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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ANGSARON (The Western Histor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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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0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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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8)~14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623
서양사론
146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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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북미 대륙사와 정착민 식민주의에 비추어 재해석한 미국 연방제의 기원

저자 : 김성엽 ( Kim Sung Yup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49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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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역사학계에서는 미국 헌정체제의 형성 과정을 건국기 엘리트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18세기 영제국에서부터 이어진 보다 길고 점진적인 정치와 제도의 변화, 그리고 민중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사회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이 활기를 띄고 있다. 미국의 헌정체제 중에서도 연방제의 수립은 특히 광대한 영토를 놓고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정치적 작업을 수반했기에, 그 사회사적 기원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미 대륙의 여러 원주민과 정착민, 복수의 주 정부와 연방 정부 등이 서로 갈등과 타협을 벌이며 건국기에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 나간 과정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18세기 북미 대륙사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근래 연구들과 정착민 식민주의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유산을 강조하는 최근 연구들에 비추어, 건국기 내륙정착민들의 분산되고 적극적인 식민 팽창과 정치적 요구가 미국 연방제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독립혁명 직전의 영제국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건국기 미국 연방정부의 정치지도 자들도 원주민들과 가급적 평화적인 관계 속에서 점진적이고 질서정연하며 중앙화된 영토 팽창을 추구했으나, 이런 기도는 내륙 정착민들의 무법적이고 공격적인 식민주의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곤 하였다. 신생 연방정부는 취약한 중심부의 권력만으로 주변부를 통제할 수 없었기에, 결국 주변부 정착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면서 비로소 제한적인 중앙집권화와 체제 안정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는 곧 정착민들의 지역 내 자율성을 상당 부분 용인하면서, 그들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식민 팽창을 하는 데 대해서만큼은 연방정부가 군사적, 외교적, 재정적 지원을 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형성된 새로운 연방제의 기틀은, 원주민의 자주권을 철저히 배제하고 그들의 땅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사유지와 사회를 건설하며, 이에 앞장선 식민자들의 권리를 국가의 최고 권력으로 보장해줌으로써 새로운 식민지들을 속속 연방에 포섭시키고 국토를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Recent historical scholarship on American constitutionalism has underlined the significance of founding-era popular constitutionalism and the British imperial constitution's legacy. These studies open up new ways to explore the constitutional system's evolution by placing it in a broader socio-historical context and a longer trajectory of politico-institutional development. The origins of the U.S. federal system, in particular, can be seen in a new light by following this approach. Given that the political and constituti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republic's center and peripheries lay at the heart of the federal system, a full explication of its historical origins would have to take into account the complex interactions and shifting balances of power among multiple indigenous groups, settlers, and imperial, federal, and state governments throughout the later half of the eighteenth century. By bringing together recent historical studies that foreground the staggering sociopolitical plurality of the eighteenth-century North American continent with theoretical studies that explore the far-reaching impact of settler colonialism on the development of early American society, culture, and politics, this essay analyzes how the decentralized but aggressive colonialism and political demands of founding-era settlers impacted the shaping of the U.S. federal system.
Much like their counterparts in the earlier British American Empire, the federal leadership of the newborn United States initially sought to steer territorial expansion in a centralized, gradual, and orderly fashion by pursuing peaceful relationships with the powerful indigenous nations of the interior. Such centralizing ambitions quickly proved futile, however, in face of the often lawless and violent colonial expansion led by settlers. Unable to control the peripheries with its meager authority, the incipient federal government ultimately managed to attain a degree of centralization and stability only by acceding to most of the settlers' demands. The result was a de facto constitutional contract between the nation's center and peripheries in which the settlers, in return for pledging allegiance to the union, would enjoy both local autonomy in most legal and administrative matters and strong federal military and diplomatic support in fighting off Native Americans. From the outset, then, the American federal system was firmly committed to the continued dispossession of indigenous people, awarding the autonomous colonizing efforts of settlers by upholding their political and constitutional rights with the federal republic's highest authority, and in return continually enlarging its boundaries by adding new colonial states built by settlers.
(Seoul National University / sungyup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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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제국의 동양학과 문화적 식민주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극동연구원(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과 식민지 통치성, 1900-1939-

저자 : 권윤경 ( Kwon Yun-kyou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0-90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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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극동연구원(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은 1900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설립된 현지 동양학 연구기관이었다. 프랑스 제국의 연합 정책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식민지 통치성이 발달하는 가운데, 식민지 총독부에 소속된 순수 학술기관이었던 극동연구원이 어떻게 식민통치와 연루되었는지, 그 속에서 학문과 통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정의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이다. 1장에서는 극동연구원이 식민주의 기관이었느냐 순수학술기관이었느냐 사이의 논쟁으로부터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2장에서는 극동연구원의 설립 과정과 기본 구조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고고학, 박물관학, 서지학, 민족지학 등에 걸친 극동연구원의 여러학술과 전시 사업을 조명하며, 4장에서는 극동연구원의 베트남인 연구원들을 통해 이 기관이 예기치 않게도 문화적 “접촉 지대”가 된 정황을 살펴본다. 결론인 5장에서는 이를 종합하여 극동연구원을 통해 조망할 수 있는 식민주의 통치성과 학술기관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이를 통해 식민주의의 자장 속에서 극동연구원이 체화한 문화적 식민주의의 다양한 작동방식을 보여주고, 이 과정에서 식민정부, 극동연구원과 프랑스 학자들, 베트남 매개자들 사이에 나타난 상호작용의 양상을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극동연구원이 견지한 일견 비정치적이고 순수한 학술연구 활동은 식민지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식민지인들과의 문화적 교감 양쪽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식민지 통치성 내에서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식민통치를 떠받쳤다.


In 1900, the 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 (EFEO) was established in French Indochina as a local research institute for Oriental studies. This paper examines how the EFEO, a supposedly disinterested academic institution supervised and financed by the colonial government, engaged in colonial rule and how it embodied the new colonial govenrmentality as demonstrated in the colonial policy of the association. Chapter 1 provides an overview of the prior studies of the EFEO and deliberates on how to dissolve the dichotomous framework that defines it as either a tool of colonial governance or a purely academic institution. Chapter 2 examines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the EFEO and its basic structure until 1920. Chapter 3 reveals the various academic projects of the EFEO, including archeology, philology, bibliography, museology, and ethnography. Chapter 4 examin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e EFEO unexpectedly and unintendedly became a “contact zone” between the two cultures through Vietnamese researchers used as auxiliary staff. In the conclusion, this paper analyzes how the EFEO was implicated in the project of new colonial governmentality pursuing scientific knowledge of the colonies as well as empathic communication with the colonized, thus surreptitiously supporting the colonial rule via its seemingly non-political and purely academic research activ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 yunkw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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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식민지 사회의 공론장 형성과 새로운 젠더 문화를 향한 모색 -1900∼1930년대 베트남을 중심으로-

저자 : 정재현 ( Jeoung Jae-hyu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1-12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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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지배는 기존의 지배층이 쥐고 있던 정치 권력을 박탈함으로써 이들이 지탱하던 베트남 사회의 전통적인 젠더 문화에 균열을 가져왔다. 식민 지배 하에서 베트남의 지식인들은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개인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새로운 젠더 문화의 정립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젠더 문제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1920∼1930년대에 크게 성장한 베트남어 신문과 출판물을 매개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에는 식민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특히 1929년에 사이공에서 창간한 주간지 『푸느떤반(Phụ nữ tân văn)』을 비롯한 여성 신문들은 여성들이 글을 쓰는 경험을 획득하고, 사회 문제와 젠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였다.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서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와 관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젠더 문제와 사회·민족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논쟁은 그 자체로 식민지 베트남 사회의 '근대성'을 체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Depriving the Vietnamese ruling classes of political power, the French colonization, which began in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dynamically impacted the traditional Vietnamese gender culture. Under the colonial rule, the Vietnamese intellectuals sought to develop a new gender culture to regain their independence, create a better society, or obtain individual freedom. Thus, the debates on the question of gender occurred through press and printed materials in the Vietnamese language, which grew considerably 1920-1930. Women intellectuals, trained in colonial schools, also engaged in these debates. Women's newspapers, such as Phụ nữ tan văn, a weekly publication established in Saigon in 1929, provided opportunities for women to experience writing and expressing opinions on social and gender issues. On these newspapers, the family institutions and practices were criticized, the position and role of women in society debated,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ender issue and the society or the nation contemplated. These debates embody the “modernity” of the colonial Vietnamese society.
(Korea University / jeoung.jaeh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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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본제국의 국제·식민박람회 사용법 -1910년 일본-영국박람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육영수 ( Yook Youngsoo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2-153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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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10년 일본-영국박람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 사례에 초점을 맞춰 일본제국이 국제-식민박람회를 식민지 문화통치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정과 그 권력효과를 분석·비평하는 것을 기본목표로 한다. 메이지 일본은 중일·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권 '제국'으로 도약했고, 일영박람회를 공동주최함으로써서구국가들이 독점했던 '제국 클럽'에 새내기로 가입했다. 영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무역 증진과 문화교류를 꾀하는 축제라기보다는 오래된 제국과 신출내기 제국이 식민지 통치의 전략과 지식-권력을 상호교환하면서 세계 질서와 세력균형을 조율하려는 의도가 일영박람회의 본질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식민지화가 박람회 기간에 대외적으로 공표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일본제국이 정교하게 작성한 국제정치적인 시나리오의 해피엔딩이었다.
1929년 조선박람회는 서구열강이 세계·식민박람회를 통해 축적했던 식민지 문화통치의 전략과 지식-권력을 일본제국이 모방·전유·재발명한 문화정치의 결정판이었다. 한국어 언론매체는 조선박람회를 이용한 조선총독부의 경제적 착취와 '가짜-유사 전통 만들기'를 고발하면서 '식민지 민족주의'를 '위로부터' 불어넣었다. 다른 한편. 조선박람회가 제공하는 스펙터클에 환호한 많은 조선의 보통 사람들은 근대화의 욕망과 불가피성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성'의 잠재적인 자원병 또는 징집병이 되었다. 식민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서 일본제국은 서구열강의 어깨 위에 놓인 '백인의 짐'보다도 더 무거운 '황인종의 짐'을 마다하지 않는 동아시아권 문명화 사명의 전도사임을 과시했다. 본 연구 결과는 두 가지 효과를 겨냥한다. 첫째, 이 사례연구가 일본제국과 서구열강의 식민지 경영술을 비교·재검토하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둘째, 탈-식민시대에 맞춰 진화하는 새로운 제국의 '문화 권력'을 해체하고 무효화시킬수 있는 대항-헤게모니 모색과 실천에 작으나마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The paper observes and analyzes how the Japanese Empire imitated·appropriated·reinvented international and colonial exhibitions as a cultural tool of colonialism by focusing on the cases of the 1910 Japan-British Exhibition and the 1929 Choseon Exhibition. The first half of this paper traces the diplomatic processes after the victory in the Sino-Japanese·Russo-Japanese War, in that Meiji Japan, a new emerging imperial power in the East Asian region, had joined the 'Imperial Club', using the Japan-British Exhibition as an opportunity to announce officially the annexation of Korea to obtain the recognition from the Western powers. The second half of this paper reexamines and reevaluates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Choseon Exhibition as an effective example of the Japan Empire's implantation of 'cultural rule.' Whereas the Choseon Exhibition had stimulated the 'colonial nationalism' propagated by the major nationalist daily newspapers by highlighting the negative/exploitative aspects of the event, a multitude of ordinary Koreans who visited the exhibition subconsciously nourished and desired for the inevitability of modernity, thus breeding a seed of 'colonial modernity.' This paper concludes that 1) the Japan-British Exhibition and Choseon Exhibition well demonstrated how the Japanese Empire successfully positioned and justified itself as a nation that willingly took a 'yellow-man' burden' of civilizing neighboring countries.; 2) the steel gun-boat and machine gun are not exclusive 'tools of empire', but 'world/colonial fairs' and other international events such as the Olympia are insidious and invincible tools of empire as well. This is truer and more applicable in the so-called post-colonial globalization era.
(Chung-Ang University / waldo@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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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화로의 전환과 '정치주의' 문화전략 -1920~1925년 사이의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저자 : 윤해동 ( Yun Hae-do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4-189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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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주의와 개조론을 3·1운동과 연결해준 매개는 문화론이었다. 그런 점에서 3·1운동은 가히 '문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해도 좋았다. 특히 개항 이후 주로 일본을 경유하여 동아시아에 수용된 독일식 문화개념의 수용과 전파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보면, 3·1운동이 가진 '문화투쟁'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바 있다. 이는 '문화론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는 시대적 변화였다. 이처럼 1920년대는 '문화의 시대'로서 자신의 문을 열어제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문화주의'를 자신의 주지(主旨)로 삼음으로써 '문화운동'의 선봉을 자처하였다.
여기서는 '정치주의' 문화연구를 제안하였던바, 그 핵심은 당대의 문화 혹은 문화론을 시대적 현실에 개입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1920년대의 문화 혹은 문화론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식민지적 우회전략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된다. 정치적 우회전략으로서의 문화 혹은 문화론은 두 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하나는 특수성으로 파악된 문화인데, 이는 곧바로 문화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이리하여 '운동으로서의 문화'가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특수성을 확인하기 위한 문화의 전략이었다. 다른 하나는 부문성으로 파악된 문화인데, 이는 다양한 서브 컬쳐와 일상적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났다.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은 문화가 부문성을 넘어 전체성을 확보하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두 과정이 '정치주의적 문화연구'가 취하는 전략을 통해 확보할 수 있게 된 문화의 시대정신이었다.


Culture was the link connecting the ideologies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and reconstructionism of the March 1st Movement. In this respect, the March 1st Movement may be called “a struggle for culture.” The cultural struggle is particularly prominent set against the reception and spread of the German concept of culture (Kultur) by way of Japan after the opening of doors in colonial Korea. This was a change deserving of the term, “cultural turn.” Such was characteristic of the 1920s, moving towards embracing a cultural era. Using “culturalism” as a key tenet, DongA Ilbo claimed to be spearheading the cultural movement.
Here, I make a suggestion for cultural studies from a political perspective (politicalism), the core of which is that culture must be seen as a political strategy to intervene in the reality of a specific period. In this approach, the culture of the 1920s has a critical status as an oblique strategy toward a political goal. In terms of political strategy, there were largely two perceptions of culture. One was based on particularity, which immediately became the starting point of the cultural movement. Hence, culture as a movement emerged, as a strategy focused on particularity. The other perception was based on a sectional concept of culture, as manifested in the various subcultures and a heightened interest in daily culture. The emphasis on the “national culture” had an intermediary role in moving culture out of particularity and into generality. These two processes represented the cultural zeitgeist created through the strategies as understood in the cultural studies from a political perspective.
(Hanyang University / geobook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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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역사의 과잉과 기억의 부재: 니체의 '조형력'에 대해서

저자 : 송충기 ( Song Chung-ki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0-213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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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약 150년 전에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에서 지적한 대로, 이제 역사의 과잉으로 역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역사학의 기능은 멈춘 지 오래이다. 그러므로 근대 역사학이 실제 삶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근대 역사학은 기억을 역사의 장으로 소환하였지만, 아직까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기억을 이용하는 것일 뿐, 기억이 역사를 대신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하지 못했다. '집단기억'이나 '문화적 기억' 혹은 '집단정체성' 등의 이름 하에서 개개인의 주관적 기억은 억눌려 있다. 그러므로 니체가 말하는 역사의 병(historische Krankheit)을 치료할 수 있는 조형력(plastische Kraft)을 기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주관적 기억을 역사와 집단기억으로부터 해방시켜 기억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As Nietzsche emphasized in “On the Uses and Disadvantage of History for Life” approximately 150 years ago, we are entering an era wherein history is not functioning properly because of the excess of history. Although numerous tragic events have occurred, the traditional function of history to learn lessons from the past has long ceased. Thus, it is questionable to what extent modern history contributes to real life. To cope with these problems, modern history has called memory to the realm of history, but currently, memory has been used for the historical perspective and it has not reached the point wherein memory replaces history. Individual subjective memories remain suppressed under the names of collective memory, cultural memory, or collective identity. Thus, to develop the plastic power (plastische Kraft) to cure what Nietzsche called 'the historical sickness'(historische Krankheit), we should liberate subjective memories of individuals from history and collective memory so that the enriching memories can emerge from the historical crisis.
(Kongju National University / ms2991@ko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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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뱅상 드 보베의 『역사보감』: 망각 된 “고전”을 왜 다시 읽는가?

저자 : 이혜민 ( Lee Hye-mi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4-238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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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수사 뱅상 드 보베가 편찬한 『역사보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대중적인 '고전'은 아니다. 현대 독자들에게는 언어적, 매체적 차원에서 장벽이 존재하며, 학자들조차도 이 방대한 책을 현대어로 번역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백과사전은 중세와 르네상스기 당대의 '고전'으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는 책이며, 중세사와 중세문화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필수적으로 보아야 하는 '고전' 중의 하나이다. 이 역사서는 13세기 탁발수도회의 설교사들을 위한 교재에서 출발해서, 국왕 루이 9세의 후원을 받아 개정을 거치면서 프랑스 왕실을 옹호하는 역사관이 투영되기도 하였다. 역사보감에서는 13세기의 역사 편찬 방식, 지식의 조직 방법, 문화적인 상징, 역사관, 스콜라 시대의 학풍 등이 드러나며, 13세기 이후부터 적어도 16세기까지 후대의 많은 역사서와 성인전에 영향을 주었다.


Written by 13th-century Dominican Friar Vincent of Beauvais, the Speculum historiale is not a popular 'classic' in the common sense of today. For the contemporary readers, impassable barriers exist at the levels of languges and the written medium (that is to say manuscripts and ancient printing versions), and even scholars are never thinking of translating this vast medieval encyclopedic work into a modern language. Nevertheless, this book represents important historical and cultural heritage that contributed much influence during the late Middle Ages and Renaissance. It is also one of the indispensable books for historians to study medieval history and culture. The book was conceived and compiled as a manuel for mendicant preachers of the 13th century and was revised under the auspices of King Louis IX to insert a historical propaganda advocating the French royal power and legitimacy. The Speculum historiale demonstrates the way of historical compilation, the organization of knowledge, cultural symbols, historical perspectives, and scholastic culture in the high Middle Ages. It also influenced many historical works and hagiographical traditions from the 13th-16th century.
(Yonsei University / leeh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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