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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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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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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5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39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0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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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내려옴과 올라감의 관점에서 본 칼뱅의 성찬론 ― 루터와 츠빙글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김선권 ( Kim Sunkwon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5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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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칼뱅의 성찬론을 루터와 츠빙글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내려옴과 신자의 올라감의 관점에서 살펴 그가 가진 성찬론의 특징들, 그것의 역동적이며 종말론적 성격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성찬은 연합과 일치의 성례이다. 하지만 성찬에 대한 해석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다. 칼뱅이 츠빙글리주의자이냐 루터주의자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칼뱅은 아주 단순히 칼뱅이었다. 칼뱅의 대부분의 저술들처럼, 성찬론에 대한 그의 논점은 논쟁이 아닌, 성경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찬의 정의, 본질, 임재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성찬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관계적으로 성찬을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성찬에 나타난 아버지가 자녀를 향해 베푸시는 영적 잔치는 중요하다. 칼뱅은 루터와 츠빙글리 사이에서 중간의 길, 중재적 입장을 취하였다. 실재는 상징과 결합되며(츠빙글리에 대한 반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은 장소적, 육체적 현존은 아니다(츠빙글리에 대한 찬성).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은 실제적이고 참되며(루터에 대한 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 안에 그리스도가 그 실재 그대로 임재하는 것은 아니다(루터에 대한 반대). 성찬에 그리스도는 신인 양성 즉 “그리스도 전체”(totus Christus, tout Christ)가 임재하지만, 그리스도가 천상에서 가지고 있는 그 몸 그대로 임재한다는 “그리스도의 전부”(totum christi, tout ce qui est en Christ)는 아니다. 츠빙글리에게서 하나님 우편에서 좌정하신 그리스도는 빵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루터에게서 성찬 안에 내려온 그리스도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을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에게로 끌어 올리지 않는다. 츠빙글리는 내려옴이 없고, 루터는 올라감이 없다. 반면 칼뱅에게서 그리스도는 내려오고 성도는 올라간다. 위와 아래, 내려옴과 올라감의 변증법이 칼뱅에게 나타난다. 나는 칼뱅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 전체의 실제적 임재”라고 부른다.


Calvin souligne dans la Cene la partenite de Dieu Pere qui fournit la nourriture a ses enfants. Christ y presente et donne son corps. Mais il y avait entre les reformateurs un desaccord au sujet du mode de la presence du Christ. Selon Keller, la conception calvinienne de la Cene est fondamentalement zwinglienne. Par contre, selon Wendel elle est proche de la conception lutherienne. Sur ce point, il nous semble que Calvin a aussi choisi une “via media”: la realite est conjointe au signe(contre Zwingli), la presence du Christ n'est pas une presence locale ou materielle(pour Zwingli). Dans la Cene, la presence du Christ est reelle(pour Luther), cette realite n'est cependant pas dans le signe (Contre Luther). La substance de la Cene est “Christ tout entier”(totus Christus), l'humanite non moins que la divinite, a la difference de Zwingli, mais pas la “totalite du Christ”(totum Christus) a la difference de Luther. De ce point de vue, la presence du “Christ tout entier”(totus Christus) est a la fois reelle (vraie) et spirituelle, et cependant non point une presence locale. D'une part chez Zwingli, le Christ siegeant en majeste a la droite de son pere ne descend pas, d'autre part chez Luther le Christ dans la Cene n'eleve pas ceux qui participent a la Cene, au Christ qui est au ciel. A la difference des deux premiers reformateurs, chez Calvin une dialectique haut/bas, descendre/monter apparait fortement soulignee. J'appelle la presence du Christ dans la Cene, la presence reelle de “Christ tout entier” par l'Esprit 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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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은혜와 정의: 득의론 관점에서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치신학

저자 : 김진혁 ( Kim Jinhyok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99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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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국론』 19권에 소개된 정의론을 중심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치신학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시각에서 접근할 때 그의 유명한 두 도성 이론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삶의 복잡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 개념의 더 깊은 의미를 보여주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정치철학의 정의 개념과 대화하면서도, 성서적 · 신학적 의미에서 정의의 본질을 질문하며 특유의 정의론을 형성하였다. 로마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키케로는 정의를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귀속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볼 때 이러한 고전적 정의론은 피조물로서 인간의 유한함과 죄인으로서 인간의 나약함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 정의에 따르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바인 참 예배를 드리지 않은 로마에 참 정의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키케로식의 정의 개념은 죄인인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께 받아야 할 바는 심판이라는 희망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정의론의 중심 내용으로 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정의를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라고 해석했다. 그가 득의론적 맥락에서 정의를 재해석함으로써, 정의 개념은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가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마저 실천하게 할 정도로 외연이 확장되었다.


This essay attempts to explore Augustine's political theology, focusing on his theory of justice as presented in City of God, Book 19. Augustine not only developed a unique concept of justice in critical dialogue with notable ancient Greek and Roman philosophers, but also seriously scrutinized the scriptural meaning of justice. In particular, Augustine often quoted Cicero, who famously defined justice as giving every person their due. For Augustine, this classical conception did not fully consider human beings' ignorance as finite creatures and their weakness, indelible obstacles to achieving justice. In addition, Cicero defined the nature of the republic in light of his idea of justice. However, it ironically demonstrated that Rome had never been a just republic in the sense that its citizens did not give what is due to the one true God but worshipped multiple gods and goddesses. Moreover, and more significantly, if the God-human relationship is understood in light of Cicero's notion of justice, one may conclude that humankind cannot avoid God's wrathful judgement, because no one can make oneself righteous enough to satisfy God. In this regard, Augustine offered an alternative vision of justice in terms of the love of God and the love of neighbour as giving what is due to God and to other humans respectively. He further conceived of divine justice as God's gracious righteousness, which heals broken sinners and makes them just. In short, by reinterpreting justice against the backdrop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Augustine demonstrated that the concept of justice does not merely mean 'to each one's due'; he animated the justified sinners to practice forgiveness as an essential part of political activities in this violen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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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창조와 현실 세계 논의에 대한 신학적 성찰 ― 미하엘 벨커를 중심으로

저자 : 박성규 ( Park Seoung-gyu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4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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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물리학과 초월성은 이제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서로를 보충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그러한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자연과학이 이제 자신을 상대화함으로써 절대자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않게 비록 비전통적이며 교회비판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자연과학에서 종교적인 질문이 크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며,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자물리학으로의 선회가 가져다준 결과는 자연 속에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인식은 막스 플랑크 이전에 이미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막스 플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폴 디랙(Paul Dirac) 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신학에서 말하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자연과학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법칙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실제로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이러한 어려운 신학적 과제 앞에서 벨커는 가능한 신학의 중심과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연과 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성서의 창조기사들은 전혀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조기사들은 복합적인 관계맥락들을 이해하고 있는데, 그러한 관계맥락들로부터 자연과학적 우주론은 단지 부분적인 관점들만 해명해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창조론과 관련하여 벨커가 주장하는 핵심명제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벨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가르치는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를 심층분석 하면서 그와 논쟁한다. 그리고 창조기사가 지닌 복합적인 관계맥락들에 대한 전거로서 벨커는 벤노 야콥(Benno Jacob), 베른트 야놉스키(Bernd Janowski) 등과 같은 구약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소개한다. 그러한 새로운 성서해석과 연계하여 벨커는 “창조”를 초기 사건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 또는 “창조”를 한두 가지의 관계체계의 도움으로만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 사건의 신학적이며 사안적인 의미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건 관계들과 삶의 관계들 사이에서 “창조”는 복합적인 통일성을 창출해낸다. 창조기사는 하나님의 날들과 시간,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생명 리듬 그리고 지상의 시간, 빛, 생명관계를 상호 구분하고 상호 관련시킴으로써 그러한 복합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낸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나이브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7일 창조를 서술하는 제사장문서의 창조기사는 오늘날 우리가 물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화이론적으로 기술하고자 시도하는 사건들과 과정들의 세분화된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벨커의 일관된 주장이다. 제사장문서의 창조기사는 창조 활동을 세밀하게 구분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모든 것”을 어떻게든 하나님에게 원인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이며, 또한 만물과 개별자의 생산을 순진하게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벨커에 의하면 오히려 창조는 처음부터 특별하게는 인간과 보편적으로는 피조물과 하나님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하나님 인식과 창조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Seit der Neuzeit haben Physik und Transzendenz eine Weltanschauung geformt, die nicht nur gegenseitig entgegengesetzt wird, sondern sich miteinander erganzt wird. Die Naturwissenschaften offnen sich nun dem Absoluten, indem sie sich relativieren. Es ist uberraschend, dass eine religiose Frage in den Naturwissenschaften weitgehend verbreitet ist, obwohl es kirchenkritisch ist. Das Ergebnis dieser Wendung zur Quanten-physik ist, dass es in der Natur kein absolutes und universales Gesetz gibt. Eine solche Weltanschauung hat sich vor dem Max Flanck schon von Einstein, der die Relativitatstheorie entdeckt hat, uber Werner Heisenberg und Erwin Schrodinger bis zu Paul Dirac durchgesezt.
Aber die Frage, wie die Beziehung zwischen dem transzendenten Gott in der Theologie und den universale Gesetzen erklart werden kann, ist in der Tat nicht keine einfache Aufgabe. Um diese schwierigen theologischen Probleme zu losen, versucht Welker, die Identitat der Theologie nicht zum Opfer bringend mit den Naturwissenschaften zu kommunizieren. Moderne naturwissenschaftliche Entwicklungen gelten die Schopfung lediglich als Zeugnisse der alten Weltanschauung, die in der fruheren Kulturen entwickelt worden ist. Zum Beispiel will die modernen Naturwissenschaften deutlich zeigen, wie die 7 Tage Schopfung uberholt ist. Demgegenuber versucht Welker zu zeigen, wie kurzsichtig solche Ansichten sind. Der biblische Schopfungsbericht sei uberhaupt nicht naiv. Vielmehr verstehe er den komplexen Beziehungskontext, von dem die naturwissenschaftiche Kosmologie nur ihre Teilansicht wirft.
Um diese Tatsache zu beweisen, setzt Welker zunachst grundsatzlich mit dem Steven Hawkings Buch “A Brief History of Time: From the Big Bang to Black Holes” auseinander. Und dann stellt Welker die neue alttestamentliche Interpretation von Benno Jacob, Bernd Janowski vor als die Quelle des komplexen Zusammenhnags des Schopfungsbrichts. Im Anschluss an diese neue biblische Interpretation sucht Welker, zu zeigen, dass der Zugang zur theologischen und sachlichen Implikationen fur solche Leute blockiert wird, die die Schopfung nur im Bezug auf dem ursprunglichen Vorfall oder nur im Perspektive auf ein oder zwei Zusammenhangssystem auffassen wollen. Von den verschiedenen Ereignisbeziehungen und Lebensbeziehungen schafft “Schopfung” solche komplexe Einheit. Der Schopfungsbericht schafft die Einheit, indem er Gottes Tagen und Stunden, Gottes Licht und Gottes Lebensrhythmus und die Zeit, das Licht und die Lebensbezihungen auf dem Boden unterscheidet und zugleich miteinander verbindet. Nach Welker fasst die prietsliche Schrift von dem Schopfungsbericht die differenzierten Verhaltnisse weitentfernt von den naiven uberholten Weltanschauungen, die wir heutzutage physikalisch, biologisch und kulturtheoretisch im weitesten Sinnen zu beschreiben versuchen. Der Schopfungsbericht der priesterlichen Schrift beschreibt die schopferische Tatigkeit detailiert unterscheident, um zu vermeiden, “alle Dinge” und die Produktion des Individuums irgendwie naiv auf Gott zuruckzufuhren. Nach Welker zielt die Shopfung eher vonvorherein auf die Gemeinschaft Gotte speziell mit den Menschen und universal mit der Geschopfe und somit auf Gottes Erkenntnis und die Selbsterkenntnis des Mens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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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웨슬리의 부(富)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감교회론 연구 ―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저자 : 박영범 ( Park Young Bum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1-18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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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교회의 진지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재물과 부(富)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이다. 이 논문은 현대 교회론적 방법론을 통해서 웨슬리의 재물과 부의 이해를 재구성해보려는 시도이다. 웨슬리는 그 당시의 교회와 사회적 질문에 성서적인 대답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이런 그의 대답을 바탕으로 웨슬리의 교회론을 현대교회론의 한 시도인 공감교회론의 관점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렇기에 먼저, 1) 특별히 필자가 추구하는 공감교회론의 중요한 동기인 '조언으로서의 교회론'을 간략히 서술한다. 방법론으로는 알프레드 예거의 교회론적 모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방법론에 따라서 2) 당시 웨슬리의 교회론적 설교가 영국 사회와 교회에 강력한 조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논할 것이다. 또한 3) 웨슬리의 교회론적 조언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또한 하나의 중요한 조언을 제시하였음을 밝히고자 한다.


One of the serious Issues the Korean churches are facing is about how to truthfully understand the property and wealth from the Christian perspectives. This paper attempts to reconstruct Wesley's understanding of this question through an ecclesiological methodology. Wesley made clear the biblical answers to the questions of the church and society at that time. Based on his discussions and arguments, we study whether his ecclesiology can be applied to the viewpoint of 'ecclesiologi of compassions,' one of modern ecclesiological attempts.
First of all, 1) I will briefly deliberate the idea of the ecclesiology as church's counseling(Kirchenberatung), which is an important motive of 'ecclesiology of compassions' that I have pursued in particular. Alfred Jaeger's ecclesiological model was used as a methodology. Following this methodology, I will discuss 2) how Wesley's sermons in the congregation at that time served as powerful counsels to the then British society and the church. Expanding his case in point, 3) this paper will suggest that Wesley's ecclesiological advice(Kirchenberatung) is still valuable in our churches today and has also provided important counsels for modern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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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과 이웃사랑 :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이론에 견주어 살펴보는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

저자 : 이인미 ( Lee Inmee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7-22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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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70-80년대 한국사회에서 민중이 행위자로 나섰던 때 그 민중의 행위를 이야기로 열심히 전파한 민중신학자들의 신앙적 동기에 관심을 둔다. 물론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사건 현장에 직접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민중신학자들은 스스로를 민중이나 역사적 주체로 부르지 않았다. 민중신학자들은 자신들을 민중에 동일시 하지 않았다. 이 논문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올바랐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우선적 역할이 '이야기하기' 임을 정직하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이론에 비추어볼 때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틈새”(아렌트의 용어)에 항상 충실히 앉아있었다. 아렌트의 용어로 설명하면 관찰자이자 이야기꾼 노릇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중신학자들에게 자연스럽고 적합한 것이었으며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볼 때 타당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민중신학자들의 그 같은 활동의 동기를 예수의 두 계명 중 하나인 '이웃사랑'에 연결한다. 즉,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은 민중 신학자들이 민중과 “함께 행위한”(아렌트의 용어) 사랑의 행위를 종합적으로 그려낸 이론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렌트의 이야기이론은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이 지닌 그 같은 장점을 아주 잘 드러내어준다.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각도로 살펴보는 이 논문의 학술적 의의는 첫째, 그간 민중신학이 자주 다루지 않았던 '민중미화의 위험성' 문제를 민중신학의 원칙과 기치와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며 다룬 진지한 접근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이 논문이 언어 · 문학, 혹은 정신분석학 영역에 관한 지식을 '신학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매순간 역사로 지어져가는 우리의 일상과 민중사건 현장을 '독자적으로 관찰하고 성찰하는' 방법론으로서 행위중심의 이야기를 강조하였다는 데에 있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이야기를 이웃사랑 행위에 연결하여 풀이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였다. 이 논문은 민중신학의 이야기신학 이론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각도로 살펴보며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시함으로써 민중신학계에 기여하고자 한다.


In this essay, the author attempts to prove that so-called 1st generation Minjung theologians were as storytellers when Minjung were as actors in South Korean society in 1970-80's. The author's attention is what was Minjung theologians' inner motives of becoming storytellers at that time. As we know, 1st generation Minjung theologians were actors too. But then they didn't call themselves as Minjung, i.e. the subject of history which means actors. Of course Minjung theologians went into the site of many Minjung events and acted together with Minjung, however they didn't identify themselves with actors or the subject of history in those days. The author sees that's right for political. Because they faithfully admitted that their priority was storytelling.
From the point of view of Hannah Arendt, a political thinker, actually Minjung theologians always have been trying to sit “in-between”(Arendt's term) Minjung. For them, Minjung theologians, that was spontaneous, proper, and relevant to their Christianity.
The author considers that Minjung theologians have carried out 'love of neighbor,' one of the greatest commandments that Jesus Christ have told his disciples. According to Story theory by Arendt, that's for very sure. Therefore the author emphasizes that Minjung theologians' Iyagi(Story) theology was a love theory, and was an expression of “acting in concert”(Arendt's term) as spectators at Minjung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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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를 생산하는 경제적 활동의 기독교적 의미

저자 : 황돈형 ( Hwang Donhyung )

발행기관 : 한국조직신학회 간행물 : 한국조직신학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67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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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 입장에서 '부' 자체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교부시대로부터 중세기까지 전반적 차원에서 '부'에 대한 문제는 윤리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부로 인한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를 추구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정당화되었는가를 묻고자 하였다.
먼저 자본주의가 발생하는 가운데 발생한 기독교와의 관계성을 살펴보았다. 특히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기독교의 경제적 이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중세기로부터 종교개혁 시대를 통해서 정리하였다. 그리하여 부를 생산하는 경제적 활동이 개신교에 의해서 신앙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게 된 것을 밝혔다. '부'를 이루는 것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인격적 자기 긍정이 된 것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요구 가운데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이해함으로써 기독교적 차원의 경제관이 어떻게 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복잡한 현대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점은 경제적 행위의 주체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먼저 다양한 형태의 개입을 통해서 경제적 현상을 통제하는 국가보다는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개인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경제적 주체는 인격적으로 정의로운 행위를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으며,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을 이루어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주체가 수행하는 능동적 경제행위를 기본적으로 슘페터를 통해서 파악하였다. 즉 그에 따르면 기업가는 창조적 파괴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경제적 행위를 수행한다. 그리하여 기업가의 경제적 행위는 물량적인 사유재산의 확장으로서의 욕망 충족이 아니며, 주어진 경제적 환경에서 새로운 차원의 경제적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파악된 기업가의 모습은 오늘날 기독교적 주체가 이루는 경제활동의 가능성과 상응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언제나 창조적 개방성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활동이란 언제나 미래적인 차원에서 자아의 인격적 성취뿐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이를 위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부를 추구하는 경제적 활동이 기독교적 차원에서 명확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행위가 되기 위해서 세 가지 차원을 반성하고자 하였다. 1) 개인의 인간성과 연관된 경제활동, 2) 생산과 소비의 연관 관계에서의 공동체성, 3) 경제적 활동과 자연과의 상관성.
이러한 숙고를 통해서 경제적 활동은 단지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기독교적 차원에서 사회적 정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In sofar as the economic activity has been not regarded as the constituting activity for a necessary condition of salvation, there has been not the certain Christian ethical judgement about the wealth itself. Therefore, for much of history it has been conceptualised as simply a ethical issue among many others. But today, it is acknowledged that economic perspective is a decisive factor to understand the present society at all.
To recognize the Christian attitude toward the economic activity which pursues wealth, it is assumed that a Christian basic viewpoint about the economic success is transformed according to the change of socio-political structure from the middle age through the reformation to the modern age. In a word, while the economic desire for wealth itself was treated as ethically bad in the middle age, on the contrary, after the reformation age, it became to be respected as a sign of God's blessing. Such a changed viewpoint of the economic wealth and success was attributed as a believer's assignment for his(her) meaning of life. The economic success was not aimed for the fulfillment of personal desire of possessions. but accepted as a responsibility of believer for God's glory.
In today's economic situation as a 4th industrial revolution age, as a Christian, we must, consistently with the conversation with the modern philosophers, keep the economic value judgement that the economic achievement must be for the glory of God, and also must provide account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conomic growth and economic redistribution. In order to elucidate and confront today's economic tasks, it is necessary, on the one hand, to minimize the nation's intrude which is against the freedom of the economic activity and, on the other hand, to mobilize and maximize the public awareness for the personal responsibility to achieve the admitting relationship with each other. Also, in the work of Joseph Alois Schumpeter, we can find a recognition that the economical activity could be defined as a co-work within the creative activity of God for the world. Moreover, following the new situation of modern industrial movement, we find a recognition of the God's way to perpetuate the economic welfare. It is hanged upon the three dimensional relationships within the economic activity: the personality of labour, the close relationship of economic activity for the local community, the reasonable and harmonic setting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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