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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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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5981444
  • : 2384-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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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64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727
온지논총
64권0호(2020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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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성 신화에 나타난 인물의 형상과 의미 - 아황·여영을 중심으로 -

저자 : 하경숙 ( Ha Kyoung-soo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3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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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아내인 아황과 여영을 이비(二妃)라고 하는데 순이 천자(天子)가 되자 아황은 후(后)가 되고 여영은 비(妃)가 되었다. 이비(二妃)는 순이 죽자 강에 빠져 죽어 湘君(상군)이 되었다. 이비는 고전 작품속에서 부덕(婦德)과 열(烈)을 상징하는 여성으로 형상화되어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비의 출현은 독립적인 결정과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능동적인 인물형이라고도 판단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펼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폐쇄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비의 경우 스스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 후 결국은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이비는 여성으로 서의 자신과 가정에 대한 역동적인 인식을 중심으로 삶의 형성에 힘을 기울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작품에 형상화된 이비는 고난에 대한 조력자, 천상계의 천정 원리가 있다는 사실을 구현하고 전달하는 중계자로서의 의미를 새롭게 획득하게 된다. 아울러 초월적 삶과 현실의 삶을 표상하는 존재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단서를 통해 <아황과 여영> 서사의 미학적 기반은 한층 더 탄탄하게 할 수 있다.
아황과 여영은 다양한 유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후대에 전승되면서 여성 인물들이 자신의 삶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 주며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울러 여성들이 가진 다양한 사연에 가슴 아파하는 여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중적 여신의 면모를 나타내기도 한다. 아울러 고대사회의 여성의 지니고 있는 태도나 생명추구의 모습을 점검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The daughters of king Yo of Ancient China and the wives of King Sun, Ah-Hwang and Yeo-yeong, were called Two Queens(二妃). When King Sun became the Heavenly Prince, Ah-Hwang became an empress(后) and Yeo-Yeong became queen(妃). When Sun was drowned in the river, he became a "Sanggun." Two Queens(二妃) were often talked about by people as they are portrayed as a woman who symbolizes morality and chastity in classical works.
Two Queens' appearance can also be seen as an active character that continues goddess' independent decisions and active activities. In the traditional social structure, it was a closed situation in which women could never actively display their will and ability or easily approach people in need. But in the case of Two Queens(二妃), after experiencing various events on their own, they are eventually playing a role of emphasizing their vitality to the various people who have experienced difficulties. This is because Two Queens(二妃) focused on forming a life, focusing on their dynamic perception of themselves and their family as a woman.
Two Queens on later works newly acquired a new meaning as an assistant of hardship and a bridge that embodies and conveys the fact that there is a principle of heaven in heaven. In addition, the aesthetic foundation of the "A-hwang and Yeo-yeong" narrative can be further strengthened if we trace the clues that inevitably emerged as an icon of transcendental life and real life.
Ah-Hwang and Yeo-yeong are constantly being delivered through various channels. In particular, female figures actively show their lives and appear in similar forms as they were handed down to future generations. In addition, it also represents a goddess who is heartbroken by the various stories of women and a public goddess who fulfills people's wishes. It also serves as an opportunity to examine the attitude and pursuit of life of women in ancien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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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순호 소장본 <장한가>에 나타난 恨의 표현과 의미

저자 : 정영문 ( Jeong Yeong M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5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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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선생님이 소장하고 있는 <장한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유한성을 기록하였다. <장한가> 제목으로는 당(唐)현종과 양비귀의 사랑을 한시로 기록한 백낙천의 <장한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본 연구의 텍스트인 <장한가>는 백낙천의 <장한가>와는 형식과 내용이 다른 작품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향유되던 인간의 관심사를 수용하면서 '인간의 유한성과 문화를 통한 극복'을 보여준다.
작가는 <장한가>에서 신화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역사를 이끌어 가는 인물상을 기록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하층민의 목소리로 비판하였고,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 민중에게 있음도 밝혔다. 인간의 '한(恨)'은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작가는 한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승지(勝地) 구경'을 제시하였다. 이 구경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자연에서 문인과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 Janghanga(長恨歌) >, which is possessed by teacher Park, Soon-ho records the finiteness of human beings reveal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humans. Among various works with the title of < Janghanga >, Baek, Nak-cheon's < Janghanga >, which recorded the love between King Hyeonjong of Tang(唐) Dynasty and Yanggwibi in Chinese poems, is most well-known. The < Janghanga > as the text of this study is not a 'regret of unfulfilled love', but it shows 'human finitude and its overcoming through culture' while accepting the interests of human being enjoyed in various forms. The < Janghanga > is a work with a different form and content from Baek, Nak-cheon's < Janghanga >. In < Janghanga >, the writer recorded human history and the portraits of human leading the history from the mythological era to the Joseon Dynasty. He criticized the problems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as voices of the lower classes, and also revealed that the power to drive history lies with the people. Since 'Hahn (regret, 恨)' of human is irreversible, the writer presented the 'sightseeing of beautiful places(勝地)' as a way to resolve regret. This sightseeing continues from China to Joseon Dynasty, from nature to literary man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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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스토리텔링 관점에서 본 <구운몽>의 현대적 가치

저자 : 강우규 ( Kang Woo-kyu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9-8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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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구운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이유로서 상호작용적 공간의 스토리텔링에 주목하였다. <구운몽>은 천하지도를 제작했던 김만중의 지리인식을 바탕으로 실제 지형지리, 인문지리, 상상지리가 결합되고, 현실과 가상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공간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창작되었다.
환몽구조와 환생구조의 중첩을 통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상호작용은 <구운몽>을 열린 구조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구운몽>은 세속적인 삶과 이념적인 삶의 추구라는 두 지향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욕망의 문제, 인간적 존재의 문제, 인간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서포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제기하였다. 독자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텍스트 해석에 참여하며 텍스트와 활동적인 관계를 맺도록 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구운몽>은 시간적 연쇄를 중시하는 고전서 사이지만, 상호작용적인 공간 설정과 풍부한 담론생산성을 통해서 독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구운몽>은 수많은 이본으로 향유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후대의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으며, 상호작용과 공간의 스토리텔링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의 디지털 서사와도 점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


This study focused on the storytelling of interactive space for the reasons for various interpretations of The Cloud Dream of the Nine. Based on the geographical awareness of Kim Man-jung, who produced the map of the world, The Cloud Dream of the Nine was created through storytelling in a space where actual geography, cultural geography, and imaginary geography interact. In addition, The Cloud Dream of the Nine was formed as an open structure by interacting with the real world and the virtual world through the overlapping of 'Dream' and 'Reincarnation' motifs. In terms of storytelling, The Cloud Dream of the Nine is a classic narrative that emphasizes temporal chains, but was able to interact with readers through interactive space setting. Through this, The Cloud Dream of the Nine was enjoyed in numerous versions, influenced the classical novels in various ways, and was able to form a contact point with modern digital narr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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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광개토태왕훈적비 제1면에 대한 시석(試釋) - 마멸 부분 추독(推讀)과 신묘년조(辛卯年條)해석을 중심으로 -

저자 : 朴光敏 ( Park Kwang-m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135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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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太王勳績碑는 조선시대에도 기록이 보이지만 1874년∼1875년경에 이 碑가 高句麗의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라는 것이 밝혀진 이래 東北亞古代史연구의 중요한 텍스트로서 韓·中·日학자들의 많은 연구 論著가 나왔고, 프랑스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과 에두아르 샤반느(Édouard Chavannes), 소련의 자릴가시노바(Rosa A Dzarylgasinova)등 西方학자들의 踏査와 연구도 더해지며 세계적인 연구대상이 되었다. 碑文解讀은 연구를 위한 가장 기초적 작업이지만 다수의 글자가 磨滅되었고, 碑面이 떨어져 나간 곳도 많아서 비문을 해독하고 再構하는 것이쉽지 않다. 1875년 이후 國內外여러 학자의 연구로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未讀字가 적지 않고, 비문 해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중에서도 제1면의 '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羅以爲臣民' 記事는 가장 尖銳한 논쟁거리였다. 이 부분을 흔히 '辛卯年條記事'라고 하는데 '辛卯年條記事'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百殘○○○羅以爲臣民'은 신묘년이 아니라 乙未年의 裨麗토벌 記事아래에 기록되었고, 광개토태왕이 군사를 일으킨 것도 신묘년으로부터 이미6년이나 지난 丙申年이기 때문이다.
석회를 발라 碑面의 글자를 變造했다는 事實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져 왔고, 그 주체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歷代어느 古碑도 석회를 발라 글자를 바꾼 경우가 없었다는 점에서 누가 어떤 목적에서 그랬든 석회를 발라 글자를 變造하고 원래의 字形을 훼손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本稿에서는 廣開土太王勳績碑의 제1면을 중심으로 未讀字를 試釋하면서, 논란이 되어온 諸說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작은 史實이라도 밝혀지는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先學들의 연구에 기초한 것이며, 작은 誤謬라도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필자의 寡聞에서 비롯된 것이다.


The record on the Gwanggaeto Stele first appeared in the Joseon Dynasty, and the Stele was identified as the stele of King Gwanggaeto around 1874/75. Since then, the Stele has been invaluable sources for the studies about the ancient history of Northeast Asia. A number of studies and works have been published by scholars from Korea, China, and Japan. It has also become a focal point of international studies since Maurice Courant, Édouard Chavannes, Rosa A. Dzarylgasinova began their studies about it.
Deciphering the letters on the epitaph is the most fundamental procedure for the further studies. However, due to many faded letters and the damaged surface of the Stele, there are difficulties in interpreting and arranging its inscription. Since 1875, a lot of scholars from Korea and other countries have researched and discovered a variety of information. However, numerous letters still remain illegible, so there exist disputes on its interpretations of the epitaph.
The most controversial portion of the inscription has been '而倭以辛卯年來 渡○破百殘○○○羅以爲臣民'. This portion is commonly named as 'Sinmyo Passage.' However, its title may not be appropriate and it is necessary to re-examine the text. The portion '百殘○○○羅以爲臣民' is not inscribed under the passage that describes the year of Sinmyo, but under the passage of the Biri (裨麗) conquest in the year of Eulmi. In addition, it was the year of Byeongsin, 6 years later after Sinmyo, when King Gwanggaeto raised his army.
It has been argued that someone used lime and altered the letters, and has been questioned who it was. There exists no precedent of changing letters on the ancient steles by covering with lime, so it deserves blame for defacing its original text.
This study tries to read and interpret the previously indecipherable letters which appear in the first section of the Gwanggaeto Stele, and discusses some controversial texts as well. It will be thanks to previous studies by other scholars, if this study brings any meaningful insight on the subject. It will be attributed to my lack of knowledge, if there is any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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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계 이주정의 생애와 학문 경향

저자 : 황만기 ( Hwang Man-ki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7-16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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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대계 이주정의 가계와 생애, 교유관계 그리고 그의 학문 경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주정의 외우(畏友)인 학림(鶴林) 권방(權訪)은 '세상에 대적할 만한 선비가 없었고, 영원히 두 문하를 출입하지 않았네.'라고 하였다.
대산 문하의 대학자였던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는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호서류편(湖書類編)』과 『상변절약(常變節約)』 등의 일에 참여 하여 토론하기를 청하기도 하였다. 이는 모두 이주정의 훌륭한 학문에 대한 추중(推重)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이주정은 그의 나이 27세에 대산 이상정에게 나아가 『대학장구』를 배웠다. 배우는 과정에서 구절 하나에 글자 하나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그 의미를 규명하려 하였다.
특히 남당 한원진이 『대학』의 서문을 분석함에 있어서 사람과 사물의 성질이 다르다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또 <심무출입설>에 대해서는 선현들과 같은 생각을 지녔으나, 호곡 류범휴가 말한 악념근착(惡念根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배척은 그의 학문적 근원에서 비롯되었다. 본고는 이주정의 시문학에 대한 특징점에 대해서는 미처 다루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지면을 통해 연구의 폭을 넓혀갈 예정이다.


This paper is to examine Daegye(大溪) Lee Ju-jeong(李周禎)'s family, life, social intercourse and academic inclination. Lee Ju-jeong's friend, Gwonbang, said, 'He had no scholar to compete in the world and was never under two different instructions.' In addition, Jeong Jong-ro, who was a great scholar student under Daesan, sent letters several times, asking him to participate in such matters as HosoLiupyeon(胡書類編) and SangByunjeolYak(常變節約) to discuss. This is all the result of Lee Ju-jeong's pursuit of good learning. Lee Ju-jeong went to Daesan Lee Sang-jeong at the age of 27 and learned Daehakjanggu(大學章句). In the process of learning, he tried to investigate the meanings of every letter rather than just ran over them. Especially, with regard to Namdang Han Won-jin's theory on dissent of person's and animal's character (人物性異論), the differences in the nature of a person and a thing, in the analysis into the preface of Daehak(大學), he took the opposite stance. Moreover, regarding < Simmuchulipseol >, he had the same opinion as former scholars, but as for Hogok Ryu Beom-hyu's Aknyeomgeunchak(惡念根着), he thought differently. In addition, his logic of excluding Buddhism was developed on the basis of his academic roots. This paper did not cover the characteristics of Lee Ju-jeong's poetry yet. The research scope in regard with this issue will be expanded with further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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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세기 초, 구습(舊習) 혼인 비판과 여성 담론의 형성 - 조혼 문제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숙인 ( Lee Sook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5-19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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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10년은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풍속 개량의 기치아래 특징적인 여론을 형성하던 시기다. 일제의 한국침략이 가속화되자 보국(保國)과 보족(保族)의 시대 과제 속에서 과거의 관습이 개혁 또는 폐기의 대상으로 담론화된다. 이에 당시 '구습 혼인'이라는 이름 아래 논쟁의 중심에 섰던 조혼(早婚)을 통해 전통 비판의 논리와 지식의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혼인 담론은 여성 인식과 여성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구습 혼인'에 대한 비판이 여성 담론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에 주목했다.
먼저 20세기 초의 혼인 이념은 전통 사회의 그것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에 주목했다. 근대와 전통은 모두 생물학적 생산에 혼인의 일차적인 의미를 두었는데, '생생지리(生生之理)'나 '이성지합(二姓之合)' 등의 개념으로 혼인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하지만 그 사회적 역할에서는 가족·가문의 번영에 의미를 둔 전통과 국가·민족의 번영에 의미를 둔 근대가 서로 달랐다. 다음은 조혼의 폐해로 적시된 내용들이 실제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근대의 담론에 불과한 것인지에 주목했다. 당시 제기된 조혼의 문제는 체육(體育), 지육(智育), 덕육(德育)과 경제(經濟)의 크게 네 가지인데, 그 비판의 논거들은 '문명'의 여부에 있었고, 문명의 기준은 서구의 혼인 풍속이었다. 조혼 폐해론은 국가주의에 의한 혼인의 재구성이 요청되던 시대 상황에서 인종의 강약(强弱)과 국가의 흥망(興亡)을 좌우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등 과도하게 해석된 측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혼 비판을 통해 여성 문제가 가시화된 것에 주목했다. '구습 혼인'에서는 대두되지 않았던 세 가지 점에 주목했는데, 여성 성(性)의 문제가 미약하지만 제기되었고, 혼인을 매개로 한 여성 착취의 문제가 거론 되었으며, 부모 중심이던 가족 담론이 가족 구성원의 관계 담론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리고 조혼이 이루어지게 된 역사적 맥락을 문화적 특수성과 성별 조건을 통해 조혼 담론의 시대적 변화를 살폈다.


The decade of the 1900s was a relatively short period, but it was a time when the characteristic public opinion was formed under the banner of improving custom. The customs of the past have become the object of reform or abolition amid the task of protecting the nation and the country. This article aims to discuss tradition, modernity and women's issues through the most actively developed early marriage discourse at that time. These are as follows: First of all, I paid attention to how the marriage ideology of the early 20th century was the same and different from that of traditional society. They were the same in that they put the main meaning of marriage on biological production, but the social role they expected of marriage was different. Namely while traditional marriages meant family prosperity, modern marriages meant national prosperity. Secondly, the theory of the harmful effects of early marriage proved that there was excessiveness, such as being described as controlling the fate of the race and the nation in an era when the reconstruction of marriages by nationalism was requested. Finally, I noted that women's problems have become visible by the achievements left behind by criticism of early marriages, such as the sexual problems of women, exploitation of women, and changes in family discourse. It seemed to signal a new round of women's dis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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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현대 자본주의와 유교의 경제윤리

저자 : 이재석 ( Lee Jae Seo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3-21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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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구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 물질만능주의, 절대 빈곤, 실업 등과 같은 부작용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부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질만능주의는 결국 소득의 격차를 넓히고 계층 간의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아울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자본의 교환과정을 통해 최대한 이익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중립적인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시장주의자들은 경제행위에서 도덕원칙에 간섭받아서는 안 되며, 오직 경제원리와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역시 경제를 윤리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경제가 사회적 규범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장경제체제하의 경제행위가 많은 사회문제를 생산해 내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경제를 윤리와 분리된 인간의 활동영역이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경제윤리는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할 때 최소한의 도덕과 상식을 지키고자 제시되는 가치규범으로,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경제행위는 많은 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정한 윤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시장주의와 공동의 복지와 윤리적 이상을 중시하는 경제윤리의 조화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엇보다 윤리적 반성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불평등하고 위험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자본주의 존립 그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이라는 정신적 삶과 물질적 삶의 조화를 추구한 유교의 경제관은 오늘날 자본주의 격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At present, the market economy of Western capitalism is exacerbating side effects such as unequal distribution of wealth, materialism, absolute poverty, and unemployment. Korea s quite the same and in order to accumulate wealth, materialism, regardless of means and methods, eventually widens the income gap and brings conflict between classes. In addition, since the market economy of capitalism is a value-neutral economic system, devotees of market insist that moral principles should not interfere with economic activities.
However, this thought seems to overlook the fact that the economy is closely linked to social norms. In particular, considering the reality that economic activities under the market economic system incur many social problems, it can not be said that the economy is an area of human activities separated from ethics. Economic ethics is a value norm that is proposed to keep minimum moral and common sense. It is necessary to follow ethical principles because economic behaviors outside social norms cause a lot of social damage. This is the reason why the combination of economic liberalism, which prioritizes individual ability and economic interests, and economic ethics that values public welfare and ethical ideals is becoming important tasks. Therefore,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ethical reflection in the modern capitalism is that the current liberal market economy is causing inequality and dangerous social side effects and threatens the existence of capitalism itself.
In this sense, Confucian economic view of pursuing the harmony of mental life and material life such as morality, utilization and welfare can give implications for various problems facing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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