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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학연구 update

  •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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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738-8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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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율곡사상연구-->율곡학연구(30호~)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4)~38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398
율곡학연구
38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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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율곡의 주재자론(主宰者論)-「별홍표숙호서(別洪表叔浩序)」를 중심으로-

저자 : 곽신환 ( Shin Hwan Kwak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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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주재자, 화복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유학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제한 것도 아니다. 종래의 상제나 조화옹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천명, 태극, 음양론, 이기론으로 접근해왔다. 율곡 사상을 연구한 근대적 논문이 수백편이 넘지만 그 안에서 주재자나 화복을 다룬 것은 없다. 그의 학술적 주요 쟁점 가운데 들어있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율곡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율곡의 이기론, 심성론에 내재되어 있고 뚜렷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주재의 문제를 다룬 것이 율곡의 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자료는 바로 「표숙 홍호를 작별하는 서문[別洪表叔浩序]」이다. 그의 나이 33-34세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에는 주재자와 화복에 관한 그의 정리된 소견이 들어있다. 그에 따르면, 주재의 궁극자는 조화이다. 천지와 만물은 모두 조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화와 만물의 관계는 대장장이가 다루는 쇠와 그가 만들어내는 각종 기구에 비유된다. 나아가 인간의 행장(行藏) 수요(壽夭) 훼예(毁譽) 등 화복(禍福)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하늘이 정한 때가 있고, 운에 달려 있으며, 조화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일이 아니라[不怨不尤] 한다. 그는 특히 무고나 뭇사람들의 구설도 조화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중용』에서 말한 소행(素行)의 태도를 취하려고 했다. 그는 천지의 조화와 마음의 발동이 모두 기발이승(氣發理乘)의 동일한 틀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도(祈禱), 양생(養生) 의약(醫藥) 등이 조화에 개입하는 방법이지만 진정한 방법은 교화(敎化)라고 한다. 교화가 가능하려면 성인의 덕(德)과 군사(君師)의 지위가 있어야 하며, 세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요순의 교화는 일시적이고 공자는 만세라고 한다. 공자는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교화자이고, 동시에 그가 기획하고 권장하는 성인의 모델이었다. 결국 그에게 있어 주재와 화복은 덕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Few one is free from the problems of the chief ruler of myriad things and the master of the fortune-misfortune. Confucian scholars have not studied these with special concern nor excluded them. They approached those with mandate of heaven, Taiji-ultimate reality, yin-yang, and li-chi theory, not traditional concept of Shangti, Creator.
A lot of scholars studied Yulgok YI-I's thoughts in terms of modern science, and there are more than three hundreds of articles about him in Korea, but none of them studied his idea of the chief owner and the master of fortune - misfortune. It was not his main topics. But he had some ideas about those concept characteristically of his own.
Those are studied and uttered in the process of his li-chi, and mind-human nature-feeling theories. His view of the chief owner were founded at several articles, but most sophisticated one that we could read is the prelude for farewell of his aunt's husband.
According to Yi-I, chief owner of myriad things is called Zhao-wha which could be translated Nature. Heaven and earth, myriad things are created from that. Therefore all things could not be free from his order. He explained the relation of between the chief owner and myriads things with the simile of the black smith. Black smith could make various tool and utensils with his own will. And he believed that those of advance-retreat, long and short life, praise -rebuke, fortune-misfortune in human life are all ever established and swayed by Chief ruler. Therefore we can not resent or blame anyone. Especially he assumed that the gossips or a false accusation over him are upon ruler's will.
About the fortune-misfortune, he took the attitude which described in the chapter 14th of the book of Chungyung. That is a kind of attitude which one could choose the most valuable best way that he could take at that condition. He was interested in the his own mind's preside over body's organon as well as the 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d had seek the methods of strengthen the role of mind with the cultivating the kyung[敬] in order to make the mind the completely equipped and perfect stable state. He thought the impact or the function of mind with perfect entity and large function is a kind of creator's behavior. and those are the same paradigm between the action of heaven-earth and man's mind.
There are several methods which could intervene the order of heaven-earth, so called prayer, recuperation, medicine, etc, he recognized that formal edification of moral virtue is the best one. If could be exercise, there must be the moral virtues of sage, and the position of king and teacher. The edification of the emperor Yao and Shun was the temporal, but Confucius's was the eternal one, over ten thousands generation. To him, Confucius is the best teacher who can edify everything, and was the best model of sage whom he dreamed in his mind. In conclusion, the problems of chief owner of myriad thing and the master of fortune-misfortune could be solved with the Virtue called ed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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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율곡(栗谷)의 애도시(哀悼詩)에 나타난 추모의 형상화(形象化) 방식(方式)

저자 : 고명신 ( Ko Myoung-shin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6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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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율곡의 애도시의 효율적 고찰을 위해 '남다른 가족애와 생애적 자취의 회고', '인간적 유대감과 생애적 업적의 회고'로 주제 영역을 나누어 그의 애도시에 형상화된 특징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남다른 가족애와 생애적 자취의 회고'를 살펴보면, 율곡은 누구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으로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의 제약으로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삶의 회한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애도시의 주된 모티브로 작용되며, 망자와 함께한 삶의 회고를 바탕으로 서사적 진술이 곡진하게 전개되는 특징적 면모를 띠게 한다.
다음으로 살펴본 '인간적 유대감과 생애적 업적의 회고'에는 율곡이 학문 수양의 시기에서 출사기 이후까지 교유한 당대의 저명한 석학 또는 대소 정객들과의 인간적인 유대감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애도시의 경우, 망자의 정치(사회적 위치에 따른 생애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전고를 활용하는 등의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전개되는 특징적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율곡의 애도시의 특징적 면모는 인류보편적인 인간애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당대는 물론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이점이 그의 애도시가 오늘날에도 큰 위상을 지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concretely examine the characteristic aspects expressed in the monody of Yulgok, by dividing its subject area into "retrospection of extraordinary family love and lifecourse traces" and "retrospection of humane bond and lifecourse achievements" for efficient consideration of Yulgok Ae city.
First, a close look at Yulgok's "retrospection of extraordinary family love and lifecourse traces" reveals his remorse for the fact that he had trouble meeting the needs of his family because of various realistic constraint, even though he wanted to live a faithful life as a normal head of household in a family as a person who had a love for family like no other. This remorse of his life serves as a main motif of the monody for his family, and shows a characteristic aspect in which the narrative statement was given in a thorough manner based on the lifecourse trace of the dead.
Next look at the Yulgok's “recollection of human bond and lifecourse achievement” shows the expression of humane bond with great scholars and various politicians of his age, who had been in contact with Yulgok since the time of study adoption and after he entered government service for the first time. In the case of monody for those who had political and social relations with Yulgok, it shows a characteristic aspect developed by the use of rhetorical techniques such as using the previous history focusing on the lifecourse achievements according to the social position of the dead.
In this way, Yulgok wanted to live a faithful life internally as a normal head of household in a family and, externally, live a respectable life that emphasized humane bonds that were not ashamed of his duty as a Confucian scholar. This life of Yulgok raises the alarm about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family in the modern society where the family disorganizationphenomenon is widespread. It also reminds modern people who live in the era of materialism, where human beings are commercialized, of the importance of humane bond. Here we can find an important reason why his monody can receive attentio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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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호문답(東湖問答)』을 통해 본 안민(安民)의 양생론(養生論) 연구

저자 : 김희 ( Hee Kim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7-9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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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율곡의 초기 정치사상을 대변하는 『東湖問答』에 기능하고 있는 도가의 사유방식에 대한 영향관계를 安民의 경세론에 분석을 통해 고찰하고, 그 사회적 의미를 養生論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율곡의 정치철학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사상을 비롯한 불가와 諸子百家 등의 여러 사상이 함께 한다. 그리고 이것은 율곡이 지향하는 思想融化의 소통적 학문관을 대변하는 것인 동시에 安民의 경세론에 관계하는 도가사상의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 점에서 율곡의 『醇言』은 도가사상에 대한 율곡의 남다른 식견을 대변하는 동시에 율곡의 정치사상에 관계하고 있는 도가사상의 사유방식에 대한 영향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 점에서 율곡의 『東湖問答』에서 부각되는 民의 온전한 삶을 위한 安民의 경세론을 도가의 사유방식을 대변하는 養生論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 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율곡의 초기 저작물인 『東湖問答』에서 부각되는 安民의 경세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도가의 養生論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것은 율곡의 정치사상을 사상융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東湖問答』을 통해 본 安民의 養生論 연구는 율곡이 지향한 理氣之妙의 세계관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가진다. 더욱이 『東湖問答』에서 강조되는 安民의 경세론에 토대한 民 스스로에 의한 온전한 삶에 대한 지향성은 정주학을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는 조선 유학사상의 발전과정에 대한 연원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Confucianism coexists with several ideas equal to Taoism, Buddhism, and hundred schools of thought in a process of forming Yulgok's political philosophy. The process represents a communicational view to literature of which Yulgok aspires towards ideological convergence(思想融化), and simultaneously becomes a significant foundation able to understand Taoistic influence relating with a Gyeongse theory (governance theory) of Anmin. In this perspective, Yulgok's “Sooneon” not only reflects his distinctive vision but also becomes a pivotal key to examine in connection with a Taoistic Yangsaeng theory a meaning of the Anmin's Gyeongse theory for the people's well-balanced lives prominent in “Donghomundap”.
Therefore, this paper tries to go through in a view of the Taoistic Yangsaeng theory an interpretive process of social meanings that Anmin's Gyeongse theory emphasized in the Yulgok's early literature, “Donghomundap”. And to the extent that this attempt pertains to trying to analyze Yulgok's political ideas in a view of ideological convergence, it will prove that the study of Anmin's Yangsaeng theory through“Donghomundap”is parallel to Igijimyo(理氣之妙) that he aims at. Furthermore, directivity towards people's well-balanced lives by themselves on their own based on Anmin's Gyeongse theory emphasized in“Donghomundap”gives us an opportunity to trace an origin of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Joseon's Confucian ideas away from a central thought of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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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서(華西) 심설(心說)에 대한 성재(省齋)의 조보(調補)와 그 의의

저자 : 이상익 ( Lee Sang Ik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3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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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省齋)는 '이 세상을 기(氣)의 주재에 맡길 수 없다'는 화서(華西)의 문제의식을 적극 수용했다. 그런데 화서의 '이리단심(以理斷心)'에 대해서는 명목에도 어긋나고, 경전이나 선유(先儒)의 학설과도 어긋나며, 여러 병폐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판하면서 '조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성재는 화서의 이리단심(以理斷心)이 성리학의 일반론과 매우 동떨어진 것임을 깨닫고, 성리학의 일반론에 따라 마음의 당체(當體)인 '신명(神明)'을 '허령지각(虛靈知覺)' 또는 '기(氣)의 정상(精爽)'으로 규정함으로써 '평실(平實)하여 폐단이 없는 체계'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재설이 오히려 이론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중암(重菴)이 지적했듯이, 성재는 주자가 똑같은 주석을 붙인 '마음[神明]과 명덕[虛靈不昧]'을 왜 각각 '氣와 理'로 다르게 규정하는지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논자가 보기에, <형기신리설(形氣神理說)>로 대변되는 화서의 심설은 오히려 이론적 정합성을 갖춘 편이다. 문제는 그것이 기존 성리학의 일반론과 크게 어긋난다는 점이요, 또 사실의 세계와 동떨어진 관념적 주장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성재설은 화서설의 문제점을 조보하고자 한 결과, 기존 성리학의 일반론과 화서설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절충함으로써 이론적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The basic consciousness of Hwaseo's Neo-confucianism is that he can not leave this world to the presidency of Ki, and thus he is defining mind as Li (以理斷心). Sungjae (省齋) actively accepted this problem consciousness. However, he criticized Hwaseo's "defining mind as Li" for the reason that it is against the doctrines of the scriptures and Confucian scholars, and can cause many illnesses. In this context, Sungjae has raised the necessity of supplementary explanations on Hwaseo's theory of mind.
In fact, Hwaseo's theory is based on the idea that "Li is good and Ki is bad" (理善氣惡論), and completely disregards Ki. He pursued "a world made up of Li only" by promoting Li from self-centeredness, into a self-existent being. This is very far from the general theory of Neo-confucianism. In traditional Confucianism, there is no way of thinking that "Li is good and Ki is bad", but the general theory of neo-confucianism is that emphasizes the complementary combination of Li and Ki.
However, as a result of the attempt to complement the problems of Hwaseo's theory, Sungjae's theory seems to have failed to secure theoretical consistency by making a compromise between the general theory of the Neo-confucianism and Hwaseo's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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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인물성동이논쟁의 핵심적 논점과 그 근거를 고찰하여 그 이론적 정합성을 검토하고, 21세기에도 인간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적 성찰을 내포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려는 데 있다.
먼저 이 논쟁의 이론적 근거는 『중용장구』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과 『맹자집주』의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한 주자의 해석이며, 논리적 근거가 주자의 리일분수(理一分殊)와 율곡(栗谷, 1536~1584)의 리통기국(理通氣局)임을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이 논쟁이 율곡의 '리통기국(理通氣局)'을 외암(巍巖, 1677~1727)은 리통(理通)을 중심으로 성(性)을 이해하고, 남당(南塘, 1682~1751)은 기국(氣局)을 중심으로 성을 이해함으로써 발생하였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외암은 리일(理一)·리동(理同)·리통(理通)·일원(一原)을 중심으로 성을 이해하고 인성과 물성이 본연의 공통적인 본성을 가진다고 주장하였고, 남당은 분수(分殊)·기이(氣異)·기국(氣局)을 중심으로 성을 이해하여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녹문은 외암과 남당이 주자와 율곡의 이론을 잘못 이해하고 성의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비판한 요점은 리기동실(理氣同實)·리통기통(理通氣通), '일원이 곧 오상' '기질지성이 곧 본연지성' 인물성상이(人物性相異)·미발심체본선(未發心體本善) 등으로 요약된다.
필자는 녹문의 이론에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물성동이론이 철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정치·경제 방면으로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This study aims to review theoretical compatibility by examining core points and grounds of the debate on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human and non-human nature, and check out to see if it involves philosophical instropection that can resolve problems in human society in the 21st century.
First of all, the theoretical grounds of the controversy are interpretation on “What Heaven Commands Is Called Nature” in 『The Doctrine of the Means Chapters Variorum』 by Zhu Xi(朱熹, 1130~1200) and 'Sheng zhi wei xing(生之謂性)' in 『Mencius Variorum(孟子集註)』 by Zhu Xi. The study explained that the logical basis was 'Li(理) is one but its manifestations are many(理一分殊)' by Zhu Xi and 'all penetrating Li and defining Qi(理通氣局)' by Yulgok(栗谷, 1536~1584)
With regard to Yulgok's'all penetrating Li and defining Qi', the controversy occurred because Oeam(巍巖, 1677~1727) understood'the Human nature(性)'centering around'all penetrating Li(理通)', and Namdang(南塘, 1682~1751) comprehended'defining Qi(氣局)'centering around the human nature. Oeam understood the human nature centering around Li is one(理一), all penetrating Li, 'Li providing common ground(理同)'and'the one origin(一原)'and insisted that personality and material properties shared common human nature. Namdang understood the human nature centering on'Li's manifestations are many(分殊)', 'Qi differentiates(氣異)'and'defining Qi(氣局)' and insisted that personality was different from material properties.
On the other hand, Nokmun(鹿門, 1711~1788) criticized Oeam and Namdang for misunderstanding theories pursued by Zhu Xi and Yulgok and comprehending the concept of the human nature. His criticism can be summarized as 'Li and Qi working equally in real(理氣同實)','all penetrating Li and Qi(理通氣通)','the one origin(一原) is 'the five constant Virtues(五常)', 'the Original Nature(本然之性) is Physical nature(氣質之性)',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Human and Non-Human Nature and 'the unaroused state of the mind as pure goodness(未發心體本善)'.
The researcher found Nokmun logically compatible. It was confirmed that the theory of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Human and Non-Human Nature can be expanded into society, politics and economy going beyond the are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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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의 정치활동(政治活動)에 대한 고찰(考察) - 제정파(諸政派)에 대한 견해를 겸하여

저자 : 최영성 ( Choi Youngsong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7-19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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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낙론계(洛論系) 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호남의 박물학자(博物學者)로 이름이 높다. 출신 배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높은 벼슬을 지낸 것도 아니지만, 그는 중앙의 학계와 정계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것을 자신의 학문과 정치활동에 반영하였다. 그는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김창협(金昌協)-이재(李縡)-김원행(金元行)으로 이어지는 노론(老論) 낙론계의 적통을 이었다는 학파적 자존의식(自尊意識)이 강하였다. 황윤석의 정치 활동은 사실상 학술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학문과 사상의 근저에는 정치관이 깔려 있다. 학문과 정치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사고는 전 생애에 걸쳐 변함이 없었다. 학문이 정치에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도 하고, 정치상의 노선이 학술 활동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그 주요한 특징으로는 ① 노론-낙론계의 정치노선을 추종했다는 점, ② 낙학(洛學)의 이론으로 조선 후기의 정치·외교 등 국정 전반을 풀어나가려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컨대, 황윤석은 낙론이 추구하는 학술·이념상의 지향점과 정치노선을 충실히 지키려 했던 학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낙론계 학자들의 '기(器)'를 중시하는 경향을 부각한 것은, 평소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과학과 기술의 측면과 연결된다.


Yi Jae (頤齋) Hwang Yoon-seok (黃胤錫: 1729-1791), a scholar of the school of the theory of Nak (洛論系) in the late Joseon period, is famous as an erudite scholar (博物學者) in Honam province. Although his background of origin was not very excellent and he did not reach a high rank as a public official, he accurately captured the central academic and political tendencies and reflected them in his academic and political activities.
He had a strong sense of academic self-esteem (自尊意識) considering that he inherited the legitimacy of Noron's (老論) school of the theory of Nak, which descended from Lee Yi (李珥) to Song Si-yeol (宋時烈), Kim Chang-hyeop (金昌協), Lee Jae (李縡) and Kim Won-haeng (金元行). Hwang Yoon-seok's political activities were in effect an extension of his academic activities. At the root of his scholarship and ideas lays his political opinion.
The idea that scholarship and politics are not separate has not changed throughout his life. Sometimes his scholarship has provided theoretical support for politics and sometimes political lines have been reflected in academic activities. The main characteristics are, firstly, that he pursued the political line of the school of the theory of Nak of Noron, and secondly, that he tried to resolve all kinds of state affairs, including the politics and the diplomacy of the late Joseon period with the theory of the doctrine of Nak. In short, Hwang Yoon-seok was a scholar who tried to faithfully defend the academic and ideological orientation and political line pursued by the theory of Nak. The fact that he emphasized the tendency of the scholars of the theory of Nak to consider "Qi (器)" as important is linked to the great interest he has shown in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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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여사서』에 나타난 중국 전통시대의 여성담론과 그 사회·정치적 의미

저자 : 박동인 ( Dong-in Park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7-246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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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여사서』를 통해 중국 전통시대의 여성관과 그 사회·정치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것도 특히 여훈서 최초의 여성 작자인 반소의 『여계』가 이후 여훈서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반소는 유향이 그의 『열녀전』 속에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서한 금문경학자들의 이상적인 여성관을 거의 그대로 『여계』에 수용함과 동시에 그것을 강화했다. 그 여성관은 전국말에서부터 진·한대에 걸쳐 봉건 전제군주들이 그들의 미약한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요청한 도그마들이었다. 황제-향장-가장이라는 일원화된 통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구성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반소가 그것을 『여계』에 받아들이면서 그 논리가 그 이후에 저작된 『여논어』와 『내훈』 및 『여범첩록』에도 그대로 관철됨을 확인했다. 그 각각의 여훈서를 읽는 대상이나 저작된 시대상황과 그 필요에 따라 특정부분이 강화되거나 첨가되기는 하지만 그 기본 틀에서는 일치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다음 네 가지 봉건 여성의 공통된 중심사상에서 그러했다. 첫째는 '봉건 여성의 정체성' 부분인데, 반소가 기존의 건(乾)-양(陽)-남(男)-강(剛), 곤(坤)-음(陰)-녀(女)-유(柔)의 관점을 그녀의  여계 에 받아들임으로써 그 이후의 세 여훈서에서도 결국 여성의 존재를 남성 아래에 두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하늘같이 섬긴다'는 남존여비사상과 남편은 바깥일, 여자는 가정 내의 일을 한다는 관념 및 여자는 제 마음대로 일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둘째는 '봉건 여성의 미덕과 태도' 부분인데, 바로 여성의 정체성이 이렇게 규정됨으로써 여성이 지녀야 할 미덕과 태도를 『여사서』 전체가 그것에 맞게 구성하였음을 발견했다. 여성의 상징인 '음'의 특성에 따라 겸양과 공경과 순종 등의 미덕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앞세우는 등의 태도를 견지하도록 된 것이다.
셋째는 '봉건 여성의 노동과 역할' 부분인데, 여성의 정체성이 여성의 일을 가정사로 한정하면서 네 여훈서 모두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토대로 음식을 만들고 옷을 짓고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돕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독자가 누구냐와 그것이 지어진 시대상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다소 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넷째는 '봉건 여성의 윤리' 부분인데, 반소가 유향 『열녀전』의 이상적 여성윤리, 즉 '정조'와 '일부종사'와 '삼종지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이 이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발견했다. 물론 각 여훈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정절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와 황제의 정절 선양 및 남성의 취향에 의해 그 무늬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봉건 여성의 정체성이나 미덕과 태도, 그리고 노동과 역할 및 여성윤리도 여성 자신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기보다 남성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women's views of traditional Chinese period and their social and political meanings through nǚsìshu(女四書). In particular, this paper is to explore focusing on the influence of Ban Zhao's nǚjè, the first female writer of nǚxùnshu(女訓書), on subsequent nǚxùnshu. In fact, Ban Zhao accommodated and strengthened the ideal female view of XuHà's the New-Text Scholarship's scholars, which Liú xiàng deliberately planted in his LièNǚChuán(列女傳), almost literally in nǚjiè. It was the dogmas that the feudal Lords from the end of the age of civil wars to Qin-Hān dynasty had demanded to strengthen their feeble power. It was an ideologue that was constructed to establish a unified system of government, called the Emperor, Village foreman(鄕長) and Patriarch(家父長). In this study, however, I confirmed that Ban Zhao accepted it in her nǚjiè, and that the logic also applies to nǚlùnyu, nèixùn and nǚfànjielù, which were later written. Although certain parts were enhanced or added according to the object of reading each nǚxùnu and the circumstances of the period in which it was written and its needs, they were consistent in their basic framework.
Such figures were in the common central thought of the following four feudal women. The first is the identity of a feudal woman. By Ban Zhao was accepting the point of view of a China traditional qián(乾)-yáng(陽)-nán(男)-gāng(剛) and kun(坤)-yīn(陰)-nǚ(女)-róu(柔) to her nǚjiè, I found that the three subsequent nǚxùnshu eventually placed women's presence under men. For this reason, the notion that "a wife serves her husband like heaven", that "husband works outside, and that women work in the home", and that "women should not do things as they please", has become common. The second is the virtue and attitude of women in a feudal woman. As the identity of women was thus defined, I found that the virtues and attitudes that women should possess were shaped accordingly by the whole of nǚsìshu. According to the "yun," a symbol of women, women are forced to lower themselves, and stand others ahead of themselves by virtue of such as modesty, respect and obedience.
The third is the work and role of women in a feudal woman. As women's identity limited women's work to domestic affairs, I found that all four nǚxùnshu had become the basic work of women to make food, dress and sacrifice to their ancestors based on diligence and frugality. However, the role of women has changed somewhat depending on who the reader is and what the times the book was written in. And the fourth is the ethics of women in a feudal woman. I found that it had a profound effect on later times by Ban Zhao's acceptance of Liú xiàng's the ideal female ethics of LièNǚChuán's, namely "chastity" and "serving but a single husband(一夫從事)" and "SānCóngZhīDào(三從之道)". Of course, although the emphasis on each of nǚxùnshu changed depending on the times, it was the same in that they emphasized chastity. But it was that the pattern was determined by Neo-Confucianism's ideologues, the emperor's policy of strengthening chastity and the taste of men. From this aspect, it may be said that the identity, virtue and attitude, labor and role, and female ethics of feudal women were controlled by men rather than by women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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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소종래(所從來)에 대한 고봉(高峯)·퇴계(退溪)·율곡(栗谷)의 인식 비교

저자 : 조첨첨 ( Zhao Tian Tian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7-27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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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과 칠정을 구분하는 기준은 '所從來'와 '所主[所指]' 두 가지이다. 高峯은 사단과 칠정은 '所指'는 다르지만 '所從來'는 동일한 '性' 하나이기 때문에 '실질은 같고 이름만 다르다[同實異名]'라고 주장하였다. 退溪는 사단과 칠정은 '所指' 뿐만이 아니라 '所從來'가 각각 리와 기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리와 기의 차이에 상응하는 이질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栗谷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있는 사단과 칠정은 물론 대립적인 인심과 도심도 소종래는 동일한 '理' 하나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하나의 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즉 高峯과 栗谷은 사단/칠정의 소종래에 대하여 '理一源論的 認識'을 갖고 있었던 반면에 退溪는 '理氣二源論的 認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과 칠정의 '所就而言[所指]'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봉·율곡와 退溪의 의견이 일치하였으나 '소종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첨예하게 달랐던 것이다. 고봉·율곡와 退溪의 주장이 충돌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퇴계·고봉·율곡이 사단칠정논변의 핵심적 과제는 '사단과 칠정의 소종래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한 논문은 많지 않다. 더구나 율곡과 우계의 논변에 있어서 이 문제가 어떻게 논의 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고찰하고 퇴계, 고봉의 주장과 비교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본 논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다.


The distinction between the Four-Seven Debate is based on 'sojinglae (origin,source)' and 'soju (the main referred to). Toegye thinks the two are two kinds of emotion, because their 'sojinglae' are li and ki. Gobong thinks the two are one kind of emotion, because their 'sojinglae' are li. They all agreed on 'sochuiion(different point of view about same thing)' of the Four and the Seven. However, they had different opinions about 'sojinglae', which is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their different theories. Although the questions of 'sojinglae' is the main issues of the four and seven, it has not gotten attention and systematic research so far. This issue in Yulgok and Ugye's Four-Seven Debate is rarely discussed, so this paper focuses on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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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 - 영화 <개벽>을 중심으로

저자 : 이종성 ( Jongsung Lee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5-31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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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권택 감독의 <개벽>(1991)을 중심으로 동학의 제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1827-1898)의 동학사상의 내용과 철학적 의의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동학에 대한 관심은 해월 최시형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운 최제우(1824-1864)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개벽>은 해월의 사상과 실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나름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글은 먼저 <개벽>의 시나리오에 대한 일부 비판적 의견이 있음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변명을 시도해보고, 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에 나타난 용담연원과 그 철학적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종합적으로 해월의 동학사상이 어떠한 철학적 의의를 갖고 있는지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해월의 사상은 수운 최제우의 용담연원을 충실히 계승하여 이를 확장 발전시킨 것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며 또한 주체라고 하는 동학의 이념을 충실히 대변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월은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고 기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이념 안에는 일체의 존재사물을 생명 그 자체로 인식하고 상호 소통시키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가 배태되어 있다. 해월의 사상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분법적 사유를 부정한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해월이 꿈꾸었던 것은 '다시개벽'의 세상을 여는 것이었다. '다시개벽'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의 세상을 여는 것이다. 죽임을 살림으로, 부조화와 분열을 조화와 소통으로 바꾸는 것이 '다시개벽'이다. 이와 같은 해월의 철학적 이념은 통일한국의 이념제공에도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가 인정된다.


This writing was designed to examine the content and philosophical meaning of Donghak thought of the second leader, Hyewol Choil Si Hyung, focusing on the movie Fly High Run Far―Kae Byok (1991) directed by Lim Kwon Taek. The concern of Donghak is relatively concentrated on Suun Choi Je Woo rather than Hyewol Choil Si Hyung.
In terms with this point, Fly High Run Far―Kae Byok plays its role in triggering the public's concern with Hyewol's thought and practice. First of all, this writing takes account of some critical opinions about the scenario of Fly High Run Far―Kae Byok, tries to make an excuse for this, examines Yongdam Yeonwon and the philosophical content, and look into what philosophical meaning Hyewol's Donghak thought has.
As a result, it is found out that Hyewol's thought takes up that of Suun Choi Je Woo faithfully, expands and develops this, and speaks for the idea of Donghak that man is the heaven and the owner faithfully. Hyewol insists that we take care of and raise man like the heaven.
In these ideas, there is a philosophical thinking to know all the beings as their lives themselves and communicate one another. Hyewol's thought denies the dichotomous thought that aggravates conflict and division. Throughout this thought, what Hyewol dreamed of wat to open the Re-Creation of the World. The Re-Creation of the World is to open a life world of a new dimension different from the past. Changing dying into living, mismatch and division into match and communication is the Re-Creation of the World. This philosophical idea of Hyewol is recognized to have a current meaning in playing a part in offering an idea for a unifie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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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유가는 몸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저자 : 서영이 ( Seo Young Yi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간행물 : 율곡학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3-33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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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유가는 몸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유가가 추구하는 사회적·정치적 합리성이 몸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유가 이론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글은 몸의 구성주의적 차원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몸의 물질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그것이 사회적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현상이라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1. 유가는 몸의 '구별지음'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체계와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①'생물학적 관계'를 근거로 '부모/자식'을 ②'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남편/아내'를 ③'사회적 지위'를 근거로 '임금/신하'를 가른다. 부모/자식, 남편/아내, 임금/신하라는 사회적 직분은 마땅히 실천해야 할 행위의 내용을 결정한다. 유가는 각자의 직분에 충실한 행위는 국가를 성공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하는 직접적 계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유는 유가가 추구하는 사회적·정치적 합리성 실현의 근거가 된다.
2. 부모·남편·임금의 지위는 자식·아내·신하에 대해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며, 특히 한대 이후 그들 간의 관계는 수직적 구조화가 두드러졌다. 유가의 범주체계는 몸 밖에 존재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며, 그러한 구분들은 자연스럽게 의식화되어 몸의 의미를 결정하고, 몸을 새롭게 형성한다. 유가의 수직적 가르기가 결정적으로 위험한 까닭은 몸의 물리적인 '다름'을 귀함과 천함을 타고나는 아예 '다른 인간'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가적 범주화는 생물적 유사성을 은폐하고 '다름'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하면서 상/하, 내/외, 우월/열등과 같은 '차별'적 구조의 합리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한 범주화는 자연스럽게 개별자에 주입되어,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주며, 무엇을 선택하고 따라야 하는지, 무엇을 피하고 무시할 것인지에 대한 신념을 심어준다. 내면화된 범주에 따라 실천을 거듭한 개인은 생물적 본질과는 질적으로 다른 몸을 갖게 된다.
3. 결국 유가 사회에서 강조되는 수직관계 중심의 이분법, '부모/자식' '남편/아내' '임금/신하'라는 이항대립적 구조는 '다름'을 '차별'로 바꾼 사회적 구조화의 산물이며, 이것이 몸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연구는 우리의 몸짓과 행동들이 단순히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의도와 맥락이 강하게 개입된 것임을 근원적으로 성찰한 것이다. 사회적 구조와 몸의 상관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우리는 전통적인 몸 담론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vide some answers to the question, "How did Confucianism change the body?" Specifically, the study set out to shed light on the true nature of Confucian theories by analyzing the ways that the body was changed by social and political rationality sought after by Confucianism. Although the study put an active emphasis on the constructivist dimension of the body, it took the materiality of the body into serious consideration and was based on a perspective that it was one of material phenomena that made up the social foundation.
1. Confucianism tried to establish social and political systems and orders through the "Gubyeoljieum" of the body. It offered dichotomy ① between "parents/children" based on "biological relations," ② between "husbands and wives" based on "biological differences," and ③ between "kings and subjects" based on "social status." Such social positions as parents/children, husbands/wives, and kings/subjects would determine the content of one's duties that he or she should perform. Confucianism believed that one's acts loyal to his or her duties provided direct opportunities for the successful organization and management of a state. This thinking became a ground for the social and political rationality sought after by Confucianism.
2. The positions of parents, husbands, and kings themselves would have authority over their children, wives, and subjects, respectively, and the relations between them would be structured vertically. The categorization system of Confucianism was based on the dominant ideology found outside the body, and such distinctions would be part of one's consciousness naturally, thus determining the meanings of the body and creating the body anew. This Confucian distinction is, however, dangerous because it creates a chance to understand physical "differences" in the body as "different human beings" whose high and low nature is determined at birth. Confucian categorization covers up biological similarities and intentionally exaggerates or distorts "differences," creating rationality in a "discriminating" structure such as upper/lower, inside/outside, and superior/inferior. Such categorization is naturally instilled in individual people, giving them a sense of what is right and wrong and offering faith in what to choose and follow and what to avoid and ignore. As individuals repeat practice according to their internalized categories, they will have a body whose quality is different from its biological nature.
3. After all, the dichotomy around vertical relations emphasized by the Confucian society and the binary opposition structur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husbands and wives," and "kings and subjects" were the products of social structurization that altered "difference" into "discrimination and offered important opportunities to change the body. The present study reflected on the idea fundamentally that people's gestures and acts were not their own simply, but outcomes of social and political intentions involved to achieve certain goals. An examination into correlations between social structures and the body will help to bring a new viewpoint to the traditional discourse about the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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