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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SULSA (The Art History Journal)

  •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 : 예체능분야  >  미술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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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6-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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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51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592
강좌 미술사
51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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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골굴석굴의 구조형식과 아쟌타 19굴

저자 : 문명대 ( Moon Myeong-da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5-3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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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골굴석굴의 원류가 되는 아쟌타 19 굴과 골굴석굴을 비교사적으로 논의한 글이다. Ⅱ장에서는 골굴석굴의 형식과 구조를 명료하게 살펴보았다. 첫째 차이티야 예배굴인 법당굴의 구조는 U 형의 장방형 석굴은 정방형 전실과 장방형 본실로 구성되었고, 본실에는 불좌상이 있고, 전실벽의 불상은 마애굴의 마애불상으로 대체되었다고 보았다. 그 다음 둘째 이 마애굴의 불부조상은 예배굴의 전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대체되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셋째 승방굴은 골굴의 암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10 개의 승방굴이라는 사실을 살펴본 것이다.
Ⅲ장에서는 아쟌타 19 굴의 형식과 구조에 대해서 논의했다. 19 굴은 후기 석굴인 차이티야 석굴의 대표 석굴인데 U 자형 차이티야 석굴 구조가 기본적인 특징이다. 앞에는 측실이 있는 앞뜰 즉 전정(前庭)이 있고 전정 다음에는 현관과 앞 회랑식 전실이 있고, 이를 지나면 U 형의 긴 말발굽형 본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본실에는 좌우로 열주가 서 있고 열주와 벽 사이의 좌우 회랑이 있고 중앙 본실 끝인 후진에는 불입상이 새겨진 석탑이 놓여 있다. 이른바 전정과 전실과 본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19 굴 차이티야 예배굴은 16·17·18·20 굴의 전형적인 방형 승원굴을 거느리고 있어서 아쟌타석굴의 1 군을 형성하고 있다.
Ⅳ장에서는 아쟌타 19 굴 및 부속 승원굴과 골굴석굴의 차이티야식 예배굴인 법당굴과 승방굴을 서로 비교하여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여 간단명료하게 비교해 본 것이다. 그래서 아쟌타 19 굴 같은 후기 차이티야 굴에서 변모하여 골굴석굴의 형식과 구조로 변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었다.


This study is the discussion of a comparative history of Ajanta Cave 19 and Golgul stone cave, which are the origin of the Golgul stone cave. In Chapter 2, we have looked at the form and structure of the Golgul stone cave. First, as for the structure of the sanctum cave, which is the Chaitya worship cave, the U-shaped rectangular stone cave is composed of square front room and rectangular main room. The main room has a Buddha-seated statue, and the Buddha statue of the front room wall was replaced with a Buddha rock carved statue in the rock cave. Second, the Buddha image of the rock cave is replaced by a Buddha statue carved on the front of the worship cave, and third, the living quarters cave are 10 living quarters cave scattered around the rock wall of Golgul.
Chapter 3 discussed the format and structure of Ajanta Cave 19. Cave 19 is a representative stone cave of Chaitya stone cave, which is a later stone cave, and the basic feature is the U-shaped Chaitya stone cave structure. There is a front yard, the vestibule (前庭) with a side chamber in front, and next to the vestibule is the front door and front cloister room. After this, it is composed of a long horseshoe-shaped main room of U-shape. There is Yeolju on the left and right of the main room, and there are left and right corridors between Yeolju and the wall, and a stone pagoda with a Buddha standing statue on the back of the main room. It is composed of so-called vestibule, front room and main room. This Cave 19 Chaitya worship cave has a typical temple cave of 16 - 17 - 18 - 20 caves, forming a group of Ajanta caves.
In Chapter 4, Ajanta Cave 19 and the temple cave of Chaitya style worship cave of Golgul stone cave and sanctum cave and living quarters cave are compared with each other, and the same and different points are clearly compared in a table. So it turned out that Ajanta Cave 19 was transformed in later Chaitya cave and changed into the form and structure of Golgul stone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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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골굴 석굴과 인도 콘다네 석굴의 비교 연구

저자 : 이분희 ( Yi Boo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3-50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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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골굴 석굴은 석굴암과 더불어 한국의 석굴사원을 대표하는 석굴이다. 본 고에서는 인도 초기 석굴 가운데 중요한 석굴로 꼽을 수 있는 콘다네 석굴과 골굴 석굴의 비교를 통해 골굴 석굴의 시원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 두 석굴의 조영 시기는 상당한 차이가 나며, 탑을 봉안한 초기 석굴인 콘다네 석굴과 불상을 봉안한 골굴 석굴은 이러한 시대적 차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 두 석굴은 자연동굴을 이용하여 만든 개착굴이라는 점, 석굴의 구조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목조 건축과의 관련성 등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콘다네 석굴은 기원전 1 세기경에 조성된 인도 초기 석굴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 석굴이다. 차이티야굴은 U 자형 말발굽형의 평면구조와 스투파를 둘러싼 간략한 구조의 8 각 기둥, 그리고 굴 입구 전면의 벽을 구성하는 큰 아치창과 목조건축물을 반영하는 여러 의장들, 인물상 등이 표현되어 있다. 비하라굴은 너른 안마당을 두고 정면에는 베란다에 기둥을 두고 삼면은 각 6 개의 독방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초기 방형의 비라하굴 형식을 하고 있다.
골굴 석굴과 콘다네 석굴은 차이티야굴의 기본 평면이 U 자형의 말발굽형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앞면에 목조가구를 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석굴의 구조가 1 개의 차이티야굴에 여러 개의 비하라굴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콘다네 석굴이 차이티야굴 내부에 스투파만을 봉안한 것에 비해 골굴 석굴은 불상을 굴 내부에 봉안하였던 점을 둘 수 있다. 그리고 콘다네 석굴의 비하라굴이 베란다에 기둥이 있고 정방형의 비하라굴 형식인 것에 비해, 골굴 석굴의 비하라굴은 주의 암벽에 여기저기 배치된 자연굴을 이용한 것에서 그 차이점이 있다.
이처럼 이 두 석굴을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은 인도 석굴사원이 한국의 석굴사원 조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 골굴 석굴의 기원은 인도 초기 석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시대적 차이와 골굴 석굴의 자연적인 환경 요인으로 인해 한국의 독특한 석굴사원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The Golgul cave in Shilla is a cave which represents Korean cave temples along with Seokgulam. This study investigated the origins of the Golgul cave by comparing the Golgul cave with the Kondane cave, which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important caves in India. Of course, the construction timing of the two caves is quite different, and the early caves, the Kondane cave enshrining a Stupa and the Golgul cave which enshrine the Buddha statue, reflect the difference of the times. However, these two caves have a common point in the structure of a stone cave which is an excavation cave made by using a natural cave, and the similarity can be found, such as its relevance to wooden architecture.
The Kondane Cave is a representative cave which shows the composition of the early Indian cave built around the first century BC. Chaitya cave is represented by a U-shaped horseshoeshaped planar structure, an octagonal column with a brief structure surrounding the stupa, and a large arch window that forms the walls of the cave entrance, as well as various designs and figure statues reflecting wooden buildings. The Vihara cave has a typical early Vihara cave style, with a wide courtyard, a pillar on the veranda on its front, and six solitary rooms each on three sides.
The Golgul cave and the Kondane cave have a common point in that the basic plane of the Chaitya cave consists of a U-shaped horseshoe-shaped plane and has wooden furniture on the front. It is also the case that the structure of the cave is made up of several Vihara caves in one Chaitya cave. The biggest difference, however, is that the Kondane Cave only encircles the Stupa inside the Chaitya cave, while the Golgul cave encircles the Buddha statue inside the cave. In contrast, while the Vihara cave of the Kondane stone cave has a pillar on the veranda and a square type of Vihara cave, the difference of the Vihara cave of the Golgul cave is that it uses natural caves placed all over the rock wall of the cave.
A comparison of these two caves reveals how the Indian cave temple influenced the construction of the cave temples in Korea. The origins of the Golgul cave can be found in the early cave of India, but it can be seen that due to the periodic difference and the natural environmental factors of the Golgul cave, it formed a unique cave templ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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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칸헤리석굴과 골굴석굴

저자 : 손신영 ( Shon Sin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1-7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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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헤리석굴과 골굴석굴은 암산 전체에 걸쳐 굴실이 조성되어 있는데, 칸헤리석굴은 검은색 현무암, 골굴석굴은 회백색의 응회암이어서 재질의 차이가 있다. 굴실의 개수는 칸헤리석굴이 109 개, 골굴석굴이 12 개로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만, 두 석굴 모두 굴실을 조성할 수 있는 암벽면을 최대로 활용한 결과로 보인다. 예배굴은 현재 두 석굴 모두 1 室이지만 굴실의 양상과 기록을 통해, 두 석굴 모두 예불할 수 있는 공간이 적어도 2 室이 계획·조성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 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칸헤리석굴의 예배굴에서 예배의 대상은 스투파이며, 불상은 굴실 내부가 아닌 베란다에 조성되어 있는데 5 세기 이후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골굴석굴에는 두 곳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굴실 내에 있던 상은 18 세기에도 조성시기와 도상을 파악키 어렵다고 하였다. 이 상은 현재 파악되지 않으며, 굴 밖의 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으로 보인다.
칸헤리석굴의 예배굴인 제 3 굴이 입구의 계단·난간 및 좌우 벽기둥·4 개의 기둥 및 베란다·굴실內 34 개의 기둥 및 스투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골굴석굴의 예배굴인 관음굴은 전면의 목조결구와 문·지붕·굴실 내부의 불단과 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칸헤리석굴은 열주가 세워져 스투파 앞의 공간이 신랑과 측랑으로 구분될 정도로 넓고 깊지만 골굴석굴의 불상이 봉안된 불단 앞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고 단일한 공간이다. 굴실 내부 장엄에 있어서도 칸헤리석굴은 입구의 난간에서부터 굴실 내 주두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건축부재로서 조각된 모습이지만 골굴석굴에는 그러한 장엄이 없다. 다만 골굴석굴의 경우, 굴실 전면에 형성된 목조가구에 채색된 바가 장엄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Both Kanheri Caves and Golgul caves are built over the rocky mountains. Kanheri Caves are black basalt and Golgul caves are grayish tuffs. The number of caves in Kanheri is 109, and the number of Golgul is 12. The numbers of caves are noticeably different but both caves seem to be the result of maximizing the use of a rock wall to create the caves. Even though the worship cave remains just one in each cave now, it can be inferred that at least two rooms were planned and constructed through the records in both caves.
In the worship cave of Kanheri Caves which seem to have been built in the first half of the second century, the object of worship is the stupa. The Buddha image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carved since the 5th century is built on the veranda, not inside the cave. There were two Buddhist statues in Golgul caves, but these statues can't be recognized now. Even in the 18th century, it has been said that the statues inside the cave had been difficult to grasp the time of construction and the images. The statue outside the cave appears to be a statue of Maaeyeoraejwasang(Rock-Carved Seated Buddha Statue) which is designated as a treasure.
The third rock cave, the worship cave of Kanheri caves, consists of a stairway at the entrance, a railing, wall pillars on the left and right, four pillars at veranda, 34 columns and the stupa inside the cave. However, Gwaneum (Avalokitesvara) Cave, which is a worship area of Golgul caves, is composed of a frontal wooden structure, the gate, the roof ,aBuddhistaltar, and a Buddhist statue. While Kanheri Caves with columns being set are spacious and large enough to be divided into a nave and aisles, Golgul caves have the relatively narrow space in front of the altar where Buddhist statues are enshrined. As for the embellishments of the inside of the caves, Kanheri Caves are carved in architectural members of framework from the entrance railings to the headpieces on columns , but there is no such splendor in Golgul caves. However, in the case of Golgul caves, the colored wooden furniture formed on the front of the caves can be regarded as a kind of embell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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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골굴 석굴과 인도 카를라 석굴의 비교고찰

저자 : 주수완 ( Joo Soo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3-89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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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굴사가 인도에서 도래한 승려 광유(光有)에 의해 개착되었다는 창건설화는 석굴사원이라는 형식이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신라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설화로 생각된다. 현재는 석굴 앞에 새롭게 증축된 목조전실이 세워졌고, 그밖에 개방형인 석굴도 있는데, 『산중일기』에 의하면 석굴마다 목조전실을 설치하여 전각들이 바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했으므로 원래는 더 많은 목조전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골굴사의 원형은 인도의 카를라 석굴사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카를라 석굴은 입지에서부터 서부 해안가 뭄바이를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해 감포로부터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골굴사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해 보았다. 또한 자연암반을 놔둔 채, 내부만 중층으로 연결하여 다층의 비하라를 설치한 카를라 석굴의 승방굴 양상은 골굴암에서 층층히 바위 틈에 석굴을 배치한 것과 유사하다.
또한 석굴사원이면서도 목조건축의 구조를 강조한 카를라 석굴의 양상과 비교해 보았다. 또한 하나의 차이티야당 혹은 불당이 다수의 승방굴과 조합을 이루는 구성 역시 유사하다. 이러한 양상은 카를라 석굴 외에 바자 석굴, 콘다네 석굴과 같은 초기 양상의 석굴사원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골굴사는 현재 각 석굴마다 작은 불상들을 봉안하여 일종의 불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카를라 석굴처럼 수행굴이 중심이고 마애불이 바로 차이티야당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카를라 석굴 차이티야당의 정면 파사드 구조도 실제로는 목조전각의 구조적 형태를 그대로 석조로 번안한 것이다. 다만 내부의 천정을 구성하는 늑재 부분을 실제 목조로 설치하여 목조건축적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만약 현재 골굴암 석굴들 앞에 이와 같이 목조전각을 설치한다면 바위와 목조의 어울림은 마치 카를라 석굴 차이티야당 내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다.
그 외 카를라 석굴의 비하라 앞에 설치된 스투파는 승려 공양을 위한 스투파로 생각되는데, 원칙적으로 스투파는 재가신도들의 공양대상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원래 대중부가 성행했던 곳이고, 대중부 율장인 『마하승기율』에서는 승려도 불탑공양의 공덕이 있다고 했으므로 승려들을 위한 불탑이 별도로 세워진 것이 아닌가 추정해보았다.


The story about the Silla Golgulsa cave-temple was found by Indian monk Gwangyu might be formed from the awareness of Silla peoples that a kind of cave temple was derived from India.
Although these days, Golgulsa is comprised of the caves with or without wooden front room, but according to Sanjungilgi(Travelogue of Mountain temples) written by Jung Sihan, most of caves in this site originally had wooden front room and it was looked as hanging on the rock. Even the scale is different, the original form of Golgulsa can be retraced to Indian buddhist caves of Karla near in Lonavala. The location of Karla caves besides by the way from west sea side of Mumbai to east side of inner area is comparable to geographical situation of Golgulsa temple which is between the Gampo of east seashore and Gyungju the capital of Silla dynasty. And it is also similar that the vihara caves of both sites are excavated in the naturally blockish rock surface and these multistory viharas are connected by rock steps.
The most noticeable common point is the combination of real wooden structure and rock cave. Further more, the combination of single caitya shrine with multiple vihara caves was also common conception of both buddhist cave site. These composition is a kind of common style in early buddhist caves in India as Bhaja and Kondane sites. The caves of Golgulsa in which enshrined some buddhist images were supposed to be originally near in conception of viharas.
And the small stupa in front of vihara in Karla is also very unique. This stupa is regarded as for an exclusive use of buddhist monks in Karla caves. Because the stupa was built originally for laymen's devote and not for monks, so this situation is especially noticeable. It can be interpreted that the caves were associated with the Mahasamghika sect of Buddhism, so the local monks were very familiar to worship the st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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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최순우 선생의 생애와 학문세계

저자 : 문명대 ( Moon Myeong-da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1-102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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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순우 선생의 학문적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본 글이다. 선생께서 걸어간 생애와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있기를 고대해 마지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혜곡 선생은 평생을 시종일관 국립박물관에서만 근무했던 최초의 진정한 박물관맨이고 학문적으로 한국미술사를 개척한 개성 3 걸 가운데 맏형이다. 특히 한국도자사와 한국회화사를 한국 처음으로 전공한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우현 고유섭 선생에 이어 한국미 탐구를 진정으로 체득한 유일한 선구자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선생의 탄생 100 주년을 맞아 선생의 학문적 생애와 업적을 간략하게나마 선생의 영전에 올릴 수 있게 된 점, 제자의 한사람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더욱 감사말씀을 올린다.


This study is a brief review of Choi Sun-wu's academic life and achievements. I think it is also meaningful to organize his academic life and achievements with which he went through. Based on this, I look forward to a more in-depth discussion.
As I put an emphasis once again, Hyegok is the first true museum man who has been working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for the rest of his life, and he is the eldest brother of the three Gaesung outstanding figures who pioneered Korean art history academically. In particular, in addition to his being a pioneer in Korean ceramics history and Korean painting history in Korea for the first time, it is accredited by everyone that he is the only pioneer who has truly experienced the exploration of Korean beauty following Wu-hyeon Ko Yu-seop. In the 100th anniversary of his birth, as one of the disciples, I am pleased to be able to place brief explanations of his academic life and achievements before the spirit of the forerunner, and I would also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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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최순우 선생의 회화사 연구

저자 : 이원복 ( Lee Won B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3-11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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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4 대 관장을 역임한 崔淳雨(1916-1984)는 국립박물관에 40 년 넘게 봉직한 博物館人으로 문화예술 행정가이자, 큰 美術史學者이다. 그의 繪畵史 연구업적은 '한국미술 5 천년전' 국외전시, 1972 년과 1977 년 개최한 '한국회화 5 백년전'과 '국립박물관소장비장회화특별전' 등 수많은 전시기획, 資料發掘調査, 발표한 논고, 그 나름의 독자적으로 개척한 문화재관련 수필 등을 통해 확인된다. 회화사는 陶磁史와 함께 그의 연구에서 비중이 크다.
첫째, 현존하는 조선시대 그림 전체에 대한 聚合에 각별한 관심과 이에 대한 일련의 사업들을 들게 된다. 연구에서 가장 긴요한 기초 작업으로 개인소장 서화와 寺刹 내 佛畵照査 두 사업을 각기 5년씩 연차적으로 기획했다.
둘째, 조선시대 회화사적 비중이 큰 조선중기 화풍을 연 金禔(1524-1593)와 李慶胤(1545-1611)의 작품발굴이 주목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인 보물 제 783 호 <童子牽驢圖>와 호림박물관 소장 20점으로 된 화첩 내 9 점에 화가와 동시대를 산 선배 崔笠(1539-1612)이 1598 과 1599 년에 직접 쓴 跋文과 讚詩가 있다. 화적이 드문 李楨(1578-1607)의 실경과 관념의 두 산수화첩,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인화가 鄭遂榮(1743-1831)이 금강산을 그린『海山帖』등 한둘이 아니다.
조선 말 김수철과 洪世燮(1832-1884), 李喜秀(1836-1909)의 발굴은 새로운 감각으로 이異色畵風으로 지칭되는 전통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사점이 큰 화가들이다. 이들 작가에 대해선 박물관 내 李泰浩, 李源福 등 후학에 의해 본격적인 논고로 발표되었다. 작품발굴은 국외까지 이어져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 소장 李巖(1507-1566) 계열의 <狗子圖>, 영국 대영박물관의 肖像畵 草本과 불화도 있다.
셋째, 그는 우리나라 회화 전반에 대해 통시대적으로 살피되 일반회화 외에 불화와 民畵, 현대회화 평론까지 참여했습니다. 한국동란으로 부산 피난 중에 '제 1 회 현대작가 초대전'(1953.5.1-5.31)과 '한국현대회화 특별전'(1954.1.1-1.31)을 열기도 했다. 이들 그림을 함께 살필 때 우리 옛 그림의 眞面目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고대 한국회화 발달의 요람이 초기 불교회화에 바탕을 두었고 고대회화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조선초기부터 말기까지 화가를 망라해 시대별, 화가별 화풍의 특징을 추출했다.
넷째, 공예분야의 연구와 더불어 도자가 문양의 繪畵性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림의 전래가 드문 고려와 조선 초기에 있어 이들을 工藝文樣을 회화사의 補完資料로 원용한 점을 들게 된다.
다섯째,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사립박물관과 수많은 개인 소장품 등, 매 작품마다 오랜 세월 장기간에 보고 또 본 후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과 작가를 간결하고 길지 아니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정리했다. 일견 짧은 에세이이나 그 안에 쉽고 아름다운 文體로 서술하여 읽는 이에게 美感의 본질에 도달케 한다.
우리 조형예술 전반에의 따듯하며 예리한 시선으로 찾은 공통분모는 같은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을 전제로 살펴 편협하지 않은 國際的 시각이 아니다. 風土와 미감의 차이에서 빚어진 미적 差別性까지 살폈다. 결국 우리 회화의 독자성과 특징 나아가 韓國美의 특징의 추출로 귀결된다.


As a fourth Director of National Museum of Korea, Choi Sunu(崔淳雨,1916-1984) had been dedicated himself to the museum over 40 years and now known as a diligent Museum Man, Culture and Art Administrator and great Art Historian. His achievements on Art History are remarkable from international exhibition 'Korean Arts in 5000 years', domestic renowned exhibitions such as 'Masterpieces of 500 Years of Korean Painting', 'Korean Paintings selected from collection of the National M useum - to be shown for the first time to the public-' in 1972 and 1977. Apart from those results, his personal researches on art histories, documentations and research essays show his great interest on museum and its material cultures. Art History is one of his main research areas as much as history of Celadon.
First of all, Director Choi did gather all exist paintings of Joseon and had been organised several works for these paintings. As a pivotal base works for his research, personal collections of Joseon Paintings and paintings that owned by temples were thoroughly studied in five years terms.
Second, Choi focused on painters Kim Si(金禔,1524-1593) and Lee Kyeong Yoon(李慶胤,1545-1611) who both are crucial to understand intermediate term of Joseon Period. To a certain extent, Director Choi also uncovered Choi Rip(崔笠,1539-1612) who directly wrote poet on painting in Horim Museum and Leeum, Samsung Museum of Art and Lee Jeong(李楨,1578-1607) whose writings are rarely found and Jeong Soo Young(鄭遂榮,1743-1831) who draw Mount. Geumgang. Painters such as Kim Soo Chul, Hong Se Sup(洪世燮,1832-1884), and Lee Hee Su(李喜秀,1836-1909) whose works were mainly found in late Joseon are all famous for unique style which suggest the provision of traditional paintings. Those painters are all highlighted by younger researchers Lee Tae Ho, Lee Won Bok from National Museums.
Third, Choi rigorously overviews not only traditional paintings of Korea but also Buddhist, Folk, and Modern paintings. 'The First Invitation Exhibition of Korean Modern Paintings(1953.5.1-5.31)' and 'Special Exhibition of Korean Modern Arts(1954.1.1-1.31)' had been organised in Busan even during the Korean War.
Fourth, with the research on crafts, Choi comprehended the artistic perspectives of Celadon. As of its uniqueness of paintings in Goryeo and Joseon, it is hard to be descended for long time and so Choi tried to use the craft arts to understand the paintings.
Finally, Choi's summaries on paintings from national, private museums and even from personal collections are simply made based on thorough researches on them that helps readers comprehend real value of paintings. His researches on Korean paintings are well shown its traditionality and distinctiveness of original but unique Korean styles, not just like other Asian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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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최순우(崔淳雨) 선생의 공예 연구

저자 : 최응천 ( Choi Eung Ch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9-14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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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의 공예 분야의 연구 성과는 비록 개설의 성격이지만 최초로 우리나라 공예 분야를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시대별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을 소개한 미술서적이 전무하였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공예에 관한 소개서를 일본에서 출간한 공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 일찍부터 한국 목공예품이나 민속공예품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의 저술을 남겼고 『韓國의 木漆家具』라는 역저를 출간하여 조선시대 목공예품을 비롯한 나전칠기를 민예품의 차원을 떠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당당한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선생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미술사의 업적은 도자기와 회화 부분에서 단연 돋보이며 특히 국립박물관의 조사 성과를 토대로 초기 고려청자 요지를 밝힌 것도 주요한 업적이다. 白磁 大壺를 '달 항아리', 玉璧底 굽을 '햇무리 굽' 이라는 도자 관련 용어를 우리말로 고쳐 부른 것도 선생의 천부적인 어휘력과 탁월한 미감에서 창출된 것이다.
선생의 고려나 조선의 도자기 논고를 제외한 공예 관련의 단편 논문은 5 편 정도가 확인되며 주로 고려 범종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선생 역시 한국 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틈틈이 조사하여 자료를 남기고자 했음이 파악된다. 나머지 글들은 대체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비교적 짧은 글들이지만 여기에 선생이 지닌 평소의 미의식과 탁월한 식견, 나아가 일반 독자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여 한국 공예의 우수성을 소개한 점은 공예사 분야의 숨은 성과로 판단된다. 지면상의 한계와 학술 논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전문가적 식견은 선생의 평소 여러 분야에 노력을 경주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진다.
논문의 성격을 띤 글들이 주로 회화와 도자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공예에 관한 글들은 수필이나 에세이 성격을 지닌 단편적인 글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공예 분야의 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미술사학자들이 추구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을 고대부터 조선시대라는 통시대에 걸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선생이 지닌 통찰력과 타고난 심미안을 통해서 가능했지만 평생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울였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선생은 그동안 외국인과 일본인이 지녔던 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미술을 설명하고 한국 공예의 특질과 아름다움을 도출해내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를 일본과 미국 유럽에 알리고자 국립박물관 재직시절 기획하고 총괄하였던 <한국미술 오천년>전시는 가난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5000 년이라는 유구한 문화를 지녔음을 전 세계에 알린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바로 이 전시의 중심에서 한국 문화재를 세계 속에 알린 가장 훌륭한 문화 외교관이셨다.


Research accomplishment in the craft history field of Choi Sun-woo is introductory in nature, but it is the first time that the Korean arts fields were organized by period from Three Kingdoms Period to Joseon era. In a situation with the absence of an art book introducing Korea, he would publish introducing books about Korean crafts overseas in Japan. Early on, he focused on Korean woodwork and folk crafts, and left the books in a field that was not very noticeable to upgrade them to the representative artworks of our country beyond simple folk art crafts.
Among his accomplishments related to craft history are conspicuous in ceramic history studies. It is also one of the major accomplishments that based on the survey results of the National Museum, he clarified the kiln site of the early Goryeo celadon, and revised the ceramics related terms 'Dalhangari' and 'Haetmurigup' in Korean.
The short articles related to crafts, except for his papers on ceramics, are about five,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 contents of Goryeo bells mainl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Korean bells early at the time. The rest of the articles related with crafts are relatively short essays publish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but the point that his aesthetic sense, excellent insight, and easy-to-understand explanations for everyone in general, introduced the excellence of Korean crafts is a hidden achievement in the field of craft history. Although it is not an academic paper, his works reveal the depth of the professio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expert's opinion. It is noteworthy that the arts of various fields, which were not pursued by other scholars of art history, have been interested from ancient times to the Joseon period. It was because of his insight and innate aesthetics that he spent his entire life at the National Museum, so that he could express his deep affection for Korean cultural assets.
Away from Korean art, which was depicted by perspectives of foreigners, through our concrete and clear vision, he devoted his life to deriving the qualities and beauty of Korean crafts. The exhibition of “Five Thousand Years of Korean Arts”, which was planned and organized by him when he worked at the National Museum to inform the beauty of Korea to Japa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s an excellent opportunity to show the world that Korea was a cultural nation with a 5000 year old culture. He was the greatest cultural diplomat who informed the world of Korean cultural assets in the very center of this exhibition.

KCI등재

8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의 불화·불상 연구

저자 : 김창균 ( Klm Chang-k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5-16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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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선생은 30 세 때인 1946 년 국립개성박물관 참사를 시작으로 미술사에 입문하시어 1948 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근되어 보급과장, 미술과장, 학예연구관, 학예연구실장을 거친 다음 1974 년부터 1984 년까지 10 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셨다. 선생은 한국미술사 중에서도 주로 도자사와 일반회화사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불교회화와 불교조각에 대해서도 학술지와 보고서 및 신문을 통해 꾸준한 발표를 함으로써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셨다.
주 연구분야가 아닌 불화연구에 있어 심미안적인 표현만이 아닌 畵記를 통한 조성배경 및 조성목적 파악, 불화 조성의 중요성 및 양식분석에 있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불상 연구의 경우에 있어서도 상의 조형성 및 양식특징 파악 등 학술적 분석과 더불어 뛰어난 안목과 식견을 바탕으로 한 각 상들의 특징 기술로 선생의 양면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선생의 연구자료 중 대략적인 면만 살펴보아서도 파악할 수 있듯이 그의 천부적인 심미안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미의식을 토대로 묘사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높은 식견를 바탕으로 한 학술적 접근 또한 결코 도외시 하지 않음으로서 깊이 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연구 의의를 둘 수 있겠다.


Hyegok, Choi Sun-wu entered into art history as a position of Chamsa at the National Gaeseong Museum in 1946 when he was 30 years old. After being transferred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1948, he was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for ten years from 1974 to 1984 after passing through the supply department director, art director, curator, and chief curator. He was interested in ceramic history and general art history in the Korean art history. However, he expressed great interest in Buddhist paintings and Buddhist sculptures by making steady presentations through journals, reports and newspapers.
In the Buddhist study, which is not the main field of his study, he shows not only the aesthetic expression but also the insight in grasping the background of the composition purpose, importance of composition of Buddhist paintings, and style analysis. Also, in the case of studies of Buddhist paintings, both sides of his can be found by the feature description of each image based on outstanding insights and discernment in addition to academic analysis such as formality and style characterization of the image.
As can seen from a rough look at his research,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while he focuses on depiction based on his aesthetics and aesthetic awareness obtained through his eye for the beautiful and experience, at the same time, it is confirmed that his academic approach based on high level of insight is also inseparable and shows deep results.

KCI등재

9최순우 선생의 석탑과 석조 미술사 연구

저자 : 소재구 ( So Jaegoo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63-17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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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崔淳雨, 1916-1684) 선생은 평생을 국립박물관에 재직하면서 국립박물관의 초석을 다진 분이다. 또한 한국 미술사학계의 원로학자로서 수많은 연구논문과 글을 남겨 온 국민과 후학들에게 우리의 전통 문화예술이 간직해온 위상을 일깨워주었던 선구자이다. 선생이 남겨 놓은 수백 편의 글 중에서 석조미술에 대한 논고는 극히 드물다. 아마도 당시의 사회에서 한국 전통 미술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공예와 회화 및 조각 분야에 많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석조미술에 식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된다. 그 예로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등에 대한 논고를 읽어보면 한국불탑 조성의 발자취와 그 시대적 특징을 조목조목 정리하는 가운데에서 선생의 식견을 피력하고 있어 이 분야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생은 석조건축이나 석조미술 분야의 연구 대상물 중에서도 조형적 창의성과 조성기법이 탁월한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예로 불국사 석조기단의 특수한 설계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에 보이는 부조 장식과 석사자를 응용한 기둥 등을 언급한 내용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불국사 다보탑의 조형적 분석과 미술사적 해석이 전무한 상태이며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도 조성시기의 편년에 약간의 진전이 있었을 뿐 탑 조형의 해석에는 설득력 있는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서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조형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어떤 진전의 이행이 있었는지조차도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다. 심지어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석탑의 기단이 어떤 연유에서 2 층 기단으로 정형화 되었는지도 연구된 것이 없다. 선생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불국사의 대석단(大石壇) 또한 그 조성 연원과 조형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겨져 있다.
이 글에서는 선생이 관심을 가졌던 대표적인 석조문화재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불국사 대석단에 대하여 필자가 갖고 있는 새로운 시각의 조형적 분석을 실험적 차원에서 시도하였다. 예를 들면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의 사자형 석주 조형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석비상의 사자장식 대좌의 조형에서부터 검토하였으며 불국사의 대 석단은 중국 및 아시아의 남방 수변건축에서 그 조형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이와 더불어 불국사 다보탑과 석굴암 본존상의 조형이 의미하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남방 선진문화 도입의 양상도 풀어보았다.
우리는 석탑의 석조미술사를 연구해오면서 석조물 구조의 변화에만 골몰하여 모든 석조문화재의 조성시기의 연구에만 치중하였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조형의 의미를 분석하고 조형적 특징이 보여주는 시대적 문화양상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몇 가지 더 조형적인 재해석이 요구되는 석조분야의 장식기법에 대하여 새로운 의견을 피력하였다.


Director General Choi Sun-woo(崔淳雨, 1916-1684) is the founde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he spent his entire life at the National Museum. And also as a senior scholar in Korean art history, he is a pioneer who have left countless research papers and writings that our traditional culture and arts have been preserved. But his work on stone art history is rare. Perhaps it was because there was a lot of interest in Korean traditional art culture in the society at the time, focusing on craft, painting and sculpture. I do not think that he was not interested in stone art at all. For example, in his treatise on the stone stupas, he explained the footsteps of the creation of the Korean stupa and characteristics of the each period. He was also considerable interest in this area.
Among the objects of study in stone architecture and stone art field, he was especially interested in works with excellent formative creativity and creation techniques, for example, the special design of the stone foundation on the Bulguk-sa Temple and the relief and lion decoration on the three-storied stone pagoda of Hwaeom-sa Temple.
However, even after more than 30 years since he left the world, there has been no formative analysis of the stone art and architecture in Bulguk-sa Temple. The lion-decoration stone stupa in Hwaeom-sa Temple has also made some progress on the study of construction period, but there is little persuasive research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meaning of the molding. In addition, there was no research on the clear relationship between the stupa of the Mireuk-sa Temple-site and Five storied stupa of the Jeongrim-sa Temple-site of Baekje. Even in the Unified Silla period, there is no study on how the base of the stone stupa has been stylized to the double floor. The grand stone base of Bulguk-sa Temple, which he did not care for his praise, is still left unsolved.
In this paper, I tried the experimental analysis of my new perspective on the lion-decoration three-storied stone stupa of the Hwaeom-sa Temple and the grand stone base of Bulguk-sa Temple which he was interested in. For example, the lion-decoration three-storied stone stupa of Hwaeom-sa Temple were examined from the molding of the lion-decoration pedestal of the ancient Chinese stone statue and I researched the formative origin of the grand stone base of Bulguk-sa Temple in the southern waterside architecture of China and Asia. In addition to this, on the aspect of the Dabo-tap stupa of Bulguk-sa Temple and the prime statue of Seokgul-am Temple, I also suggested introduction of the advanced culture of the southern advanced Asia and China in Unified Silla period. Finally, I gave a new opinion on the decoration technique of the stone art field which requires some more formative reinterpre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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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익산지역 소조상의 편년에 대한 고찰

저자 : 진영아 ( Chin Young Ah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51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9-19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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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지역에서 발견된 소조상은 부여의 소조상과 다른 양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백제 사비기인 7 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이는 유물의 양식보다는 사료자료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익산은 지리적으로 백제의 영역에 속했지만, 백제멸망이후에도 운영되었다. 즉, 익산지역 소조상은 부여의 것과 스타일이 비슷할 지라도 부여의 것보다 늦게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2 장에서는 익산지역 소조상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소조상은 다양한 곳에서 출토되나 두 사찰의 출토양상이 다르므로, 두 사찰 소조상의 봉안방식 혹은 봉안처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익산지역 소조상의 제작기법은 부여지역 소조상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작시기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음장에서는 소조상의 양식과 공반유물을 통해 편년추정을 하였다. 소조상은 재질의 특성상 완형으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소조상은 그 시기의 양식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의 <소조머리편>과 제석사지 출토 <소조입상>이 바로 그 예이다. 두 사찰의 <소조머리편>의 발제선과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소조입상>의 의습표현을 통해 익산지역 소조상의 제작시기가 기존 7 세기보다는 늦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 두 사찰에서 출토된 당초무늬가 표현된 암막새와 미륵사지 출토 <녹유연목와>를 통해 소조상의 편년이 기존 7 세기보다는 후행하였다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Clay statues, found in Iksan, have been considered to be made in the 7th century although it shows different styles of those found in Buyeo. This might be because many researches were conducted in the basis of historical documentation that does not fully reflect a categorization or grouping of an artifact's styles or patterns. Although Iksan is geopolitically included in the boundary of Baekje, it is independently managed after the collapse of Baekje. This suggests that even though similar styles of clay statues have been found in Iksan, they are likely to be made relatively later than in Buyeo
In Chapter 2, the present condition of clay statues in Iksan were studied. Clay statues in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are excavated in various places, but the two Buddhist temples show different aspects of excavation. This implies that these two types of statues have different enshrinement methods and enshrinement places. Additionally, the production methods of clay statues in Iksan are different from those in Buyeo.
In the next chapter, chronological estimation is conducted through researching the style of clay statues and associated relics. Due to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clay statues are not found intact. However, some clay statue pieces in the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provide clues to estimate the production style of that period. Representative examples are the Head Fragment of Clay Statues from the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and the Standing Statue from the Jesoek Temple Site. The style of Hair line of Statue Fragment in two Buddhist temples and the style of wrinkles in a dress of statue in Jesoek Temple Site provide possibilities that statues in Iksan were made after the 7th century. And Roof-end Tile with Rinceau Design and Green-glazed Rafter-end Tile in these two temples also suggest that statues can be made after th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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