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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Paekche Research Institute

  •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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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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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0)~6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00
백제연구
69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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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삼국시대 화살통 금구의 분류·편년·지역성

저자 : 土屋隆史 ( Tsuchiya Takafumi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8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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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화살통 금구를 집성한 후, 화살통 금구의 각 부위에 장착되는 적수금구(吊手金具) · 수납부금구(收納部金具) · 곡옥상금구(曲玉狀金具) · 대금구(帶金具)를 속성의 조합기준으로 몇 가지 형식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적수금구 · 수납부금구 · 곡옥상금구 · 대금구 형식의 세트를 검토하여 화살통 금구를 구성하는 각 부위의 금구 조합을 기준으로 화살통금구군(矢筒金具群)을 설정했다.
그리고 적수금구와 수납부금구의 속성 상관관계를 근거로 화살통금구군의 변화 방향성을 판별한 후,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 공반유물의 편년적 위치를 기준로 상정한 변화의 타당성을 검증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근거로 각각의 화살통금구군의 병행 관계를 정하고 화살통 금구의 변천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의 자료를 종합한 화살통 금구의 편년을 작성했다.
또한, 한반도 남부에서 화살통 금구의 분포 상황을 검토하고 그 지역성을 정치영역과 결부시켜서 해석했다. 그 결과, 백제, 신라, 대가야, 아라가야에서 각각 지역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This paper examines metal fittings, excavated from tombs of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 that were decorative metalwork for a type of quiver which spread from Northeast China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aims to examine how the products were distributed in these areas.
First, I collected the quiver fittings for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classified these into several forms. Next, I made sure directionality of a change in the quiver fittings and inspected the validity of the change on the ground of the age of the accompanying relics. Further, I grasped a change in the quiver fittings by 3 stages and made the chronicle.
Finally, I pointed out that the quiver fittings for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re divided into four distributional types, interpreted in relation with the political powers of Silla, Baekje, Daegaya and Ara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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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대(古代) 중국(中國) 진묘수(鎭墓獸)의 변용(變容)과 무령왕릉(武寧王陵) 진묘수(鎭墓獸) 재론(再論)

저자 : 趙胤宰 ( Cho Yunjae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9-7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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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석수는 고대 중국의 동한시기부터 등장하는 고분부장 진묘수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漢系(한나라 스타일) 진묘수의 전통을 계승한 남조의 고분부장 진묘수와 계보를 같이 하고 있다. 무령왕릉 석수의 출현은 백제 자체의 정치적 정황과 상장의례를 충분히 반영하는 한편 남조와의 대외적 관계를 고려한, 치밀하고 정교한 변용을 거친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남조능묘 석각 및 고분부장 진묘수에 대한 시각은 대부분 이원적인 事象으로 인식함으로써 양자를 구분하여 고찰하는 경향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무령왕릉 석수에서 관찰되는 양자의 조합과 변용 양상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백제가 특정 시기 남조능원의 요소와 왕후 및 상층부의 상장의례를 동시에 감안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남경 및 주변 일대의 능묘석각에서 보이는 문양이 무령왕릉 석수에서도 관찰되는데, 날개[兩翼]와 같은 정교한 표현은 보이지 않지만 문양의 전체적인 유사성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백제가 남조묘의 부장용 진묘수와 함께 지상의 진묘기물인 석각을 모두 參酌하였을 정황을 시사하는 것이다.


The origin of the Seoksu, a stone image of an animal set before a tomb, i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is the Zhenmushou, guarding animals in tombs, appearing from the Eastern Han Dynasty of Ancient China, and the genealogy is with the Zhenmushou of Nanzhao Dynasty that succeeded the tradition of Han Dynasty style of Zhenmushou. The appearance of Seoksu i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reflects the political situation and funeral ceremonies of Baekje sufficiently, and it can be seen as the result of passing through elaborate and exquisite transformation in consideration of the foreign relationship with the Nanzhao Dynasty. Until today, the view on the stone carvings on the tombs of Nanzhao and Zhenmushou in the tombs were mostly considered separately by recognizing in dualistic thinking. However, the aspect of combinations and transformations observed in the Seoksu i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cannot be excluded, and this has high possibility that Baekje considered the elements of Nanzhao Dynasty in the specific period, and the funeral ceremony of the upper class at the same time. The patterns shown in the stones of the tombs in Nanjing and surrounding regions are also observed in the Seoksu i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and exquisite expressions such as both wings were now observed, but similarity in the overall patterns were verified. Baekje took into consideration on both the Zhenmushou of the Nanzhao tombs along with the stone carvings of Zhenmus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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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제 무령왕의 빈례 절차 연구

저자 : 張守男 ( Jang Sunam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1-10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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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과 왕비가 27개월이란 빈의 기간을 보냈다는 것은 무령왕릉 지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殯의 개념은 서쪽 계단 위에 구덩이를 얕게 파서 대렴한 관을 임시 안치한 것이다. '백제대빈'이란 표현은 『日本書紀』 舒明天皇 기사에 “궁의 북쪽에 빈궁을 설치하고 이를 百濟大殯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萬葉集』에 두 차례 '大殯'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을 건물로 해석해 보면 무령왕의 지석 뒷면에 서쪽 방위를 비워두고, 빈소를 서쪽에 마련한 것을 백제대빈으로 풀이 할 수도 있다. 서명천황은 사망 후 8일 만에 빈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건물을 지을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주변의 건물에서 빈소를 택해야 했을 것이다. 기존 천황들의 빈소를 지명이나 궁궐 내부일 경우 건물이름이나 南庭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궁북이라는 것은 궁 밖의 별도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장소를 명시하지 않고 방위만을 표시한 것을 '백제대빈'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무령왕의 빈례 절차를 보면 먼저 빈소를 차리고 빈 기간 동안 새 왕의 즉위식과 조문이 이루어졌다. 먼저 빈의 시작일이 『禮記』에는 신분에 따라 천자는 7일, 제후는 5일, 대부·사·서인은 3일로 다르다. 무령왕의 빈의 시작일은 제후로 5일째에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 위치는 당시 백제는 서쪽에 빈소를 마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성을 중심으로 서쪽에 해당하는 정지산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정지산의 구조나 제사 유물, 빙고 등을 통해 그 곳을 빈소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빈 기간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안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이 즉위하여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표방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공인 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백제 성왕의 경우 정확하게 즉위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남조의 문화를 수용하여 즉일즉위하고 상례를 주관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조문의 모습은 사신을 파견하면 사신은 서쪽 계단에서 弔辭를 입으로 전하거나 나무판에 내용을 기록하여 가서 읽고 조사가 끝나면 곡을 하였다. 조문객은 울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또 조문 온 사신을 통한 추증의례와 조문품도 같이 들여왔다.


Bins(殯) refer to coffins temporarily put in a shallow pit over the steps in west after Daeryeom. Yegi says the Bin ceremony starts at different points according to social status. It starts seven, five, and three days after the passing of emperors, feudal lords, and Daebu·Sa·Seoin, respectively. It is estimated that the Bin ceremony for King Muryeong started five days after his passing since he was a feudal lord. As for the expression of "Baekje Daebin," the word "Daebin" appeared in Manyeopjib two times. It can be interpreted as a western building in Baekje. In Nihon Shoki, a funeral parlor was called a building name or Namjeong when it was a place name or inside a palace. It is thus estimated that Gungbuk means a separate building outside a palace. That is, it is likely that they used the term "Baekje Daebin" to mark only a direction without the elucidation of a certain place. Since people understood that a funeral parlor should be established in west in Baekje those days, his funeral parlor was established in Mt. Jeongji in west of Gong Mountain Fortress. The Bin period was of huge importance since it would witness the new king ascending the throne, claiming his legitimacy as a successor, and having his authority as a king recognized officially. Accepting the culture of Southern Dynasties in China, King Seong of Baekje ascended the throne on the same day and supervised the funeral rites of King Muryeong. The study examined the ways that they paid respects to the deceased those days and found that envoys dispatched to the funeral ceremony would deliver a eulogy in the western steps and wail after the eulogy. Mourners would cry, sing, or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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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성궁(平城宮) 조당(朝堂)을 통해 본 고대 일본의 천황

저자 : 金銀貞 ( Kim Eunju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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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의 목적은 평성궁에 설치된 조당의 검토를 통해 奈良시대에 천황 중심의 율령지배체제가 어떻게 건설 또는 재건되었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다.
藤原宮의 경우 단일공간에 설치되었던 조당이 平城宮에서는 중앙구와 동구 즉, 주작문 북쪽에는 초석건물로 지은 4堂이, 그리고 임생문 북쪽에는 굴립주건물로 지은 12堂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중앙구와 동구의 구조는 745년 평성경으로 환도한 이후 변화되었다. 중앙구에는 천평보자 연간(757~764)에 칭덕천황(稱德天皇)의 거소인 西宮이 조영되었고, 동구는 천평승보 연간(749~757)에 대안전은 대극전으로, 조당의 12당은 굴립주건물에서 초석건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평성궁의 중앙구와 동구는 平安宮의 豊樂院과 朝堂院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중앙구는 의례·향연의 장으로, 동구는 朝賀·정무의 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續日本紀』를 살펴보면 평성궁에 설치된 조당은 恭仁京으로 천도를 단행한 740년을 기점으로 그 사용형태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740년 이전에 조당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천황은 성무천황(聖武天皇)이었다. 이때 조당에서는 踐祚大嘗祭, 정월의 세 節會, 외국 사신을 위한 향연, 불경의 독송이 이루어졌다. 한편 745년 평성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는 광인천황기(光仁天皇期)에 조당의 활용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내용은 대체로 성무천황기와 유사했다.
성무천황기에 조당의 사용빈도가 높게 나타난 이유는 그의 조부인 藤原不比等의 구상과 성무천황의 국정운영 방향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불비등은 성무천황을 통해 강력한 천황 중심의 율령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불비등의 구상은 적어도 740년 공인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성무천황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무천황은 집권 전반기에는 율령지배체제를 강화하고 관인들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편 광인천황기에 평성궁 조당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은 율령지배체제의 쇠퇴를 우려했던 광인천황의 통치이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칭덕천황 사후 우여곡절 끝에 藤原式家인 등원백천·등원양계 등의 추대로 천황의 자리에 앉게 된 광인천황은 자신만의 분명한 통치이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道鏡으로 인해 야기된 칭덕천황기의 실정을 바로잡고 관인들의 위계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방대해진 관료조직을 축소 또는 재편하여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막고자 하였다. 이러한 광인천황기의 국정운영은 궁극적으로는 천황 중심의 율령지배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평성궁 조당은 고대 일본에서 율령통치의 중요한 요소인 정무·의식·의례·향연을 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식을 奈良시대의 모든 통치자가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통치자가 지향했던 국정운영의 방식과 목표에 따라 조당의 활용도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당의 활용 여부는 율령지배체제의 완성도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Having two buildings for doing political decisions and annual rituals, named “Cho-do”, was one of characteristics of the Heijo-kyu comparing to previous palaces like the Fujiwara-kyu. In the Heijo-kyu, one Cho-do positioned in its central plot and another was in its east plot.
After 745, the year the Emperor decided to return and settle there again, the original arrangement of each had changed. In the central plot, the Daigokuden which neighbored with the Cho-do had been reformed to living space of the Emperor Syotoku, named “Saigo” since 747 to 757. This new arrangement, losing neighboring Daigokuden, looks like that of Burakuin within the Heian palace, researchers thus have pointed out that the Cho-do had been used for annual rituals like the Burakuin after 745.
In the east plot, the Daianden which neighbored with the Cho-do was renamed to Daigokuden between 749 to 757. Additionally, pillars which sustained the Cho-do were changed from soil based one to stone based one. This new arrangement, gathering with the Daigokuden, is resemble with that of the Cho-doin within the Heian-kyu. Hence, researchers have assumed that the Cho-do had been used in the same way with usage of the Cho-doin, for discussing and doing political decisions.
According to sources, the Emperor Syomu used the Cho-do most frequently before 740. At that time, the Emperor's first rite, 3 rituals of 1st month, feasts for foreign messengers, reading sutras had been done there. On the other hand, frequency is the most during term of the Emperor Konin after 745. Though way of usage was almost similar with that in term of Syomu, purpose was different.Fuhito Fujiwara aimed at prevailing the Rituryo system in Japan and established the Heijyo-kyo capital as the center appropriating to it. He planed to build new capital for indicating Japan as one independent nation toward other east Asian countries and ethnic groups by imitating advanced China's rituals and feast.
Fuhito's grandson the Emperor Syomu had used two Cho-do in the Heijo-kyo along his grandfather's plan. He had done rituals with his servants there for visualizing relationship among them at least by 740, the year he decided to transfer to new capital.
On the other hand, the Emperor Konin attempted to revive the Rituryo system that had declined. He had certain creed as a sovereignty and reformed financial system or organization of officials aggressively. As its part, he frequently used the Cho-do along principle of the Rituryo.
The Cho-do in the Heijo-kyu was significant space for manipulating the governmental system. Through this paper, I demonstrate that frequency of usage of this space reflects content of goals each sovereignty 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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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여 중정리 대왕포와 낙화암 전설 - 낙화암 전설 발단 지점 재고 -

저자 : 黃仁德 ( Hwang Indeok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5-16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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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이 글은 부여 사비강에 전승되고 있는 '낙화암 전설'의 발생 지점이 현재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이라는 현지 구전(口傳)이 실제 사실일 가능성을 주로 고찰한 것이다. 위 전설에 따르면 낙화암 전설은 본디 부여읍 중정리 남쪽 강가의 절벽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전은 광범위하고도 강하게 전파되어 있어 그 역사적 사실 여부는 위 전설을 이해하는 데에 기초적인 문제이자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유의하여 이 글에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고찰하였다. 먼저 중정리 쪽의 지리적 배경과 지형적 특징을 살펴 그곳이 현재 부소산 북서쪽 절벽보다 사람이 강으로 투신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두번째로 이곳 일대가 오래 전에는 대왕포(大王浦)로 불렸음에 주목하여, 강 흐름이 크게 달라진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이곳 일대가 '왕포천'과 '사비강'이 만나는 지점이었음과, 임금이 유연(遊宴)하기에 적합한 장소임을 밝히고, '북대왕포'에 짝하여 이곳은 '남대왕포'로 불릴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세번째로 이곳이 '대왕포'로 불린 것은 이곳 일대가 백제 대왕의 유연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여, 북대왕포 주변이 그렇듯 이곳 일대도 절벽 사이에 자생하는 진달래꽃이 화려하여 임금이 특별히 유연 장소로 삼았던 것으로 보았다. 네번째는 원래의 낙화암 전설과 현재의 낙화암 전설을 비교 고찰하고, 원래 낙화암 전설의 내용을 참고하여 궁녀들의 도피과정과 투신 상황을 추정하였다. 끝으로, 낙화암 전설의 본디 장소가 현재의 위치로 옮아간 이유는 원래의 낙화암 일대가 후대로 오면서 고유의 지형적 특성을 잃은 데 반하여 현재의 낙화암 장소는 상대적으로 전설이 재생되기에 우월한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리고, '대왕포'라는 지명과 그 전설이 성립된 동기는 무왕대 이후 임금이 '대왕'으로 격상된 데에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This paper is written in the direction of affirming the local people' suspicion that the original place of Buyeo Nakhwaam legend may not be a present location. It was already mentioned in Samgukyusa that the legend, which is set on Buyeo Busosan and has been passed down until now, is inconsistent with a real fact. Moreover, an assertion that the legend cannot have originated from the present origin is handed down by word of mouth in Buyeo. Although it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Buyeo's history and folktales, it is odd that it has not been dealt with earnestly. I suspected that this might be the result of an influential local figure's arbitrarily making up a story for his own purpose. But I have not found any foundation to believe it is the case. We can doubt that the legend was likely to be made for a kind of collective local residents' benefits. However, this doubt is not supported by any evidence as well. This is why I decide to take a close look at the problem and understand it from the locals' perspectives.
There is still no evidence of the existence of a related document and the only evidence is tales. These tales imply a certain degree of reality because they are based on facts and fictions. And the details demonstrated in this paper are sufficient to prove location change in the legend. The fact that this legend has been handed down while retaining its own rational explanatory nature shows how deep the collective memories of local peopl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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