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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SULSA (The Art History Journal)

  •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 : 예체능분야  >  미술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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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6-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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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53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15
강좌 미술사
53권0호(2019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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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불상의 성격과 1701 년 법잠작 목조 수월관음보살삼존상과 그 복장품을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흥천사 불상의 성격이다. 건립 초창기인 황화방의 흥천사의 주불은 사리전의 석가불상이지만 이전한 사을한의 능침사원인 새로운 흥천사인 신흥사의 주불은 아미타불상으로 판단된다. 현 주불전인 극락보전과 주불 아미타불상이 이를 계승한 불전이고 주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흥천사가 원래 조계종의 본찰이므로 주불이 석가불상이 되는 것이 순리적이기 때문에 초기 흥천사는 주불이 석가불상이 당연하지만 능침사원으로 이전하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찰로 변모되었기 때문에 아미타불상이 주불로 봉안되었다고 판단된다.
둘째, 흥천사 소장 관음보살 삼존상은 조성기에 임실 신흥사 적조암의 주불 관음성존으로 봉안하여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였으며, 결국은 정각을 이루고자 상을 조성했다고 말한다.
셋째, 관음보살상과 좌우 협시로 선재동자상과 용왕을 봉안한 구도의 이른바 수월관음보살 삼존상의 독특한 삼존상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예배존상 형식이어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넷째, 1701 년에 수조각승 법잠이 조성한 이 관음보살 삼존상은 조선후반기 제 1 기 중 18 세기 초기(1700-1725) 보살상 양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이자 대표작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흥천사 소장의 유일한 수월관음보살 삼존상은 조선조 후반기 조각사에 귀중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대표작의 하나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The results of the character of Heungcheonsa Buddha statues and research of the wooden Water-Moon Avalokiteshvara Triad and its Inside Contents created by Beopjam in 1701 are as follows. First, here is the character of the Heungcheonsa Buddha statues. The main Buddha of Heungcheonsa of Hwanghwabang, at the earliest building stage, is the Sakyamuni Buddha statue of the sarira edifice, but the main Buddha of Shinheungsa, the new Heungcheonsa of Neungchimsawon of Saeulhan, is considered the AmitabhaBuddha statue. This is because Geukrakbojeon, the current main Buddhajeon, and the main Buddha Amitabha Buddha statue are those which inherited these and are the main Buddha. That's because Heungcheonsa was originally the main temple of the Jogye Order, so it's reasonable for the main Buddha to be the Sakyamuni Buddha statue. Therefore, in the early Heungcheonsa, the main Buddha is naturally the Sakyamuni Buddha statue, but because as it moved to Neungchimsawon, it was transformed into a temple that prayed for passage into eternity, the Amitabha Buddha statue is believed to be enshrined as the main Buddha. Second, the Avalokitesvara Triad housed by Heungcheonsa at the time of preparation prayed being born in paradise by enshrining as the main Buddha Avalokitesvara Seongjon of Imshil Shinheungsa Jeokjoam, and after all, it is said that the statue was created to achieve Jeonggak (enlightenment). Third, it shows the unique Triad composition of the so-called Water-Moon Avalokiteshvara Triad, which is composed of the Seonjae Dongja statue and the Sea God King in the left and right view with Avalokitesvara, and since it is a form of worship, it can be said to have great significance. Fourth, it is meaningful in that the Avalokitesvara Triad, created by the head sculpture monk Beopjam in 1701, is a reference and representative work representing the Bodhisattva style of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1700-1725) of the first half of Joseon. Therefore, this only Water-Moon Avalokiteshvara Triad housed by Heungcheonsa can be regarded as one of the masterpieces with significant meaning in the sculpture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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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흥천사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불상과 대세지보살상 연구

저자 : 심주완 ( Shim Joo-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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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 아미타불상과 대세지보살상에 대하여 조각사적 의미를 밝혀보았다. 흥천사 목아미타불좌상은 중소형의 규모이지만 장대하면서 활력이 넘치고 세련미가 돋보이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도상과 양식적 특징을 살펴 임란직후인 17 세기 초로 편년하였다. 조각승 각민파가 조성한 대표작으로 평가되며, 각민에 의해 조성된 1606 년 공주 동학사 대웅전 목삼세불좌상 보다 앞선 양식으로 각민파의 사례 중에 가장 이른 시기로 편년되어 그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석준-각민-행사로 이어지는 계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 봉안처는 19 세기 경 문경 오정사에서 이운한 것으로 존명은 석가삼세불 혹은 비로자나삼세불의 좌존 약사불일 가능성 높다. 그러나 약사불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 다보불, 미륵불 등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중에서 신앙하는 아미타불로 명명해도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흥천사 극락보전 목대세지보살좌상은 극락보전 삼존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상으로 어깨가 좁고 세장한 상체에 큼지막한 하체로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는 보살상으로 적정한 긴장감과 정제된 미감으로 품격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이 보살상은 도상과 양식적 특징을 통해 17 세기 2/4~3/4 분기로 편년하였다. 17 세기 전반기 신체 비례의 영향 아래 조각승 삼인이 조성한 1648 년 흥국사 무사전 목지장보살좌상 등과 유사함을 밝혀 보았다. 존명은 현재 오랫동안 사중에서 대세지보살로 명명되고 있는데 학술적으로 관음보살일 가능성이 높고 문수보살, 미륵보살일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This paper studied the sculptural meaning of the wooden Amita Buddha statue and Mahasibamaprata Bodhisattva statue enshrined in the Architecture of Geukrakbojeon(極樂寶殿) Hall of Heungcheonsa Temple in Seoul.
Although the wooden seated Amita Buddha statue is small and medium-sized, it is a Buddha statue that is majestic, vibrant and refined. Looking at the paintings and stylistic features, the statue is presumed to be in the early 17th century, shortly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statue is regarded as one of the representative works created by Buddhist monk sculptor Gakmin and Gakmin School. This Buddha statue was created by a monk sculptor Gakmin, which was earlier than a wooden statue of the Three Buddha of the Donghaksa Temple of Gongju in 1606. This Buddha statue is regarded as the earliest of the works of the Gakmin school. The study provided another opportunity to check the genealogy leading to a monk sculptor Seok-oon - Gakmin - Haengsa. The statue is believed to have been enshrined around the 19th century in Ojeongsa Temple in Mungyeong. The name of the statue is likely to be the Medicine Buddha enshrined on the left side of the Three Buddhas.
The wooden Mahasibamapratata Bodhisattva statue is the largest of the three statues in the Architecture of Geukrakbojeon Hall of Heungcheonsa Temple. This Bodhisattva statue has a narrow, long upper body, but has a sense of stability with a large lower body. This Bodhisattva statue is regarded as a work of elegant tension and refined taste. This Bodhisattva statue is estimated to have been created in the second quarter to third quarter of the 17th century by analyzing the drawings and stylistic features. The Bodhisattva statue was discovered to resemble the 1648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Statues in the Architecture of musageon(無私殿) of Heungguksa Temple, which was made by Buddhist monk sculptor Samin. The name of the statue has long been known as Mahasibamaprata Bodhisattva, which is more likely academically to be the Avalokitesvara Bodhisattva, and also to be Manjusri or Maitreya Bodhi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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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흥천사 명부전 석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연구

저자 : 주수완 ( Joo Soo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1-9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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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명부전 존상들은 모두 불석으로 조성된 상으로서 이러한 사례는 불석의 산지인 경주의 기림사와 서울의 봉국사, 청룡사, 그리고 영천 영지사, 진주 청곡사(1660 년), 부산 장안사(1684년), 창원 성주사(1681 년) 명부전 존상들이 알려져 있지만,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천불상과 같은 다량이면서 소품인 불상들에 주로 사용되었던 불석을 이보다 규모가 크고 모양이 다양하며 복잡한 조각상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불석 명부존상들을 독특한 유형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청룡사 명부전 존상은 승일(勝日), 장안사, 성주사 명부전 존상은 승호(勝浩 혹은 勝湖)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승호는 이 밖에도 다양한 불석 조각을 남기고 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조각양식과 흥천사 명부전 조각양식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흥천사 명부전 존상은 매우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장안사·성주사 명부전 존상의 근엄한 인상과는 다르다. 그러나 최근 대구 달성군 남지장사에 단독으로 전하고 있는 석조지장 보살좌상이 1659 년 승호의 작품으로 밝혀졌는데, 그의 1680 년대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보다 20여년 앞서 조성한 이 상은 마치 흥천사 명부전 존상처럼 앳된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흥천사 명부전상이 승호의 이른 시기의 작품일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 연대도 1650년대로 조금 더 좁혀볼 수 있을 듯하다.
흥천사 명부전 존상은 지장보살의 경우 일반적인 지장보살상의 수인과 비교했을 때 좌우 손이 바뀐 형태인 것이 특이한데, 비록 남지장사의 지장상이 손에 지물을 들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흥천사 지장상과 같은 수인인 점도 참고가 된다. 그러나 오른손의 손가락을 길게 조성하여 다리 위에 늘어지듯이 강조하여 표현한 것은 흥천사 지장보살상만의 특징이다.
협시인 무독귀왕 및 도명존자, 그리고 시왕상에서는 상의를 세 겹으로 겹쳐 입은 모습을 유독정성들여 조각한 점 역시 흥천사상의 특징이다. 더불어 시왕상 도상에 있어서는 비교적 다양한 자세를 골고루 포함시킨 것도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흥천사 시왕상은 공수(拱手)한 자세, 반가좌의 자세, 흰 수염을 기른 시왕 등 그 모습이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이러한 다양한 존상들을 지장삼존상의 좌우로 대칭되게 배열하려고 했던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이처럼 흥천사상은 여러 도상이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좌우 대칭적으로 배열된다는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선시대 명부전 존상 배치의 한 예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The all statues of Judgement hall in Heungcheonsa-temple is made by Zeolite stone which called as Bulsuk(沸石). Even these case are also found in some temples as Girimsa of Kyungju where the Zeolite stone is produced, Bongguksa and Chungryongsa temple of Seoul, Youngjisa temple of Youngchun, Chunggoksa temple of Jinju(1660), Jangahnsa temple of Busan(1684), Seongjusa temple of Changwon(1681), but it is not very many. Zeolite stone was broadly used for the Thousand Buddha statues which were small and simply repetitive images. But the images of Kṣitigarbha triad and Ten kings of Hell are bigger, various and complicated shape. Nevertheless, all these images being made by this difficult materials is a special case, which is worth studying in a group.
In these cases, the sculptor's name were known as Seungil(勝日) of Chungryongsa and Seungho(勝浩 or 勝湖) of Jangahnsa and Seoungjusa. Especially, the name Seungho is shown in other zeolite statues very often, but it had been regarded as his style is quite different with Heungcheonsa's style which looks very unique atmosphere of childlike. But recently, Seungho's early art work of Kṣitigarbha Bodhisattva was newly found in Namjijangsa temple in Daegu. It was made at the year of 1659 and more similar with Heungcheonsa image. Therefore the possibility of Seungho had made the Heungchunsa images is become higher. Furthermore we can dating Heungchusa images more detail as Seungho's earlier works as 1650's.
The mudra of Kṣitigarbha Bodhisattva in Heungcheonsa is contrary compare with other cases. And it is same with the statue of Namjijangsa even it is little bit different as hold something in its right hand. But the long drooped finger is unique articulate of Heungcheonsa image.
Another characteristic of Heungcheonsa images is the fact that the three layers coat of attendant King Mudok and Monk Domyung are carved with great care. In addition, the inclusion of various positions in the Ten Kings images can be pointed out as a feature. The pose of crossing hands, half lotus sitting posture, white beard etc. were appeared in Heungcheonsa's Ten Kings. In particular, we can read the intention of arranging these characteristic images in bisymmetry way of the both side of Kṣitigarbha triad.
In conclusion, the statues of judgment hall in Heungcheonsa show the very exemplary model of Naraka iconography in Joseon Dynasty by the meaning of various forms and bisymmetry arran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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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흥천사의 역사와 사상

저자 : 문무왕 ( Mun Mu-wa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5-11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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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는 조계종의 본사라는 위상에 걸맞게 흥천사에는 太祖의 아버지인 桓祖 의 초상을 모신 啓聖殿이 설치되었으며, 부처의 頭骨舍利와 대장경, 보물, 태조의 유물을 안치한 사리전이 건립되었다.
흥천사와 사리전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장안의 명소가 된 흥천사는 조선의 대표성을 갖는 공식사찰로서 사신들의 宿所, 慰冥, 禮佛 등의 접대기능을 가진 外交的 무대로서의 役割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태조의 死後, 정릉이 도성 밖 沙乙閑으로 천장 된 뒤에도 흥천사는 도성 내에 남아 핵심 사찰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갔다.
강력한 억불책을 시행하였던 태종·세종대에 사찰과 불교종파를 축소·통합 하는 과정에서도 흥천사는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선종도회소로 지정되어 모든 宗務를 집행하는 기관으로 자리하게 된다. 도회소의 운영과정에서도 僧科試驗의 주관, 住持推鷹, 末寺管理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교종보다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국가의 통제와 보호 아래 교단관리체제를 구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제도권 내에서 불교의 위상을 보존하고 승려의 권익을 옹호하여 불교교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불교계의 견해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불교의 명맥을 회복·유지시키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지리적으로 도성 내 왕궁 옆에 자리한 흥천사에서는 국왕과 왕실의 안녕과 國利民福을 기원하는 왕실 불사나 자연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소재도량(消災道場)의 성격을 띄는 불교의례가 빈번하게 실행되었다.
당초 흥천사 조성의 명분이 신덕왕후의 능침사찰이었던 만큼 왕실의 死後 儀禮와 관련한 喪·祭禮가 거행되었다.
흥천사는 조계종의 수사찰로서 조계선풍을 계승했으며, 상총, 신미 등의 승려를 통하여 조계선풍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상적 역할은 조계종 수사찰로서의 행정적 기능적 부분을 넘어 조선불교에서 선종유지 및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행호와 같은 천태종계를 아우르면서 사격을 높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흥천사는 조선전기 왕실과 불교와의 관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In Heungcheonsa, corresponding to the status of the main temple of the Jogye Order, there were Gyeseongjeon in which a portrait of Hwanjo, the father of Taejo was enshrined, and the sarira edifice that enshrined the head skull sarira of Buddha, the Tripitaka, treasures, and the remains of Taejo.
Heungcheonsa and the sarira edifice are believed to have been splendid and magnificent buildings with an enormous scale. As such, Heungcheonsa became the official temple of Joseon and served as a diplomatic stage with hospitality functions such as envoys' quarters, Wimyeong, and worshiping ceremony, etc. Also, after Taejo's death, after Jeongreung was moved out of the city to Saeulhan, Heungcheonsa remained in the city to maintain its status as a key temple.
Heungcheonsa was not only excluded from the process of reducing/integrating Buddhist temples and Buddhist sects at Taejong and Sejong era, which had a strong anti-Buddhism policy but also it was exceptionally designated as a Zen Do-Hyoe place(都會所), and served as an agency for all order official duties. During the operation of Do-Hyoe place(都會所), it was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monk examinations, acknowledgment of Juji and management of subordinate temples. It can be seen that it established a denomination management system under the control and protection of the state, with an edge over the Gyojong order. In addition, while preserving the status of Buddhism in the national institutional sphere and advocating the interests of monks, and incorporating Buddhist views into policy, i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restoring and maintaining Buddhism.
In Heungcheonsa, located geographically next to the royal palace in the city, the royal temple services wishing the well-being of the king and the royal family, the national interests and the happiness of the people, or the Sojaedoryang (Buddhist ritual to pray for blessings and prevent diseases and Buddhist rituals that characterize natural disasters) were frequently practi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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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삼국시대 고분에 나타난 불교미술

저자 : 차순철 ( Cha. Soon Chul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3-14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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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분에 표현된 불교미술과 관련된 내용은 이미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서 많은 부분이 논의되었고, 그 해석도 다양하게 제시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당시 고분 내부를 장식한 벽화와 축조재료로 사용된 기와와 蓮花文塼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당시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와 대가야를 잇는 문화교류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사찰과 목탑, 승려와 공양인 그리고 다채로운 연화문을 통해서 당시 승려와 공양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백제 고분에 그려진 벽화 중 四神圖와 연화문은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문화교류의 일단을 보여준다. 특히 연화문의 경우에는 삼국에서 벽화 주제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당시 조각과 회화, 기와 등을 제작하면서 계속 다양한 문양의 채용으로 확인된다. 中國 南朝를 통해 백제에 전래된 塼築墳과 제작기술은 이후 石室墳 축조에 영향을 주며, 특히 蓮花文이 찍힌 장방형 전이 백제, 대가야, 신라에서 모두 제작된 점은 당시 불교를 매개로 한 문화교류와 제작기술의 전파가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모습으로 볼 때, 中國 南朝와 교류하던 웅진백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수용과 전파가 신라에 영향을 주었음이 확인되며, 특히 기와 제작기술을 매개로 한 웅진백제와 신라의 교류관계는 주목된다.


The Buddhist art expressed inside ancient tomb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have already been extensively discussed in the existing studies and a variety of interpretations have also been given. This study looked into the trace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Goguryeo, Baekje, Silla, and Daegaya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centering on the murals that decorated the interior of the ancient tombs and the tiles and lotus patterned bricks used for tomb construction.
The images of monks and believers were examined through the murals showing the temples, wooden pagodas, monks, and believers as well as a variety of lotus patterns, and the painting of four guardian animals and the lotus patterns in the murals drawn on the walls of the ancient tombs of Baekje show an aspect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Goguryeo and Baekje. The lotus pattern in particular was often used as the theme for murals in three kingdoms, and a variety of patterns were used continuously when producing sculptures, paintings, and tiles. The brick chamber tomb and its construction technology introduced from the Southern Dynasty of China to Baekje influenced the construction of stone chamber tomb later and the fact that lotus patterned rectangular bricks had been produced in Baekje, Daegaya, and Silla show that there were cultural exchange and diffusion of production technology through Buddhism. These prove that the acceptance and diffusion of culture centering on Ungjin(熊津) Baekje which exchanged with the Southern Dynasty of China had influenced Silla and the exchange between Ungjin Baekje and Silla through tile production technology draws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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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울 개운사 왕실발원 석가괘불도 연구

저자 : 고승희 ( Koh Seung 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1-16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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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서울 삼각산 개운사<석가괘불도>의 도상 특징과 성격을 밝혀보고, 양식을 고찰해봄으로써 개운사 <석가괘불도>의 미술사적 위치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먼저 제 2 장에서는 개운사의 연혁과 <석가괘불도>의 조성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 3 장에서는 <석가괘불도>의 도상 및 양식특징에 대해 접근해보았으며 왕실발원 괘불도의 특징과 현황을 알아보았다. 제 4 장에서는 개운사 <석가괘불도> 조성 수화승인 '응석'의 화적과 행적을 살펴서 화승들과의 유파관계와 화기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개운사 소장<석가괘불도>는 조선시대 후반기 제 3 기에 해당하는 1879 년 조성의 왕실발원 괘불도로서, 내명부 상궁을 통한 시주 참여와 발원을 통한 내용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19 세기 많은 화적을 남긴 최고의 수화승 '응석'과 '영환', '창엽', '긍법', '진철', '돈조', '도의', '체훈' , '복엽', '봉법', '법상', '현조' 등 화승과의 교류를 통하여 도상과 양식 특징의 유파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서양화법의 陰影法 채용에 적극적이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개운사<석가괘불도>는 법화사상의 유행으로 표현된 '꽃을 든 부처' 즉, '연지인불' 도상이 19 세기 <괘불도>에서 가장 이른 예로 볼 수 있었으며, 『妙法蓮華經』 대표 보살로서 관음보살상을 앞에 내세워 강조하는 매우 창조적이고 독특한 형식이 조선시대 <괘불도>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도상임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도상 구성과 형식이 유사한 1885 년 조성의 남양주 내원암<석가괘불도>와 1886 년 조성의 서울 화계사 <아미타괘불도>의 비교를 통해 개운사 <석가괘불도>의 미술사적 위치를 파악해볼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position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in the art history by clarifying the character of iconography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in Mt. Samgak, Seoul and exploring its style.
Accordingly, first, in Chapter 2, this study reviewed the history of Gaeunsa and the background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nd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and current status of court-sponsored banner paintings. In Chapter 3, this study attempted to find out the iconography and style features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nd in Chapter 4, this study examined the painting affiliation and works of the head painter monk, “Eung-seok, ” who painted Gaeunsa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nd attempted to analyze the sect relation with the painter monks and historical remarks.
As a result,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housed by Gaeunsa, is a banner painting of 1879, corresponding to the third period of the late Joseon era, from which this study could find out the contents of participations and offerings through Naemyeongbu Sanggung. In particular, through the exchange between the best head painter monk, 'Eung-seok' and painter monks including 'Yeong-hwan', 'Chang-yeop', 'Geung-beop', 'Jin-cheol', 'Don-jo', 'Do-ui', 'Che-hun', 'Bok-yeop', 'Bong-beop', 'Beop-sang', and 'Hyeon-jo', etc... the sect relationship between the iconography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study was identified. It was found that he was active in the adoption of shade and shadow (陰影法) in Western art.
In addition, by comparison between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and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Naewonam of Namyangju created in 1885 and < Amitabha Banner Painting > at Hwagyesa in Seoul which have the iconography form and style similar to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this study examined the iconography and character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attempts to find out the position of < Shakyamuni Banner Painting > at Gaeunsa in the art history by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styles, including various tech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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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채색 선인도(彩色仙人圖), 복·록·수를 기원하는 세화(歲畵)

저자 : 유미나 ( Yu Mina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9-19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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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삼성도(三星圖)·수성도(壽星圖) 등의 신선도와 선과봉진(仙果奉進) 문자도를 포함한 《채색선인도》 병풍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한 해가 저무는 세밑에 도화서 화원들은 세화를 그려서 궁궐에 바쳤고, 일부는 재상가에도 주어졌다. 이들 그림은 채색이 가해진 공필화(工筆畵)였으며 제재는 전통적으로 수성과 신선·선녀상이 그려졌다. 본 연구에서는 삼성도와 수성도, 그리고 선관(仙官)·선동(仙童)의 선과봉진도의 제재에 주목하였고, 그 배경으로 잡귀를 쫓아내고 신년을 축하하는 내용인 명나라 주유돈(朱有敦)의 잡극 『복록수선관경회(福祿壽仙官慶會)』와의 관련성을 짚어 보았다.
먼저 삼성도·수성도를 비롯한 신선도와 선과봉진의 문자도로 구성된 《채색선인도》 병풍 중에서 도화서 화원의 세화 초본에 충실한 작품들을 보았다. <삼성도>의 도상은 조선 후기에 중국으로부터 수용하였는데 김홍도에 의해 조선식으로 변용되어 정형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과 봉진 문자도는 자비대령화원이 제작한 초본과 도상이 일치하거나, 약간의 변용이 이루어진 작품들이었다. 역시 정형화된 도상이 존재하여 이를 토대로 많은 선과봉진 문자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채색선인도》 병풍(민속 24340)과 《채색선인도》 병풍(민속 40226)의 경우 복수의 화사들의 작품이 하나의 병풍을 이룬 경우이고, 국립민속박물관의 《채색선인도》 병풍(민속 62750)은 한 화사가 제작한 것이다.
이들 병풍의 그림은 자비대령화원이 제작한 초본의 유려하고 활력이 넘치는 필치에 비하면 기량이 다소 떨어진다. 이는 화원의 개인적 실력 차이일 수 도 있고, 화원들이 시간에 쫓겨 작품에 성의를 다하지 못 했던 때문일 수도 있다. 민간화사들이 화원의 그림을 보고 모방하여 제작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어서 채색선인도의 전형에서 도식화가 진행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에서는 인물의 차림새나 기물의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그려지면서 표현의 도식화 경향이 나타났다. 일부 문자도의 경우 무슨 글자를 표현한 것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태의 왜곡이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채색선인도가 전형 양식에서 나아가 도식화 과정을 거치며 다수 제작되었던 것은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길상화로 애호되었고 많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여러 신선도와의 조합을 통해 채색선인도의 도상은 더욱 다양하게 전개된다. 이에 대한 연구는 차후의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The folding screens containing Taoist Immortals rendered in elaborate color are supposed to be the New Year's paintings(歲畵) to wish for happiness, emolument and longevity.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ainters affiliated with the Painting Academy(圖畵署) were required by the court to submit 20 or 30 New Year's paintings at the end of the year, which were pasted on the gates and doors around the palace on the New Year's day. The written records have it that the warrior gods or Taoist immortals were painted as New Year's paintings.
Among them, the focus is given to the themes of Immortal Officials of Happiness, Emolument, and Longevity(福祿壽 三星), Shou Xing(壽星), and boy immortals holding a tray which contains such fruits as peaches, pomegranates, mandarines, and Ling Zhi(靈芝). And they are presumed to have been related to one of Zhu Youdun(朱有敦)'s longevity darmas titled 'Fu Lu Shou Xianguan qinghui( 福祿壽仙官慶會, The Festival of the Immortal Officias Fu Lu Shou)' which figures the Thre Stars descending to this world to celebrate the New Year Festival.
The folding screens containing the paintings of immortals and boy immortals are categorized into two; one being faithful to the academy painters' underdrawings, of which an example is extant. Another showing schematize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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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수월관음도로 본 고려와 중국 강남 지역과의 회화교류

저자 : 이현주 ( Lee Hyunjoo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9-21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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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수월관음도는 종교화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고려 회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남송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 남방 지역과 고려와의 회화 교류가 어려워졌다고 여겨지고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표현에 있어서도 주로 서역 수월관음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중국 강남 지역에서 제작된 수묵 수월관음도의 영향이 간과되었다. 고려 수월관음도와 송원대 수월관음도의 기법이 채색화와 수묵화로 차이가 있지만 고려 수월관음의 도상이 서역 수월관음보다 수묵 수월관음도의 도상과 더 유사하여 주목할 만하다. 백의의 표현과 선정에 든 듯한 고개를 숙인 자세가 서역의 수월관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정병과 풀방석의 표현도 수묵 수월관음도의 도상이 고려 수월관음도와 더 유사하다. 이전의 연구에서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상이 북송대 판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았는데 그 도상은 서역의 수월관음도와 거의 일치하고 고려 수월관음도상은 수묵 수월관음의 도상과 더 유사하다. 남송대에 해상무역이 꾸준히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고려 수월관음도에서 송원대 강남 지역 일반 회화 특히 소품 공필 회화의 기법을 볼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충선왕 시기 문인들과의 교류도 있었는데 당시 교류하였던 남방지역 화가 이간의 대나무 표현을 고려 수월관음도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대 회화 <용궁수부도>의 영향을 볼 수 있는데 고려 수월관음의 공양자 표현에서 서역의 공양자 표현 보다는 남방 화가에 의해 그려진 <용궁수부도>의 도상과 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표현의 유사성을 통해 고려와 중국 남방 지역과의 긴밀했던 회화 교류를 알아 볼 수 있다.


The Water-Moon Avalokiteśvara of Goryeo is not only religiously meaningful, but also important material for understanding Goryeo paintings. Since the Southern Song Dynasty, it has been considered difficult to communicate with the southern part of China and Goryeo due to political reasons. In terms of the expression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Goryeo, with an more intere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the western part of China, the influence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produced in the southern part of China was overlooked. In the late Goryeo period, there was a sea trade in Southern song Dynasty, and there was an exchange with the Southern area literati during the period of King Chungseon. Although the techniques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Goryeo and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Songwon Dynasty differ in color and ink paintings, the drawings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Goryeo are noteworthy because it is more similar with songwon Water-Moon Avalokiteśvara than in the Western area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The Water-Moon Avalokiteśvara in Goryeo shows the influence of general painting in the Southern area of Songwon Dynasty, which shows close exchanges between Goryeo and S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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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중국회화(中國繪畵)의 사시(四時) 화제(畵題)

저자 : 박은화 ( Eunwha Park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7-24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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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시간의 개념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계절과 함께 형성되었고 우주의 순환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추이는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감각이나 시간의 경과에 대한 인식과 표현은 이른 시기부터 중국문학과 미술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경물은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춘하추동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내는 四時山水畵를 비롯해 사계절의 경관을 배경으로 한 四時花鳥畵, 四時人物畵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사시와 관련된 다양한 화제가 발전하면서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중국회화의 중요한 전통을 형성하였다. 四時의 화제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四季라는 단위로 분절해 화면에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여러 畵目에서 사시의 화제가 그려졌다는 것은 중국회화에 시간의 관념이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글에서는 현존하는 작품과 문헌기록을 통해 중국회화에서 사시관련 화제가 언제부터 어떤 양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다양해지고 독립된 화제로 발전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나아가 중국회화에 내재된 시간의 인식 및 미술품의 창작과 감상에 나타나는 시간의 중요성을 조명하며 시간개념을 표현하는 회화의 전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함으로 회화를 제작하고 감상한 사람들이 공유했던 화제가 지닌 원래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시 화제가 각 시기 회화 양식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사계절을 묘사한 그림은 唐代부터 궁전이나 사찰 등 공적인 건물과 古墳의 벽을 장식하는 용도로 그려졌으며 사계절의 규칙성으로 시간을 표현하고 우주의 순조로운 순환에 부응하는 이상적인 정치와 사회의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이어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五代에서 宋代에 사시산수화가 많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점차 화조화, 인물화의 화목에서도 사시 관련 화제의 그림이 감상용 회화로도 활발하게 제작되면서 그 종류와 의미가 확장되었다. 송대 사시 화제의 발전과 유행에는 당시 문화를 주도한 문인사대부들이 지녔던 이전과 다른 시간관과 자연관이 큰 역할을 하였다.
명대부터는 四時와 관련된 화제가 순수한 자연 경관이나 화훼, 조류의 묘사에서 歷史人物故事, 문학작품, 실경산수, 倣古畵 등의 내용으로 확장되었고 많은 화가들에 의해 여러 폭의 軸畵로 이루어진 連幅畵나 組畵, 橫卷, 畵帖 등 다양한 회화 형식으로 그려지면서 중요한 화제로 발전하고 전승되었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선명한 변화를 드러내는 특정한 경물의 묘사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사시 화제의 그림은 중국에서 시간의 개념을 표현하는 회화전통을 형성한 기초가 되었음이 파악된다. 이처럼 唐代 이래 지속적으로 그려지며 내용이 다양해진 사시 관련 화제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개별 작품의 제작 양상을 다각도로 고찰하는 것은 각 시기 회화의 성격과 특징을 비롯해 양식적 변화의 추이를 밝히는 데에 도움을 주며 회화에 표상된 시간문화의 양상을 드러냄으로 중국 회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In Chinese painting, time has a subtle yet strong visual presence which denotes enduring sense of the rhythm of nature, especial in the change of seasons and the transitional time of a day.
In ancient Chinese civilization, the concept of time was emerged with the more concrete and diversified concept of seasons. Almost everywhere in China, the year is divided into four seasons which is remarkably consistent, and relevant to various human activities of all social strata. The concept of season also represent aspects of the cosmos from which the myriad things produced.
Bird-and-flower painting and sets of showing landscape of the four seasons decorating walls of buildings and tombs, seem to be emerged out of the tradition of presenting the four seasons during the late Tang and Five dynasties period as the landscapes and bird-and-flower paintings of the four seasons are mentioned several times in written records. Figure paintings of the four seasons are mostly based on literary sources relevant to specific season and usually show particular persons savoring time with emotional resonance.
The various indication of time in a literary theme and historical records, in which the story is placed and unfolds, has captured the imagination of artists. It was the painters' task to create the visual translation of specific time of year associated with specific places, literary works or historical figures through visual forms of seasonal motifs.
This article examines how four seasons theme emerged and developed into one of the most popular and enduring thematic tradition in Chinese painting through written records and extant paintings from the Song to the Qing period showing distinctive stylistic features of individual painters in various genres and formats. It also discusses what was the meaning they conveyed during the time of those who painted and viewed them. By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the concept of time in production and appreciation of painting with the thematic iconography, a fuller and more integrated understanding of stylistic developments and social, cultural background of the production of painting in each period would be ach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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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려 석가삼존십육나한도 고 (釋迦三尊十六羅漢像 攷)

저자 : 시라하라유키코 ( Shirahara Yukiko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9-29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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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즈미술관 소장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리움미술관소장 석가 16 나한도와 함께 고려불화에서는 희귀한 그림으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그 원류는 중국의 나한도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남송 1188 년경에 완성된 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소장 <오백나한도>에서도 부분적으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이토쿠지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군상표현의 근거가 되거나 인용되어 <석가삼존십육나한도>의 도상이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와 중국의 문화교류는 11 세기 후반부터 12 세기 전반까지의 송대 및 13 세기 이후의 원대 사이에 활발해진다. 경쾌한 구도의 도상과 지물(持物)을 통해 보면 송대의 나한도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즈미술관 소장 석가십육나한도는 그 도상을 계승하는 계보로 볼 수 있다. 즉, 시왕도에 두 사자(使者)를 그리는 도상이 포함되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불교·도교의 조화를 한층 발전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석가십육나한도는 결코 이색적인 도상이 아니라 당시 시왕재를 베풀었던 계층 사이에 널리 퍼졌던 그림일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후기에 그려진 큰 폭의 불화와는 달리, 작고 세밀한 도상을 표현한 이 불화는 공식적인 의례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귀족의 원찰(願刹)에 걸어 자신과 일족의 안녕을 위해 간절히 기원했던 그림으로 생각된다.


The Shakyamuni Triad 16 Arhan Painting, housed by Nezu Art Museum, along with the Shakyamuni 16 Nan Painting, housed by Leeum, Samsung Museum of Art, Goryeo Buddhist paintings are regarded important as rare painting assets. The origin may be found to some extent in the Arhan paintings of China. For example, in the Southern Song dynasty in around 1188, the partial similarity can also be found in < 500 Arhan Painting > housed by Daitokuji (大德寺), Japan. Even if it is not Taitokuji, it is likely that the iconography of “Shakyamuni Triad 16 Arhan Painting” was established by becoming the basis of or citing similar image expressions. Goryeo and China's cultural exchanges were active in the Song dynasty from the late 11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12th century, and in the Yuan dynasty in the aftermath of the 13th century. It is because the origin can be found in the Nahando of Song dynasty through a vivid composition of iconography and holdings (持物).
Therefore, the Shakyamuni 16 Arhan Painting, housed by the Nezu Museum, can be seen as a succession to the iconography. In other words, it reflects the situation in which the Painting of Ten Kings included iconography for drawing two messengers (使者), and is a work that further developed the harmony between Buddhism and Taoism.
Therefore, these Shakyamuni 16 Arhan Paintings are not an exotic iconography, but a painting that was widely spread among the groups who gave Siwangjae at that time. Unlike the larger Buddhist paintings depicted in the later Goryeo, these Buddhist paintings expressing small and detailed iconographies are not used in formal rituals, but they are thought to be a picture that hung on the noble Temple for the Wishes (願刹), longing for the good of the noble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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