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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Paekche Resear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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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0)~72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11
백제연구
72권0호(2020년 08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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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무령왕릉 묘지(墓誌) 형태 비교 연구

저자 : 朴淳發 ( Park Soonbarl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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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묘지에 뚫려 있는 천공에 대해 발굴보고서 작성 당시부터 비천(碑穿)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었다. 그 후 식반(式盤) 모방설, 백제 고유 상장문화 기원설 등이 제기되었으나 묘지가 기원한 당시 중국의 상장문화에 대한 맥락적 접근이 부족하였다.
묘지는 묘비와 함께 후장(厚葬)이 보편화되었던 동한(東韓) 무렵에 등장하여 서진(西晉) 이후 정형화된다. 위진(魏晉) 시기의 박장령(薄葬令) 및 금비령(禁碑令)으로 인해 위축된 묘비가 묘실 내부로 축소 이전된 데에 원인이 있다.
선진(先秦)시기의 비(碑)는 땅위에 세운 석재 기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한에 이르러 무덤 조영시 하관(下棺)용 석재 혹은 목재 기둥에 망자의 이력이나 공덕 등을 새긴 묘비의 출현과 더불어 각자비(刻字碑)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하관시 도르래를 설치한 구멍에서 기원한 비천(碑穿)과 함께 줄에 의한 마찰흔에서 유래한 훈문(暈紋) 등은 그러한 묘비의 유래를 말해준다.
서진대 묘지는 묘비 형태를 모방한 비형묘지가 주종이다. 동진 시기 북방 사족들의 남천 과 함께 강남지역에도 묘지문화가 확산되었다. 동진 초기에는 중원 수복 및 귀장(歸葬)의 염원이 강하여 묘지는 이후 천장을 위한 간단한 표지(標識)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벽돌 재질에 묘주의 신원, 사망 일시, 안장일시 등만을 기록한 것이었다. 동진 후기에는 고토 회복 및 회향 의식의 소멸과 더불어 묘지문화도 달라진다. 벽돌 재질이 석재로 전환되고 서진대 이래의 비형묘지는 묘지 고유의 장방형 혹은 방형 석판묘지로 바뀐다. 그와 함께 묘지 내용도 서(序)와 명(銘)으로 구성된 정형화된 묘지 문체가 확립되었다.
무령왕릉 묘지는 방형에 가까운 형태의 석제 묘지이고, 그 내용도 간략하다. 이러한 면모는 동진 후기·남조 초기의 묘지문화에 흡사하여, 무령왕릉 조성 시점보다 약 1세기 정도의 시간적 정체성(停滯性)이 확인된다. 묘지와 함께 매지권을 구비한 점이나 묘지의 위치가 연도 중앙이라는 점 등은 그러한 양상과 부합된다.
이러한 상장문화의 전개를 염두에 두면 무령왕릉 묘지는 아직 묘비의 개념이 잔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묘지의 천공은 비천(碑穿)을 제외하고 그 유래를 상정하기 어렵다. 2매로 구성된 묘지 정면과 반면을 모두 각자한 점 역시 묘비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The hole on King Muryeong's epitaph once was assumed originated from gravestone's characteristic hole called 'Cheon(穿)'. But until now there is no consensus on this problem. This article focuses on the origin of the epitaph hole of King Muryeong of Backje.
The practice of epitaph interment had begun since Jin(晉), at the time which government prohibited the erection of memorial tombstone on the ground . In fact epitaph interment could be considered as underground miniature of memorial tombstone, and the appearance of both was almost same at that time.
Chinese traditional memorial tombstone took a form during Han(漢) dynasty, originally from tomb construction wooden pillars, which were erected near the corner of grave pit and used as support post of downing pulley block. For that reason has a appearance the hole on the head of post fixing block and belt frictional vestige on the surface. The former is so called 'Cheon(穿)', the latter is a characteristic decorative motif of memorial tombstone.
After East Jin(東晉) the form of epitaph gradually change from a original memorial tombstone style to rectangle type, and the material of epitaph also made of brick or tone. But the basic idea of epitaph as underground tombstone still remained, and at that reason some case of epitaph was set the location in the center of burial chamber entrance that is symbolically same position of tombstone on the ground.
The epitaph of King Muryeong has some similar characteristics with latter East Jin or Early Song(宋) period's. Time lag between real time of King Muryeong's tomb and the style of epitaph practice is supposed to be more than one century. Considering these contextual trend of epitaph practicing the hole of king Muryeong epitaph has a deep affinity with 'Cheon(穿)' of memorial tomb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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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령왕릉 팔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저자 : 李漢祥 ( Lee Hansa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5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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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팔찌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팔찌 소유자의 성별과 착장방식, 형태와 문양을 검토한 다음 그것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른 자료와 비교하였다.
무령왕릉에는 왕과 왕비가 함께 묻혔는데, 팔찌는 왕비의 유해부에서만 출토되었다. 6쌍의 팔찌 가운데 다리작(多利作) 은팔찌 1쌍은 왼팔, 각목문(刻目文) 금팔찌 1쌍은 오른팔에 착장된 양상이며 팔찌를 세트별로 모아 착장시킨 점이 주목된다. 4쌍의 팔찌는 왕비의 발치 쪽에 놓여 있었다.
신라 왕족묘에서는 이와 같은 착장방식이 확인되지 않는다. 5세기 후반 이후의 신라 고분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팔찌가 출토된다. 또한 무령왕릉의 사례와 달리 착장 시 좌우의 구분이 없다. 즉, 동일한 형태의 팔찌를 여러 개 만들어 좌우 팔에 나누어 착장시키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팔찌가 여성의 유해부에서 주로 출토된다. 양호한 인골이 남아 있는 북위묘에서는 팔찌가 여성 피장자의 팔목 부위에 끼워진 채 출토되기도 한다. 착장방식은 남쪽과 북쪽에 차이가 있다. 즉, 동오~남조묘에서는 무령왕릉처럼 팔찌를 세트별로 모아 착장하는 방식이 유행하였고, 북위묘에서는 신라처럼 1점씩 나누어 좌우 팔에 착장하는 경우가 많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류의 팔찌 가운데 다리작 은팔찌와 마디 팔찌는 백제에서만 보이는 유형이다. 자료의 부족 때문에 계보 추적이 어려우며 웅진기에 한정적으로 유행한 팔찌라 할 수 있다. 근년 공간된 다리작 은팔찌 신보고문을 분석한 결과 용문 도상에 대한 기왕의 이해에 일부 오류가 존재함을 확인하였기에 수정 의견을 기술하였다. 각목문 팔찌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유행한 국제적 유형이다. 이 팔찌의 계보는 중국 동진ᆞ남조에서 찾을 수 있고 5세기 중엽에 대가야로, 5세기 후반에는 신라로 파급된 것 같다.
무령왕릉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삼국시대의 금은팔찌는 왕족묘나 귀족묘에서 주로 출토된다. 특히 금팔찌는 사회 최상부를 구성했던 인물들이 제한적으로 소유하였다. 동팔찌의 경우 금은팔찌의 소유자에 비하여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인물이 소유한 것 같다. 6세기 이후 팔찌의 소유가 확산되지만 금팔찌나 은팔찌가 출토되는 사례는 여전히 적고 동팔찌가 다수를 점한다.


This paper reviewed the bracelets excavated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in Baekje. The key point of this paper is to examine whether the bracelet was owned only by women and how it was worn in Baekje.
Six pairs of bracelets were excavated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in 1971. The royal tomb was buried with the king and queen, and the bracelets were only found on the queen's wooden coffin. A pair of silver bracelets were found on the queen's left wrist and a pair of gold bracelets on her right wrist. And there were four pairs of bracelets around the queen's feet.
Most of the bracelets excavated from ancient Chinese tombs belonged to women. This is the same as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in Baekje. On the other hand, Silla differs from those of China and Baekje. In other words, not only women but also men were buried in tombs in Silla wearing bracelets.
In the Six Dynasties, which were capitalized in Nanjing, China, the materials and shapes of bracelets worn on the left wrist and right wrist were different, as was the case with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Northern Wei and Silla, the bracelets on the left wrist and right wrist are the same. In particular, Silla made several bracelets of the same shape and divided them into the left and right wrists.
Among the three types of bracelets excavated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one pair of silver bracelets engraved with the name of the producer one pair of silver bracelets bearing the manufacturer's name and two pairs of gold and silver bracelets woven with four joints are unique to Baekje. By comparison, the bracelet with the serrated decoration on the surface of the bracelet is a style popular in many Northeast Asian countries and was made under the influence of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However, due to the large difference in shape from the Chinese bracelet, it was changed to the style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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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제 무령왕릉 출토 동경(銅鏡) 재검토

저자 : 韓茗 ( Hang Mi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9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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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경 세 점을 재검토하였다. 중국에서 출토된 육조·수당(隋唐)시대의 동경과 저술에 수록된 동경의 자료를 비교해 보면, 무령왕릉의 동경은 양식론적 시각에서 한나라 이후 제작되었다. 또 육조시대에는 답반제경(踏返製鏡) 기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부조인물방격규구경(浮雕人物方格規矩鏡)은 답반제경 기술을 적용하여 경범(鏡范)을 만든 후 문양을 조각하여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고경(古鏡)에 직접 다시 주조하여 부조를 형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출토유물의 보존 상태와 공반유물의 시대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무령왕릉 동경의 연대는 다른 부장품들과 매장시기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세 점의 동경의 형식과 출토 위치를 검토해본 결과, 부장된 규구경(規矩鏡)과 수대경(獸帶鏡)의 문화적 성격을 토론할 수 있었고, 왕비의 발 부근에서 출토된 청동다리미가 갖는 의미는 방격규구경과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한육조문화(漢六朝文化)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한나라와 당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동경 제작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무령왕릉 동경은 두 시기를 이어주는 열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육조 복고경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전의 남북조수당(南北朝隋唐) '고경'을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mausoleum. According to the unearthed and recorded mirrors during Six-Dynasties to Sui-Tang Dynasty, it is considered that the mirrors could be the products of Six-Dynasties from the perspective of design and style, and it is pointed out that there is the possibility of existance of mirror stamping-back technology in the Six Dynasties. In particular, the square regular mirror with relief figures should be carved and re cast after stamping back to the mold, and the possibility of secondary casting directly on the ancient mirror to form relief is low. According to the preservation condition of the unearthed relics and the chron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metal utensils, it is considered that the mirrors should be the products of the same period with the other relics. Based on the mirror design and the context where they had been unearthed, we discuss the cultural connotation of the mirrors, and hold that the significance of the bronze iron at the foot of the queen should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square rule mirror, showing the connection with the culture of Han-to-Six-Dynasties. At last, we consider that the mirrors of King Muryeong mausoleum are at the turning point between the two peaks of mirror casting, which suggests that some so-called 'Ancient Mirrors' of Sui-Tang Dynasty should be located at the position of the Retro Mirror of Six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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