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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ekje Ha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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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005-9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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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9)~32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216
백제학보
32권0호(2020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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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옹관 제작과 운반을 통해 본 영산강유역 옹관고분 매장 전 의례

저자 : 이지영 ( Lee Ji Young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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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상장의례 과정 중 옹관의 제작과 운반을 통해 본 매장 전 의례행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옹관고분 사회의 빈장기간은 옹관 제작기간을 반영하여 본다면 최소 3개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옹관의 운송과 운구과정에서는 배와 수레의 이용 가능성을 통해 상장의례의 일면을 밝힐 수 있었다.
옹관고분 매장 전 의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은 빈장과 본 매장을 위한 사전준비, 발인과정 순으로 진행된다. 빈장은 시신을 땅속이나 빈소에 가매장하는 과정으로 복차장 전통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용의 대형옹관 성행기에는 시신을 신전장 방식으로 목관에 안치하고 있어 빈소를 이용한 빈장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빈장기간 중에는 본 매장을 위한 사전 준비과정으로 고분 축조, 옹관 제작, 기타 장례용품 준비 등이 이루어진다. 발인을 위한 운구행렬은 칼을 들고 재주를 부리는 방상의 모습,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고취악대의 모습, 깃발이나 장대를 든 기수의 모습, 소가 끄는 수레형 상여를 이용하여 옹관과 시신을 운반하는 모습, 공헌용 음식을 들고 뒤를 따르는 추모객의 모습 등 축제적 의례과정으로 복원해 볼 수 있다.
매장 전 의례는 옹관 제작과 운송과정에서는 안정적인 제작과 안전한 운송을 염원하는 의례가 중심이 된다. 이후 옹관 운구과정부터는 상장의례 과정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여 고인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애도와 추모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의례 행위가 이어진다. 이러한 옹관고분 상장의례에 담긴 관념은 고대사회의 계세적 내세관을 바탕으로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checked pre-burial rites including the production and transportation of big jar-coffins as a feature of funeral rites. It is guessed that the temporary funeral period lasted for at least three months and included the production of a big jar-coffin which was very likely transported by boat or cart.
It is guessed that pre-burial rites included a temporary funeral and preparations for a funeral and transportation of the deceased by carriage to the tomb. Prior to the temporary funeral, the body was kept at a funeral place or temporarily stored underground. Keeping the body flat in a wood coffin during the period when big jar-coffins were used suggests that the body was kept in a funeral place during the temporary funeral. Pre-funeral preparations included the construction of a tomb and big jar-coffins, and the funeral supplies. A funeral procession included sword dancers, drummers, flutists, banner or pole carriers, an ox-drawn cart carrying a bier, and followers carrying funeral food.
During the initial part of a pre-burial rite, attention was paid to the safe and stable production and transportation of big jar-coffins. This period was followed by the rites expressing hopes and wishes for the peaceful passage of the deceased from this world to afterworld and rites of mourning. The burial ritual associated with big jar-coffins was presumed to be based on ancient society's view of afterlife linked to this world and focused on a display of the ruling class's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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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百濟)의 대목악군(大木岳郡) 설치(設置) 배경(背景)과 그 성격(性格) -천안(天安) 용원리(龍院里) 세력(勢力)을 중심으로-

저자 : 강유나 ( Kang Yuna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5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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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백제 천안 동남부 일대에 설치된 대목악군에 관하여 문헌 자료와 함께 용원리 유적을 비롯한 고고자료의 검토까지 지역사적 관점으로 살펴본 것이다.
먼저 천안 동남부 일대의 마한~백제 유적인 장산리 유적, 대화리·신풍리 유적, 운전리 유적, 신풍리 유적, 화성리 유적, 용원리 유적을 검토하였다. 이들은 5km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며, 마한의 재지적 속성을 공유하거나 유적의 입지 조건이 비슷하다. 그러나 하천분수계를 따라 형성된 자연지리적 경계를 토대로 각각의 생활기반이 다르며, 묘제 및 위세품의 차이는 보다 우월한 용원리 세력의 한성기 부상의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한성기 용원리 세력의 부상 원인을 살펴보았다. 용원리 세력은 내륙교통로를 통해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교통로 외에도 용원리 세력이 갖춘 재지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목천읍 일대의 철 관련 지명이나 산방천 주위의 철에 대한 기록, 용원리 유적에서 확인된 3기의 백탄요와 수리권을 상징하는 살포 등은 용원리 세력의 재지적 기반으로 볼 수 있다. 용원리 유적에서 출토된 마구류와 용봉문 환두대도를 통해 용원리 세력의 군사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군·성체제 하에 천안 동남부 일대에 설치된 대목악군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백제는 한성기 용원리 세력을 거점 지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웅진·사비기를 거치며 직접지배체제로 변화하였다. 이에 백제는 용원리 세력의 재지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던 천안 동남부 일대를 활용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대목악군을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백제의 남천 이후, 대목악군은 백제의 북방 경계에 해당하였으며, 백제는 천안 동남부 일대에 북방 영역 방어를 위한 군사적 성격의 대목악군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This study investigates Daemokak-gun installed in the whole area of southeastern Cheonan during the Baekje period, reviewing archeological materials, including Yongwon-ri relics with literature materials from the perspective of regional history.
First, this study reviews the relics in the whole area of southeastern Cheonan from the Mahan period through to the Baekje period, including Jangsan-ri relics, Daehwa-ri·Sinpung-ri relics, Wunjeon-ri relics, Sinpung-ri relics, Hwaseong-ri relics, Yongwon-ri relics. They are located within 5km and share Mahan's intellectual property or have similar site conditions.
However, each living base is different based on the natural geographic boundary formed along the river fountain system, and it can be seen that the difference between the graveyard and the prestige goods has resulted in the rise of the Hanseong period of the superior Yongwon-ri ruins.
Nex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reasons for the rise of Yongwon-ri force in the Hanseong period. The Yongwon-ri forces had a very favorable position in connecting the stronghold to the stronghold through inland transportation. This was in line with the interest of expanding the territory of Baekje. And in addition to traffic routes, looked at foundation of the Yongwon-ri forces. This intrinsic base became a driving force by which Yongwon-ri forces held the lead over other forces.
Iron-related regional names around Mokcheon-eup, records of iron around the Sanbangcheon stream, white-charcoal kilns found in the ruins of Yongwon-ri and Salpos symbolizing water right can be considered as geographical foundation of Yongwon-ri forces. Harnessry and Hwandudaedo excavated from the ruins of Yongwon-ri reveals a glimpse of military character of the Yongwon-ri forces.
Lastly, this study investigated Daemokak-gun established in the southeastern part of Cheonan under Baekje's governing system of Bang, Gun and Sung. It is deemed plausible that Baekje established the Daemokak-gun in its efforts of trying to utilize the southeastern parts of Cheonan where geographical foundation of Yongwon-ri was laid as it changed from the method of focused-control over Yongwon-ri forces of Hansung period into a direct governance system through Woongjin-Sabi period.
Especially, investigat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guns and hyuns of Baekje after the capital relocation of Baekje reveals that Daemokak-gun was the northern boundary of Baekje. Therefore, this study concludes that Baekje established Daemokak-gun in southeastern part of Cheonan with the purpose of military defense of its northern b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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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여 쌍북리(雙北里) 출토 목간(木簡)을 통해 본 사비도성(泗沘都城)의 관부(官府) 공간과 유교(儒敎)

저자 : 김창석 ( Changseok Kim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7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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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과 史書를 통해 유교의 지식 또는 교양을 직접 접할 수 있는 백제인은 사비도성 주민, 그 가운데서도 지배층에 국한되었다. 지방에서 유교경전이 유통되고 교육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원천은 王都의 太學에서, 혹은 家學을 통해 교육받은 관료들이었으며, 그 중 일부가 地方官으로 파견되면서 유교 지식이 지방으로 확산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쌍북리 328-2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九九段이 적힌 목간은 구구단을 참조할 뿐 아니라 어떤 도면을 그리거나 구조물의 각도를 잴 때 사용되었다고 보인다. 숙달된 전문가가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한 요소가 확인된다. 사비한옥마을 부지에서 발견된 論語木簡은 학습자가 『논어』의 내용을 自習하기 위해 연습 삼아 적었거나 교육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교재를 베껴 적은 것이라 여겨진다. 목간 작성자가 관료였다면 漢文 문장 학습을 넘어 유교의 윤리와 덕목을 이해하고 이를 體化하여 실천하려는 목적까지 갖고 있었다고 보인다.
쌍북리 출토 목간을 통해 볼 때, 부여여고 ~ 현내들에 이르는 지역에 일부 官府와 관련 시설이 있었다. 그 북쪽 ~ 328-2번지 부근은 物流와 관련된 시설이나 이를 지원하는 수공업 工房이 들어서 있었다고 보인다. 이들은 부여여고 ~ 현내들의 공간에 있는 本 관부의 屬司이거나 부속 시설이었으며 일종의 파견 分所 기능을 수행했을 것이다.


The people of Baekje, who had direct access to Confucian knowledge or culture through scriptures and history books, were limited to the people of Capital city of Sabi 泗沘都城, among them to the ruling class. It is possible that the Confucian scriptures were distributed and educated in the provinces, but the sources were officials who were educated in Taehak 太學 or through the home schooling, and some of them were dispatched to the district, paving the way for the spread of Confucian knowledge to the provinces.
A Mokkan 木簡 having the multiplication table excavated from the site of 328-2 Ssangbuk-ri was used not only to calculate but also to draw a drawing or to measure the angle of the structure. It is convenient for skilled professionals to use in the field. On the other Mokkan found in the same village, the learners wrote down the content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論語 for practice or copied textbooks of it. If the writer was a bureaucrat, he could have understood the ethics and virtues of Confucianism and practiced them.
From the Mookan materials of Ssangbuk-ri, there were some Government offices and related facilities in areas ranging from Buyeo Girls' High School to Hyeonnaedeul. It appears that from the north of it to 328-2 site had facilities related to the material flow or handicraft manufacturing supporting it. These were the annexes of the main government offices in the former space and would have performed a function of a sort of contin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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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제의 시호제(諡號制)와 시호(諡號)의 함의

저자 : 문동석 ( Moon Dong Seok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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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는 왕의 사후 그의 삶이나 업적을 평가하고 기리기 위한 호칭이다.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들에는 모두 엄격한 의미가 정해져 있다. 이를 시법 또는 시호법 이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문자로 표현하려는 유교의 독특한 평가 방식이다. 시법의 연원은 중국 고대 주(周) 나라까지 소급된다. 『사기』에 기록된 「시법해」에는 각각의 뜻을 가진 시자(諡字) 103자가 정리되어 있다.
백제의 시호제는 무령왕이 동성왕에게 올린 '동성'이라는 시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성'이라는 시호는 시법에 기록된 시자를 적용하여 정한 것이 아니라 사후에 업적을 평가하여 올리는 시호 자체의 의미를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무령왕대에는 국가적 교육기관으로 태학이 설치되고, 유학에 정통한 인재들을 오경박사에 임명하였다. 그 결과 무령왕대에는 유교 경전과 예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을 것이다. 무령왕대에 정비된 예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왕대에는 시법을 적용하여 무령왕에게 시호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성왕이 사마왕이 돌아가신 후 올린 '무령'이라는 시호를 시작으로 이후에 올려진 '성', '위덕', '혜', '무' 등의 시호는 시호법에 따른 시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성행했기 때문에 '법왕'의 경우와 같이 불교식 색채가 드러나는 시호도 있다.
그러나 '무', '성', '위덕', '혜' 등은 『사기정의』 「시법해」와 『시법』에 있는 시자와 의미가 부합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는 무령왕대에 시호제가 실시되었지만, 성왕대부터 시호법에 따른 시자를 적용하여, 각 왕들에게 시호를 올렸다.


The posthumous name (shihao) is a title bestowed to a king after his death for the purpose of evaluating and honoring his life or achievements. All the letters used for posthumous titles have strict meanings, which are referred to as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shifa, shihaofa). This is a unique Confucian method for assessing a person's life in several letters. The rule has origins dating back to the Zhou dynasty of ancient China. The chapter called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Explained” (Shifajie), included in the Correct Meanings of the Records of the Historian (Shiji Zhengyi), lists 103 posthumous characters with their respective meanings.
The Backje's system of posthumous names began with the “eastern castles” (dongseong), which King Muryeong gave to King Dongseong. However, the posthumous name “eastern castles” was not chosen within the certain rules such as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but faithfully followed the meaning of the name itself, which evaluates the king's achievements after his death.
With the deeper understanding of Confucian classics through the erudites of the Five Classics (wujingboshi) and the systematic readjustment of rites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it seems to have applied the Confucian order to give the posthumous name to the King Muryeong during the King Seong era. Starting with “the martial and peaceful” (muryeong), the subsequent names such as “the holy” (seong), “the mighty and virtuous” (wideok), “the benevolent” (hye), and “the martial” (mu) are interpreted as the Confucian order. Of course, there are also the titles that reveal Buddhist-style colors, as in the case of “the law” (beop), because Buddhism as well as Confucianism was prevalent at the time. However, “the holy,” “the mighty and virtuous,” “the benevolent” and “the martial” correspond to the characters in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Explained.” Therefore, Baekje was considered to have applied the Confucian order to name each king since the King Seong era, although the system was initially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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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19년 백제 한성기 문헌사 연구 성과와 전망

저자 : 백길남 ( Baek Kil Nam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5-1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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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백제 한성기 문헌사 연구 성과를 3개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백제와 馬韓의 관계는 기본 자료인 『三國志』와 『일본서기』에 대한 서술 배경과 편찬 인식을 면밀히 분석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심화되고 있다. 자료의 생성과정에 대한 이해 속에서 기록의 신뢰 여부를 따지고 역사적 실체를 접근하려는 연구방법은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대외관계사 연구는 백제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과 일본의 입장을 고려한 다원적인 외교 관계를 파악하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향후 중국과 일본 고대사 연구자와의 협업과 소통을 더욱 늘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조공·책봉관계와 같은 정치적 교섭뿐만 아니라, 항로의 변경과 사람·정보·물건의 교류 양상을 분석한 입체적인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편, 나제동맹에 대한 재검토는 교과서에 서술된 역사용어와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연구경향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삼국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자 한 시도라고 평가된다.
사회문화사 연구는 부족한 자료의 여건 속에서도 성씨, 유학교육, 여성의 節行觀, 始祖 제사, 새의 관념 등 백제 사람들의 일상과 사유를 복원할 수 있는 여러 성과가 제출되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문화사 연구 주제가 계발되고 활성화되길 바란다.
백제 한성기 연구 성과는 학계뿐만 아니라 시민의 교양과 역사의식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된 대중 교양서의 출간과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정보 전달에 연구자의 관심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This article reviewed the results of research on history of Baekje of Hanseong(漢城) period in 2019 in three parts. First, regarding the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Mahan(馬韓), the research is deepening in close analysis of the narrative background and awareness of compilation about the basic materials, the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三國志) and Nihon Shoki(日本書紀). A research method that attempts to determine the reliability of the materials and to approach the historical substance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production process of materials is expected to develop in the future.
Research on foreign relations history keeps attempting to grasp the pluralistic diplomatic relations considering the positions of China and Japan, rather than focusing on Baekje centered view. This research needs effort to increase further cooperation and communication with ancient history researchers from China and Japan in the future. In addition, stereoscopic research that analyzes not only political negotiations such as tribute-investiture relationship, but also changes in courses and exchanges of people, information, and goods is being activated. On the other hand, the review of the term Silla-Baekje Alliance is considered to be an attempt to restore the dynamic diplomatic relations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apart from the research trend that uncritically accepted the historical terms and historical awareness described in the textbooks.
Despite the lack of materials, the research of socio-cultural history has been submitted various results to restore the daily life and thoughts of the Baekje people such as family name, Confucianism education, women's perspective on chastity(節行觀), ancestral rites for the first ancestor(始祖), and the notion of birds. It is hoped that various research topics in socio-cultural history will be developed and activated in the future.
The results of research on Baekje of Hanseong period should be a nourishment to cultivate citizenship and historical awareness for citizens as well as academia. Therefore, researchers should continue to pay attention to the publication of liberal arts books for public which reflect the latest research results and to the delivery of information using various plat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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