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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와 고대 update

Prehistory and Ancient History

  • : 한국고대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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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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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3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95
선사와 고대
63권0호(2020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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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충주 고구려비 관련 학술행사의 회고와 정리

저자 : 조영광 ( Jo Yeong-kwa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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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유일의 고구려 비석인 충주 고구려비는 1979년 발견 후 많은 관심을 받아왔고 관련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충주 고구려비를 둘러싼 제논의는 사실상 발견 당해와 20년이 지난 후 치러진 두 차례의 판독 작업과 학술회의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발견 40주년을 기념해 행해진 2019년의 판독회와 당해에 개최된 두 차례의 학술회의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들이 나왔다. 이처럼 학술행사는 충주 고구려비 연구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관련 연구 성과의 확산과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 자체로도 연구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회고와 정리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The only remaining monument of Goguryeo on the Korean Peninsula, Chungju Goguryeo Stele, has been attracting much attention since its discovery in 1979. Also, many studies related to it are being conducted. The main discussion on the monument was held at the reading and academic conferences held at the time of discovery and 20 years later. In addition, many achievements were made in the two academic conferences held in 2019 to commemorate the 40th anniversary of the monument. As such, academic events served as a catalyst for the study of the Chungju Goguryeo Stele and played a decisive role in spreading the relevant research results and improving their level. In itself, it is worth noting that it has great significance in research history. Therefore, it is urgently needed to retrospect and summary the academic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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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충주 고구려비의 건립 위치에 대한 고고지리학적 접근

저자 : 허의행 ( Heo Euihaeng ) , 장우영 ( Chang Wooyou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5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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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는 삼국시대 건립 이후, 여러 차례 쓰러지고 세워졌으며, 또한 매몰되고 옮겨지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선돌 혹은 입석이라는 마을 지명으로 남아 있게 되었고, 뒤이은 학술조사, 입석마을 주민의 증언, 사진기록, 설화 등을 통해 건립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고구려비 주변의 고지형과 역사지리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특정 장소로 비정할 수 없는 건립지점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 글은 충주 고구려비 주변의 고지형과 역사입지를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는 충주 고구려비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자료관이 건립되는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입석마을과 고구려비에 관한 연구는 비가 길목에 위치하며 특히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지점에 입석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비를 건립한 장소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글은 선행연구의 관점을 이어받아 새로운 인문 자연적 요소를 가미하여 충주 고구려비의 건립지를 구체적으로 추정하였다.
연구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비 주변의 고지형을 파악하고, 교통로와 가시권 등 역사지리 검토를 병행하였다. 그 결과, 입석마을이 북쪽의 장미산과 사방에서 조망이 가능한 선상지 지형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적이 입지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 선상지는 사람과 물건 등 왕래가 잦고 사방에서 조망이 가능하여 비의 건립지로서 좋은 조건을 가진다. 자료관 서쪽에 위치하는 현재 경작지를 1972년 홍수 이전에 있었던 입석마을 일부로 파악하고 이곳을 충주 고구려비가 건립된 장소로 추정하였다.


The Chungju Goguryeo Stele was collapsed and erected several times. It was also buried and moved. In this process, the name Seondol or Ipseok(which means the Stele is standed) remained in the settlement. The construction site can be estimated to some extent through subsequent academic surveys, testimony of the residents of Ipseok settlement, photographic records and tales. Based on this background, the analysis of paleo morphology and historical geography around the Goguryeo Stele has solved questions about the location of the site that cannot be pointed as any place so far.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tudy the geoarchaeological approach to the construction location of the Goguryeo Stele in Chungju. This study focuses on the period from before the construction of the Goguryeo Stele to the present.
The research results on Ipseok settlement and Goguryeo Stele is erected as it was located on the transportation routes. There was on the border between Goguryeo and Silla. Taking over the view of prior research, this article specifically estimated the construction location of the Goguryeo Stele in Chungju by adding new humanities and natural factors.
There are two main ways to study. First, they analyzed the paleo morphology around the Stele and reviewed historical geography such as transportation routes and visibility rights. As a result, we learned that Ipseok settlement is located somewhere can be seen in the northern part of Jangmi Mountain and any direction.
The alluvial fan, which is well-known for its geographical features, is a good place to build Stele due to frequent movement and view from all sides. The current paddy field located west of the Chungju Goguryeo Stele Museum was calculated as the location of Ipseok settlement, which existed before the flood in 1972. It is presumed to have been the site where the Chungju Goguryeo Stele was built.
The Alluvial fan, which has good conditions for relics to be located through topographical analysis, has good conditions as a construction site for Stele as it is frequently visited by people and can be viewed from all sides by reviewing humanities and natural factors together. The current arable land located in the west of the museum was identified as the location of Ipseok Village, which existed before the flood in 1972,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the site where the Chungju Goguryeo Stele was 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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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기 고구려의 기층문화 연구 ② -신빈 지역 동굴무덤의 신자료-

저자 : 하문식 ( Ha Moon-si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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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초기 고구려의 기층문화를 파악하기 위하여 신빈 지역의 소협하 유역에서 조사된 동굴무덤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소협하는 신빈 지역의 해발 500m 이상 되는 산지 지형에 흐르는 물줄기로 주변이 카르스트 지형이기에 석회암 동굴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동굴무덤은 대부분 강가의 낭떠러지에 위치한다.
신빈 지역의 동굴무덤 구조는 돌덧널과 움무덤이 섞여 있고 대부분 무덤방 위에 돌무지 시설이 있다. 묻기는 화장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소홍석립자 동굴무덤의 경우 돌무지 속에서 많은 토기 조각이 조사되어 파쇄 의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짐승뼈가 껴묻기된 것은 영생을 바라는 당시 사회의 내세관은 물론 장송의례에 이용된 상징―제의의 짐승으로 해석된다.
껴묻거리는 석기, 토기, 청동 유물, 짐승뼈, 뼈연모, 조가비로 만든 꾸미개 등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석기는 나무를 다듬고 자르는데 필요한 외날 돌도끼, 돌끌, 돌자귀 등 공구용 연모가 많이 조사되어 나무그릇의 제작뿐만 아니라 집짓기에 가구(架構)를 이용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토기는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갈색 계통의 민무늬가 대부분이다. 항아리를 비롯하여 단지, 바리, 사발 등 여러 기형이 있다.
토기 가운데 미송리형 토기와 가지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미송리형 토기는 소홍석립자 동굴무덤에서 조사되었다. 몸통과 목의 경계 부분이 뚜렷하며 몸통은 타원형으로 다리 모양 가로손잡이 한 쌍과 반달 모양 손잡이 한 개가 달려 있다. 묶음줄무늬는 4~5줄을 새겼으며 4곳에 있다. 이 토기는 고조선의 표지 유물로 고조선과 초기 고구려의 관련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가지무늬 토기는 용만 동산, 소홍석립자, 조양, 마가자 얼음 동굴무덤에서 찾아졌다. 바탕흙은 아주 고운 찰흙이고 토기의 두께는 0.3cm로 얇다. 겉면은 윤이 나고 입술은 바깥으로바라진 모습이다. 흑색의 가지무늬는 세로 방향으로 4곳(용만 동산) 또는 5곳(소홍석립자)에 길쭉하게 새겨져 있다.
청동 유물은 둥근꼴의 얇은 꾸미개가 2점 찾아졌는데 마성자문화의 장가보 A동굴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청동기가 출토된 장가보 A동굴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13세기경으로 밝혀져 소협하 유역 동굴무덤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신빈 지역의 동굴무덤은 유적의 분포 관계, 무덤의 구조나 장례습속, 껴묻거리 등으로 볼 때 초기 고구려의 기층문화를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This study analyzes the archaeological data on cave tombs in Xinbin region to understand the basic culture of the early Goguryeo.
Since the Xinbin area is a karst formation, there are many limestone caves, most of the cave tombs in the area are located on the cliff of the river.
The cave tombs of the Xiaojiahe basin show a mixture of stone lined tombs and coffin tombs, and most of them have stone mound facilities on top of the burial chamber. It turned out that cremation was common. In the case of the cave tomb of Xiaohongshilazi, many pieces of potteries were found in the stone mound, which shows that there was a ritual of crushing. The funerary objects like beast bones also tell the view of afterlife at that time wishing eternal life.
There are a wide variety of funerary objects such as stone tools, potteries, bronze artifacts, animal bones, bone tools, spindle whorls, and decorative ornaments made of shells.
Stone tools such as stone axes, stone chisels, and stone adzes needed to trim and cut trees have been excavated.
Most of the potteries have brown plain coarse patterns. There are many body frames, including pots, small pots, and bowls.
Misongri type pottery and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were excavated.
Misongri type pottery were excavated from the cave tomb of Xiaohongshilazi. The body is oval and has the horizontal bridge-shaped vessel 'ears' and the lip-shaped vessel 'ears'. On the surface of the pottery, the bundle stripes are engraved on the four parts with 4~5 lines. These pottery are important relics for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ojoseon and the early Goguryeo.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were found in Longwandongshan, Xiaohongshilazi, Chaoyang, and Majiazibing cave tombs. The paste is fine clay and the pottery is 0.3cm thick. The outer surface of the pottery is glossy with black eggplant design carved at 4 parts in Longwandongshan or 5 parts in Xiaohongshilazi.
Two round-shaped thin ornaments, bronze artifacts, were found in Xiaohongshilazi and namtun, which are similar to those excavated from Zhangjiapu A catacomb in Machengzi culture. Accordingly, the date of the cave tomb seems to be around the 13th century B.C. which is the result of C14 radiocarbon dating of Zhangjiapu A catacomb.
The distribution relationship of sites, the structure of the tombs, burial customs, and the funerary objects examined in the cave tombs in Xinbin area will be a good source for understanding of the base culture of the early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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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원ㆍ영양왕대 고구려 불교조각에 대한 고찰

저자 : 최성은 ( Choe Songeun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7-141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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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25대 평원왕(559~590)과 26대 영양왕(590~618)이 재위했던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까지 약 반 세기 간의 불교조각을 통해서 중국 南北朝와 倭에 대한 고구려의 불교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평원왕 18년(576) 북제에 갔던 고구려 승려 義淵은 法上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하여 고구려 불교를 一新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의연은 북제에서 여러 불교 典籍을 가져왔으며, 이때 북제 불상도 고구려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평원왕 12년(570)에는 왜국에 사절을 보내 외교적 관계를 시작하였으며 영양왕 6년(595)에 왜로 건너간 慧慈(?~622)는 20년간 聖德太子의 스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僧隆과 雲聰(602년)을 비롯해서 慧灌(605년) 및 曇徵과 法定(609년) 등도 왜로 건너가 수준 높은 고구려 불교를 알린 기록이 있다. 불교문화를 앞세운 對倭교섭에서 '금동불상'은 고구려 왕실이 왜 조정에 보내는 중요한 예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현재 전하는 飛鳥時代불상들 가운데는 고구려 불상들과 이 상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불상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원ㆍ영양왕대의 고구려 불교조각으로 소형의 在銘일광삼존불상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소형의 상들을 통해 당시 불교조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6세기 불교조각은 5세기 후반의 고식적인 요소와 6세기의 새로운 요소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 전해오는 大津石山寺금동불입상, 法隆寺헌납보물 143호 금동삼 존불상, 飛鳥寺금동장육불좌상[飛鳥大佛]을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石山寺금동 불입상과 法隆寺헌납보물 143호는 고구려에서 전래된 불상으로 판단되며, 飛鳥寺금동장육 불좌상(飛鳥大佛)은 고구려에서 전해진 불상의 範本을 기초로 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의 두 상에서는 古式요소와 새로운 요소가 混在하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飛鳥寺 금동장육불상에서는 착의형식의 일부분이 발해초기 이불병좌상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적인 요소를 보이는 점과 飛鳥寺가람배치가 고구려의 일탑삼금당식이라는 점, 飛鳥寺건축에 고려척[고구려척]이 사용된 점, 영양왕이 飛鳥寺불상의 주조에 황금 삼백냥을 보낸 기록을 들어 飛鳥寺창건과 불상조성에 고구려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monk Faxiang(法上), an eminent figure of the Daśabhūmikā school of Buddhism. When Uiyeon returned to Goguryeo in the year 576 or 577, it is assumed that he brought back a few Buddhist scriptures and images from Northern Chi, and that he renewed Goguryeo Buddhism.
In 570, King Pyeongwon sent an envoy to Japan to start diplomatic relations and, years later, King Yeongyang sent the monk Hyeja, who stayed for twenty years in Japan as a teacher of Prince Shotoku. Many other Buddhist monks of Goguryeo were sent to Japan, and they developed the Buddhist culture of Asuka Japan. Several extant Buddhist images dated to King Pyeongwon and Yeongyang periods, though small in size, show that old traditional stylistic features of the later half of the fifth century are mixed with new aspects of the style of the sixth century in a single image.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Goguryeo Buddhist sculptures, three Buddha images in Japan gilt-bronze image of Ishiyama-dera(石山寺) at Otsu, No. 143 gilt-bronze Buddha triad of Horyuji(法隆寺) now in Tokyo National Museum, and gilt-bronze Great Buddha image of Asuka-dera(飛鳥寺) are stylistically and iconographically examined in comparison to the Buddhist sculptures of China and Korea in the fifth and sixth centuries. From this investigation, it is fair to assume that the Ishiyama-dera image and No. 143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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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함안 성산산성 출토 '壬子年' 목간과 신라의 부세 감면제

저자 : 강나리 ( Kang Na-ri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3-16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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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함안 성산산성 목간 작성연대에 관한 기존 연구성과 검토를 바탕으로 작성연대를 추정하고, 성산산성 목간 가운데 가야5599에만 연간지 '임자년'이 묵서된 것에 주목하여 이를 새로 판독하고 당시 신라 부세제도의 일면을 살펴본 것이다. 안라국의 신라 편입 시점 혹은 하한은 561년 무렵이고, 성산산성 동성벽 부엽층은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성산산성 목간에 보이는 외위명이 공통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창녕비 단계부터 남산신성비 단계 무렵으로 볼 수 있으며, 경위 역시 창녕비 단계를 상한으로 한다. 가야5599의 '壬子年'은 592년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성산산성 목간의 작성연대는 561년부터 592년 무렵으로, 늦춰 보더라도 7세기 전반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5599에서 임자년 다음의 두 글자는 '荒(敗)'로 추독할 수 있는데, 흉년과 관련한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가야5599는 임자년의 흉년으로 인하여 大村에 사는 □刀只가 원래 정해진 세액보다 적은 쌀 한 섬을 납부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북주 및 백제, 당, 일본, 고려의 부세제도와 비교하면 6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흉년일 때 피해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세가 감면되었는데, 피해 정도가 50% 이상이어야 감면받을 수 있었으며, 피해 정도에 따라 부세의 항목이 아닌 전체 세액이 감면되는 방식으로, 이러한 혜택은 이월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is based on existing studies and observations on the era of creation from discovered wooden tablets (Mokkan, 木简) at Seongsan Fortress, Haman, South Gyeongsang Province, where it estimates the exact creation date of the tablets themselves while focusing on the fact that only "Gaya5599" from all the tablets discovered from the fortress has "Imja Year (壬子年)" calligraphy imprinted on them, which is one of the sexagenary cycle, therefore conducting a completely new deciphering work as well as to take a glimpse of Silla Dynasty's taxation scheme.
The estimation is that Seongsan's wooden tablets were created between A.D. 561-592 or no later than the early 7th century. This calculation is backed by careful deliberation on the time Ara Gaya was merged into Silla, the excavated site's sub-layer formation period, and "Imja Year" on the "Gaya5599" tablet.
Two characters imprinted after "Imja Year" from "Gaya5599" are assumed to be "□(敗)," which can be understood as a reference to a bad harvest year. Information written on "Gaya 5599" indicates that it is a record of a civilian named □doji (□刀只) residing in Daechon village (大村) paid a bag of rice, which is less than the normal taxation rate due to the year's poor harvest.
Such taxation scheme compared to that of neighboring countries, Silla Dynasty in the late 6th century practiced a systemic tax reduction scheme during a year of poor harvest, where the reduction scheme would only be initiated if the scale of damage was more than 50% of the harvested crops under normal circumstances. It is also apparent that tax reduction was applied in the whole amount payable rather than selectively, as well as such benefits could be carried over to the next taxation 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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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여 정림사 소조상의 출토 층위와 목탑 존재의 검토

저자 : 조원창 ( Cho Won-cha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9-19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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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오층석탑 하부에는 축기부 판축토가 약 6.2m 너비로 조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 김정기는 목탑과 관련된 유구로 이해하고,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정림사지에서 수습된 소조상들이 탑내소상으로 해석되면서 정림사 목탑 존재설은 더욱 더 연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정림사지에서 수습된 소조상들의 출토 층위를 보면 이것들이 정림사 창건 성토층 아래의 기와구덩이와 서회랑 남단 西석축배수로의 뒤채움토에서 검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출토 양상은 결과적으로 소조상들이 정림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주변 유적의 폐기물이었음을 파악케 하고 있다.
이상의 고고학적 층위 검토는 한편으로 축기부에서 목탑의 심초석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정림사가 사비천도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목탑이 조성되었다면 이는 심초석이 지하에 설치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체로 지표면에서 심초공까지의 깊이가 약 150~250cm 정도였음을 볼 때 현재의 축기부 층위는 해당 높이만큼 굴토 삭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림사지 토층도에서 이러한 삭평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주변 건물들과의 경관성, 그리고 여타 사지의 중창 사례 등을 고려해 볼 때 정림사지에서의 삭평 정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림사에서의 목탑 존재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 생각된다.


In the lower part of the five-story stone pagoda of the Jeongrimsa Temple Site, the foundation soil is formed to 6.2m width. Kim Jeong-gi understood the remains related to the wooden pagoda and suggested the theory that the wooden pagoda would have existed before the stone pagoda. And the clay figures excavated from Jeongrimsa Temple site were interpreted as the figures enshrined inside the pagoda, the theory of the existence of the wooden pagoda of Jeongrimsa Temple has been further studied.
However, the soil layer of the clay figures excavated from Jeongrimsa Temple Site shows that these were excavated from the tile pits under the soil layer in the foundation of Jeongrimsa Temple and the reinforced soil of the stone drainage at the southern end of the west corridor. As a result, the excavation shows that the clay figures were remnants of the surrounding remains that were not directly related to Jeongrimsa temple.
The above archaeological layer review can also be understood that the central foundation of the wooden pagoda is not confirmed at the foundation. In other words, if a wooden pagoda was built in Jeonglimsa Temple at a time not long after Sabicheondo(泗沘遷都), this means that the central stone was buried underground. In general, the depth from the surface to the bottom of the central stone pit was about 150~250cm, which means that the current base layer is as low as the corresponding height. However, none of these traces have been found in the soil layer of Jeongrimsa Temple Site, and considering the surrounding buildings, the drainage and the other case of reconstructions, etc, it is difficult to expect to be low or halt at Jeongrimsa Temple Site. Therefore,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a wooden tower in Jeongrimsa Temple Site is considered to be s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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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화도 출토 고려 후기~조선 전기 막새의 성격

저자 : 이상규 ( Lee Sang-kyu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9-22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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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지역은 고려 후기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려의 수도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는 고려 수도인 개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어려운 현재에 있어서 중요한 연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개발행위에 따른 구제발굴 및 고려 왕실 무덤에 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화도 내에서 조사되는 유적 중 다수의 사례에서 고려 시대 유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기와의 경우 강화 선원사지를 비롯하여 고려 왕릉 부속 건물, 궁전지로 추정되는 관청리 일대의 건물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강화 선원사지, 강화 곤릉 이외에 8개 유적에서 확인되는 고려 시대 막새를 중심으로 기와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 시대 사용된 막새는 제작기법이 조선 시대와 유사하게 정형화된 형태이며, 특징적인 문양인 일휘문과 범자문 등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강화지역 출토유물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수막새에 사용된 문양으로는 연화문이 시문 된 형태가 가장 많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휘문, 범자문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연화문의 경우 꽃잎의 형태나 표현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종류가 보고되었으나 특징적인 부분은 자방의 표현 방법이 일휘문의 반구형과 유사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휘문이 12세기 고려 막새의 대표적인 문양이 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과도기적인 성격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일휘문의 경우 비교적 사용 시기가 명확한 강화 곤릉이나 능내리 석실분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외에도 선원사지나 고려 시대 건물지로 비정되는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범자문 막새는 연화문과 조합되어 사용되는 예가 선원사지와 용장사지 사역 내에 위치한 국화리 463-1ㆍ3번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두 유적에서 출토되는 수막새의 경우 표현양식이 매우 유사하나 시문된 범자의 글귀는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와 유사한 형태가 양주 회암사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강화도에서는 장방형의 모양이 활처럼 휘어지는 호장형과 역삼각형의 드림새에 내곡이 나타나는 형태가 확인된다. 호장형의 경우 일휘문과 당초문, 초화문, 모란문 등이 시문 되는 데 이는 수막새의 일휘문, 연화문 등과 조합을 이뤄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남아있는 등기와의 타날문양이 확인되는 예도 있어 평기와와의 연관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으며, 등기와의 접합 각도는 직각이다. 역삼각형의 모양을 띠는 암막새는 연화문, 범자문 등이 확인되고, 등기와의 접합 각도가 둔각을 이뤄 호장형에 비하여 후대의 제작 속성을 보인다.


Ganghaw area was temporarily responsible for the role of the capital because of Monggol invasion, This means that the area is important because Gaseng, the capital of Goryeo is difficult to do archaeological survey. In Ganghaw we can see the excavation according to development activity and the study of Goryeo royal tombs. The remains in Ganghaw is almost made in Goryeo. In case of the roof tile we can find it in Senwon temple site, the additional building of Goryeo kings and the building of palace in Ghancheng-ri. In here I want to see the change of the roof tile based on remains in Goryeo period finding in 8 remains aside from Ganghwa Senwon temple site and Gon tomb in Ganghwa.
The remains in Goryeo was similar to Joseon's in manufacturing techniques and we can find the unique pattern, form Ilhi-form, Bumja-form. In Ganghwa there were the similar remains. The pattern in Sumaksae was almost Yeonhwa form and also there was Senwon temple site. In case of Yeonhwa form, the shape of the petal and the way of the expression was various but the shape of Jabang was similar with the semicircle of I1hi-form. After 11 century it would be the typical one. In case of I1hi-form we can find in Gon tomb, Neungnaeri tomb which had the clear using time. Also we can find it in 463-1, 3. The remains in both area was similar but the phrase in remains was different. This was similar with the site of Hoiam temple in Yang ju. In Ganghwa we can see the shape of Hojang which is the arched arrow and the inverted triangle. Aside from it we can find that in the building site of Gorey area. The example of the combination with the Bumja and the Yeonhwa was in Senwon temple site and Younghwa temple site. In Hojang form it was carved on I1himun, Yeonhwa form. Also we can see tanal form in the roof tile. The angle of connection in Deung roof tile is the acute angle. The Ammaksae which have the shape of the inverted triangle was in Yeonhwa form and Bumja form and its connection angle was the obtuse. This means that it was made after Hojang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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