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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update

Chonnam Historical Review

  •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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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97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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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7)~7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772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0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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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남지역 마한과 가야 세력과의 관계변화와 의미

저자 : 최영주 ( Choi Young-joo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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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전남지역 마한과 가야지역의 제 세력과의 시기별 교류 양상과 그에 따른 관계변화와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제형분 단계에 전남지역의 마한세력들과 가야의 제 세력들은 연안 항로를 통해 물적 자료를 중심으로 교류관계가 이루어졌다. 가야는 백제-왜 사이의 중개자적인 입장의 교류관계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교류관계에서 서남해 연안지역에 왜계 고분이 출현하였다.
고총고분 단계에 전남 서부지역 세력들은 소가야와의 정치적인 교섭관계를 통해 독자성과 현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동부지역 세력들은 대가야·소가야, 신라와의 정치적인 교섭관계를 통해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가야지역에서도 전남 서부(분구묘)와 동부(고총고분군)지역과의 정치적 교섭관계를 통해 영역 확장 및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백제석실분 단계에 전남지역은 백제에게 완전히 복속되어 가야와의 관계는 백제가 주도하였다. 가야지역에서는 백제가 대가야권 세력에 영향력을 끼쳐 영역화를 추진하다가 신라에게 복속되면서 양 지역간 관계는 멈추게 된다.
이상으로 전남지역 마한과 가야 제 세력들은 교류와 교섭관계를 통해 정치적·문화적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작은 지역 집단의 정체성과 성장을 위해서 필연적으로 선택하고 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전략에 해당한다.


In this paper, we examined exchanges with powers of Mahan and Gaya regions in Jeonnam by period and changes and the meaning of relationships. At the stage of a trapezoid tomb, the Mahan and Gaya powers in Jeonnam region exchanged with each other on the coastal route. Gaya valued the intermediary relationship between Baekje-Wae. In this relationship, Wae-style tombs appeared in the southwest coast.
At the ancient tomb stage, western Jeonnam powers strengthened their independence and local control through political negotiations with Sogaya while the eastern powers grew through political negotiations with Daegaya, Sogaya and Silla. The Gaya region also grew and expanded its territory through political bargaining with Jeonnam's western (bungumyo) and eastern (ancient tombs) districts.
At the stage of Baekje's stone chamber tomb, Jeonnam was completely subjugated to Baekje, and Baekje led the relationship with Gaya. In the Gaya reg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regions ceased as Baekje influenced the Daegaya powers and became subjugated to Silla.
As a result, the Mahan and Gaya powers in Jeonnam region grew politically and culturally through exchanges and negotiations. This is a social strategy that inevitably chooses and acts for the identity and growth of small local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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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야시 라잔(林羅山)의 조선 인식과 『本朝通鑑』 신라·발해 관계기사의 특징

저자 : 정순일 ( Chong Soon-il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6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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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조통감』의 신라·발해 관계기사를 기재하는 방식을 밝히고, 그 가운데서 확인되는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 먼저 『본조통감』 편찬배경을 파악하고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사본(寫本)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해당 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본조통감』 고대사 서술의 기초를 마련한 하야시 라잔의 조선 인식을 조선통신사와의 교류 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하였으며, 끝으로는 『본조통감』에 보이는 신라·발해 관계기사의 서술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그 전거와 특징에 대해 검토하였다.
하야시 가호(林鵝峰) 단계에 성립한 『본조통감』은 그 아버지 하야시 라잔이 편찬한 『본조편년록』을 바탕에 두고 있고, 특히 고대사의 경우 『본조편년록』 기재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방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본조통감』의 사본 활용은 신라 및 발해 관계기사를 에도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읽고 이해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라잔은 조선을 하나의 조공국 내지 번속국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태고를 보였고, 중국(중화)과는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또, 일본 문화 및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며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보다 일본에 우위에 있었다는 의식도 감추지 않았다. 한편, 그의 한시(漢詩)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한반도 관계기사 작성 및 채택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고찰하였다. 『본조통감』은 기본적으로 역대 편찬·간행된 사서를 인용·참고하여 만든 책이기 때문에 '요약-정리'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신라·발해 관계기사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하지만 기존 자료 가운데 '선택'된 내용만이 채록되고 있으며 그 '선택'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기존 자료를 加減 없이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부 내용만 발췌하여 게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떤 사정에서인지 아예 채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견 불규칙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료의 '취사선택' 방식이지만 발해 관계기사에서는 한결같이 관련 한시문을 인용·수록하는 등 일정한 규칙성을 보이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This article is intended to disclose the method of recording the article related to Silla and Balhae of Bonjo-Tonggam(Honcho-Tsugan) and analyze the percep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s it is confirmed thereto. For this purpose, by finding out the background of compilation of Bonjo-Tonggam first and taking a look at the status of its copies handed down to the present time in a way of looking into the method of approach toward the applicable historic data. Bonjo-Tonggam that was established in the Hayashi Gaho period has its foundation in Bonjo-Pyeonnyeonrok that his father, Hayashi Razan compiled, and for the case of ancient history in particular, it can be confirmed as the method of accommodating a substantial portion of contents recorded in Bonjo-Pyeonnyeonrok. Furthermore, the facilitation of copy for Bonjo-Tonggam was pointed out as a method to glimpse how intellectuals in the Edo Era read and understanding the articles related to Silla and Balhae.
Next, the perception of Hayashi Razan that laid down the foundation of description of the ancient history in Bonjo-Tonggam was reviewed based on cases of exchange with Joseon Tongsinsa (Korean missions to Japan). Razan showed its attitude to consider Joseon as one of the tribute paying countries or subordinate countries in a way of emphasizing its relationship equivalent to China. Also, it did not conceal its perception that it had the sense of pride on Japanese culture and history and Japan had superiority over Joseon and surrounding countries. In the meantime, his interests and attention to Chinese poetry were contemplated as having significant influence in preparing the Korean Peninsula related articles and process of its adoption.
Lastly, the review is made on the removal and characteristics by taking a look in details at the narrative trend of the articles related to Silla and Balhae as appearing on Bonjo-Tonggam. Bonjo-Tonggam is a book published by quoting and referring to texts chronically editing and publishing that it takes the form of 'summary - arrangement'. The articles related to Silla and Balhae are in the same way. It is natural, but only the 'selected' contents from the existing data are described and the method of the 'selection' would be different from one another. There is a case of simply assigning just way it is without any addition or subtraction and there is a case of excerpting only part of contents to record. Obviously, for certain circumstances, there are cases not to be adopted at all. It is in a 'adoption or rejection' method of historical record that seemed to be an irregular thing at a glance, but in the Balhae related article, it is also a fact to display certain regularity in quoting and recording the Chinese poems and literatures in a unified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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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여말선초 산간 역로의 개통과 그 요인 - 해로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저자 : 한정훈 ( Han Jeong-hun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7-9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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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조선 초기 고갯길 경로상에 신설된 역원(驛院)시설에 관한 분석을 통해 당시에 재편된 역로망의 현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산간 역로의 개통 양상을 정리하면서, 기존의 역로가 재개발된 경우(죽령로·추풍령로·육십령로 등)뿐 아니라 새로이 개통된 산간 역로인 '마아령로'·'우마현로'·'성초현로'를 발굴하였다. 이들 산간 역로의 개통으로 산간지대에도 교통거점이 늘어나면서 보다 촘촘한 전국 단위의 역로망이 구축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산간 역로 중 덕유산지의 '성초현로'·'육십령로'와 지리산지의 '팔량현로'는 고려 말엽 왜구의 약탈로 인한 서남해 연안해로의 불통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로 개통된 산간 역로였다. 이를 통해 해륙사(海陸史)의 관점에서 해상교통의 불통이 산간 역로 개통의 역사적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conditions and characteristics of the network of post roads, reorganized at that time, by analyzing Yeokwon(驛院) facilities established on ascent routes in the early Joseon. By arranging some aspects of opening of mountainous post roads representing Baekdudaegan(白頭大幹), it discovered the existing ones redeveloped (Jukryeongro, Chupugryeongro, Yuksipryeongro, ect.) as well as newly opened ones (Ma-aryeongro, Umahyeonro and Seongchohyeongro). The opening of such mountainous post roads increases traffic bases on mountainous areas, lead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denser network of them throughout the country.
Among them, 'Seongchohyeongro(省草峴路)' and 'Yuksipryeongro(六十嶺 路)' in the Deokyu mountainous district and 'Palryanghyeonro(八良峴路)' in the Jiri mountainous district' were mountainous roads opened to recover the impassibility in the southweater sea path, which was caused by Japanese pirates' pillage in the late Goryeo. This study thus stressed that the impassibility of marine traffic was likely to be the historical background for the opening of mountainous post roads, from the land and sea historical perspective(海陸史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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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20~30년대 최남선의 고신도 논의와 '불함문화론'의 재해석

저자 : 류시현 ( Ryu Si-hyun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7-11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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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1937~1945) 동안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내선일체' 논리를 주장했다. 1930년대 중반 일제의 점령 지역이 확대된 상황에서 인종과 종족에 기반 한 '문화권' 논의는 어떠했으며, 전시체제기의 '내선일체'와 '신도정책'의 기원은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조선인 지식인의 대응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대 이러한 물음에 적극적인 대응과 답변을 모색한 인물이 최남선(1890~1957)이었다.
당대 일본의 신도와 신사정책에 대응한 최남선의 논리를 검토하기 위해 새로 발굴된 1930년대 그의 글과 강창기의 『내선일체론』(1939)에 수록된 최남선의 「서론」을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불함문화론」을 포함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최남선의 글을 시간적인 순서로 재배치해서 논리를 살펴보았다.
또한 최남선의 논쟁적인 텍스트 「불함문화론」(1927)의 다시 읽기를 시도했다. 첫째, 「불함문화론」 발표 이전과 이후에 이루어진 '불함', '신도' 등의 중요개념이 그의 글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둘째, 1920년대 텍스트인 「불함문화론」이 1930년대 후반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최남선의 '내선일체' 주장의 변화 계기에 중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향후 이러한 '고신도'와 한일 고대사에 관한 논리 변화가 1930~40년대 그의 정치적 입장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관해 살펴보겠다.


The Japanese Imperial had imposed Naeseon-ilche theory to the colonized Koreans during from the Second Chinese-Japanese War to the Asian-Pacific War (1937~1945). For the purpose of understanding the Japanese Imperial's ruled politics to the occupied areas, we will exam first their discusses on cultural areas based on ethnics and races, second their Naeseon-ilche theory and Japanese Shrine polices, third the response arguments of the colonized Korean elites. At these times, the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Korean person was Choi Nam-sun.
For the approach to Choi's arguments on Japanese Shrine polices and Naeseon-ilche theory, this paper scrutinizes his new discovered articles on both Korean and Japanese ancient-Sinto theory during 1930s and the Choi's preface on Kang Chang-ki's book Naeseon-ilche theory which published in 1939. Specifically This paper focused on Choi's articles including his Bulham culture theory (1927) based on chronological order.
His article on Bulham culture was a very hot dispute on Korean and Japanese scholars who majored in ancient history. In addition, Choi's arguments on Bulham culture were changed from early 1920s to 1940s. His transformation to Pro-Japanese was decided by his Wartime experience. This paper focused on his narratives of an ancient-Sinto theories in Japanese Shrine policies. After this, I will connect these discusses with his political options in 1930s~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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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과거의 특정 사건이나 시점을 기준으로 연속된 시간을 나누고, 이를 통해 현재를 인식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특정한 사건을 기준으로 과거를 분절할 경우, 이러한 사건은 '이전', '이후' 등과 같은 용어의 좌측에 위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특정한 사안이 '이전', '이후' 상당어구의 왼쪽에 자주 등장한다면 그 사건은 당시 사람들이 중요시했던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넓은 세계와 접속되지만 결국 식민지를 거쳤던 한국의 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근대에 출현한 잡지로, 국사편찬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제공하여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폭넓게 활용하고 있으며, 종합 잡지로서 특정한 분야를 넘어 당시 일상생활을 위한 다양한 정보들을 담고 있는 19종의 잡지에서 '이전', '이후' 상당 어구의 좌측에 등장하는 사건을 추출하여 그 빈도와 주요 사건들의 용례를 검토했다.
분석 결과 1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중일전쟁, 만주사변, 러시아혁명 등과 같이 국제적 사건이 상위를 차지하였다. 이처럼 국제적인 사건들이 시대 변화의 지표로서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은, 적어도 개항 이후 세계와 접속된다는 '근대'라는 시대의 성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사건들이 변화의 기점으로 등장하는 기사들은 국제 정세, 해외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을 중심으로 문예, 국외 유명인들의 이력, 재외 동포의 동정 등을 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즉 1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국제적인 사건은 높은 출현 빈도에 비해 이들 사건이 촉발한 즉자적인 변화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변화의 기점으로서 언급되었다.
반면 국내적 성격이 강한 3·1운동이나 한일병합과 같은 사안은 1차 세계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현 빈도가 적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식민지 조선사회 변화에 직결되는 각종 제도·법령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이들이 시대구분의 결절점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각종 법령, 언론, 출판, 교육 등과 같이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의 일상에 직결되는 사안들이 많았다. 특히 3·1운동 이후 사회주의가 유입되고 운동 전선이 분화됨에 따라 조선에서의 민족·사회 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띄었다. 때문에 민족·사회 운동에 대한 기사에서 3·1운동은 주요한 변곡점으로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들어서면 전차의 변화와 증가, 여성의 패션 변화, 자동차의 증가와 이용 등과 같은 사안에서도 3·1운동을 기점으로 당시를 설명하는 경우가 등장하였다. 3·1운동과 별다른 접점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영역에서도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사회 변화의 주요한 분기점으로서 '기미년 이후'와 같은 표현이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3·1운동은 운동사적 혹은 정치사적 의미를 넘어 한국의 근대를 살았던 이들의 일상의 변화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eople look back on the past to understand the present. At that time, the past is divided based on specific events or phenomena. In other words, people divide a series of times based on a specific event or time point in the past, thereby recognizing the present. By the way, if Koreans divided and recognize the past based on a specific events, these events tend to be located on the left side of terms such as 'before(이전)' and 'after(이후)'. So, if a particular event frequently appears to the left of words such as 'before' and 'after', it can be called an event that people valued at that time.
The paper aims to find out what events people who lived in Korea's modern era, which connected to the world but eventually went through colonization, considered important to understand the times. To this end, from the original articles text of 19 modern magazines which was provided on the website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to extract the events appearing on the left side of the phrase 'before' and 'after' and examine their frequency and examples of major event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international events such as the World-war 1, the Sino-Japanese War, the Manchurian Incident, and the Russian Revolution have high ranks at the events-list. At least these results show the character of the 'modern era' connected with the world along with the opening of the port. However, the articles in which these international events emerged as the starting point of change were mostly related to the international situation, the news of overseas, and literature, the history of celebrities abroad, and the situation about overseas Koreans. In other words, international events, including the First World War, were frequently mentioned as the starting point for change, but only as a starting point for change only in the part related to the immediate change triggered by these events.
On the other hand, events such as the March 1st Movement and the annexation of Korea, which have a strong domestic character, appeared relatively less frequently than in World War I. However, since these two events led to changes in various systems and statutes directly linked to changes in the society of the colonial Korea society, there were many cases in which they appeared as a node in the change of dailylife such as media, publishing and education. In particular, since the influx of socialism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and Korea's national and social movements showed a new aspect, the March 1st Movement appeared frequently as a major inflection point in the articles dealing with this. In addition, in the 1930s, the March 1st Movement was mentioned as the starting point of change even in the issues such as the increase of streetcars, changes in women's fashion, and the use of cars. Even in the realm of everyday life where there is no interface with the March 1st Movement, idiom such as 'after(before) Kimi-year(기미년 이후(이전))' were used for explaining the current situation. In this sense, we can say that beyond the national and social movements, the March 1st Movement was a event that left the biggest mark on the daily changes of those who lived in Korea's moder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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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15 개정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고대 대외 관계사 서술 분석

저자 : 임기숙 ( Lim Ki-sook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1-18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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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새롭게 서술된 4종 동아시아 교과서 속의 Ⅱ단원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대외 관계 서술 내용의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제정 당시부터 많은 비판이 있어왔는데 이와 관련하여 본고는 학습량 감축과 주제사 서술의 후퇴 문제를 실제교과서 서술 내용을 통하여 확인해 보았다. 또한 기존 동아시아사 교과서에 반영된 기존 학계의 다양한 '동아시아 세계론'을 살펴보았다.
요즘의 학계의 연구 동향은 니시지마(西嶋)가 처음에 창설했던 동아시아세계론 속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 한국, 일본, 베트남간의 책봉체제라는 수직적 질서가 아닌 복수의 세계 질서와 다양한 국제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된 동아시아사 고대 대외관계 서술은 이러한 변화상을 담고 있지 못한 채 오히려 한국, 일본 이외의 주변 여러 세력과 관련된 내용은 축소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에 동아시아사 교과서 서술과 관련된 제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방 민족에 대한 역사 서술의 복원이다. 이들과 중국 왕조와의 관계를 통해 조공·책봉만이 아닌 다양한 외교방법론을 살펴보고 대외 교류사의 다각적인 양상을 보자는 것이다. 둘째, 쌍방 간의 교섭사를 강조하며 관계사의 자율성을 강조한 나머지 당시의 사실까지 왜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인정 취지에 맞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교과서 집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적극 보장해 주어야 한다.


This thesis studied problems of second chapter about east asia world's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in newly descripted 2015 revision curriculum four class textbook. The 2015 revised curriculum has been criticized since its inception. In this regard, this study confirmed the reduction of learning volume and the retreat of subject history description through the actual textbook description. In addition, we examined the various “East Asian world theories” of the existing academic circles reflected in textbooks.
The current academic research trends assume multiple world orders and diverse international relations, not the vertical order of the installation system between Korea, Japan, and Vietnam, centered on China in East Asian world theory, which Nishijima originally founded. However, the revised description of East Asian history of ancient foreign relations does not contain these changes, but rather the contents related to various forces outside Korea and Japan are reduced.
The following suggestions are made regarding the description of East Asian history textbooks. First, the restoration of historical descriptions of the northern peoples. Through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dynasty, the two countries should look at various diplomatic methods, not just tribute and installation, and look at various aspects of foreign exchange history. Second, we should be careful with distorting the facts of the time by emphasizing the negotiation history between the two sides and stressing the autonomy of related companies. Lastly, we should actively guarantee that students can write textbooks with diverse perspectives that suit the purpose of the inspection and re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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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熙의 『林泉高致』는 北宋代를 대표하는 畵論書로서 산수화 이념과 창작론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저술은 산수화의 창작 취지를 피력하면서 그 당시 사회의 中隱 문화를 반영하였다. 곽희에 의하면 산수화는 관료로서의 사회적 삶을 영위하면서도 산수 속에서 은일하는 삶을 꿈꾸는 사대부의 상상 체험을 위한 명분을 견지한다. 본 연구는 곽희가 산수화의 창작 취지에 반영했던 '中隱'문화와 이러한 취지를 구현하기 위한 창작론으로서의 시각화 경향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산수화의 명분에 대해서 곽희가 君子를 위한 생생한 산수 체험 공간의 창조라고 한 것은 이전 시대 은자들의 산수화 창작관과 달라진 측면이다. 따라서 그의 주된 창작 과제는 산수화에 표현되어야 할 산수의 生意的 상상 경계를 시각화해야 하는 것으로 남겨졌다.
곽희는 화원화가로서 유가적 사회질서를 구현하고 그 학문적 방법론을 활용하였다. 그가 神宗때 화원화가가 되고, 그의 산수화가 사랑받게 되면서 송대의 화풍은 곽희의 그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인간의 정감을 산수에 표현하려했고, 수묵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자연스럽고 평담함의 심미경계를 추구했던 곽희의 화풍은 송대 예술적 취향을 형성했고 문인화가 탄생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송대에 산수화가 절정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회화에 상상적 畵境을 풍부히 도입하려 한 곽희의 섬세한 산수화 창작관의 역할이컸다. 따라서, 곽희의 산수화 창작론으로 본 시각화 경향은 결국 미적 관조를 확장시키는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조형적 장치들에 있었다.


GuoXi's Linquangaozhi is a representative book, describing the idea of landscape painting and the creation theory systematically and professionally in Northern Song Dynasty. This book reflected the culture of half-seclusion(中隱) at that time, while expressing the purpose of creating the landscape painting. According to GuoXi, landscape painting adhered to its' cause for the space of imaginative experiences for noblemen who dreamed of living in nature while still living social lives as bureaucrats. This study is designed to examine GuoXi's creation theory, reflected the half-seclusion culture in his purpose of landscape paintings and his visualizing trends to realize this intention.
On the cause of landscape painting, that, GuoXi regarded as the creation of the space for vivid nature experience for noblemen, was a different aspect from the previous theory for recluses. Therefore, his main creative task remained to visualize the imaginary boundaries of the animated nature in landscape paintings.
As a artist of the palace painter, GuoXi embodied the Confucian order and used the academic methodology. In Emperor Shenzong(神宗) period, he became a palace painter and his landscape paintings became loved, and than his painting style became the mainstream at that time. GuoXi's painting style-which was expressed human sentiments in the nature, mainly used black ink, and pursued the aesthetic boundary of natural and plainness-formed an artistic taste in Song Dynasty and served as a direct occasion for the birth of literary painting. Above all, to achieve the peak of the landscape painting in Song Dynasty was largely due to GuoXi's role in his delicate theory of the landscape painting. Therefore, the trends of visualization of ideas seen by GuoXi's theory of landscape painting were in formative devices that actively induce imagination to expand aesthetic contemp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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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북양정부시기 군벌관료자본의 금융업에 대한 투자

저자 : 林地煥 ( Yim Chi-hwan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1-24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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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정부시기 군벌관료들은 중국의금융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전개하였다. 그들의 투자는 경진지역에 주로 집중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경진지역은 중국의 정치의 중심지로서 경진지역의 상업은행에 투자를 할 경우 정부와의 유착 속에 은행의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양정부시기 군벌관료들이 금융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던 중국의 상공업발전에 필요한 기업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한 새로운 금융인프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금융산업 발전에 유리한 국제여건의 조성 속에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하려는 의도에서 금융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각 계파의 군벌들은 그들의 정치자금의 조달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사금고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업은행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군벌관료의 금융업에 대한 투자는 중국경제에 영향을 미쳤는데 첫 번째로 경진지역의 상공업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의 금융업에 대한 투자활동은 민족공업의 발달을 촉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이 중국의 금융시장을 장악해 들어오는 것을 어느정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0-30년대 중국의 상업은행 다수가 군벌관료의 직접 투자로 설립되었던 까닭에 금융경영에 경험이 없었던 그들의 친인척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등 상업은행의 경영이 그들의 영향력 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Chinese government officials and warlords began to invest on the commercial industry and banking industry during the Baiyang government times, The development of Chinese banking industry was deeply linked to the investment of warlords and government official. Their investment for the establishment of commercial banks had a characteristics to be focused on Hobei province. Hobei province was the center of Chinese politics during Beiyang government times. In the early 20th century, Chinese commercial banks would rather seek to continuously grow under the protection of government than the expansion of receiving and loan business on credit.
The main causes for Chinese government official and warlords to make a great deal of investment on the banking industr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of all, Chinese government officials and warlords needed to constitute the new banking infrta-structure to provide effectively industrial funds to the large scaled enterprises established by their investment. Also, they sought to make lots of profits in the new banking environment for the developnent of Chinese banking industry with the rapid increase of total currency. Besides, each warlord faction wanted to possess their own commercial banks that could provide political funds for their power strife.
The large scaled investment on the development of Chinese banking industry left the following impacts in the Chinese modern economy. First, the investing activities of Chinese banking industry contributed to prompting the industrial development in Huipei provinge. Second, Their investing actives not only led to the rapid development of Chinese national industry, but prevented, to some degree, foreign banks and foreign funds from penetrating into Chinee financial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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