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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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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6)~73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981
한국한문학연구
73권0호(2019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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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목은 이색의 '물'에 관한 상상력과 표상화 양상

저자 : 김보경 ( Kim Bo-kye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4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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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牧隱 李穡(1328-1396)의 시문에 나타난 물의 상상력과 그 표상화 양상을 고찰하여 고려후기 지적 전통과 인문학적 통찰을 새롭게 조명함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예비 검토로서 물 체험과 물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색이 유년을 보낸 충남 한산은 근원적인 물 체험 공간이다. 그에게 고향 한산은 물로 기억되는 안락하고 충족된 공간, 어머니의 품이다. 청년기에 오갔던 고려와 대륙의 길은 물 체험과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공간으로 외적 도전과 내적 성찰의 양면 가치가 교차한다. 한편 그는 산문작품에서 물의 성질과 보편적 특성을 논파하고, 시에서는 물을 가지고 성리학의 핵심 테제인 본성 문제를 자주 읊었다.
다음으로 이색의 시에 나타난 물의 상상력과 표상화 양상을 강·비·우물 셋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첫 번째는 흐르는 물-강이다. 그는 물의 유동성과 방향성에 주목해 물로써 인간의 본성을 빈번히 읊었다. 특히 그는 물의 흐르다·이어주다·돌아가다라는 특성을 공간 상상력과 시간 상상력으로 구성해 물 상상력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는 내리는 물-비이다. 비는 일상이자 시의 주요 소재이다. 비는 다양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구유하면서 화음을 이룬다. 그의 상상력은 한편으론 귀향(귀거래)의 꿈으로 이끌려가고, 한편으론 내면 성찰과 하늘 이치 탐색으로 이어지며, 또 민생과 사회·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세 번째는 비추는 물-우물이다. 앞의 둘과 달리 이 물은 움직임을 멈춘 물이다. 우물 역시 생활의 일부이면서 정화와 성찰의 표상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물 안에서 자아는 우주와 대면한다. 우물은 동이의 물이나 잔잔한 강물로서 변용되기도 한다.
이색은 고려후기 문학사와 지성사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물은 체험과 철학·문학에서 근원적인 물질 상상력이다. 철학에서는 성리학의 본성론·수양론의 핵심을 이루고, 문학에서는 물의 詩學이라는 가능성까지 생각해 보게 한다. 본고의 논의는 고려후기 인물들의 문학과 지성을 연구하는 데 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ed new light on the intellectual tradition and humanistic insights in the late Goryeo period by examining the aspects of Mogeun Lee Saek's imagination on 'water' and its representation in his literary works.
First, the experience and perception of water were examined for a preliminary review. Hansan, Chungcheongnam-do Province, where he spent his childhood, is a fundamental space to experience water. For him, the hometown is a comfortable and fulfilled space, which is remembered as water, and the mother's arms. The road between Goryeo Kingdom and the continent where he travelled in his youth is a space that expands the experience of water and imagination. That is a place where the dual values of external challenge and introspection meet each other. Meanwhile, he explained the nature and universal character of water in proses, and, in poetry, frequently explained the matter of nature, which is the core thesis of Neo-Confucianism, using water as a material.
The aspects of his imagination on water and its representation in the poems were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such as river, rain, and well to be examined. The first is flowing water - a river. He frequently explained human nature using water as a material, based on the liquidity and directionality of water. It is very impressive the way the imagination on water spreads to the imagination on space and the imagination on time, based on the characteristic of 'flow' in particular. The second is falling water - the rain. The rain creates a harmony with diverse and multifaceted characteristics. The rain plays an important part in everyday life and social companionship, which awakens the dream of returning home (or homecoming). Meanwhile, it leads to introspection and the search for the order of nature, and awakens an interest in people's lives, society and country. The third is reflecting water - a well. Unlike the above two, this water is a water that has stopped moving. A well also has an important meaning as a part of life and the representation of purification and reflection. The self confronts the universe in a well. A well is sometimes transformed into the water in a bucket or the water in a calm river.
Lee Saek is a man at the top of the literary and intellectual history of the late Goryeo period. For him, water refers to the fundamental material imagination in experience, philosophy, and literature. In philosophy, it forms the core of the theory of nature and theory of self-discipline of Neo-Confucianism. In literature, it also evokes the likelihood of the poetics of water. The discussion in this study is expected to be a steppingstone in studying the literature and intelligence of people in the late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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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물에 대한 관조 : 인생에 대한 비유적 사유와 체험

저자 : 이국진 ( Lee Gook-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1-9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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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비유적 사유와 체험을 형상화 한 한국 한문학 작품들은 중국의 문학·철학·사상을 수용하고 변용하며 문학성과 개성을 발휘하였다.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첫째, '인생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라는 시간성에 대한 비유적 사유와 체험은 孔子가 토로한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는 탄식, 漢代 樂府 「長歌行」, 李白의 다양한 시 작품을 수용하고 변용하며 활발하게 형상화되었다. 이는 시조와 판소리로도 이어지며 그 사유방식과 표현법의 보편성과 확산성을 드러내었다.
둘째, '인생은 한갓 물거품일 따름이다.'라는 덧없음에 대한 비유적 사유와 체험은 『金剛般若波羅密經』과 『楞嚴經』의 구절에 의거한 것으로서 한문학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형상화되었다. 고려 후기 李穡은 이러한 비유적 사유와 표현법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祭文과 挽詩를 비롯한 한문학 작품에서도 널리 활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朱熹가 「武夷櫂歌」 三曲의 4구에서 '물거품 같고 바람 앞등불 같은 우리 인생이 가련하다(泡沫風燈敢自憐)'라고 표현한 사실은 인생을 물거품에 비유한 사유방식과 표현법이 사상적 혐의에서 벗어나 보편화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朴趾源의 「麈公塔銘」과 李德懋의 偈頌은 佛家의 사유방식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참신한 발상과 표현미를 더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발휘하였다.
셋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물을 통해 비유적으로 사유하고 체험하는 양상은 '몸으로 직접 물을 건너가는 방법', '배를 안전하게 운행하는 방법', '흘러가는 물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방법'으로 세분화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가운데 '몸으로 직접 물을 건너가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비유한 대표적인 작품은 朴趾源의 「一夜九渡河記」였다. 다음으로 '배를 안전하게 운행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비유한 대표적인 작품은 李齊賢의 「送辛員外北上序」와 權近의 「舟翁說」이었다. 마지막으로 '흘러가는 물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비유한 작품 중에서는 『周易』의 坎卦에서 비롯된 '坎止流行'이라는 용어가 한시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한편 金錫胄의 「觀江亭記」는 흘러가는 강물의 덕성에 주목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용기와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상의 한국 한문학 작품들은 오늘날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기반으로 즉각적인 인식·반응·처리 과정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문학적 유산이 될 수 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적 고민 앞에서 불안감과 상념을 발산·해소하거나 수용·정화하거나 초탈하는 폭 넓은 사유의 장을 제공하고, 존재적 의미를 성찰하고 삶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As the perceptibility and the ability to think are developed, human race has strived to understand and overcome the finite condition and hardships in life constantly. Diverse views of the world and the ontological expressions established by countless religion, philosophy, cultures, arts, etc. of all ages and all countries around the world are essentially the products of such efforts. In this process, the key of the perceptibility and the ability to think that inspired the human race a lot was the metaphoric thinking. Human rare could understand and convey the difficult object or situation easily and cleary through the metaphor and came to explain even the abstract objects and phenomenon.
The representative metaphoric subject that human race has utilized to understand and overcome the finitude, transience, difficulties, hardships in life, etc. was water. The reason why the metaphoric subject 'water' is special is because it is the holistic metaphoric object encompassing the temporality, journey, transience, hardships in life. Feeling that the essential attribute of life and water resembles each other in many ways from the beginning of time, human race could form the bond of sympathy from deep inside of unconsciousness. That is the reason why the way of thinking that compares the life to water has been shared throughout all fields of religion, philosophy, culture and arts.
Sino-Korean literature works contained the metaphoric thinking and experience for life have exerted the literary value and personality by accommodating and the transforming the Chinese literary, philosophical and ideological products based on the common human perception. In this article, its aspect was examined by dividing into the aspect of metaphoric thinking and experience on the temporality of "Life is like a flowing river", the aspect of metaphoric thinking and experience on the transience of "Life is nothing but a bubble", and the aspect that compares and experiences how to live in the world to water. In there, the wisdom of ancestors who wanted to see the problems in life hard to be encountered more comfortably with the metaphoric perspective was contained. In addition, the Sino-Korean literature works exerted the literary bond of sympathy and the personality utilizing the metaphoric subject of water, which seemed to be familiar and old-fashioned at a glance.
Today, the modern people are familiar with the instant recognition, reaction and processing process based on the internet and SNS (Social Network Services). Therefore, it is expected that the Sino-Korean literature works provides the opportunity to relieve, purify and trans cend the anxiety and think widely, and can prepare the opportunity to introspect the meaning of existence and to explore the direction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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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물에 대한 기억과 그 문화 - 제주바다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새미오 ( Kim Saemi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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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주바다를 중심으로 물에 대한 기억과 그 문화에 대해 논술하였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주변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사람들의 인식에서 제주 바다가 어떻게 열리고 또 닫혀졌는가를 살펴보았다. 제주바다는 탐라시대에 활발히 열린 공간이었다. 조선초기까지도 바다는 제주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영역이었다. 조선 인조시기 출륙금지령이 실행되면서 제주바다는 닫힌 공간으로 변하였다. 조선말기가 되어서야 이 조치가 조금씩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독특한 경험으로 제주바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층위로 인식되었다.
외지인에게 제주바다는 단절과 신선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제주는 험악한 유배지였다. 바다 자체가 두터운 창살이었다. 바다를 이용한 제주유배형은 조선시대 가장 극악한 형벌 중에 하나였다. 제주는 바다로 인해 단절된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외지사람들이 편히 오갈 수 없었다. 이에 제주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신선의 공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절과 신선이라는 양면성은 결국 험악한 제주바다가 만들어낸 층위라고 하겠다.
바다는 험했지만, 제주 지역사람들에게는 떠날 수 없는 삶의 공간이었다. 제주에서 남자들은 공물을 바치기 위해, 과거를 치르기 위해, 장사하기 위해 바다를 왕래했다. 표류는 제주사람들에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 가까웠다. 표류로 인한 효자와 열녀들도 적지 않았다. 해녀들은 공물을 받치기 위해 바다 밭을 헤매였다. 이들에게 제주바다는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제주바다와 함께 달달했던 단물의 추억도 함께 살펴보았다. 제주도 시내는 대부분 건천이기에 샘물이나 용출수를 길어서 먹었다. 이때 물허벅이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렇지만 남자이든 여자이든 괴롭기는 매 일반이었다. 쌀농사를 짓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던 것 역시 제주에서는 독특한 것이었다. 제주는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물은 삶의 공간이자 생명의 원천이었다. 현재는 문화공간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This paper examined memories about Jeju seawater and culture concerning the water. The seawater presented differently to Jeju islanders along with changing social circumstances. In Tamla age, Jeju seawater was a vividly open space. Until the early stage of Chosun period, the water was a place where diverse activities were freely made by islanders. Jeju seawater transformed into a closed space during the Incho period of Chosun by the embargo for people going to the mainland. The embargo appeared to smooth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Such different experiences with Jeju seawater led to people perceiving the water in diverse ranged spectrums.
Jeju seawater was identified holding two images to mainlanders. They were the images of both isolation and taoist hermit. Jeju was a harsh place of exile. The water itself was a thick bar. The punishment of exile to Jeju was among harshest damnations during Chosun period. Jeju was a closed place with tough seawater; accordingly, mainlanders found it difficult to travel to Jeju safely and conveniently. Concerning this, Jeju was often represented a place of taoist hermit with Halla Mt. It can be said that the dual aspects of isolation and taoist hermit are eventually social constructions that are presented by hostile sea water of Jeju.
Jeju seawater was a place where islanders could not leave but to live with even if the water was tough and harsh. In Jeju, male islanders made a return trip to the mainland through seawater in order to pay a tribute, to do an exam for government posts, and to sell things. Drifting in seawater was not a strange event. Rather it was an experience very commonly and frequently made for islanders. Drifting brought some people to become a devoted son and a virtuous woman. Women divers wandered through under seawater land in order to find seawater goods to pay a tribute. It can be assumed that Jeju seawater was a very painful place to them. Even if so, the water was a place where intense fight for survival was made by islanders and could not be avoided by them.
This paper also provided memories regarding soft water of Jeju. As most of Jeju city is geographically conditioned with dry streams, people had to collect soft water and flow-out water. For this, water basket (called mulheobuk in Jeju island dialect) was used very efficiently. However, to bring soft water many miles to home with the basket was a harsh work for both male and female islanders. Jeju is lacked of enough fresh water so that cultivating rice was very difficult. While the memories regarding reservoirs were uncommonly observed, such memories are quite unusual in Jeju as people in Jeju mostly did dry-field farming.
In Jeju, water was not only a life space but also the source of life. It has now turned into a cultural space. It is a time to reflect upon such change in perceptions about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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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유동(流動)과 정주(定住) 사이 - 어민(漁民)의 행위자성 초탐(初探)

저자 : 김대중 ( Kim Dae-jo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9-187 (5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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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사회 내 漁民의 위치와 존재방식, 그리고 행위자성을 다각도로 탐구한 한문학 분야 최초의 연구로, 논의의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조 피지배계급을 백성 일반으로 뭉뚱그리거나 농민 위주로 파악하는 것을 탈피함으로써 조선조 피지배계급에 대한 인식을 구체화하고 심화한다.
둘째, 어민과 농민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모두 고려하되 농민과 차별화되는 점에 특히 유의하여, 농업 정주민의 '정주성'과 구분되는 '유동성'이 어민의 삶에서 어떻게 발휘·굴절·억압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한다.
셋째, 어민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육박하기 위하여 광범위한 문헌을 두루 다루면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학제적 연구를 지향한다. 문집 소재 詩文은 물론 통신사 행록, 聞見錄, 經世書, 牧民書, 생활백과사전 등 조선 전기·중기·후기의 각종 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This paper is the first study 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which explores the social position of fishermen in Choson society and their agency in multiple ways. This paper aims at the following:
First, by moving away from the vague perception of the dominated class and the peasant-centered viewpoint, the perception of the dominated class can be developed more specifically and the range of perception can be broadened.
Second, I consider the common points and differences between fishermen and peasants in a balanced way, but pay special attention to the difference of fishermen from peasants, and analyze precisely how the fluid distinguished from the sedentary of agricultural settlement is exerted, refracted or suppressed.
Third, this paper focuses on interdisciplinary studies that cover a wide range of disciplines, covering a wide range of literature in order to reach the totality of recognition. I comprehensively examine the literature of the early, middle, and late Choson dynasty such as poetry and prose, record of travel and reports, books that introduced social reform proposals, and lif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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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파도(波濤)그림과 활수(活水)이론이 엮은 회화사

저자 : 고연희 ( Kho Youe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9-22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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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의 '波濤그림' 전개와 이를 뒷받침했던 '活水'의 표현에 대한 감상의 내용을 역사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조선시대 문인들이 중국 파도그림의 역사와 감각적 감상의 요체를 수용하고 나아가 파도그림을 향유하였던 양상을 살펴보았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에서 물 그림으로 추구하는 의미화는 크게 象(상징), 德(인격과 도덕의 비유), 景(감각적 경치)의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파도그림은 景의 영역에서 그려진 대표적 주제의 하나였다. 파도그림은 宋,元代의 사찰벽화 및 송,원,명대 황실 내부의 거대한 병풍으로 공간을 장식하고 감동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문인들의 애호를 누렸고, 중국 실내 공간을 장식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그림 전개와 향유의 역사 속에서 蘇軾의 活水論이 척도가 되었다. 중국의 물 그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송황실화가 馬遠의 ≪水圖≫에 대하여는, 북송대 발달한 파도그림을 회화사와 회화론을 배경으로 그려진 것이며 또한 이 그림이 명대 吳派화가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새롭게 논할 수 있었다. 조선전중기 문인들은 중국의 활수론과 파도그림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고, 조선후기에는 중국황실을 표현하고자 파도그림 삽병을 그려넣었고, 또한 문인들 자신의 개인적, 감각적 취향으로 海(波)圖를 애호하였다.


There was a history of billow painting in the pre-modern China and Korea based on the aesthetic theory for living water. Water theme in the traditional images of China and Korea was understood in the three kinds of thought; symbolic image, metaphorical image and scenery image. Billow painting was developed as one of the scenery water image and by the viewer's demand of touching sensory nerves. It was decorative for the interior of palaces and temples during the Tang and Song China, and loved by literati. Shu Shi's essay about water painting focuses on living water and feeling chills, which became the most important theory for billow painting. In doing so, the representative water painting by Ma Yuan was produced and it was influential on the paintings of Ming China including literati of Wu School. In Korea the living water theory was accepted by scholars. Billow painting was loved especially in the nine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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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청담 이중환 생애의 재조명

저자 : 안대회 ( Ahn Dae-ho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9-26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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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중환의 생애를 재조명하였다. 그는 『택리지』의 저자이자 18세기 전기의 뛰어난 시인이다. 그러나 문집을 비롯한 관련 자료가 드물어 생애와 문학과 학문의 세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흩어진 자료를 전면적으로 수집하였고, 간찰을 비롯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였다. 그 자료를 분석하여 가계와 인맥, 주요한 활동과 사건을 새롭게 밝혀냈다. 특히, 그동안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그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전해오는 작품과 그에 관한 타인의 작품을 조사하여 白蓮詩社 활동과 작품세계를 조명 하였다. 이어서 經世學의 관점에서 학문 경향을 분석하여 『택리지』를 저술하게 된 동기를 찾아보았다. 논의를 통해 이중환의 생애와 문학과 학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This paper revisited the life of Yi Chung-hwan. While Yi is well known as the author of Taekriji and as a talented poet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not many studies have focused on his life as well as his literary and academic world, due to the lack of a collection of his works and research materials. For this paper, this researcher thus collected the dispersed materials and excavated new materials, including the letters written by Yi. This study analyzed the collected materials and newly found information on Yi's family tree, personal connections, and major activities and events in his life. This study, in particular, focused on Yi's literary works, which have rarely been discussed so far, and investigated the existing works by Yi and the works of other writers on Yi's work to shed light on his activities as a member of the Baekryeon Poetry Society (白蓮詩社) and his works. Moreover, this study identified Yi Chung-hwan's motive of writing Taekriji by analyzing his academic tendencies with respect to the study of statecraf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deepen the understanding of Yi Chung-hwan's life, and literary and academic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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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후기 소품문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

저자 : 김수진 ( Kim Su-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7-30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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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소품문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하였다. 소품문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문학사 내부의 맥락에 주목하여 소품문 작가와 작품에 관한 개별적 분석 그리고 명청문단의 영향이라는 두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반해 문학사를 당대 사회역사와의 거시적 관련 속에서 이해하고, 소품문이라는 문체상의 변화를 추동한 조선후기 시공간적 상황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하는 데에는 미진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본고는 조선후기 당파의 분열과 사족층의 계층 분화가 정치사회적 좌표값이 모호하고 기존 사대부 공동체로부터 단자화된 '개별자'를 출현시켰다는 점, 소품문 핵심 작가인 兪晩柱(1755-1788), 李鈺(1760-1815), 沈魯崇(1762-1837), 金鑢(1766-1822)가 지닌 '개별자로서 감수성'은 주제·소재·형식·표현의 측면에서 볼 때 고문보다는 소품문의 글쓰기에 적합하다는 점, 나아가 재경·근기 사족을 중심으로 일어난 실학적 움직임과 소품문의 글쓰기가 상호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당대 정치사회의 변동과 밀접히 연계된 지적·문화적 대응의 兩面이라는 점을 논구하였다.


This article reconsiders the emergence and development of sop'um(a form of short essay) in the late Choson period by placing them in their political and social contexts. Existing studies on sop'um tend to focus on individual writers and their works within the context of Korean literary history, or on the influence of the Ming and Qing Chinese literatures. As a result of confining their investigation to the literary realm, however, most scholars have neglected the question of how sop'um can be placed in the broader social and historical contexts of the times, and what circumstances specific to the late Choson period stimulated the trans formation of sop'um as a literary genre.
Against this background, the present article makes three points: first, factional divisions and stratifications of literati in the late Choson period produced a new group of monadic individual writers who were estranged from the existing communities of literati, and therefore whose positions in the politico-social constellation became dim. Second, the representa tive writers of sop'um such as Yu Man-ju 兪晩柱(1755-1788), Yi Ok 李鈺(1760-1815), Sim No-sung 沈魯崇(1762-1837) and Kim Ryo 金鑢(1766-1822) turned to sop'um, instead of komun (ancient writing style), for the expression of their sensitivities as individual beings. Third, the popula rity of sop'um and the intellectual movement for Practical Learning(sirak 實學) that emerged among the literati in Seoul and its precincts in the late Choson period were not unrelated phenomena, but should be con sidered two faces of the same coin, i.e., the literati's intellectual and cultural responses to the political and social trans formation of Chos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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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문소설 속 성의 윤리와 정의 개념의 모순

저자 : 윤채근 ( Yoon Chae-keu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3-32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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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정의 담론의 기원에 윤리적 모순이 있다는 전제하에 한문소설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사회가 만든 사법적 정의와 주체의 윤리적 선택이 일치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궁극적 목표지만 아직 불가능하며,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다양한 윤리적, 문학적 담론들이 여전히 생성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 모순의 빈틈에서 산출된 대표적인 문학 현상이 사랑과 욕망의 서사다.
사랑과 욕망의 서사는 자연에 속한 야생의 욕망을 인간화시켜 윤리로 정립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金現感虎」다. 그런데 이 윤리화 과정은 '利物'로 상징될 정의의 원리를 위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바, 그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호녀의 희생'이다. 여성을 야만의 잔여로 간주하려는 태도로부터 유래한 이 희생의 서사는 훗날 「布衣交集」 단계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정체성 주장을 담은 사랑의 서사로 발전하게 된다.
사랑이 인륜의 시발점을 상징한다고 할 때, 이를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정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재구성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인륜의 구현으로서 정의를 다시 입법화하는 것은 단지 '利物'에 대한 사법적 조정의 수준에서 이뤄질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성과 사랑에 대한 인류의 윤리적 태도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This essay tries to analyse two Korean classic novels in the premise that there is ethical contradiction in the origin of the discourses about justice. The coincidence between the judical justice made from society and the ethical judgement originated from subject, of course, would be one of the ultimate goals of humankind. But it is not possible yet, and because of the impossibility various ethical, literal discourses on the topic could have been produced till now. The representative literal appearance generated from this gap of the contradiction is the narrative of love & desire.
The narrative of love & desire had begun from the attempt to humanized the savage desire attributed to nature and to establish it as new ethics. Kimhyunkamho(「金現感虎」) was the representative work of that humanizing process. This ethical process was designed to violate the principle of justice symbolized as 'effort for another's benefit('利物') and 'tiger girl's sacrifice' is the symbolic accident in the Korean traditional narratives. This sacrifice narrative formed from the viewpoint that regarded women as the residue of savageness in later days, at the stage of Pouikyojip(「布衣交集」), could develop into the love narrative contains the issue of female identity.
If the love could symbolize the beginning of human ethics, trying to modify it in the view of justice means the reconstructing the concept of humanity. Therefore the legislation of justice as the realization of humanity is not the case could be performed at the angle of judical modification on 'the effort for another's benefit('利物'). It have to be rejustified through the fundamental retrospection of our ethical attitude toward sexuality and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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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수삼(趙秀三)의 「동리선생전(東里先生傳)」 읽기

저자 : 정순희 ( Jeong Su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1-36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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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삼의 「동리선생전」에는 두 층위의 슬픔과 연민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독서의 과정에서 그것을 꼼꼼히 읽어내야 「동리선생전」 전체의 주제와 의미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심인물인 정윤을 통해 드러나는 슬픔과 연민이다. 정윤은 10대에 가사(家事) 주관하는 어머니를 잃고 가난해서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은거(隱居)'하는 아버지 정희교를 모신다. 그는 여성이 하는 모든 일을 직접 하며 아버지를 모시느라 아버지보다 더 늙어 보이고, 그 아버지가 80대 중반에 죽고 자신도 70대의 늙은이가 될 때까지 아버지의 삶을 지탱한다. 정윤의 삶은 '효(孝)'로 귀결되지만, 「동리선생전」은 효를 칭찬하기 위해 쓰이는 전(傳)들과는 다르다. 전의 중심인물인 정윤이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효를 실행한다기보다 아버지 정희교가 적극적으로 '은거'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 속에서 정윤의 효가 파생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60여 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은거'의 욕망을 실현해주기 위해 견딘 정윤의 고통 속에서 슬픔이 드러난다.
둘째, 아버지 정희교를 통해 드러나는 슬픔과 연민이다. 정희교는 대대로 집안에 내려오는 천여 권의 책으로 '독서'하며 속리산 근처에서 '농사' 지으며 '은거'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가 독서하고 농사짓는 사이 고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글은 '논책(論策)'이고 '시부(詩賦)'이다. 논책과 시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가운데 대과(大科-文科)의 상급 시험 과목이고, 과거시험은 조선조 지식인이 출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제도이다. 그의 '독서'는 '은거'가 아니라 '은거'를 버리고 세상으로 통하기 위한 방식으로 보인다. 더구나 대과는 정희교가 속한 통역관의 계급에서는 치를 수 없는 시험이다. 그의 '은거'와 '독서는 참으로 모순된다. 정희교의 슬픔은 이렇듯 현실-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은거'에서 발생한다.


Two layers sorrow is overlapped in The 「Dongniseonsaengjeon」 written by Jo Susam. First, The sorrow revealed by Jeong Yun, the main character. He lost mother, who manage household affairs in his teens. He was so poor that couldn't get married and even take care of Jeong Huigyo that his father living as hermit. Jeong Yun looks older than his father due to manage household affairs by himself. His father dies in the mid 80s and Jeong Yun support his father's life until he became a 70-years oldman himself. The life of Jeong Yun is concluded as filial duty, But 「Dongniseonsaengjeon」 is different with other stories, which complimented the filial duty. Jeong Yun, the main character carry out filial duty not actively and voluntary by himself but derived from during the process that Jeong Huigyo, his father realize the desire of hermit. The sorrow come out from Jeong Yun's pain, which ensure about 60-years to realize his father's desire.
Second, The sorrow revealed by Jeong Huigyo, the father. Jeonghyo has chosen to live like a hermit by reading with a thousand books, which a family heritage and farming near Songni Mountain. However he teaches young people, who live in the village the Nonchaek and the Sibu, while he read and farming. Gwageo test is most obvious and fast system to Joseon Intellectuals for succeed. furthermore Nonchaek and Sibu are the subjects of advanced course in Daegwa of Gwageo in Joseon dynasty. Thus, His reading appears to be a way to abandon life of hermit and go through to the world. Moreover, The Daegwa can not be taken to the class of interpreter like Jeong Huigyo. His life as a hermit and the reading are so contradictory. So, Jeong Huigyo's grief occurs from his life as a hermit, which dreaming that couldn't be achieve in the world.
In 「Dongniseonsaengjeon」, these two layers sorrow became interlaced with multistructure not revealed with external. The overall theme and meaning of 「Dongniseonsaengjeon」 can be known by read off precisely the sorrow of two layers whil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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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담녕(澹寧) 홍의호(洪義浩)의 연행록(燕行錄) 연구(硏究) (1) - 연행시(燕行詩)의 특징을 중심으로 -

저자 : 김동건 ( Kim Dong-geo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63-39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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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호는 대표적인 연행가문인 豊山 洪氏家 인물로, 3차에 걸친 연행을 한 인물이다. 1차는 1803년 7월 王妃冊封謝恩의 부사로 참여한 것으로, 정사는 李晩秀, 서장관은 洪奭周였다. 당시 지은 시는 『燕記』에 173제 207수가 실려 있다. 2차 연행은 1815년 10월 冬至兼謝恩使의 정사로 참여했으며 부사는 趙鐘永, 서장관은 曺錫正이었다. 당시 지은 시는 『澹寧燕行詩』에 256제 422수가 실려 있다. 3차 연행은 1823년 10월 冬至兼謝恩使의 정사로 참여한 것인데 부사는 李龍秀, 서장관은 曺龍振이었다. 당시의 기록은 당시 기록은 『三入燕薊錄』인데, 12월 14일 塔山 이후로는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 그 외에 중국 인물과 주고받은 편지가 남아 있어 연구 자료로 활용 가능하다.
홍의호의 연행록은 詩가 대부분이며 스스로 詩癖에 미쳐 있다고 비웃을 만큼 詩作에 몰입하였다. 그의 연행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전의 연행 경험을 반추하는 장면이 많다. 1차 연행에 이어 2차·3차 연행에서 이전의 경험과 감정을 떠올리고 그에 따른 감상을 기술하였다. 또한 연행 노정 중, 동료 사신과 차운하며 창작된 酬唱詩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둘째, 연작시가 많은 편인데 30수에서 56수에 달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지루한 行役을 이기고 시 창작 능력을 겨루기 위한 과정에서 창작되었다. 이것이 연작시 형태로 나타나면서 다양한 연행 경험이 종합 및 집약되는 모습을 보인다.
셋째, 희작시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추구하였다. 희작시는 제목이 '○○體' 등으로 시작하며 숫자나 干支·藥名 등을 활용하였다. 희작시는 그 특성상 故事를 풍부하게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독특한 漢詩 遊戱의 방식으로 연행 사신들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Hong Ui-Ho was a figure of Poongsan Hong Clan(豊山 洪氏家) who is a representative family traveling to Beijing, and he traveled to Beijing for three times. He was participated in the first trip to Beijing as Busa position of 'a delegation to thank and celebrate the Queen's contribution (王妃冊封謝恩)' in July 1803. He was participated in the second trip to Beijing as Jungsa position of 'a delegation of thanks for honoring winter solstice(冬至兼謝恩使)' in October 1815. He was participated in the third trip to Beijing as Jungsa position of 'a delegation of thanks for honoring winter solstice(冬至兼謝恩使)' in October 1823. It is said he had left more than 1,000 poems at the time of his first trip to Beijing, but there are no records left. The second Beijing travel report is 'Dan-yeon-yeohaeng-si(澹寧燕行詩)', the third Beijing travel report is 'Sam-ib-yeongye-log(三入燕薊錄). The letters that he exchanged with the Chinese remained and were used as research data.
Hong Ui-Ho's Beijing travel report can be summarized in three characteristics as follows. First, there is a continuous reflection of previous Beijing travel experience. Following the first trip to Beijing, he recalls his previous experiences and feelings during his second and third trips to Beijing. Second, there are a lot of poetry that are exchanged with a fellow envoy during a trip to Beijing. The envoys shared their feelings with the appreciation of the Beijing trip through poetry. Each of them made 'a phrase that is given and received to complete a poem(聯句)', and they exchanged poetry together in a running cart. They also gathered at night and spent time composing a series of poems. Third, they pursued 'humor(諧謔性)' through 'spontaneous creation(戱作)'. The specific method of improvised poem, which is called the "○○ style(○○體)," created the improvised poem using numbers, 'the sexagenary cycle(干支)', and drug names. This is a unique 'style of playing with Chinese poems(漢詩 遊戱)', which gives a clue to how envoys traveling to Beijing spent their leisur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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