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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 Manuscripts

  • : 한국고문서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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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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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5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62
고문서연구
54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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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제주도 오결정소(誤決呈訴)의 양태 - 「1629년 제주목 결송입안」을 중심으로 -

저자 : 한상권 ( Han Sang-kwo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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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관의 판결에는 늘 誤決 시비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三度得伸法을 비롯하여 誤決員吏決罪法이 마련되었고, 오결에 대한 呈訴 제도도 법전에 규정되었다.
「1629년 제주목 결송입안」 역시 제주목사 成安義의 판결에 대해 여러 차례 誤決呈訴가 제기되었다. 1625년 1차 소송에서 패소한 出身 姜繼男과 寡女 夫氏는 제주목사의 판결이 誤決이라고 주장하고 여러 차례 呈訴하였으나 번번이 패소하였다. 그러다가 제주목사 성안의가 遞歸한 뒤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 朴明榑에게 呈訴하여 마침내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원고 강계남과 과녀 부씨는 當事者 平等의 원칙, 辯論權과 證明權 등을 내세워 송관 성안의의 판결이 오결임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소송 절차에 관한 권리 행사는 제주 지역 소송에서도 당사자가 높은 법률적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으며 소송을 권리구제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落訟者는 판결을 뒤집기 위해 소송을 다른 고을에 移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 건 소송에서도 강계 남과 과녀 부씨는 송관이 당사자 사이에 공평하고 평등한 다툼의 장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偏聽誤決임을, 그리고 형리를 통해 뇌물을 받았다며 受贈誤決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송관을 기피신청하거나 소송을 다른 고을로 옮기는 이송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 점이 제주지역 誤決呈訴의 특징적인 양상이다.
후임 송관 朴明榑는 전임 송관 成安義의 판결에 羈屬되지 아니한 채, 앞서의 판단을 파기하고 自判하였다. 전임 송관 성안의의 판결을 破棄하고 自判한 것인데, 이는 誤決呈訴에서 후임 訟官이 전임 訟官이 내린 판단 즉 先例에 구속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It is natural that judge's decision arouses a controversy about the possibility of misjudgment. Therefore, Dreiinstanzensystem(三度得伸法) and the punishment to the officers for the reason of making unfair decision(誤決員吏決罪法) w ere ad opted. On top of that, a system of appeal to the misjudgment(誤決呈訴) was laid down in the law.
According to 「Jejumok Gyeol-Song-Ip-Ahn in 1629」, there were multiple appeals to the judgment decided by Jeju government officer. Mr. Kang Gye-nam(姜繼男) and wid ow M rs. Boo(夫氏) who have lost the case in the first trial in 1625 brought several appeals to the decision by Jeju government officer, Ahn-eu Sung(成安義), by arguing that his ruling was erroneous. However, they repeatedly lost the case. Later, newly appointed Jeju government officer named Myung-bu Park(朴明榑), who was a successor of Ahn-eu Sung ruled in favor of them.
In this law suit, Mr. Kang Gye-nam and widow Mrs. Boo argued that the decision of Jeju government officer was erroneous on the basis of the principle of equality of parties, right of audience as well as right of proof. Such exercise of the right in the lawsuit in Jeju shows that the parties had in-depth knowledge on legal process and were able to actively used the knowledge for the protection of their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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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제주민의 재산상속 소송과 서증(書證) - 1663년 제주목 결송립안(決訟立案)을 중심으로 -

저자 : 金景淑 ( Kim Kyeongsook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7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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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 제주목 결송입안은 조선시대 문서 중심의 소송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본 소송은 和會文記에 奉祀條로 기록된 婢 多奇의 소생비 卜台를 두고 장남 후손과 차남 후손 사이에 발생한 분쟁이다. 송변과정에서 장남 계파인 피고측은 원고에 대하여 재물 때문에 형제간의 돈목을 해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소송의 명분을 강조한 반면 차남 계파인 원고측에서는 可考文記[증거문서], 즉 書證에 집중함으로써 소송 전략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에 대한 소송관의 판결은 양측의 진술보다는 그들이 제시한 증거문서에 근거하고, 판결에 이르는 논리적 추론 과정 또한 증거문서를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소송이 증거문서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의미하며, 증거문서에 집중한 원고측의 전략이 주효하였음을 보여준다.
송변 과정에서의 '文記 傳準' 절차 또한 소송이 증거문서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본 소송에서 문기 전준은 원고와 피고가 각각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문서의 違端을 검토하고 문서의 진정성 및 증거력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소송 절차 또는 그 결과물로 생산된 문서로 파악된다. 官에서 증거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기록하고 官署踏印을 한다는 점에서는 문서의 副本을 만들어 이를 증빙하는 기존의 '전준'과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만, 소송 절차로서의 문기 전준에는 옮겨 기록한 내용을 소송당사자들이 확인하고 '白'字와 着名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바로 이 부분이 해당 문기의 진정성과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 단계이며, 소송자의 법적 주체성과 함께 증거문서 위주의 소송 진행을 보여주는 주요 절차라 하겠다. 이 같은 소송에서의 문기 전준은 제주도에 한정된 독특한 형태라기보다는 조선시대 민사 소송의 기본적인 절차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This article examines 1663 kyolsong iban(決訟立案) of Che-ju Mok, characterizing the litigation of Choson Dynasty Iban of 1663. The litigation was the civil action between the first-son's descendents and the second-son's ones related to the ownership of bi(婢) Pokt'ae born to bi Tagi who belonged to pongsajo(奉祀條), or ancestral-rites expense, of hahoe mungi(和會文記), or document articulating the inheritance of one deceased parent's property based upon his/her children's complete agreement.
In the course of the oral proceeding, the defendant, the first-son's descendents, tried to uphold a cause by arguing that the plaintiff greedy for the property did harm to the concord among brethren. On the other hand, complainant, the second-son's descendents focused upon kago mun'gi(可考文記), or evidential document. This shows that there was a difference in their strategy for the litigation. The official in charge of the litigation, based upon their evidential documents rather than their arguments, adjudicated the dispute in the favor of the plaintiff. His logical inference in the adjudgment centered upon the evidential documents. This means that the progression of litigation in the Choson period was based upon evidential documents, a characteristic of the litigation progression in the period.
The characteristic was confirmed in the mun'gi chonjun(文記傳準). The mun'gi chonjun meant one of the litigation procedures in which defender and plaintiff verified his counterpart's documentary evidences litigants submitted to the court in order to conform the authenticity of the documents and their competence of evidence. Also the mun'gi chonjun meant the document produced as a result of the verification which was composed of three parts: the first part was the official transcript of verified documentary evidences; the second one was the space for both complainant and defendant to write a letter of 'paek(白)' and also to sign the document; and the last one, the kwanso tapin(官署踏印) in which the official in charge of the litigation write a letter of official title, signed his own autograph and stamped the document with an official seal. The mun'gi chonjun was the first step for the plaintiff and the defendant to conform the authenticity of evidential documents and their competences of evidence, and also major procedure which characterized the litigation process based upon evidential documents as well as the legal subjectivity of those concerned, viz. complainant and defendant.
The mun'gi chonjun found in Cheju Island was not the characteristic peculiarity of the litigation conformed only at the Island but one of basic litigation procedures followed around the country in the Chos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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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사이에 벌어진 제주에 거주하는 강언준 등과 서울에 거주하는 이규장, 이순달 사이의 노비 소송을 검토함으로써 조선시대 소송을 통한 권리 보호의 수준을 파악해보고자 했다. 이 소송의 주요 분석 대상 자료는 강언준 등 제주민 4인이 이순달을 상대로 제주목에 제기한 소송 과정과 판결문이 수록된 1597년∼1601년 사이에 발급된 제주목 결급 입안이다.
이 소송은 소송의 핵심 쟁점을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 증거를 피고인 이순달로부터 제출받지 못한 채 방증 자료를 근거로 판결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원고측과 피고측이 동의하고, 방증 자료로도 사실 관계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면 사실 관계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핵심 증거 문서를 제출받지 못한 상태에서 판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송관이 원거리 소송시 소송 사안에 대한 모든 증거와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증거로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후 이 방증 자료의 증거 능력이 문제가 된다면 분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송은 강언준 등 제주민들이 유적에게 도매(盜賣) 노비를 매득한 것이 발단이 된 소송이다. 이규장이 유적을 상대로 조상 유루노비를 도매했다며 형조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강언준 등의 소유권 행사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당시 이규장의 소송을 접수한 형조에서는 유적과 제주민들 사이에 작성되었던 매매 문기를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했을 뿐 도매 피해자일 수 있는 매득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강언준 등은 유적과 이규장의 거주지인 서울까지 올라가 법사에 소지를 올려 자신들의 소유권을 보전받아야 했다.
도매 사안에 대한 소송시 매득자의 재산권을 보전해주는 것이 송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다른 결송 입안의 사례들을 통해서도 파악된다. 첫째, 도매 재산 추심자가 도매자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일수도 있는 시집자(時執者)를 상대로 소송한 사례가 많았고, 이것이 허용되었다. 둘째, 송관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관에서 나서서 구제하고자 하지 않았고 원고, 피고 중 누구에게 결급할 것인지만 결정하여 판결했다. 조선에서 도매로 인한 개인의 재산권 침해는 피해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야만 법적 판단과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송관은 소송 당사자들의 권리 보호보다는 현재 발생한 분쟁의 처리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거래 행위로 인한 사인(私人)의 재산 피해는 피해 당사자가 소송을 통해 보전받아야 했으며, 거래의 안정성을 위한 체계가 미흡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This paper analyzes the lawsuit between Jeju residents Kang Eon-jun and co-litigants, and Seoul residents Yi Gyu-jang and Yi Sun-dal over certain nobi―a dispute which unfolded betwee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in order to assess the degree to which rights were protected through lawsuits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source at the heart of its analysis is thus the “Jeju-mok Suit Certificate of Adjudication”―issued between 1597 and 1601, and recording both the course of the lawsuit filed in Jeju-mok by Jeju residents Kang Eon-jun and four others against Yi Sun-dal, as well as the judgment of its adjudicating official.
Because insufficient direct evidence on the matter in question was submitted by defendant Yi Sun-dal, decision on this suit was reached on the basis of circumstantial evidence. As this shows, given the possibility that circumstantial evidence play a role in cases in which both plaintiff and defendant agreed to its use in elucidating the facts of a given dispute, a judgment could also be reached even in a case in which the direct evidence submitted testifying to the f acts of a dispute was insufficient. This meant that in instances of lawsuits between faraway litigants―in which adjudicating officials were unable to ascertain the full extent of information or evidence concerning a matter in question and thus reached their decisions based on partial evidence―the admissibility of circumstantial evidence could later be called into question and thereby prolong the dispute.
The “Jeju-mok Suit Certificate of Adjudication” describes a lawsuit that arose out of the purchase ―by Kang Eon-jun and his Jeju-based co-litigants―of nobi from a certain Yu Jeok. Because Yu did not have proper ownership rights over those nobi, they constituted stolen property. Yi Gyu-jang filed suit against Yu Jeok with the Ministry of Penal Affairs (刑曹) alleging that Yu had illicitly sold nobi considered the residuary human estate of Yi's ancestors and thus improperly obtained by Yu; that is to say, the nobi in question was not expressly conveyed to an inheritor by that nobi's owners and thus formed that owner's residuary estate, to be dealt with through intestate succession. This created a problem for Kang Eon-jun and his co-litigants as they attempted to exercise their ownership rights; Kang and his co-parties later traveled to Seoul―where Yi Gyu-jang and Yu Jeok resided―and filed a petition with the capital's legal officials demanding that their ownership rights be protected. For Kang and his co-litigants, the problem was that the Ministry of Penal Affairs, which had received Yi Gyu-jang's suit, had simply requested the invalidation of the sales document created between the Jeju residents and Yu Jeok; the Ministry had not taken any measures to protect the property rights of the purchasers of the nobi in question, who were quite possibly the victims of a fraudulent sale of stolen property.
That in suits involving the sale of stolen property protecting the property rights of purchasers was not the primary concern of officials is also borne out in the certificates of adjudication of other suits. First, there were many cases in which the party seeking to recover some illicitly sold, improperly obtained property filed suit not against the person who had obtained and sold the property in question, but rather, against the current possessor of that property. This practice was, moreover, widely accepted. Second, the adjudicating officials did not make separate efforts to provide relief to victims who had not filed lawsuits of their own; rather, they determined who among the named plaintiffs and defendants to rule in favor of, and passed down judgments accordingly.
In Joseon, the violation of an individual's property rights arising out of a sale of improperly obtained property could only be adjudicated and redressed through the law if the said victim filed a lawsuit on their own. In the Joseon period, adjudicating officials appeared to show more interest in the actual settlement of disputes at hand rather than i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those involved in a given lawsuit. Accordingly, the damages to the property and property rights of private individuals that arose out of various transactions had to be addressed through lawsuits by those victims themselves if they were to receive any protection or redress. Such were the flaws in the period's system for guaranteeing the stability of transa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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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후기 전준과 관식의 준수에 관한 실증적 고찰

저자 : 심희기 ( Sim Hui-gi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7-11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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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필자는 제주목사가 결급한 4개의 결송 입안을 자료로 삼아 Ⅱ.에서 상송(相訟)에서의 문기전준(文記傳准)의 여러 모습을 분석하고, Ⅲ.에서 상송에 위단이 없으려면 필요한 요건(官式=訟體)을 검토하였다. 전준의 의미에 관하여는 1996년에 김현영의 선구적인 연구논문이 _고문서연구_ (9·10 합집호)에 발표되었는데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한 상송에서의 문기 전준의 의미는 김현영이 1996년에 발표한 전준(인증 있는 등본발급)의 의미와 일단 다른 것(반대 당사자가 제출한 문기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행위)처럼 보이면서도 공통되는 측면이 없지 않고 1996년 이후 전준의 의미를 분석할 수 있는 사료도 많이 축적되어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Ⅵ.에서는 김현영의 선구적인 연구논문을 기초로 삼아 전준의 다양한 용례에 관한 재검토를 전개하였다.
이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준의 '傳' 자에는 '본문서 존재의 전제와 그 등서(copy)'의 의미가 담겨 있고 '공적 인증'의 의미는 '准' 자에 담겨 있다.
둘째, '상송에서 당사자 일방이 반대 당사자가 제출한 문기의 진정성을 인정·확인하는 소송행위'도 전준이라는 용어로 파악하는 관행의 뿌리는 '准'자의 부분적 차용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관식(官式)과 위단(違端)의 의미에 대하여는 차후에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In 1996, Hyun Yeong Kim analyzed the meaning of the term Jeon-Jun (傳准) as a kind of official certification of the copied document. However, four civil court records which were recorded at Jeju local government gives me the idea that there was different meaning in the term Jeon-Jun. In this article, I introduced the evidence and argued that the term was also used as one party's ratification of the authenticity of the document provided by the adversary party. The conclusion of this article is as follows.
First, there were two different meanings in Jeon-Jun, one was official certification of the copied document and the other was ratification of the authenticity of the document provided by adversary party.
Second, the term of Jeon-Jun was originated from the meaning of official certification, but it was used as well in the meaning of one party's ratification of the authenticity of the document provided by adversary party because of the similarity.
How could it be done? The core element of the term, Jeon-Jun was ratification, so I think that Jeoson people gave the term two different meanings. Hence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term carefully when the term appears.
Third, the meaning of the formally stipulated manner and procedure (依官式) and the meaning of violation of the formally stipulated manner and procedure (違端) should be studie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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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시대 사급입안(斜給立案)의 양식과 발급 절차

저자 : 박하늘 ( Park Ha Neul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4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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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허여와 매매로 인해 발생한 재산의 소유권 변동에 대한 공증을 담당했던 사급입안(斜給立案)의 양식과 발급 절차에 관한 연구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사급입안의 시기별 점련(粘連) 문서와 문서에 기재된 관의 처분 기록에 주목하여 사급입안의 점련 양식을 시기별로 구분하고, 문서의 발급 절차를 실증적으로 구명하였다.
그 결과 사급입안의 양식은 발급 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고려 말 사급입안은 所志-許與文記-典議, 15세기 초∼16세기 사급입안은 所志-許與文記·賣買明文-侤音·條目-立案, 16세기 이후의 사급입안은 所志-許與文記·賣買明文-招辭-立案 순으로 점련되는 특징을 보였다. 이 중 진술문서의 변화가 가장 주목할 만한데, 고려 말에는 證筆等 所志가, 15세기∼16세기 초에는 侤音과 條目이 진술문서로 사용되다가 16세기 이후부터 招辭가 일반적인 사급입안의 진술문서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또한 관의 처분 기록이 비교적 충실히 기재된 사급입안의 접수 및 처분 날짜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결과, 사급입안은 ①입안 신청 소지를 관에 제출하고 ②소지에 대한 관의 접수와 ③처분이 내려지면 ④관련자를 추고하고 이들의 진술 내용을 검토한 뒤 이에 대한 ⑤입안을 작성하는 절차를 거쳐 발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관련자에 대한 추고가 선행된 이후에 입안 발급 처분을 내리는 유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This is study on the form and issuing procedure of the Sageubiban documents that notarized the of ownership of property when property transfers related to inheritance or trading occurred. This research periodically organizes the forms of attached documents and reveals the issuing procedure of the Sageubiban based on the attached documents and the dispositional records from local government.
Based on the form of the Sageubiban, there are three distinct periods that reflect that change over time. The Sageubiban from late Koryo Dynasty consists of Soji(所志)-Heoyeomungi(許與文記)-Jeonui (典議). The order of documents in the early 15th to the 16th century is Soji-Heoyeomungi· Maemaemyeongmun(賣買明文)-Dajim(侤音)·Jomok(條目)-Iban(立案). After the 16th century, documents are presented in the Soji-Heoyeomungi·Maemaemyeongmun-Chosa(招辭)-Iban. Above all, the most remarkable truth is the change of the statement. Chosa was commonly considered as a statement of the Sageubiban after 16th century, Jeungpildeung Soji(證筆等所志) in late Koryo Dynasty, Dajim and Jomok in the early 15th to the 16th century.
Through examining the date of receipt and disposition of Sageubiban in chronological order, we can see that standard procedure for issuing a Sageubiban would be as follows. ①A Soji, which expressing the intent to request an Iban is submitted ②once the local government approves the receipt and ③disposition of the Soji ④the people concerned examines and reviews the contents of the statement. ⑤finally, an Iban was issued. In some cases, however, the disposition was made after the examination of the person concerned in adv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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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시대 대송(代訟)의 양상과 특징 -16세기~19세기 결송립안(決訟立案)을 중심으로-

저자 : 한효정 ( Hyojung Ha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9-16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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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소송판결문인 決訟立案에 나타난 代訟행위에 대해 고찰하고자 작성한 것이다. 조선시대 대송의 대부분은 아들이나 사위 등 혈연관계이거나 노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의 법 규정은 전반적으로 대송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현전하는 결송입안 73건을 통해 보았을 때 1/4 이상의 경우에서 대송이 이루어졌고, 代訟奴主의 신분이나 대송사유를 분석해보면 법 규정에 비해 포괄적으로 대송을 허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송노들은 소송당사자의 지시에 따르는 使者로서의 속성을 기본적으로 띠고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대송노들은 소송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혈연관계의 대송인은 소송사유를 적시하고 일정한 절차를 통해 대송자격을 인정받아야 했다. 이러한 측면은 혈연관계의 대송인에게 당사자의 권리가 위임되어 소송권이 부여되었고 법적 효력을 갖는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This paper was written to examine the daesong behavior in kyolsong-iban(決訟立案), a court ruling in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Joseon Dynasty, most of the daesongs(代訟) were related by blood, such as a son or son-in-law, or by slaves.
In the Chosun dynasty, the law tended to suppress the daesong(代訟), but when the current kyolsong-iban(決訟立案) was analyzed through 73 cases, daesong(代訟) was made in more than 1/4 of the cases. Considering the reason of Daesong(代訟) I was able to find out that Daesong(代訟) was widely accepted compared to the law.
The daesong-slaves(代訟奴) had basically the attribute of assistant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the litigant, but occasionally daesong-slave(代奴), with professional knowledge showed active participation in the litigation. In contrast, the daesongin(代訟人) of the blood relationship shoud be qualified by a certain procedure. This aspect shows that the daesongin(代訟人) of the blood relationship was entrusted with the rights of the litigant and was an agent with leg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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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후기 거행조건(擧行條件)의 고문서학적 고찰(考察)

저자 : 김병구 ( Kim Byung Gu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9-20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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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승정원일기』 등에 무수히 등장하는 거행조건의 실체를 실물 문서를 통해 확인하고, 연석에서 내려진 왕명 시행의 한 방식으로서 거행조건의 문서행정체계를 규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현존하는 거행조건의 성립 배경과 문서 행정, 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변화와 특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거행조건이란 국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에 의해 작성되는 문서로, 국왕과 신하가 모여 매일의 국정을 논의한 사안 중 장차 거행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연석에 입시한 주서는 국왕과 신하가 논의한 사안들을 속기록장부인 注書草冊에 기록하였고, 이 중 왕명에 의해 실제로 거행할 사안을 연석이 파한 후에 다시 정서하여 입계하였다. 초책의 내용을 거행조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분명한 사실들이 확정되거나 구어체의 문투가 간략하게 수정되었음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왕명에 의해 작성되는 거행조건의 특징상 문서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왕은 입계한 거행조건에 대해 啓下·留中·還給의 방식으로 처결하였다. 이 중 계하를 거친 거행조건은 국왕이 해당 사안을 재가하였음을 의미하는 判付가 작성되어 승정원에 내려졌고, 승정원에서는 계하된 거행조건에 대하여 문서의 내용을 실제로 봉행할 아문에 분부하였다. 이 때 해당 아문의 낭청이 승정원에 도착하여 거행조건의 내용을 등출해 갔는데, 반드시 전교를 받드는 예를 갖추어야 했다. 이후 각 아문에 의해 거행조건의 내용이 실제로 시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현존하는 거행조건을 중심으로 시행 결과를 살펴 보았다. 한편, 계하된 거행조건은 조보에 그 내용이 실려 반포되기도 하였다. 거행조건을 조보로 반포할 경우 국왕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 시행되거나 국왕과 신하가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거행조건을 조보에 내기로 결정하면 승지는 거행조건에 圈標나 '出朝報'를 踏印하여 다른 문서와 구분하였다.
이렇듯 거행조건은 매일 진행된 연석에서 국왕과 신하가 논의한 국정 현안 중 왕명에 의해 거행할 사안이 啓의 성격을 가진 문서로 작성되고, 이것이 단시일 내에 관련 아문에 의해 시행되거나 조보에 실려 중외에 반포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행조건의 작성과 시행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 국왕의 국정 운영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is prepared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Geohaengjogeon(擧行條件) which appearing countless times in _Seungjeongwon-Ilgi_. Geohaengjogeon means the administrative documents prepared by Seungjeongwon which was a king's secretary institution. When king and lieges meet together to discuss the operation of national affairs, the essential items to be implemented by King's commands were documented by Seungjeongwon. Preparation of Geohaengjogeon was initiated from preparation of Jooseochochaek(注書草冊) by Jooseo(注書). Jooseochochaek means the records that Jooseo dictated rapidly what people talked during the meeting. After the completion of the meeting, Jooseo came back Seungjeongwon and selected the contents to be implemented as the national policies making clean copies once again at Jooseochochaek. While making clean copies of the contents in Jooseochochaek as Geohaengjogeon, the Chinese sentences with unclear meanings were found to be amended or supplemented to understand easily, which was the action to make sure the accurateness and reliability of the certain documents in Geohaengjogeon prepared by king's commands. King approved Geohaengjogeon with clean copies submitted by Jooseo as the forms of Gyeha(啓下), Ryujoong(留中) and Hwangeup(還給). Among these, Geohaengjogeon with Gyeha sent to Seungjeongwon with the Pan-boo(判付) meaning that king confirmed and approved the document. Then, Seungjeongwon notified the related institution that would implement the items to copy the Geohaengjogeon according to the items. Each institution sent Nangcheong(郎廳) that was the junior official to Seungjeongwon asking to copy the contents of Geohaengjogeon and then each action item was confirmed whether it was implemented by the related institution. Meanwhile, Geohaengjogeon that were approved by king were announced by posting in Jobo(朝報). In case of Geohaengjogeon announcement by Jobo, it was performed by king's command directly or processed by the discussion with king and lieges. Once Geohaengjogeon was decided to be posted in Jobo, Sungji(承旨) marked circle(圈標) on the Geohaengjogeon or put the stamp with 'Chooljobo (出朝報)' to differentiate from the other documents that were not posted in Jobo. Geohaengjogeon have the characteristics that were documented with the national affairs on which king and lieges paid attention at the daily meetings and implemented by the related institutions within a short time or announced by Jobo. These characteristics provide the new viewpoint to understand the operation ways of national affairs by kings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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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후기 구전하교(口傳下敎)의 하달(下達) 체계(體系)와 개편

저자 : 이근호 ( Lee Geun Ho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7-23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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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 후기를 중심으로 구전하교의 하달 체계와 함께 영조대 진행된 개편 내용을 추적한 것이다. 왕명의 출발은 구두로 하달되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 口傳이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에 비로소 확인되며, 이후 조선시대까지도 왕명 계통의 하나로 통용되었다. 조선 후기 구전하교는 주로 승지가 입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달되었는데, 이때 왕명의 전달은 承傳色과 司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구전하교를 전달받은 승지는 이를 글로 써서 각 기관이나 개인에게 분부하였다. 이는 승지가 입시한 상태에서 내려지는 전교, 탑교, 거행조건 등의 체계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왕명의 전달이 승전색과 사알을 통해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이 제출되었다. 이에 1744년(영조 20) 구전하교의 하달 체계에 대한 개편이 추진되어, 이후에는 啓下 체계로 개편되었다. 관료제적 질서체계를 확립하려는 방향성의 연장선상이었다. 이울러 구전하교 중 조보에 내지 않는 왕명을 선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조 연간에 이르면 구전하교는 전교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차후 다른 계통의 왕명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서 그 위상을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고를 기약한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command system of Gujeonhakyo in the late choson with reorganizations carried out by the king Yeoungjo's regime. King's Command is assumed to have been conveyed orally, and the choson dynasty was not exception. It is not until the late Koryo dynasty that the term'Gujeon' started to appear in materials. Gujeon was among the term commonly used to refer the system of king's command. Gujeonhakyo was typically delivered in situation that seungji was not in front of king, at which king's commands were made through Seungjeonsaek and Saal. Seunji, who had received a Gujeonhakyo, wrote it into paper and distributed this paper to related individuals and institutions. It is different from Jeongyo, Topgyo, Geohaengjogeon which were delivered when seungji entered the king's palace. However, there was a negative view about king's command being delivered by Seungjeonsaek and Saal. In 1744(the 20th year of king Yeongjo's regime), the command system of Gujeonhakyo was reorganized into Gyeha system. It was an extension of its direction to establish a bureaucratic order system. In addition, they selectively suggested Gujeonhakyo which were not submitted to jobo. As a result, at the end of regin of king Jeongjo, Gujeonhakyo was accepted as equal as Jeonkyo. Furthermore, it is necessary to examine its status through comparison with the different system of king's command. This will be expected in future rese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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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역중일기』를 중심으로 18세기 대구 한 양반가문의 혼례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에 기반 하여 기존의 몇몇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았다.
조선시대의 혼례는 신부 또는 신부 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같은 절차와 과정 가운데 혼례(초례) 이전은 『주자가례』와 대략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혼례의 의식과 이후의 절차는 아주 다르다. 이를 반친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혼례와 타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체적인 측면 외에도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자가례』와 『사례편람』 등의 예서에 근거하여 서술된 기존의 연구성과는 당시의 현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이 연구는 18세기 대구 지역 한 양반가의 경우를 검토한 것이지만, 영남 명문 양반가의 일반적인 혼속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혼례란 다수의 상대를 가진 의례이기 때문이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overall process and procedure of wedding ceremonies in a noble family in Daegu, Korea in the 18th century, focusing on Yeokjoongilgi (曆中日記) written by Heungwon Choi (최흥원; 崔興遠; 1705∼1786), whose pen name was Baekbulam (백불암; 百弗庵), and to review the findings of earlier studies based on this.
Wedding ceremonies in the Joseon Dynasty were held focusing on a bride and her house. The overall procedure and process before wedding ceremonies were not far different from those written in Zhuzi Jiali (朱子家禮, The Family Rituals of Zhu Zi). However, the procedure during and after wedding ceremonies was very different. This can be called Ban-Chinyeong (半親迎), a compromise with existing traditional wedding ceremonies. Apart from this overall aspect, significant differences were also observed in detailed procedures and content. Therefore, the findings of earlier studies written based on books about courtesy such as Zhuzi Jiali and Saryepyeollam (사례편람; 四禮便覽, Easy manual of the Four Rites) were inevitably different from the reality of the time in many ways. These issues were specifically discussed in this study.
Although this study reviewed the case of one noble family in Daegu in the 18th century, the case can be understood as the general custom of wedding in noble families in the Yeongnam region. It is because wedding is a ceremony where multiple people are inv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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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선후기 순절 여성 신씨부 한글 유서 재론 - 유서 정보의 재구성 및 글쓰기의 의도와 목적을 중심으로 -

저자 : 홍인숙 ( Hong Insook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5-28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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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순절 여성인 '신씨 가문 며느리'가 자결하기 전 남긴 한글 유서의 기본 정보를 재구성하고, 유서를 쓴 의도와 목적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유서 4편의 정보들을 정밀하게 분석, 대조하여 새롭게 밝혀낸 유서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서 4편 중 유서④는 유서①∼③보다 10여 년 전에 먼저 쓰인 별도의 유서로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이 유서는 작자가 직접 쓴 친필 원본 텍스트가 아니라 후손에 의해 필사된 텍스트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셋째, 앞부분이 유실된 유서①의 대상은 양자 '돌놈'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새로 밝혀낸 신씨부 유서의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이 유서가 쓰인 의도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신씨부는 시부모 대상 유서를 통해 자결이 지연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시댁의 사정 때문임을 강하게 주장하고자 했다고 보았다. 둘째, 신씨부는 이 유서를 통해 입후로 인해 생긴 시부와 자신의 갈등을 드러내고 양자를 정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여성 유서가 표면적으로는 두려움과 슬픔 등의 감정을 비논리적으로 쏟아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감정 속에 죽기 전 해야 할 최후의 말을 전하는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며 자기 변론 및 증언의 성격을 강하게 담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했다.


This study aims to recompose the basic information of the wills written in Hangeul by a virtuous woman 'daughter-in-law of Sin's family' before committing a suicide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also to reveal the intention and purpose of writing these wills. By closely analyzing and comparing the information of total four wills, the information related to the wills was newly revealed as follows.
First, out of the four wills, the will④ was separately written about ten years earlier than the will① ∼③. Second, these wills are not the original text written by the writer, but the text transcribed by her descendents. Third, the object of the will① with the lost front part is estimated as an adopted son 'Dolnom'.
Based on the newly-revealed basic information of the wills by the daughter-in-law of Sin's family, this study analyzed the intention and purpose of writing these wills as follows. First, in the will④ left for her parents-in-law, the d aughter-in-law of S in's family strongly argued that her suicide was delayed not because of herself, but because of circumstances in her family-in-law. Second, the daughter-in-law of Sin's family aimed to reveal the conflict between her father-in-law and her by the matter of deciding a foster son, and also to argue her rights to decide a foster son. In conclusion, even though the wills by the female writer seem to be emotional revealing the fear and sorrow, in reality, they show such clear purpose and logicality to deliver the last words before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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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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