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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연구 update

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975-521x
  • :
  • : 성신한문학(~2003)→한문고전연구(2004~)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3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81
한문고전연구
39권0호(2019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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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서거정의 공주십경 한시 내용을 연구 범위로 하여 고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공주지역의 인문학적 융복합문화를 발견하여 제시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한 지방의 명승, 곧 아름다운 경치를 묶어서 '十景'이라 부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단번에 승경으로 '십경'이라 하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이는 오랜 세월 문화적 평가가 누적되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거정의 공주 10경을 검토해 본 결과 이것이 지역민들의 공감대를 토대로 한 객관성보다는 작자의 개인적 관점과 주관에 의한 10경을 제영한 점이 그 특징으로 드러났다 하겠다. 이에 서거정의 10경시를 제외하고는 공주의 8경 내지는 10경을 읊은 시를 쉽게 발견할 수 없기에 공주 지역민이 아닌 다수의 대중들이 생각하는 공주의 이미지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하겠다. 그러기에 그 안에서 오늘날 공주지역의 백제 문화권 위상을 찾아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융복합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더욱 긴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 10경 가운데는 이제 그 장소를 알지 못하거나 그 대상이 이미 사라져 없어져 버린 곳도 있다. 비교적 구체적인 10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월명대와 정지사, 계룡산, 금강나루이고 삼강, 오현의 승경은 넓은 범위를 묶어서 말하였다. 이렇게 보면, 왜 공주 10경을 오늘날 공주지역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려운가 하는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서거정이 말한 공주십경은 처음부터 객관성에 기초한 '공주 10경' 보다는 지역민의 공감대와는 거리가 있는 묵객의 문학적 작업의 성격이 더 강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공주에는 많은 승경과 유적이 있어서 이를 자원으로 하는 관광 공주의 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5백년 전, 3백년 전의 공주 10경은 소재의 시의성이 이미 상실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공주 10경'이라는 자료는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 있다.
새 공주 10경 콘텐츠의 개발이 가능하다면, 그 대상이 구체적인 승경이면서 도 공주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공주 시민들의 공감으로부터 나온 10경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관광 공주의 새로운 소재 개발이 이루어지고 효과적인 지역문화의 융복합적 인문학 내용으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서거정의 공주십경에서 역사, 철학, 환경, 생태, 기후학의 내용을 융복합적으로 고찰 할 수 있었다. 이에 지역사회에서 공주십경을 多元的藝術에 대한 태도와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들을 인문학 자원으로 계승 공유하여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정신건강을 치유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사료 된다.


This study has explored Seo, Geojeong's Chinese poems contents as the study scope. I intended to present after finding liberal arts convergence in Gongju district with this base. Our country has a tradition which calls 'Sipgyeong', beautiful scenery binding, that is to say, a scenic beauty of legion from the ancient times. By the way, whatever good scenery, never call naming 'Sipgyeong' with once beautiful scenery making.
Because long time cultural assessment has accumulated, and people has called the name as sympathizing of meaning naturally. Review of Seo, Geojeong's Gongju Sipgyeong, this is found by author's personal viewpoint and subjectivity rather than local people's sympathizing base objectivity, and by great including of conceptual and obscure idea rather than concrete points. However, in there points nowadays local humanist's convergence data are wonderful contents for practical use. After reviewing the 10 princesses of Seo, Geojeong's, I found that this was based on the writer's personal view and subject rather than the objectivity based on the local people's consensus, and that it contained many conceptual and vague concepts rather than concrete ones.
In Gongju, there are so many beautiful sceneries and sites. It is demanding that tourism Gongju management by these sources. 500 years ago, 300 years ago, Gongju 10 sceneries, in fact, their timely of subject matter has already lost, but 'Gongju 10 sceneries' data are still remaining beautiful.
After reviewing the 10 princesses of Seo, Geojeong's, I found that this was based on the writer's personal view and subject rather than the objectivity based on the local people's consensus, and that it contained many conceptual and vague concepts rather than concrete ones. Through this process, the development of new materials for tourism princesses will be carried out and effective use of the contents of the integrated humanities of local culture will be possible.
Seo, Geojeong's Gongjusipgyeong could be examined convergence contents such as history, philosophy, environment, ecology, and climatology. Multiple arts attitude and results of philosophical thought can succeed and share as the humanities sources. I think, this can be practically used as a wonderful asset which can heal social spiritual health demanding in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era nowa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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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초(雪蕉) 최승태(崔承太)의 공주체류기 한시(漢詩) 고찰

저자 : 이국진 ( Lee Gook-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5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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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蕉 崔承太(?~1684)는 六家를 이어 洛社를 중심으로 여항문학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三淸洞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여항시인이다. 중인과 서리층으로 구성된 洛社의 여항문인들은 신분제약으로 인한 갈등과 괴로움에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발한 문학 창작 활동과 교유를 통해 豪氣를 발산하고 자유롭게 풍류를 즐기며 동질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각별한 결속감으로 인해, 그들이 혼자 떨어져 있을 때면 신분적 제약과 그로 인한 현실적 궁핍함을 더 깊이 절감하기도 했다. 崔承太가 공주에 체류하던 시기가 바로 그러했다.
崔承太가 공주에 체류하던 시기에 지은 시작품들에는 신분제약으로 인한 절망감, 낯설고 곤궁한 환경에서의 괴로움, 그의 삶을 지배하는 내면의식이 집약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洪世泰가 「雪蕉詩集序」에서 崔承太의 詩風은 李白을 스승으로 삼았고, 歌行과 長篇이 뛰어나며 드높은 기상이 있다고 평가한 면모가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아울러 공주지역 주요 명승지에 대한 시적 형상화 방식이 돋보이고 개성이 있어서 공주 지역의 한문학 유산으로도 눈길을 끈다.
당시 崔承太는 한양에 있는 知友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과 힘든 생활에서 비롯된 불만과 상념을 여러 편의 시로 토로했다. 이과정에서 '쓸모없는 칼', '푸른 녹이 낀 칼', '방황하는 칼' 등의 意象을 적극 사용하여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괴로움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한양에 있는 知友와 가족들은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었다.
한편, 崔承太는 힘든 생활 속에서 공주의 명승을 유람하며 심신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계룡산 유람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의 호방한 기상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에 崔承太는 李白의 詩風과 장편 가행체 형식을 적극 활용하여 계룡산에서 느낀 호방한 기상을 거침없이 시로 표출하였다. 말하자면 鷄龍山은 崔承太가 李白의 詩風을 맘껏 모의하고 발산할 수 있는 시적 매개물로 작용하며, 그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豪氣'를 '狂歌'를 통해 맘껏 발산할 수 있게 해 준 고맙고도 소중한 존재였다.


Choi Seung-Tae(崔承太) is a plebeian poet in the middle and late 17th century. His father is Choi Gi-Nam(崔奇男) who was the leading figure of the plebeian literature. Hong Se-Tae(洪世泰) is a figure having very close relationship with Choi Seung-Tae(崔承太) and arranged the works written in his posthumous work and wrote the preface for his collection of works.
The plebeian writers who engaged in the activities around Samcheong-dong(三淸洞), Seoul at that time, were depressed by the conflict and the agony due to restriction by social standing rather confirm their homogeneity acting pompously and enjoying the arts through the active literary creation activity and the exchange. However, when they were alone separated each other, they could not but realize the restriction by social standing and the impoverishment more deeply by that.
Stayed in Gongju, Choi Seung-Tae(崔承太) expressed his discontent and thought derived from the reality that did not recognize his talent and the hard life in various poems to his friends and family in Hanyang. In addition, he emphasized the agony of not being used properly using actively the images such as 'Useless sword', 'Sword rusted with green rust', 'Wandering sword', etc. in his poems. However, the friends and family in Hanyang were the grateful beings who raises his collapsed self-regard again.
In the meantime, Choi Seung-Tae(崔承太) could maintain the peace of mind traveling around scenic spots in Gongju. Among them traveling Gyeryongsan restored the magnanimous spirit that he thought that he had lost it. Choi Seung-Tae(崔承太) express the magnanimous spirit felt in Gyeryongsan in poem briskly utilizing the poetical style of Li Bo(李白) and the form of long poem. In other words, Gyeryongsan worked as poetic medium to imitate and release the poetic style of Li Bo(李白) and was a grateful and precious being that made him to express his magnanimous spirit fully, which he could not make it happen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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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금강 선유 한시 연구

저자 : 정만호 ( Jung Man-ho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7-8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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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공주는 현재 인구 10만 정도의 소도시이다. 하지만 전통시대에는 백제의 고도, 군사적 요충지, 교통의 요지로 명성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충청감영의 소재지로서 군사ㆍ행정적으로 중시되었다.
공주의 금강은 계룡산과 함께 공주를 대표하는 산천의 하나였다. 서해로부터 강줄기를 따라 상류까지 물자 수송의 중요한 수로였을 뿐만 아니라 경기와 호남을 오가는 이들의 왕래가 잦았다. 게다가 공산성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형성함으로써 船遊地로도 유명하였다.
교량이 건설되고 육상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금강에서의 뱃놀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현재 금강의 모습만으로 본다면 뱃놀이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하지만 금강에서 지어진 많은 한시 작품들은 주변의 빼어난 경관에 감탄을 자아내고 있으며, 화려했던 뱃놀이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전통시대 공주가 겪은 장소 경험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백제의 고도, 仁祖의 駐蹕은 대단히 의미 있는 경험이다. 무령왕릉을 비롯한 유물유적, 그리고 公山城의 雙樹亭과 雙樹亭事蹟碑는 공주라는 장소가 겪은 의미 있는 경험을 오랫동안 지속적이며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계룡산 역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갑사나 동학사를 비롯한 사찰을 찾는 이들과 등산을 목적으로 탐방에 나서는 발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금강은 전통시대 공주를 대표하는 경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과 옛 모습을 오늘에 전달해줄 매개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본고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금강의 선유 모습을 한시 속에서 찾아내어 공주의 중요한 장소였던 금강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금강에서의 선유는 공산성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와 부여의 백마강까지 찾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前者를 近遊, 後者를 遠遊로 구분하여 船遊가 이루어진 장소, 규모, 시인들의 감성을 검토하였다.
선유는 유람이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지어진 한시들에 비해 장소의 특성을 반영하기보다는 유흥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고도이며 빼어난 경관을 갖추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백제의 멸망에 대한 상심의 정도는 백마강 유람에서 지어진 한시에 더 짙게 나타났다.


Gongju in Chungcheongnam-do is now a small town with a population of about 100,000. However, it was renowned for its ancient, military, and transportation points during the Baekje era. In addition, it was considered military/administrative as the site of the Chungcheong Provincial Office.
The Geumgang River in Gongju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mountains and streams of Gongju along with Mt. Gyeryongsan. It was not only an important waterway for the transport of goods from the Yellow Sea to the upstream of the river, but also a place where they frequently traveled to and from Gyeonggi and Jeolla provinces. It was also famous for its historical site, as it combined with Gongsansong Fortress to form a magnificent view. Not many people remember the sight of boating on the Geumgang River as bridges were built and land transportation developed. Rather, it raises doubts that boating may have been possible based on the current appearance of the Geumgang River. However, many poem created on the Geumgang River are admired for the outstanding scenery around it and vividly depict even the spectacular boating scenes.
Although it is difficult to mention the experience of Gongju in the traditional era, the ancient city of Baekje, the stopover of King Injo, is a very meaningful experience. This became a medium for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and other relics, as well as the Ssangsujeong and the Ssangsujeong Memorial Stone of Gongsansong Fortress, to convey to people the meaningful experience of Gongju for a long time continuously and repeatedly. Mt. Gyeryongsan is also designated as a national park, so visitors to the temple, including Gapsa and Donghaksa, visit the temple for hiking purposes. Despite the fact that Geumgang was the scenery representing the traditional Gongju, however, it lacks the medium to deliver its fame and its ancient form today.
The study sought to find the boating in the Geumgang River in the poem, which is disappearing from the memory of the people, and examine the image of the Geumgang River, which was an important place in Gongju. Boating in the Geumgang River was sometimes carried out around Gongsansong Fortress and even to Baekmagang River in Buyeo. The sensibility of the places, sizes and poets where boating occurred was reviewed by separating the former as Geunyoo and the latter as Wonyoo.
Boating often contains entertainment rather than reflec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place compared to the poem written at the same place because it has cruising purposes. Gongju and Buyeo are Baekje's ancient cities and have a great view in common, however, the degree of mourning for the fall of Baekje is more apparent in the Chinese poem written during the cruising of Baekmagang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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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 문학에 나타나는 강건(剛健)함에 대하여

저자 : 이재숙 ( Lee Jae-sook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3-11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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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의 한시는 전하는 작품이 적어 당대 지천이 이루었던 문단의 명성과 관각문인으로서의 업적 및 그 위상을 논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게다가 지천은 붕당의 정쟁 속에 많은 모함을 받아 생을 마칠 때까지 불행한 삶을 살았다.
본고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평가에서 벗어나 황정욱의 사상을 통해 작품 속의 강건함을 주목하고 경물 묘사의 특징, 시상의 전개, 즐겨 쓰는 시어 및 표현등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지천의 한시에는 儒學의 수양 방법론이 면면에 드러나고 있으므로, 이를 『주역』 剛健의 개념과 관련지어 살펴본 것이다.
지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향점은 經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義理思想과 樂天知命이었다. 때문에 정치적인 고립, 붕당간의 정쟁과 모함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탱할 수 있었다. 한시에도 평소 지천이 추구한 정신지향이 그대로 표출되었는데, 우뚝하고 웅장한 자연 경물의 무궁함 속에서 장대하고 강인함, 굳건함의 이미지를 자주 형상화하였다. 無窮, 無盡, 無碍, 剛風, 萬里, 萬古, 萬魚, 千層 등의 무궁함과 장대함을 상징하는 시어를 사용하고, 八九胸中의 광활한 天地의 기상과 포부를 나타내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지천 시에 나타나는 강건함은 이렇듯 경물을 바라보는 지천의 기상과 관점, 내면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광활한 자연의 운행과 장관을 바라보며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극복하고 그속에서 자연을 본받으려 한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천의 기상을 『주역』의 「困卦」와 「乾卦」등에 함축된 대인ㆍ군자의 처신과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This manuscript paid attention to the obdurability inside Hwang Jeong-uk's literary works through his thought and intended to analyze the features in scenery of the season, progress of poetic sentiment, favorite poetic words and expressions and so on.
As JiCheon's Chinese poem reveals the methodology of cultivating YuHak (Confucianism) at the face of it, the author of this study examined it closely in relationship with the concept of Ganggun(obdurability) in << Juyeok >>.
The most important directing point in JiCheon's life was the thought of righteousness and optimism based on Kyeonghak (Chinese classics).
For this reason, he could sustain firmly despite of political isolation, political strife between factions and political slanders.
The mental intention JiCheon normally pursued was revealed in his Chinese poem as it is in which he often materialized the image of strongness, tenacity, and toughness in the perpetualness of high and magnificent natural features.
He used the poetic diction symbolizing perpetualness and magnificentness such as mugung(eternity), mujin(no limit), muae(freedom from all obstacles), gangpung(strong wind), manri(ten thousand), mango(eternity), manoe, cheoncheung and so on and made frequent use of the expressions presenting the spirit and ambition of the vast cheonji (heaven and earth) of palguhyungjung.
The obdurability appearing in JiCheon's poem has a close relation with his spirit and viewpoint looking at the natural features and his inner world.
You can feel his attitude of overcoming his needy circumstances and imitating the greatness of the nature while watching the nature's race and spectacles.
The study examined JiCheon's spirit like this with regard to the behaviors of great character and noble man implied in << Juyeok >>'s < Gongae > and < Geong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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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경유(李敬儒)의 시문학관(詩文學觀) 일고(一考) -『창해시안(滄海詩眼)』을 중심으로-

저자 : 조정윤 ( Cho Jeong-yun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1-13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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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남의 문인 李敬儒(1750~1821)가 저술한 『滄海詩眼』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시에 대한 비평을 기록한 시화서이다. 본고에서는 『창해시안』의 시론과 비평을 중심으로 한시에 대한 이경유의 기본 인식 및 지향을 검토하였다. 이경유는 중국 및 우리나라의 역대 한시를 두루 익히고 공부하는 것을 넓은 범위에서 詩學의 기본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唐詩, 그 중에서도 杜詩를 추숭하여 典範으로 여겼으며, 學詩의 대상 뿐 아니라 실제 비평에 있어서도 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공교하고 뛰어난 시를 짓기 위한 요건으로 詩意에 맞는 절묘한 글자를 적절한 자리에 알맞게 배치하는 '下字'를 강조하였으며, 句法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우면서도 교묘한 對偶와 마지막 구절, 즉 '結句'의 완성도를 중시하였다. 표현에 있어서는 대상의 특징과 개성을 잘 포착하여 참신하고 개성적인 시어를 선택해 형상화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도습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창해시안』에서 뛰어난 시적 성취를 보인 작품을 품평한 평어로 '淸'과 '雅'가 많이 등장한다. 이는 이경유가 대체로 맑고 깨끗한 자연을 고원한 정신경계로 표현하여 탈속적인 시와 바르고 우아한 시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나아가 창작 상에서도 이러한 풍격의 시를 지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The 『Changhaesian(滄海詩眼)』, which Lee Kyung-yu (1750~1821), a writer of Yeongnam area wrote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is a book about remarks on poetry which recorded criticism about poetry of many generations of China and Chosun. In this paper, I examined thoroughly basic recognition and intention about Lee Kyung-yu's poetic literature shown in poetics and criticism of 『Changhaesian』. 
Lee Kyung-yu recognized Seong-Tang(盛唐) as one of the climaxes in the history of Chinese poem and, in particular, Chinese history of literary development. He evaluated Tu Fu's poem as the best among the poems in the Seong Tang Dynasty because he considered the extremes of poetry's craftsmanship was achieved.
Lee Kyung-yu emphasized Haja(下字) as a requirement for constructing crafted poems, and regarded the importance of natural and subtle Daewoo(對偶) and last phrase Gyeolgu(結句) in Gubeob(句法). In addition, he considered it as important to select and use novel and unique poetic words while the characteristics, individuality, and spirit of the subject were well embodied in expression.
Cheong(淸) and Ah(雅) appear in numerous cases as a complimentary piece of work that has shown excellent poetic achievement in 『Changhaesian』 . This means that Lee expressed clear and clean nature as the high-level mental boundary and highly valued the graceful, upright, and unworldly poems. In addition, he showed that he was oriented towards these poems of distinctive characters in creative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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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지식인의 교류는 1766년 홍대용이 북경에서 항주의 문인들과 만나 천애지기를 맺고 지속적으로 교류한 이후로 점차 확대된다. 일반적으로 한중 지식인 교류는 연행을 통한 직접적인 방법과 연행 인편을 매개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더욱이 연행마다 참여할 수 없는 처지라, 연행 인편을 매개한 간접적 교류가 대부분이다.
『경오유연일록』은 당시 한중 지식인 교류의 단면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당시 진림의 언급에 따르면, 조선 사신을 명사로 여기고 교유를 바라는 중국의 상황과 어사의 참주로 조선 사신을 꺼리는 당시 분위기가 고스란히 포착된다. 아울러 조선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에 혐의와 간극은 없으니 오해하지말 것을 당부한다. 이는 당시 중국 지식인이 조선 사신을 명사로 여기고 왕래하며 교분을 맺기를 바라며 각별하게 대우했음을 보여준다.
첫째, 한중 지식인 교류에서 만남을 주선하고 교두보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김정희와 강진의 역할이 감지된다. 임백연은 김정희와 강진의 소개로 중국 지식인의 존재를 파악하고, 강진과 친분이 있던 강문탁과 진림을 매개로 그들과의 교류를 시도한 셈이다. 특히, 강문탁과 진림 같은 인물은 조선 사신이 중국지식인과 교류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당시 임백연이 연행 노정에서 교유한 중국 인물은 총 20여 명인데, 앞서 언급한 강문탁과 진림을 제외하더라도 吳筠ㆍ姚涵ㆍ汪喜孫 등과 친분이 각별하고 교류도 활발하다. 척독과 시문 및 선물의 왕래뿐 아니라 한중 지식인교류의 내용과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욱이 『상간편』의 간행에는 黃爵滋ㆍ韓韻海 등이 직접 참여한다.
셋째, 당시 연행 인편에 한중 지식인의 척독과 시문 및 선물이 상당수 왕래한 정황이 포착된다. 한양에서 북경으로 가져간 품목에는 글씨(조광진)ㆍ문집(『해거시초』, 김양순 시권)ㆍ전별시축(「신취미태사잠유시첩」)ㆍ편지(안영 편지) 등 다양한 품목이 확인된다. 반면, 북경에서 한양으로 들여온 품목으로 羊膓鐵胎葉ㆍ담배ㆍ호필ㆍ남묵ㆍ부채(潘錫恩 글씨, 蔣祥墀 글씨, 홍현주)ㆍ글씨(오균 長軸)ㆍ문집(『史梅叔詩集』, 『周易闡要』, 『유문청공집』, 『宋學師承記』)ㆍ도장('汪喜孫印')ㆍ편지와 선물(조병구, 方羲鏞, 洪奭周) 등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척독과 시문 및 선물이 다양한 방법으로 왕래되었을 듯하다.
넷째, 『상간편』의 저작과 간행은 한중 지식인 교류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당시 연행 노정에서 수창한 8명의 시 15수씩을 선발하여 총 27제 120수를 북경에서 목판본으로 『상간편』을 간행한다. 당시 황작자는 교정뿐 아니라 小序를 쓰고 한운해는 書籤을 써서 판각에 부친다. 당시 『상간편』 간행은 한중 지식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듯하다. 그러한 연유로 임백연은 본래 판각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애써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는 '不知本意, 强生毁譽者, 何足恤也, 亦何足辨也『'는 언급에서 확인된다. 또한 『상간편』은 1833년冬至使行에서 정사 曹鳳振, 부사 朴來謙, 수행원 崔憲秀가 수창한 연행시집 『燕槎酬帖』과 관련이 깊다. 아울러 『상간편』은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申佐模는 1860년 冬至正使로 연행하는 申錫愚에게 보낸 시에서 “尙書今行, 定有相看續集, 四方傳寫, 想更紙貴.”라고 덕담을 보낸다. 이는 신석우가 신재식의 조카로 연행에서 『상간편』과 같은 저작을 기대한 대목으로 보인다.


The exchange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had gradually expanded after Hong Dae-yong met the literary men of Hangzhou in Beijing in 1766 to enter into the Cheonaejigi (special friend in far distance away). In general, the exchange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was made in direct method through Yeonhaeng and indirect method through the agency of a person. Furthermore, it is not possible to participate in Yeonhaeng every time that most cases involved indirect exchange through the agency of a person. 
『Gyeongoyuyeonilrok』 displays the details on the aspect for the exchange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at the time. According to the statements of Jin Lim of the time, it displays the atmosphere of the time for the situation of China that desires the exchange with envoys of Joseon and yet to be unwilling to accept the envoys of Joseon with the tyranny of Eosa (royal emissary). Furthermore, it specifically requested not to misunderstand since Joseon had no suspicion and estrangement as it was different from other countries. This fact demonstrates that the intellectuals of China at that time considered the Joseon's envoys as well-known scholars to treat them with special privilege with the hope of communicating and establishing relationships.
First, the roles of Kim Jung-hee and Kang Jin were sensed as they carried out the bridging role as well as establishing the exchange relations for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Looking into the case of Im Baek-yeon, it is considered to attempt the exchange with Kang Jin-bo and Jin Lim who had the acquaintance with Kang Jin after leaning the presence of Chinese intellectuals with the introduction of Kim Jung-hee and Kang Jin. In particular, people like Kang Jin-bo and Jin Lim are considered to carry out significant roles for the Joseon's envoys to exchange with the Chinese intellectuals.
Second, the Chinese personnel that Im Baek-yeon met in the Yeonhaeng route would be around 20 persons, and even if Kang Jin-bo and Jin Lim who are mentioned earlier are excluded, there were close relations with Oh Gyun, Yo Ham, Wang See-Son with active exchanges. It displays not only the exchange of chidu (letters and mails), poetry and literacy and presents, but also the contents and reality of the exchange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to the fullest. In addition, in the publication of 『Sangganpyeon』, Hwang Jak-ja, Han Wun-hae and others were personally participated.
Third, the personal agency in Yeonhaeng displays the scenes of significant exchange of chidu (letters and mails), poetry and literacy and presents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Yeonhaeng of 1836 had the indirect exchange and its appearance can be confirmed in 『Gyeongoyuyeonilrok』.
The items taken from Hanyang to Beijing show writing (Cho Gwang-jin), literary collection (『Haegeosicho』, Kim Yang-soon Sigwon (ansers in national examination), Jeonbyeolsichuk (「Sinchwimitaesajamyusicheop」), letter (letter of An Young) and others. On the other hand, for the items imported from Beijing to Hanyang, there are a variety of items with yangjangcheoltaeyeop, cigarette, brush, ink, folding fan (Ban Seok-eun - writing, Jang Sang-ji - writing, Hong Hyun-joo) writing (Oh Gyun Jang Chuk), collection of literature (『Samaesuksijip』, 『Juyeokcheonyo』, 『Yumuncheongongjip』, 『Songhaksaseunggi』), seal impression ('Wangheesonin'), letter and gift (Cho Byung-goo, Bang Hee-yong, and Hong Seok-joo) and others.
And, fourth, the writing and publication of 『Sangganpyeon』 was a remarkable incident for exchange of the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From the Yeonhaeng travel of the time, 15 poems from 8 persons were selected to publish a total of 27-je 120-soo on 『Sangganpyeon』 on the wooden block copy in Beijing. At that time, Hwang Jak-ja and Han Wun-hae also participated in the publication of 『Sangganpyeon』 that Hwang Jak-ja worked on editing as well as writing Soseo while Han Wun-hae wrote the book cover to place on the engraving plate. At that time, the publication of 『Sangganpyeon』 seemed to attract attention of intellectuals in Joseon and China. Because of such an attribute, Im Baek-yeon requested to clarify its innate intent of engraving plate and not to render any excessive implication. It is confirmed in the statement of 'Buljibonui, Gangsaengchweyeja, Hajokhyulya, Yeokhajokbyeonya『'. In addition, 『Sangganpyeon』 for Dongjisahaeng in 1833 had profound relations to 『Yeonsasuceop』, a poetry collection on Yeonhaeng that was advocated by Jeongsa (Head Official) Cho Bong-jin, Busa (Deputy Official) Park Rae-gyeon and entourage Choi Heon-soo. Furthermore, 『Sangganpyeon』 influences on later generations that Shin Jwa-mo, in his Yeonhaeng of 1860 as Dongjijeongsa, to send his well-wishing remark of “Sangseogeumhaeng, Jeongyusangganskjip, Sabangjeonsa, Sanggyeongjigwi.” in his poem to Shin Seok-woo. It is deemed to be the passage expected for writing work as in 『Sangganpyeon』 of Shin Jae-sik in Yeonhaeng since Shin Seok-woo was a nephew of Shin Jae-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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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문학사상(文學思想)』 수록 김립(金笠) 한시(漢詩) 연구

저자 : 구본현 ( Gu Bon-hyeon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1-20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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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笠[김삿갓] 연구의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에서 비롯한다. 하나는 '김립'이라는 명칭이 金炳淵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복수의 방랑 시인을 포함하는 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곤란은 김병연과 그 작품에 대한 문헌 기록이 매우 소략하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둘째는 현전하는 김립 작품들의 진위여부이다. '김립'이라는 명칭이 회자되기 전에 창작된 작품들이 김립의 것으로 와전된 경우가 확인되는 만큼 이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다.
현재 김립의 작품이라 전해지는 것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李應洙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응수는 김립의 작품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세 종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김립의 새로운 작품이 간간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1983년 『문학사상』 2월호에 수록된 김립의 한시 12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金笠'이라 표기된 작자를 김병연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간접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영광군수로 재직 중이던 김회명에게 준 시에는 작자가 이전부터 김회명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에 김회명과 김병연이 같은 안동김씨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록 추정이기는 하나 이 시의 작자를 김병연이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전남 영광과 곡성 등 호남에서 지은 작품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김병연이 사망한 곳으로 알려진 전남 화순의 동복면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만약 이 시들의 작자가 김병연이라면 김병연의 만년 행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기존에 소개된 김립의 영물시와 비교해 볼 만한 작품이 4편 수록되어 있다. 김립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기발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영물시 창작에 뛰어났는데, 『문학사상』에 수록된 영물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Difficulties in research on Gim Rip[金笠] also known as Gim Sat-gat[김삿갓] come from two main reasons. One is that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whether Gim is referring to Gim Byeong-yeon[金炳淵] or several poets of similar age.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re are no documented records of Gim's life. Second is the authenticity of Gim's works. Since the works created before the name 'Gim rip' was talked about were misinformed as Gim rip's, the historical investigation must be made thoroughly.
Most of what is said to be Gim's works is based on the efforts of Li Eung-su[李應洙]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Li collected and organized Gim's poems and published three versions of Gim's anthology. Later, Gim's new works were discovered and introduced from time to time, and the most notable among them is Gim's 12 poems in Muhaksasang[文學思想] the February issue of 1983. The reason for this is as follows.
First, we can find a few evidences indicating that the author named 'Gim Rip' is Gim Byeong-yeon. There is a poem indicated the author as 'Nan-go', the nickname of Gim Byeon-yeon. Poetry given to Gim Hoi-myeong[金會明], who was serving as a governor of Yeonggwang[靈光], shows that the author had known Gim Hoi-myeong before. Considering that Gim Hoi-myung and Gim Byeong-yeon are from Andong Gim family, the author of the poem can be considered Gim Byung-yeon.
Second, the works created in Yeonggwang and Gokseong[谷城] are included. These areas are close to Hwasun[和順] where Gim Byeong-yeon stayed for a while and died in 1863. Therefore, through the review on these poems, the traces of Gim's later years can be verified in more details.
Third, There are four Yeongmulsi[詠物詩] that can be compared with Gim's another works that reveal Gim's poetic talent and individuality. Gim was famous for his Yeongmulsi which reveal new perspectives and novel expressions on surrounding things. This feature is also reflected in the Yeongmulsi in Munhaksa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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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손지(遜志) 홍재구(洪在龜)의 저술 연구

저자 : 신요한 ( Shin Yo-han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5-2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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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遜志 洪在龜(1845~1898)의 저술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홍재구는 重菴 金平默(1819~1891)의 사위이자 제자로 김평묵 문인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19세기 중반은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와 서양의 문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대외적 상황과 더불어 조선 사회는 세도정치와 三政의 문란등으로 혼란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華西 李恒老(1792~1868)의 위정척사 이론을 충실히 이어온 홍재구는 조선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화서학파는 철저한 유교적 세계계관을 가지고 있어 외세의 침략과 내부적 혼란에 대한 대응방안도 유교적 차원에서 마련하였다. 그들이 제시하였던 가장 기본적인 대응책이 '內修外攘論'이었다. 또한 龍西 柳基一(1845~1904)은 「정속신편감찬발」에서 홍재구의 저술 『正俗新編』은 內修, 『息閑眞詮』은 外攘에 해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도 홍재구의 저술을 內修와 外攘두 가지로 나누어 보고자한다. 『正俗新編』과 『正俗新編敢贊』, 『啓蒙要覽』과 『章山課藁』는 內修의 입장으로 『衛正新書』, 『息閑眞詮』은 外攘의 측면에서 지은 자료로 구분 지었다.
프랑스 동양언어문화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정속신편』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 중인 『계몽요람』은 내외부적인 시대 인식의 대응으로 內修를 강조하며 五倫 및 仁義禮智信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저술이다.
충남 청양군 모덕사에 소장되어 있는 홍재구의 편저인 『위정신서』은 斥邪綸音, 斥和疏를 비롯하여 위정척사와 관련된 글을 10종의 문집에서 뽑아 정리하였으며 淵齋 宋秉璿(1836~1905)의 서문이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息閑眞詮』(古121-2)ㆍ『息閑眞銓』(古1194-1)은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24장으로 구분지어 조목별로 비판하며 적극적인 척사론을 펼쳐나갔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료다.
홍재구와 함께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쳐간 유기일의 『용서고』 등, 홍재구와 관련된 인물들의 저술들을 비교 검토한다면 다양한 저술활동과 사상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Sonji Hong-jaegu's writings. Hong-jaegu is a member of Hwaseo(華西) School. He is a disciple of Kim pyeongmuk. Hwaseo(華西) School promoted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衛正斥邪) with stabilizing the government and strengthening the national defense(內修外攘). He succeeded this idea. His writings have this same idea. This paper examines his work in terms of stabilizing the government and strengthening the national defense. 『Jeongsoksinpyeon(正俗新編)』 and 『Gyemongyolam(啓蒙要覽)』 were classified as stabilizing the governmen. 『Wijeongsinseo (衛正新書)』 and 『Sikhanjinjeon(息閑眞詮)』 were classified as strengthening the national defense. 『Jeongsoksinpyeon』 and 『Gyemongyolam』 are an explanation of the Oryun(五倫), the basic idea of Confucianism. 『Wijeongsinseo』 is a compilation of books related to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Sikhanjinjeon』 is an article criticizing Catholic doctrine. In the above, I looked at the writing activity of Hong-jaegu. For further study of Hong-jaegu, constant review of his writings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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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허균(許筠)의 「동정부(東征賦)」 연구(硏究)

저자 : 黃亮 ( Huang Lia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3-25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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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辭賦문학이 매우 중요한 장르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부가 지어졌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부문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손실을 의미한다. 許筠의 「東征賦」를 연구하는 것은 사부문학 뿐 아니라 허균의 문학연구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동정부 연구를 통해서 허균의 문학은 물론 사부문학의 典型을 밝히고자 한다. 사부는 歌辭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 둘의 비교연구는 가사문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연구로 아직 사부문학에 익숙하지 못한 韓國漢文學에 일조를 하고 싶다.


Sabu is very important Genre in the Chinese literature. Also have been Many work's in the korea, but hav'nt attract public attention. Isn't only on study Sabu loss but All of the Korean chinese litterature. Attention for Dongjungbu is not only Sabu but Fullness all of the Heokun's litterature. I want by study of Heokun's Dongjungbu not only He's works but make clear Sabu's model. It certain, There is close correlation between Sabu and Kasa. About this Comparative literature work is certainly help on study Kasa. I wish by this study make a contribution to Korean S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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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한산시(寒山詩)의 언어특색(言語特色)

저자 : 박노현 ( Park Ro-heyn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5-28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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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山은 唐代 貞元年間(785~804) 전후에 생존했던 시인으로, 중국 天台山 寒岩 隱居했었기에, 한산 또는 한산자로 불리운다. 한산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천태산 國淸寺의 豊干·拾得과 교류가 있었던 기록 등 수편이 있으나, 그의 성명과 생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한산시는 당대이후 民間에게 상당히 유행되어, 특히 佛家에서 두드러지게 愛好되면서, 宋·明을 거치며 여러 판본이 출현하였고, 淸代에 이르러서는 『全唐詩』 와『四庫全書』 에 실리게 되는 등 천 여년의 오랜 기간 동안 그 명맥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전되어 왔다.
한산시의 언어특색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는 불교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한산의 시가 불교적 색채가 가장 크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산시 언어특색 중 가장 우선은 바로 불교용어의 사용이라 하겠다.
또 한산시 언어특색 중 두 번째 특색은 도교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한산이 과거급제에 실패하여 좌절하고 난후 방랑을 거듭하다가 도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시 많은 부분에 투영되어 시속에 도교용어가 다수 쓰이고, 시 내용 역시 도교적 색채가 뚜렸한 내용도 많다.
寒山詩의 언어특색 중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통속용어의 사용이라 하겠다. 寒山은 천태산 한암에 은둔의 길을 택하면서 인간속세와 절연하고, 심산에서 옛날을 회상하면서 부귀공명을 추구하던 때의 일과 과거 속세에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던 때를 회상하며 지은 시들 속에 통속용어들을 다수 쓰고 있다. 한산의 통속용어를 詩語로 사용한 경우, 그 시가 평이하고 자연스러우며, 살아있는 듯한 시로 다시 태어나 다른 시인들보다 생동감 있는 맛과 멋이 있게 했다.


This paper is focused on a study about the language characteristics of the poetic works written by the poet Hanshan(寒山) who was said to have survived around the periods of 785-804 A.D during the Chinese Tang Dynasty. Hanshan(寒山) or Hanshanja(寒山子) name was derived from the seclusive lifestyle he lived at Han-Ahm(寒岩), Mt. Tiantai(天台山) in China. There are a number of debatable records which are said to represent an interactive relationship with monks(豊干, 拾得) at the Gukcheong-Temple, Mt Tiantai, however Hanshan's birth name as well as actual existence has yet to be confirmed. Hanshan's poetry gained a new form of popularity amongst the civilians after the period of Tang dynasty, especially resulting in his poetry being highly admired in the Buddhist community, many editions emerged during the proceeding Song and Ming dynasties. By the Qing dynasty, also publishing in Quan Tangshi(『全唐詩』) and Siku Quanshu(『四庫 全書』), Hanshan poems which are currently still in existence are said to be as many as 300 while still maintaining its fame for approximately one thousand years to date.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Hanshan poems(寒山詩), the first one entails the use of Buddhist terminology. It is common knowledge that all of his work is heavily influenced by the realm of Buddhism, resulting as the most undeniably outstanding characteristic. The second characteristic is the use of Taoist terminology reflected within his poems. After suffering internal frustration due to his failed state examination, he was left in a state of aimless wandering as a result he became deeply converted into Taoism. Hanshan's journey through Taoism was projected onto many of his works and the content within his poems also came to be filled with distinct Taoist features. The third characteristic is the use of popular terminology during this era. Retiring to a lifestyle of hermitage at Han-Am(寒岩), Mt. Tiantai, while being separated from secular affairs, Hanshan used various popular terminology within his poetry of his old reminiscent days, when he spent quality time with his family while looking for wealth and prosperity. Hanshan's usage of popular terminology in his work, resulted in a more simplistic production of poetry, which left a more realistic and lively presence compared to other fellow po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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