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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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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0)~4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228
학림
46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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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론:송암 김용섭 교수의 농업사 연구와 저술

저자 : 백승철 , 최윤오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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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고·중세 결부제의 전개과정

저자 : 이인재 ( Lee In Jae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8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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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이 국가경제의 토대였던 전근대 국가에서는 합리적인 조세정책을 운영하기 위해 농부와 함께 농지 파악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는 시대별 특성에 맞는 공정한 호구조사와 양전을 통해 농업을 장려하였다. 결부제라는 측량시스템은 토지의 크기, 수확량, 과세를 연결시키는 제도로서,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는 한국 전근대 토지제도의 기본 도구로 사용해 왔다. 고조선에서는 수확량만 계산하는 고대적 결부양전 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중국의 동진과 천하체제 구축 압력으로 고조선이 쇠망하자, 고조선의 후예인 열국과 삼국은 여러 형태로 스스로의 경제체질을 바꾸려 하였다. 고대에서 중세사회로의 전환 모색 및 실현이었다. 그 와중에 결부양전제는 수확량과 함께 면적도 동시에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파와 파적의 제시였다. 그렇게 새로워진 중세적 결부양전제를 토대로 고구려는 공정한 조세제도를 만들었고, 좌식자와 하호라는 중세 전주전객제도 구축하였다. 고구려의 뒤를 이어 신라와 발해도 중세 전주전객제를 운영하였다. 중앙정부는 파와 파적의 제시에 그쳤지만, 전국 각 지역의 농업현장에서는 결과 결적, 부와 부적, 속과 속적, 파와 파적의 적용에 자의성이 높아졌다. 폭렴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전주와 전객 가운데 전주들을 위한 제1차 중세적 결부양전법의 보완이 필요해진 것이다. 결국 9세기 이후 신라와 고려 정부는 수확량 중심의 결부속파와 면적중심의 결적, 부적, 속적, 파적과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1결=방33보(1089보2) 라는 보적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결부수에 1089를 곱하면 결적을 알 수 있게 하고, 결적에 1089를 나누면 결부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말선초 제2차 중세적 결부양전법의 보완은 전주전객 가운데 전객을 위한 정책이었다. 이전과 달리 농업현장을 지키고 있던 전객농민 특히 자경소농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측량한 후 알려준 농지 면적과 수확량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했고, 정부도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세종정부는 이를 위해 농지가 기름지고 척박한 정도를 반영하여 면적은 차이가 있지만 결부수가 같으면 조세수취량은 동일하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부적 중심의 결부양전제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이는 곧 중세적 결부양전제가 해체되기 시작했음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In pre-modern economies that were founded on agriculture, it was important to identify which farmland belonged to which farmers in order to implement tax policies. Many nations encouraged agriculture through fair censuses and land measurements according to local characteristics. The Korean gyeol-bu (結負) system of land measurement was determined taxes based on the land area and production capacity, serving as a the core pre-modern land taxation instrument in Korea. In Gojoseon, an ancient gyeol-bu (結負) system was used to calculate only land yield. In the Middle Age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beginning the Joseon Dynasty, the system was modified to measure both land yield and area. During this time, the pa (把) unit of land area was created and defined to promote international trade. When land size was the standard by which taxes were collected, people neglected yield. Then the bo (步積) standard was developed which accounted for both land yield and area. After that, the jeon-ju (田主) standard was developed for tax collectors. However, this standard was somewhat subjective, creating problems for the jeon-gaeg (佃客), taxpayers. In response, the bu (負積) standard was developed which jeon-gaeg (佃客) found more reliable, even when being used to evaluate small parcels of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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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후기 토지공개념의 유형과 그 성격

저자 : 최윤오 ( Choi Yoon Oh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1-11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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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토지공개념의 유형과 역사적 성격을 추적하기 위해 토지개혁론의 3유형-양전법과 방전법, 그리고 정전법-을 비교하였다. 그것은 토지소유 불평등의 원인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함이다. 
첫 번째 양전법은 중세말까지 존재했던 조선 정부의 수취법이다. 결부 양전제는 균세라는 명분을 중심으로 1/10세를 수취하였지만, 은결이나 진전 등의 토지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두 번째 유집일의 방전법이다. 마을의 산천과 전답 모두를 어린도에 그려 넣되, 가로세로선이 만나는 모퉁이에 작은 뚝[돈대]을 쌓아 표시한다. 모든 토지를 빠짐없이 조사하고 직역까지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다. 방전법은 균평을 지향하며 소농민이 찬성하는 공개념이었다. 세 번째 정전법은 다산 정약용에 의해 제안된 토지분배 방안으로써 노동능력에 비례한 소득분배 방안이었다. 그는 균산 차원의 토지공개념을 구상했다. 방전법과 정전법을 결합시켜 토지공개념을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균세, 균평, 균산 차원의 토지개혁론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모두 다른 목표와 방법론을 보여주었다. 그 중 조선정부가 채택한 것은 양전법이었으며, 지배층 중심의 부분개혁, 부분개선적 방법론에 그쳤다. 방전법과 정전법 같은 토지공개념 은 실현되지 못했고 과제로 남게 되었다.


This paper compares the gyeolbu-yangjeon-beob(結負量田法), bangjeon-beob(方田法, square field system), and jeongjeon-beop(井田法, nine-square field system) land management systems to explore the methods and history of public land ownership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se reforms were enacted to find and resolve the causes of inequality in land ownership.
The Joseon government's initial system was the gyeolbu-yangjeon-beob(結負量田法), a method of measuring and taxing land in units of gyeolbu(結負) and lasted until the end of the Middle Ages. Under the gyeolbu-yangjeon-beob(結負量 田法), land was taxed at 10% of its value as a form of equal taxation(均稅), but it did not account for eungyel(隱結) and jinjeon(陳田).
Then the bangjeon-beob(方田法) was implemented to more comprehensively manage land. Under this system, the complete topography of the area ruled by the Joseon dynasty, including farmland and mountain rivers, were drawn in the Fish Scales Register(魚鱗圖). Terrain was measured by creating small mounds where horizontal and vertical surveying lines met at regular intervals. The bangjeon-beob(方田法) system was a system of public land ownership that was implemented to achieve gyunpyung(均平).
The following system was the jeongjeon-beop(井田法) land distribution plan developed by Dasan Jeong Yak-yong. He promoted public land ownership in order to implement gyunsan(均産). Under this plan, he sought to implement a combination of the bangjeon-beob(方田法) and jeongjeon-beop(井田法).
Each of these land reform land management systems were implemented to address inequality broadly, but all had different methods and specific goals. The Joseon government adopted the gyeolbu-yangjeon-beob(結負量田法), as a partial reform measure in line with the interests of the ruling class. The bangjeon-beob(方田法) and jeongjeon-beop(井田法) methods of public land ownership were never fully rea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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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광무 양전·지계사업 연구사와 토지소유권 논쟁

저자 : 왕현종 ( Wang Hyeon Jong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9-14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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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광무 양전·지계사업의 연구는 1968년 김용섭 선생의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연구에서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대비하여 대한제국의 양전사업과 지계사업이 나름대로 근대적 토지제도의 수립과정이었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토지조사 와 더불어 토지소유권 조사도 이루어지고 지계를 발급함으로써 토지소유자인 지주에게 소유권을 인정하였다고 보았다. 다만 봉건적 지주소작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전개되었다고 하였다. 대한제국과 일제의 사업은 토지개혁의 조치가 없기는 하지만, 근대적 토지제도의 수립에서는 같은 궤도에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초기 연구의 문제 의식과 연구 구성은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하 토지문제를 밝히는데 기본 구도로 작용하였다.
1990년대부터 경제사 연구로부터 양전조사 과정, 특히 토지소유자의 조사 방식의 실증 분석을 통해 소유권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한제국의 수조지로서 파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국사학계에서는 광무 양전·지계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토지조사의 전진성과 토지소유자의 관계발급 과정 연구 등을 진행하였다. 최근까지도 광무 양전사업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토지소유권 사정과 발급에 관한 준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특히 시주(時主)의 규정과 실효성에 대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광무 양전 지계사업 연구의 비판과 극복을 위해 본래 근대적 토지개혁이라는 시각을 더욱 확충하고 정교한 연구방법으로 계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광무양안의 사례연구, 즉 호적과 양안의 상호관계에 대한 실증이나 근대 토지소유권 법제정 연구과 더불어 근현대 토지개혁 과정 전반에 대한 관점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In 1968, Kim Yong-seop began studying the Korean Empire's Gwangmu Yangjeon and Jigye projects. He concluded that the Korean Empire's Yangjeon and Jigye projects were a result of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land system that would accomplish the empire's goals in preparation for land survey projects by Japan. In addition to land surveys, these projects consisted of land ownership surveys and official certificates of ownership were granted to landowners. However, land survey projects were conduct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without abolishing the feudal landlord system. Although neither the Korean Empire nor the Japanese Empire implemented land reform measures,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land system indicated that they were both headed in the direction of land reform. Awareness of problems and the composition of early research served as a basic structure for later studies which revealed land problems during the Korean Empire and the Japanese colonial periods.
Since the 1990s, empirical analysis of the land ownership survey method conducted by economic historians has been criticized for revealing the problems of ownership investigations which was the basis of the Korean Empire's land tax revenue system. Modern Korean historians have studied how land surveys have developed and the process of establishing land ownership through a review of the Gwangmu-Yangjeon projects. Debates over this issue remain ongoing as the land ownership situation and compliance with the issue remain unsettled. There has been particularly significant controversy over the regulation and effectiveness of landownership(시주, 時主).
The perspectives on initial modern land reforms must be developed and they must be studied using advanced research methods to provide a critical appraisal of and to counter the findings of research on the Gwangmu Yangjeon project. For example, it is necessary to broaden the scope of the overall modern land reform process, to conduct a case study of Gwang-mu Yang-an to demonstrate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family registers on both sides, and to study modern land ownership legi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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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유재란사(丁酉再亂史) 연구에 관한 한일학계 연구의 현황

저자 : 조인희 ( Cho In Hee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3-204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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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유재란사 연구에 대한 연구사 정리다. 본고에서는 근래의 연구를 중심으로 정유재란사 연구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원인에 대한 한일학계의 연구사를 정리하여 임진왜란, 정유재란 원인론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두 번째 부분은 정유재란사 연구의 세부 논점으로 총 12개의 각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도요토미 히데요시 책봉 문제 및 교섭 결렬의 원인 ② 정유재란기 명군(明軍)의 파병 ③ 정유재란기의 의병(義兵) ④ 칠천량 해전(漆川梁 海戰)과 이순신(李舜臣)의 수군 재건(1597.7) ⑤ 황석산성(黃石山城) 전투(1597.8) ⑥ 남원성(南原城) 전투(1597.8) ⑦ 명량(鳴梁) 해전(1597.9) ⑧ 울산성(蔚山城) 전투 (1597.12~ 1598.1) ⑨ 순천(順天) 전투(1598.9~1598.11) ⑩ 사천(泗川) 전투(1598.9~10월 초) ⑪ 노량(露梁) 해전(1598. 11.18.~19) ⑫ 정응태 무고 사건(1598.6, 1598.9)이다. 본고의 연구사에서 다루지 못했거나 좀 더 연구되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① 시기 구분의 세분화 ② 정유재란기 조선 조정의 동향에 대한 연구 ③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발발 원인에 대한 고찰 ④ 정유재란기 일본군의 전략 변화에 대한 고찰


The following essay discusses the historiography of the Jungyu War. The main focus of this essay is the current trends in Jungyu War historiography. 
The essay consists of two main parts. The first part reviews theories on the causes of the Imjin War and the Jungyu War. The second part discusses 12 aspects of the Jungyu War: 1. the installment of Toyotomi Hideyoshi and why negotiations broke down; 2. why the Ming army was dispatched during the Jungyu War; 3. the Battle of the Righteous Army during the Jungyu War; 4. the battle of Chilchunryang and reestablishment of the Joseon navy; 5. the Battle of Hwangseoksanseong; 6. The Battle of Namwonseong Fortress; 7. the Battle of Myoungryang; 8. the Battle of Ulsan Fortress; 9. the Battle of Suncheon; 10. the Battle of Sacheon; 11. the Battle of Noryang; and 12. Jung Yin Tai's false accusation. 
The aspects of the Jungyu War that this essay does not addressed but that should be studied further include: 1. the stalemate period; 2. the political geography of the Joseon government; 3. the causes of the Imjin and Jungyu Wars; and 4. the Japanese army's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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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물관에서 구석기와 함께 한' 나의 50년

저자 : 이융조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7-317 (1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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