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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75)~6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55
경제사학
69권0호(2019년 04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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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세기 전반 한국ㆍ일본ㆍ대만에서의 회사의 성장 -비교경제발전론적 고찰

저자 : 박이택 ( Yiteak Park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4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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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일본은 유럽의 산업화에 뒤이어 후발 산업화를 성취하였는데, 회사는 이를 담당하는 새로운 경제 주체로 성장하였다. 대만은 1895년에 일본에 할양되었고, 한국은 1910년에 일본에 병합되었는데, 그 이후 대만 및 한국의 식민지화 또는 식민지적 분업 관련의 형성에서 회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회사의 성장을 일본 제국 경제권 형성의 시점에서 그리고 한국ㆍ일본ㆍ대만의 비교경제발전론적 시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20세기 전반 회사의 성장률은 일본과 대만과 비할 때 한국에서 가장 빨랐으며, 일본과 대만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회사의 성장이 일인당 GDP 성장을 그랜저 인과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이 기각되었으며, 한국과 대만에서의 회사의 성장은 일본 본토의 회사의 성장을 그랜저 인과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이 기각되고 있어서, 한국에서 회사 성장은 지역 경제 성장을 주도하였고, 20세기 전반에는 일본 제국 차원의 회사 성장에서도 프런티어 역할을 하였다. 둘째, 1930년대 중반 한국의 각 지역의 회사와 개인 기업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회사의 성장은 회사 형태를 취하지 않은 개인기업의 성장을 그랜저 인과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이 기각되었는데, 이것은 회사의 성장이 일인당 GDP 성장을 그랜저 인과하지 않았다는 귀무가설이 기각된 결과와 부합한다. 셋째, 1930년대 중반 한국의 회사의 성장은 자기자본수익률을 올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회사의 성장이 자신의 존립 기반을 강화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본 논문의 결과는 20세기 전반 한국ㆍ일본ㆍ대만의 비교경제발전론적 고찰에 회사가 매우 유용한 대상임을 보여 준다.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Japan succeeded in industrialization and the company grew into a new economic entity. Taiwan was ceded to Japan in 1895, Korea was merged into Japan in 1910, and the compan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forming the colonial division of labor in Taiwan and Korea.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consider the growth of the company from the perspective of comparative development of local economies an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ormation of economic division of labor within the Japanese empire.
In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comparison of the growth of companies in Korea, Japan and Taiwan, in terms of the number of companies and the amount of paid-in capital, shows that not only was the company's growth in Korea the fastest, but also in Korea, unlike Japan and Taiwan, the growth of the company led to the growth of per capita GDP. The growth of the company in Korea and Taiwan also led to the growth of the company in the mainland of Japan, and Korea was the frontier of the company development in the Japanese Empire.
In Korea, many enterprises did not take the form of a company, and most of them were newly formed in the colonial period. The analysi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ompanies and non-company enterprises in the mid-1930s confirms that the company's growth led to the growth of such non-company enterpr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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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정희 지음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2018년, 760쪽

저자 : 박섭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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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면화의 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 휴머니스트, 2018년, 847쪽

저자 : 박기주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7 (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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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정희정권기 경제개발을 둘러싼 한일교섭 -'4대핵심공장건설계획'을 중심으로-

저자 : 배석만 ( Suk Man Bae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3-7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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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부의 4대핵심공장건설계획을 둘러싸고 전개된 한일교섭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연구에서 불명확했던 몇 가지 사실을 보완하였다.
첫째, 정부는 4차 한일정기각료회의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일본에 자금협력을 요청할 4대핵심공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을 주도한 경제기획원은 각료회의 전 예비교섭에서 기계공업 육성 목적의 8개 공장에 대한 지원을 일본에 희망했다. 반면 주일대사로 직접 일본 정부관계자들과 접촉한 이후락(李厚洛)은 중기계, 조선, 특수강의 3개 공장 건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혼선은 각료회의 하루 전에야 겨우 정리되어 일본에 급하게 통보되었다.
둘째, 정부는 일본에 자금협력을 희망하는 4대핵심공장을 교섭 과정에서 변경하였다. 조선을 빼고 대신 신동(伸銅)공장을 집어넣었다. 조선은 양국의 견해차가 가장 컸다. 정부는 대규모 조선소를 신설하려고 하였고, 일본은 기존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맞섰다. 교섭 과정에서 정부가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에 진척이 없었다. 신동공장으로의 교체는 그 결과물이었다.
셋째, 4대핵심공장건설계획과 관련하여 포항제철과 마찬가지로 일본으로부터 자금협력을 받는 애초 정부 구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나 계획 자체는 정부 주도하에 중단 없이 강력하게 추진되었고 성과를 내었다. 이들 공장들은 1973년부터 본격화되는 중화학공업화 정책 속에서도 핵심적인 육성공업 분야로 자리 잡았고, 정부 육성정책을 선도하였다.


This study analyzed the negotiations that developed around the 'Four Core Factories Construction Plan' by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Through this analysis, this study supplemented several facts that were unclear in previous studies.
First, the Korean government was unable to make a decision on the four core factories for which it would request cooperation funds to Japan until the 4th regular ministerial meeting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the preliminary negotiations before the ministerial meeting, the Economic Planning Board, which led the plan, expressed hopes that Japan would support eight factories aimed for the promotion of machinery industry. On the other hand, Lee Hu-rak, as the Ambassador to Japan, directly contacted the Japanese government officials and requested support for the construction of three factories in heavy machinery, shipbuilding and special steel. Such confusion in communication was resolved only a day before the ministerial meeting, and the final request was urgently conveyed to Japan.
Second, the Korean government changed the four core factories, for which it was requesting cooperation funds from Japan, during the negotiation process. It excluded shipbuilding and instead included the Shindong (伸銅) factory. Shipbuilding was the area on which two countries showed the largest difference in opinions. The Korean government wanted to construct a new large scale shipbuilding yard, while Japan insisted the expansion and improvement of the existing facilities should be expanded and improved. The Korean government eventually accepted Japan's opinion, but the plan showed little progress, which result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Shindong factory occurred as a result of this halt in the shipbuilding yard plan.
Third, as in the case of POSCO, the initial plan of the Korean government to receive cooperation funds from Japan in connection to the Four Core Factories Construction Plan repeatedly faltered. Nevertheless, the Four Core Factories Construction Plan itself was carried out forcefully by the government without interruption and yielded results. These factories secured their places as key industrial areas for promotion and led the economic development policies of the government even when the policy for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zation was regularized starting from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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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 오사카한국인상공회의 사례(1953-80년)를 중심으로

저자 : 정진성 ( Jin Sung Chung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9-126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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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의 최대 집주지인 오사카에서 설립된 오사카한국인상공회는 중간 조직적 성격의 조직체로서 재일상공인의 '정보센터', 한국 정부의 정책 수행기관, 재일상공인 요망사항의 한국 정부에 대한 건의ㆍ진정 등의 역할을 하면서, 재일상공인의 한국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설립 초기에 취약하였던 오사카상공회의 조직 기반은 한일국교정상화 및 재일상공인의 경제적 발전으로 회원 수가 크게 늘고 중견기업 이상 규모의 기업 경영자도 다수 등장함에 따라 점차 안정되었다. 오사카상공회 회원 기업의 주요 업종은 재일한국인이 많이 취업하고 있던 고무ㆍ화학, 섬유ㆍ메리야스, 유기(파칭코), 금속 부문이었다.


The Osaka Korean Society of Commerce and Industry(OKSCI), the largest collective place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advance of the Korean businessmen living in Japan to Korea, being an information center of the Korean businessmen living in Japan and a policy execution agency of the Korean government, and making proposals or petitioning to Korean government on behalf of the Korean businessmen living in Japan. The organization infrastructure of OKSCI, which was vulnerable in the early stages of the establishment, gradually stabilized as the number of members increased significantly due to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an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the Korean businessmen living in Japan. The major industries of the members of OKSCI were rubberㆍchemistry, textileㆍknitwear, game(pachinko), metal department, where many Koreans were emplo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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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국 제조업의 노동력 재배분: 역사적 추세와 경제적 효과

저자 : 이창근 ( Changkeun Lee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7-14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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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49년부터 1987년 사이 미국 제조업의 노동력 재배분과 그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SIC 2자리와 3자리 수준에서 산업 간 노동력 재배분이 얼마나 활발하였으며(강도) 그 방향은 어떠하였는지(효율성) 분석한다. 분석 결과, 19세기 후반은 산업 간 노동력 이동이 고생산성ㆍ고임금 산업으로 매우 활발히 일어났음을 확인한다. 반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산업 간노동력 재배분의 강도도 낮아졌을 뿐 아니라 고생산성ㆍ고임금 산업으로의 방향성도 매우 약해졌다. 분석단위의 수준이나 분석방법을 바꾸어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long-term patterns of labor reallocation between US manufacturing industries, with a focus on intensity and efficiency. I construct and examine a dataset of industries at the two- and three-digit SIC level from 1849 to 1987. The analysis results demonstrate that the late nineteenth century was a period of the most intense reallocation. In this period, labor was reallocated to high-productivity and high-wage industries, enhancing aggregate productivity and wages. By contrast, both the intensity and efficiency of reallocation decline over the twentieth century. The results are robust to the choice of the analysis unit and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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