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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ENTAL ART

  • : 한국동양예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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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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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동양예술학회지(~2000) → 동양예술(200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49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88
동양예술
49권0호(2020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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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다에 관한 동양철학적 고찰

저자 : 조민환 ( Jo Min Hwa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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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이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과 달리 동양[구체적으로는 동북아시아] 문명의 형성은 바다는 주류가 아니었다.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가 처한 지리적 상황의 다름이란 점은 바다에 대한 인식 차이로 나타났다. 특히 동양 문인 문화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물에 대한 인식과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물'에 대한 인식이라도 바다가 갖는 '알 수 없는 깊이', '넓이', '미와 추를 가리는 것 없이 받아들임' 등과 같은 속성은 '道'의 상징, '올바른 정치 행위와 관련된 바람직한 통 치술', '현실적 삶에서의 참된 지혜와 지식의 상징', 때론 '현실도피와 연계된 은일적 삶'등과 연계되어 이해되곤 하였다. 즉 서양과 달리 인간이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자연대상으로서 바다가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 '도의 체득의 단계' 및 '성인되는 수양론적 의미'를 지니는 바다 이미지로 나타났다. 이런 점을 본고에서는 이런 점을 각각 儒家철학 및 道家철학과 연계된 바다 인식 및 동양 문인들이 지향한 긍정적인 삶과 연계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老子』 : '柔弱謙下의 여성성에 근간한 정치적 바다', 『莊子』 : '小知에서 벗어난 大知와 道의 상징으로서 바다', 儒家: '聖人되는 공부 측면에서 이해된 바다' 및 '隱逸과 유토피아 지향의 상징으로서 바다' 등의 주제를 통해 동양문화와 문명에서 바다가 어떻게 이해되고 인식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런 점을 통해 서양 문명권에서 바다가 차지하는 위상과 다른 차원에서 이해된 동양 문명권에서의 바다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Unlike European civilization, which was formed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the formation of Eastern civilization (concretely Northeast Asia) was not mainstream. The difference in geographical conditions facing European and East Asian countries has resulted in differences in perception of the sea. In particular, the perception of the sea in the Eastern literati culture is basically accompanied by the perception of water. However, attributes such as 'unknown depth', 'wideness' and 'acceptance of beauty and ugliness' held by the sea, were often understood in conjunction with 'Dao' symbols, 'desirable governance related to correct political behavior', 'symbol of true wisdom and knowledge in real life' and sometimes 'life of a reclusive scholar linked to real escape'. In other words, unlike the West, it appeared not as a natural object that humans should overcome and conquer, but as a sea image with "philosophical," "political," "stage of the acquisition of the province" and "the nourishing meaning of Sacred Personality Study." In this regard, the school intended to consider this in connection with the philosophy of Confucian scholars and Taoists, respectively, and with the positive life of Oriental writers. Specifically, the topics such as "Laozi": "Political Sea Based on Femininity Emphasizing Purity and Modesty," "Zhuangzi": "Sea as a symbol of Dao and Large Knowledge Away from Narrow Knowledge," New Confucianism: "Sea understood in terms of Sacred Personality Study" and "Sea as a Symbol of the direction of Hidden and the Utopia" revealed how the sea was understood in the East culture and civilization. In this regard, it was intended to reveal the various meanings of the sea in the Eastern civilization, which were understood at a different level from the status of the sea in the Western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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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운 최치원의 '풍류(風流)'와 <해운대석각(海雲臺石刻)>

저자 : 장지훈 ( Jang Ji Hoo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7-5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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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雲 崔致遠(857-?)은 渡唐유학 후 10여 년 동안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문명을 떨쳤다. 특히 당나라에서 황소의 반란을 체험한 바 있는 그는 중앙의 부패와 지방의 반란 등 사회모순을 직면하여 의욕적으로 경륜을 펼치고자 時務策 10여조를 올리는 등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구조상 진골귀족들에게 개혁안이나 참정의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왕실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고 40여 세의 나이로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최치원이 逍遙自放하며 다닌 곳 중에서 해운대는 그의 자인 '海雲'을 따서 이름 한 것으로, 동백섬 남쪽 벼랑의 넓은 바위에 '海雲臺'라는 大字의 암각서가 새겨져 있어 특기할 만하다.
최치원을 거론하면 연관 핵심 키워드가 '風流'일 것이다. '風流'는 여러 가지 사전적 의미로 해석되는데 최치원의 철학사상, 「鸞郞碑序」 등과 종합하면 '풍류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묘한 도이지만, 그 도는 인간과 멀지 않는 것이며, 인간의 주체적인 마음으로 삼교를 회통할 수 있는 융회의 마음이다. 이러한 융회의 마음은 유ㆍ불ㆍ도 어느 한편에서만 논의되어질 수 없는 妙合이다. 최치원의 사상에 기초하면, 풍류는 유순한 心源으로써 모든 사상을 수용하여 독선과 독존에 의한 분열과 갈등을 넘어 大和를 추구하는 德風이다. 즉, 풍류는 하나의 종교나 사상으로 고집되지 않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 즉 '열린 마음'이다. 열린 마음으로서의 풍류는 '소탈'하면서도 '품격'있고 '아름'다우며 '감동'시키는 道이다.
최치원은 당시 유자로서 적극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았고, 선가로서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초탈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발자취를 남긴 해운대 또한 儒仙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화를 꿈꾸었던 그의 정신이 깃든 곳이었고, 그러한 정신은 오늘 날까지 바위 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도 해운대를 떠올리면 최치원을 연상했듯이 千載의 풍파 속에서도 여전히 '海雲臺'라는 세 글자가 최치원의 풍류정신을 묵묵히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최치원의 풍류가 유순한 우리 민족의 '열린 마음'의 德風으로 상징되듯이, 최치원의 얼이 서려있는 <海雲臺石刻> 또한 소탈하면서도 품격이 있고 아름다운 감화가 깃들어 있다.


Goun Choi Chi-won(857-?) made his name for himself as a writer, serving in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posts for more than a decade after returning from studying abroad in the Tang Dynasty. Having experienced the rebellion of Huang Chao(黄巢) in the Tang Dynasty, he tried to correct promiscuous politics by raising about 10 groups of municipal and provincial governments to carry out his career in the face of social humiliation, including corruption in the center and rebellion in the provinces. However, no reform proposals or real wills were accepted by the derogatory people in the social structure. Eventually, he felt frustrated with the royal family and retired from office at the age of 40. Among the places where Choi Chi-won wandered freely, Haeundae is named after his ruler "Haeun(海雲)" and is noteworthy for its large inscription of "Haeundae(海雲臺)" on a wide rock on the cliff south of Dongbaek Island.
If Choi Chi-won is mentioned, the key word related to Choi would be "Pungryu(風流)". "Pungryu" is interpreted in various dictionary meanings, including Choi Chi-won's philosophy thought and "Secretary of the Nangrang", which is a strange province that cannot be expressed in words, but the province is not far from humans, and is a spirit of fusion that can communicate the Three Bridges with human self-reliance. This spirit of fusion is a subtle combination that cannot be discussed only on either side of Confucianism, Buddhism, or Taoism. Based on Choi Chi-won's ideas, the current is a "deokpung(德風)" that embraces all ideas with a gentle mind and seeks great harmony beyond division and conflict by self-righteousness and self-reliance. In other words, the custom is the universal sentiment of our people, the 'open mind' that is not insisted on a single religion or idea. The custom of being an open mind is to be 'slow', 'class', 'beautiful' and 'moved'.
Choi Chi-won lived an active and fierce life as a scholar at the time, and was a person who escaped from reality by dreaming of ideal as a minister of silver and silver. Haewoondae, where he left his mark, was also a place where his spirit of enlightenment crossed the boundary between Seonbi and Sinseon, and such spirit was engraved on the rocks until today. As Choi Chi-won was reminded of Haeundae in the Joseon Dynasty, the three letters "Haeundae" still represent Choi Chi-won's spirit of wind and current in the midst of a thousand years of wind waves. In other words, just as Choi Chi-won's style is symbolized by the "deokpung" of the gentle Korean people's "open mind", "Haeundae Seokgak(海雲臺石刻)", which has Choi Chi-won's spirit, is also simple, elegant, and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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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중섭 작품의 유희적 표현과 바다 미학 -제주, 부산, 통영 시절을 중심으로-

저자 : 심영옥 ( Sim Young Ok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8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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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이중섭의 일생 중 6.25 한국전쟁 때 부산과 제주, 통영 등 바다가 있는 지역에서 피난 생활하면서 제작했던 작품들을 바다 미학적 관점으로 재조명한 것이다. 이중섭 작품에는 유희성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유희충동에 의한 유희적 시각을 표출해 내었고, 유희적 감성의 파토스로 감성을 전달하고 있으며, 유희와 상상을 전이시켜 감상자의 공감을 형성했다. 특히 부산, 서귀포, 통영의 바다 도시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유희적 숭고함과 무한한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통일감을 주는 미학을 가진다.
이중섭이 바다에서 미학적 사유를 한 것은 칸트나 헤겔, 아리스토텔레스의 특별한 철학 이론을 표방하면서 직관적인 의미 부여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중섭의 작품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물고기, 게, 가재 등은 단순히 바다 생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통한 무한한 숭고함과 생명의 존엄성, 도덕성을 표현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 이중섭의 물리적 환경과 대비시켜 그의 작품에 미학적 의미를 살펴 보았으나, 이중섭 작품으로 바다 미학과 다룬 연구가 처음이기 때문에 주관적 관점으로 비춰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The present research aimed at re-examinating some of Artist Joong-sub Lee's works, which were created during his days of refuge in the sea areas such as Busan, Jeju Island, Tongyong, etc. during Korean War with the sea-esthetic perspectives. In his works, there are amusing expressions, which display his amusing vision by amusement impulse, deliver his sentiments by the pathos of amusing sentiments, and form the sympathy from those who appreciate his works by transferring his amusement and imagination to them. Especially, those works which he created in the sea cities such as Busan, Seokwipo, and Tongyong present the amusing sublimity and sense of unity which makes one feel infinite love of family.
It is thought that the reason why Artist Lee had esthetic thinking near the sea is because he formed the bond of sympathy in order to impart an intuitive meaning as he professed the special philosophical theories of Kant, Hegel, and Aristotle. In short, the materials frequently shown in Artist Lee's paintings such as fish, crabs, crawfish, etc. are not merely expressing ocean living things, but depicting infinite sublimity through family, sanctity of life, and morality. Although the esthetic meaning of his works were examined in contrast with the artist's physical environment in the present research, it is revealed that there are absolutely some limitations that this could be illuminated as a subjective viewpoint, because this kind of research with sea esthetics with Artist Joong-sub Lee's works has never been condu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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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바다에 관한 문헌적 고찰과 동양미학적 소고

저자 : 박주열 ( Park Ju Yeol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3-10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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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지리적 환경 때문에 바다에 대한 논의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바다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바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나 동양의 바다에 관한 상징성을 고찰한 연구는 드물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문헌에서 보이는 바다에 관한 내용들을 선별하여 분석함으로써 옛 선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철학적ㆍ미학적 관점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바다는 자연물 중의 하나로서 '크고, 넓고, 깊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인식은 '끝이 없다'는 말로 국한되어 버리기 쉬웠다. 그런 바다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다는 이상적인 공간, 혹은 현실에 대한 도피처가 되었다. 바다는 더 이상 미지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고, 바다를 경험한 이들은 바다의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바다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바다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였다. 바다를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만물의 이치를 궁구할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관조의 대상이 되었다.
옛 문인들이 바다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궁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以道觀物의 관점으로 만물의 이치를 궁구한다면 우리의 삶을 보다 지혜롭게 영유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There is a lot of discussion about the sea because Korea has the geographical environment composed of the sea on three sides. However, there have been few studies that have comprehensively analyzed the sea to examine the change in perception of the sea or the symbolism of the sea. Therefore, in this study, by selecting and analyzing the contents of the sea found in various literatures, I tried to examine the literati's perception of the sea and the philosophical and aesthetic perspective.
As one of the natural objects, the sea has the characteristics of 'big, wide, and deep'. Thus, it was easy to get confined to the term “there is no end” for the perception of the sea. The sea was an unknown space that could not be crossed over, and it became a space where humans could imagine infinite. Thus, the sea became an ideal space or a refuge for reality for humans. As humans experienced the sea, they became afraid of the ever-changing and unpredictable appearance of the sea. However, as they began to view the sea from a new perspective, their perception of the sea changed. It became an object of contemplation that enabled them to reflect on themselves and to realize the Principle for all things in nature while viewing the sea with their mind, not their eyes. Just as the old literati sought the Principle for nature through the sea, today we too will be able to manage our lives more wisely if we seek the Principle for all things from the perspective of viewing things with the Way[以道觀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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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원도 임해누정(臨海樓亭)의 주요 편액과 서예미학

저자 : 이성배 ( Lee Seong Bae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9-1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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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까닭에 풍광이 좋은 곳이 많다. 때문에 바닷가 곳곳에 임해누정(臨海樓亭)들이 있는데 서해나 남해보다 경관이 수려한 동해에 많이 몰려 있다. 누정은 휴식과 사색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기능을 하고 있다.
누정은 본래 신선을 맞이하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신성한 공간이었다. 누정을 만들어 놓고 신선을 만나기를 원했다. 우리나라에서 누정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에 신선의식과 관련하여 나타나며,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누정문화가 꽃 피웠다.
누정에 걸린 편액 글씨와 시판(詩板)들을 통하여 참여자의 신분과 성향을 살필 수 있었으며, 누정을 매개로 벌어지는 다양한 교유와 각종 관계를 볼 수 있었다.
강원도의 임해누정 중의 하나인 청간정(淸澗亭)의 편액에서 강함과 질박함을 갖춘 질박한 서예미학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쓴 편액은 청간정의 감흥을 노련한 운필로 표현하였고, 최규하 대통령의 편액은 승경(勝景)의 운치를 시어(詩語)로 묘사하였다.
경포대 편액에서 이익희의 해서, 유한지의 예서, 미불의 행서 등으로 대자 서예의 다양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해서의 당당함, 예서의 멋과 여유, 행서의 화려함 그리고 시문으로 경포대의 운치를 담아내었다.
해운정의 편액에서 송시열은 졸박함으로 아름다움을 삼는 이졸위미(以拙爲美)의 서예미학을 보여 주었다.
활래정의 편액에서 김규진은 활발발한 생기를 재치있게 예서로 표현하였고, 김돈희는 안정되고 중후한 해서를 썼다. 정병조는 매끄러운 점획과 결구를 한 행서로 썼으며, 김태석은 둔중하고 우직한 전서로 표현하였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강원지역의 임해 누정은 해서, 행서, 예서, 전서 등으로 풍광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미학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Korea is surrounded by water on three sides, which makes a number of fine scenery. For this reason, there are oceanfront arbor (臨海樓亭) on beaches and most of them are located in the East Sea where the scenery is more beautiful than the West or South Sea.
Arbors have a structure proper for rest and meditation and serve a variety of sociocultural functions. Arbors used to be a sacred place of union with god to greet Sinsun (神仙, Taoist hermit with miraculous powers). People built arbors and hoped to meet Sinsun. Records about arbors in Korea are found as to Sinsun spirit in the era of the Three States and arbor culture flowered through Goryeo and Joseon dynasty. Writing on arbor tablets and poetry monuments suggest a diversity of companionship and relations as well as participant's social rank and disposition.
The tablet of Cheongganjeong Pavilion (淸澗亭), one of oceanfront arbors in Gangwon-do Province, exhibits both powerful and plain calligraphic aesthetics. The tablet written by President Rhee Syng-man expresses his inspiration about Cheongganjeong Pavilion with experienced brushstroke and that of President Choi Kyu-hah describes picturesque of fine view with poetic words.
The tablet of Gyeongpodae Pavilion presents diversity of large character calligraphy with Lee Ikhi's Kaishu, Yu Hanji's Lishu and Mibul's Xingshu. Charms of Gyeongpodae Pavilion are particularly expressed with grandiosity of Kaishu, sapidity and composure of Lishu, splendor of Xingshu and poetry.
The tablet of Haeunjeong Pavilion written by Song Si-yeol displays calli graphic aesthetics of creating beauty out of simplicity and humbleness (以拙爲美).
The tablet of Hwallaejeong Pavillion written by Kim Gyujin expresses witty and animated liveliness with Lishu while Kim Donhui adopted stable and imposing Kaishu. Jeong Byeongjo worked on Xingshu with smooth dots and strokes and closing phrase and Kim Taeseok utilized ponderous and brutally frank Zhuanshu.
As aforementioned, it is found that oceanfront arbors in Gangwon-do Province aesthetically express beauty of scenery and spirit with diverse forms of Kaishu, Xingshu, Lishu, Zhuanshu,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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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통시대(傳統時代) 조석(潮汐)에 대한 변증 연구

저자 : 이향배 ( Lee Hyang Bae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5-15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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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통시대에 제기된 조석에 대한 변증 자료를 정리한 다음 조석설에 대한 논리를 유형별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전통시대 자연현상에 대한 논의방식을 살펴보고 어떤 과정을 통해 과학적 사고가 형성되어 갔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큰 범위에서 보면 전통시대 조석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땅호흡설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리나라 제가의 조석설을 검토하였다. 우리나라 조석에 대한 논의는 고려중기 이규보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水經》, 盧肇의 <海潮賦>, 《佛經》등 이전의 설을 검토한 다음 노흡주의 '潮汐日月起因說'을 《주역》이나 渾天儀의 원리와 비교 검토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안로를 비롯하여 김득신, 한원진, 위백규 등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조석이 땅의 호흡이라는 소옹의 설과 음양과 기의 작용이라는 정자의 논리, 해와는 무관하고 달과 관련지어 설명한 주자설에 기반하여 조석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둘째는 동해에 조석이 없다는 설에 대한 변증이다. 동해에 조석이 없다는 설에 대해 학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설을 제기하였다. 이항복은 물이 동쪽에 다하면 氣가 다한다고 설명하였고, 한백겸은 남북으로 통하는 氣가 좌우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설을 제시했다. 장유는 동해가 북해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北海說을 제시했으며, 조익은 바다에 內海와 外海가 있다는 설을 내세워 동해가 외해에 속하기 때문에 조석이 없다고 주장했다. 송규렴과 권헌은 地勢 때문이라고 해석했으며 송병선은 북해설에 동조하였다. 이처럼 동해에 조석이 없는 이유를 다양한 상상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추론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구한말까지 전통지식인들의 대부분은 과학적 지식체계가 전혀 없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셋째는 과학적 변증에 의한 설명이다. 이는 주로 星湖 李瀷과 惠岡 崔漢綺의 조석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서구의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지동설에 입각하여 지구와 달과 태양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서구의 과학적 지식체계로 조석에 대한 설명을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는 바다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근대과학으로 해석하는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석설은 전통지식인들의 자연과학 지식체계와 바다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 대해 이해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logic of the theory of tide by categories after compiling dialectical data which were raised in the traditional era. In this process, I looked into the discussion method of natural phenomenon in traditional times and into how scientific thoughts have been formed. This results in three categories of the traditional theory of tide in general.
First, I reviewed the theory of tide by several virtuous scholars in our country focused on the theory of earth-breath. Discussion of the theory of tide was begun by Lee Gyu-bo in the middle period of Gyoryeo dynasty. He compared 'the theory in which tide is caused by the moon and the sun' by Nho Heup-ju with 《Juyeok周易》or the principle of < Honcheoneo 渾天儀 > after reviewing previous theories in 《Sugyeong水經》, < Haehobu海潮賦 > and 《Bulgeong佛經》etc. On the other hand, the intellectuals in the Joseon Dynasty like Kim Deuk-sin, Han Won-jin, and Wi Baek-gyu including Kim An-ro explained that the principles of the ebb and flood are based on the theory of earth-breath by So-ong, on the logic of working of yin-yang and Ghi氣 by Jeongja, and on the theory by Chu Hsi which related it to the moon, not to the sun.
Second, there is a dialectics about the theory in which Dong-Hae, the East Sea is not affected by the tide. Scholars have raised lots of theories to explain the reasons for this phenomenon. Lee Hang-bok explained that Ghi氣 would be exhausted when the seawater reached to the east. Han Baek-gyeom suggested the theory that Ghi氣 passing through south and north cannot affect the right and left sides. Jang Yu suggested the theory of the North Sea 北海說 which explained that it was because the East Sea was close to the North Sea. Jo ik argued that there was no tide because the East Sea belonged to the part of the open sea while asserting the ocean had the inland sea and the open sea. Song Gyu-ryeom and Guoen Heon interpreted that it was due to the earthen energy地勢 and Song Byeon-seon agreed with the theory of North Sea. In this way, the reasons why there was no tide in the East Sea were logically inferred based on a variety of imagination. These discussions let us be confirmed that there was none of scientific system of information at all for most of traditional intellectuals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ird, there is an explanation according to scientific dialectics. This theory can be found mainly in the theory of tide by Seongho Lee Ik and Hyegang Choi Han-gi. They had extensive knowledge of Western science and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arth, and the moon and the sun based upon heliocentric theory. In this way, they described the ebb and flood phenomenon in terms of scientific knowledge system in the organized and detailed manner. This seems to be the first case of interpreting natural phenomenon of the sea in a modern scientific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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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逸)' 개념의 미학 계보와 미학사적 의의

저자 : 임태승 ( Lim Tae Seung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7-17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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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逸개념의 系譜史的 변천과정을 통해 볼 때, 逸의 의미 변천은 '과실ㆍ방종→내달림(駿馬) →뛰어남ㆍ숨음→벗어남(뛰어넘음)ㆍ자유로움'의 과정을 겪었으며, 여기서 逸은 '숨음(隱逸)ㆍ뛰어남(俊逸)ㆍ벗어남(超逸)ㆍ자유로움(安逸-飄逸-澹逸)'의 네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逸은 이후 많은 파생개념과 파생어로써 응용되었다.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逸의 파생개념의 궤적은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하나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사실묘사의 용어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정신경지묘사의 용어로 그 영역이 확장,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逸의 파생개념의 의미가 점점 平淡의 경지로 승화된다는 점인데, 이는 예술창작과 감상ㆍ비평의 주체였던 文人들이 唐ㆍ宋代이후 禪宗의 영향을 깊이 받은 탓이라 볼 수 있다. 중국미학사에서의 逸의 의의는 문인예술의 성격을 결정지었다는 점과 다양한 逸格的 예술양식을 탄생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In view of the genealogical transformation process of yi(逸) concept, yi's change of meaning has undergone the process of 'fault/indulgence→running→outstanding/hiding→escaping/freedom', where yi can be classified into four types of 'hide/run/leave/freedom'. Yi has since been applied as many derivative concepts and derivatives. The trajectory of yi's derivative concept changing with the times shows two characteristics. One is that the area has been expanded and deepened from the terms of everyday and realistic factual descriptions to the terms of abstract and conceptual mental state descriptions. The other is that the meaning of yi's derivative concept is gradually sublimated to the status of tranquility, which can be attributed to the deep influence of Chan Buddhism since Tang and Song Dynasty when literati were the subject of artistic creation and criticism. The significance of yi in the history of Chinese aesthetics can be said to have determined the character of literati art and to have created various art forms to express 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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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숲의 치유기능을 활용한 미술관의 복합 경영 성공요인에 관한 연구

저자 : 유영미 ( Yu Young Mi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7-20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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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숲 치유(forest healing)기능과 미술 치유(art therapy)기능의 공통적인 특성을 살펴보고, 숲의 치유기능을 활용한 미술관 경영의 사례분석을 통해 미술관의 성공 요인들을 검증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미술 전문가들에게 숲을 활용한 미술관의 성공 요인들에 대해 상대적 중요도를 측정하여 그 순위를 결정하는 AHP 분석 기법을 사용하였다. 검증 결과, 숲을 활용한 미술관의 경우 전시 형태에 따른 소통과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소통과 공감의 전시 형태 요인 중에서 감상자의 체험에 의한 공감이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연을 활용한 프로그램 부분에서는 자연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이 중요한 경영 성공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미술관 복합경영의 성공적인 요인으로 숲이라는 자연의 치유 기능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말해 준다. 결론적으로 숲이 갖는 자연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미술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숲을 활용한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하겠다.


This study examined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 forest healing function and the art therapy function, and verified the success factors of the museum through case analysis of the management of the museum using the forest healing function. To this end, the AHP analysis technique was used to determine the ranking by measuring the relative importance of the success factors of the Soup Museum to art experts. As a result of the verification, it was revealed that in the case of art museums using forests, communication and empathy according to the type of exhibition are most important. In addition, it was found that among the factors of the exhibition form of communication and empathy, empathy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viewer was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e program using nature, it was found that the healing program using nature was an important management success factor. These results suggest that the healing function of natural factors such as forests is very important as a successful factor in the complex management of museums. In conclusion, it was found that developing a healing program using the various resources of nature in the forest is the most important success factor for art museums using for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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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零度)'로 본 창암 서예의 발속(拔俗)

저자 : 송수현 ( Song Soo Hyou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7-23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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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문학과 시각예술이 융복합된 독특한 예술이다. 그 예술의 터전이 동아시아이기 때문에 서예 미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유(儒) ㆍ불(佛) ㆍ도(道)의 시각으로 분석돼왔다. 그렇다면 한자문화권이 아닌 전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문화권인 서구인들에게 서예라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예술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한국서예는 중국서예의 모방'이라는 국제적인 오해를 어떻게 소명할 것인가? 본 연구는 서구문화권을 향한 설득의 일환으로 서예 미학 분석의 스펙트럼을 서양철학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연구의 구체적인 분석 도구로는 서양의 광자(狂者),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의 철학을 취했다.
본 연구의 주제는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에크리튀르(ecriture)와 창암 서예의 공유점을 발견하고, 에크리튀르의 영도(零度)와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의 발속(拔俗)한 서예의 유사한 기류의 맥락을 연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바르트가 말하는 에크리튀르의 속성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그 네 가지가 부재(不在)한 에크리튀르를 에크리튀르의 영도로 보았다. 이러한 에크리튀르의 영도를 창암 서첩 「자여원규(咨汝元奎)」에 나타난 발속에 대비하였으며, 여러 가지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창암 서예에 나타난 발속의 '역사적 가치판단과 전통·관습에 대한 반성', '공론에의 저항', '지배문화 합류 거부', 그리고 '일정한 형태로의 양식화·관습화 거부'라는 실천은 에크리튀르 영도와 일치하는 속성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예일치(文藝一致)를 구현한 창암의 「자여원규」는 심획(心劃)이라는 시각예술로 발속 또는 에크리튀르 영도라는 추상성의 시각화를 성취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문자(텍스트) 중심의 문학 분석 위주의 철학이 발견하지 못한 점일 것이며, 이러한 점이 서예라는 심오한 예술 매체 연구의 과제일 것이다.


Calligraphy is a unique art that mixes literary and visual arts. Since the base of calligraphy art is located in East Asia, we tend to analyze it from the perspectives of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etc., most likely to be Asian philosophy or religion. So, how do we get Westerners to understand the aesthetics of calligraphy? How would you explain that 'Korean calligraphy is an imitation of China' is wrong? This study seeks to expand the spectrum of calligraphy analysis to Western philosophy. The analytical tool chosen for this study is the philosophy of Roland Barthes, who seemed to have a lunatic spirit in the West.
The subject of this study is to discover the common points of Roland Barthes' (1915~1980) Ecriture and Changam Lee Sam-man's(1770-1845) calligraphy and to study the context of similarity in between Ecriture's degree Zero and Changam's Desecularity. I have summarized the attributes of Ecriture that Barthes refers to into four, and regarded Ecriture in which the four are absent as the Ecriture's degree Zero. This Ecriture's degree Zero was compared with Desecularity that appeared in Changam's book “Ja Yeo Won-gyu(咨汝元奎)” and found several similarities. Desecularity shown in Changam's calligraphy is the practice of 'reflection on judging based on a historical value, traditions, and customs,' 'resistance to public opinion,' 'rejection of joining the governing culture,' and 'rejection of stylization and customization in a regular form,' which agree with properties of Ecriture's degree Zero. Above all, we could notice that Changam's “Ja Yeo Won-gyu,” which embodied literary and art unity, achieved Desecularity or visualization of abstractness 'Ecriture's degree Zero,' as visual art with mind stroke (心劃). This study's perspective would be what the philosophy centered on literary analysis based on text could not find. This point could also be the tasks that we would solve as the subject of a profound artistic medium study called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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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품(書品)의 변천에 관한 고찰

저자 : 신현애 ( Shin Hyun Ae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3-25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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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서예는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작품과 그에 관한 논평이 있어 왔다. 그 중에서 서품론은 두 가지 형태로 변천해왔는데, 하나는 서예가나 서예작품을 우열로 나누어 품과 등급으로 분류하는 서열식의 品級式이며, 다른 하나는 서예가의 심미적 意境을 묘사하거나 작품의 특징적 요소들이 발하는 풍격을 분류하는 나열식의 品種式이다.
品級式의 품론은 서예가와 그들이 쓴 서체의 우열을 품과 등급으로 나누는 서품론이다. 위진 남북조 시대에 庾肩吾의 『書品』을 필두로 淸代에 包世臣의 『藝舟雙楫ㆍ國朝書品』과 康有爲의 『廣藝舟雙楫ㆍ碑品』에 이르기까지 감상대상을 달리 하고 등급의 명칭에도 변화가 있다. 또한 『書品』에서 서예가만 나열하던 방식은 점차 각 서예가의 서체에 등급을 매기고 은유적 표현으로 서체의 풍격을 묘사하게 되면서 점차 서예작품을 직접적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品種式품론은 다양한 풍격을 우열의 등급이 없이 동등하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 처음 시도한 唐代 司空圖의 『二十四詩品』에서 영향을 받아 청대에 楊景曾이 『二十四書品』을 쓰게 되었다. 그는 서예에서 발하는 다양한 풍격을 24개의 풍부한 시적 표현으로 서예가의 심미의식과 서예미를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서예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문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현대 미학자 金學智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여 『新二十四書品』을 썼다. 이는 15만여 字로 24개의 풍격에 관해 수많은 서예작품과 역대 서평들을 모아 논증하여 개성을 존중하는 현대사회의 요구에 부합하게 되었다.
서예작품의 풍격을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직접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때, 그 서예가의 마음을 순수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서품의 변천에 관한 고찰을 통해 서예작품의 풍격을 감상하는 방식이 이러한 작업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상 태도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서예 창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Oriental calligraphy has had numerous works and comments of them thr oughout its long history. Among them, the theory of shupin(書品) has changed into two forms; one is on the rank of calligraphers or calligraphic works divided by rank, and the other is on the styles that describes the aesthetic features of calligraphers or classifies the styles created by the characteristic elements of the work.
The theory of Pin(品, category) divided by rank is the one which divides th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of calligrapher and their works into grade s. From Yujianwu'(庾肩吾)s 『Shupin(書品)』 in Weijin(魏晉) North and Sou th Dynasties in the lead to Baoshichen(包世臣)'s 『YizhoushuangjiㆍGuoch aoshupin(藝舟雙楫ㆍ國朝書品』 and Kanyuwei(康有爲)'s 『Guangyizhoushuangj iㆍBeipin(廣藝舟雙楫ㆍ碑品)』 in Ching Dynasty, there had been changes in the name of ranks and the objects of appreciation. In addition, the meth od of listing only calligraphers in 『Shupin書品)』 was gradually graded on each calligrapher's calligraphy style and changed to describe the style of calligraphy in metaphorical expression, leading the direct appreciation of calligraphy works.
Variety-type theory takes a way of listing the various scenery equally wi thout the rank of superiority. It was first attempted in Tang Dynastyby Sikongtu(司空圖)의 『24 Poetic Styles(二十四詩品)』, and influenced Yangjing ceng(楊景曾)' 『24 Calligraphic Styles(二十四書品)』 written in the Qing Dyn asty. He described the aesthetic and calligraphic beauty of calligraphers with 24 rich poetic expressions of various styles from calligraphy works. However, they were too literary and abstract to understand calligraphy in detail, so modern aestheticist, Jinxuezhi(金學學) wrote 『New 24 Calligr aphic Styles(新二十四書品)』 to complement this point. This was done in 1 50,000 letters to meet the needs of modern society, which respected indi viduality, by collecting numerous calligraphic works and historical review s on 24 styles of calligraphic beauty.
When you can appreciate the styles of calligraphy work directly without any preconceptions, you can only see the calligrapher's mind purely. Thru a review of the changes in the history of Shupin(書品), we can confirm that the way to appreciate the styles of calligraphy works is one of thes e works. This appreciation attitude will also help creating calligraphy to meet the needs of the times in pursuit of d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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