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update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 : 한국한문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8-128x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6)~75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004
한국한문학연구
75권0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75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 (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키워드 보기
초록보기

KCI등재

275집 화보(책머리)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7 (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키워드 보기
초록보기

KCI등재

3자하(紫霞) 신위(申緯)의 한시사적(漢詩史的) 위상(位相)과 문예관(文藝觀)

저자 : 이현일 ( Lee Hyun-il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61 (5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조선후기 한시사에서 後四家-李德懋, 柳得恭, 朴齊家, 李書九-의 뒤를 이어 詩ㆍ書ㆍ畵 三絶로 19세기 詩壇을 이끌었던 紫霞 申緯(1769~1847)의 문학사적 위상을 확인하고, 자하의 시편들에서 볼 수 있는 文藝觀의 의미를 오늘날의 시점에서 음미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첫 章에서는 竹史 尹永善이 紫霞의 생일날 祝壽의 의미로 올린 詩稿를 검토하면서 '由蘇入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제2장에서는 紫霞와 직접 교유하고 酬唱하며 作詩 능력을 겨루어 보았던 竹石 徐榮輔(1759~1816), 桐漁 李相璜(1763~1841), 秋史 金正喜(1786~1856)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망명지에서 紫霞의 詩選集을 두 번이나 간행했던 滄江 金澤榮(1850~1927) 및 晩年의 毁節로 지탄받지만 19세기 한시사의 기록을 풍부하게 담은 榕燈詩話를 남겼던 茂亭 鄭萬朝(1858~1936)의 論評 속에서 紫霞의 漢詩史的 位相을 확인해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최초의 근대적 한문학사인 天台山人 金台俊(1905~1949)의 『朝鮮漢文學史』에 끼친 紫霞의 영향을 찾아보았다.
제3장에서는 楓皐 金祖淳(1765~1832)이 언급한 '紫霞三絶'에 대해 논하고, 紫霞가 '三絶'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집안의 전통으로 전하고자 소망할 정도로 文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文藝 속의 삶을 추구했던 모습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章에서는 紫霞와 두 아들인 申命準(1803~1842), 申命衍(1809~1886)의 合作인 「詩舲圖」와 그 題跋들을 살펴보며, 蘇軾을 보배롭게 여긴다는 '寶蘇'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서 우리가 해방 이후 단기간에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 규모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지만, “높은 문화의 힘”을 갖기에는 아직 미약한 수준임을 지적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시와 전통 書畵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ertify the literary position of poet, Shin Wi(申緯, 1769~1847), who had the three perfections-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s-in the history of later Chosun Dynasty's Sino-Korean poetry. And to appreciate newly his view of literature and art in his poetical works.
In the first chapter, we begin to discuss Yun Young Sun(尹永善)'s dedicated poem to Shin Wi to celebrate Shin Wi's birthday and pray for longevity.
The second chapter deals firstly with the criticisms by Seo Young Bo(徐榮輔, 1759~1816), Lee Sang Hwang(李相璜, 1763~1841), Kim Jeong Hui (金正喜, 1786~1856), toward Shin Wi's poems. They make friends with him, and compete writing poems with him. They are so well-known his ability that their criticism to his poems was very convincing. And later deals: such writers as Kim Taek Young(金澤榮, 1850~1927), who published poetical selections twice, Jeong Man Jo(鄭萬朝, 1858~1936), who richly recorded 19th century Chosun Dynasty's history of Sino-korean poetry. In addition, we try to find the influence of Shin Wi, in The History of Sino-Korean Literature (『朝鮮漢文學史』) by Kim Tae Jun(金台俊, 190 5~1949).
The third chapter, we deal with what Kim Jo Sun(金祖淳, 1765~1832) calls Shin Wi, the three perfections, and we survey Shin Wi's view of literature and art, and his life in them. He also wanted the three perfections through his sons, Shin Myeong Jun(申命準) and Shin Myeong Yeon(申命衍), to become his family tradition.
Last chapter, we surve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dmiration to Su Shi(蘇軾) and literature and arts in later Chosun Dynasty.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revival of Su Shi in that period, is remarkable at present, the South Korea, while political democracy and economic development grow rapidly, the refinement of culture is a long way behind. We envy Shin Wi for the activity of literature and arts.

KCI등재

4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연행(燕行)과 옹방강(翁方綱)의 영향

저자 : 박철상 ( Park Chul-sa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3-98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紫霞 申緯는 詩ㆍ書ㆍ畵 三絶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연행을 통해 청나라 翁方綱과 만난 뒤로 청조 학예의 수용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는 秋史 金正喜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김정희는 연행을 떠나는 신위에게 전별시를 써주면서 옹방강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했다. 신위는 연경에서 옹방강을 방문하여 그의 수많은 수장품을 보았고, 이는 신위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다. 옹방강의 서재인 蘇齋를 모방하여 자신의 서재도 '蘇齋'라 하였고, 옹방강의 시집을 탐독하고 그의 시론을 수용하여 조선에 유행시켰다. 자신의 시를 청나라에 유통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옹방강의 영향은 신위가 사용한 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청조 학예의 수용에 앞장선 인물로 김정희가 대표적이지만, 신위 또한 김정희와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청조 학예의 수용을 통해 김정희가 경학과 금석학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면, 신위는 바로 詩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가 조선을 대표하여 중국에 널리 알려지길 원했다. 김정희가 조선의 소동파로 불렸다면, 신위는 조선의 옹방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인장에 투영된 옹방강의 그림자는 바로 신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Jaha(紫霞) Shin Wi(申緯) was famous as a person who excels very much in three fields :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particular, after meeting with Weng Fanggang(翁方綱) of Qing(淸) through a trip to Yanjing(燕京), he devoted his energy to the acceptance of the academic and cultural studies of Qing. The influence of Chusa(秋史) Kim Jeonghui (金正喜) played a major role in this. Kim Jeonghui wrote a poem for Shin Wi, who is going on a trip to Yanjing, in which strongly recommended his meeting with Weng Fanggang. Shin Wi visited Weng Fanggang in Yanjing and saw his numerous collections, which were a great stimulus to him. After his return to Joseon, there have been changes in many areas under the influence of Weng Fanggang. He also named his study room 'So Jae(蘇 齋)' after the name of the study room of Weng Fanggang, and he eagerly read Weng Fanggang's poems and embraced his theory of poetry and made it popular in Joseon. He also made many efforts to distribute his poems to the Qing. The influence of Weng Fanggang can also be seen in the seal used by Shin Wi. While Kim Jeonghui is the representative who led the acceptance of the 19th-century Qing's academic and cultural studies, Shin Wi should also be remembered with Kim Jung-hee. Because if Kim Jeonghui pioneered a new stage in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and the epigraphy of Joseon Dynasty through the acceptance of the Qing's academic and cultural studies, Shin Wi opened up a new field in the poetry. And he wanted his poems to be widely known in China on behalf of Joseon. If Kim Jeonghui had been called the 'So Dong Pa(蘇東坡) of the Joseon', Shin Wi wanted to be the 'Weng Fanggang of the Joseon'. In particular, the shadow of Weng Fanggang which was seen in his seal was Shin Wi own figure.

KCI등재

5신위(申緯)의 묵죽화(墨竹畵)에 대하여

저자 : 진준현 ( Jin Jun-hyu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45 (4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紫霞 申緯의 墨竹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위의 묵죽화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신위의 묵죽화는 姜世晃에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묵죽화론도 강세황의 寫實主義的인 繪畵觀을 계승한 것이다. 신위와 강세황의 사실주의적 회화관은 李瀷으로 연결된다. 신위의 묵죽화론의 기반은 蘇軾의 文人畵論이다. 당시 문인이라면 모두 소식과 文同의 문인화론을 잘 알고 있었고 신위는 창작을 통해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신위의 묵죽화 작품은 15세 무렵과 26세 때 그린 초기작 이외에는 대부분 60대 이후 만년작들이다. 신위는 1812년 44세 때 청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북경에 가서 翁方綱(1733-1818)을 중심으로 한 많은 淸朝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 여행으로부터 뚜렷한 영향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灘隱 李霆, 岫雲 柳德章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추앙되었다. 그런데 風竹, 雪竹을 즐겨 그렸던 이정과, 설죽, 筒竹을 즐겨 그렸던 유덕장에 비해, 신위는 雨竹, 霧竹을 즐겨 그렸다. 이정과 유덕장이 題畵詩가 거의 없는 묵죽화를 통해 선비나 은일의 志操를 주로 표현한 데 비해, 신위는 풍부한 제화시를 곁들여 抒情이 풍부한 묵죽화를 그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위는 국제적 안목을 가진 대예술가로 당시 북경의 예술계의 동향도 파악하고, 잘못된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This paper focused on the bamboo paintings by Jaha(紫霞) Shin Wi(申 緯) who was one of the most renowned shishuhua sanjue(a person talented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paper first examined the origins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Shin Wi learned how to paint bamboos from Kang Se-hwang(姜世晃). His view on bamboo paintings, therefore, succeede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painting. Shin Wi an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art was also linked to Yi Ik(李瀷). Shin Wi's views were also based on Su Shi's theory on literati painting. The literati during the period were all well acquainted with the theories on literati painting proposed by Su Shi and Wen Tong and Shin Wi explored such theories in depth through his works. Aside from the earlier works he painted at the ages of 15 and 26, the majority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painted later in his life when he was in his 60s and thereafter. In 1812, at the age of 44, Shin Wi went to Beijing as a member of the envoy to the Qing dynasty. During his visit, he met and befriended Weng Fanggang(翁方綱) and many of his fellow Qing literati. Shin Wi's bamboo paintings, however, do not display particular influences from his visit to China. In fact,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introduced and gathered fame in China. Shin Wi was revered as the three major bamboo painters in Joseon along with Taneun (灘隱) Lee Jeong(李禎) and Soowoon(岫雲) Yoo Deok-jang(柳德章). Unlike Lee Jeong, who most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wind(風竹) an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Yoo Deok-jang, who usual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entire bamboo trees(筒竹), Shin Wi's usual subjects were bamboo trees in the rain(雨竹) and bamboo trees in the fog(霧竹). Whereas Lee Jeong and Yoo Deok-jang mostly portrayed the honor of the scholar or the hermit through their bamboo paintings and did not add any poems,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more lyrical and were accompanied by flourishing poems. As a great artist with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Shin Wi was aware of the contemporary trends in Beijing and also pointed out trends which he considered erroneous.

KCI등재

6신위(申緯)의 감각과 신명연(申命衍)의 색채(色彩)

저자 : 고연희 ( Kho Youe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7-182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申緯(1769-1847)는 色의 변화와 차이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詩로 표현하였고, 花草를 設色으로 그리는 '寫生ㆍ沒骨'의 繪畵를 중시하였으며, 특히 北宋의 화가 徐熙와 그의 손자 徐崇嗣의 기법을 계승한다고 자처했던 청대 화가 惲壽平(1633-1690)의 회화 작업과 이론을 애호하였다. 또한 신위는 그의 아들 申命衍(1809-1886)에게 畵法과 畵論을 가르치고 設色花草圖 제작을 격려하였다. 신위의 색채 감각은 18세기 문인들의 色彩語 활용의 실험과 성과를 배경으로 청대 문예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통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신위가 아들의 회화작업을 돕고 격려한 점은 이전의 사대부문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면모였다. 신명연은 화사한 色彩을 베풀어 다양한 花草를 그렸는데, 그 화초의 제재는 신위가 시에서 읊은 내용에 포함되며, 또한 그 제재, 구도, 세부 표현 등은 운수평의 화훼도 畵風과 유사한 점을 다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위와 신명연은 청대에 성행한 운수평의 화풍을 수용하여 밝고 화사한 색채감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19세기 문예사에 펼쳐지는 색채의 역사에 기여하였다.


Shin Wi(申緯, 1769-1847) expressed his color-sense in his poems to show subtle change of colors and various moods of colors. He was interested in “copy of lives or xiesheng 寫生” by the technic of “bonelessness or mogu 沒骨” which means coloring without contour lines. In doing so, Shin Wi was enthusiastic about Yun Shouping(惲壽平, 1633-1690) who was the most famous painter in the Qing Dynasty for the bonelessness-technic from Northern Song period. Shin Myeong Yeon(申命衍, 1809-1886), the second son of Shin Wi, conspicuously produced flower paintings in bright colors under the support of his father. Shin Wi's support was an unprecedented positive attitude toward painting as a scholar in the Joson period. The flowers in Shin Myeong Yeon's paintings are included in the objects in the Shin Wi's poems and Yun Shouping's paintings. Composition and details of Shin Myeong Yeon's flower paintings also have a lot in common with those of Yun Shouping's paintings. It would be said that Shin Wi and Shin Myeong Yeon's employment of colors was from the experimental usage of colors in the eighteenth century and became influential on the vigorous aspects of using colors in the nineteenth century of Joson.

KCI등재

7『전세보완첩(傳世寶玩帖)』 소재 강세황의 간찰과 그 특성

저자 : 정은진 ( Jeong Eun-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3-221 (3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표암 강세황의 간찰첩 『전세보완첩』을 소개하고 분석한 것이다. 표암 강세황의 저작 『표암유고』에는 편지는 5편만 실려 있을 만큼, 강세황의 저작 중 편지 자료들은 일실된 것이 많다.
최근 발굴한 『전세보완첩』에는 9편의 강세황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었다. 1편은 불완전하고 나머지는 8편은 상태가 양호하다. 수신인은 크게 강세황의 맏아들 강인(1, 2, 4, 5번)과 셋째 아들 강관(3번), 막내아들 강빈(6, 7, 8번)으로 나누어진다. 발송 시기는 1765년 편지 1편, 1783년 편지 3편, 1789년 편지 3편으로 강세황 생애 말년의 부자지간에 주고받았던 편지가 집중되어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전세보완첩』을 가정사와 관련된 인간적 측면과 서화 정보와 관련된 예술 활동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전세보완첩』은 부자지간의 편지이다 보니 부자지간에 주고받았던 편지 양식은 물론, 아버지 강세황의 섬세한 면모가 특히 부각되어 있다. 이를테면 자녀들의 과거문제 및 주변 교유인물이나 노비 등 시시콜콜한 근황을 자식들과 공유하는 생활인이자 아버지인 강세황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가정사 외에 예술적 면모도 부각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생애 말년까지 천자문의 견본 초판본을 찍어내서 아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이나 자화상 제작, 특히 정조 임금의 특명으로 금강산 그림을 진상하는 등 노년의 예술 활동과 정조와의 특별한 관계도 엿볼 수 있었다.


This paper introduces and analyzes the letters of Pyoam Kang Se-hwang. As there are only five letters in his book, Pyoamyugo, many of the Kang Se-hwang's works have been wiped out.
The recently discovered Jeonsebowan contained nine letters by Kang Se-hwang. The first one is incomplete and the other eight are in good condition. The recipients are largely divided into Kang Se-hwang's eldest son, Kang In(#1, 2, 4 and 5), the third son, Kang Kwan (#3), and the youngest son, Kang Bin (#6~8). Some are sent in 1765 but it is centered on two letters to Kang In in 1789, one letter to Kang Kwan and three letters to Kang Bin in 1783.
This paper divided the Jeonsebowan into the human aspects related to household history and the aspects of art activities related to the painting information. The Jeonsebowan highlights Kang Se-hwang's delicate aspects as a father. For example, I can approach the reality of Kang Se-hwang as a father, who shares with his children, the problem of his children's civil service examinations, his acquaintances and slaves, and his everyday life around him. In addition, I was able to see the forms of letters exchanged between father and son. Most of all, I could see a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King Jeongjo, his old writing skill and passion through the his activities such as printing of the print version of Cheonjamun and presenting the painting at Mount Geumgang to the King Jeongjo

KCI등재

8조면호의 「예석」 연구 -사람과 돌의 교감에 대한 일고찰-

저자 : 신정수 ( Shin Jeong-so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53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예석」 삼부작은 「예십일석」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사람과 돌의 교감이라는 문제에서 접근하면 「속예석」과 「추예석」이 훨씬 더 흥미롭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돌을 숭상하는 중국 문인의 사례들을 보면서 배석과 예석의 문화적 전통을 살펴본다. 다음으로 「예십일석」과 「속예석」에서 돌과 교감하는 내용들을 분석하면서 돌과 소통한다는 사고방식과 그 가능성을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추예석」에서 돌에 동화된 사람, 심상으로 존재하는 돌 등을 읽으면서 조면호의 문학적 상상력을 논의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조면호의 「예석」이 형식, 분량, 내용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19세기에 유행한 石交가 문인들간의 교유뿐만 아니라 돌과의 우정도 의미하였음을 환기시키면서 사람과 사물간의 관계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Jo Myeonho 趙冕鎬 (1803-1887) is the most prominent connoisseur of miniature rocks (suseok 壽石) in Korean history. His trilogy, “Tributes to Rocks,” consists of three parts: “Tribute to Eleven Stones” 禮十一石, “Sequel: Tribute to Nine Stones” 續禮石九詩, and “Addendum: Tribute to Three Stones” 追禮三石. Up until now, readings of the first part have led scholars to discuss mainly its lyrical modes memorializing the previous owners of stones. However, if one reads the second and third parts, which tell of the friendship between the author and various stones, one sees that their relations extend beyond the human. After assessing the Chinese cult of stones, called “Paying Tribute to Stones,” I read Jo's prefaces and selected poems from the trilogy to analyze instances of interactions between the author and the stones. These relationships take place with, among others, a sentient jade, a petrified human, and imaginary stones. I also look into the underlying thoughts and cultural implications of the man-stone friendship in the context of East Asian cosmology, in which man and the myriad objects derive from a single source and both equally undergo a continuously transformative process. In conclusion, I will compare the trilogy with its Chinese antecedents and highlight Jo's unparalleled achievements in the tradition of rock connoisseurship in East Asia.

KCI등재

9「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의 서사 전개와 인물 형상화 방법

저자 : 남윤혜 ( Nam Yun-hy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5-295 (4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道康瞽家婦詞」는 丁若鏞(1762~1836)이 강진 유배기인 1803년에 목격한 사건을 토대로 지은 5언 180운의 長篇古詩로, 나이 든 맹인과 혼인한 어느 여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견문한 백성의 비극적인 현실을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내었고, 그중 「도강고가부사」는 장편고시 형식으로 지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은 학계에 소개된 이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어떠한 가치와 미학을 가지는지 충분히 밝혀지지 못했다. 본고는 「도강고가부사」의 창작배경을 밝히고 창작기법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문학사적 위상을 확인하고자 한다.
고대 악부의 표현기법을 차용하고 거의 전편을 등장인물의 대사로 구성한 작품의 주요 특징은 漢代 민간악부로 잘 알려진 이른바 「孔雀東南飛」가 크게 유행하는 한편 『西廂記』의 유입 이래 한문희곡의 창작과 비평까지 이루어지던 당대 문학적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은 작품 전체에 시각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조응시켜, 감정선을 이어감으로써 긴 편폭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였다. 부분적으로는 같은 구문을 반복하거나 기물을 나열하여 민요나 판소리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였으며, 用韻의 적절한 안배로 古風을 더하는 동시에 서사단락을 분절하고 인물의 심경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한편 주요 등장인물들을 작품 내부에서 거듭 대비시킬 뿐만 아니라 典範이 되는 작품 속 인물과도 대조하면서 독자의 감정 몰입을 유도하고, 서술자의 설명보다는 등장인물 스스로의 말과 행동으로 각 인물의 캐릭터가 드러나도록 하였다.


This paper analyzed the 「Dogang-Gogabu-sa(道康瞽家婦詞)」, focusing on the poet's method of narrative development and character formation. Jeong Yakyong(丁若鏞) used various techniques in the form of the long-old style poems(長篇古詩), effectively reflecting the tragic reality of the people he observed during his time in exile. The results of this analysis are as follows:
Firstly, by repeatedly placing visual images throughout the work, the poet was able to structure the narrative so that it flows organically in correspondence with the development of the narrative's emotional undercurrent. Readers of this poem may feel like they are listening to a folk song or watching pansori because of the poem's use of repetition and enumeration. Rhyming is also used to divide each narrative paragraph and more strongly convey the characters' feelings. The main characters in the poem are contrasted not only with the other characters within the poem but also with characters in the work the poem was modelled upon, further immersing the reader. Lastly, this work is almost entirely composed of the characters' dialogues, and the character's personalities are revealed by their words and actions.
This work is representative of long-old style poems and the influence of the story of the 「Peacock Flying Southeast(孔雀東南飛)」 which became widespread in the late Joseon Dynasty. By taking literary traditions into account, this paper presents a new perspective of research which focuses on the poem's style of composition rather than merely focusing on its narrativity. As the whole story is made up of conversations and the role of the narrator has been intentionally reduced by the poet, this work could be regarded as a kind of dramatic poem comparable to the lesedrama, such as Faust, which was in fashion in Europe at the same time.

KCI등재

10복재(服齋) 기준(奇遵)의 기행시(紀行詩) 연구(硏究)

저자 : 유진희 ( Yoo Ji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7-329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16세기 초반의 문인 服齋 奇遵(1492~1521)의 기행시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복재는 1519년 7월 어머니를 뵙기 위하여 전라북도 고창으로 향했다. 이때에 복재는 이 부근의 정읍, 부안의 변산 등지를 유람하면서 64首의 시를 지었다. 이는 유배 전 복재시의 65%를 차지하는 것으로 1519년 11월 사화 이전 복재의 심리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복재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심리적인 불안감을 안고 유람을 떠났기 때문에 여타 문인들의 기행시에서 살펴볼 수 있는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다. 복재의 기행시는 두 가지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他地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드러난 시와 둘째, 山寺에서 찾는 정서적인 안정이 나타나는 시이다. 복재의 기행시에서는 복재 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배시와의 차별적인 지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복재의 시문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look at the travel poems of literary person Bokjae Kijun (1492-1521) in the early 16th century. Bokjae went to Jeollabuk-do Gochang to see his mother in July 1519. At this time, He made a 64 poems while traveling Jeongeup and Byeonsan of Buan. This occupies 65% of Bokjae's poem before distribution, it is a material that can examine the psychology of Bokjae before Gimyosahwa, November 1519. Bokjae left the wild with psychological unrest during a politically unstable period. For this reason, in his poems, it is hard to see special characters that can be seen in the travel poems of other literary people. Bokjae's travel poems can be divided into two characteristics. First, the poetry of unease felt in other places, Second, the poetry with an emotional stability in the temple. In Bokjae's travel poems, can also see the different point with his excile poems that occupies most of his poetry. Through this, we can view Bokjae's poetry literature more stereoscopically.

12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 한양대학교
 153
 111
 97
 71
 61
  • 1 성균관대학교 (153건)
  • 2 고려대학교 (111건)
  • 3 서울대학교 (97건)
  • 4 부산대학교 (71건)
  • 5 한양대학교 (61건)
  • 6 동국대학교 (54건)
  • 7 연세대학교 (51건)
  • 8 경북대학교 (44건)
  • 9 한국학중앙연구원 (43건)
  • 10 전남대학교 (37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