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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82)~83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009
동방한문학
83권0호(2020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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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의 학습차제(學習次第)에 대한 사적(史的) 고찰(考察)

저자 : 姜玟求 ( Kang Min-koo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67 (6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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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학습차제에 대한 본격적 논리는 15세기부터 출현한다. 金叔滋는 고려 말 이래 정통 유학의 학맥을 계승하여, 家學의 차원에서 수신과 학문에 대한 체계적 학습차제를 구축하였다. 이를 계승한 영남의 학습차제론은 골간을 유지하면서 16세기부터 종래의 기초 식자 및 문해력 육성 교육이 간략화혹은 생략되고, 수신 교육도 문해력을 겸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하였다. 또 작시 학습을 조기에 시행하고, 경서 학습의 진입 기간도 단축하였다. 이는 영남 지역에서 형성되어 家傳되던 학습의 차제와 교재가 지역성을 벗어나 전국적 특성을 공유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한편 金時習의 학습차제 이력에서 조선 초기 서울 영재 교육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김시습은 온 나라에 소문이 난 신동이었기에 수신서의 교육은 최소화하고 당대 최고의 교육전문가이자 석학들이 직접 경서 교육을 하였다.
16세기에 가장 볼 만한 학습차제론은 李珥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이는 구체적인 학습의 차제와 독서법을 정리하여 학습자에게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擊蒙要訣』을 직접 편찬하였으며, 학습 과정에 따른 학습 내용과 학습방법 및 학습 목표를 일일이 제시하였다. 이이가 제안한 학습차제의 특징은 식자와 기초 문해를 위한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수신 교육의 차원에서 『소학』을 교수하며, 이후로는 9경을 대상으로 한 학습을 정밀히 한 다음에 理學과 역사서를 학습하도록 권고하였으며 제자서 등 이단 서적의 독서는 철저히 금지하였다.
17세기 조선 중기에 가장 주목되는 학습차제론은 李植에 의해 작성되었다. 그는 학습 위계와 교재 및 학습 방법을 포함한 학습차제론을 위시하여, 경전 학습, 시 학습, 작문 학습에 대한 생각을 상세히 개진하였다. 그는 학습자의 능력에 따른 수준별 교재 선택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고, 학습자의 역량을 고려하여 다양한 학습 범위를 제안하였으며, 학습자에게 불필요한 학습 부담의 경감을 제안하였으며, 실천을 학습의 영역과 구분하였다.
18세기 조선 후기의 학습차제에서 주목되는 이론은 성호학파와 실학파에 의하여 제출되었다. 李瀷은 교재 위주로 제시되어 온 이전의 경향을 탈피하여 각 교재의 학습 기간에 대한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조선의 학습차제를 진일보케 하였다. 이익은 9경을 4년 4개월 안에 모두 학습하는 과정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이익의 학습 기간에 대한 관념과 의식은 그의 제자인 安鼎福에게로 계승되었다. 안정복은 학습 과정을 8세~15세, 15세~22세, 22세 이후로 구분하고, 각기 學齡에 적합한 교재를 제시한 원나라 程端禮의 논리를 조선에 소개하고 적용을 권고하였다.
尹愭도 이익을 사사한 인물인데, 그는 경서와 성리학의 착실한 학습을 강조하였으며, 역사서와 문학서, 제자서들의 학습도 망라하라고 권고하였다. 윤기의 학습차제론은 조선의 학습에 대한 이상과 실제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비판하였던 초학서인 『천자문』·『類合』·『사략』·『통감절요』를 학습차제에서 모두 배제하였고, 그 대안 교재로 『覺蒙千先』을 제작하였다.
18세기의 洪大容과 李德懋 같은 실학파들은 중국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였고, 조선의 잘못된 교육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童子習』이나 『사략』 등 당시의 일반적인 교재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이덕무는 李萬運이 편찬한 『紀年兒覽』을 수정 보완하여 아동 교재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정약용은 星湖 이래의 학습 기간에 대한 관심을 계승하여 학습 시기와 일수, 학습차제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제안하였다. 정약용의 학습차제에는 조선 시대에 보편적인 초학 계제로 간주하였던 식자, 문해 교육이 없으며, 순차적 학습차제 뿐만 아니라 교차적 학습차제도 함께 제안하였다. 그는 『천자문』·『십구사략』·『통감절요』와 같은 보편적 초학 교재를 강하게 비판하였고, 『兒學編』이라는 대체 교재를 편찬하였다.
조선의 학습차제론은 '기초적 문해 교육 → 수신 교육 → 경전 교육'이라는 기본적 구조를 유지하되, 현실성을 지향하며 변화하였다. 또 그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재에 대한 모색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The full-scale logic of Joseon's learning order emerged from the 15th century. Kim Sook-ja(金叔滋) succeeded to the academic genealogy of authenticity Confucianism since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and at the level of hereditary family learning, he established a systematic learning order about moral training and study. The theory of learning order in Yeongnam, which inherited this, maintained the essentials, the conventional basic word recognition and literacy training education has been simplified or omitted since the 16th century, and the moral training education has also gradually changed in a way that combines literacy skills. In addition, versification learning was carried out early, and the period of entry into learning of the Confucian classics was shortened. This was a phenomenon in which the topic of learning order and textbooks that were formed in the Yeongnam region and handed down in a family, were out of locality and shared national characteristics.
Meanwhile, the history of learning order of Kim Si-seup(金時習) showd the aspect of gifted education in Seoul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Since Kim Si-seup was a prodigy known throughout the country, the education of the moral training materials was minimized and the best education experts and scholars of the time taught the Confucian classics directly.
The most remarkable theory of the learning order in the 16th century was made up by Lee-Yi(李珥). In accordance with his nickname 'Gudojangwon(九度壯元, passing the examination for the nine times)', Lee-Yi organized the specific learning order and reading method and provided it to learners as well as compiled excellent teaching materials called 『Gyeokmongyogyeol(擊蒙要訣)』. He presented the learning content, learning method and learning goals according to the learning process one by one. The characteristic of the learning order proposed by Lee-Yi was that there was no education for word recognition and basic literacy. In the aspect of moral training education, 『Sohak(小學)』 was taught, and afterwards, he recommended that students should study science and history books after precisely learning the nine Confucian classics. And the reading of heresy books, including various Schools' books, was strictly prohibited.
In the 17th century,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the most notable theory of the learning order was written by Lee-Sik(李植). He expressed his thoughts on Confucian classics learning, poetry learning, and composition learning by focusing on learning order including the learning grade of rank, textbooks and learning method. He specifically suggested the method of selecting textbooks by level according to the learner's ability, and proposed various range of learning in consideration of the learner's capability. Also, he presented a reduction in unnecessary learning burden to the learner, and separated practice from the area of learning.
The theory that was noted in the learning order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18th century was submitted by the Seongho School and Shilhak School(實學派, a positive school). Most of the learning order of Joseon were presented mainly on textbooks, so their learning period was unclear, but Lee-Ik advanced the learning order of Joseon by presenting his views on the learning period of each textbook. He thought that the process of learning all the nine Confucian classics within four years and four months is ideal.
The notion and consciousness about the learning period of Lee-Ik were passed down to his disciple, An Jeong-bok(安鼎福). He introduced and recommended the application of the logic of Jeong Danrye(程端禮) from Yuan Dynasty, who divided the learning process into 8 to 15 years old, 15 to 22 years old, and after 22 years old, and suggested textbooks suitable for each school age.
Yoon-Gi(尹愭) also studied under Lee-Ik. He emphasized the solid learning of the Confucian classics and Neo-Confucianism, and recommended student to cover the learning of historical books, literary books, and various Schools' books. Yoon-Gi's theory of learning order considered both the ideals and the realities of learning in Joseon. He excluded all the first learning books such as 『the Thousand-Character Classic(千字文)』, 『Yuhab(類合)』, 『Saryak(史略)』 and 『Tonggamjeolyo(通鑑節要)』 which he had criticized from the study order, and he produced 『Gakmongcheonseon(覺蒙千先)』 as an alternative book.
Shilhak School such as Hong Dae-yong(洪大容) and Lee Deok-mu(李德懋) in the 18th century were very interested in education, so they were curious about how China's education was being conducted, and they criticized the wrong education in Joseon, and tried to suggest alternatives. In particular, Lee Deok-mu, who had a critical view on general textbooks of the time, such as 『Dongjaseub(童子習)』 and 『Saryak(史略)』, tried to supplement and correct the 『Ginyeonaram(紀年兒覽)』 compiled by Lee Man-un(李萬運), and use it as a children's textbook.
Jeong Yak-yong inherited his interest in the learning period since Seongho, and proposed his own views on the learning period, number of learning days, and learning order. In addition to the sequential learning order, Jeong Yak-yong suggested a cross learning order separately. He also strongly criticized most of the first learning books that were commonly used in Joseon, such as 『the Thousand-Character Classic(千字文)』, 『Nineteen saryak(十九史略)』, and 『Tonggamjeolyo(通鑑節要)』. Therefore, in his learning order, there was no word recognition or literacy education that was considered a universal elementary school course in the Joseon Dynasty. He also compiled an alternative textbook called 『Ahakphyeon(兒學編)』.
The theory of learning order of Joseon maintained the basic structure of 'basic literacy education → moral training education → Confucian classics education', but it changed while pursuing reality. Also, the search for textbooks that could be effectively used was constantly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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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 학자들의 경전 독서 차례에 대한 인식 논리 -『격몽요결(擊蒙要訣)』과 『하학지남(下學指南)』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咸泳大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9-10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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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학자들이 경전을 독서하는 차례에 대한 검토이다. 경전독서법을 가장 우선적이고 선명하게 제시한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과 그를 충실하게 조술하며 확장한 순암 안정복의 『하학지남』, 그의 제자 하려 황덕길의 보완을 중심으로 경전 독서에 대한 인식 논리를 검토하였다.
율곡이 『격몽요결』에서 제시한 독서 차례는 송학의 성리학적 심성수양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데 요긴한 방향으로 구축된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제시된 『소학』을 읽고 『대학』을 읽는 순서가 당대 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던 왕세자에게도 어려운 것이었지만 율곡이 제시한 '이상적'인 방법론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색을 초월하여 널리 전파되었다. 순암 안정복과 그 제자 하려 황덕길의 독서차제도는 그러한 현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황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율곡이 게시한 독서 차제는 그 학술적 성과에 있어 명암이 없을 수 없다. 지나치게 경학을 우선시하여 기타 학문에 대한 관심을 줄인 것이나 섭렵을 금지하는 엄격한 단계론과 정독을 요구한 것은 풍부한 지식의 섭취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심성수양 위주의 목표인식은 적극적인 사회적 실현에 대한 의지를 반드시 견인한다고 보기 어렵다. 벽이단의 시각은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그것은 학문의 다양성에 대한 강력한 장애요인으로, 심지어 문예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적지않은 부작용이다. 기실 그러한 시각은 근대로 넘어오기까지 우리가 고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는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독서 차제에 대한 율곡의 제시는 학문의 발전단계에 적지 않은 자양분을 제공함과 동시에 학문발전의 편중을 낳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계에서 큰 파급력을 가지고 수용되었는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후고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This article is a review on the sequence of reading for scriptures by the Joseon scholars. The theory of perception on scriptures reading is reviewed around 『Gyeokmongyogyeol』 of Yulgok Yiyi that presented the method of scripture reading in the most preferential and clarified ways and 『Hahakjinam』 of Sunam An jeong-bok who implicated and expanded the thoughts with the supplement of his disciple, Haryeo Hwang Deok-gil.
The sequence of reading presented by Yulgok in 『Gyeokmongyogyeol』 was structured in the direction critical to substantively realize the nature meditation in Neo-Confucianism of Song Hak It was difficult even for the crown prince who had the highest level of education at the time with the sequence of reading 『Sohak』 that was presented with the most primary sequence, followed by reading 『Daehak』, but the ideal methodology presented by Yulgok was not only applied in the actual education field but also was broadly dispersed beyond the political sectors. The system for sequence of reading of Sunam An Jeong-bok and his disciple, Haryeo Hwang Deok-gil, demonstrated such phenomenon in the clearest aspect.
Notwithstanding of such fact, the system for sequence of reading presented by Yulgok should have certain light and shade with respect to the academic outcome. It would be feasible to consider that reducing the advancement and interest on other academic fields with the excessive preference on Chinese classics or demanding for stringent phraseology and well-reading that banned the thorough reading would be a factor to interfere with the enriched absorption of knowledge. The perception on nature meditation-oriented objectives is difficult to consider that it leads the willingness for enthusiastic social realization. The view of Byeokidan could provoke the most serious problem due to the fact that it was a powerful factor for interference with the diversity of academics with the significant side effect on influence to the literature and culture. In fact, such a view caused the result to curtail the assets that we could facilitate in the classics until it comes into the modern era and it is a category that needs to be carefully reflected.
As a consequence, the suggestion of Yulgok on the sequence of reading provided the significant nutrition to the advancement phase of academics as well as leaning toward academic development at the same time that cannot be neglected. Notwithstanding the fact, what is the reason for accommodating such fact with significant dispersion effect in the Joseon academic circle? This point will be addressed in the articles to be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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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노론의 한문 학습 차제와 체계에 대한 연구 -독서체계와 강학의 측면에서-

저자 : 李君善 ( Lee Goon-seo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1-13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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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노론의 한문 학습 차제와 체계는 어떠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어느 학파이건 마찬가지이겠지만 노론계에서는 학문을 하기 전에 먼저 기본 행실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위해 바른 몸가짐을 위한 일상 수칙을 강조하고 있으며 독서하는 자세와 방법도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바로 할 것과 하나의 책을 뜻이 통할 때까지 익숙하게 읽고 많은 것을 탐하지 않도록 하였다.
아울러 학통과 학설을 이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체계적인 독서와 강학을 중시하였다. 노론계 학자들은 독서의 차례를 율곡이 『격몽요결』에서 제시한 순서를 따랐다.
『소학』·『대학』·『대학혹문』·『논어』·『맹자』·『중용』·『시경』·『예경』·『서경』·『주역』·『춘추』·『근사록』·『가례』·『심경』·『이정전서』·『주자』 『대전』·『주자어류』 등은 모두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제시한 반면과거 공부를 위한 학문 방법에 대하여는 특별한 견해를 표출하지 않았다. 이는 이들이 학문적인 성향을 지닌 학자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노론계학자들은 강학활동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강학이 학설과 학통을 전수하고 학파를 키우는데 유효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바른 습관과 평소 생활 태도, 독서의 자세와 방법, 강학의 중시 등은 모든 계열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이며 노론계열의 특징이 드러나는 것은 독서의 차제 그 중에서도 『가례』를 중시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례』의 중시가 뒤에 학파 이론의 전개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 지는 추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what Noron's process and system for Classical Chinese learning were. Any sects will be the same, but prior to studying at the Noron sect, they were first asked to have basic conduct, and to this end, emphasis was placed on daily routines for good body shape. In terms of the reading postures and methods as well, the postures of reading books should be correct, and one book should be read until it fundamentally makes sense, while so many things being not coveted.
In addition, systematic reading and Ganghak were emphasized as a way to continue to succeed to their scholastic mantle and theory. Noron sect scholars followed the order of reading as suggested in Yulgok's “Gyeokmongyogyeol”.
While “Sohak; Elementary Learning”, “Daehak; Great Learning”, “Daehak Hokmun”, “Analects of Confucius”, “Mengzi”, “Zhong Yong”, “Book of Odes”, “Classic of Proprieties”, “Classic of Documents”, “Book of Changes”, “Annals of Spring and Autumn”, “Geunsarok”, “Family Rites”, “Hsin Ching”, “Erchengquanshu”, “Zhuzi Daejeon”, and “Zhuzi Yulei”, etc. are all presented as essential reading books, there was no particular opinion on the academic method for studying state examination. This seems to be because they were scholars with academic tendencies. Also, Noron sect scholars emphasized Ganghak activities, which was because Ganghak was an effective way to pass on their scholastic mantle and theory and to increase the sect.
On the whole, things such as good habits, daily life attitudes, reading attitudes and methods, and emphasis on Ganghak seem to have been emphasized in common in all lines, and the characteristic of Noron sect line can be said to be the point that they put special emphasis on “Family Rites” among reading processes. It seems that the importance of the “Family Rites” should be reviewed later in relation to the development of the sect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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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한문 학습 차제와 체계에 대한 연구

저자 : 鄭敬薰 ( Jung Kyung-hu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1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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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파들은 경전과 역사서를 통해 각각의 추구하던 학문적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였고 현실정치에 참여 여부를 떠나 16세기 이후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오면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경전과 역사서를 필독서로 삼고 경전의 학문적 해석을 경쟁적으로 펼치기도 하였다. 경서의 뜻을 해석하거나 찬술하는 경학은 17세기,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룬다. 이들은 경전의 권위를 이용해 이념의 절대성을 확보하고 학파의 구심점으로 여기며 여타의 자의적 경전 해석을 불용하는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하였다.
이런 배경을 통해 기호학파들은 초학자부터 수준에 맞는 교재를 개발하고 한문학습의 순서를 정해 체계적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파의 동질성을 확보하였다. 송시열 이후에 벌어진 禮訟論爭, 권상하의 문인들 사이에 人物性同異論의 문제로 드러난 湖洛論爭 등은 기호학파의 분파 과정에서 나타난 대표적 사건들로 이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경서의 권위를 이끌어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기호학파의 종장인 이이는 『小學集註』와 『擊蒙要訣』 등 초학도부터 체계적인 학문의 길을 제시하면서 주자학 입문의 길을 놓았다. 그리고 성혼과 함께 유가의 사서오경과 각종 송대 성리서적을 탐독할 것을 주장하였다. 『근사록』과 『심경』을 주목하며 후대 성리학이 국가경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임금의 경연에서부터 사대부,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유의 저변에 성리학의 사상이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인 이들의 확고부동한 성리서적의 선택과 학습에 있다.
이후 문인들은 각 시대에 맞는 시대 이념을 통해 선호하는 독본을 선정하였다. 김장생은 『禮記』와 『家禮』를 통해 禮學을 강조하였다. 그의 문인들은 禮訟을 통해 최대 정치 이슈였던 인조반정과 宗法 문제 등은 『禮記』, 『儀禮』, 『家禮』 등에 바탕을 둔 예학이라는 새로운 통치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는 주자도 완성치 못한 예학의 틀을 마련하고 『典禮問答』, 『家禮輯覽』, 『喪禮備要』, 『疑禮問解』 등을 편찬하여 임금부터 평민까지 적용할 수 있는 예법을 구축했다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김장생의 문인인 송시열은 直사상을 강조하며 그의 바탕이 된 『춘추』를 계승, 발전시켰다. 任丙兩亂 이후 衰世해 가는 조선 사회에서 송시열은 공자의 『춘추』의 정신, 春秋筆法을 계승하고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기록하여 보편타당성을 획득한 춘추필법은 直의 사상과 밀접하였다. 송시열은 교육목표를 올바른 삶을 구현하는데 있었고 올바름 (直)만큼 값진 것은 없기 때문에 올바름을 잃은 인간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인식했다. 이런 정신은 춘추필법을 통해 춘추대의의 정신으로 표출되었고 조선 후기까지 조선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이념으로 남게 되었다. 한말 위정척사 계열학자들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기호학파 전체에 많은 큰 영향을 끼쳤다.


Giho schools tried to reach their academic goals through the scriptures and history books. Whether or not they participated in real politics, they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real domination of Joseon since the 16th century. Giho schools made the scriptures and history books a must-read and competitively interpreted the academic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Because of this background, Giho schools have developed textbooks suitable for beginners. In addition, by establishing the order of learning and conducting systematic classes, the homogeneity of the school was secured. The debate about etiquette and the debate over the minds of humans and objects after Song Si-yeol are representative events in the sectarian process of the Giho schools.
Lee Yi, the founder of the Giho schools, wrote 『Sohagjibju』 and 『Gyeogmongyogyeol』. He laid the way for introductory runners, suggesting a systematic path from beginners to beginners. In addition, he insisted on reading the librarianship of the study abroad and the Neo-Confucianism book of the Song Dynasty. From the wages to the nobility and the commoners, the basis of all thought was based on the thought of Confucianism. They firmly learned the sacred books. 
Their disciples chose their favorite book through the ideology of the times appropriate for each era. Kim Jang-saeng emphasized etiquette through the 『Yegi』 and 『Galye』. And his disciples valued books such as 『Yegi』, 『Uilye』, and 『Galye』 in political important matters. It also showed a new way of governing the state with courtesy. He completed the study of etiquette and made various books to establish etiquette that could be applied from wages to commoners.
Kim Jang-saeng's disciple, Song Si-yul, emphasized the idea of Jig. In addition, he succeeded and developed the 『Chunchu』} that became the basis. He was trying to mentally overcome Joseon, which had declined since the war. So, he succeeded to the creative spirit of Confucius' writing method. That is the "Chunchupilbeob". It only records objective facts. Song Si-Yeul recognized that the goal of education was to realize the right life and that nothing was worth as much as right, so there was nothing more to lose. This spirit remained as an ideology to dominate Joseon society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whole Giho sch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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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초학자를 위한 독서 교육의 방법과 현대적 전망 - 언어 교육 및 작문 교육과의 연계성에 주목하여 -

저자 : 安世鉉 ( Ahn Se-hyu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9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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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초학자를 위한 독서 교육의 성격을 고찰하고,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활용할 만한 독서 교육의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선행 연구가 주로 조선 시대의 독서 문화나 개별 문인의 독서관·독서 방법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데에 반해, 본고는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선후기 초학자를 대상으로 한 독서 교육의 성격과 방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조선후기 초학자를 위한 독서 교육은 성현의 학문을 탐구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으나, 한문이라는 언어를 습득하고 한문으로 글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곧 유교 교육을 목표로 하면서도 언어 교육과 작문 교육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 적용해 볼만한 독서 방법으로는 언어 교육과의 연계로서 音讀·多讀·記誦을, 작문 교육과의 연계로서 抄讀·箚記·抄書를 제시하였다. 음독·다독·기송은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여러 번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인데, 언어 교육의 측면에서 문자를 식별하고 문법을 깨치는 데에 유용한 방법이다. 초독·차기·초서는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읽는다거나 의문 나는 점을 기록한다거나 특정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여러 책에서 뽑아 편저를 엮는 것이다. 이는 독법인 동시에 작법으로서 작문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독서 교육과 작문 교육은 분리되어 있으며, 독서 교육에서 音讀을 초급한 수준으로 치부하고 작문 교육에서 抄書를 표절과 같이 여기는 풍조가 있다. 그러나 음독·다독·기송의 과정에서 텍스트의 이해와 수용을 위한 사고 작용이 함께 이루어지며, 특히 음독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속도·억양 등의 비문자적 자질들은 의사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다. 초독·차기·초서의 과정에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창의적 이해가 가능하며, 특히 초서는 작문의 과정에서 중요한 관련 정보의 수집과분석, 재구성을 익히는 데에 유용하다. 본고가 오늘날 독서 교육을 언어·작문 교육과 연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In this paper, I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reading education for beginner stud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presented a method of reading education that is suitable for use in today's school education.
I noted that reading education for beginn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aimed at Confucian ethics education, but it also had the characteristics of language education and writing education. Therefore, I suggested the oral reading and summarizing reading as reading methods suitable for today's school education. The qualities of speed and intonation that accompany the process of oral reading are important factors in communication. The summarizing reading is useful for training in the collection, analysis and reconstruction of relevant information that is important in the course of writing.
I hope this paper will help link today's reading education with language and writing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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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퇴계학파(退溪學派) 아동 교재의 수용과 활용 양상

저자 : 崔植 ( Choi Sik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7-24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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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朱熹의 『童蒙須知』를 필두로, 屠羲英의 『鄕校禮輯』의 유입과 간행을 비롯하여 金誠一의 『童子禮』와 鄭經世의 『養正篇』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아동교재를 추적하였다. 『동몽수지』는 주희의 다른 글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필사·간행되었던 바,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이 널리 유행하여 각광을 받은 이후로도 아동교재의 역할을 수행한다. 더욱이 『동몽수지』는 일상생활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향교 학령이나 향약 등의 조약 및 가숙 학규에 널리 수용된다. 특히, 盧守愼은 『性理字訓』과 『동몽수지』에 註解하는데, 문자교육과 덕성교육을 아우르는 의도이다.
도희영이 1567년 간행한 『향교예집』은 1577년 김성일에 의해서 조선에 전해진다. 김성일은 귀국 후 『향교예집』의 간행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1586년 나주에서 목판본을 간행한다.
『향교예집』과 『동자례』는 퇴계학파에 널리 수용되어, 김성일뿐 아니라 柳成龍과 權好文도 『동자례』를 발췌하여 학도를 가르치는 교재로 활용한다. 정경세의 『양정편』은 『동자례』를 산삭한 저술이지만, 『동자례』에 버금가는 위상을 차지하며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널리 활용된다.
『향교예집』의 『동자례』와 『거향잡의』는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널리 수용되어, 김성일은 『동자례』로 편집하고, 정경세는 산삭하여 『양정편』으로 재차편집한다. 따라서 『동자례』와 『양정편』은 退溪學派 아동교재의 수용과 활용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This article has traced down the teaching material for children of the Joseon Dynasty from 『Dongmong-suji』 of Joo Hee to inflow and publication of 『Hyanggyoyejip』 of Do Hee-young up to 『Dongjaeye』 of Kim Seong-il and 『Yangjeongpyeon』 of Jeong Gyeong-se. 『Dongmong-suji』 had been copied and published in various types together with other articles of Joo Hee that, after gaining significant popularity of 『Dongmongseopseup』 and 『Gyeokmongyogyeol』. it had the role of teaching material for children since then. Furthermore, 『Dongmong-suji』 had been broadly accommodated on academic regulation of local schools, treaties and academic regulations for living quarters for local schools and others where the practice in ordinary living was critical value in the community. In particular, Ro Su-sin made the commented on 『Sungrijahoon』 and 『Dongmong-suji』 and he intended to embrace the letter education and virtuous deed education.
『Hyanggyoyejip』 that Do Hee-young published in 1567 was handed down to Joseon by Kim Seong-il in 1577. After returning to his home country, Kim Seong-il provided his unyielding effort in publication of 『Hyanggyoyejip』 and he published copies of wooden board in Naju in 1586.
『Hyanggyoyejip』 and 『Dongjaeye』 were broadly accepted by the Toegye School to have Kim Seong-il as well as Ryu Seong-ryong and Gwon Ho-mun to excerpted 『Dongjaeye』 to use as the teaching material for students. Jeong Gyeong-se 『Yangjeongpyeon』 of Jeong Gyeong-se was the article to summarize 『Dongjaeye』 but it had the position comparable to 『Dongjaeye』 with wide application for Toegye School and others.
『Dongjaeye』 and 『Geohyangjapui』 of 『Hyanggyoyejip』 was widely accepted around Toegye School that Kim Seong-il edited it for 『Dongjaeye』 and Jeong Gyeong-se summarized to edit it again as 『Yangjeongpyeon』. Therefore, 『Dongjaeye』 and 『Yangjeongpyeon』 were the cases that conspicuously demonstrated the trend of acceptance and facilitation for the teaching material for children of the Toegye School.

KCI등재

7시학(詩學) 교재로서의 『백련초해(百聯抄解)』

저자 : 李炫壹 ( Lee Hyun-il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1-2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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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聯抄解』는 七言으로 對句를 이루는 聯 100개를 모으고 諺解한 책으로, 조선 전기에 엮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평안도·전라도·경상도에서 각각 판각되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던 것이 확인된다. 그만큼 조선시대에 초학자들이 한시를 읽고 짓는 법을 익히는 대표적 교재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이후 한문의 사회적 영향력이 쇠퇴한 뒤에는 주로 국어사 자료로서 주목받아 왔으나, 최근 20년 사이에는 한시교육용 교재로서의 특징을 탐구한 논문도 2편 나온 바 있다.
이 논문도 『백련초해』의 시학 교재로서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려 하였다. 『백련초해』가 童蒙敎材로 쓰인 까닭에 진지하게 『백련초해』를 언급한 자료는 한국고전번역원이 구축한 방대한 “한국고전종합DB”에서도 찾기 어려웠지만, 『백련초해』에 대한 얼마 되지 않은 직·간접적인 언급들을 통해서 당시 한시 창작과 한시사에 미친 영향을 읽어 보려 하였다.
먼저 仁祖反正 이후 南冥學派의 重鎭 중의 한 사람이었던 謙齋 河弘度(1593~1666)가 쓴 「聯句續選序」를 통해 지금은 전하지 않는 『聯句續選』편찬의 경위와 그 의의를 검토해 보았고, 17세기를 대표하는 남인계 문인인 松谷 李瑞雨(1633~1709)의 문집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서 한시 창작 교육교재로서의 『백련초해』의 활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한편, 詩學 학습의 교재로서 『백련초해』를 보완하고, 이용하는 앞의 경우들과는 달리, 農巖 金昌協(1651~1708)과 雅亭 李德懋(1741~1793)가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인 李奎報(1168~1241)의 한시사적 위상을 격하하는 자리에서 이규보의 대표적인聯이 『백련초해』에 뽑힌 것을 빌미로,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책에 실릴 만한 수준 낮은 시를 짓는 시인으로 비판한 사실에도 주목하였다.
아울러 章을 달리하여, 『백련초해』를 엮는 데 참조한 시선집 중에서 고려때 편찬된 『夾注名賢十抄詩』의 존재를 주목하여 그 상관관계에 대해서 논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port some respects of the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百聯抄解』) as a poetic textbook: and it's position in history of Sino-Korean poetics in Chosun Dynasty.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 is a book, which is selected one hundred seven-syllabic couplets and put into Korean language.
In early Chosun dynasty, this book was supposed to be edited for learning Chinese classic poetry and writing Sino-Korean poetry. Because this book was the textbook for beginners, the mentions of it have rarely discovered in the Database of Institution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But in some very rare records, we inspect and scrutinize important respects of the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 as a poetic textbook.
Firstly, we examine the significance and details of editing this book through the preface of Revised and Expanded Selections of Couplets(『聯句續選』) by Ha Hongdo(河弘度, 1593~1666): He edited it in order to complement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
Through Lee Seowoo(李瑞雨, 1633~1709)'s poems we survey aspects of using this book, as a textbook of writing Sino-Korean poetry.
On the other hand, Kim Changhyeop(金昌協, 1651~1708) and Lee Deokmu (李德懋) criticize Lee Kyubo(李奎報, 1168~1241), one of the representative poets of Korea Dynasty, and devalue his position in history of Sino-Korean poetry. Because his famous couplet was selected in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 And this couplet was a meager one, they said.
In addition, we trea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One Hundred Couplets with Translation and Ten Poems of Thirty Famous Poets with Annotations(『夾注名賢十抄詩』).

KCI등재

8윤기(尹愭)의 『泮中雜詠』에 나타난 성균관(成均館) 재생(齋生)들의 생활상과 교육

저자 : 金容載 ( Kim Yong-jae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1-30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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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시다시피 조선은 儒學- '性理學' - 을 治國의 이데올로기로 삼아건국된 왕조이며, 따라서 인간 개개인의 강상윤리와 사회질서는 강력한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不斷히 성리학적 이념을 갖춘 인재양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인재들이 훗날의 위정자와 관료로 진출하는, 소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 완성이 성공적 정착될 수 있었던 요인은 곧 불멸의 '과거시험'이었을 것이다. 신분제가 엄격한 당시에, 좀 더 높은 지위의 관료나 위정자로 진출할 수 있었던 통로가 科擧였으며,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라도 京鄕 각지의 교육기관들은 그 수를 왕성하게 늘려갔다.
이때, 명실상부할 만큼 학교로서의 위상을 갖춘 곳은 '서당'·'향교'·'서원'그리고 서울의 '성균관'이다. 이 중 지금의 '대학'과 같이 고등교육을 담당했던 곳은 '성균관'과 '서원'뿐이었다. 성균관에 입학한 유생들, 특히 동·서재에서 기숙하던 齋生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선발 인원이 극소수로 제한되어 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文廟와 함께 기숙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재생들의 삶은 단연코'제사'와 '교육'이 주된 의무이자 책임으로 다가왔다. 전자는 대성전에서, 후자는 명륜당에서 시행되었는데, 재생들은 제사라는 엄숙한 분위기와 함께, 향후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삶이 매우 경직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는 거재유생의 생활 터가 바로 文廟와 함께 공유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이들의 삶은 공맹이 추구하였던 유자로서의 품격을 수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行動擧止 하나하나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더욱이 조선중기로 가면서 『朱子家禮』가 전래되고, 조선성리학이 禮學으로 학풍이 변모되면서, 이들의 생활은 이른바'선비'의 전형이 되어야만 했다. 또 이들은 학문적으로 주자학에 집중했는데, 이는 과거시험이 거의 『집주』에 기반한 製述과 明經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즉 『集註』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의 여부가 관건인 셈이었다. 따라서 재생들에게는 『집주』를 저본으로 하여 공맹유학과 주자가례의 본지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생활과 교육에 관한 일상을 漢詩와 解說로 남긴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尹愭의 「泮中雜詠」 '220首'다. 윤기(1741~1826)는 居齋儒生 시절을 거쳐 영조代로부터 순조代에까지 여러 관료를 역임한 인물이며, 「泮中雜詠」 220수를 통해 성균관에서의 고단한 삶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본고는 이 「반중잡영」이 갖는 의미, 그리고 그 안의 作詩와 해설을 선별하여 당시 재생들의 생활상과 교육이 어떠했는지를 탐색한 것이다.


This paper is based on the Youn-Gee(尹愭)'s『BanJoongJopYoung(泮中雜詠)』 on the lifestyle of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Youn-Gee(尹愭) was a student who studied in an elite group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based on his experience, he wrote 220 poems and publicly criticized their lives. because the Joseon Dynasty had a very different attitude toward intellectuals from the time it was founded to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Dynasty.
Beautiful customs declined, old laws and institutions were abolished, low-ranking slaves frequently slandered intellectuals, and administrative officials or executives roughly settled their duties. The total difficulty with the exclusion of intellectuals led him to write this poem.
In partic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ficials showed an exclusive academic climate due to the deepening division of the peninsula. The appearance of living in the dormitory proves this well. Intellectuals only took collective action on their side. I could never find what the intellectuals used to show me.
He hoped that Joseon's intellectuals would awaken in the 18th century. He also wrote this poem to insist on improving the treatment of intellectuals.

KCI등재

9한국 고전 시문(詩文)의 「관저(關雎)」 이미지

저자 : 鄭日男 ( Jeong Il-nam ) , 李麗 ( Lily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03-34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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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문인들의 詩文에서 나타난 『詩經』 周南 「關雎」 이미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문인의 『시경』론 연구가 주로이고 개별 작품연구도 작품론에 치중했던 한계에서 벗어나 古典詩文에서 표현된 「관저」이미지를 婦德·正始·風敎 등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부덕의 이미지는 國王의 聖德과 后妃의 德을 망라한 美意 내지 善意로 표현되고, 正始 이미지는 바른 혼인의 시작이 治國으로 이어지며, 풍교의 이미지는 부덕과 정시의 뜻을 함축한 「관저」를 널리 교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타났다. 기타에서는 「관저」의 구절에서 窈窕·淑女·琴瑟·鐘鼓·輾轉·河州 등을 원용 또는 변용한 시문을 살펴보았다. 이런 詩語 역시 「관저」를 뜻하기도 하고 파생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국인의 시문에서 「관저」만큼 다양한 이미지로 주목받은 『시경』 작품은 흔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인들이 「관저」에 주목하게 된 원인을 인륜의 바른 시작의 전범, 中和의 전형으로 인식한 점과 주자성리학의 유입 및 해당 시기의 문화배경 내지 학술성향과 관련시켜 분석하였다. 요컨대 「관저」는 주로 人倫의 正始로, 萬福의 근원으로, 邦國에 유리한 작품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특히 문인의 관심을 초래한 것으로 사료된다.


This paper aims to conduct a research on the image of “Gwanjeo(關雎)” from “the Book of Odes(詩經)-JuNam(周南)” in the poetry and prose of Korean writers.
In the previous research, the study was mainly focused on the theory of the Book of Odes which is also including the study of individual works. Therefore, this paper mainly deals with the image of “Gwanjeo” expressed in Classic poetry and prose focused on “women virtue(婦德)”, “the right root(正 始)” and “education of public morals(風敎)”.
The image of “women virtue” is expressed in royal virtue of the king and the queen which is implying good intention and faith. The image of “the right root” is expressed in the proper beginning of marriage which is connected to governing a country. “Education of public morals” image is indicated that “Gwanjeo” which has both “women virtue” and “the right root” should be widely spread in public.
In “others" section, it is observed that the poetry and prose which used original or diversified Yojo(窈窕), Sungnyeo(淑女), Geumsil(琴瑟), Jonggo(鐘 鼓), Jeonjeon(輾轉), Haju(河州). These words are also represent “Gwanjeo” and used in a derivative sense. Noting for the various images of “Gwanjeo”, it is uncommon in Korean poetry and prose which has drawn attention for the Book of Odes.
Finally, it analyzed the reason why “Gwanjeo” is paid attention by Korean writers in relation to several aspects which including the recognition for “Gwanjeo” as the model of the right beginning human morality and neutralizaion(中和), as well as the influx of the Zhuxi Neo-Confucianisim, cultural background and academic tendency of the relevant period. In a word, “Gwanjeo” were perceived primarily as works about the beginning of human morality, the root of all happiness and favorable to the country(邦国).

KCI등재

10소론계(少論系) 자득적(自得的) 학문 논리의 연원과 전개 - 최석정가(崔錫鼎家)를 중심으로 -

저자 : 金英珠 ( Kim¸ Young-j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43-359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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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계의 자득적 학문 논리의 연원은 『孟子』이다. '자득'은 군자가 방법에 따라 깊이 스스로 학문을 이해하여 연마한 결과로 얻어지는 학적 수준의 고양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자득 이론 본연의 의미를 수용한 성혼은 점진적이고 순차적인 학습법의 효과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학습법과 함께 학습에서의 자율적인 이해를 중시하였다. 학문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이해를 강조하는 그의 학문 논리는 양명학을 수용하는 등의 개방적인 학문 경향을 가진 인물들에게 주로 영향을 끼쳤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최석정 일가이다. 성혼의 제자인 崔起南의 아들인 崔鳴吉은 경전 공부에서 송대 성리학자들의 것보다는 유가의 전통적인 학습에 집중하였고 주자의 학설 중에 의문되는 것을 모아서 '箚記' 형식으로 엮어 집에 소장하였다. 그의 아들인 崔錫鼎 역시 성현의 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터득한 생각을 확립하여 『論孟類編』과 『禮記類編』을 간행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당쟁이 격화된 시기에 반대파에 의해 정치적 파란과 함께 학문에서의 이단 시비에 휘말렸다. 그의 아들인 崔昌大의 스승 朴世堂은 주자의 학설과 배치되는 스스로의 견해를 모아 『思辨錄』을 저술하여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곤경에 처한 스승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최창대는 주자의 견해와 다른 박세당의 학문경향이 유학 고유의 학문 방법의 하나인 증자의 '反求諸己'에 근원하는 정통적인 것임을 강변하였다.
주자의 학설이 교조화된 조선시대에 그것의 모순과 불합리를 실제적인 학문 공부 과정에서 독자적인 논리를 획득한 소론계 특히 최석정 일가의 자득적 학문 논리는 동시대의 다른 계파와 분명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학문 논리로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The origin of academic logic in the theory of Soron is 『Mencius (孟子)』. It means the enhancement of the academic level obtained as a result of the scholar's self-understanding and cultivation according to the method. 'self-understanding', it means the enhancement of the academic level obtained as a result of the scholar's self-understanding and cultivation according to the method.
Accepting the original meaning of the theory, Seong Hon emphasized the effectiveness of gradual and sequential learning methods and emphasized autonomous understanding in learning along with various learning methods. His academic logic mainly influenced characters with open academic tendencies, such as embracing Yangming. The representative case is Choi, seok-jeong's family family. Choi Myeong-gil focused his attention on the traditional methods of studying abroad and he collected questions from the Chu Hsi(朱熹)'s theories and compiled them in a reading diary format and kept them at home.
Choi seok-jeong also published 『論孟類編』 and 『禮記類編』 by establishing his own self-esteemed thoughts without relying entirely on the words of saints and wise men. Due to these books, he was caught up in an academic heresy with political turmoil by opposition parties at the time of the party's intensification.
Choi Chang-dae's teacher, Park Se-dang, who gathered his views contrary to Ju-hee's theories, wrote a book and concentrated on heresy.
In the course of arguing for the teacher in trouble, Choi Chang-dae argued that his teacher's academic tendency differed from that of Chu Hsi(朱熹)'s view, which is an orthodox source of the theory of Geong-Ja(曾子).
In the Joseon Dynasty, the academic theory of Chu Hsi (朱熹) became a dogmatic logic. In such a situation, So-ron faction's self-understanding academic logic that analyzed its contradiction and irrationality as its own logic, has its meaning as an independent academic logic clearly distinguished from other contemporary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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