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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ournal of History Physical Education, Sports and Dance

  • : 한국체육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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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25권2호(2020) |수록논문 수 : 7
간행물 제목
25권2호(2020년) 수록논문
권호별 수록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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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국궁(國弓)의 조직화(組織化)와 대중화(大衆化)에 대한 사회(社會)·문화사적양상(文化史的樣相)연구: 일제강점기 신문기사(新聞紀事)를 중심으로

저자 : 최석규 ( Choi¸ Seok-g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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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는 한국근대체육의 암흑기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국궁은 조직화, 대중화 되었고, 신문사, 사조직(射組織)이 그 주역이었다. 「매일신보」 316회, 「조선일보」 377회, 「동아일보」 669회의 보도횟수는 일제강점기 국궁의 조직화 대중화에 있어 신문사의 역할을 반증한다. 1912년부터 1919년 까지 매일신보의 국궁관련기사는 일제강점기 국궁의 조직화, 대중화요인의 단서다. 사계, 관덕회, 사우회 등은 전국 7개 지역 59개 사정 사원들에 의해 결성된 국궁 조직화의 주체였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향유했던 국궁은 일제강점기 궁술대회를 통해 남녀모두가 함께하는 대중문화로 각광받았다.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등이 후원한 궁술대회는 국궁의 전통성 계승의 버팀목이었고, 조선독립에 대한 희망과 울분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Korean physical education stuck in a dark age in the modern times. Nevertheless, Gukgung was organized and popularized in the society, and newspapers and Sajojig(射組織) were leading role. 316 times in Maeil-sinbo, 377 times in Josun-ilbo, and 669 times of Dongah-ilbo indicates the newspaper's contribution to Gukgung's popularization and systematizatio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From 1912 to 1919, the articles related to Gukgung in Maeil-sinbo considered as a proof which indicates factor of Gukgung's organization and popularizatio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Sagye, Gwandeoghoe, Sauhoe, etc. are the main agents of Gukgung's organization which was formed by Sajeng, Sawon, from 7 national level and 59 regional level. Gukgung, enjoyed by nobility during the Joseon Dynasty, became a popular culture as a archery game for both men and women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era. Gungsul-daehoe, sponsored by Maeil-sinbo, Josun-ilbo, Dongah-ilbo, etc, supported a succession of the tradition about Gukgung and gave a chance to express hope and resentment for the independence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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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의거

저자 : 안진규 ( An¸ Jin-k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3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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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사건에서 류해붕의 활동, 특히 여운형, 이길용, 손기정등과의 관계를 밝히고 체육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대판-신호간 역전경주대회 3연패, 1932년 제13회 동경-횡빈간 왕복 45마일 역전경기 우승 등 해외원정 4연패의 핵심 주자로서 활약하였다. 둘째, 주장으로서 동기 김은배와 후배 손기정 등과 함께 1932년 양정고보 육상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셋째, 1933년 철도국 육상부에 입단하여 경성육상리그 실업부 우승과 조선 대 만주 육상경기대회의 승리를 이끌었다. 넷째, 1934년 《조선중앙일보》의 체육부 기자로 1937년 초까지 고려육상경기협회와 서울육상경기연맹 등 체육단체 임원으로, 여운형 회장과 이길용 임원과 함께 우리나라 육상발전은 물론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다. 다섯째, 양정고보 선배 류해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1, 3위한 후배 손기정과 남승룡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조선인의 우월성과 반일정신을 고취코자 《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켰다. 마지막으로《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은 류해붕이 같은 체육부 기자로서, 평소 체육단체 등에서 함께 일하고 친했던 형, 이길용에게 이야기하여 발생된 의거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athletic activity of Ryu, Hae-Bung, his role in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and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aspect of athletic history. So, this paper attained the conclusion as follows. First, winning successively three times in Osaka Kobe Road relay from 1929 to 1931. He was active as a core runner, winning successively oversea four times including the victory at The Thirteenth Tokyo Yokohama Road relay in 1932. Second, he, as a Captain, leaded the golden age of Yangchung team in 1932 Third, he joined athletic team of Train Agency in 1933 and attained a victory of Gyeongseong Athletic League as well as of Chosun vs. Manju Athletic Meet. From 1934 to the early days of 1937 when he worked as a member of Goryo Athletic Game Cooperation and Seoul Athletic Game Federation, he was head in the development of our country athletics and in the entrance of national consciousness. Fifth, Ryu, Hae-Bung, a senior of Yangchung team, was proud of his juniors Sohn and Nam who won rank 1 and rank 3 at Berlin Olympic Games respectively. So, he cause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Chosun Joongang Ilbo in order to inspire Chosun people's superiority and anti-Japan spirit. In the en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Dong-A Ilbo occurred when Ryu, Hae-bung informed of Lee, Gil-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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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주 태권도사에 대한 고찰: 29사단 창설기념탑을 중심으로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49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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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29사단의 창설 배경과 창설기념탑이 설치된 스토리, 그리고 실종과 발굴에 관련된 향토사적 스토리를 규명하고자 했다. 29사단 창설기념탑과 관련된 역사적 스토리를 규명하기 위해 문헌고찰과 구술채록, 현지조사를 수행하였으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29사단은 최홍희가 창설한 부대였으며 사단마크로 주먹모양을 사용할 만큼 태권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무도수련을 중심한 부대였다. 제주에서 7개월 간 주둔한 이후 29사단 창설기념탑을 세웠으며 사단마크로 인해 '주먹탑'이라 불렸다. 둘째, 29사단 창설기념탑은 1985년 권력자가 대정읍을 방문하면서 관련 기관의 압력에 의해 비밀리에 매몰되었으며, 2000년 11월,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의 도움으로 발굴되어 복원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This study is aimed to illuminate the local historical story of the establishment, disappearance, and excavation of the 29th Division Monument in Jeju Island. In order to carry out this study, historical stories related to the 29th Division Monument were identified through a literature review, oral transcript, and on-site investigation. The research outcomes are as follows. First, the 29th Division was founded by Choi Hong-hee and was centered on martial arts training, which is the predecessor of Taekwondo, to use the fist shape as a division mark. After seven-month stay in Jeju, moved to Gangwon Province to build a 29th Division Monument for the founding of the 29th Division and was called a "fist tower" by local residents due to the division mark. Second, the 29th Division Monument was secretly buried under the threat of a powerful organization when a powerful man visited Daejeong-eup in 1985, and was excavated in November 2000 with the help of local residents and politicians and was restored to its current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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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민족의 제전, 전국체육대회 100년의 역사적 의미

저자 : 손환 ( Son Hwan ) , 하정희 ( Ha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1-6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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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축제인 전국체육대회 100년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그 특징과 성격에 따라 탄생, 부활, 도약, 비상으로 나누어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전국체육대회는 명실 공히 한국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체육행사로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대내적으로는 지방과 서울의 균형 있는 체육발전을 통해 엘리트선수의 발굴과 육성의 무대로서, 대외적으로는 국위선양, 국가의 위상제고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등 한국엘리트체육의 요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국체육대회는 역사적으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전국체육대회는 지금까지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국체육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며 체육을 통한 민족화합과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studie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100-year history of the National Sports Festival(NSF), which is the nation's top sports festival, by its birth, resurrection, leap and soar. And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The NSF is Korea's most prestigious and historical sports event and served it's role to raise awareness of the national consciousness by resisting against the Japanese occupation. After the independence, it served as a cradle for Korea's elite sports, such as finding and nurturing elite athletes internally through balanced development of sports between Seoul and dther countries and setting the stage for promoting national prestige and enhancing the status of the nation externally. Also, National Sports Event is very meaningful in that it gave people courage, hope, and self-esteem. From now on, the NSF will have to prepare for a new 100 years of Korean sports through the evaluation of its achievements and tasks so far, and make an opportunity for a national harmony and leap forward to become a sports advanced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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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재충의 삶을 통한 한국 남자핸드볼 역사의 고찰

저자 : 최승아 ( Choi Seung-ah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7-8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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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남자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유재충의 생애를 통해 한국 남자핸드볼 역사를 미시사적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유재충은 제20회 1972년 뮌헨올림픽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에 참가한 우리나라 남자핸드볼 첫 국가대표였다. 둘째, 고등학교 핸드볼 지도자로서 우수한 성적을 이뤘으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 남자핸드볼 감독으로 은메달을 획득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서울올림픽대회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유재충과 선수들이 함께 이룬 노력의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지도자로서 수많은 제자들을 육성하였고, 한국핸드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감안할 때 한국 남자핸드볼의 역사에서 1980년대 남자핸드볼의 전성기를 이끈 유재충의 삶은 한국 남자핸드볼의 전성기에 대한 단면을 넘어서 한국 남자핸드볼의 역사를 촘촘하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oral history of Korean male handball history through the life of Yoo Jae-chung, who was the coach of the male handball national team at the 1988 Seoul Olympics. He was the leader of the Korean men's handball team in the 1980s and achieved remarkable performances internationally. The following conclusion is intended to organize the life of Yoo Jae-chung. First, Yoo Jae-chung was the first Korean national male handball team to participate in the Asian qualifying round for the 20th Munich Olympic Games in 1972. Second, he achieved excellent performance as a high school handball leader and contributed a lot to winning silver as the coach of the Korean men's handball team at the 24th Seoul Olympic Games. The silver medal in the Seoul Olympic Games was the result of Yoo Jae-chung and his athletes' efforts together. As a leader, he fostered numerous students and worked hard to develop Korean handball. This research will be meaningful to our handbal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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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조시기 무예의 투로(套路) 기원에 관한 고찰

저자 : 박귀순 ( Cindy Par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95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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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고찰을 통해서 투로(套路)가 처음 출현한 한조시기의 무예 전개 과정을 개괄하고, 그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이 시기에 처음 출현한 투로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혔다. 이 시기에는 민간무예와 군사무예가 장려되었는데, 각저와 수박 등의 도수무예는 무예적 요소에 유희성과 실용성 등이 더해져 새롭게 발전했으며, 새로운 형태의 도검류가 제작되어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존 중국 가장 오래된 병법, 무예서가 편찬되었고, 무예 용어와 투로가 처음으로 출현했다. 투로는 공방개념이 내포된 최소 두 동작 이상이 연결된 도수무예와 병기무예의 기예라고 할 수 있었다. 투로는 무무라는 말과 같이 무용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이며, 무용, 희극, 오락 등과의 접목으로 무예 특유의 공방 특징이 내포되면서 수련이나 계승은 물론 시연, 전략, 전술 등에 활용되었다. 이 시기 처음으로 무예 투로가 출현하면서 도수무예와 병기무예의 기예가 풍부해졌으며, 수련 체계가 확립되었고, 무예 재원을 선발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되었다. 이러한 투로의 출현으로 무예의 다양화와 체계화가 이루어졌으며, 체육사적ㆍ무예사적 의미가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development in the Han Dynasty's Martial Arts and it's characteristics, when Taolu(套路) first appeared, and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Taolu. During this period, private and military martial arts were encouraged. In addition, the oldest Chinese military and martial arts book was compiled, and the term Muye and Taolu first appeared. Taolu could be said to be a technique of martial arts which at least two movements implying the concept of defense and offense are connected. And it was used as part of demonstrations, strategies, and tactics as well as training and succession as well as training or succession as it implied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 through grafting with dance, comedy, and entertainment. Also, with the advent of Taolu, the techniques of Martial Arts became abundant, and were used as a basis for selecting person of martial arts. With the advent of Taolu, diversification and systematization of Chinese martial arts were achieved, and it had history of physical education and martial ar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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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댄스스포츠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의 성과와 의미

저자 : 이인정 ( Lee In Jung ) , 이현정 ( Lee Hyun 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5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7-11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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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댄스스포츠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의 성과와 의미를 규명하는 연구로 문헌고찰 방법을 활용하여 도출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댄스스포츠 사설 단체들은 성공적인 대통합을 이루고 경기단체(대한댄스스포츠경기연맹)를 설립하며 대한체육회 준가맹 승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둘째, 통합된 댄스스포츠 경기단체는 2003년 대한체육회 준가맹 단체로 승인된 이후 2007년 대한체육회 정식가맹 단체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전문화된 스포츠 종목으로 성장을 지속하였다. 셋째, 댄스스포츠는 2009년 전국체육대회 시범종목으로 선정되고 2013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넷째, 댄스스포츠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은 국내에서 스포츠 경기종목으로서의 이미지 제고와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체계적인 정책수립과 기술의 향상으로 댄스스포츠 종목의 양적ㆍ질적 발전을 가져왔다.


This study will explore the achievements and significances of adoptation of Dancesport as official sporting event in National Sports Festival and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Successful consolidation of Korea's many regional Danceport competition groups into one federation has led to it laying the foundation for sub∼affiliation approval for KSOC. Secondly, After being accepted as sub∼affiliate of KSOC in 2003 and achieving full member status in 2007, Korean Dancesport introduced various policy support initiatives resulting in the sound growth of the sport. Thirdly, Dancesport continued to flourish in its growth by being selected as a demonstration sport for the National Sports Festival in 2009 and later being fixated as an official sport in 2013. Lastly, Becoming one of the official sports in National Sports Festival ha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enhancing and popularizing Dancesport. The recognition has brought about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development of Dancesport events through systematic policy establishment and technological improvements, solidifying Dancesport's status as a legitimate sporting event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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