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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ANGSARON (The Western Histor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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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0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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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8)~144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595
서양사론
144권0호(2020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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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페데리코 곤차가 2세와 줄리오 로마노가 꿈꿨던 '새로운 로마'로서의 만토바

저자 : 구지훈 ( Gu Ji-hoo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4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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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15-16세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였고 이탈리아는 결코 하나로 통일될 수 없는 국가였다. 아라곤 왕조의 통치 하에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이탈리아 남부에 비해 포 강 유역의 이탈리아 북부는 여러 봉건국가와 도시국가가 서로 난립하여 매우 혼잡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주역 중 하나인 곤차가 가문이 다스리던 만토바는 예술후원과 문화 정치가 매우 화려하게 번성하던 곳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예술 문화의 배경 속에 성장한 군주 페데리코 곤차가는 뛰어난 예술가를 후원함으로써 만토바에서의 자신의 권위를 더욱 굳건히 하고자 하였다. 라파엘로가 죽은 뒤, 라파엘로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줄리오 로마노에게 초청장을 보내 그를 만토바로 데려온 후 도시와 궁정 곳곳을 장식하게 함으로써 만토바와 페데리코 곤차가는 더욱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만토바 공작궁 내 '트로이의 방'에 그려 넣은 벽면 프레스코 연작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먼저 대대로 용맹한 용병대장 가문으로 명성을 떨쳐온 곤차가 가문의 명예를 상징하는 프레스코 연작이다. 그리스 혈통을 지닌 가문과의 혼사를 통해 몬페라토의 후작위를 받은 것에 대한 기념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며 나아가 '트로이의 방'을 포함한 신 궁정의 존재는 예술적, 전통적으로나 만토바가 또 하나의 '새로운 로마'임을 강조하고 있다.


The 15th-16th centuries, representing the Italian Renaissance, were a very chaotic era, and Italy could never be united. Compared to southern Italy, which was relatively stable under the Aragonese dynasty, northern Italy in the Po River basin was very crowded with several feudal and urban states. Among them, Mantova, governed by the Gonzaga family, one of the leading players of the Italian Renaissance, was a place where arts support and cultural politics flourished. In particular, Lord Federico Gonzaga, who grew up in the background of fine arts culture since childhood, sought to strengthen his authority in Mantua by sponsoring outstanding artists. After Raphael's death, he was invited by Giulio Romano, the best disciple of Raphael, to bring him to Mantova, where he decorated the city and the courtyard, where Mantova and Federico Gonzaga gained further fame. In particular, the Mantua Duke Palace in the “Room of Troy” into draw The Wall Fresco series is also very politically significant. First, for as a family, a mercenary captain courageously shed its reputation on the Oregon car is a fresco series symbolizing the honor of the family. It is also a work that emphasizes that Manitoba's existence in northern Italy as another 'new Rome', recognizing that Aeneas, who survived and returned from the Trojan War, was an ancient Roman ance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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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헝가리의 공산주의 변용 -'카다리즘(Kádárism, 굴라시 공산주의)' 연구-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6-69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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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리즘'은 일명 '굴라시 공산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 공산주의의 한 양상이다. 헝가리의 수상 카다르는 공산화 이후의 경제문제와 1956년 혁명 후 헝가리 사회의 침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경제 메카니즘'을 추진하였다. 이것은 도입 초기 비교적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공산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카다리즘'은 공산주의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고, 헝가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임시방편적 대책이었다. 따라서 헝가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지 못하였다. 이에 더하여 카다리즘은 공산체제에 만연한 관료주의, 소련 및 코메콘 국가들과 무역 갈등, 관료사회의 부패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헝가리는 '카다리즘'을 통하여 자본주의체제의 일부분을 이미 경험하였고, 이 교훈을 통하여 1989년부터 시작된 '체제전환'의 과정을 유혈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Kádárism, also known as Goulash Communism, was a form of reformed communism. The Hungarian leader János Kádár instituted what was termed the 'New Economic Mechanism(NEM)' following the Hungarian uprising of 1956. The NEM's goal was to overcome economic and social problems that arose subsequent to communization. Although initially comparatively successful, the NEM failed to resolve the fundamental problems of communism. It did not represent change in the core of economic policy, and was composed of a temporary set of expedients in response to basic issues. Thus, the structural problems facing Hungary's economy were left unresolved. It did not resolve the endemic bureaucraticism, or the trade conflicts with the Soviet Union and other states of the COMECON, nor the rampant corruption of the bureaucracy. It was thus not ultimately successful, but Hungarians experienced some aspects of capitalism as a result of Kádárism, and the lessons they learned from it allowed for a peaceful systemic transition from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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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돌봄노동이주의 역사적 기원 -식민지 경험과 간호노동력 생산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저자 : 나혜심 ( Na Hye-sim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0-102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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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70년대에 일부 서구 유럽국가와 당시 제3세계 국가 사이에 가톨릭 사제가 중개하는 여성노동력 이주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예비교육생이며 그런 의미에서 교육을 통해 노동자로 발전하는 과정을 서유럽에서 경험하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중개자가 국제적 범위에서 간호라는 돌봄노동자를 양성하고 활용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기독교 성직자였다. 그런 이유에서 일련의 과정은 여성노동자가 왜 20세기 중반 이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중세 이래로 서구 사회에서는 기독교 교회와 구성원이 공공영역에서의 병자돌봄의 책무를 주로 감당했다. 근대에는 병자돌봄 분야는 세속화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는 여성 돌봄 노동력 생산에 깊이 간여하게 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의료선교를 통해서였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확장과정에서 직접적 통치 식민지가 되었거나 간접적인 문화 식민지가 된 곳들의 간호인력 양성에 이들의 의료선교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기독교 선교과정으로 고유의 간호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던 지역의 돌봄노동은 서구적으로 변화되었고 서구 근대화의 경험은 식민지역에 이 노동에 대한 변화된 이미지를 갖게 했다. 간호노동은 봉사와 사랑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노동자에게는 희생과 순종을 미덕으로 가르쳤다. 이와 같은 간호노동의 의미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20세기 중반 서유럽에 간호노동력 부족이 발생했을 때, 비서구 지역으로부터 서구지역으로 여성 돌봄노동이주가 촉진되는 배경이 되었다. 현대 세계에서의 간호노동 이주에는 수요지역은 물론 공급지역 모두에서 선교라는 문화적 제국주의가 중요한 역사적 과정으로 존재했다.


During the 1950s and 1970s, the migration of nursing students between Western capitalist countries and then Third World women was largely conducted by Catholic priests. This process provides a historical explanation of why professional care workers, women workers, migrated from the Asian countries to the West. Since the Middle Ages, the Christian church, priests and orders in Western society played a social role in caring for the sick. And parts of the nursing culture created by these traditions has been extended to other parts of the globe in the process of political or cultural colonial expansion. Through this process, the nursing culture of non-Western regions was largely changed. Nursing labor came to mean service and love, and workers became virtues of sacrifice and obedience. The cultural imperialism of the mission has created a psychological and cognitive foundation that positively assists the migration of underdeveloped nursing workers to Western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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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빅토리아 시기 월경에 대한 의학담론과 여성의 '구성된 몸'

저자 : 배혜정 ( Bae Hye-jeo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3-13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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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빅토리아 시기 의학 속 월경담론을 분석하여, 여성의 몸에 대한 '과학적' 권위를 행사하게 된 근대 의학담론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역사적 시각에서 월경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병리적 현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오랫동안 월경은 침묵의 대상이자 금기의 표적이었음에도 여성의 몸과 여성성을 설명할 때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 몸이 실은 다양한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왔듯 월경 또한 역사 속에서 늘 같은 모습이지는 않았다. 근대 초까지 월경혈에 대한 폄하가 분명 존재해 왔어도 월경 기능 자체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으로 간주된 반면, 진정한 과학의 시대를 연 19세기에는 월경이 병리학적 현상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기능상 남성의 몸에 비해 불완전하다고 본 여성의 몸이 남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몸이자 온갖 병에 취약한 몸으로 새로이 '과학적으로' 재구성된 탓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빅토리아기 월경에 대한 의학담론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인 월경이 어떻게 젠더 정치학이 작동하는 무대가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월경을 통해 여성의 몸과 마음의 불안정성 및 열등성을 과학적으로 개념화한 의학담론은 여성을 비정상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규정했다. 그 결과, 의학의 지속적인 개입과 감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편화했음은 물론이고, '여성은 공적 영역보다 사적 영역에 적합하다'는 근대적 젠더 이데올로기를 영속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orrelation of the modern medical discourses with a gender ideology, by analyzing the menstrual discourses in the Victorian medical science. And it explores how a woman's body was constructed, by tracing the changes of the understanding of menstruation from a physiological phenomenon into a pathological one.
While the function of menstruation itself was considered a natural and necessary process until the early modern period, the 19th century medical discourses 'scientifically' reconstructed the woman's body as qualitatively different from a man's body and more vulnerable to diseases. Through a set of assumptions 'that a woman's reproductive function defines her character, position and value, they generalized the perception that the medical control over the woman was necessary, and helped to strengthen the modern gender ideology, 'that women should be suited to the private sphere, not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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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스마일 위르뱅(Ismaÿl Urbain)의 동양 관련 담론 연구

저자 : 양재혁 ( Yang Jae-hyuk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6-164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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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유색인 생시몽주의자 이스마일 위르뱅의 동양 관련 담론을 분석하고자 한다. 위르뱅이 추구하였던 프랑스인들과 무슬림들의 연합의 무대로서의 아랍 세계, 특히 알제리에 대한 전망은 동양에 대한 당대의 프랑스인들은 물론 다른 생시몽주의자들의 시선과도 구분되는 고유한 성격을 드러낸다. 동양인에 대한 위르뱅의 태도는 대부분의 생시몽주의자들이 지녔던 서구 선진 문명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기반을 둔 아랍인에 대한 '우월'적인 시선과는 차별되는 공감적 성격을 보여 준다. 위르뱅의 동양 경험은 인종과 문명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을 바탕으로 견고하게 수립된 정체성에 익숙한 다른 생시몽주의자들의 경험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격을 보여준다. 위르뱅 역시 다른 생시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문명에 대한 위계적 이해와 동양과 서양 간의 본질적인 대립적 구분 그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르뱅의 사상에서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analyze Ismaÿl Urbain's Oriental discourse, based on the respect of the other's cultures and beliefs. Urbain's descriptions on the Oriental societies, sometimes betraying the limitations of the Saint-Simonians' Orientalist discourse, are distinguished from those of other Saint-Simonians used to advance ethnographic prejudices toward the Orient. Criticizing prejudice against the Arabs and Islamism, Urbain proposed a different vision of the relations between the Orient and the Occident than military conquest. It is true that we could see a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other cultures based on respect in the notion of the association of the Orient and the Occident that Urbain proposes.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Urbain as well as the other Saint-Simonians do not oppose the civilizing mission of the Occidental nations in the Orient, understood to be backward thinking in the Saint-Simonian hierarchy of human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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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세기 후반 잉글랜드 광교파와 자연종교

저자 : 주의돈 ( Joo Eui-do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5-1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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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존 윌킨스와 존 틸럿슨의 저작을 통해 17세기 후반 잉글랜드 광교파가 자연종교에 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광교파가 사용한 자연종교의 관념은 인간 이성에 기초한 것이며 근대적인 합리주의의 발전과 세속화에 기여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하지만 윌킨스와 틸럿슨이 생각한 자연종교의 내용과 근거, 그리고 그들이 자연종교의 관념을 활용한 방식을 살펴본다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윌킨스와 틸럿슨은 인간 본성에 자연종교의 원리가 새겨져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신에 대한 예배의 의무, 타인에게 정의를 행할 의무, 내세의 심판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타종교와 비교했을 때 기독교가 인간 본성에 기초한 자연종교의 원리와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에 탁월한 종교라고 주장했다. 또한 기독교는 자연종교보다도 뛰어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가 신적 계시를 통해 초월적 진리를 더 명확하게 알려주고, 신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은총을 통해 종교적 의무의 실천을 돕기 때문이었다. 결국 광교파의 자연종교는 계시종교인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한 도구의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광교파는 지적인 영역의 세속화를 주도했다기 보다는 전통적 계시종교의 수호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examine the nature of natural religion of English Latitudinarians in the late 17th century through the writings of John Wilkins and John Tillotson. The notion of natural religion used by Latitudinarians has been sometimes considered to be based on human reason and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rationalism and secularization. However, we may have a new perspective when we examine the contents and grounds of natural religion of Wilkins and Tillotson and the way they used the notion of natural religion. They argued that the principles of natural religion were inscribed on human nature, and the principles included the duty to worship God and to do justice to others and the existence of divine judgment after death. They said Christianity was an excellent religion because it agreed best with the principles of natural religion. Also, Christianity was better than natural religion because Christianity showed transcendent truths more clearly through divine revelation and because it enabled practicing religious duty through the special grace of God. Thus, Latitudinarians' natural religion was a tool to support Christianity. In this respect, Latitudinarians were advocates for traditional revealed religion rather than promoters of intellectual secular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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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두 베를린, 하나의 생활권 -195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 최승완 ( Choi Seung-wa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2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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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공동 관리지역이 되었다. 그로 인해 동서 베를린 간에는 지하철과 도시철도(S-bahn)가 운행되었고, 주민의 상호왕래도 가능했다. 주민들은 쇼핑, 문화예술 공연 관람, 혹은 가족친지를 만나기 위해 상대편 베를린을 자주 방문했고, 그 곳에 취업해 통근도 했다. 즉 두 지역은 정치적, 행정적으로는 분단되었지만 주민의 일상생활권은 분리되지 않았다. 분단에도 불구하고 동서 베를린 주민은 경계선을 넘어 끊임없이 접촉했고, 양 지역은 다방면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베를린의 특수상황은 1949년 분단 이후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수립될 때까지 분단의 고착화를 지연시키는 데 기여했다. 나아가 동독사와 서독사로 분리 서술되어온 독일 분단사를 부분적으로 동서독 공동의 역사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Berlin, the capital of the Nazi Germany, became a shared administrative area of the U.S., Britain, France, and the Soviet Union after the Second World War. Under the circumstances, the subway and S-Bahn could be operated between East and West Berlin and mutual association between the residents was possible. It was fairly common for them to visit each other in either side of Berlin for shopping, watching performances, and visiting families. Even their workplace was on the other side. Thus, the living sphere of both Berliners was not separated while two political and administrative systems were divided and constantly against each other. Thanks to this special circumstance, East and West Berliner interacted across the border and both Berlins constantly influenced each other despite the division and the Cold War. This prevented the fixed division between East and West Berlin from 1949 until the building of Berlin Wall in 1961. Also, it opened up the possibility for German history written separately as the history of Eastern and Western Germany, to be partially considered as the common history of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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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래를 위한 '역사학 선언'과 빅히스토리

저자 : 김기봉 ( Kim Gi-bo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6-255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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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빅피쳐를 그려 내는 기획으로 등장한 것이 빅히스토리다. 하지만 기존의 빅히스토리는 과학지식은 너무 큰 반면, 스토리텔링은 너무 작다는 한계를 갖는다. 본 논문은 그런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을 주장하는 한편, 역사학자들에게 빅히스토리를 역사학의 한 분야로 포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


In the middle of the turmoil of COVID-19,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rethink “what is history?” and seek a Big-history model on behalf of the sustainability of human civilization. The COVID-19 cases will eventually come to an end. However, the fight between viruses and humans will not be over; instead, it will become more advanced like a battle of contradictions between the sword and the shield(矛盾) and will turn into a larger invisible war. Science is not conquering the virus, but helping its evolution. Why does this paradox occur, and where does the dialectic of such contradictions lead the civilization of mankind to?
In 2014, American historians Jo Guldi and David Amitage declared the “History Manifesto” that to answer the major questions faced by humans in the 21st century, history should move away from short-termism and return to the lougue-durée providing future prospects. Big-history is a project seeking to render a comprehensive perspective that depicts the process from the Big Bang to the present and looks forward to the future asking major questions about human history. However, the current Big-history has the inherent problem of embracing too much scientific knowledge and too little human storytelling. This paper argues for a “humanistic turn” of Big-history, and urges the historians to embrace Big-history as an area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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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평: 허승일, 『로마사: 공화국의 시민과 민생정치』 (나녹, 2019)

저자 : 김칠성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2-272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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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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