetic consciousness. Thus, the elegant taste was removed and the cheongi of natural nature was expressed in bold yet individual painting form, and the new knowledge culture was led by the promotion of Soyoo aesthetic of absolute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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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검여(劍如), 시·공을 초월한 예술 혼(魂)의 흐름

저자 : 김현미 ( Kim Hyun Mi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70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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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검여 유희강(柳熙綱, 1911-1976)의 기증 특별전, < 劍舞, Black Wave >를 기념하여 그의 서예 인생과 그의 작품을 흐르는 동양의 예술 혼(魂)을 논하였다. 유희강은 전근대와 근대, 현대를 이은 한국 서단의 대표 작가였으며, 서예가로서는 치명적인 재앙이었던 반신불수의 상황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좌수서예'라는 예술 세계를 개척하여 예술인의 귀감이 되었다.
글의 순서는 먼저 유희강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두 번째로 유희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서악부>를 통해 200년 세월을 관통한 한국 서예의 흥(興)을 논한 후, 끝으로 전근대와 근대, 현대를 잇는 역동의 시대를 살아냈으며, 각각 한국과 중국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 공간의 대표 서화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유희강과 치바이스(齊白石, 1860-1957)의 작품 세계를 비교함으로써 현대로 이어진 동양 전통 예술의 혼과 사의(寫意)를 논한다.


In commemoration of the special exhibition of the donation of Geomyeo, Yu Huikang, this paper discussed his calligraphy life and the Oriental art spirit that flows through his works. Yu Huikang was a representative artist among Korean calligraphers, connection the former and modern times, and he pioneered the art world of "calligraphy with left hand" with an indomitable spirit even in the midst of an hemiplegia situation, a deadly disaster for a calligrapher.
The order of the writings was first summarized in the life of Yu Hui-kang, and secondly, the representative work of the Yu Huikang, discussed the < Kwanseoakbu > of calligraphy that passed through 200 years, and finally compared of the works of Yu Huikang and Qi Baishi to discuss the soul and spirit of traditional Oriental art. They are each artists representing Korea and China, and lived in a dynamic era connecting the pre-modern and modern of each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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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의미한 행위 실천의 의미 :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와 송동(宋冬)의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배현진 ( Bae Hyun Ji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9-14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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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 1959- )와 송동(宋冬, 1966- )은 '걷기'와 '쓰기'라는 일상적 행위를 무한 반복함으로써 무의미한 행위 실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작품을 진행한다. 본고에서는 이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그들의 비생산적이고 비능률적인 하지 않음이 가지는 시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의미를 읽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 1959- )의 시적 행위로 서의 걷기에 대한 작품을 다룬다. 예를 들어 '때로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는 멕시코시티의 거리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작은 얼음조각이 되어 흔적만 남길 때까지 밀고 다니는 작품이다. 그의 이러한 작업들은 인간 노고의 무상함과 정치적 사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행위와 연결된다. 3장에서는 1990년대 중국현대미술 속 문자 쓰기라는 행위 실천과 송동(宋冬, 1966- )의 물로 기록하는 일기나 시간과 같은 작품 속 쓰기라는 행위가 가진 동양 철학 속 무위(無爲)적 태도를 탐구한다.
4장에서는 두 작가가 작품에서 무의미한 행위 실천을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소재인 물이나 페인트가 가지는 의미와 쉽게 사라져버리는 인간의 노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아가 사색과 수신(修身)으로서의 반복적 과정인 두 작가의 걷기와 쓰기를 통해 세계가 안고 있는 복잡한 정치, 사회적 문제를 되새기고 그 의미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시선을 변화시킨 행위 과정을 언급한다.


一位生活在墨西哥城的比利時藝術家弗朗西斯·埃利斯(Francis Alys, 1959- )和生活在北京的宋冬(Song Dong, 1966- ), 通過无限重復'步行'和'寫作'的日常活動來完成創造无意義行爲的工作。在這篇文章中, 試圖閱讀他們的非生産性和低效率的詩意和社會政治的意義。
第二章, 弗朗西斯·阿爾斯將步行描述爲一種詩意的行爲, 例如, 推着一個巨大的氷塊穿過墨西哥城的大街, 最初氷塊的重量讓他覺得很吃力, 不過隨着時間的推移巨大的氷塊變成人一塊若隱若現的水漬. 他的藝術通過充滿詩意, 進行發問政治、社會的主題, 幷引起了人的努力和勞動的, 與可以擴大政治思想可能性的行爲有關。在第三章, 探討了在20世紀90年代中國當代藝術中以文字寫作來作爲實現行爲藝術家, 而進行說明在宋冬以水作爲紀錄的日記和時間的作品中寫作行爲的無爲態度。
第四章, 將硏究水和油漆的重要性, 這是兩位藝術家在作品中用來練習无意義行爲的典型材料, 以及容易丢失的人類勞動的意義。此外, 通過他們的行走和寫作, 認識到重復的思索和修身過程, 我再次意識到世界上復雜的政治和社會問題, 爲了更接近其含義, 筆者想談論改變人們凝視的行動過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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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동용 위인전 표지디자인에 나타난 복식 표현에 관한 연구 -다산 정약용을 중심으로-

저자 : 이동아 ( Lee Dong A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7-22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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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의 표지디자인은 해당 인물의 아이덴티티가 시각화되어 인물에 대한 주요 업적 및 특징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위인전 표지디자인의 구성 형태 중 다양한 요소와 함께 인물의 초상화가 있는 경우 아동에게는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인물이 생존 했던 시기의 복식, 문화등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동용 위인전의 표지디자인은 친밀성과 창의적 구성을 바탕으로 하며, 인물의 복식은 정확한 고증에 의해 표현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다산 정약용 아동용 위인전의 표지디자인에 나타난 복식의 비교, 분석 및 고증을 바탕으로 한 복식의 형태 및 색상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에 정약용 생존시기(18세기중반~19세기초기)를 중심으로 문헌, 유물, 초상화와 풍속화에 나타난 복식을 고찰 후 2015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인터넷서점 교보문고, 알라딘, 반디앤루니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아동용 정약용 위인전 336권 중 총 32권의 표지디자인에 가장 많이 나타난 복식인 단령과 도포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고찰 결과 다산 정약용의 아동용 위인전 표지디자인에 나타난 복식 제안은 다음과 같다. 표지 디자인에 나타난 단령(團領)의 색상은 상복은 청색과 녹색, 시복은 홍색계열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문헌과 초상화에 근거하여 상복은 흑색 또는 검은 녹색으로, 시복은 옅은 분홍, 앵삼은 앵무새색(연두색)으로 제안하였다. 도포(道袍)의 색상은 표지디자인의 도포와 문헌 및 풍속화에 나타난 색상과 같다. 표지디자인에 나타난 단령(團領)의 형태는 1점을 제외하고 조선 초기 깃 형태이며, 소매는 통소매와 붕어소매로 나타났다. 이에 문헌과 유물에 근거하여 깃 깊이는 17~20cm내외이므로 초상화의 형태를 바탕으로 하여, 앞 목점 하단보다 내려온 지점을 깃 깊이로 하며, 소매는 광수에 두리소매로 제안한다. 도포(道袍)의 깃 형태는 칼깃과 동그래 깃으로 추정되며, 소매는 단령과 같은 통소매와 붕어소매이고, 여밈의 깊이는 옆선에 이르는 깊은 여밈 또는 몸 중심선에 가까운 위치이다. 이에 도포의 깃은 동그래깃 또는 칼깃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고, 소매는 광수에 두리소매로 하며, 여밈은 옆선과 몸판의 중심선 즉 고대 끝 지점에서 내려온 부분에 위치되도록 제안하였다.


Biographies, the important book building the foundation for the basic understanding and pride on the history of Korea, are the model and the indication for further direction for all generations including children and teenagers through the teaching from scholars in the past. A biography enables to indirectly understand the major achievement and features of a relevant person in that biography through the cover design like other books because the identity of that person is visually expressed on that cover. Furthermore, the readers can meet the clothing culture of the relevant times as well as enhance their understanding on the character through the portrait of that character on the cover of the biography if any. In particular, such portraits arouse children's interest on the bibliographies and make them remember the relevant characters for a long time through the cover design. Accordingly, the cover design of a bibliography for children needs to be accurately studied and reflect affinity and creativity. To this end, this paper selected Dasan Jeong Yak-yong (茶山丁若鏞. 1762(38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to 1836(2nd year of King Heonjong's reign) among great men who can be the foundation for a variety of thoughts of children by making lots of magnificent achievements in a wide range of fields through investigation, development and endeavor and whose portrait exists in order to investigate whether the a bibliography for children is accurately researched as focusing on the clothing in the cover design. Total 32 bibliographies on Jeong Yak-yong were selected, which were sold in online bookstores, Gyobo Book Center, Aladdin and Bandi & Lunis from Jan. 2015 to Apr. 2019. With those bibliographies, this paper investigated whether the Danryeong and Dopo on the cover designs of those bibliographies was accurately expressed through the thorough research and made the proposal on the basis of the research results. Moreover, the results of this paper will be the basis for making the clothing of a character on the cover design of the relevant bibliography expressed on the basis of the accurat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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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원 김용준이 본 서예, 그 직관의 미

저자 : 전상모 ( Jun Sang Mo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5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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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園金瑢俊(1904-1967)은 일제강점기 “彩畵를 찌꺼기 술이라면 墨畵는 막걸리요, 사군자는 약주요, 書는 소주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진한 소주를 항시 가까이 한 사람이다.
근원의 미술론은 1930년 중반을 전후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문화계에서 일어난 전통 성찰의 움직임으로 인해 서양의 표현주의와 접맥된 동양주의 미술론은 '조선적인 것'을 모색하고 전통과 고전을 탐색하려는 시도로 전환된다. 이 무렵 이후로 근원은 서화고동취미를 한껏 뽐내며 서양화―유화에서 동양화―수묵화로 전향하고,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문인들의 고고한 지조, 去俗과 脫俗의 정신과 그러한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는 서예를 그림에 부활시켰다. 근원이 추구했던 '조선의 정신'은 일제강점기 빛이 바랬던 조선미술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다. 일제의 이데올로기 공작은 정체성론과 조선미술쇠퇴론을 근대화단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민족의식의 말살을 통한 일본색을 화단에 정착시키면서 조선미전 에서 채색화의 유행을 선도해 나갔다. 이에 당시 화단에서는 사군자와 서예를 시대성을 상실한 구태의연한 가치로써 치부하는 반대론적 입장과 사군자의 몰락은 동양화의 몰락이라는 옹호론적 입장이 대립하고 있었지만, 채색화가 유행하던 식민지 조선화단에서는 사군자와 서예는 봉건시대의 유물정도로만 치부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근원은 서예와 사군자는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의 극치라고 규정하고, 수묵의 직관적 정신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색탈피를 위한 선결과제는 조선미술의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전제아래, 수묵의 전통 속에서 방법론을 모색했다. 근원의 이러한 노력은 이후 해방공간에서 식민지 화풍에 대한 논란 속에서 서예와 문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찾으려는 방법론으로 연결된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하더라도 민족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 민족문화의 계승과 새로운 시대 상황에 대응한 그 방면 새 세대의 배출 및 전통의 재창조라는 명제도 그 중의 하나였다. 본고는 그러한 운동의 선봉에 섰던 근원의 직관적 서예인식을 통해, 한국근대서예의 위상을 재고해 봄으로써 침체에 빠진 현대한국서예의 발전방향을 모색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의도에서 쓴 논문이다.


Geunwon Kim Yongjun said, “If a colored picture is lees liquor, India ink painting is makgeolli, and calligraphy is soju.” As he said, he loved our traditional culture and had always drunken the strong soju. His art theory brought about great changes around the mid-1930s.
His orientalism art theory was brought into contact with Western expressionism due to the movement of traditional reflection in the field of culture since the mid-1930s and turned into an attempt to seek for 'something Korean' and explore traditions and classics. Since then, Geunwon has fully exhibited an antique taste of calligraphy and painting, and he turned from Western paintings(oil paintings) to East Asian paintings(India ink paintings). In addition, he applied the calligraphy that contained the detached fidelity and the unworldly spirits of the literary who did not compromise with the world to the painting. The spirit of Joseon he pursued is related to the restoration of the faded Joseon art during Japanese occupation. The ideology maneuvering of Japanese imperialism led the trend of coloring in Joseon Art Exhibition while establishing the Japanese color through the eradication of national consciousness in the field of art by rooting the theory of identity and the decline of Joseon art. There has been a confrontation between the oppositional position that treated painting of four gracious plants and calligraphy as the obsolete values that lost the age, and the advocate's position that the decline of the painting of four gracious plants is the decline of oriental paintings. However, in the field of art of colonial Joseon, where colored pictures were in vogue, the painting of four gracious plants and calligraphy were regarded as artifacts of the feudal age. In the meantime, Geunwon defined calligraphy and the painting of four gracious plants as the extreme of art expressing the spirit and focused on the intuitive mentality of Indian ink. Under the premise that the identity of Joseon art should be established to escape from Japanese color, he sought for the methodology from the tradition of Indian ink. His effort led to a methodology to re-recognize the value of calligraphy and literary painting and to find new art through new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art in the controversy about the colonial style of painting after the liberation.
Even though Joseon had been deprived national sovereignty and became a colony of Japan, the national spirit has been succeeded. One of them was to create a new generation that could inherit the national culture and respond to the situation of the new era and to recreate tradi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ek the developmental direction of modern Korean calligraphy which is in recession by rethinking the status of Korean modern calligraphy through Geunwon's intuitive recognition of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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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미술사 정립을 위한 근대미술관 설립의 필요성 - 외국 사례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저자 : 최병식 ( Choi Byung Sik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1-32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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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에서 고·근·현대와 당대를 역사적 맥락으로 고찰하고 연구해가야 한다는 것은 기초적이고 당연한 역사관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는 실물을 대할 수 있는 상설전 중심의 미술사적 미술관이 존재하지 않아 많은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 현재상태에서 미술사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도 중요하지만 실물을 중심으로 한 미술관의 필요성은 미술사외에도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여러 파급효과에도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 논문에서는 미술사적 한계와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에 대한 당위성을 기술하였으며, 외국의 선진사례를 통해 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현장학문'을 시도하였다.
2장에서는 특히 한국근대미술사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국가적 차원의 정체성확립, 글로벌 진출을 위한 핵심적인 교두보로서 역할 등을 중심으로 국책성격 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3장에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의 주요 사례를 공공미술관, 근대로 제한하여 연구하였다. 외국의 사례에서는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고대와 근대, 현대의 영역을 다양한 형태로 나누고 있으며,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4장에서는 본 논문의 핵심 주제인 한국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대안을 집중적으로 기술하면서 사례로 다소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일본의 사례와 중국의 전략 등을 살펴보았다. 이로서 우리나라와의 비교 및 대안을 모색하였으며, 역사성있는 상설전을 핵심으로 하는 국립근대미술관을 우선으로 하여 국립한국미술관 등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在韓國美術史上, 將古代, 近代, 現代和當代在歷史背景下審視和硏究, 就是最基本和自然的歷史觀。然而, 韓國的現實存在諸多局限, 因爲沒有可以看到實際作品的以永久性展覽爲中心的專注于美術史的美術博物館。在現在的狀態下, 美術史硏究人員的硏究成果也很重要。然而除了美術史之外, 以實際東西爲中心的美術館必要性是建立國家身分及其擴散效應也是關鍵問題。在此文描述了美術史的局限性, 以及爲了建立韓國國立近代美術館的必要性, 幷通過國外先進事例, 試圖了'現場學問'來更提出替代方案。
第二章, 從四個方面總結了韓國現代藝術史的眞正問題, 提到了包括國家級的近代美術館的必要性。以確立國家級的整體性和全球進步的關鍵的作用爲中心。第三章, 論者主要關注歐洲, 美國和日本的重大事例, 幷將範圍限制在公共藝術博物館。就在國外而言, 大多數先進國家以各種形式分爲古代, 近代和現代地區, 幷可以理解它他們已經獲得了專業知識。
第四章, 尤其是作爲本文的核心主題, 着重敍述了建立韓國近代美術館的替代方案。作爲一個代表性的例子, 硏究了日本的情況和中國的戰略, 而可以相互比較。最后尋找了與韓國的比較和另一種選擇。首先考慮包括其歷史特色的永久性展覽的國立近代美術館, 幷提供了國立韓國美術館作爲替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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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후기 지식인의 다벽(茶癖)에 관한 고찰

저자 : 한윤숙 ( Han Yoon Sook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23-34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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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는 사상적으로 점차 탈유가적 경향을 띠면서 개인이 가치의 중심에 서고,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것이 '眞'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지식인들은 주변의 소소한 일상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고자 하였으며, 세상의 평판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사물에 몰두하는 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자기수양에 걸림돌로 치부되었던 사물에 대한 '癖'은 내재된 가치, 眞을 찾는 전문가적 행위로 변모한다.
癖은 '나'라고 하는 자의식의 발로이다. 개개의 '나'를 역사와 예술의 주체자로 세우고자하는 열망은 문화적 동류의식을 형성하고, 이로써 癖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癖의 현상은 조선후기 茶문화에도 나타나 당시 지식인들은 茶에 탐닉하는 것은 물론이며, 나아가 전문가적 자세로 茶에 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여 전문적 다서가 등장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茶詩와 편지를 통해 茶생활을 공유했다.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茶癖' 덕분에 茶문화의 중흥기를 맞을 수 있었으며, 그들이 남긴 문헌은 오늘날 茶문화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dividuals gradually became the center of values as they tended to be de-Confucian, and it was thought that it was the 'truth(眞)' that existed here now. Therefore, intellectuals at the time were interested in the small everyday objects around them, and wanted to find beauty and value there, and they found it worthwhile to devote themselves to things or things they liked regardless of the world's reputation. The 'obsession(癖)' of an object that has been regarded as an obstacle to self-discipline turns into an expert's act or professional spirit of seeking an intrinsic value, a 'truth.' 
'obsession' is an expression of self-conscious as I am. The desire to make an individual 'I' as an agent of history and art forms a cultural kind consciousness and 'obsession' is reinforced by it. This phenomenon has also appeared in the tea(茶) culture, in which intellectuals at the time not only indulged in tea, but also sought an academic approach to tea in a professional manner, and so on. They also shared their lives through letters and poetry about tea(茶詩).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Dynasty, the revival of tea culture was possible thanks to the obsession with tea(茶癖) of intellectuals and the literature they left behind is valuable materials for the study of the tea cultur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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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地坑窯之于江南民居地下室的生態宜居啓示

저자 : 진옥비 ( Chen Yufei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1-36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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伴隨着經濟水平的不斷提高, 科技能力的不斷進步, 國民生態意識的不斷增强, 本在不斷加速的城市化進程中逐漸被湮沒的窯洞民居形式以其獨具的生態優勢重獲盛名, 越來越多的專家學者對窯洞進行了深入硏究。現今, 窯洞不僅在其發祥地黃土高原區窯起了燎原之勢, 甚至跨區域以其變體形式在全國各地如雨后春筍涌現。本文欲將地坑窯與其在江南的變體形式之一――民居地下室進行對比分析, 以期從中獲取生態養分, 同時結合現代生態技術, 爲將江南民居地下室轉變爲舒适健康的居住空間的探索提供思路。


With economy improve, the constant advancement of national level, enhance national ecological consciousness, this is accelerating urbanization gradually buried in the cave dwellings in the form is known for its unique ecological advantage of regain fame, more and more experts and scholars to cave in the study. Interregional the cave today, not only in its birthplace and in loess plateau regions by prairie, even in the form of the body in the same in all parts of the country such as mushrooms to the fore. The pit will be to a kiln with its dwellings -- one of the variant form in the south of the basement for comparative analysis, in order to obtain the ecological food and, at the same time, folk houses, south of Yangtze River will be combining a modern ecological technology, for the basement to turn into a comfortable healthy living space exploration provides id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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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從波普藝術看市場與商業的結合

저자 : 궁명 ( Gong Ming ) , Lee Guang Chun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65-38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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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球化始于文藝复興。當時的人們設想了一個以歐洲爲中心, 以男性爲主體的意識形態世界。而后的工業革命和殖民化進程中樹立了一種以西方文化爲依据的全球文化。這種文化在以種族中心爲背景的潮流中不斷强化中心价値。幷逐步形成完整的社會制度, 价値觀, 語言體系。而在當下的時代, 這一文化格局不可避免的對地域差異性帶來負面影響, 价値觀逐步趨同, 抹平。當下所謂的全球化本體价値依舊是以文化中心國爲存在的西方价値。自浪漫主義以后, 藝術的先行者們一直在"非敍事"、"非模倣"、"自主性"的旗幟下尋找藝術的本質, 恰如一層層地剝洋蔥皮, 以爲外層是表面的, 內里才是本質。但這樣的主體价値雖然抹殺了地域帶給文化的豊富性, 却无疑大大改善了區域之間的溝通, 促生着更加多元化的意識。大衆文化打通了所有邊界, 使之成爲交流的村落和政治經濟權力的階級體現。大衆亦可以通過消費反抗消費。這種由廣泛大衆參與文化建設的形勢―卽個體和公共主體的交互影響, 是已經到來的后工業時代的文化特点。藝術發展到這里, 藝術品正在成爲奢饰品與炫耀資本, 成爲高回報硬通貨與洗錢途徑, 在所謂“普遍价値”下, 迅速膨脹了整個市場, 導致視覺藝術體系都已沦爲以市場爲中心。這意味着巨大的利益使得藝術家追求文化以及社會价値的功能變得困難。商業藝術有其存在价値, 但其本體是可恥的, 它出售的是藝術的聖光, 而投机和聖光是不可兼容的, 所以資本一直試圖躲藏在藝術行動背后。


Art is a macrocognitive cognitive mode, with its current ethics, economics, technology, history and mythology. We are at an uncertain moment, and the process of changing the flow of globalization is carried on by Yu Yu-lIeh's destruction and reconstruction. This is also a matter for artists to re-establIsh artistic issues. Globalization dates from the Renaissance. At that time, the people thought of an ideological world based on Europe as the main theme of the world. Then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colonialism established a global culture based on Western culture. This culture constantly contemplates the central value of the central trend in the race. And gradually forming a complete social system, values and language systems. In the present era, this cultural pattern inevitably brings negative effects on regional heterogeneity, and values gradually Interface. The so-called globalization value of the so-called globalization is still the value of Western culture. Since romanticism, the vanguard of art has always been " non-archItectural " and " non-ImpaIred " and " independence ". However, although the value of the community has not been brought to a cultural level, it has greatly improved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region and the region, and it is undoubtedly a great improvement on the scope of communication between the region and the community. The mass culture has penetrated all the boundaries, making it a class of communication villages and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The public can also resist consumption by means of consumption. This is the cultural characteristic of the post-IndustrIalIst era, namely, the interaction between individuals and public entities. Art has developed here, and art is becoming a luxury and display of capital, and it becomes a high reward for the high return of hard currency and money laundering. This means that great interests make artists pursue culture and social values. The commercial art has its value, but it is shameful that it is the sacred light of art, and speculation and holy light are incompatible, so capital has been spent trying to hide behind art. As one of the convergence points of the world's many cultures, the author analyzes the main factors of the art market, and discusses the main factors and the influence of the basic factors and the influence of the factors on the basis of the basic factors and the reasons for the analysis of the factors behind the market, and the basic factors and historical causes of the factors behind the factors and historical ca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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