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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와 고대 update

Prehistory and Ancient History

  • : 한국고대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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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9-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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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0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70
선사와 고대
60권0호(2019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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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최근 북한 학계의 고인돌 형식 연구 경향

저자 : 하문식 ( Ha Moon-si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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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의 고인돌 형식 분류에 대한 기준과 방법에 관하여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 북한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소개한 것으로 북한지역 고인돌의 형식과 변천 그리고 연대문제를 검토해 보았다.
고인돌의 형식 분류에 있어 돌깐시설(돌무지)을 기준으로 유형을 나눈 기존의 방식은 비합리적이다. 상원 왁새봉 고인돌과 황주 극성동 고인돌 유적처럼 하나의 돌무지 묘역 안에 여러 종류의 무덤방이 축조되었고 묻기가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돌무지 시설은 무덤방의 축조에 이용된 얇은 판자돌이 덮개돌의 하중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보조시설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무덤방의 축조 방식, 벽의 구조와 벽체의 재질을 1차 분류 기준으로 설정하여 침촌형, 오덕형, 묵방형, 석천산형, 제주형 등으로 나누었다.
침촌형은 판자돌을 가지고 무덤방을 축조하였으며 가장자리에 돌무지의 보강 시설이 있다. 이 형식은 판자돌의 재질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오덕형은 판자돌을 지상에 세워 만든 탁자식으로 문 시설을 기준으로 3가지로 나누었다. 묵방형은 막돌을 가지고 지하에 무덤방을 축조한 개석식이다. 문 시설에 따라 유형을 구분하였는데 기존 연구와는 변천 과정에 있어 차이가 있다. 석천산형은 무덤방이 토광으로 석천산 일대에서 주로 조사되었다. 제주형은 덮개돌 아래쪽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판자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든 것으로 남부지역에서 만 찾아지는 독특한 형식이다.
고인돌 형식간의 변천 관계에 대하여는 침촌형에서 오덕형과 묵방형이 분화되었고 석천산형은 묵방형이 변화된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전자스핀공명연대측정법, 열형광연대측정법, 핵분열손상연대측정법에 의한 절대연대 측정값에 따라 기원전 4천년기 후반으로 여기고 있지만 앞으로 연대측정값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This study introduces the results of recent research that has raised some questions about the standards and methods of the classification on dolmen types. On the basis of this study, the types, changes and the period problems of dolmen in North Korea are analyzed.
It is irrational to refer to the stone mound as a standard in the classification of dolmen types. There are several types of grave pits built in a single cemetery like the remains of Sangwon Waksaebong and Hwangju Geukseong-dong dolmen, which are also different in the method of burial. The stone mound facility would have been necessary to support the load of the cap stones.
The forms of dolmens are divided into types such as Chimchon-type, Odeok-type, Mukbangtype, Seokcheonsan-type and Jeju-type according to the construction method of the grave pit, the structure and the material of the wall.
Chimchon-type built grave pits with plank stones and has the reinforcement facility of stone mound on the edge. This type is divided into three types according to the material of the plank stone. Odeok-type is the table-type dolmen built with plank stones on the ground and is divided into three types according to the facilities of the gate.
Mukbang-type is a pit-type which built grave pits in the underground. The type has been distinguished according to the facility of the door and is a difference in the process of transition from the previous studies.
Seokcheonsan-type is a pit and mainly examined in the Seokcheonsan area. The grave pit of the Jeju-type is made with a plank stone at the bottom of the cap stone.
On the transition of dolmens types, it is suggested that Chimchon-type is divided into Odeok-type and Mukbang-type and Seokcheonsan type is changed from Mungbang-type.
The age of the dolmens is considered to be in the late 4th millennium B.C. according to the measurement of absolute age by the electron spin resonance dating method, thermoluminescence dating method and nuclear fission track dating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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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탈(脫)정치적 관점에서 고조선의 상업활동 탐색

저자 : 박선미 ( Park Sun-mi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5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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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조선이 수행한 다양한 교류 활동 가운데 정치적 관점에서의 대외관계와 탈정치 활동으로서의 경제활동, 즉 대내외 상업활동을 분리해 보고자 시도했다.
'영성한 문헌기록과 제한된 고고학 자료'라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교류관련 연구는 최근 몇 년간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로 부상했다. 여기에는 교류가 한 사회의 계층화를 촉진시켰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성립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 정치적 관점이 작용했다.
이에 필자는 고조선의 교류사 연구가 '사회변동의 요인으로 보는 정치적 패러다임에서 '이윤 추구'라는 경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고조선의 정치적 대외활동에 대해서는 '조(朝)', '내속(來屬)', '신속(臣屬)', '복속(服屬)', '후(侯)', '칭왕(稱王)', '외신(外臣)', '약(約)', '공번(貢蕃)' 등 사료에 나오는 용어와 기존에 학계에 발표된 견해들을 점검하면서 살펴보았다. 경제적 상업활동은 '조회', '약'과 같은 정치활동에 딸리는 '세폐(歲幣)', '입공(入貢)', '회사(回賜), '병위재물(兵威財物)' 등의 공적 교역과 '관시(關市)'를 통한 민간교역의 형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거래된 물자에 대해서는 『방언(方言)』과 설문해자(說文解字) 의 고조선 관련 기록에 나오는 특산품이 거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This paper attempted to distinguish between economic activities as commerce and foreign relations as politics from international contacting activities of Old Choson.
Old Choson established various relations with ancient China such as Zhou 周, Qi 齊, Qin 秦, Yan 燕, Han 漢. And it interacted with nomadic groups. Sometimes Old Choson subjugated its neighboring polities.
Many researchers payed attention to the relations which engaged in Old Choson. And they suggested that Old Choson could developed through interaction with outside world. But many studies vaguely dealt with international relations of Old Choson. In other words they did not distinguish commercial activity from diplomacy. Many studies have approached various relations from political perspectives without distinguishing between economic activities and political activities as diplomacy.
In this paper I explored the exchange and trade activities of Old Choson from economic perspectives. Some historical records said there were movements to pioneer the markets between Old Choson and ancien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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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대 중국 엽문계(葉文系) 동경(銅鏡)의 기원과 한반도 유입

저자 : 홍인국 ( Hong In-gook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7-9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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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반도에서 고유의 다뉴경이 소멸되고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한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재검토하고자 전국시대에서 한대 전기에 이르는 동경의 시간적, 지역적 변천양상을 살펴보았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중국 각 지역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소위 '戰國鏡'은 기원전 2세기초 楚의 영역인 장강 중류 일대의 화중지역(河南省, 湖北省, 湖南省)을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기원전 2세기 후엽에 이르러 지역적인 편재에서 벗어나 중국 전역에 걸쳐 넓게 분포하게 된다. 그 중 엽문계 동경은 전국시대부터 전한대에 걸친 대표적인 형식으로 지역별로 제작기법상의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즉 문양패턴의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連孤文이 조합된 草葉文鏡 등이 나타나 요령지역에 처음 유입되었다.
이제까지 한반도에서 한경의 유입은 낙랑군 설치를 통해 유행한 성운문경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중원과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요령지역의 강둔과 서차구 유적에서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초기 초엽문경이 발견되었는데, 요령지역은 중원에서 유행한 형만 나타나고 산동지역을 중심으로 화북지역에서 유행한 형(백합형)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낙랑군 설치 이전에 이미 유입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요령지역에 기원전 2세기경새롭게 건국한 夫餘가 흉노, 선비 등의 강력한 세력들과 맞서기 위해 전한과 外臣關係를 맺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발달된 철기문화와 위신재로서 한경을 들여오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결과적으로 기원전 3~1세기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확인된 엽문계 동경은 이후 낙랑군을 통해 한경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이전, 한나라와 부여, 흉노 등 당시 정치세력들간의 교류양상을 살피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I wanted to review in this paper the process of the transition from the Korean Peninsula to the Han mirror, which has been introduced from China. So I looked at the temporal and regional changes of bronze mirror from the Warring States Period to the Pre-Han Dynasty. Since the 3rd century B.C., the so-called 'Warring States mirror(戰國鏡)', which was produced in various parts of China, has spread around the middle reaches of the Jiang River, an area in the early 2nd century B.C. Then, by the late 2nd century B.C., it would be able to break away from regional bias and spread widely throughout China.
Among them, Leaf design affiliated bronze mirror has been a representative form Warring States Period to Pre-Han Dynasty. This is a detailed difference in manufacturing techniques from region to region. In other words, the variety of patterns has led to combination of consecutive arcs design(連弧文) and glass design bronze mirror(草葉文鏡), which first entered the Liaoning area.
Until now, the inflow of Han mirror from the Korean Peninsula has been known as nebula design bronze mirror(星雲文鏡), which was popular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Nakranggun(樂浪郡). However, an early glass design bronze mirror was found in the mid-second century B.C. at the ruins of Jiang Yan(姜屯) and Xiqiaogou(西岔溝) in the Liaoning area, located on the road leading to the China's Central Plains and the Korean Peninsula. By the way, type has not been identified, which has been popular in the northern part of the country. Thus, it was already interpreted that it was introduced before the establishment of Nakranggun.
This means that Buyeo(夫餘), newly founded around the 2nd century B.C., will form foreign relations with the Pre-Han Dynasty to fight against powerful forces such as the Huns(匈奴) and Xianbei(鮮卑). In return, it is understood that Han mirror was brought in as an advanced iron culture and prestige goods.
As a result, the glass design bronze mirror identified in northeastern China in the 3rd century B.C. and 1st century B.C. is an important clue to the exchange between the Pre-Han Dynasty, Buyeo, and the political forces of the time, before Han mirror was introduced in earnest through Nakrang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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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고대 시조신화를 통해 본 성별관계와 권력관계의 상관성 -신라와 고구려의 비교-

저자 : 김현정 ( Kim Hyeon-jeo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35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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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가 시조신화에 반영된 신라와 고구려의 성별관계와 권력관계를 살펴보고, 그 연관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연구 결과 시조신화 내용에서 성별관계와 권력관계, 여성관과 타인관은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의 시조신화에서는 출현시기와 상징성에 있어서 왕인 혁거세와 왕비인 알영의 신격수준이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이는 신화기록상 혁거세 출현 이전에 선주하고 있었던 6촌장에게도 신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경주 동쪽 지역에서 발견된 3기의 비석에는 6세기 초반까지 신라 6부의 장들이 왕과 함께 통치주체세력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시조신화에 6촌장들의 천손신화가 포함되게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면, 시조신화에서 알영의 위상 역시 신라 지배층여성의 역사적 실재 지위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구려의 경우, 시조신화 상 여성주인공격인 유화는 첫 등장부터 권력관계로서의 젠더관계, 즉 주체로서의 남성과 객체로서의 여성이라는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또한 유화는 지상계에서 인간들을 처음으로 마주할 때 이미 엄한 아버지 하백으로부터 받은 징벌의 흔적을 낙인처럼 지닌 채 손상된 신격을 보였다. 어머니 유화의 발휘되지 못한 신성성에도 불구하고, 주몽은 신성혈통을 증명하듯 신이한 옆구리 탄생난생급속 성장출중한 재능 발현을 거쳐 성장한 후 영능의 힘으로 부여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성함을 표출하는 데 있어 이러한 성별간의 비대칭적 관계는 신화에서 해모수와 하백, 주몽과 송양왕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각자의 신성함의 정도는 객관적인 능력의 나열이 아닌, 경쟁적인 대결의 행위 속에서 명확한 승자와 패자로 서열화 되어서 표현되었다.
상호관계에 있어서도 신라와 고구려의 신화 내용은 다른 점을 보였다. 신라의 경우, 상호협력관계가 특징이었다. 알영은 혁거세와 함께 분업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동통치를 수행하였고, 혁거세·알영과 선주민은 양육과 선정(善政)이라는 도움을 서로 받으며 공생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구려 시조신화에서의 상호관계는 높은 긴장도가 특징이었다. 유화는 해모수-하백-금와에 의해 연속적으로 유린되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 배경적 원인은 부여의 가부장제라고 할 수 있었다. 유화가 신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몽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결정적 조력자의 역할 때문이었다. 유화는 살해의 위협을 받는 주몽에게 탈출을 종용하였고, 주몽이 새로운 땅에서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비둘기를 통해 곡물 종자를 전해주었다. 이 행위를 통해 유화는 모성의 상징이자 생명과 풍요(다산)의 신이라는 위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화의 유린당하는 전반기의 삶이나 신으로서의 위상을 발휘하는 후반의 삶 모두 남성 가족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유화의 종속적 존재가치는 남성에게 편중된 성별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몽과 고구려 선주민집단 사이에서도 긴장적 경쟁관계가 나타났다. 신화 줄거리상 주몽에게 주변세력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염두에 없는 듯 보였다. 새롭게 정착한 고구려에서 주몽은 무력을 통하여 주변세력을 통합해 나갔다. 이는 '이주해 온' 새로운 지배자인 자신의 통치에 대한 선주민들의 순응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결론적으로 신라의 시조신화에서 알영과 혁거세의 비교적 동등한 성별관계는 신라 지배집단 내부의 느슨한 차별관념, 그리고 전쟁을 지양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고구려 시조신화에서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다가 극적으로 신격화 되는 유화의 모습은 부여의 왕실 일부 세력과 주몽이 보여준 적대적 관계, 그리고 고구려왕 즉위 이후 주몽이 실행한 긴장도 높은 정복활동의 태도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gender relations and power relations of Shilla and Goguryeo as reflected in their founding myths, and to confirm the interrelatedness between them. The study showed that gender relations and power relations-as well as the view of women and the view of the other-as reflected in the contents of the founding myths were closely interrelated.
In the founding myths of Shilla(新羅), King Hyeokgeose(赫居世) and Queen Alyoung(閼英) were deified to largely similar degrees in their portrayals in terms of symbolism and date of appearance. In mythological records, this is connected to how deity status was also conferred to the chieftains of the six clan society villages called 'Yuk-Chon(6村)', who predated the arrival of Hyeokgeose. The records on the three steles that were discovered in the Eastern part of Gyeongju show that along with the king, the leaders of the six political units called 'Yuk-Bu(6部)' were also recognized as ruling powers up until the early 6th century. If this historical fact provides the background against which the myth of the heavenly provenance of the 6 chieftains were included in Shilla's founding myth, Alyoung's status in the founding myth maybe regarded as reflecting the actual historical status of women among the ruling class of Shilla.
In contrast, starting from her very first appearance, the treatment of the female protagonist of Goguryeo(高句麗)'s founding myth, Yuhwa(柳花), is blatantly indicative of gender relations as a power relation - with the male as the subject and the female as the object. Furthermore, even when she first came into contact with earthly people, Yuhwa's divinity was portrayed as being damaged due to the stigma-like vestige of the punishment she received from her harsh father, Habaek(河伯). Despite the failed manifestation of his mother's divinity, Jumong(朱蒙) performs various heroic feats that appear to demonstrate his divine lineage-such as hatching from an egg laid from his mother's flank, accelerated growth, extraordinary talent, and his escape from Buyeo by virtue of his supernatural power. This gender asymmetry in how divinity is manifested in the myths is also apparent in the relationships between Haemosoo(解慕漱) and Habaek, and Jumong and King Songyang(松讓). The degrees of divinity of each of these figures were not expressed as enumerations of objective abilities but as clear distinctions between winners and losers amid acts of rivalrous conflict.
The contents of the myths of Shilla and Goguryeo also differ in terms of mutual relationships. Shilla was characterized by relationships of mutual cooperation. Alyoung did co-rule with Hyeokgeose in what is presumed to be a division of duties. Also, Hyeokgeose and Alyoung had a cooperative relationship of co-existence, exchanging help in the form of nurturing and good rule, with the original residents represented by 6 chieftains.
Mutual relationships in Goguryeo's founding myths were characterized by high tension. In the course of her life, Yuhwa was sequentially violated by Haemosoo, Habaek, and Geumwa. The patriarchy of Buyeo may be regarded as the background reason for this. The opportunity for Yuhwa to recover her divine status amid her woeful state arrives via Jumong's quest to overcome his crisis. Yuhwa urges Jumong, who was being threatened with assassination, to escape. She also sends him grain seeds by way of pigeons so that he might have a successful start in a new land. It is through such actions that Yuhwa gained her status as a maternal symbol and a deity of life and fertility. However, both the violation in the earlier half of her life and the divine status in the latter half of her life are attributable to the male family. Thus, the dependent value of Yuhwa's existence may be regarded as reflecting male-centric gender relations.
A tense relationship characterized by rivalry is also apparen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Jumong and the original residents of Goguryeo. In terms of the myth's storyline, the peaceful co-existence between Jumong and his neighboring powers does not appear to have been a matter of consideration. Having newly settled in Goguryeo, Jumong goes on to annex the neighboring powers through military might. This appears to reflect his intentions of encouraging the original residents of his territories to become more compliant to the reign of a newly-arrived 'immigrant' ruler-himself.
In conclusion, the relatively equal gender relations between Alyoung and Hyeokgeose in Shilla's founding myth appears to be related to the low discrimination amid Shilla's ruling classes, as well as an attitude that was averse to war. On the other hand, the story of Yuhwa -who undergoes a dramatic deification after suffering from lopsided violation-appears to be related to the adversarial relationship seen between Jumong and certain royal factions of Buyeo, as well as the highly tense attitude of conquest pursued by Jumong after becoming the king of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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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보수정비와 향후 전망

저자 : 윤성호 ( Yun Sung-ho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6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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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왕에 발굴조사를 거치지 않았거나 조사 성과가 반영되지 않고 진행된 삼국시대 관방시설 보수정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아차산 일대 보루군을 중심으로 발굴조사와 보수정비 현황과 과제를 서술하였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기존 정비 사례의 한계를 감안하여 9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정비가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차산 일대 보루군 보수정비 현황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로 정비를 고려하지 않고 조사가 진행된 후에 유구를 복토정비한 소극적인 방식, 둘째로 성벽을 복원하고 내부 건물지를 표현한 일반적인 방식, 셋째로 조사된 유구에 보호시설을 설치하여 노출 전시하는 적극적인 방식이다. 소극적인 정비에서 적극적인 정비로 진행되고, 일반적인 정비가 공존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많은 과제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지정문화재인 보루에 대한 문화재 추가지정과 관리의 필요성, 구조와 유형에 대한 연구성과의 축적,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 다양한 전시 기법에 대한 고민, 보수정비 업무를 담당한 전문인력과 조직의 확보, 국가와 광역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In this study, the present status of repair work and future tasks were described, focusing on Achasan Forts, to overcome the problems of the repair work of the fortres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which were carried out without reflecting the results of the excavation investigation. Repair work on the Achasan Forts was carried out in the 1990s, when it began to recognize the cases of wrong repair work in the preceding period.
In this regard, the status of the repair work was divided into three stages. First, it is a passive way of covering the excavated remains with soil after the investigation is carried out without regard to maintenance, second a general way of restoring the wall and expressing the location of the building site, and third an active way of installing a Shelter in the excavated remains. From passive maintenance to active maintenance, the general maintenance trend is coexisting, but there are still many problems that need to be addressed.
Therefore, it proposed the need to designate and manage Fort, which is not registered as a cultural heritage, to accumulate research achievements on the structure of Forts, to establish a realistic and systematic repair work plan, to review various exhibition methods, the need for professional personnel and organizations to carry out related tasks, and to actively pay attention and support at the national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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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광주 곤지암리 유적 발굴조사 성과

저자 : 이동성 , 김진영 , 김재은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7-181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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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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