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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history and Ancient History

  • : 한국고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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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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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2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87
선사와 고대
62권0호(2020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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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지린의 북경대학 박사학위논문 『고조선적연구(古朝鮮的硏究)』의 발견과 검토

저자 : 박준형 ( Park Jun-hyou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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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리지린이 북경대학에서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위해 제출했던 『古朝鮮硏究-摘要-』와 박사학위논문인 『古朝鮮的硏究』를 소개하고 그것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고조선연구와』 비교 검토한 것이다.
리지린은 북경대학 유학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중국인 심사위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국학계의 견해에 경도되지는 않았다. 그는 귀국 후에 학위논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북한학계의 요구와 현실에 맞게끔 수정하여 『고조선연구』를 출간하였다.
리지린의 『고조선연구』는 북한학계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던 만큼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고조선연구-적요-』와 『고조선적연구』의 발견은 리지린의 고조선사 연구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 학위논문 목차와 일부 내용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두 자료의 발견으로 박사학위논문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와 관련된 『古朝鮮硏究提綱』(1960), 『고조선연구-적요-』(1960.8 이후), 『고조선적연구』(1961), 『고조선연구』(1963)를 연속적인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리지린의 고조선사 인식체계의 형성과정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to introduce Li Ji-Rin's Ph.D. dissertation prospectus “Studies on The Old Joseon-Summary-”(『古朝鮮硏究-摘要-』) and dissertation “Studies on The Old Joseon”(『古朝 鮮的硏究』), both submitted for Beijing University, China, and then compare the latter with his monograph Studies on The Old Joseon(『고조선연구』).
Li Ji-Rin's Studies on The Old Joseon(『고조선연구』) matters in that it has given great influence on scholars in South Korea, Japan, China, and Russia as well as North Korean historians. For this reason, newly discovered “Studies on The Old Joseon-Summary-” and dissertation “Studies on The Old Joseon” are expected to give us new insight on the whole picture of Li Ji-Rin's research of Old Joseon now that we will be able to analyze the whole texts of his dissertaion per se, not its table of contents. If we will scrutinize “Script Studies on The Old Joseon”(『古朝鮮硏究提綱,』 1960), “Studies on The Old Joseon-Summary-”(『古朝鮮 硏究-摘要-』, 1960.8), dissertation “Studies on The Old Joseon”(『古朝鮮的硏究』, 1961), and Studies on The Old Joseon(『고조선연구』, 1963) in historical developmental perspective, we will obtain deeper understanding of the making of Li Ji-Rin's view of Old Joseo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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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조선과 연(燕)나라의 전쟁과 요동

저자 : 조원진 ( Cho Won-chin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7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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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조선과 전국 燕나라의 전쟁 양상을 살펴보며 진번의 실체와 요동의 범위 문제에 주목하였다. 고조선은 기원전 323년경 전국 燕나라와 대립하였다. 당시 고조선은 요동지역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고조선은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칭왕을 하며 요서지역과 광범위한 연맹을 형성하여 燕나라와 대립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과 燕나라는 팽팽한 대립속에서도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조선은 수십년 후 소왕대 전성기를 맞이한 燕나라에 패하여 滿潘汗을 경계로 삼게 되었다.
『史記』에는 전쟁의 주체에 대해 조선과 함께 진번의 존재가 부각되어 있다. 당시 요동북부에 위치한 진번은 조선 연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이해된다. 燕나라의 세력이 최종적으로 미친 동단에 대해 『史記』는 眞番·朝鮮지역으로 『魏略』은 滿潘汗으로 기록하였다. 燕나라가 설치한 5군 중 고조선과 관련된 것은 『山海經』의 貊國이 있었던 요서군, 『史記』의 진번·조선이 있었던 요동군에 해당된다.
燕나라의 침공 이후 고조선은 천산산맥을 경계로 삼았으며,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유역으로 중심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열수·패수 같은 조선과 관련된 지명이 요동지역과 서북한 지역에 동시에 보이는 것은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의 흔적으로 이해된다.
燕나라의 북벌 직후 요동군의 범위는 의무려산에서 천산산맥 사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燕나라 시기에는 속현이나 광범위한 행정구역을 설치하지는 못했다고 이해된다. 연북장성은 의무려산까지 이르렀으며, 의무려산~패수(혼하)에는 장새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소왕 이후 국력이 약해진 燕나라는 원거리 군현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며 말기에는 패수 서쪽에 설치한 장새까지만 세력이 미쳤다. 나중에 燕나라가 秦나라의 공격으로 쫓겨간 요동도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해된다. 이후 요동군은 秦나라에 의해 비로소 체계적으로 설치되었다.


This study focused on the truth of Jinbeon and the range of Liaodong by examining the war patterns between Old Joseon and Yan(燕). Old Joseon came up against Yan around 323 B.C. during the Age of Civil Wars. It is understood that Old Joseon wa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at that time. It is believed that Old Joseon used the title of king, formed a broad federation(또는 alliance) in the Liaodong region based on a stable kingship, and came up against Yan in response to the invasion of Yan. Despite the tense confrontation between Old Joseon and Yan, there was no big war. However, decades later, Old Joseon was defeated by Yan, at its prime time under the reign of King Zhao, and Manfanhan(滿潘汗) became the border between the two countries.
“Shiji(史記)” highlights the existence of Jinbeon along with Old Joseon, while describing as the main agents of the war. Jinbeon, located in the west of Liaodong at the time, is understood to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Joseon Federation. At that time, Yan extended to the west region of Liaodong. It is believed that “Shiji” recorded the east border of Yan as Jinbeon and “Weilue(魏略)” described it as Manfanhan. Among five commanderies installed by Yan, Old Joseon was related with Liaoxi commandery where Moguo(貊國) in “Shanhaijing” existed and Liaodong commandery where Jinbeon in “Shiji” was located.
After Yan's invasion, Old Joseon bordered the Tian Shan Mountains and it is believed that it moved its center from the Liaodong region to Pyongyang region. It is understood that names of places related to Old Joseon such as Yeolsu and Paesu existed in the Liaodong region and the northwest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the same time because they are the traces of the movement of the center of Old Joseon.
In terms of the range of Liaodong commandery, it is confirmed that 18 prefectures were installed between Yiwulu Mountain and Yalu River centered by Liao-yang after the collapse of Wiman Joseon. However, it is believed that Yan could not install a local prefecture or extensive administrative district. Extensibility reached Yiwulu Mountain. It is also believed that Jangsae was installed between Yiwulu Mountain and Hun River. Yan became weaker after King Zhao and it was difficult for Yan to protect Liao-yang, on the plain. Therefore, the influence of Yan, in fact, reached only to the Jangsae installed in the west of Hun River. It is believed that the Liaodong where Yan was driven off by Qin's attack was within this range. It was not until the Qin time that local prefectures were installed in the Liaodong region by Chinese power and the force of Chinese power was expanded to the east of Hu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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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용인 할미산성과 주변 신라 유적과의 관계 검토

저자 : 황보경 ( Hwangbo Kyu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7-10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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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6세기 중반부터 후반사이에 마북동 일대로 진출한 신라인들이 취락을 형성하였고, 보정동에 고분을 조영하였으며, 도로도 개설하여 교통로를 확보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당항성[당성]과 남천주를 연결되는 동 서 교통로와 탄천을 따라 한강 유역까지 이르는 남 북 교통로를 개척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 아래 구축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점차 탄천과 마북천을 따라 취락과 생산시설이 본격적으로 조성되면서 할미산성의 전략적 가치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7세기 초~중반 한강 이북이나 이남지역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면서 할미산성의 군사적 비중은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7세기 중후반이나 8세기 초에 정세변화로 인해 할미산성을 대체할만한 성이 필요함에 따라 석성산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용인지역에 할미산성을 먼저 축조하고 활용한 반면, 석성산성에서 확인된 남북국시대 신라가 쌓은 성벽과 유물로 보아 할미산성보다 늦은 시기에 축성내지 수축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사용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해 보았는데, 중요한 것은 석성산성이 할미산성보다 잣고개를 통제하기가 용이할 뿐 아니라, 주변 지역 특히 서쪽과 남쪽에 대한 시야 확보가 넓어 감제하기가 용이하는 점이다. 그리고 성돌 확보가 쉽고, 철기 제작기법이 발달한 점도 감안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할미산성 주변에서 조사된 취락은 마북동 취락유적이 대표적인 가운데, 그 주위에서 주거지와 수혈, 수전, 도로, 매납유구 등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자료로 보아 당시의 신라인들은 수전경작 등의 농경생활을 했고, 슬래그와 미상의 철제품 그리고 철촉과 소찰등으로 보아 무기류나 공구류 등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도로유구와 차관, 재갈등의 유물로 볼 때, 마북동 취락유적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방향의 '十'자형 교차로를 확보 및 개척하여 할미산성과 태봉산성 방향, 죽전방향 등으로의 왕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할미산성 운영시기 동안 마북동 취락유적이 동시기에 같은 토기와 철기 등의 유물을 공유하였고, 탄천 동편의 마북동 중세취락과 청덕동 쪽에도 점차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토기를 매납한 유구로 보아 신라인들이 땅이나 산, 물에 대해 고유의 제의행위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분은 보정동 고분군 외에도 마북동, 청덕동, 역북동, 언남동 등에서도 발굴되었지만, 대규모로 군집된 곳은 보정동 뿐이다. 보정동 고분군에서는 횡구식 석실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두침석 사용과 배장곽, 호석, 제의유구의 존재 및 부장 토기에 대한 훼기가 확인되었으며, 추가장이 이루어졌다는 점도 파악되었다. 석실묘의 구조와 매장수법 등으로 보아 오랫동안 조영되었다는 점과 특정지역에서 옮겨온 집단이 축조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토기와 철기 유물 외에 귀금속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지 않아 피장자 신분이 높지 않다고 여겨지며, 향후 고분군 정상부 쪽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In the surrounding area of Halmi Fortress, people of the Silla Kingdom who had advanced to the Mabuk-dong area during the mid to late 6th century formed villages and created tombs in Bojeong-dong. They built roads and secured transportation routes as well. It is assumed that such efforts were made for the purpose of opening and maintaining the east-west transportation route connecting Dangseong in Hwaseong and Namcheonju and the south-north route reaching the basin of Han River along the Tancheon Stream. As the villages and production facilities had been created in full scale along the Tancheon Stream and Mabukcheon Stream, the strategical value of Halmi Fortress were sustained. However, it seemed that the military role of Halmi Fortress was reduced during the early and the mid of the 7th century. There was a necessity for another fortress to substitute the military role due to the gradual changes in the situation and it was assumed that Seokseong Fortress replaced the role.
While the Silla Dynasty built Halmi Fortress and utilized it earlier, Seokseong Fortress was assumed to be built later time or utilized less. There are two hypotheses about the time that used the Fortresses. The important things lie in that Seokseong Fortress was easier to control the mountain pass and provided a larger field of view for vigilance than Halmi Fortress. It was also assumed that Seokseong Fortress was easier to get stones for the fortress construction and had the advanced production skills for iron tools.
Villages in Mabuk-dong are the representative relics excavated around the Halmi Fortress. There found residential sites, pits, paddy fields, roads, buried remains, etc. People of Silla Kingdom lived agricultural life through farming on the paddy fields. Seen from slags, unknown iron things, iron arrowheads, metal scales, etc., it is assumed that irons such as weaponry and tools had been made. In addition, based on the relics including roads, tea kettles, and gags, it is considered that cross-shaped roads connecting the four directions was secured and developed so that traffic toward Halmi Fortress, Taebong Fortress, and Jukjeon could be provided. It is also understood that Halmi Fortress and villages in Mabuk-dong shared the same kinds of earthenware and ironware during the same period and the villages also were formed around the east part of Tancheon Stream. The buried earthenware indicated that people of Silla Kingdom performed their inherent ritual services toward land, mountains, and water.
In the tombs of Bojeong-dong, there found a lot of side-open stone-chamber tombs. It was also confirmed the use of stone pillows, small extra stone coffins(Baejangkwak), guiding stones around the tombs, clothing for ritual services, and intentional damages on the buried relics. It was also found that additional burial had been done ther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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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매장문화재 훼손 · 파괴에 대한 처벌제도의 개선 필요성과 방향

저자 : 최민정 ( Choi Min-jeo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1-13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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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문화재는 한번 훼손 파괴되면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나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오래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며,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과학기술 수준 등으로는 완벽한 복원이나 회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매장문화재 보호 보존은 우리나라 최고 상위법인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며, 국민은 국가의 매장문화재 보호 보존 정책과 제도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도와 정책은 매장문화재 보호 보존을 위한 출발점이자 기초이며, 매장문화재 보호 보존은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과 인식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매장문화재의 가치와 보호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매장문화재보호 보존을 위한 체계적 예방적 관리시스템과 제도적 장치의 미흡 등으로 인해 매장문화재가 불법 훼손 파괴되고 있으며, 제도의 실효성과 규범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매장문화재 불법 훼손 파괴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제도와 정책의 실효성 및 규범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위반 행위에 대한 형벌과 함께 사업상 제한을 가해야 한다.
개발사업 시행자의 의무위반과 행정명령 미준수, 발굴조사 방해,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에 피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에 대해 위반 행위 횟수와 정도에 따라 가중처벌(加重處罰)을 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중요 사항에 대해서는 형벌을 부과하는 등 구체성과 명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처벌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Once the archaeological heritage is damaged or destructed, it would be impossible to restore the original state perfectly or it would take a long time for restoration. With the knowledge and scientific technology of current times, there is a limitation for a perfect restoration.
Protection and preservation of archaeological heritage is a given obligation of the country and people have an obligation to actively cooperate with the systems and policies of protection and preservation of archaeological heritage.
System and policy are a starting point and basis for the protection and preservation of archaeological heritage, which could be achieved through the voluntary dedication, efforts, and recognition of all members of a social community.
However, due to the lack of social recognition on the value and importance of the protection and preservation of archaeological heritage, and deficiency of systematic and preventive management system and institutional devices, some of the archaeological heritage are illegally damaged and destructed, and the effectiveness of the system and regulatory power are not properly working.
In order to raise awareness of illegal damage and destructive activities of archaeological heritage and intensify the effectiveness and regulatory power of the system and policy, punishment on the illegal activities along with restrictive measures in business should be provided.
It is necessary to improve and arrange the punishment system in full scale toward the direction to secure concreteness and clarity by providing aggravated punishment according to violation frequency and degree against breach of obligations and failure in compliance to administrative orders by developers, disturbing excavation research, and the activities to give harm to research institutes of archaeologic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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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용인 동천동 고구려 석실묘

저자 : 김호진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5-15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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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증평 추성산성 백제 우물과 주거지

저자 : 최경용 , 문수균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1-17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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