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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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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 : 1738-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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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7)~7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83
석당논총
74권0호(2019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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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설 『토지』의 근대 형상화 방식 연구 - 토론, 사유, 신분 변이(變移)를 중심으로 -

저자 : 임회숙 ( Im Hoe-sook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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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소설 『토지』의 근대 형상화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소설 『토지』는 19세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근대가 밀려오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새롭게 다가온 근대를 소설에 어떤 방법으로 형상화 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본 연구를 진행하게 된 이유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소설 『토지』에서 근대를 형상화 하는 방식 3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토론의 형식을 띤 대화가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대상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런데 이 토론의 내용이 근대 계몽기 담론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토론 형식의 대화 내용은 계몽적이며 설득적이었다. 두 번째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유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물의 사유는 3부 이후부터 빈번하게 나타나며 그 내용 또한 길다. 소설 『토지』는 인물들의 이성적 사유를 통해 근대기에 유입된 국가, 민족, 계급, 여성, 일본, 아시아에 대한 견해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분의 변이를 통해 근대의 특성을 나타낸다. 소설 『토지』에는 다양한 계급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구한말과 식민지를 겪으면서 신분의 변이를 경험하게 된다. 공적으로는 신분제가 사라졌지만 관습적으로는 남아 있는 신분의식을 통해 당대 사람들은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d the method for the embodiment of early modern age in novel 『Land』. Novel 『Land』 established its background period form 19th century to japanese colonial period. This period is also the period that the modern age rushed to korea. Then how did the author embody the newly rushing modern age? This question is the reason for this study.
I could see the three embodiment method in. First, dialogues which shaped anovel 『Land』s a discussion format are frequently identified. Characters state frankly their opinions against the object respectively. By the way, I could see a similarity between the contents of the discussions among characters and the early modern enlightenment discourse. The contents of dialogues shaped in discussion format were enlightening and persuasive. The second thing is the appearance of the characters of trying reasonable thinking. Especially, the thinking activities of characters are frequently appeared after part 3 and the contents are also long. Novel 『Land』 shows the various opinions about nation, korean race, class, female, japan and asia those were flowed in during modern age.
Last, novel 『Land』 shows the features of modern age through the transition of socail position. A variety of classes are appeared in novel 『Land』. And they experiences transition of social position undergoing the latter era of the Choson Dynasty and japanese colonial age. It can be confirmed that how the people in those days accepted the modern age through the awareness of social position which were publically disappeared at that tinme but not disappeared conventionally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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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식민지와 제국의 여성운동, 그 접점과 간극 - 경제적 해방과 모성 보호 문제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도경 ( Kim Do-kyo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5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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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1920년대 중반 조선을 방문했던 일본 여성운동자 오쿠 무메오(奧むめお)와 스미이 미에(住井美江)의 강연록 및 방문 관련 기록을 통해 당대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의 여성운동의 사상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192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여성 해방 운동의 흐름이 거센 시기였으며, 이러한 세계적 조류는 일본은 물론 식민지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가부장제의 억압을 벗어나지 못한 채 급격한 자본주의적 흐름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 “동양부인”의 연대가 강조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일본 여성운동계의 저명 인사였던 오쿠와 스미이가 1925,6년 연이어 조선을 방문하여 연단에 오르고 조선의 여성운동자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이들의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주로 강조되었던 문제는 여성의 경제적 해방, 즉 여성의 직업 활동이었다. 이와 같은 경제적 해방의 문제는 조선의 여성운동계에서도 매우 긴요한 화두였다. 여성의 경제적 권리 획득을 위하여 여성의 직업 및 교육 문제, 여성의 노동 조건 개선 등 다양한 문제가 여성운동의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의 권리는 경제적 해방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전시대에 비해 더욱 절실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경제적 해방을 위한 여성의 직업 활동은 한편으로는 모성 보호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였다. 일본에서 모성 보호 담론에 대한 입장이 크게 히라쓰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를 중심으로 한 입장과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등의 여권론의 주장으로 나뉘었으며, 관련 논란은 192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기도 하였다. 오쿠 역시 히라쓰카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어머니'가 될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모성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조선 여성운동계에서 모성의 보호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박원희였다. 박원희는 모성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좀 더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엘렌 케이(Ellen Key)의 모성 보호 담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히라쓰카나 오쿠와 흡사했으나 그 구체적인 실현에 접근하는 방식도 주체도 달랐다. 박원희는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게 경쟁하기 위해 모성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박원희에게 이는 국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할 목표이자 운동의 강령이었다. 이렇듯 박원희를 비롯한 조선의 여성운동자들은 일본 여성운동계의 영향을 받았던 동시에 식민지라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 여성 해방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절실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mpare the thoughts of the Japanese women's movement during the colonial period of the 1920s with those of Japanese women's activists Oku and Smii, who visited Chosun in the mid-1920s The 1920s were a period of intense women's liberation movements around the world, and these global trends affected not only Japan but also colonial Korea. It was also emphasized in Chosun and Japan that the solidarity of the “Oriental woman” suffered by rapid capitalism while failing to escape the oppression of the patriarchal system. Against this backdrop, a Japanese women's activist visited Chosun to give a lecture and interacted with women's activists in Chosun. The Japanese women's movement, including Sumii and Oku, was focusing on the suffrage movement at that time, but the women's movement in Chosun was well aware of the Japanese women's activists and women's activists who visited them to see that they could not make such claims. Instead, the problem that was mainly emphasized in their lectures or interviews was the economic liberation of women, or the professional activities of women.
As such, the issue of women's economic liberation in the Chosun and Japanese women's movements was commonly recognized as a very important issue, but the details showed a difference. The economic liberation of women was directly linked to the job problems of women, which were also deeply linked to maternal protection. In Japan, positions on motherhood protection were divided into pros and cons. The former was mainly claimed by Hiratsuka, and the latter was alleged by the feminists, represented by Yosano. In comparison with them, Park Won-hee, who was the strongest voice in Chosun on the issue of maternal protection, approached the issue from a more practical perspective. It was similar to Hiratsuka and Oku in that they were influenced by Ellen Kay's maternal protective discourse, but the way they approached the specific realization was different. Park Won-hee and other women's activists in Chosun were influenced by the Japanese women's movement, but they were desperately agonizing over how to approach women's liberation under the limited framework of colo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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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려청자와 여요자기 사이의 간극 - 고려청자로 인식된 두 점의 여요풍 자기에 대한 검토

저자 : 이희관 ( Lee Hee-gwan ) , 김윤정 ( Kim Yun-jeo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5-8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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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기 가운데에는 그 생산 요장을 알 수 없거나, 다른 요장의 생산품으로 오인되어 온 경우가 종종 있다. 근래 필자는 연구자에 따라 여요자기로 인식되기도 하고 고려청자로 인식되기도 하는 매우 흥미로운 여요풍의 자기 두 점을 접하였다. PDF 소장의 청자권족세와 개인 소장의 청자화형탁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은 과연 고려청자일까, 여요자기일까?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이 연구의 주요 목적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서 주로 비교적 관점에서 고려청자와 여요자기의 권족세 및 화형탁의 조형ㆍ유약ㆍ장소기법적 특징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문제의 PDF 소장 청자권족세와 개인 소장 청자화형탁의 조형ㆍ유ㆍ장소기법적 특징을 파악하여, 그것들을 고려청자 및 여요자기와 견주어 보았다. 그 결과 전자는 청량사여요에서 제작된 여요자기이고, 후자는 강진의 사당리요장에서 제작된 고려청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정한 기물들이 고려청자로 인식되기도 하고 여요자기로 인식되기도 한 것은 조형이나 제작기법적인 측면 등에서 양자가 그만큼 친연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12세기 초기에 전자가 후자를 충실하게 모방하였다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 경우에 따라 비록 좁지만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하여 이러한 점들을 확인한 셈이다.


The kilns of surviving wares(傳世瓷器) are often unknown or mistaken for another one. Recently, I encountered two very interesting pieces of Ru (汝窯)-type that can be differently perceived by researchers either as Ru ware(汝窯瓷器) or Goryeo celadon ware(高麗靑瓷). One is a celadon basin with a round foot(靑瓷圈足洗) in PDF, and the other is a celadon floral-shaped cup stand(靑瓷花形托) in a private collection. Are these indeed Goryeo celadon ware, or Ru ware? The main purpose of this review is to find an answer to this question.
To do so, the characteristics of Goryeo celadon and Ru ware including molding(造形), glaze(釉藥) and methods of zhangshao(裝燒技法) were re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comparison. Based on the results, this study identified the shape, glaze and method of zhangshao of the celadon basin with a round foot in PDF and the celadon floral-shaped cup stand in a private collection, and compared them with those of Goryeo celadon ware and Ru ware. As a result, the following conclusion was reached: the former is a Ru ware produced in the Qingliangsi Ru kiln(淸凉寺汝窯), and the latter is a Goryeo celadon ware produced in the Sadangri kiln(沙堂里窯場) in Gangjin.
The reason why certain celadon wares are perceived as Goryeo celadon or sometimes as Ru ware is that the affinity between the two types is strong from the aspects of shape or production technique and so on. Considering that the former faithfully emulated the latter in the early 12th century, it seems natural to say so. However,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re is still a gap between the two, although the gap is narrow. This study demonstrates these point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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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남지역 기독교 여학교의 3.1운동 - 수피아여학교, 기전여학교, 정명여학교를 중심으로 -

저자 : 이가연 ( Lee Ga-ye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3-10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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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3.1운동에서 여성들은 군중동원, 태극기 제작, 격문과 선언서 인쇄 및 배포를 담당하고 시위 군중을 이끄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조직적 저항운동의 대표적인 집단이 광주 수피아여학교, 전주 기전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이었다. 본고는 수피아, 기전,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3.1운동 과정에서 조직적 주체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학교의 설립과정과 교육이념, 민족의식의 성장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위 세 학교는 모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기독교계 여학교이다. 선교사들은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를 설립했지만 근대적 공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던 당시, 이들은 지역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특히 여성들은 기독교계 학교를 통해 새로운 문물·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대 환경에 적응하려고 했다. 기독교계 학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민주주의 교육과 자유·평등사상에 의한 자주적 교육활동 등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의 최대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근대의 시대정신, 국가의식, 민족의식을 배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저항은 3.1운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피아여학교에서는 열세집, 반일회, 백청단 등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한편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1921년 목포만세사건을 일으켰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과정에서도 수피아, 기전, 정명의 여학생들은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3.1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Honam region, women played a leading role in mobilizing crowds, making the Taegeukgi, printing and distributing of declarations. The representative groups of these organized resistance movements were students from Gwangju Supia Girls' School, Jeonju Kijeon Girls' School and Mokpo Jeongmyoung Girls' School. These were missionary school. At that time, women accepted new cultures and ideas through Christian mission schools, and tried to adapt themselves to the new spirit of the times. Mission schools, basically, engaged in Christian democracy education and independent educational activities based on the idea of freedom and equality. And training of talent to serve the nation and society was set as the primary goal of education. As a result, students were able to cultivate the spirit of the times, the sense of the nation and nationality. Based on the national consciousness, the students actively started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1919.3.10, 23 teachers and students from the Supia Girls' School were arrested and 3.13, 13 students from Kijeon Girls' School were arrested. 4.8, in Mokpo, a number of students and teachers from the Jeongmyoung Girls' School were arrested. Their resistance movement did not end 3.1 Independence Movement. After that, Students at Supia Girls' School, formed organizations such as Yeolsejip, Banilhae and Baekcheongdan. Students at Jeongmyoung Girls' School, in 1921, caused the Mokpo Manse Incident. They took over the spirit of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they took to the streets in protest, at the 1929 Gwangju Studen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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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20년대 청년운동과 언양지역 가톨릭청년회 결성

저자 : 손숙경 ( Son Suk-ky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1-13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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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식민지기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에 주목하여 청년회 조직의 결성과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연구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주목하여 이루어졌다. 먼저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 조직의 목적과 활동사항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 조직을 통해 이 시기 가톨릭 청년회의 역할과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1920년대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를 분석하여 식민지기 가톨릭청년회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1922년에 결성된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는 장례와 물산장려가 목적이었다. 언양 본당 설립 4년 전에 주변부 지역인 언양에서 가톨릭 청년회가 비교적 빨리 결성되는 배경에는 천주교 수용초기부터 이어져 온 많은 신앙공동체의 형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는 회원의 자격, 임원, 구성, 회비 등 가톨릭 청년회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언양의 천주공교 청년회 결성 목적 중 하나로 장례가 포함된 것은 천주교의 장례절차가 전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시기 가톨릭 청년회 조직의 목적 중 하나인 선교와도 일치하였다. 언양의 천주공교청년회는 장의와 관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활동하였다.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 결성의 또 다른 목적인 물산장려는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에 대응하여 전개된 당시 우파 지식인의 대표적 문화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의 흐름과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의 결성은 경남지역에서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의 구체적 실상을 말해주는 것을 넘어서 가톨릭 청년운동이 3.1운동 이후 지식인의 문화운동에 조응한 실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언양지방 천주공교 청년회'는 본당 건립 및 교회 내 활동에도 중추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장례와 물산장려의 청년회 설립 목적에 따라 대외 활동도 활발히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3.1운동 이후 많은 청년단체가 결성되는데 이러한 흐름에 천주교회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고 언양의 천주공교 청년회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조응하여 결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922년 결성된 '언양지방천주공교청년회'는 1920년대 청년운동사를 밝히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research reveals organize of youth association and it's meaning by focusing on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during colonial era. This research was proceeded by following two subjects. First, The purpose and activities of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Second, Revealing meaning and role of Catholic youth association of that era through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So, This research studied characteristics of Catholic youth association during colonial era by analyzing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in 1920s.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established in 1922, was aimed to help Korean Production and funeral ceremony. The background of fast organizing of Catholic youth association. in Unyang 4 years before establishing of Unyang Catholic was related to many faith community from the start of catholic receving.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reveals a lot of contest that related to manage of Catholic youth association very specifically, such as qualifications of member, excutives and fees. Because Catholic youth association included funeral ceremony as organize purposes, funeral ceremony of Catholic and mission work seems directly related. This corresponds with one of purpose of that time's Catholic youth association, mission work.
Catholic youth association in Unyang specified contents related to funeral specifically in there activites. Korean Production, which is another purpose of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was similar to Korean Production Movement, which was started by the right intellectuals to deal with socialism movement in 1920s.
In this view, organizing of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shows not only just the specific truth of Korean Production Movement conducted in Kyung Nam provence, but also shows the specific example of participant of Catholic youth movement in cultural movements of intellectual after 3.1.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not only played central roles in construction of church and activites in church, but also briskly proceeded external activities such as funeral ceremony and Korean Production , which are purposes of youth association. After 3.1, many youth associations were organized and catholic church actively responded to the stream.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was also established as correspondence to that time's social atmosphere. Therefore Unyang Catholic youth association, organized in 1922, can contribute to revealing 1920s' youth mov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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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상댁지(相宅志)」의 내용 중 '목성윤도(木星輪圖)' 에 의한 방위측정상의 길흉판단에 관한 연구

저자 : 조인철 ( Zho In-choul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7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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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園經濟志』는 徐有榘(1764~1845)의 저술이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木星輪圖'란 일종의 길흉판단용 나침반이며, 「상택지」의 1권의 [논사응]의 내용에 나온다. [相宅志]에서 말하는 木星輪圖는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성윤도로 측정한 방위의 길흉판단은 일정한 논리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논리체계를 바탕으로 방위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을 편의상 '論理向'이라고 하였다. 「상택지」에서 논리향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1권의 <占基>의 '地理'부분이고, 일부가 <營治>의 '建置'부분이다. [논사응]에서 제시한 吉砂로는 3가지로 尖秀端圓砂, 卓筆砂, 堆甲屯軍砂이고, 凶砂는 하나로서 探頭峯 즉 窺峯이었다. 길사의 기운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목성윤도로 측정된 특정방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규봉과 같은 흉사로 인해 일어난 재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재앙으로 구분되는지 대한 것은 목성윤도의 2층의 구성방위 중 어떠한 흉방위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었다. 그 외 「상택지」에서 다룬 논리향은 팔로사로황천살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목성윤도 활용의 논리체계의 일부를 규명할 수 있었으며, 「상택지」의 목성윤도가 주로 양택을 위한 방위측정도구임을 알 수 있었다.


『Imwonkyungjeji(林園經濟志)』 is written by Seoyugoo(徐有榘, 1764- 1845). Moksung-Yundo(木星輪圖), to be addressed in this study is a kind of fortune telling compass. The structure of Moksung-Yundo is explained in the volume Ⅰ of 「Sangtaekji(相宅志)」 attached after [addressing the surrounding peaks, 論砂應]. Fortune telling of orientation measured by Moksung-Yundo is based on a certain logic system. Moksung-Yundo, as described in 「Sangtaekji」, consists of two layers and is used as a tool for determining logic direction. In order to maximize the lucky fortune, the lucky peak like 'brush pen over table 卓筆砂' should be located at a specific direction of 24 divided orientation that is considered to have the energy to activate it. The identification of disaster caused by unlucky peak like kyubong[窺峯, peeping peak], depends on which bad orientation of the second layer of Moksung-Yundo it is in. There are many kinds of logic directions covered in 「Sangtaekji」. The logic system of Potae[포태]-beob[法] is applied to the judgement of Palrosaro[八路四路]-hwangcheonsal[黃川殺] method. Paltaek[八宅]-beob[法] complexly combines several meanings of Palgoe[八卦]. The logic system of Paltaek-beob formed and applied a logic system to Palgoe in response to family members and natural objects. In addition, the logic system of the direct facing roads[直衝路] and the oblique cross roads[斜路相交] is applied in Chuiro[取路]-beob[法]. 「Sangtaekji」 contains the judgement of fortune by measuring direction with Moksung- Yundo and the orientation theory with a certain logic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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