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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 : 한국음악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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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65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999
한국음악사학보
65권0호(2020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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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1차ㆍ제2차 교육과정기 국악예술학교 교사 국악강습회

저자 : 권혜근 ( Kwon. Hyekeu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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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1차 교육과정과 제2차 교육과정 시기에는 국악교육이 매우 미비하였다. 그 시기 국악예고에서 학교 음악교사를 대상으로 국악강습회를 개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교사 국악강습회의 형성과정과 진행상황을 살펴보았고, 강습회에서 교사들을 가르쳤던 강사들을 학교 자료와 신문 그리고 강습회의 교재를 통해 파악하였고, 강좌의 변천도 살펴보았다. 또한 국악강습회의 교재를 통해 일반학교 교사들이 배웠던 국악 교육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국악강습회는 1960년 8월 5일부터 10일 동안 국악예고 주관으로 개최하였다. 일반 학교 음악교사들의 국악에 대한 지식 부족과 학교 교육에서 커리큘럼 부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하였다. 이는 국악교육 보급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교사 대상 첫 국악연수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강사들은 모두 국악예고의 교사로 구성되었고, 그들 중 대다수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매우 뛰어난 예술가로부터의 지도를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연수 교재를 분석하여 교육 내용을 살펴보니, 이론과 실기를 함께 지도 하였고, 민속악의 비중이 약간 높지만, 정악과 민속악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으며, 오선보를 활용해 서양음악에 익숙한 일반학교의 음악선생님들의 이해를 도왔다. 연수를 받은 교사의 요구에 교육 강좌가 유연하게 조절되어 강좌가 추가되거나 사라지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 초창기 교육과정 시기에 국악예고에서 국악인들의 사명감으로 만든 일반학교 음악교사 대상 국악강습회는 현재 국악교육이 형성되기까지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In the first and second curriculum, the educ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was very trivial. Gukak Arts High School provided music teachers with the sessions of Traditional Korean music education.
In this study, we looked at the process and progress of the teacher's traditional Korean music sessions and identified the instructors who taught the teachers with the help of teaching and learning resources and newspapers. Also, we analyzed the contents of the teacher's class through the contents of the textbook.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class was held for 10 days from August 5, 1960. The purpose of the sessions was to fill the gap in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to strengthen the curriculum. This is very meaningful in that it is the first Korean traditional music training for teachers, which is very important for the spread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The instructors were all made up of teachers at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Art High School, and the majority of them were designated as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indicating that they had received guidance from very outstanding artists.
After analyzing the training materials, I guided the theory and practical skills together, and it was composed of various genres such as Jeongak and folk music, and I used Oh Seon-bo to help the music teachers of the general school who were familiar with Western music.
Korean traditional music lessons for music teachers at general schools, which were created with the mission of Gugak musicians during the early period of Korea's education, have become an important foundation for the form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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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현육각이란 용어의 생성과 왜곡

저자 : 김성혜 ( Kim Seonghye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7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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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학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용어의 어의에 문제를 제기하여 이 용어의 생성 배경과 왜곡 과정을 조명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삼현육각이란 용어는 조선시대 '삼현(三絃)' 혹은 '육잽이'란 용어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삼현은 신라 때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이상 3종의 현악기를 지칭한 데서 비롯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악기로 연주하는 악곡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특히 민간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삼현'이라 지칭했으며, 이 음악을 연주하는 대금 1, 피리 2, 해금 1, 장고 1, 북 1 이상 6명의 연주자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한편, 민간인들은 6명이 연주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이를 '육잽이'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20세기초기 유성기 음반에 육잽이를 한자로 '六樂'이라 표기하고, 한글로 '륙각'이라 표기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서 '륙각(六樂)'은 두음법칙과 연음현상으로 인하여 발생된 표기다. 그후 1917년과 1918년에 '육악(六樂)'을 '육각(六角)'으로 왜곡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육각(六角)'은 삼현을 의미하는 '육악(六樂)'을 잘못 표기한 왜곡이요, 명백한 오류다. 이렇게 표기한 장본인은 '풍류생(風流生)'이란 필명을 사용하는 인물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한 명의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우리음악이나 악기에 대한 기본식견이 부족한 사람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6인이 연주하는 5종의 악기중에 '향피리 2'를 '당피리 2' 혹은 '당피리 1' '향피리 1'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27년으로 접어들면 '육각'이 다시 '삼현육각'으로 2차 왜곡이 발생한다. 이때 바로 '삼현육각'이란 용어가 새롭게 생성되었다. 이 용어는 1927년 김동환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렇게 생성된 '삼현육각'이란 용어는 1930년대에 판소리 명창 송만갑에 의해, 1940년대에는이왕직아악부와 문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에 의해 그리고 1950년대에는 제1세대 음악학자인 이혜구 등에 의해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결국 민간 6인조 악단 혹은 그 편성을 기존에는 '삼현' 혹은 '육잽이'라 지칭했으나, 이 용어가 일제 강점기에 1차로 '육각(六角)', 2차로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용어로 왜곡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한 원인은 우리의 전통음악 문화를 기록하는 주체가 1890~1940년사이에 단절되거나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곡된 용어를 사용한 지가 어느새100년이란세월이흘렀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아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필자는 '삼현육각'를 '삼현' 혹은 '육잽이'라 칭할 것을 제안한다.


This thesis raises a question about the most well-known meaning of samhyeonyukgak. To find the correct definition of the term,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 word and the process of its distortion had to be studied. The term, 'samhyeonyukgak', derives from the Joseon-era word 'samhyeon' or 'yukjaebi'. 'Samhyeon' used to refer to the three stringed-instruments of the Silla dynasty, geomungo, gayageum and hyangbipa. However, from the Joseon dynasty, the pieces of music performed by these instruments were also called the same. Especially the music the civilian performed was called 'samhyeon'. Not only that, the term also referred to those 6 performers who played this music. It required 6 instrument players, one each for daegeum, haegeum, janggo, buk and two for piri. Because there were 6 members, people also called it 'yukjaebi.'
In the early 20th century, 'yukjaebi' was introduced as '六樂' in Chinese and 'ryukgak' in Korean on the cover of a gramophone record. It seems to have been transcribed as 'ryukgak' owing to the Korean word initial rule and the prolonged sound phenomenon. Later in 1917 and 1918, it happened that '六樂' was wrongly spelled as 'yukgak(六角).' Yukgak(六角) is a mistranscription of yukak that represents samhyeon. Those who committed this error were the one whose pseudonym was 'Pungryusaeng' and the other that hasn't yet been identified. These two don't seem to have had enough expertise in Korean music and instruments. Because, of the 5 instruments performed by six players, they looked upon hyangpiri 2 as either dangpiri 1 or dangpiri 2 or hyangpiri 1.
In 1927, another distortion of the term took place: 'samhyeon' was added to 'yukgak', forming 'samhyeonyukgak'. This new term was first introduced by Kim donghwan in 1927; Since then it had been reinforced by Song Mingap, the pansori master singer in the 1920s; Choe Namseon, a writer and historian in the 1940s; and finally settled down as an official term by Yi Hyegu, the first generation music scholar in the 1950s.
In short, 'samhyeon' or 'jukjaebi' originally meant and referred to six-member music and its arrangement, bu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fist mistranscribed as yukgak and then to samhyeonyukgak. Since then, it has been established as an official music term without a challenge up until today. The reason for the distortion and mistranscription could be ascribed to the absence of an authority for recording our traditional music from 1890 to 1940.
It has almost been 100 years since the wrong term started to be used, and it should be corrected: the original 'samhyeon' or 'yukjaebi' should replace 'samhyeonyuk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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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항일가요에 나타난 가사와 곡조의 결합 양상연구 - <철도창가> 곡조 활용 곡을 중심으로 -

저자 : 노복순 ( Nho Boksu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10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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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철도창가> 곡조에 노랫말을 바꾸어 수많은 노래를 생산하는 항일가요의 창작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다양한 가사가 특정 곡조와 결합하면서 어떠한 양상으로 리듬과 박자를 생산해 내는지를 가사의 음절과 음보의 관계와 비교하면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활용 곡조의 리듬을 중심으로 음절수가 증가하면 부점이나 박자의 리듬을 나누는 방식으로 곡조를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철도창가> 곡조를 활용한 악곡의 가사는 4·4조, 6·5조, 8·5조로 다양하게 분포 되는데 4·4조는 정격으로, 6·5조는 변형이 자유롭게 일어나 리듬이 상대적으로 다양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8·5조는 음수율 면에서 변화를 거의 주지 않고 정격의 율격을 고수하면서 리듬이 패턴화 되는 양상이다. 이들 악곡을 통해서 음수율과 음보율은 곡조에서 리듬의 구성이나 박자의 길이를 강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가사와 곡조와의 친연성을 살펴보았다. 주로 각 행의 3행 첫 어절에 주요 핵심어를 배치하여 높은 음을 표현하며 주제를 강조하고 있었다. 주제 구현 면에서 철도창가 곡조는 항일투쟁과 교육계몽적인 내용이 대부분인데 항일투쟁의 주제 구현에 있어서는 모두 8·5조의 음수율을, 교육계몽적인 주제는 4·4조, 6·5조로 구조화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항일가요는 특정 곡조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악곡을 생산하여 확장하고 있는데 그 창작방식에 있어서 리듬을 강제하는 음절과 음보를 지켜 개사하였고, 주제의 구현이나 내용을 강조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음정이나 리듬을 달리하여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method of creating anti-Japanese songs that could produce many songs by simply changing lyrics of a certain melody.
First, this thesis analyzed the aspect of producing rhythm and time in the combination between various lyrics and specific melody, by comparing it with a relation between syllable and metrical foot of lyrics. In the results, when the number of syllables was increased focusing on the rhythm of utilized melody, the melody was produced in the method of dividing the dotted or time rhythm. The lyrics of songs utilizing the melody of < Railroad Song > are distributed in diverse syllabic meters such as 4·4, 6·5, and 8·5. The meter 4·4 is the regular mode while the meter 6·5 could freely have transformation, and the rhythm is relatively more diversified. In case of the meter 8·5, the rhythm tends to be patternized by sticking to the metrical rule of regular mode without giving almost no changes in the syllabic meter. Those songs verified that the syllabic meter and foot meter would play roles in forcing the composition of rhythm or length of time in songs.
Next, this thesis examined the affinity between lyrics and melody. Most of them emphasized the theme by placing the keyword in the first word segment of the third line in each line, and expressing a high note. In the aspect of realizing the theme, the melody of Railroad Song is mostly about anti-Japanese struggle and educational enlightenment. They were all structuralized in the syllabic meter as meter 8·5 for the realization of anti-Japanese struggle, and as meter 4·4 & 6·5 for the educational/enlightening theme.
Like this, such anti-Japanese songs are expanding by producing songs in the method of utilizing a specific melody. In the method of creation, the lyrics were changed by keeping the syllable and metrical foot forcing the rhythm. In the method of emphasizing the contents or realization of theme, it was realized by changing tunes or rhyt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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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15 개정 음악교과서의 판소리 교육 현황과 단계별 학습 목표 연구

저자 : 문봉석 ( Mun Bongseok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9-1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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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5 개정 음악교과서를 대상으로 판소리 교육 현황을 검토하고, 여기서 도출된 문제점들을 개선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학년군에 따른 단계별 학습 목표를 제시해보았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현행 교과서 제작의 지침이 되는 2015 개정 교과과정을 살펴본 결과, 초등학교 3~4학년의 생활화 영역을 제외하면, 모든 학년군의 모든 영역에서 판소리 제재가 가능하였고, 특히 일부 성취기준은 판소리의 음악적 요소를 활용했을 때 학습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기반하여 제작된 현행 개정 교과서들의 학습 목표에서는 첫째, 해당 학년 또는 영역의 성취기준을 벗어나도록 학습목표가 제시된 점, 둘째, 판소리의 주요 학습 활동이 특정 학년의 특정 영역에 지나치게 집중된 점, 셋째, 판소리와 관련성이 높은 성취기준임에도 판소리 관련 학습 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의 문제점이 확인되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년군에 따른 단계별 학습 목표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초등 3~4학년은 음악 요소의 이해, 판소리의 극음악적 성격, 초등 5~6학년은 음악 요소의 심화, 판소리의 이면, 판소리의 지역별 유파, 중학교 1~3학년은 음악 및 음악극 만들기, 장단과 추임새 넣으며 감상하기, 판소리와 연관 장르의 비교, 판소리의 더늠과 명창, 세계속 판소리의 위상과 가치 등을 단계별로 학습할 것을 제안하였다.


This study reviewed the current status of P'ansori education for the 2015 revised music textbooks, and suggested learning goals for each grade level as a way to improve them.
First,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2015 revised curriculum, which is a guide for the production of current textbooks, P'ansori sanctions were possible in all areas of all grade groups, except for the areas of daily life in elementary school 3-4. It was confirmed that the learning effect can be further maximized when the musical personality is used.
Compared to the positive changes in the 2015 revised curriculum, the revised textbooks produced based on this had the following problems. First, learning goals were suggested to deviate from the achievement standards of the relevant grade or area. Second, the main learning activities of P'ansori were too concentrated in specific areas of a specific grade. Third, despite the achievement standards related to P'ansori, no learning objectives related to P'ansori, were presented.
In order to overcome these problems, it was considered necessary to set learning goals for each grade level. Accordingly, it was proposed as follows; Elementary 3rd~4th graders - 'Understanding musical elements', 'P'ansori's dramatic characteristics'. Elementary 5th~6th graders - 'Deepening music elements', 'The backside of P'ansori', 'P'ansori's regional schools'. Middle school 1st~3rd graders - 'Making music and music theater', 'Listening to the song while playing the beats and adding Ch'uimsae', 'Comparison of P'ansori and related genres', 'Tŏnŭm and prestige of P'ansori', and 'The status and value of P'ansori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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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국립부산국악원의 성과와 역할 - 브랜드 공연 및 한류 상설공연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소현 ( Park Sohyu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7-17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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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남지역에서 유일한 국가문화예술기관[전통공연예술분야]인 국립부산국악원의 개원 이래 10년간 전통공연예술 사업의 성과를 검토하여, 영남권 전통공연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선도하였는지 진단하여 그 성과와 역할을 재고한 것이다.
첫째, 국립부산국악원 개원 전후 각종 세미나 및 논저를 중심으로 10년간의 성과를 분석하고, 둘째, 창조적 전통공연예술 작품으로 평가되어온 브랜드 공연과 한류 상설공연을 선별하여 비평하였으며, 셋째, 영남지역의 국가 무형문화재 및 지역 문화재 활용에 대한 전통문화예술 대비 성과를 분석함으로써 그 역할을 진단해보았다.
그 결과 첫째, 국립부산국악원의 성과는 개원 전후 표명되어왔던 관건 중 여타 분원과의 차별성과 함께 지역 출신 신진예술가의 등용 및 성장을 통한 수준 높은 지역사회의 전통문화예술 유도, 설립계획에 못 미치는 공연단원 충원 등등을 단계적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둘째, 국립부산국악원이 제작하여온 브랜드 공연과 한류 상설공연은 영남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성을 겸비한 공연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지역사회의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 나아가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셋째, 국립부산국악원의 영남지역 전통문화재의 활용 측면에서 부산지역에 국한된 중요무형문화재 및 지방문화재의 활용도는 높지만, 영남지역 전반의 문화재 활용도는 역부족으로 향후 개선책이 필요하다.
개선책으로는 국립부산국악원이 영남지역의 '유일한' 국가문화예술기관이라는 제한적 역량이 간과된 것으로, 부산지역을 제외한 영남지역의 지역 전통문화예술의 육성을 위하여 제2의 국립국악원 분원이 영남지역에 설립 되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diagnosed whether it led a pivotal role in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of the Yeongnam region through inquiring into the achievement of the 10-year traditional performing art project since the opening of Busan National Gugak Center that is the only national cultural and artistic institution[Traditional Performing Arts Field] in Yeongnam region. Its role was examined by the following.
First, it analyzed the 10-year achievement focusing on all sorts of seminars and books before and after the opening of Busan National Gugak Center. Second, it selected and reviewed the brand performance and the Hanryu permanent performance, which have been evaluated as the creative traditional performing art works. Third, it diagnosed its role through analyzing achievement in comparison with the traditional culture and art regarding the application of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local cultural asset in Yeongnam region.
As a result, the achievement of Busan National Gugak Center is grasped to gradually resolve the differentiation from other branches among matters of having been indicated before and after the opening, additionally the inducement of the sophisticated traditional culture and art in community through the appointment and the growth of a rising artist of local origin, and the recruitment of the performance members below the establishment plan. Second, the brand performance and the Hanryu permanent performance, which have been made by Busan National Gugak Center, were born newly as the performing art work, which combines artistry available for representing Yeongnam region, thereby having been positioned as a cultural content, further as a cultural icon based on traditional arts in community. Third, in the aspect of using Local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by Busan National Gugak Center, the utilization of the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and the local cultural asset, which are restricted to Busan region, is high. But the application of cultural heritage in the whole Yeongnam region is inadequate, thereby requiring an improvement measure henceforth
In terms of a remedial action, the limited capacity was overlooked as saying that Busan National Gugak Center is the 'sole' national cultural and artistic institution in Yeongnam region. To promote local culture in Yeongnam region excluding Busan region now, the second branch of National Gugak Center will need to be naturally established in Yeongnam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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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의한 기생사(史) 및 기생상(像)의 왜곡에 관한 연구 II -삼패(三牌)의 '사회적 속성' 변천과정 및 갈보(蝎甫)로의 왜곡을 중심으로-

저자 : 水谷淸佳 ( Miztani Sayaka ) , 이정남 ( Lee Jeongnam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7-232 (5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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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대한제국기 밎 식민지초기의 근대신문들을 중심으로 우선 지금까지 처녀지로 남아 있던 '삼패(三牌)의 등장'에 대해 추적해보고, 이후 '삼패(三牌)'가 처음 등장한 1899년부터 '삼패(三牌) 출신 기생들'이 해체된 1923년까지 총 25년간 '삼패(三牌)'들의 가무활동과 사회적 활동, 그리고 사회적 속성의 변화과정을 총 4시기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첫째, '삼패(三牌)'는 '갈보(蝎甫)'가 아니다. '삼패'는 등장(1899년)부터 해체(1923년)까지 '매음만을 전업으로 하는 창녀(매춘부)'라는 사회적 속성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한 '갈보(蝎甫)'라는 용어는 기생(관기), 이패, 삼패, 색주가의 작부 등을 총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갈보'는 '매음만을 전업으로 하는 창녀(매춘부)류 중 가장 하위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삼패(三牌)'는 '기생'이 아니면서도 '기생'이다. 국가소속의 여악으로 서의 정통성과 역사적·사회적 인식면에서 보면 '삼패'는 '기생'이 아니다. 그러나 '기생의 범주'를 보다 확장시킨다면 '1916년 5월 19일 이후의 삼패' 역시 '기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삼패 출신 기생'들은 '식민지시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기생'이다.
셋째, '삼패(三牌)'는 대한제국기 및 식민지시기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기생(관기)의 주 레퍼토리인 궁중 정재에서부터 민속춤, 좌창, 입창, 그리고 근대의 새로운 창작춤에 이르기까지 조선 여악의 대부분의 영역을 섭렵한 인기 가무연행자 집단이었으며, 또한 궁중 정재 및 조선 여악의 계승과 발전, 그리고 이의 근대화 및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 예인 집단이었다.
넷째, '삼패(三牌)'는 대한제국기 및 식민지시기에 있어서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애국활동, 고아원·기아수용소·조산부양성소·학교 등 다양한 사회 기반시설들을 위한 자선연주회 및 기부활동, 재능기부 및 대중 계몽활동, 신문애독 및 신문물에 대한 적극적 수용 등 조선의 다양한 위기상황과 사회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다방면에서 실제적 활동을 전개해나간 근대의 신여성 집단이었다.


This study seeks to trace the “Origin of Sampae” which remained as the virgin land until now focusing on modern newspapers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and early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examine the Sampae's music activities, dance activities, social activities, and process of change in social attribute for total of 25 years from 1899 when Sampae first appeared to 1923 when Gisaengs who originated from Sampae dissolved by dividing in to four periods.
First, Sampae is not Galbo. Sampae never had a social attribute as “A prostitute involved solely in prostitution” from its beginning in 1899 to dissolution in 1923. Also, “Galbo” is not the general term for Gisaeng (Gwangi), Ipae, Sampae, and prostitute bar's prostitute. Instead, Galbo merely refers to “The lowest group among prostitutes involved solely in the prostitution.”
Secondly, Sampae is a Gisaeng and is not a Gisaeng at the same time. In aspect of the originality as a state-owned Yeoak and historical and social perception, Sampae is not a Gisaeng. On the other hand, in extending the category of Gisaeng, Sampaes who were active after May 19, 1916 are also Gisaengs. However, Gisaengs who originated from Sampae are “Gisaengs newly made by Japanese General Govern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ird, Sampae was a group of popular music and dance performers who took over the most of the fields of Joseon Dynasty's Yeoak from Gisaeng's (Gwangi) main repertory, royal court dance, to folk dance, Jwachang (seated singing), Ipchang (standing singing), and new contemporary creative dance. Sampae was also a group of female artiste representing Joseon Dynasty and Sampae hugely contributed on inheritance, development, modernization, and popularization of royal court dance and female music and dance during Joseon Dynasty.
Fourth,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and Japanese colonial period, Sampae was a group of modern new women who participated in practical activities in various aspects including patriotic activities such as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charity concerts and donations for various social infrastructures such as orphanage, foundling house, and midwife training school, talent donation, public enlightenment activity, newspaper reading, and active acceptance of new culture to solve Joseon Dynasty's varying crises and social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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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여성 고난 대목을 통한 여창 판소리의 여성성 구현 - 춘향가 중 <십장가>, <옥중가>를 중심으로-

저자 : 양지인 ( Yang Jii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3-26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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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고난 대목은 여성의 모순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써, 여성이 서사의 주체인 <춘향가>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본 연구에서 여성창자가 서사와 동일한 성별을 가진 화자로서 핵심 대목인 '여성 고난 대목'을 어떻게 구현하고자 했는지 살펴보았다.
사설을 비교한 결과 여성창자들은 춘향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서정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모순에 대한 강력한 항거의 표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창자들의 경우에 춘향의 저항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처럼 여성창자들이 저항의 의미를 축소하고, '서정성'을 중점으로 표현하고자 한 양상은 음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십장가>에서 여성창자들은 항거의 대목을 생략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옥중가>의경우, 여성창자들은 이를 모두 느린 진양장단과 계면조로 노래하여, 서정성을 강화하였다. 또한 붙임새의 선율의 부드러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느린 호흡의 뛰는 교대죽을 다수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성창자들이 춘향과 같은 젠더임에도 불구하고, 춘향이 드러내고 있는 사회모순적인 지점을 강력하게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유성기 음반의 발매가 활발했던 1930년대에 대두되었던 전통적 여성상과 관련이 있다. 이때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수동적이고 '임을 그리워하는 온순한 여성'이었으므로, 여성창자들은 저항의 사설을 축소하고, 서정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구현한 것이다.
본 연구는 사설 측면에서만 머물렀던 판소리의 젠더적 연구를 음악적 구현까지 확대한 시도이다. 이를 통해 여성창자들이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여성성'을 음악적으로도 구현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Women's hardships are a powerful manifestation of women's contradictions, and women play a key role in "Chunhyangga," the main body of the narrative. In this study, we looked at how the female intestines wanted to embody the "women's hardships," a key point as a speaker with the same gender as the narrative.
Comparing the lylics, the female intestines put emphasis on expressing the inner world of Chunhyang, emphasizing 'frostiness', and the expression of strong resistance to contradictions was not noticeable. Rather, male singers showed strong expressions of resistance to Chunhyang. As such, female singers have reduced the meaning of resistance and tried to express "lyricism" with emphasis on music. Especially in "Sipjangga", female intestines tend to omit the passage of resistance. In the case of "Okjunga," female intestines sang all of them in slow Jinyang rhythm and geomyeonjo, strengthening lyricism. It also appears to use a number of slow-breathing running Gyodaejuk to avoid disrupting the smooth flow of the melody.
Although female intestines were geners like Chunhyang, Chunhyang's lack of strong expression of the social desecration points revealed was related to the traditional women's image that emerged in the 1930s when the release of meteoric albums was active. The ideal woman image at this time was passive and 'mild woman who misses the person', so the female intestines embody their 'femininity' by reducing the editorials of resistance and highlighting lyricism.
This study is an attempt to expand Pansori's gender research to musical embodiment, which had only stayed on the editorial side.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female intestines also wanted to musically implement "femininity" that is socially granted to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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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역양아운』 <취타>에 기록된 관악기 구음 고찰

저자 : 이도현 ( Lee Dohyeo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3-308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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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악보 『역양아운』에 수록된 <취타>에는 관악기 구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음악 기록 중 유일한 예로, 본 연구는 『역양아운』의 관악기 구음이 육보로서 기록되어 있음을 검증하고, 이로서 관악기 육보 체계의 사적 전개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역양아운』 <취타>의 독특한 기록이 갖는 음악사적 의의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수록된 <취타>를 통해 살펴본 『역양아운』의 거문고 육보는 안현법에 의한 육보 체계로 이뤄져 있었으며, 특히 같은 지법으로 연주하는 '당'의 경우 같은 음을 가진 다양한 한자로 표기함으로써 지시하는 음고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역양아운』 <취타>의 병기되어있는 관악기 구음은 각각 대응하는 거문고 육보와 비교함으로써 그 지시음 체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관악기 구음인 '나-노-니'의 모음을 통한 음고 지시법은 거문고 육보의 '당-동-징'과 같다. 또한 거문고 괘법의 변화로 인해 중심음인 '나'가 지시하는 절대 음고가 변하나, 거문고 육보와 같은 음고 변화에 따른 기보상 차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너, 늬, 네' 등의 예외적 구음은 적은 출현 빈도로 인해 의미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의 규칙성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역양아운』 <취타>의 관악기 구음은 16세기 고악보의 사례와 분명한 차이를 보였으며, 이는 거문고 육보 체계의 사적 전개와 유사함을 확인하였다. 16세기 관악기 구음의 경우 각각의 구음이 지시하는 음고가 대체로 일관되는 악조 중심의 육보였으며, 『역양아운』 <취타>에 이르러서는 악구, 악절, 악장 단위로 변화하는 중심음에 따라 상대적인 음고를 지시하는 체계로 변화하였다. 중심음의 음고 변화는 안현법의 발달, 우조화와 같은 조선후기 풍류방음악의 변천과 관계있었다.
『역양아운』<취타>를 통해 조선 후기 풍류방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기보법을 통한 음악적 변천을 포함하여, 군영의 세악수 음악의 풍류방 수용과정에 따른 과도기적 양상, 기존의 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변주곡 창작 등이 그러하다.
『역양아운』 <취타>의 분석을 통해 우조로 연주하는 줄풍류 관현합주 <취타>의 연주관행이 20세기까지 지속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후 오랜 세월 연주되지 못하던 것이 2014년 국립국악원 <현악취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현되었던 맥락을 검토할 수 있었다.
새롭게 재현되었던 맥락을 검토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현행 관악 구음 체계에 대한 이해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20세기 이왕직아악부의 구음 체계 정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의문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들은 후속연구로 미루고자 하며, 본 연구를 통해 전통음악의 구음체계의 이해를 돕고, 오늘날 구음이 갖는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According to the score of < Chuita > in Yeok-yang-a-un, which is presumed to be compiled in 19th century, gueum for wind instrument can be found. This is meaningful as it is the only example of gueum for wind instrument found in late Joseon Dynasty. The study demonstrates that Yeok-yang-a-un recorded gueum for wind instrument as a yukbo. Therefore, this study will examine historical development of yukbo for wind instrument. Also, the study will present unique musical history of Yeok-yang-a-un < Chuita >.
Geomungo yukbo on < Chuita > recorded in Yeok-yang-a-un was created according to an-hyun-beop. Especially 'dang' which was recorded in various Chinese characters referring to the same note despite that it was played in identical fingering. This was to specify the pitch. Gueum for wind instrument recorded in < Chuita > in Yeok-yang-a-un can be compared on how each pitch responds to Geomungo yukbo.
Vowels 'na-no-ni' are gueum read from phonographic instruction of wind instrument. And 'dang-dong- jing' are equivalent for Geomungo yukbo. Also, the absolute pitch 'na' changed due to change of gwae beop but on Geomungo yukbo or other similar materials, the notation does not change. The regularity of extra gueum such as 'ner, nui, nae' could not be analysed on account of infrequent appearance.
< Chuita > in Yeok-yang-a-un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 from ancient scores of 16 Century. It was found to be similar with historical development of geomungo yukbo. For example, gueum for wind instrument from 16 Century was a yukbo mostly representing consistent tone for each gueum. But the system changed in < Chuita > Yeok-yang-a-un suggesting the pitch to change relevant to the absolute pitch according to the phrase, passage and movement. The change of absolute pitch is related to changes which occurred in late Joseon dynasty pungryu music. Some including development of an hyeon beop and Ujo hwa .
Through < Chuita > Yeok-yang-a-un, various perspective of pung ryu bang music of late Joseon dynasty are displayed. Including changes of notation, process of acceptance in sae ak su―military band music to pung ryu bang and various new compositions based on current music.
Through < Chuita > Yeok-yang-a-un, it was found jul pungryu wind and string ensemble played in ujo was continued until 20 Century. In 2014 the performance was restored again by National Gukak Centre in title < Hyun ak chui ta >.
This study lays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current system of gueum for wind instrument. Also, it suggests forthcoming questions on understanding gueum system from < Ie wang jik a ak bu > from 20 Century. The follow-up research will be extension of this research. I hope this study contributes to help understand gueum system of traditional music and to review the value of i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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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세기 전반기 전북지역 풍류의 전개와 의의

저자 : 이예원 ( Lee Yewo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09-34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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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세기 전반기에 전북지역에서 전개되었던 풍류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1차 사료인 옛 신문기사를 정리 및 분석하였다. 이 시기는 근대 음악사가 새롭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지역음악에 대한 연구는 중앙에 비하여 사료 부족으로 인하여 미진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속 음악인이 합류하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대한제국기인 1908년 전주의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풍류계를 조직하고 경성에 있던 율객과 악공들을 초빙하여 풍류를 전수받았다. 이후 1920년대까지 조선후기 풍류의 맥을 전승해가며 풍류방 등 선호를 받고 기생조합과 권번 소속 기생, 그리고 풍류객들이 참여하였던 풍류는 193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악부흥운동이 본격화 되었으며, 정악부흥운동은 구체적으로 정악구락부 창립과 악보집 발간으로 이어지며 지방 인사와 기생들을 중심으로 재기를 맞게 된다.
또한 지역적 교류를 통해 가야금풍류는 이 시기에 전주, 이리, 군산, 정읍, 고창지역으로 확대됨으로써, 지역적 다양성을 확보하였다. 연행공간 또한 조선후기까지 관아와 사가 중심에서 열린 것과 달리 전주공회당, 이리좌, 군산 희소관, 정읍정악회, 고창청년회관 등 신식극장으로 확장되고, 극장 시설에 따라 무대화 되면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선보여졌다. 풍류가 본격적으로 근대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근대기의 전북지역의 풍류가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풍류객 중심에서 벗어나 기생과 민속 음악인들의 합류로 연주영역의 확대가 이루어지며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공연종목으로 정착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Pungnyu developed in the northern Jeolla regio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Old newspaper articles were organized and analyzed as the primary source of the study. There was dire need for research of this time period as this was when modern musical history had newly developed. However, compared to the central region, studies of regional music were lacking due to lack of sufficient sources. To overcome this challenge, this study was conducted, and the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northern Jeolla region's pungnyu further developed when instrumental musicians, female entertainers, and national musicians joined the pungnyu-bang (a private salon where literati gathered to enjoy music, arts, and poetry). In 1908, during the Korean Empire, Jeonju's senior citizens played a pivotal role in organizing pungnyu clubs, inviting instrumental musicians and professional musicians from Seoul to learn the art of pungnyu. Passing down the legacy of the late Joseon Dynasty until 1920s, pungnyu was widely received through pungnyu-bang, where the gisaeng johab (the union of female entertainers), members of gwonbeon (school-union of female entertainers), and pungnyu-gaek (pungnyu aficionados) would perform. Unfortunately, pungnyu rapidly declined in popularity in the early 1930s. To remedy this situation, the Jeong-ak Restoration Movement went full swing. The movement specifically led to the establishment of Jeong-ak Gurakbu (Jeong-ak Club) and publication of musical scores. Jeong-ak experienced a renaissance centering on local figures and female entertainers
Furthermore, through regional exchanges, gayageum pungnyu expanded to Jeonju, Iri, Gunsan, Jeongeup, and Gochang during this time period, gaining diversity.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performances were mainly held in government offices or private houses. In contrast, during this time period, performances were held in modern theaters such as Jeonju Theater, Jeonju Public Hall, Iri Theater, Gunsan Heesogwan, Jeongeup Jeong-ak Hall, and others. According to the theater facilities, the performances were theatricized and shown to a general audience. This process can be interpreted as pungnyu attaining modernity. In the modern era, through an official channel, Jeolla region's pungnyu deviated from being based solely on pungnyu-gaek. With the incorporation of female entertainers and national musicians, the realm of performance broadened as pungnyu established itself as a performance for the general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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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진주권번의 활동과 의의

저자 : 김영희 ( Kim Younghe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49-39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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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기생들은 1913년에 진주예기조합을 설립하였고, 1927년에 진주권번을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지역유지에 의해 주식회사 진주권번으로 전환 되었다. 본 논문은 진주권번의 설립, 운영, 교육, 공연, 예인, 종목에 대해 연구하였고, 진주권번은 진주 공연예술의 전통을 계승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진주권번의 의의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주권번은 진주지역 공연예술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시켰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경남 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포구락무, 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이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진주권번은 논개를 기리는 '의암별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수행했다. 1920년에 진주권번 기생들이 먼저 의기사 중수를 위해 진주지역에서 발기회를 조직했고, 1927년에 제향을 올리기 시작했다. 의암별제는 진주 지역민과 진주 기생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셋째, 진주권번은 진주검무라는 소중한 공연예술의 유산을 전승하였다. 진주검무는 의암별제의 의례 과정 중에 헌무(獻舞)로 추어졌기에 진주권번의 기생들은 반드시 검무를 익히고 춤추었다. 진주검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당시 기생 출신 예인으로 팔검무가 가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넷째, 진주권번의 기생들은 1919년 진주의 만세운동에 앞장섰고, 진주의 요리옥이나 진주권번의 불합리한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동맹파업을 하기도 했다. 진주권번의 기생들은 기생이라는 처지임에도 수동적이기보다 주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 기생의 지위가 낮았음에도 진주의 공연예술과 문화를 전승한 진주권번의 예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진주권번이 지킨 문화 유산들은 우리 전체의 문화 유산이라고 하겠다


The gisaengs of Jinju established the Jinju Yegi Association in 1913 and were founded as Jinju Kwonbeon in 1927. And in 1939 it was converted to Jinju Kwonbeon Co., Ltd. through Japanese colonial era. This paper studied the establishment, operation, education, performance, artist and lepatoris of Jinju Kwonbeon, and confirmed that Jinju Kwonbeon inherited the tradition of Jinju performance art.
The artistic significance of Jinju Kwonbeon is as follows.
First, Jinju Kwonbeon preserved and handed down the tradition of performing arts in Jinju area. This is because Jinju Geommu as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and Hanryangmu, Jinju Pogorakmu, Jinju Gyobang Gutgeori Dance as Gyeongnam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were handed down.
Second, Jinju Kwonbeon tried to revive the "Uiam Byeolje" in honor of Nongae and carried it out. In 1920, the Jinju Kwonbeon gisaeng first organized an erection meeting in the Jinju area for the reconstruction of Uigisa. In 1927, they began to perform ancestral rites. Uiam Byeolje inspired the pride of Jinju locals and Jinju gisaeng.
Thirdly, Jinju Kwonbeon passed down Jinju Geommu, a precious traditional Korean performing arts. During the Uiambyeolje Festival, the geomancy of Jinju Kwonbeon always practiced sword dance and danced. When Jinju Geommu was designated as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it was not a coincidence that the Eight sword dance of the entertainers from Jinju Kwonburn was possible.
Fourth, the gisaengs of Jinju Kwonbeon took the lea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Jinju in 1919, and raised questions about the unreasonable operation of Jinju's restraunt or Jinju Kwonbeon and staged an alliance strike. It is meaningful that the gisaengs in Jinju Kwonbeon showed their self-reliance rather than passive, even though they were gisae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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