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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of Economic History

  • : 경제사학회
  • : 사회과학분야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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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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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5)~66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531
경제사학
66권0호(2018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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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0년대 초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의 과정과 평가

저자 : 박기주 ( Ki-joo Park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3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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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80년대 초의 투자조정을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분석·평가하였다. 투자조정의 주요 대상은 경제기획원이 경쟁체제를 앞세워 진입을 과다하게 허용한 발전설비와 전자교환기 부문과 국내외 수요가 급감한 자동차 부문이었다. 투자조정은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의 의견 차이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다가 1980년에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강행되었다. 그러나 투자조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문제인식과 실행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냈다. (1) 목표가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을 균형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2) 가동률 저하를 외생적 충격이 아니라 과잉투자의 결과로 인식하였다. (3) 재산권과 관련되는 기업의 통폐합을 아무런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이 강행하였다. (4) 원안대로 진행되지 못했거나 조정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This paper analyzes and evaluates investment adjustments in the early 1980s in terms of industrial policy. The major targets of the investment adjustment were the power generator and the electronic telephone switchboard, in which the Economic Planning Board allowed excessive entry into the market for promoting competition, and the automobile sector, in which domestic and overseas demand declined sharply. The investment adjustment was not properly carried out due to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Economic Planning Board and the Ministry of Commerce and Industry. It was enforced in 1980 when the coup forces were in power. However, the investment adjustment was a failed industrial policy in the following points: (1) The goal was to reduce investment in the heavy chemical industry and to balance the heavy chemical industry with the light industry. (2) The decline in operating rate was recognized as the result of overinvestment rather than exogenous shock. (3) The consolidation or abolition of enterprises was enforced without any legal or institutional arrangements. (4) It did not proceed according to the intended plan and returned to the pre-adjustment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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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정희 정부는 어떻게 베트남 특수를 일으켰나?

저자 : 주익종 ( Ikjong Joo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7-7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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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따른 경제적 반대급부, 이른바 베트남 특수의 내역과 규모, 동시기 한국 경제 성장에서의 그 중요성은 잘 밝혀져 있으나,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제대로 구명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한국 정부 문서와 미국 외교 문서, 관련자 인터뷰 자료를 분석해 이 과제를 다루었다. 처음에 상품과 군납 물품의 수출 구상밖에 없던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현지 조사와 베트남 진출 한국 민간 기업과의 협의, 초기 실적 점검 후 물품 군납, 인력 송출, 건설과 용역 수주를 세 주력 부문으로 정했다. 전선 없는 전쟁이라는 특징, 미국 정부의 원조물자 및 군납 조달 정책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 특수는 그중에서도 한국군용 물품 군납, 근로자 송출, 각종 용역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는 정부를 중심으로 한 한국 각 경제 주체의 노력과 활동의 산물이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각기 학습을 통해 역량을 키웠다. 아울러 특수 기간 중 한미관계가 최상의 우호관계에서 깊은 불신관계로 급변했고, 이는 그 후 한국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The Republic of Korea got the Vietnam boom in return for the dispatch of Korean troops to South Vietnam after mid-1960s. The composition and size of foreign exchange earnings from it, and their impact on Korean economic growth are well known, but the question of how the boom was formed is still to be studied. This paper deals with this question by utilizing the documents of Korean and US government and interviewing a few persons concerned. This paper shows that Park Chunghee government had sought to export goods at first, but that soon afterwards it proceeded to three main promising activities, such as military goods procurement, dispatch of workers and contract of construction and services in Vietnam, by investigating business opportunities in Vietnam and exchanging business informations with Korean businessmen. Under the conditions of the front-less war and US government's off-shore procurement policy, actual boom arouse in procuring goods only for dispatched Korean troops, sending workers and contracting of services. These were the fruits of hard works of Korean government, businessmen, and workers. Korean government and businessmen enhanced their capabilities with learning-by-doing in Vietnam-related activities. Even in booming years US-Korea relations underwent great changes from its highest friendship to deep distrust, leaving deep effects on Korea's ensuing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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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9년 포항제철 건설비 조달을 위한 한일 교섭 과정과 박태준의 역할

저자 : 배석만 ( Suk Man Bae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9-10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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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합제철소 건설과 관련하여 협력처가 KISA(대한국제제철차관단,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에서 일본으로 극적으로 전환하는 1969년 전반기의 전개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감지한 것으로 자료상 확인되는 것은 3월부터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교섭이 본격화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접촉하려는 미쓰비시상사(三菱商事) 등 일본 기업의 '경거망동'을 단속하였고, 한국 정부는 4월까지 KISA와의 교섭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한국 정부가 협력처를 일본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에 공식 협조요청을 한 것은 6월 초이다. 박대통령이 직접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요청하였다. 일본 정부는 8월 한일각료회담에서 종합제철소 건설에 대한 협력을 수락하였다. 단기간에 이루어진 일본 정부의 결정은 정치적으로 판단한 측면이 강하였다. 한일각료회담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외무성을 중심으로 한 일본 관계관청 관료 실무진은 부정적 의견을 총리에게 보고하였다. 이유는 청구권 자금 사용상의 규정 문제, 국회와의 관계, 세계은행과 미국의 반대 등을 들었다. 일본 정부의 결정 과정에는 박태준의 막후교섭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인 '하와이 구상'은 많은 부문이 후대에 가공된 이야기임도 확인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pecifically determine the process that a cooperation agency dramatically moved from KISA (Korean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 to Japan in the first half of 1969 in relation to the construction of a complex steel mill. It was March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noticed the change in the Korean Government based on data. However, their negotiation was not considered to be important at this moment. The Japanese Government pointed out Japanese companies' 'levity' as they, such as Mitsubishi Corporation (三菱商事), were willing to contact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Korean Government focused on their negotiation with KISA until April. It was June that the Korean Government decided to move a cooperation agency to Japan and officially asked Japan to collaborate. President Park called and asked Japan's ambassador to Korea himself. In August, in the Korea-Japan Ministerial Meeting, the Japanese Government agreed to collaborate in the construction of a complex steel mill. The decision made by the Japanese Government in a short period was strongly dependent on political judgment. Even when the Korea-Japan Ministerial Meeting was imminent, the bureaucrats of Japan with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reported their negative opinions to the Prime Minister. The reasons were the regulations of monetary claims, the relationship with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World Bank's and America's oppositions. Park Tae-joon's behind-the-scenes negotiation played a great role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of the Japanese Government. However, much part of 'Conception in Hawaii' was confirmed to be a fictitious story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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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추세와 규모 재론(再論)

저자 : 조영준 ( Young-jun Cho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7-124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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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활실재정에 관한 기존 연구에 대해서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 연구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였다. 첫째, 대한제국기 전체의 황실재정 추세를 하나의 시계열로 작성하고 실질변수로 전환하여 재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는 대한제국기의 황실재정이 마냥 확대 일로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으며, 전체 시기에 걸친 막대한 흑자 상황 역시 관찰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둘째, 기존 연구에서는 내장원이라는 공적 재정 영역에 대해서만 고찰하였으나 여기에서는 내수사, 명례궁, 수진궁 등 1사7궁이라는 사적 재정 영역까지 포함하여 재정 수지 및 규모를 확인하였다. 사적 재정 영역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으며, 1900년까지는 내장원보다도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본 연구가 성과를 낳을 수 있었던 이유는 회계장부의 집계분석이라는 새로운 연구 기법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The existing research on royal finance during the Great Han Empire should be critically revised. The present work attempted a new two-pronged approach. First, the overall time series of royal finance during the Great Han Empire was constructed and converted into real terms. Results corroborate that the volume of royal finance during the Great Han Empire did not expand continuously. Moreover, a huge budget surplus was not detected throughout the times. Second, Naesusa, Myongryegung, and Sujingung, etc., representing the private sector of royal finance, were included in this study, unlike existing research, which were confined only to Naejang'won. The volume of the private sector of royal finance appeared sizable; thus, it should not be ignored. Furthermore, the private sector was affirmed to be larger than the public sector until 1900. These new results could be drawn owing to be new method, which aggregated all information from the account books of royal 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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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안병직(安秉直) 지음 『경세유표(經世遺表)에 관한 연구(硏究)』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 2017년, xii+584쪽

저자 : 이헌창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5-133 (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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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김낙년·박기주·박이택·차명수 편 『한국의 장기통계』Ⅰ, Ⅱ : 해남, 2018년, vi+1210쪽

저자 : 양동휴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4-138 (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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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발터 샤이델 지음, 조미현 옮김 『불평등의 역사』 : 에코리브르, 2017년, 768쪽

저자 : 김공회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9-141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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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제민 지음 『외환위기와 그 후의 한국 경제』 : 한울아카데미, 2017년, 480쪽

저자 : 이정우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2-144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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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로버트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 생각의 힘, 2017년, 1040쪽

저자 : 이창근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5-149 (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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