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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연구 update

The Journal of Paekche Research Institute

  •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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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6-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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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0)~71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08
백제연구
71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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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백제연구소 40년의 연구성과와 과제

저자 : 姜鍾元 ( Kang Jongwo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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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백제연구소가 법정 연구소가 된지 40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 하고, 향후 연구소의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백제연구소는 백제사 연구를 목적으로 출발하여 학제간 연구를 통해 연구 분야를 다양화시키고, 동아시아로 연구범위를 확대시켜 국제적 인 학문교류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논문집인 『百濟硏究』70집을 비롯해 백제연구총서 13권, 학술연구총서 14권, 기타 4권 등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학술활동으로 66회의 공개강좌, 11회의 국내 학술회의, 22회의 국제학술회의, 23회의 자료윤독회, 기타 6회의 초청강연회와 학술회의 등을 개 최하였다.
이를 통해 백제연구소는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다양한 연구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백제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각종 학술회의를 통해 연구자들의 연구역량 제고와 연구의 저변을 넓히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학제간 연구, 국제교류 등 다방면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1970년대 백제사 전공 자가 많지 않았던 시기에 백제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후 백제사 연구자 배출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다.
현재 많은 연구기관에서 기관의 설립목적에 따라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백제연구소의 활 동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변화 속에서 백제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 모색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This summary is for reviewing the research achievements comprehensively and identifying effective operational policies marking 40th anniversary of Baekje Research Institute as a legal agency. Being started with the aim of studying Baekje history, Baekje Research Institute has diversified the research areas through interdisciplinary research and expanded research scope into the East Asia region for the international academic exchange. Meanwhile, it published Baekje Research(『百濟硏究』) 70 editions which are the collection of research papers, 14 books of the academic study series and 4 other books. In addition, it held 66 academic open lectures, 11 local academic conferences, 22 international academic conferences, 23 research material reading sessions and 6 other special guest lectures and academic conferences.
So, Baekje Research Institute could lay the foundation for Baekje history study by providing various materials to the researchers and contributed to expand the research base and strengthen the researchers' capabilities through a lot of academic conferences. Furthermore, interdisciplinary study and international exchanges are also the fruitful results in various areas. In particular, it greatly attributed to bring attention to Baekje history despite the small number of relevant specialists in 1970s and have had an influence in part on producing Baekje history researchers.
Currently diverse studies are being conducte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the establishment of the institutions but the activities of the Baekje Research Institute are weakening. Amid these environmental changes, several ways for redefining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Baekje Research Institute are suggested in this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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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기 일본 내라현(奈良縣) 사쿠라이(櫻井)지역의 이른바 전곽식석실(磚槨式石室) 검토

저자 : 金奎運 ( Kim Gyuu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5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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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열도를 상징하는 전방후원분은 7세기를 전후하는 시기에 당시 중심지역인 畿內지역부터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후 횡구식석곽 등의 새로운 묘제가 주요 매장주체부로서 자리를 잡게 되는 한편, 奈良縣 櫻井지역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석재를 전돌과 같이 가공하여 구축하는 이른바 磚槨式石室이라고 하는 독특한 매장주체부가 축조된다.
이 전곽식석실에 대해 속성분류 등의 형식학적 분석을 통해, ⅠA, ⅠB, Ⅱ, Ⅲ, Ⅳ유형으로 설정하고 그 특징을 명확하게 하였다. 더욱이 각각의 유형의 연대에 대해 형식학적 변화와 출토토기 분석을 통해 7세기 전엽부터 7세기 중엽에 걸쳐 축조되는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전곽식석실의 기원과 피장자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전곽식석실과의 비교 대상이 되는 백제의 전실분과 송산리형석실과는 시기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는다. 또한 전곽식석실에는 실제로 하나의 '塼'도 사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석실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백제의 전실분, 혹은 송산리형석실과 완전하게 같은 것도 단 한기도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평면형태는 당시의 일본열도 중심지인 飛鳥와 河內지역에 분포하는 횡구식석곽과 유사한 점에서, 전곽식석실은 백제의 전실분, 이주 민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마지막으로 전곽식석실은 석재와 분포, 축조연대 등을 통해, 榛原石이라고 하는 독특한 석재에 기인 하여 축조된 것으로 상정하였다.


The front-end patronage symbolizing the ancient Japanese archipelago began to dissipate in the 7th century in the then central region of kinai. Later, a new tomb, such as the Hoenggu Sikkok, will be established as the main storekeeper, while a unique burial body called the so-called "a Brick-type stone chamber" which is constructed in Sakurai area by processing stone materials that are not visible in other areas like bricks, will be built.
The formal analysis of this Brick-type stone chamber, such as attribute classification, has been established as IA, IB, II, III and IV types and its features have been clarified. Moreover, formal changes and earthenware analysis of each type of regiment revealed that it was built from the beginning of the 7th century to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And the origin and the subject matter of Brick-type stone chamber was also reviewed. In conclusion, it does not overlap at all with Baekje's Brick-type stone chamber and Songsan-ri's chamber, which are subject to comparison with the former chamber. Also, not a single brick is actually used in the Brick-type stone chamber. Moreover, in the overall form of the stone chamber, there is not a single cold snap that is completely the same as the former chamber of Baekje or the Songsan-ri stone chamber, and in fact, the entire chamber has nothing to do with a stone chamber of Baekje, given that the plane is similar in its shape to the transverse sphere of the central Japanese archipelago at that existed in the center of asuka and kawachi area.
Finally, the chamber was assumed to have been built due to a unique stone structure called 'haibaraisi', through its distribution and 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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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왜왕권의 백제유민 관리와 인재등용책

저자 : 延敏洙 ( Yeon Minso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7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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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왕권의 백제유민에 대한 관리와 등용은 일본고대의 신국가의 건설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들 이 보유한 신지식, 신기술은 그대로 왜왕권의 국가운용에 이입되었고, 그 저변으로 확산되어 갔다. 수천명에 달하는 백제의 망명자 속에는 중앙과 지방에서 상층부를 구성하는 귀족과 호족층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군사, 학문, 의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왜왕권은 백제부흥을 위해 수군단을 구성하고 막대한 군수물자를 투입하는 등 국가적 재정을 소모했지만, 결과적으로 백제의 수많은 인재 들을 받아들이는데 성공하였다. 백제 유민들은 왜왕권의 신국가정책 속에서 재능과 신분에 따라 관인으로 발탁, 등용되어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 나갔다. 그들 중에는 학문과, 의술, 문예 등의 제방면 에서 세습적 지위를 통해 가문의 번영을 이룬 씨족도 적지 않았다.


The management and appointment of Baekje migrants by the Japanese royal authority became an important basis in the construction of a new state in ancient Japan. The new knowledge and technologies of the Baekje migrants were introduced into the state management of the Japanese royal authority as they were and spread into its base. There were thousands of refugees from Baekje, and many of them became part of the nobility and powerful clans that formed the upper class in the central and local regions. There were also many Baekje refugees that worked as professionals in the fields of military, academics, and medicine. The Japanese royal authority organized the naval forces and invested the national finance into it including the massive war supplies for the revival of Baekje. In the end, they succeeded in accepting a huge number of talents from Baekje. The migrants of Baekje were selected and appointed as government officials according to their respective talents and social positions under the new state policy of the Japanese royal authority, exerting their abilities in their respective fields. Of them, many established their own families that prospered through the patrimonial status across the fields including academics, medicine, and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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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국에서의 백제연구

저자 : 馮立君 ( Feng Liju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1-150 (7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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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당시대 백제의 역사에서 동아시아를 발견할 수 있다. 백제를 국호로 삼은 인간 공동체와 그 문명 은 이웃 세계와의 다원적이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활약했으며, 이는 백제가 주변부가 아닌 한당동아시아의 중추로서의 역사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제의 역사는 첫째, 중국과 일본, 신라-고구려 계통이 기록한 '타자'의 역사적 기록, 다른 하나는 고고자료와 금석문 등을 포함하는 '自我作古'의 의 미를 갖는 백제인들의 역사유적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동아시아 각지 산포되어 있으며 오늘날 전면적으로 해독되고 있어 백제와 동아시아 연구를 심화시키는 본질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점으로 하면 한당시대 백제연구의 학술연구사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945년 이전 중국학자들의 연구는 초기단계였고, 일본학자들의 발굴조사와 연구가 주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ᆞ북한학자들의 체계적인 고고학과 세밀한 연구가 점점 주가 되었다. 근래 에 와서 중국학자들은 한당사와 동아시아사를 교차하여 사료를 세밀히 살피고 새롭게 확인되는 사료를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 스타일의 지역사 연구의 새로운 구도를 초보적으로 확립했다.
중국학자들은 현재 이미 초보적인 백제사료의 정리와 편년작업을 진행했으며, 『第一次 全國範圍的百濟史專題硏討會』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중국학계에서의 백제연구의 새로운 기점이 되고 있다. 중국의 백제연구자들은 비록 자의적으로 모인 연구집단은 아니지만, 그들이 이룬 백제사연구의 의 미는 특별하다. 우리들은 노력을 통해 한국·일본과 함께 연구하여 빠르게 나아갈 수 있으며, 진정으로 학술적인 공동의 진보, 문명의 교류로 서로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 history of Baekje in Han-Tang Period reflects East Asia. During this period, communities of civilization with Baekje as their national title existed in the neighboring world, which indicate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Baekje as a regional hub rather than a marginal region in Han-Tang Period. Baekje's historical writing includes 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other,referring to the systems of China, Japan and Silla-Koryo, and the historical relics of Baekje people, including archaeological materials and inscriptions on stones, bearing certain meanings of self-preservation.
A comprehensive interpretation of these historical materials scattered throughout East Asia today now is identified as the fundamental way to deepen the study on Baekje. If taken the end of WWII as a watershed, the academic history of Baekje studies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the time before 1945 in which Japanese scholars studies prevailed in terms of investigating and excavating; and the time after the war when systematic Archaeology and detailed research by Peninsula scholars gradually took the main position. In recent years, Chinese scholars carefully interpreted the Chinese cemeteries and searched for new historical materials through the intersection of the history of Han-Tang Period and the history of East Asia, thus, established a new pattern of Chinese style in regional history research.
At present, Chinese scholars have carried out preliminary historical data sorting and chronological work, and held the first nationwide symposium on the history of Baekje, which are new starting points for the study of Baekje in Chinese academic circles. Chinese Baekje researchers, though not self-conscious, are self-existent research groups, but their research on Baekje history is of great significance. We hope that through our efforts, we can make great progress in our peer-to-peer exchanges with Japan and South Korea, and truly achieve common academic progress and mutual learning of civil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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